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황녀 납치 사건 5
* * *
남자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못할 정도로 드래곤과 잘 싸웠다.
드래곤의 입에서 나오는 불길을 검 한 자루로 갈라버리기도 하고.
드래곤의 등에 붙어서 날개를 뜯어 버리고 그 피를 마셨다.
피의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가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싸우던 남자도 결국 종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남자의 굵던 팔은 드래곤의 발톱에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고, 땅을 굳게 딛고 서 있던 다리는 잘려서 땅을 뒹굴었다.
그런 남자에게 드래곤의 큰 입이 점차 다가왔다.
나는 생으로 드래곤에게 씹히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으악! 시발.
사내는 얼마나 지독한지 씹히는 와중에도 드래곤의 입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 팔로 웃으며 끝까지 발악했다.
그 숨이 멎을 때까지.
흐업!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드래곤의 개같이 큰 목젖이었다.
눈을 뜨니 다시 흰색 공간이었다.
시발 먹히는 거 기분 개 같네.
"그렇게 드래곤의 뱃속에서 한 백 년을 있었지."
흰 남자가 어느새 내 뒤에 서서 약간의 웃음기를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좆같은 경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강자를 체험했다는 점은 내게 큰 의미였다.
그 남자의 본능적인 기운의 흐름.
기운을 깨우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
남자의 몸에 들어갔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기운을 움직였다.
약간 어색했지만,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보다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지만 속도가 더욱 빠르고 패도적이었다.
나쁘지 않네.
어느새 내 손에는 검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루나라고 잔뜩 적힌 검.
왜 이 검이 먼저 생각나는 거지.
검이 점점 무거워졌다.
기운이 더욱 빠르고 패도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나는 그대로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오! 시발!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어.
"소년의 상상일 뿐이네."
내 옆에 있던 흰 남자가 피식 웃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갈라졌던 세상 사이의 공간에서 아까 그 붉은색 드래곤이 튀어나왔다. 한 마리도 아니고 몇백 마리나.
"으악! 시발 뭐야 저거!"
'자 다시 한번 휘둘러보게나 소년.'
검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들렸다.
그 목소리에는 사람을 침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래! 시발 할 수 있다!"
묘한 자신감이 생기며 검을 다시 한번 들었다.
다시 기운을 돌리고.
검이 무거워지고.
타이밍에 맞춰서 휘두르려고 하는 순간.
"물론 아직 아니야."
내 눈에 흰 남자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아 딱 좋았는데!
시발!
"그럼 다시."
흰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정신이 다시 아득해졌다.
***
가까이에서 검을 내지르는 제국군의 팔을 잡아서 당겼다.
놀란 표정과 겁먹은 표정이 적절히 섞인 제국군의 머리를 잡아서 뽑았다.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피에 시원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뽑은 머리를 내 위로 높이 들었다.
마치 언젠가 봤던 연못 속의 물고기처럼 머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따뜻한 피가 입안으로 넘치도록 쏟아졌다.
아 달콤해.
아 시원해.
사내의 머리에서 피가 멈추자 다시 갈증이 찾아왔다.
'정신 차리도록 소년.'
시발.
난 이런 야만인이 아닌데.
퉤퉤.
***
밤새도록 여자를 안았다.
이런 기분이었군.
어디를 만지면 여자가 좋아하는지 점점 깨달았다.
여자들은 밤새 내게 매달렸다.
나쁘지 않아.
아니 좋아.
미치도록.
'저건 소년이 아니야.'
예아! 나는 교미왕!
'푸하하핫!'
***
거칠게 야만인 여자를 안았다.
이건 또 색다른 맛이 있네.
저항하던 여자도 내게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교미왕이야.
'푸핫!'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여자의 독기 가득한 눈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여자에게 물었다.
"너의 소원이 뭔가?"
내 말투가 약간 오그라들었다.
"...우리 가족을 죽인 제국을 무너뜨려 줘. 그럼 나를 얼마든지 가져도 좋아."
여자가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좀...
야만인 여자의 미친 소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발 제국을 어떻게 무너뜨려.
정신 나간 애네 저거 완전.
***
피처럼 붉은빛의 드래곤이 날아올랐다.
와 시발 존나 개 살벌하네 느낌.
튀자 어서.
나는 내 발을 돌리고 싶었지만, 이 미친 무식한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머릿속에 점점 희열이 가득 차면서 나는 드래곤에게 뛰기 시작했다.
아니 시발 튀어야 한다니까!
"드래곤의 피가 무슨 맛인지 궁금했는데 말이야."
내 입이 제멋대로 지껄였다.
이 미친 주둥이 닥쳐 좀.
"맛있었으면 좋겠군"
내 입꼬리가 깊게 올라갔다.
시발 이건 내가 아냐.
'크흡'
아그작 소리가 나면서 생으로 드래곤에게 씹혔다.
