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51화 (51/233)

〈 51화 〉 꿈에 대해서

* * *

결국 케이트를 잡아서 토실토실한 궁둥짝을 몇 대 때려줬다.

옆에서 지켜보던 메이드들이 내가 케이트의 궁둥짝을 때릴 때마다 움찔거렸다.

홧김에 케이트의 궁둥짝을 때렸지만, 정신이 돌아오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발 황녀의 궁둥짝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때렸다니.

"이 멍청이가!!! 어디를 때리는 거야!!"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어진 케이트가 내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황녀 펀치!!!"

결국 내 품에서 벗어난 케이트가 내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피할 수 있는 속도였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비스듬히 맞았다. 경쾌한 타격음과 동시에 나는 배를 부여잡고 땅을 뒹굴었다.

"아이고­ 황녀가 사람 잡네!!!"

최대한으로 아픈 척하면서 땅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흥­ 이 멍청이가! 감히 황녀의 엉덩이를 때리다니! 머리를 똑하고 떼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케이트가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진짜 저 새끼 황녀만 아니었으면 시발.

약간의 소란이 있고 난 뒤 우리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마쳤다.

오늘따라 음식을 잘 먹지 않는 케이트에게 몇 번이나 튀김을 먹여줬다.

먹여줄 때마다 입 한가득 튀김을 머금고 맛있게 씹는 케이트였지만, 자기 손으로는 절대 안 먹었다.

얼마나 개차반으로 가정교육을 받았으면 남이 먹여줘야 되는 거야.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갔다.

오후 수업은 별다를 것 없이 끝났고 또 시발 미친 노인네에게 두들겨 맞는 시간이 왔다.

존나 가기 싫어 시발.

괜히 늦장 피우다가 어제처럼 처맞기는 싫었으므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서 개인 훈련장으로 갔다.

훈련장 안에는 아직 미친 노인네는 도착하지 않았는지 키아나만 있었다.

훈련장의 정중앙에는 키아나가 가만히 검을 들고 폼을 잡고 있었다.

쟤는 왜 저렇게 폼만 잡고 있는 거야.

'원래 일정 경지 이상 올라가면 머릿속으로 하는 훈련이 더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라네. 소년'

흠 그럼 나도 머릿속으로 훈련을 해볼까.

'풉'

너 시발 요즘 많이 까분다?

한참을 조용하게 서 있던 키아나가 천천히 검을 수평으로 베어갔다.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보는 것만으로도 하품이 절로 나왔다.

느릿한 동작과는 다르게 키아나의 검 끝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데 저거.

괜히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나는 숨을 죽였다.

훌륭하군. 저 나이에 저 경지라니.

나쁘지 않군.

시끄럽다고 너네.

천천히 검을 움직여 수평베기를 끝낸 키아나가 깊게 숨을 내쉬더니 수직베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느릿하게 그리고 무겁게 수직 베기를 마친 키아나가 숨을 한 번 더 깊게 내쉬었다.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

때마침 미친 노인네가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아! 사제! 스승님! 오셨습니까!"

집중이 풀어진 키아나가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스승님보다 사제부터 먼저 말하냐! 제자 키워봐야 다 쓸모없다더니 쯧!"

미친 노인네가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았다.

"하하! 그냥 사제가 먼저 보여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키아나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었다.

"에잉 됐다. 니 놈도 빨리 이리로 와!"

미친 노인네의 불똥이 갑자기 나한테 튀었다.

나는 맞기 전에 재빨리 미친 노인네의 앞에 섰다.

"그래. 깨달음을 얻었느냐?"

"미약하지만 얻었습니다. 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그게 뭔 저 미친 노인네 덕분이야. 혼자 상상하다가 강해진 거면서.

"그래그래. 키아나는 저기 가서 몸 풀고 있거라. 나는 우리 막내부터 가르칠 테니까."

미친 노인네가 키아나를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네 알겠습니다."

키아나가 옆으로 가자 미친 노인네의 표정이 바뀌었다.

"자 그럼 막내야. 오늘도 시작해야지?"

미친 노인네가 나를 쳐다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이 좆같은 노인네.

