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황녀 납치 사건 4
* * *
전투가 끝난 사내는 음식들을 정말 게걸스럽게 먹고 다수의 여자와 침대에서 마구 뒹굴었다.
와...
'잠자리도 이 친구가 끝내줬었지. 이것도 잘 보고 배우라고 소년.'
너 시발 루나검이지.
'그걸 지금 눈치채다니 여전히 눈치는 느리군.'
배워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남자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여자와 관계가 끝나면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 소원을 물어봤다.
뭐야 저 이상한 의식은. 원래 관계 뒤에 저런 걸 물어봐야 하나?
경험이 없는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건 그냥 저 아이의 전통이라네.'
아하 나중에 삥 뜯길 뻔했네.
'할 수는 있고?'
미친 검새끼가.
여자들은 그런 사내에게 다양한 소원을 말했다.
돈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남편을 죽여달라는 소원까지.
남자는 항상 여자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엔 이루어줬다.
그래서 그렇게 이기는데도 옷을 못 입을 정도로 가난한 거구만.
남자는 다시 경기장에 나갔다.
남자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맹수 같았다.
남자의 강함은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강함이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과 수많은 경험에 의한 강함이었다.
남자는 기운조차도 본능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 기운을 다루는 방식이 나와 달라 새로웠다.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남자는 상대가 몇이든 다 죽이고 머리를 뽑았다.
남자의 움직임에는 거침과 파괴만이 존재했다.
이게 사람이 맞아?
내가 본 강함 중 제일 패도적인 강함이었다.
결국 남자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더는 없었다.
피를 마시지 못하니 근질근질하군.
피에 대한 갈증은 여자를 아무리 안아도 소용없었다.
그러던 중 제국에서 사람이 왔다.
쥐새끼처럼 수염이 난 사내는 연신 내 눈치를 보며 황제의 명령을 전달했다.
"카르타스트레여. 황제의 명으로 북쪽으로 올라가 주제를 모르고 이빨을 드러내는 야만인들의 이를 다 뽑아버려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소년은 원래 무식하지 않나.'
명령을 전달한 사내가 부들부들 떨면서 품에서 금이 잔뜩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야만인의 특징인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내게 야만인을 토벌하라니 우습군.
어린 시절에 제국으로 잡혀 온 내게 야만인으로서의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이 갈증을 풀 수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
심지어 금까지 쥐여주다니.
그건 그거고 쥐새끼 사내의 머리를 뽑았다.
쥐새끼 사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반항하지 않았다.
지금 갈증이 너무 났거든.
사내의 피가 입으로 들어와 정신을 일깨웠다.
그럼 오랜만에 고향에 가볼까.
퉤퉤퉤 시발! 퉤퉤퉤!
***
남자는 전쟁터 한복판에 있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 틀림없군.
이렇게 피가 많다니 말이야.
"죽어라! 마땅한 놈!"
내 앞에 있던 사내가 어눌한 제국 어로 내게 욕하며 달려들었다.
손에 있던 머리를 그 사내에게 던졌다.
그러자 사내는 당황해서 다리가 살짝 꼬였다.
나는 사내의 가슴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내 손이 사내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왔다.
"끄륽."
사내의 머리도 뽑아서 마셨다.
시원해.
미친 시발 우웩.
그 후로도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 야만인들의 머리를 뽑았다.
어느 순간부터 야만인들은 나를 피해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런 겁쟁이들.
야만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던데 소문에 불과했군.
야만인들이 도망가는 숲으로 따라서 뛰었다.
숲에서 야만인들은 더 재밌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창과 화살들.
그리고 가끔 튀어나오는 함정들까지.
종합선물세트가 따로 없군.
한참이 걸려 마지막 사내의 피까지 마실수 있었다.
한동안 갈증이 안 나겠군.
나는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잤다.
***
날카로운 느낌에 자동으로 손이 나가서 막았다.
눈을 뜨자 갈색 피부에 눈이 큰 매력적인 야만인 여자가 내 심장에 검을 찌르고 있었다.
내게 손이 잡힌 여자가 저항했다.
여자의 윤기 나는 피부와 터질듯한 크기의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여자가 필요했었는데 말이야."
"이 미친 짐승 같은!!"
여자가 어눌한 제국어로 욕하면서 반항했다.
나는 거칠게 여자를 안았다.
여자는 저항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내게 몸을 맡겼다.
이건 좀...
하룻밤을 거세게 해치운 남자가 여자의 위에서 내려왔다.
여자의 몸은 거세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의 소원은 뭔가."
남자가 무심한 눈빛으로 여자를 보면서 말했다.
"...소원?"
쓰러져있던 여자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래 소원. 무엇이든 말해도 좋다."
