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중급 용사 아다 !
* * *
타의로 끌려가서 억지로 한 새벽 운동 때문에 개운한 느낌 들었다.
그리고 남이 만든 그 개운함이 짜증 났다.
비키는 때리는 노하우가 있는지 맞을 당시에는 아팠지만,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다는 사실조차도 짜증 났다.
내 노력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니.
다 짜증나 시발.
짜증을 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실습 관련 수업이 없었다.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나보다 좆밥들을 쥐어패야 하는데.
강의실에 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대충 챙기고 방을 나왔다.
1교시는 용사학개론.
익숙하게 강의실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역시 뒷자리가 마음이 편하다.
막상 강의실에 앉으니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사실 제국 제일검이니 황녀니 하는 것들은 다 내 꿈 아니었을까?
나는 다시 평범한 학생...
"크큭... 오랜만이군...생각보다 무사히 돌아왔군. 크큭... 침묵의 여제도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크큭..."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좋아졌던 기분이 배로 안 좋아졌다.
그래. 이 수업에는 이 새끼가 있었지.
잊고 있었다.
매콤 주먹이 자신의 필요성을 내게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여전히 해골 모양이 그려진 안대를 찬 철수가 내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이러면 시발 내가 얘랑 동류 같잖아.
"너 시발 철수 새끼야. 내가 말 걸지 말랬지."
짜증을 듬뿍 담아서 말했다.
"크큭... 내 이름은 철수가 아니라..."
뭐라는 거야.
"철수잖아 개새꺄."
"크큭...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침묵의 여제도 당황했을 거야...크큭... 사건의 진행이 전보다..."
철수가 안대를 부여잡으면서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중얼거렸다.
아니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는 말들을.
"매콤 주먹 먹이기 전에 닥쳐."
자꾸 시끄럽게 구는 녀석의 앞에 내 무섭게 생긴 매콤 주먹을 흔들었다.
"크큭... 역시 아직은 위기를... 깨닫지..."
"자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철수의 중얼거림은 베르하임 선생님의 말에 묻혔다.
선생님의 등장이 조금만 늦었으면 철수의 입에 매콤 주먹을 먹여줬을 텐데.
약간 아쉬웠다.
"이전 수업까지 해서 기본적인 용사학개론 수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중간 실습을 시작하겠습니다."
베르하임 선생님의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 머리에 꽂혔다.
뭐 시발 수업이 완료가 돼?
나는 들은 게 하나도 없는데?
그리고 시발 중간 실습은 뭐야.
난 그런거 들은 적 없어.
"크큭... 이제 시작인가..."
옆에서 철수가 빽빽이 정리된 노트를 꺼냈다.
순간 철수의 얼굴에 매콤 주먹을 먹이고 저 노트를 뺏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수업이 끝난 후에 해도 되니까 일단은 울부 짖는 매콤 주먹을 달랬다.
"말이 중간 실습이지 단순한 실습이니 그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으셔도 됩니다.하하"
베르하임 선생님이 젠틀하게 웃었다.
몇몇 여학생이 베르하임 선생님이 웃자 나지막하게 따라 웃었다.
하나도 안 웃겼는데 시발.
그래도 베르하임 선생님의 단순한 실습이라는 말에 한시름 놓았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들 각자에게 한 명의 멘토들을 붙여줄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 멘토들과 교류를 하면서 각자 느낀 바를 적어오면 됩니다. 물론 멘토들도 여러분에게 점수를 매길 것이니 멘토들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친 베르하임 선생님이 물을 가볍게 마셨다.
멘토?
"그럼 각자 한 명씩 나와서 접힌 종이를 가져가세요."
베르하임 선생님이 말을 마치자 앞쪽에서부터 학생들이 나가서 종이를 하나씩 집었다.
내 차례가 와서 나가서 종이를 하나 뽑았다.
자리로 돌아와 종이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제발 정상인 제발요!
"크큭... 쓰레기가 나와버렸군... 크큭... 쓰레기... 얌전히 내 거름이 되어라..."