같은 제자라면서 존나 차별하네.

저 정도 외모의 레이디면 나라도... 큼큼...

닥쳐 이 새끼 신사인 척 하더니 여자 존나 밝히네.

니가 저 야만인이랑 다를게 뭐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크흠.

나는 바로 검을 뽑아서 미친 노인네를 향해서 베어냈다.

물론 미친 노인네를 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더 거칠게 반항하면 할수록 미친 노인네는 좋아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매타작이 줄어들었다.

"나쁘지 않네!"

미친 노인네가 가볍게 내 검을 손으로 쳐냈다.

도대체 저 주름 자글자글한 손은 뭐로 되어 있길래 검을 손으로 쳐내는거야.

나는 바로 배에 힘을 줘서 쳐내진 검을 다시 한번 찔러넣었다.

내 노력이 무색하게 미친 노인네는 검을 손으로 잡아당긴 다음 내 복부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시발.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면서 무릎에 힘이 풀렸지만 쓰러지면 안 된다. 쓰러져봤자 바닥에 누운 상태로 미친 노인네에게 밟힐 뿐이었다.

"좋아 좋아! 역시 너같이 재능 없는 놈에게는 이런 무식한 방법이 최고라니까!"

내게 주먹을 꽂아 넣은 미친 노인네가 신나서 말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미친 노인네의 말처럼 무식한 훈련 방법에 내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아니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기 보다는 생존 욕구 속에서 잃었던 기억들을 되찾는 것 같았지만.

근데 왜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있는 거지?

'글쎄...푸흡'

검이 얄밉게 처웃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내 복부로 날아오는 미친 노인네의 발을 검으로 막았다.

쩌엉­

무슨 시발 발차기를 검으로 막았는데 왜 이런 무식한 소리가 나는 거야.

결국 훈련인지 그냥 폭력인지 구분이 안 되는 행위가 끝나고 나는 바닥에 엎어졌다.

"쯧. 그래도 실력이 나쁘지 않은 속도로 늘고 있어."

그런 내 앞에서 혀를 찬 미친 노인네가 키아나에게 향했다.

저 시발 미친 노인네는 나는 이렇게 쥐 잡을 듯이 잡고 키아나에게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시발.

키아나와는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게 다였다.

그렇게 키아나와 웃으며 대화를 나눈 미친 노인네가 만족한 표정으로 훈련장을 나갔다.

너무해 시발.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드러누워 있었다.

"사제 괜찮아?"

눈을 뜨자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키아나가 보였다.

"예 뭐. 항상 그렇죠"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서 일어났다.

통증에 다리가 풀려서 살짝 비틀거렸다.

그런 나를 옆에서 키아나가 잡아줬다.

"나한테 기대 사제."

키아나가 내 팔을 잡고 말했다.

또 여자한테 기대서 훈련장을 나갈 수는 없었다. 이건 얼마 남지 않은 내 자존심이었다.

"괜찮아요. 사저. 이 정도는 혼자 해야죠."

내 팔을 잡은 키아나의 팔을 부드럽게 밀어내고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서 섰다.

"역시 사제는 대단해. 나는 처음 배울 때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누워서 울었는데 말이야."

키아나가 시원하게 웃었다.

저 키아나도 처음 배울 때 맞으면서 배웠다니.

그 사실이 내게 위안이 됐다.

그래 저 밸런스 좆망 키아나도 맞으면서 배웠는데, 내가 맞은 게 대수냐.

아마 나도 키아나가 없었으면 아파서 울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이에요. 사저도 저처럼 맞으면서 배웠다고 하니."

미친 노인네에게 맞은 복부가 너무 쓰렸다.

"하하 당연하지 사제.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야."

키아나가 밝게 웃었다.

훈련장이 좀 더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사저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난 줄 알았죠. 뭐."

퉤­ 입안에서 피가 섞인 침이 나왔다.

시발 너무하네 미친 노인네 진짜.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어 사제."

"그냥 뭔가 사저는 처음부터 완벽했을 거 같았어요. 사저는 강하고 또 아름답고 집안도 고귀하잖아요."