"...우리 가족을 죽인 제국을 무너뜨려 줘. 그럼 나를 얼마든지 가져도 좋아."
어눌한 제국 어로 말하는 여자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제국이라. 재밌겠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해보지."
땅에 꼽아뒀던 검을 다시 뽑았다.
한동안은 심심하지 않겠어.
여자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다가 흔들리는 다리를 힘주어 일어났다.
"나도 같이 간다."
여자가 자신의 단검을 빼어 들었다.
"그러지. 나도 성욕은 풀어야 하니까."
"얼마든지"
대답하는 여자의 눈에는 독기가 줄줄 흘렀다.
이해하기 힘드네.
'걱정하지 말게 소년. 결국 소년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할 것이니.'
검이 웃음기를 억지로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소리야 시발.
불안하게스리.
'푸하핫.'
***
이제 남자는 제국군을 상대로 싸워나갔다.
일반 병사들로는 남자를 막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지치지 않으며 멈추지도 않았고 또한 쓰러지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한 명이라 남자를 무시하던 제국군도 남자의 손에 죽은 병사의 수가 천 명이 넘어가자 다급해졌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느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점점 마모되어갔다.
나는 내 손으로 천 명을 죽인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죽였었나?
처음에는 의심하던 여자도 어느 순간부터 남자를 믿고 따랐다.
점점 남자의 뒤에는 야만인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뒤에 누가 따르건 전처럼 싸우고 싶을 때 싸웠으며 자고 싶을 때 잤다.
그런 남자를 야만인들은 눈치를 보며 따라다녔다.
남자가 야만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악명 높던 제국군의 대장 중 한 명의 머리를 뽑아 그 피를 마셨을 때, 모든 야만인들이 울면서 남자의 이름을 연호했다.
"아아!!! 우리들의 왕!! 카르타스트레여!"
잠깐만 이 야만인이 야만인들의 왕이라고?
'그렇게도 불리지'
미친 시발 미화 존나 심했네.
'크하하하하하'
그 모습을 남자는 수많은 제국군들의 시체가 쌓인 그 위에서 오연하게 쳐다봤다.
***
남자의 압도적인 무력과는 별개로 계속되는 전쟁에 따르는 야만인들의 수가 점점 줄었다.
이제는 열몇 명 정도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남자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다.
여전히 남자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무신경함의 극치네.
결국 남자는 수도가 보이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남자의 몸에는 흉터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빈 공간을 찾는 게 더 어려울 만큼 빼곡히.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군"
"수도에 오신 적 있으신가요?"
이제는 온몸에 흉터가 가득히 새겨진 여자가 남자에게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지."
남자는 가볍게 대답하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좋아요"
여자가 그런 남자를 다급히 잡고 씹듯이 아니 뱉어내듯이 말했다.
"너의 소원 아닌가"
남자의 어울리지 않게 맑은 눈이 여자를 쳐다봤다.
"...소원이 바뀌었어요"
여자의 제국어는 어느새 능숙해져 있었다. 여자가 고개 숙이면서 살짝 나온 배를 어루만졌다.
"중간에 소원을 바꾸는 여자는 니가 처음이군."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아주며 웃었다.
"눈치 없게 다른 여자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여자가 툭하고 남자의 가슴을 쳤다.
그런 여자를 남자가 웃으며 쳐다봤다.
고민하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냥 나와 같이 먼 곳에 가서 살아요."
여자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있었다. 여자는 혹시라도 남자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봐 두려운지 남자의 입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지."
남자가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
남자의 대답에 여자가 환하게 웃으면서 울었다.
그 환한 웃음에 남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쓸데없이 눈물이 많군."
흉터 가득한 손으로 남자가 여자의 눈물을 닦아줬다.
훌쩍.
'푸하하하 감수성이 풍부하군'
아니 시발 감수성이 풍부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저 남자니까 그런 거지.
좆같은 검새끼.
그때 수도 위로 큰 생명체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펼치며 날아올랐다.
뭐야 저건 시발.
'도마뱀이지'
"크롸롸롸롸롸롸!"
짙은 피 색깔을 가진 드래곤의 외침이 세상을 진동시켰다.
남자를 통해 보는 나조차 두려울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드래곤은 진짜 크롸롸롸롸 하면서 우는구나.
'방금 약간 비슷했네'
"먼저 가 있어라."
남자가 자신의 팔을 잡은 여자의 손을 부드럽게 밀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여자가 다시 한 번 남자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꼭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남자가 흉터 투성이인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웃었다.
안 돼! 그 대사를 내뱉으면!
여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 오기만 해봐요."
남자를 쳐다보는 여자의 눈에는 더는 독기가 없었다.
