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8화 (28/233)

〈 28화 〉 황녀 납치 사건 ­1­

* * *

흰 가면 여자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개새끼들.

흰 가면 여자의 손짓에 주변에 있던 가면남들이 접근했다.

글로 묘사하니 무슨 음란 소설의 한 장면 같네 시발.

딱 봐도 싸우면 내가 질 게 확실했다.

시발 죽기 싫어.

생존 욕구에 내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일단 가면 일당의 목표는 믿기지 않지만 황녀인 케이트였다.

그리고 목표인 황녀 케이트를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게 데려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방해물일 뿐이고, 죽여도 아무 뒤탈 없는 목격자이기도 했다.

나는 재빨리 옆에 있는 케이트의 허리를 끌어안아서 당겼다.

케이트는 가슴과 다르게 허리는 가늘어서 안기 편했다.

키가 작은 케이트는 내 품에 쏙 들어왔다.

"악! 평민 너?!"

품안에 들어온 케이트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나는 그런 케이트의 목에 아카데미 검을 뽑아서 갖다 댔다.

"움직이지마 개새끼들아! 움직이면 이 년 조립식으로 가져가야 될 거야! 앙!? 심지어 삐뚤빼뚤하게 자를 거라고! 앙!?"

나는 최대한 악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긁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괜찮았나?

왠지 입에 착 달라붙기는 했는데.

'푸하하하! 용사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리는군! 크하하하하!'

검이 박장대소했다.

"야!"

케이트가 품 안에서 꼼지락거렸다.

"닥치고 좀 있어 봐 시발년아. 너 때문에 나까지 뒤지게 생겼잖아 시발. 나도 살아야 될 거 아니야."

그런 케이트의 귀에 거칠게 속삭였다. 케이트의 몸이 움찔하더니 힘을 뺐다.

내 예상이 맞은 듯 주변에서 접근하던 가면남들이 멈췄다.

"깔깔깔깔 재밌는 아이구나! 너는!"

흰 가면 여자가 손뼉까지 치면서 미성으로 웃었다.

내가 생각한 반응이 아닌데?

흰 가면 여자의 반응에 나는 일이 잘못되가는 걸 느꼈다.

"좋아! 좋아! 그 고귀한 년의 몸과 머리를 분리해서 이쪽으로 던지렴! 그럼 넌 살려줄게! 여우의 이름을 걸고!"

흰 가면 여자가 들뜸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그렇지만 황녀는!"

옆에서 가면남 하나가 흰 가면 여자를 말렸다.

그렇지! 시발. 이 싸가지가 너희 목적이잖아.

가면남이 말을 마치자마자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시발.

떨어진 가면남의 목은 어느새 매끈하게 잘려져 있었다.

잠시 뒤 목의 잘린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머리를 잃은 몸이 무너졌다.

어느새 흰 가면 여자의 손에 단검이 들려 있었다.

"또~? 의견 있는 사람?"

흰 가면 여자가 단검에 묻은 피를 분홍색인 혓바닥으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 살벌한 모습에 가면남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진짜 미친년이잖아.

시발 좆됐다.

'크큭 더 재밌어지는군 하하하!'

닥쳐 이 검새끼야.

"어서 빨리 친구! 고귀한 년의 피는 다른 색인지 보여줘! 빨리!"

흰 가면 여자가 달콤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케이트의 목에 겨눈 검을 살짝 더 찔러넣었지만, 흰 가면 여자의 드러난 붉은 입술이 더 호선으로 휠 뿐이었다.

품 안에 있는 케이트가 두려운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물론 나는 진짜 케이트의 목을 딸 생각은 없었다.

케이트가 다가오는 검을 피해서 좀 더 내게 붙었다.

그러자 케이트의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내 하체에 밀착했다.

하체에서 느껴지는 엉덩이의 감촉이 황홀했다.

아니 시발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닌데.

시발 어떻게 하지.

"흐응­ 재미없어."