말하다 보니 전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었다.

역시 이 세상은 밸런스 좆망겜이 분명했다.

괜히 설움이 다시 한번 올라와서 인사했다.

"하하 사제가 그렇게 봐주니까 기쁜데."

옆을 보니 키아나가 말과는 다르게 슬픈 얼굴로 웃고 있었다.

미묘한 표정이었지만 키아나의 사기적인 외모 덕분에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 보였다.

"그럼 저녁 먹으러 가볼까 사제?"

잊고 있었다.

오늘 저녁 키아나랑 먹기로 했었지.

아 그 좆같은 쉐이크 먹기 싫은데.

"네. 가시죠. 사저!"

물론 언제나 그렇듯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좆같은 쉐이크를 먹지 않고 학생 식당으로 갔다.

요즘 고급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학생 식당의 음식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좆같은 쉐이크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키아나는 공작가 출신이면서도 학생 식당을 이용하네.

키아나와 같이 걸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사저도 귀찮겠어요."

"응? 어떤 것이?"

"그 말도 안 되게 이쁜 외모 때문에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잖아요."

입을 벌리고 멍하니 키아나를 쳐다보는 남학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푸흡.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아."

키아나가 내 말에 가볍게 웃었다.

오오­

키아나의 웃음에 주변에서 작은 환호성이 들렸다.

"오 사저도 본인의 외모가 말도 안 되게 이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럼 사제는 이 외모가 아름답지 않아?"

키아나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시발 재수 없어.

물론 키아나는 반박의 여지도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마 지나가던 오크를 잡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사저는 약간 재수 없네요."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나와버렸다.

날아올지도 모를 주먹에 이를 꽉 깨물었다.

"하하. 그것도 많이 듣는 말이지."

예상과는 다르게 키아나가 시원하게 웃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받아 식탁으로 갔다. 의외로 키아나와 대화하는 것은 편했다.

"그래서 거기서 미... 아니 스승님을 만나신 거예요?"

"하하 맞아. 처음에는 스승님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키아나가 초록색의 긴 채소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근데 저거는 계속 저러고 있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서 약간 떨어져서 구경하고 있는 학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 시선들 때문에 먹다가 체할 것 같았다.

"응. 사제가 불편하겠다. 미안해 나 때문에."

키아나가 미안해할 것은 아닌 거 같은데.

눈에 힘을 주고 주변에서 구경하는 녀석들을 쳐다봤지만, 나한테 맞아본 적 없는 놈들이라 마주 인상을 쓸 뿐이었다.

그렇게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와서 걸었다.

밤이 되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산책하기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키아나의 여동생이 병약해서 고민이 많았다는 말과 스승님의 첫인상이 너무 험했다는 것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걸었다.

"사제는 꿈이 뭐야?"

그러다가 키아나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건 내 안의 호수에 돌 하나를 던진 것만 같은 영향을 끼쳤다.

"꿈이요? 글쎄요."

지금까지는 살아남기도 힘들어서 딱히 깊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뭐랄까. 사제는 자유로워 보여.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을 만큼."

키아나가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했다.

"자유롭지 못할 게 뭐 있나요. 잘 곳도 있고 굶지도 않는데. 물론 수업 듣는 것은 지겹지만."

"풋­ 그것도 그렇지."

키아나가 미소 지었다.

"사저는 꿈이 있습니까?"

문득 궁금했다.

이 사기캐의 꿈은 무엇일까.

"나는 제국 제일검이 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키아나가 다짐하듯이 말했다.

사기캐 답게 포부도 대단했다.

음. 내 생각에도 키아나는 제국 제일검이 될 거 같기는 했다. 지금의 키아나도 내가 느끼지 못할 만큼 강했으니까.

문득 지금의 키아나는 어느 정도의 수준일지 궁금했다.

"사저라면 꼭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고마워. 사제! 사제한테도 자랑스러운 사저가 될게."

키아나가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좀 더 걷다가 키아나는 좀 더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 훈련장으로 갔다. 나한테도 같이 갈 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이미 오늘 충분히 움직인 상태였으니까 거절했다.

