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아옳오올오올!
* * *
무조건 기회를 봐서 도망쳐야 했다.
내 약자 레이더가 한 명 정도는 정면으로 제낄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될 경우에 진다는 것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았다.
이들은 여유롭게 풀어주는 척 하면서도 빈틈 없이 경계하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지만 누군가 한 명은 항상 내 텐트를 지켜봤다.
이걸 왜 눈치 못 채고 있었지.
결국 기회만 보다가 제사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더 늦으면 돌이킬 수 없다.
질 확률이 큰 판에 주사위를 던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더 늦으면 그 주사위마저 사라질 판이었다.
내 텐트로 들어가자 가볍게 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있는 케이트가 보였다.
나를 발견한 케이트가 밝게 웃었다.
빡대가리 새끼 지금 그렇게 밝게 웃을 때야.
울컥 짜증이 올라왔지만, 그 짜증의 대상이 케이트는 아니었다.
"가자."
나는 그런 케이트의 손을 잡았다.
케이트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나를 따라 일어났다.
짐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텐트의 천을 걷고 나가자 보기 싫은 얼굴이 있었다.
"딱 맞춰서 나왔네 막내?"
흰 가면을 쓰고 있는 여우가 내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약자 레이더가 강하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절대 이길수 없다 저 여자한테는.
저렇게 괴물 같은 기운을 뿜고 있는데, 왜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
미노타우르스 앞에 서있을 때보다 더한 압박감이었다.
저게 사람이 맞는거야? 여우가 나타난 순간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이길 수 없어 저건.
"흐응 막내야?"
여우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우의 가면 밑으로 드러난 붉은 입술이 호선으로 휘었다.
여우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집중해라 소년.'
"에이든?"
케이트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럴 때는 심호흡을 해보게.]
고상한 목소리가 내게 속삭였다.
고상한 사내의 말처럼 억지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숨을 뱉을 때 목이 막힌 것처럼 끊어서 뱉어졌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예... 여우님."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말했다.
"재밌네. 황녀 데리고 따라와."
여우가 뒤돌아서 걸었다.
저들이 나를 얕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서 루나검을 압수하지 않았다.
나는 내 허리춤에 있는 루나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기운이 내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줬다.
여우의 뒷 모습은 너무 무방비해보였다.
지금이라면?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안 돼.
뽑는 순간 죽을 것 같았다.
그래 아직은 아니야.
기다리면 기회가 한 번은 올거야.
내 떨리는 손을 케이트가 세게 힘을 줘서 잡아줬다.
"괜찮아."
케이트가 조용하게 내게 속삭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케이트가 살짝 웃었다.
진짜 빡대가리인가 얘는.
지금 니 배 갈라진다고.
"뭐해 막내?"
"갑니다!"
일단 내 배가 더 중요하니까 여우를 따라갔다.
가면 일당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우리 뒤를 따랐다.
시발 그냥 아까 여우 뒷통수에 검 박을걸.
그게 마지막 기회였네.
근데 이 동굴에 이렇게 많은 수가 있었나?
거의 백명 가까이 되는 인원수가 우리 뒤로 따라왔다.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발걸음 소리만 내면서 왔기 때문에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케이트가 내 팔을 안고 붙었다.
내 팔에서 케이트의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 어젯밤이... 아니 오늘 아침만 해도.
아니 시발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혀를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내 팔에 붙은 케이트의 몸이 살짝씩 떨렸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역시 배때지에 칼이 들어오기 직전인데 괜찮을리가 없었다.
"걱정하지마. 내가 어떻게든 지켜줄게."
그런 케이트의 모습을 보고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무책임한 대사가 나왔다.
심지어 플래그 잔뜩 꽂힌 대사잖아.
"응! 난 에이든 믿어."
케이트가 귀엽게 웃더니 찡긋하고 왼쪽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이게 윙크지. 그 모습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어느새 우리는 동굴 안 쪽에 있는 큰 문 앞에 섰다.
이런 문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여우가 손짓하자 우리 뒤에 있던 가면인들이 튀어 나와 문에 붙어 밀었다.
돌이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큰 문이 열렸다.
그 안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크고 둥그런 공간이 크게 있었다.
천장에는 밖을 향해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 구멍을 통해서 달빛이 찬란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달빛이 비추는 곳은 주변보다 약간 더 높았고 그 위에 은색의 깨끗한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을 중심으로 보라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펴있었다.
그 분위기가 마치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저기구나 케이트의 배때지가 갈라지는 곳.
내 손을 잡은 케이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흐응 둘이 계속 그러고 있을거야?"