흰 가면 여자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고­

갑자기 내 눈앞에 흰 가면 여자가 나타났다.

흰 가면 여자가 내 머리에 딱밤을 때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어두워졌다.

머리 좀 그만 때려 시발.

가뜩이나 나쁜 머리.

***

"귀한 몸이니까 곱게 모셔."

흰 가면을 쓴 여자가 소리쳤다.

기절해 있는 금발 머리의 소녀를 남자들이 조심스럽게 들어서 옆의 마차에 실었다.

"여우님. 이 남자는 어떻게 할까요?"

가면을 쓴 남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흰 가면을 쓴 여자에게 물었다.

"흐응 꽤 맛있어 보인단 말이야. 일단 같이 실어. 무기 빼고 구속구 채우고."

"같이요? 아! 알겠습니다!"

남자가 되물었다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대답을 한 남자가 쓰러져있는 남자를 끌어다가 수갑 같아 보이는 것을 채웠다.

남자가 쓰러져있는 남자의 검을 빼려고 하자 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앗!"

당황한 남자가 침음을 흘렸다.

"오­ 에고 소드까지. 재밌네. 검은 풀지말고 그냥 같이 실어. 어차피 약하니까."

"예!"

이윽고 남자까지 옆의 마차에 실고 그들은 사라졌다.

***

"야! 일어나봐! 그만 자고!"

누가 자꾸 옆에서 흔들었다.

아 머리 아파 시발.

눈을 뜨니 케이트의 얼굴이 보였다.

"뭐야 시발?"

내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지금이 자고 있을 때야!? 평민!?"

일어나자마자 케이트가 땍땍거렸다.

내가 왜 케이트랑 있지?

쇼핑하다가... 가면남들 만나서...

시발 납치됐네.

그래도 죽지는 않아서 다행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철로 만든 마차의 내부 같았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우고 일어나려는데 손에 뭔가 채워져 있었다.

뭐야 이 흉물스러운 건.

"구속구야. 육체의 구속뿐만 아니라 기운의 움직임까지 막는."

케이트가 내 손을 묵고 있는 물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근데 왜 나만 있어. 너는 시발?"

내 말처럼 케이트의 몸에는 아무 장치가 없었다.

이거 시발 남녀 차별 아니야?

"난 황녀잖아."

아차! 신분 차별이었네.

"미친 시발 니가 황녀면 나는 황자다."

"뭐?! 나 황녀라니까!"

케이트가 눈을 크게 떴다.

"어쩌라고 시발"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황녀라는데?!"

"황녀고 뭐고 시발 뒤지게 생겼는데 그게 중요하냐. 지금?"

"진짜 아무렇지 않아!?"

"뭐라는 거야 미친 진짜."

"다행이다..."

다행이래 진짜 빡대가리인가.

"뭐가 다행이야 시발. 빡대가리야! 너 때문에 나까지 뒤지게 생겼잖아! 지금! 진짜 매콤 주먹 맞을래?"

진짜 손 안 묵여 있었으면 너는 나한테 매콤 주먹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어 시발.

"그건 미안..."

케이트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그래 시발 지금 얘한테 뭐라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물론 달라지진 않지만 화풀이는 해야지.

묶여있는 손 말고 발로 세게 케이트를 걷어찼다.

내 깔끔한 발차기가 케이트의 옆구리에 제대로 들어갔다.

발에 차인 케이트가 데굴데굴 굴러 마차의 벽에 부딪혔다.

"하하! 시발 이게 바로 민중의 심판이다! 이거야!"

케이트가 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야이! 평민이!?"

케이트가 양손이 묶인 내 위에 올라타서 조막만한 손으로 내 몸을 흠씬 두들겨 팼다.

"미친! 시발! 항복! 항복!"

"푸하하 바보냐!? 항복이라니! 왼손! 오른손!"

이 미친년이 때릴 때마다 추임새까지 넣으면서 때렸다.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쥐어패는 케이트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아! 잠깐! 뼈 맞았어!"