"죽여버릴 거야."
여자가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너에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남자가 피식 웃고는 뒤로 돌았다. 그런 남자의 등을 여자가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돌아서서 갔다.
"저 도마뱀을 벨 정도로 날카로웠으면 좋겠네."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검을 다시 쥐고는 빨간 도마뱀을 향해 걸었다.
남자의 손에 든 검이 대답이라도 하듯 밝게 빛났다.
그런 남자를 드래곤이 우습다는 듯이 쳐다봤다.
"크롸롸롸롸!!!"
드래곤의 울부짖음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그 울부짖음을 들으며 남자가 드래곤에게 뛰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피가 무슨 맛인지 궁금했는데 말이야."
남자가 검을 들고 힘차게 뛰어올랐다.
"맛있었으면 좋겠군."
진짜 미친 새끼가 분명하다 얘는.
'크하하하!'
***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안드레아가 큰 소리를 내버렸다.
"안드레아 양이요? 그렇지만 안드레아 양은 아카데미에서 벗어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요?"
신부가 안드레아의 큰 목소리에 놀라 눈이 커지며 말씀하셨다.
"아카데미를 담당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제 임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신성력도 제가 제일 높지 않습니까!"
안드레아가 자신도 모르게 자꾸 목소리가 커졌다.
의심에 찬 신부의 눈빛에 안드레아는 일부러 조금씩 신성력을 흘렸다.
에이든을 만나며 다양한 것들로 성수를 제조하고 또 그를 못 느끼게 하기 위해서 신성력을 연구하다보니 안드레아의 신성력은 빠른 속도로 늘었다.
예전 아카데미에서 나왔던 적성이 점점 발현되는 듯했다.
안드레아는 처음으로 신성력에 대한 자신의 재능에 감사했다.
"오! 안드레아님의 신성력이 어느새 이정도까지?!"
신부가 눈을 크게 뜨고 안드레아를 쳐다봤다.
주변에서도 '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안드레아의 신성력 만큼은 일반적인 성직자의 범주를 벗어났다.
물론 다른 전투 능력은 형편없지만, 성직자는 신성력만 높으면 되지 않는가.
"그럼 안드레아 양도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번 납치 사건은 커질 가능성이 크니."
"네! 감사합니다!"
안드레아의 목소리가 또 커졌다.
"안드레아님은 참 신실하시군요."
신부가 살짝 놀랐다가 인자하게 웃었다.
에이든님 조금만 기다려요.
아직 에이든님에게 못 먹인 제 부분들이 많아요.
생각만으로도 다시 얼굴이 붉어지며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꼭 구해드릴게요.
내 소중하고 유일한 고객 에이든.
***
철로 된 두꺼운 문이 부숴지면서 안쪽으로 날아왔다.
저 문은 특제로 만든건데, 저렇게 쉽게 날라간다고?
그리고 그 문으로 익숙한 여자가 걸어들어왔다.
빨간 머리에 빨간 눈 터질듯한 몸매.
꿈에서도 보기 싫은 비키였다.
"비...비키님! 이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그레이슨은 습관적으로 땅에 무릎을 박고 비키에게 인사했다.
비키에게는 정보 길드의 길드장인 그레이슨의 신분이 소용없었다.
그레이슨의 머리 위에 비키가 자연스럽게 발을 올렸다.
"정보"
비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슨은 몇 년이나 비키를 봐왔지만 비키가 이렇게 분노한 것은 처음 봤다.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이 아님에도 괜히 두려워서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어어떤!? 정보 말씀하시는지..."
"흰 가면을 쓴 집단들에 대한 정보 1시간 준다."
비키가 뱉어내듯이 말하고는 길드장 의자에 앉았다.
정보를 모으기에는 한 시간은 너무 촉박하다.
하지만 그레이슨은 비키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한 시간안에 못 구해오면 우리 정보 길드가 날라가겠구나.
비키의 눈에는 불처럼 타오르는 분노가 일렁였다.
그레이슨은 혼심의 힘을 다해 사무실을 뛰쳐나가 외쳤다.
"비상! 비상! 다른 의뢰들 다 킵하고 흰 가면 집단에 대한 정보를 구해온다! 한 시간내로!!!"
그레이슨의 외침에 길드원들이 놀라서 쳐다봤다.
아오! 답답한 새끼들 진짜.
"빨리 구해오라고 시발! 애미 뒤진 새끼들아! 뒤지기 싫으면!!!"
그제야 정보원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진짜 다 자르던지 해야지 시발. 답답한 새끼들.
그레이슨은 서둘러 정보 서류들을 모아둔 창고로 뛰었다.
길드장 사무실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애써 무시했다.
흰 가면 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