여우가 우리를 돌아봤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멍청한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막내야?"
여우의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담겨 있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뭐라고?
"니가 하려고?"
약간의 조롱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해도 되는건가?
일단 그렇게 하는게 시간을 조금 더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황녀의 배때지는 제가 따겠습니다! 제 어릴적 꿈이 인신공양이었습니다!"
내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왔다.
"그래~?"
여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네! 꼭 케이트의 배때지를 따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에는 진심과 절절함이 넘쳤다.
옆에서 케이트가 내 손을 꼬집었다.
돌아보자 케이트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이 빡대가리야 일단 넘겨야지.
"그것도 재밌겠네. 그럼 막내가 해."
여우가 흔쾌히 승낙했다.
그에 주변에서 약간의 소음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여우에게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이 제사장 쟤한테 줘."
흰 가면을 쓰고 몸에 이상한 문자가 잔뜩 적힌 사내가 내게 단검을 건넸다.
그거 내가 갈아놓았던 단검이잖아.
"제단 위에 황녀를 눕히고 그 단검을 찔러넣기만 하면 된다."
굵직하고 긁는듯한 목소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간단하기는 하네.
슬쩍 케이트를 쳐다보자 케이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지켜준다니까. 왜 못 믿지.
슬쩍 단검을 휘둘러봤다.
캬 이거 손에 착 붙네.
여우가 중간에 세워진 제단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떨리는 케이트의 손을 잡고 일단 따라 올라갔다.
제단을 중심으로 가면인들이 큰 원을 두르고 섰다.
그들이 이상한 언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라는거야 시발.
제단 옆에 선 여우가 제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에이든 믿어."
케이트가 조용히 내게 속삭이고 스스로 제단을 올라가서 누웠다.
제단이 약간 차가운지 케이트가 몸을 살짝 떨었다.
나는 제단에 누운 케이트의 옆에 섰다.
단검이 너무 가벼웠다.
"제사장!"
여우의 부름에 제사장이 제단으로 올라왔다.
제단으로 올라온 제사장이 북처럼 생긴 악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일정한 리듬에 맞춰 주변에 있는 가면인들이 춤을 추며 돌았다.
가면인들이 맹수처럼 울부짖었다.
어지러워.
'정신 차리게 소년.'
검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
제사장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향해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소리쳤다.
가면인들의 춤이 점점 더 빨라졌다.
"지금이야 막내."
상기된 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일단 단검을 높게 들었다.
주변의 알 수 없는 소음과 북소리가 어우러져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누워있는 케이트와 눈이 마주쳤다.
물기가 있는 눈을 한 케이트가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지금 웃을 때냐 이 빡대가리야.
'괜.찮.아'
케이트가 작은 입술을 앙증맞게 움직였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시발.
그래 시발 시도라도 해봐야지.
그냥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딱봐도 좆될거 같은데.
내가 이들 모두를 이길 수 있을 리는 없다.
딱봐도 좆될 상황에 들어가는 건 내 성격이 아닌데.
사람은 뒤지기 전에 변한다던데 그건가 보다.
저 빡대가리도 내 말을 갑자기 잘 듣는게 나와 같이 뒤질 운명이었나.
그래도 황녀를 구하려다 황녀와 같이 죽는건 용사의 죽음 중에 상위에 랭크될거야.
오크에 대가리가 깨져 죽는 것보다는 훨씬 멋있잖아 어감도.
"눈 감아."
케이트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케이트의 눈이 커지더니 살짝 웃고 감았다.
쓸데없이 말 잘 듣네 진짜.
여우는 제단과 약간 떨어져있었다.
그럼 제일 가까운건 저 대머리 제사장.
북을 치면서 엉덩이도 살짝 살짝 흔드는 게 흉물스럽기 그지 없었다.
몸에 기운을 순환시켰다. 어지럽던 머리도 진정됐다.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이 가벼웠다. 이렇게 가벼웠었나?
단검을 날카롭게 갈아두길 잘했어.
신나서 북을 치고 있는 대머리의 등에 단검을 던졌다.
내 단검은 제사장의 등에 손잡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게 박혔다.
의외로 단검 던지기에 재능이 있을 지도? 혹시나 살아서 돌아가면 단검 몇개 구해서 품에 들고 다녀야겠어.
"끄아아아악!!!!"
제사장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찬 비명이 터져나왔고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막아.
검을 들어 소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루나검을 뽑고 앞을 막았다.
어느새 접근한 여우의 단검이 막혔다.
시발! 뭐가 이렇게 빨라.