"뼈 펀치! 푸하하!"

시발년.

한참 나를 쥐어패던 케이트가 갑자기 나를 안았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케이트의 가슴이 느껴졌다.

"미안해­ 나 때문에 에이든이 위험해졌어.."

케이트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어느새 내 볼을 적시고 있었다.

감정 기복 존나 심해.

미친 시발 소름 끼쳐.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지켜줄 게 에이든!"

케이트가 눈물 젖은 얼굴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이뻤지만, 또한 얄미웠다.

"지랄하네 진짜."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이트의 주먹이 정확하게 내 명치에 박혔다.

"앗! 손이 무의식적으로! 에이든?!"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케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켜준다며 시발.

***

눈을 뜨니 케이트는 내 위에서 나를 안고 자고 있었다.

어쩐지 무겁더라니 시발.

마차 넓잖아,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거야.

가슴팍에서 케이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쾅­ 소리가 나며 마차의 문이 열렸다.

"재미 보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도착했거든?"

흰 가면 여자가 얼굴을 마차에 넣고 말했다.

"앗!"

흰 가면 여자의 말에 케이트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너 자고 있던 거 아니었냐.

케이트가 붉어진 얼굴로 일어나서 곱게 흰 가면 여자를 따라 나갔다.

나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서둘러 케이트를 따라 나갔다.

마차에서 내리는 내 엉덩이를 흰 가면 여자가 슬쩍 주물렀다.

내가 놀라서 돌아보자 흰 가면 아래로 드러난 여자의 붉은 입술이 '쪽' 소리를 냈다.

밖은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온 거야.

나는 서둘러 케이트 옆에 섰다.

"황실 기사단에서 가만 있지 않을 텐데 자신 있나 보지?"

케이트가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흐응­ 황녀님 이 동굴이 뭐로 되어있는지 알아?"

흰 가면 여자가 우습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동굴 색이 약간 이상했다.

보라색이 약간 감도는 회색의 동굴이었다.

케이트도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눈가가 찌푸려졌다.

"헬리티움 광석으로 구성된 동굴이거든. 이 동굴이."

흰 가면 여자가 동굴 벽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헬리티움이 뭔데 씹덕아.

"헬리티움!"

하지만 케이트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저 빡대가리도 아는 걸 내가 몰랐다는 걸 들키면 안 되니 나도 대충 '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 잘난 황실 기사단도 추적하지 못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곱게 따라와."

대충 눈치로 봐서는 마법이 통과하지 못하는 성질의 광물인 듯했다.

케이트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쪽은 나랑 같이 가지~?"

흰 가면 여자가 나를 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마치 맛있는 케이크를 보는 눈빛으로.

"얘는 나랑 같이 갈거야. 그게 내가 너희 말을 따르는 조건이다."

케이트가 내 손을 잡고 당겼다.

그래 그래 잘한다 케이트!

나는 케이트 뒤에 숨었다.

물론 케이트의 키가 작아서 몸을 잔뜩 수그려야 내 몸이 가려졌다.

"흐응 아쉬운데... 그럼 황녀님 전담 시종으로 주도록 할게. 그럼 됐지?"

"그럼 나도 저항하지 않도록 하지."

왠지는 모르지만, 케이트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살짝 보며 대답했다.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은지 둘이 나를 두고 알아서 합의했다.

물론 나는 내 결정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

이 가면 인간들의 본거지는 동굴 깊숙이 있었다.

동굴을 따라 깊숙히 들어가자 엄청난 크기의 공동이 나왔고 거기에 많은 수의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다.

왜 굳이 이런 데서 사는 거야 이 음침한 가면 인간들은.

그들은 천막들 중 제일 깨끗하고 큰 천막에 케이트를 넣었다.

나는 그런 케이트의 시종으로 잡일을 도맡아서 했다.

케이트의 밥을 갖다준다던지 청소를 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얄미운 케이트는 하는 일 없이 그냥 천막에서 꿀만 빨았다.