저 멀리 어떤 나라에서는 고기를 생으로 먹는다던데.
부디 내 뼈가 저 망할 드래곤의 이에 껴서 귀찮게라도 했으면.
***
알았다.
이 새끼는 나를 여기서 내보낼 생각이 없어.
나는 끊임없이 사람을 죽여야 하고 마셔야 하고 도마뱀에게 씹어 먹혀서 죽어야 한다.
얼마나?
'그건 나도 모르지 하하. 저번에는 천 번 정도였는데.'
망할 검 새끼.
나름 잘 대해줬는데 말이야.
은혜를 이렇게 갚아?
그리고 저번은 뭐야?
천 번?
검이 내 말을 못 들은척 했다.
'나는 그 귀여운 소녀를 살리고 싶거든.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무리하면서 각성하는 남자 용사...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나는 그런 유치한 로망 없어 미친놈아.
'그럼 소년의 로망은 무엇인가?'
검이 내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내 로망?
비밀이다 십새끼야.
'그럼 어쩔 수 없군.'
차가운 손가락이 내 머리를 감쌌다.
'그럼 다시.'
넌 시발 나가면 봐.
'푸핫.'
***
아그작.
"이런 시발 도마뱀 새끼!"
"그럼 다시"
***
나는야 교미왕!
아그작.
"그럼 다시."
***
지금이 몇 번째지?
'백 번 정도 됐으려나.'
아래를 내려다보자 흉터가 가득한 근육질의 몸이 보였다.
이건 내 몸이 아닌데?
'결국 소년의 몸이 될 것이네.'
다시 차가운 손이 머리를 감쌌다.
'그럼 다시'
저 애미 터진 검새끼
***
'이 정도면 되겠군.'
흰 남자가 내 앞에서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나는 흰 남자의 말에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 왼손은 빛나는 갑옷에 휩싸여 있었다.
몇 번이나 검을 휘둘렀을까 검을 휘두르기 위해 태어난 몸 같았다.
왼손을 타고 정돈되고 깨끗한 기운이 막힘없이 흐르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흉터가 가득한 오른손이 보였다.
언제봐도 징그러운 손이야.
오른손에 힘을 주자 빠르게 기운이 돌아서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다.
힘이 넘쳤다.
'흠 이제는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군. 흥미로워.'
흰 남자가 그런 내 몸을 툭하고 찔렀다.
양쪽의 몸이 벗겨지면서 약간 타고 살짝 근육질의 몸이 나왔다.
뭐야 이 쓸모없는 몸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울컥했다.
뭐가 쓸모없어 시발 니네 몸들보다 더 깨끗하고 말끔하구만.
근데 누가 말한 거야?
난가?
나지.
'푸하하 지랄 났군.'
나한테 감히 그렇게 건방지게 말하지 말도록.
머리를 뽑아서 그 피를 마셔버리기 전에.
나는 그런 야만적인 행동은 하지 않아.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다.
나는 시끄러움을 막기 위해 내 귓구멍에 손가락을 박았다.
'크흡 꼴이 너무 재밌어서 더 놔두고 싶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만 하는 게 좋겠군.'
뭐라는 거야. 저 재수 없는 새끼.
확 목을 뽑아 버릴까?
'진정하게 소년.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목을 뽑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마왕을 베는 것이지.
뭔 개소리야 너네 둘 다 시발.
흰 남자가 억지로 웃음을 참는 얼굴로 날 쳐다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진짜 소년이 교미왕인지 확인해봐야지.'
딱.
***
"...에이든 자?"
조심스럽게 말하는 케이트의 목소리에 눈이 바로 떠졌다.
그 목소리에는 머뭇거림과 망설임이 잔뜩 담겨서 듣는 내게도 전해졌다.
얼마나 잤던거지.
분명 잠을 잤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피곤해.
고개를 돌리자 이불을 잔뜩 올려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눈만 빼꼼 나와서 쳐다보는 케이트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케이트의 큰 눈이 더 커졌다.
그래도 저건 너무 비정상적으로 큰 거 아닌가?
[맛있겠군.]
뭐라는 거야 시발.
"왜."
잠겨서 마른 목소리가 나왔다.
왠지 모르게 드는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시발 침 삼키는 소리가 왜 이렇게 커.
혹시 들리지 않았겠지?
케이트의 손이 내 배 쪽으로 움찔거리면서 올라왔다.
"에이든의 계획을 생각해봤는데..."
케이트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설레게 만들어 심장이 빨리 뛰었다.
"...계획?"
최대한 목을 가다듬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살짝 떨리는 목소리만은 감출 수 없었다.
"응... 나 아직 죽기 싫어.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용사도 꼭 해보고 싶고. 또... 데이트도 못 해봤고."
케이트가 내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케이트의 자그마한 손이 내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케이트의 얼굴은 이제 붉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 같았다.