"흐응 우리 막내 황녀랑 떡치더니 정이라도 들었어?"
여우의 붉은 입술이 달싹 거렸다.
여우의 말에 뒤에서 케이트가 '앗'하고 말을 삼켰다.
"그... 실수로 손이 나갔는데 한 번만 봐주시면..."
여우의 단검이 내 루나검을 밀어내고 있었다.
뭔 힘이 이렇게 세.
루나검이 점점 내 어깨와 가까워졌다.
기운을 팔로 보내도 소용 없었다. 좆됐네.
"미안하지만 나는 실수를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라."
루나검이 내 어깨를 살짝 파고 들었다.
"단죄하는 사람이라."
여우의 목소리는 쓸데없이 달콤했다.
내 검을 밀어넣는 여우의 힘이 좀 더 강해졌다.
아! 시발 아프잖아.
"멈춰! 이 개같은 년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뒤질 날은 아닌가봐.
***
"왜 이렇게 순탄하지."
옆에서 말하는 동기의 말처럼 긴장을 잔뜩하고 들어간 우리가 무안할 정도로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없었다. 이거 실수로 다른 곳 온 거 아니야?
"뭔 동굴이 이렇게 길어 싯팔."
어디선가 들려온 말처럼 동굴이 말도 안되게 길었다.
동굴의 습기와 높은 긴장감에 피로가 금방 쌓였다.
힐끔힐끔 금발의 미녀와 파란 머리의 미녀를 쳐다보면서 피로를 회복하지 않았으면, 이미 몇명 쓰러졌을거라고 확신했다.
몰래 한번 더 쳐다본 그 모습에 입꼬리가 헤실 거렸다.
"앞 쪽에 사람의 흔적이 있습니다!"
선발대로 보낸 기사가 돌아와서 소리쳤다. 선발대를 따라서 도착한 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텐트들이 있었다.
여기서 생활했나보군.
텐트들은 각자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달랐다.
그렇지만 사람은 없었다.
다들 어디간거지? 불안한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더 안 쪽으로 가보면 더 깊은 동굴이 있습니다."
선발대를 따라서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깊은 동굴을 계속 들어가자 마침내 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공간 중간에 높게 세워진 제단, 제단 위에는 황녀님이 누워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 명의 남자가 가면을 쓴 여자와 싸우고 있었다.
"멈춰! 이 개같은 년아!"
우리 뒤 쪽에서 누군가 소리치면서 뛰어나왔다.
빨간 머리에 터질 것 같은 몸매.
와! 저런 가슴이 세상에 존재했다니.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을 빨리 닦았다.
이 모습을 대장한테 들켰다가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욕을 내뱉은 여자는 순식간에 제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근데 저런 사람이 우리 일행에 있었나?
***
내 앞으로 한 걸음에 뛰어온 비키가 여우를 걷어찼다.
여우는 비키의 발을 흘리면서 단검을 찔러 넣었다.
비키가 아무리 단단해도 저건 좀... 나는 황급히 루나검을 들어 여우의 단검을 쳐냈다.
여우가 그런 나를 보더니 살짝 뒤로 물러섰다.
비키가 듬직하게 내 앞에 섰다. 누나 개멋있어!
"괜찮니?"
비키의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나올뻔했다.
저저 개같은 년이 저를 죽일려고 했어요 시발.
여우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입구 쪽에 있어보이는 갑옷을 입은 병력들이 있었다.
갑옷은 은색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그 위에 태양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아 저게 황실 기사단인가보군.
그래 시발!
황녀가 납치당했는데 황실 기사단이 당연히 구하러 와야지.
"하! 시발년! 넌 이제 뒤졌다!"
나는 비키의 등 뒤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어 여우에게 소리쳤다.
내 손에 닿은 비키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우리 여우 좆 됐다! 좆! 좆 됐데요!"
나는 양손의 중지를 들어 여우에게 흔들었다.
여우가 그런 나를 보더니 피식 웃고는 우리에게서 살짝 더 멀어졌다.
뭐야 저 여유있는 태도는.
"에이든님!"
"에이든!"
나를 부르는 소리에 기사단 사이를 자세히 보니 안드레아와 키아나가 보였다.
아니 니들은 왜 거기 있어.
"구하러 왔습니다!"
키아나가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뭐 그래도 이제는 안전하겠지.
나도 키아나를 향해 손을 들어서 인사했다.
키아나의 옆에 꼬장꼬장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한 명 서 있었는데, 무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초면인데 왜 저렇게 노려보는거지. 그래도 할아버지니까 내가 이길 거 같아서 두렵진 않았다.