내 거절에 아쉬운 표정을 지은 키아나가 주머니에서 메론빵을 꺼내서 내게 쥐여주고 밝게 웃었다. 키아나가 준 메론빵은 키아나의 체온 때문에 따뜻해서 먹기 싫었지만 일단은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래. 메론빵 중독자가 왜 메론빵을 안 꺼내나 했다. 키아나가 내 반응에 만족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갔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대충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익숙한 회색 천장이 눈에 보였다.

키아나가 던졌던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꿈이라니.

내 꿈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 꿈은 적당히 강해지고 적당히 돈을 모아서 적당한 곳에 집을 사서 적당히 이쁘고 가슴이 큰 여자랑 오순도순 사는 것이다.

나름 꽤 훌륭한 꿈이야.

내 꿈에 만족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 몸이 전설의 검이라는 걸 잊고 있는 거 아닌가? 소년은 그렇게 평화롭게 살 운명이...'

검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무시하고 잠을 잤다.

꿀잠 자겠어 오늘 밤에는.

***

햇빛 하나 들지 못하는 내부는 어두웠지만, 곳곳에 박아둔 횃불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중앙에 금으로 만든 듯 금색으로 밝게 빛나는 왕좌 위에 한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옷을 입지 않은 상체에는 꿈틀거리듯 굵은 근육들이 자리 잡아 있었고 그 근육 위에는 마치 그림처럼 수많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 흉터 중에서 심장 부근에 위치한 굵은 상처가 특히 눈에 띄었다.

사내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가면을 쓰고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사내의 앞에는 누가 봐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인영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포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패했다고?"

일반인이라면 사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힘이 사내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사내의 목소리에 인영들이 살짝씩 흔들렸다.

"예."

다른 인영들과는 다르게 은발의 생머리에 흰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평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당하군."

"제국 제일검까지는 괜찮았지만 이름 모를 높은 수준의 마법사가 난입했습니다. 저는 계획하신 대로 실행을 했을 뿐입니다."

흰 가면의 여자가 대답했다.

"본 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사내의 음성에 짜증이 가득 차 있었다. 사내의 음성에 실린 힘을 버티지 못한 몇명이 쓰러졌다.

"저는 계획대로 행동한 것일 뿐.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계획부의 잘못이라고 생각됩니다."

여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 실패자가 감히! 계획부의 탓으로!"

무리 중 하나가 일어나서 소리쳤다.

"너의 발언을 허락한 적이 없을 텐데."

사내의 소리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사내는 발언권을 주지 않은 이가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심지어 그게 남자라면 더더욱.

흥분해서 저지른 실수였다.

재빨리 머리를 땅에 쿵 소리가 나도록 박았다.

"죄송합니다!"

쿵­쿵­쿵­

머리가 찢어져 피가 튀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사내의 잔혹함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남자군. 그렇지?"

사내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그렇지만!"

미친 처녀 중독자 새끼.

그것이 머리가 터지기 전에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여우. 너는 아직 처녀군."

사내의 시선이 여자의 온몸을 훑는 듯했다.

여우는 그때 막내를 덮칠 뻔한 욕망을 참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저 사내는 처녀에 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친절했다. 사내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처녀에게서 처녀를 취하기 전에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

여우는 슬며시 자신의 흰 다리를 치마 밖으로 내밀었다.

가면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저 처녀 중독자는 분명히 자신의 다리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럼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오도록."

사내가 왕좌에 다시 몸을 묻었다.

"존­명­"

그들이 있는 큰 공동이 울릴 만큼 거대한 대답이 나왔다.

곳곳에 벌레처럼 박혀있는 검은색 인영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여우는 환멸감을 느꼈다.

언제와도 기분이 더러운 곳이야 여기는.

여우는 쯧하고 혀를 차고는 뒤로 물러섰다.

아마 실수를 한 번 더 하면 사내가 내 몸을 강제로 취하고 목을 뽑을 것이다.

사내는 처녀를 취한 여자에게서는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 않으니.

자신에게도 완벽한 계획이 필요했다.

자유를 위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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