저게 납치를 당한 건지 휴가를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케이트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물론 케이트에 대한 대우만 시발.

"막내야! 이거 담아!"

"네! 갑니다 가요!"

나를 부르는 말에 다듬던 재료를 두고 뛰어갔다.

가면 일당들은 전투 전문인지 잡일에 대한 능력이 형편없었다.

지금까지 쟤네끼리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렇다.

나는 끌려온 지 삼 일 만에 잡일에 대한 놀라운 재능으로 가면 일당의 잡일 막내가 됐다.

용사 지망생인 내가 가면 일당의 막내가 된 것이 다행인지 헷갈렸다.

"캬~ 역시 우리 막내가 일을 참 잘한단 말이야!"

식사 담당인 귀엽게 생긴 여자가 내 옆에 붙어서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이 주물렀다.

"그러게 우리 막내 없었을 때는 이런 걸 어떻게 했는지 몰라~"

다른 여자는 반대쪽에서 내 볼을 꼬집고 있었다.

가면 일당들은 이제 내 앞에서 가면도 안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제일 불안했다.

자신들의 얼굴을 본 나를 이 새끼들이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어머어머 막내 얼굴 붉어진 거 봐!"

"귀여워­ 혹시 우리 막내 여자 경험이 없나?"

옆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성희롱을 애써 웃어넘기며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반응이 없자 그들은 내 몸 곳곳을 만졌다.

앗 거긴!

"흐응­ 여우님이 건드리지 말라고 안 했으면 진작 눕혔는데 아쉽네."

"관심 있으면 누나한테 말해 총각 딱지 떼줄게. 누나 완전 잘해­"

나는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 주변의 방해해도 꿋꿋하게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저는 그럼 황녀님의 밥을 위해서 가보겠습니다."

황녀 이야기를 꺼내면 이들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겠다.

내 몸을 주무르던 그녀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떨어졌다.

나는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음식들을 들어서 케이트가 머무는 텐트로 갔다. 케이트는 팔자 좋게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보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확 올라왔다.

"와! 밥이다­"

나를 본 케이트가 신나서 일어났다.

진짜 얘도 속 좋다.

열불이 뻗치는 속을 다스리며 식탁에 음식을 놓았다

케이트가 흥얼거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와­ 오늘도 맛있는 것들 천지네!"

케이트가 신이 나서 포크를 들었다.

그 태평한 모습을 보고 열불이 다시 한 번 확하고 올랐다.

나는 참지 않고 매콤 주먹으로 케이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야!? 너!?"

케이트가 머리를 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황녀라면서 이 상황에 밥이 넘어가냐!?"

한 대 쥐어박으니 꼬인 속이 좀 풀렸다.

"너 황녀 때리면 황족 시해 죄인 거 몰라!? 너 목이 수도 광장에 걸린다고! 수도 광장에!"

케이트가 맞은 부분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어쩌라고! 엉덩이 한 대 더 맞을래?!"

손바닥을 들어 휘젓자 케이트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조용해졌다.

나는 케이트 반대편에 앉아 포크를 들었다.

고급 고기처럼 보이는 것을 집어서 한입에 먹었다.

와 육즙 봐! 미쳤다 미쳤어.

"너! 그걸 혼자 다 먹어!?"

고기를 한입에 넣느라 부푼 내 볼을 케이트가 양손으로 황급히 잡았다.

"너는 황녀라며! 평소에 맛있는 거 많이 먹었을 거 아니야! 이 돼지야!"

케이트의 손에 굴하지 않고 고기를 씹어서 삼켰다.

"뭐?! 돼지!? 나 완전 말랐거든!"

얼굴을 붉히며 분노하는 케이트에게 중지를 보여주고 열심히 먹었다.

음­ 개 맛있어 음식들.

"이!?"

케이트가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다시 앉아서 허겁지겁 먹었다.

저게 황녀라니. 쯧.