옆에서 해골 안대를 부여잡고 중얼거리는 철수를 힐끗 보고 다시 한번 소원을 빌었다.
정상인!
제발!
종이의 중앙에는 '중급 용사아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적혀있었다.
이름이 약간 찜찜하기는 한데...
이름만으로는 정상인인지 판단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급 용사가 선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아카데미에 있는거야.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적혀있는 장소로 가서 멘토를 확인하세요."
베르하임 선생님이 교탁을 탁탁 두드렸다.
멘토를 찾아가야 하지만 일찍 수업이 끝난 건 좋았다.
아 맞다. 철수 이 새끼 노트 뺏어야지.
노트를 뺏기 위해 인상을 잔뜩 쓰고 옆을 돌아봤는데, 이미 철수는 사라져 있었다.
아니 이 새끼는 수업 끝나면 순식간에 사라지네.
잔뜩 힘을 준 매콤 주먹이 머쓱했다.
강의실을 나와서 종이에 적혀 있는 곳으로 갔다.
운동장의 우측에서 다섯 번째 큰 나무 밑.
이게 시발 찾아가라고 적어둔 거야?
우습게도 한 남자가 정확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단정하게 입은 셔츠.
눈썹 위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리.
우수에 찬 청록색의 눈동자.
그렇다.
남자는 재수 없을 정도로 잘 생겼다.
남자라니 운이 안 좋군.
이 야만인의 말에 동감일세.
내 안의 꼬인 심사가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녀석을 억지로 누르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내가 접근하자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진짜 좆같이 잘 생겼네.
"중급 용사 아다입니다. 제 담당 학생이신가요?"
남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하. 에이든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꾸만 구겨지려는 인상을 애써 풀면서 인사했다.
"이쪽에 앉으시죠."
아다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근데 얘는 왜 굳이 야외에 앉아있는 거야.
지 잘생긴 거 동네방네 자랑하려고 그러는 건가?
'그건 그냥 소년의 열등감이네.'
아니거든 시발.
속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곱게 아다 옆에 앉았다.
"저도 이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하하"
아다는 잘생긴 얼굴에다가 성격도 좋아 보였다.
꼬인 심사가 다시 한번 더 리본 모양으로 꼬였다.
아다는 붙임성있게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들이라던가, 던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매끄러운 말솜씨로 풀어냈다.
시발 말도 잘하네 개새끼.
"그러다가 멘토 이야기를 듣고 제가 용사 아카데미 선배로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신청했습니다. 하하"
아다가 자신의 금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었다.
저 웃음 좀 가식적인 것 같은데! 그치?!
'진정하게 소년'
시발.
멘토들도 점수를 매긴다고 했으니 내 속은 꼬여 있더라도 멘토인 아다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너무 제 이야기만 한 것 같군요. 용사 생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딱히 궁금한 것들은 없었지만, 지어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 제일 힘들었던 던전은 역시 '죽지 않는 대지'였죠. 베어도 베어도 끊임없이 나오는 마물들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가끔씩 아다의 이야기에 호응해주면서 적절하게 질문을 던지니까, 아다가 신나서 내게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이 양반 다루기 쉬운 타입이잖아.
의외로 쉽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다에게 더 싹싹하게 굴었다.
점수 내놔!
"아! 그러고 보니 던전에 같이 들어 가보는 게 에이든에게 큰 도움이 되겠네!"
한참을 이야기하던 아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이미 아다는 내게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너무 싹싹했다.시발.
굳이 던전까지 같이 들어가야 할까.
하지만 아다는 이미 멘토라는 역할에 심하게 몰입한 것 같았다.
"하급 던전이라도 한 번 같이 들어가지! 별다른 무리는 없을 테니까!"
아다는 이미 내게 큰 친밀감을 느끼는지 내 어깨를 신나서 두들겼다.
"그 아무래도 바쁘신 중급 용사신데,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니 애초에 중급 용사가 아카데미에서 뭐 하고 있는 건데 시발.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에이든 아우! 나만 믿어!"
아다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시발 내가 왜 니 아우야.
물론 중급 용사랑 같이 들어가는데, 하급 던전이 위험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냥 던전을 들어가기 귀찮을 뿐이었다.