앗 따가!
신나서 인사하는데 뒤에서 누가 꼬집어서 돌아보니 케이트가 노려보고 있었다.
아! 빡대가리라 상황을 아직 이해 못 했나.
나는 빡대가리를 위해서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주기로 했다.
"황실 기사단에서 너 구하러 왔나봐. 이제 살았다."
나는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을 잔뜩 담아 말했다.
"...누구야?"
케이트가 내 앞에 있는 비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비키라고. 우리 아카데미 학생이야."
"아... 그 미..."
나는 서둘러 케이트의 입을 막았다.
"흐응 예상보다 인원이 많이 모이기는 했지만 뭐. 시작하자."
여우가 전혀 조급하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어이 아직 이해가 안 되나본데. 너희 좆 됐다고 좆!
하지만 내 몸은 여우의 목소리에 비키 등 뒤로 바짝 붙어서 숨었다.
여우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아까 내게 단검을 박혀서 쓰러졌던 대머리 제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시발 뒤진거 아니었어?
자리에서 일어난 대머리 제사장이 북을 미친듯이 치기 시작했다.
아까의 그 음험한 노래와 춤이 다시 시작됐다.
시발 뭔가 이상하잖아.
답답한 황실 기사놈들이 멍청이들마냥 그런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딱 봐도 느낌이 이상한데 막아야지 이 병신들아.
답답함에 못 이겨 소리치려고 할 때, 노래가 멈췄다.
무거운 정적이 공간에 내려앉았고
우드득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며 가면인들의 몸이 점점 커졌다.
뭐야 시발.
마침내 옷을 찢고 흰 색의 털로 뒤덮힌 몸 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저저저 저거 시발.
"애미 시발! 미친 늑대 인간들이잖아 시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소리쳤다.
내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늑대 인간들이 '아옳오오올' 하고 울부 짖었다.
늑대 인간에 관련된 이런 저런 소문들이 많았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한 소문은 '보름달 아래서의 늑대 인간은 무적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동굴 천장을 뚫고 보이는 달을 확인했다.
제발 제발...
보름달이여?
애미 시발 동그랗네.
늑대 인간들이 거칠게 숨을 쉬었다.
여우는 다른 늑대 인간들처럼 모습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등 뒤로 부드러워 보이는 꼬리들이 생겼다.
꼬리들이 하늘하늘하게 흔들렸다.
나는 여우에게 자랑하던 내 중지들을 조용하게 내렸다.
"어디서 개 냄새가 나나 했더니."
비키가 흥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흐응 도마뱀 냄새도 나는 걸?"
우습게도 여우와 비키의 말투는 묘하게 비슷했다.
비키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이마가 찌푸려졌다.
"우리 변태 좀 떨어져있어."
비키가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떼어냈다.
"네 누나."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비키와 여우가 맞붙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이 맞붙은 곳의 땅이 움푹 들어갔다.
그게 신호가 된 듯 곳곳에서 싸움이 시작됐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황실 기사들이 검을 뽑아 늑대 인간들과 맞섰다.
나는 케이트를 보호하기 위해 루나 검을 뽑고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게 올라오는 늑대 인간은 없었다.
그런 내 허리를 케이트가 다시 한 번 꼬집었다.
"아얏! 뭐야 시발!"
깜짝 놀라서 케이트를 쳐다봤다.
"왜 저 여자가 에이든을 변태라고 불러?"
케이트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게슴츠레 나를 쳐다봤다.
"음...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작아졌다.
"뭔데!!!"
케이트가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옆에서 늑대 인간이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 뜯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니 시발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뭐냐고! 묻잖아!"
케이트는 주변은 전혀 상관 없는지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살짝 피하고 케이트의 등 뒤에서 허리를 잡아 못 움직이게 했다. 저항하던 케이트가 움직임을 멈췄다.
"... 저 무식하게 크기만한 가슴이 좋냐고..."
케이트가 들릴듯 말듯하게 중얼거렸다.
무식하게 크기만한 가슴은 너도인데. 물론 비키가 더 크기는 했지만.
근데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잖아.
그때 늑대 인간 둘을 한 번에 베어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와 시발 저 할아버지 뭐야 미친. 존나 세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저 할아버지한테는 예의 바르게 해야겠다.
이 정도면 살아나갈수 있을지도...?
나와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예?"
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시선을 고정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등뒤로 뛰어드는 늑대 인간 한 명을 검으로 가볍게 베어넘기고 자신의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처음 보는 제스쳐였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널 죽이겠다.
시발 왜 그래요 나한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