허겁지겁 먹던 케이트의 입가에 소스가 묻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케이트의 얼굴에 묻은 소스를 닦아줬다.

깜짝 놀라며 쳐다보는 케이트를 향해 자동으로 미소를 지었다.

"묻었습니다 레이디."

아 시발.

지랄병 또 도졌네.

'푸하하하하! 기사병이로군!'

"느끼해!!!"

케이트가 먹다 말고 얼굴을 푹 숙이고 소리치더니 침대로 뛰어갔다.

나는 그 덕분에 남은 음식들을 혼자 다 먹을 수 있었다.

개꿀.

자주 써먹어야겠어.

***

종말의 날이 다가온 건가.

망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떼를 이루어 성을 포위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아아... 빛의 신이시여 정녕 우리를 버리신겁니까!"

"엄마 나 무서워!"

"다들 어서 찌를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고 와 !"

성 안은 혼비백산이었다.

성주가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발 이렇게 뒤지는 거면 고백이라도 해볼걸"

"푸핫 고백해봤자 어차피 차이기밖에 더 했겠어? 아서라 아서"

우습게도 옆에 있는 토마스의 하릴없는 말 덕분에 긴장이 탁하고 풀렸다.

"그나저나 시발 이렇게 뒤질 줄은 몰랐는데 시부랄."

토마스가 손에 퉤­하고 침을 뱉고 꼬챙이를 다시 잡았다.

꼬챙이의 끝이 많이 상해있어서 무기로 쓸 수 있을까 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내 손에 있는 식칼도 방금까지 닭 모가지를 썰다가 들고나온 것이니까.

"죽었으면 곱게 땅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시부랄것들."

토마스가 상스러운 말들을 내뱉었지만, 말과는 반대로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도 떨리는 손을 힘주어서 진정시켰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다들 무기를 들어!"

성벽 위에서 성주가 열심히 소리치고 있었다.

이내 망자들이 성벽에 붙기 시작하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곳곳에서 귀를 찢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여자 한 명이 떠 있었다.

"뭐야 저 여자 아까부터 있었나?"

"시부랄 지금 뭔 여자 타령... 어?! 공중에 떠 있네?"

여자는 칠흑 같은 머리색과 머리색에 상반되는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죽을 때가 돼서 여신이 보이는 건가?"

토마스가 멍하니 여자를 보며 말했다.

평소라면 토마스의 말을 멍청하다고 치부했겠지만, 여자의 외모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새하얗고 자그마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여자의 손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였다.

여자의 손에서 불이 끊임없이 나왔다.

뱀처럼 움직이는 불들은 마치 악을 징벌하는 것처럼 망자만을 골라서 태우고 있었다.

"와! 진짜 여신님이 오신 거야 여신님!"

"여신님이다! 우린 살았어!"

어느새 사람들이 우리처럼 여자를 올려보면서 환호하고 있었다.

"시부랄것. 신이란 게 진짜 있었군."

여신님이 가볍게 손짓으로 망자들을 태워나갔다.

그 압도적인 모습이 마치 신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아직 망자들의 수가 많이 남았지만 믿기지 않는 여신님의 무력으로 봐서는 어렵지 않게 해결해주실 것 같았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식칼을 든 손에 들어갔던 힘이 풀렸다.

다른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며 여신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움직이던 여신님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넘실넘실 움직이며 망자들을 태우던 불길도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여신님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하지만 잔뜩 구긴 얼굴인데도 여신님이라 그런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에이든!?"

여신님이 조용하게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정적이 성안에 내려 앉았다.

여신님을 보며 환호성과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벙쪘다.

그들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 되지 않았다.

"에?"

멈췄던 망자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애미 시부랄!!! 여신이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 "

토마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식칼을 든 손에 힘을 줬다.

형수랑 교미했던게 들켰나?

착하게 살 걸.

시부랄것.

다시 성안은 다양한 비명 소리로 가득찼다.

"으아아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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