이런 내 속을 모르는 아다가 잘생긴 얼굴을 뽐내며 밝게 웃었다.
좆같이 잘생겼네 시발.
***
내 오후 수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다가 기어코 내 다음 수업이 끝나는 것까지 기다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냥 대충 점수 매겨서 보내면 되잖아.
역시 쓸데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은 귀찮다.
중무장을 한 아다가 내 앞에서 당당히 걸었다.
적당하게 빛나는 갑옷을 입고 옆구리에 검을 찬 아다의 모습은 용사 그 자체였다.
몇몇 여학생들이 그런 아다를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재수 없는 새끼.
퉤.
아다는 익숙하게 던전 게이트를 통과해서 하급 던전으로 들어갔다.
아 진짜 가기 귀찮은데.
게이트를 관리하는 사람의 눈초리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게이트로 들어갔다.
부유감을 느끼며 눈을 뜨니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괜히 저번의 기억을 떠올리며 뒤를 보자 다행히도 입구 포탈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하 겁먹지 말게. 에이든 아우!"
은색의 검을 검집에서 뽑아서 들고 있는 아다가 자신감 넘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중급 용사답게 아다는 군더더기 없이 마물들을 처리했다.
근데 보다 보니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렇지?
마물들을 베어넘기는 와중에도 아다는 내게 이런 저런 정보들을 열심히 알려줬다.
그 중에는 꽤 쓸모있는 정보들도 제법 있어서 따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귀찮음이 더 컸지만.
아무 문제 없이 던전의 마지막 방까지 진출했다.
"후 여기서 잠깐 쉬고 가지."
아다가 거칠어진 숨을 내쉬면서 바닥에 앉았다.
그냥 좀 저것까지 빨리 깨고 나가서 쉬지.
속마음과는 다르게 나도 곱게 땅바닥에 앉았다.
"근데 아다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질문해!"
아다가 자신의 초록색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마셨다.
"중급 용사면 꽤 바쁠 텐데, 아카데미에서 멘토를 하신 이유는 뭡니까?"
하급 용사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지만, 중급 용사부터는 그 수가 확 줄어든다.
중급 용사부터는 재능의 영역이었으니까.
그래서 중급 용사정도만 되도 어디를 가든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 세상에는 마물이 넘쳐나고 그로 인해 용사는 어딜 가도 환영받았다.
내가 알기로는 멘토라고 해봤자 졸업생 중에 할 거 없는 하급 용사들이 하는 게 보통인데, 중급 용사인 아다가 아카데미에서 멘토를 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건 좀 부끄러운 이유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아다가 바닥에 있는 돌 하나를 주워서 멀리 던졌다.
"에이든 아우에게는 말할 수 있지"
그 정도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중급 용사가 아카데미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예예. 제게는 말씀하셔도 되죠! 형님!"
원래 남의 비밀만큼 달콤한 게 없지 않은가.
"사실 나는 아카데미 시절부터 좋아하던 소녀가 있어. 비록 그녀는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때부터 그녀밖에 없었지."
아다가 말하며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저 잘생긴 아다를 거절할 정도라니 도대체 그 여자는 얼마나 이쁜 거야.
"그래서요?"
남의 연애사라니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도 용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 그러던 어느 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수도에서 그녀를 다시 마주친 거야. 그것도 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운명적으로! 나는 그때 깨달았네! 그녀와 나는 운명으로 강하게 묶여있다는 것을!"
잘생긴 놈이 열변을 토하니,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그녀가 아카데미에 있었습니까?"
그러니 쟤가 아카데미에 왔겠지.
"맞아!!! 그녀는 청초해 보이는 그녀의 외모처럼 봉사하면서 살고 있더군! 분명히 우리 아카데미에서 손에 들 정도로 출중한 실력이었던 그녀는 성공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을 버린채로 말이야! 그녀는 분명 신이 내린 인물이 틀림없네! 그처럼 자신의 이익을 쫓지 않고 순수하게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니! 그런 그녀를 보니 성공만 생각하고 달려온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웠네. 그래서 나도 아카데미에 멘토를 신청하고 먼발치에서라도 그녀를 지켜보기로 했네."