덩달아 내 얼굴도 붉어졌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에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
나중에 질병 관련해서 학술지에 보고를...
'집중해 소년'
검이 내게 재촉했다.
닥쳐 좀 시발.
'에이든이니까' 하고 케이트가 작게 숨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나 진짜 잘 모르지만..."
케이트의 작은 손이 내 옷 사이로 들어와 내 배를 어루만졌다.
나는 재빨리 배에 힘을 줘서 복근을 만들었다.
내 복근을 케이트의 작은 손이 살짝씩 움찔거리며 만졌다.
문득 아침에 열심히 운동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든이면 괜찮으니까... 나 도와줄래?"
말을 마친 케이트는 눈을 질끔 감았다.
그 모습이 묘하게 요염해서 내 하체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숙녀의 목숨을 구하는 것 그것이 용사의 의무다!!!]
안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격양된 말투로 소리쳤다.
넌 또 뭐야 시발 빠져.
나는 혹시나 부서질까 무서워 최대한 힘을 뺀 손으로 케이트의 볼을 만졌다.
부드럽고 따뜻한 케이트의 볼이 느껴졌다.
내 손에 닿은 케이트가 살짝 떨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케이트가 눈을 질끔 감았다가 슬며시 다시 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었다.
케이트도 따라서 작은 꽃처럼 웃었다.
이게 그 빡대가리랑 동일 인물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케이트는 아름답고 귀여웠다.
그나저나 황녀를 건드려도 되는 거야?
무조건 좆될거 같은데.
[교미!교미!교미!]
내 안에서 누가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여기서 빼면 시발 고추 떼야지.
나는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면서 케이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아."
케이트의 옅은 향수 냄새와 숨 냄새가 뒤섞여 정신이 혼미해지는 향기가 맡아졌다.
입을 맞춘 케이트가 부들부들 떨었다.
케이트가 떨리는 손으로 나를 안았다.
그 모습에 나의 이성은 점점 멀어졌다.
[남자는 일단 박고 생각하는 거야.]
내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크게 소리쳤다.
[내가 이 야만인에 동의할 줄 몰랐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점잖은 목소리가 따라서 소리쳤다.
맞는 말이야.
하체가 묵직해졌다.
아아, 이 부드러우면서 묵직한 감각.
교미왕 에이든으로 돌아갈 때다.
천천히 본능이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천천히 케이트의 옷이 부드럽게 내려갔고...
'자세하게 묘사를 해주고 싶지만'
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15세라... 찡긋'
검의 이해 못 할 말은 이미 아득하게 멀리서 들렸다.
***
"그워어어어어!!"
루나는 귀찮게 들러붙는 쓰레기를 치웠다.
덩치 크고 계속 재생도 하고 마법에 내성까지 있어서 너무 귀찮았다.
하지만 쓰레기를 제때 치우지 못해 에이든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 적 있으니까 루나는 꾹 참고 다 치우면서 움직였다.
나의 에이든을 위해서라면 귀찮은 건 하나도 없어.
운도 없지 결국 제국에 있는 동굴의 절반이나 뒤졌지만, 아직도 못 찾았다.
그래도 루나는 다음 동굴에 에이든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예상이 맞을 거야.
루나와 에이든은 항상 이어져 있으니까.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던 에이든이 생각나서 루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는 못 참을 뻔했어.
하지만 에이든의 처음은 루나와 소중하게 이뤄져야 하니까 겨우 참았었다.
몸이 약간 뜨거워지고 머리에 가득 차 있던 짜증이 잠깐 내려갔다.
조금만 기다려 에이든.
루나는 침을 크게 삼켰다.
다음에는 못 참을지도...
루나는 한층 가벼워진 손으로 공간 마법을 그렸다.
나의 에이든.
내가 가고 있어.
목이 말라 마셨던 트롤 피의 비린내가 올라와 짜증 났다.
혹시 내 입에서 트롤 피의 냄새가 날 수도 있어...
에이든의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생각났다.
양치하고 가야겠어.
***
"정말 여기가 맞다고?"
등 뒤에서 거친 비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여기가 확실합니다!"
그레이슨은 바로 납작 엎드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들어가"
비키가 앞의 크고 어두운 동굴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저는 왜 ? 저는 아무 전투 능력이 없는 정보 전문인데요..."
그레이슨은 최대한 비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음 정보 길드에 들어올 때 했던 면접에서도 이렇게 조심스럽지는 않았다.
"만약 아니면 니 목을 뽑아야지"
비키가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짐승처럼 웃었다.
그레이슨은 제발 우리 길드원들이 실수 안 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이놈들이 억하심정으로 실수하지는 않았겠지?
괜히 길드원들을 갈궜던 지난날들이 후회됐다.
제발 애미 뒤진 새끼들아.
월급도 많이 챙겨줬잖아.
실수 안 했지?
은은한 보라색이 도는 동굴의 벽이 가까워졌다.
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