흥분한 아다가 침까지 튀기며 정열적으로 말했다.
"그다음에도 몇 번이나 그녀에게 다시 내 마음을 전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거절하더군. 그래서 그냥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네. 사실 그걸로도 충분하기는 하지만 사람인지라 자꾸 욕심이 나더라고."
아다가 옆에 있는 바위를 툭툭 쳤다.
내가 저 외모였다면 거절당하는 순간 '응 꺼져'하고 다른 여자 찾아갔을 텐데.
그나저나 아카데미 안에 있고 그 정도로 미인이라면 내가 모를 수가 없는데.
"혹시 그분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왠지 저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저런 미남을 차버리는 여자라니 누군지 궁금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 그녀의 이름은 안드레아라네. 지금은 성당에서 봉사하고 있지."
아다가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아.. 안드레아요?"
안드레아의 이름이 나오리라고 생각지도 않았지만, 이름을 듣자마자 납득했다.
단아하고 청초한 느낌이 드는 외모의 안드레아라면 저렇게 속앓이할 만 했다.
안드레아의 외모는 남자들의 첫사랑 느낌이었다.
심지어 성격까지 친절하고 착하니, 아마 아카데미 시절에는 저 아다를 제외하고도 많은 수의 남학생들이 속으로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착한 안드레아가 냉정하게 거절했다니 약간 의외였다.
얘한테 뭔가 하자가 있나?
슬쩍 아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혹시 에이든 아우! 안드레아 양과 아는 사이인가!?"
내 반응에 아다가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알기는 아는데.
친한 거 같기도 하고.
음...
뭐라고 해야 되는 사이지.
"제발! 부탁하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하겠네! 그그래! 점수도 만점으로 주고! 추천서도 써주고! 뭐든지 다 하겠네! 제발!"
내 애매한 태도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낀 아다가 내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애가 많이 절실하네.
흠, 좀 도와주는 대가로 만점과 추천서...
나쁘지 않은 교환이었다.
그리고 딱 봐도 호구 같잖아 얘.
뭔가를 더 뜯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무릎 꿇고 있는 아다를 일으켰다.
"친하다면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죠. 제가 형님을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기쁘군요."
진심을 듬뿍 담았다.
물론 방금 만든 진심이기는 했지만.
"아아 에이든 아우!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아다가 완전 감동 받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니까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십팔.
호구 새끼야.
감동받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
안드레아는 자신이 저지른 바보 같은 행동에 심하게 불안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안드레아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마음만 같아서는 에이든님의 몸에 얼굴을 묻고 하루종일 냄새를 맡고 그의 모든 것을 받아 마시고 싶었다.
'너무 티 나게 많이 가져왔어! 바보같이!'
에이든님의 방을 청소하다가 에이든님의 속옷들을 보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빨래하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지 에이든님의 체취가 듬뿍 묻은 속옷들.
그것들을 보고 눈을 감았다 뜨니 나는 이미 내 방에서 속옷들과 나체로 뒹굴고 있었다.
에이든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몇 개만 몰래 들고 왔어야 했는데, 멍청이 같이 속옷을 죄다 들고 오다니.
에이든님이 눈치챘겠지?
하지만 이미 다시 가져다 놓기에는 늦었다.
에이든의 속옷들은 이미 내 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범벅이 되어 젖어있는 속옷들은 빨래하더라도 냄새가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에이든님의 방에 드나드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 텐데, 분명 에이든님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아마 나를 더럽고 추악한 속옷 도둑이라고 생각하겠지.
'더럽고 추악한 년! 천박한 년!'
경멸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에이든님을 상상하자 몸이 다시 뜨거워졌다.
아아 더럽다는 시선으로 나를 보며 천박한 년이라고 욕하는 에이든님.
그 짜릿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정난 내 몸은 이미 또 절정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천박한 년이라고 불러줘요!
에이든님!
아마 나는 이미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고장 나지 않았을까.
물론 고칠 생각은 없었다.
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