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 2
* * *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케이트가 자리에 앉아서 내 손을 끌어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 모습을 본 비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비키가 케이트가 앉은 반대쪽 의자에 거칠데 앉더니 나를 세게 끌어당겼다.
아 시발 아퍼 미친.
양쪽에서 당기니까 반으로 갈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아나는 우리의 반대쪽에 앉았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조슈아도 키아나의 옆쪽에 앉았다. 둘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둘은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꽤 비싼 카페거든. 우리 평민은 나 아니었으면 이런 데 못 와봤을걸?"
케이트가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웃었다.
"사 먹는 음식들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나 보네. 우리 꼬맹이는?"
"흥 이런 데서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케이트가 잔뜩 비웃음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지. 누구와는 다르게 나는 요리를 잘해서 직접 만들어 주면 되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여자가 요리를 못한다? 흐응... 글쎄?"
비키가 부드럽게 내 턱을 쓰다듬었다.
"이익! 나도 요리할 수 있다고!! 귀한 몸이라 안 하는 거라니까! 맞지?! 조슈아!!!"
비키의 말에 인내심이 깊지 못한 케이트가 소리 지르면서 일어났다.
케이트의 시선을 받은 조슈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슈아는 딱 봐도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한 성격 같았다.
"황녀님은 요리에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졌습니다. 으윽!"
조슈아가 잠깐 입을 오므렸다가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그런 조슈아의 말에 케이트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궁에서는... 가끔 쿠키도... 죄송합니다! 황녀님!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힘겹게 말하던 조슈아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했다.
아니 얼마나 요리를 못하면 애가 저렇게 괴로워하는 거야.
"조슈아!!!!!"
케이트가 그런 조슈아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푸하하하하"
비키가 배를 잡으며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었다.
"이익!!! 웃지마! 조슈아!!! 거짓말이라고 말해! 어서! 나 요리 잘한다고 말하라고!!!"
거의 발작하는 것처럼 케이트가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황녀님의 요리는 차마...! 제가 저지른 불충! 달게 받겠습니다!"
조슈아는 거의 식탁에 머리를 박을 정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거짓말할 필요 없습니다. 거짓이란 건 먹물과도 같아서 하면 할수록..."
그런 조슈아를 키아나가 옆에서 두드려주고 있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로.
똑똑똑
때마침 들어온 직원 덕분에 일단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의 케이트가 씩씩대면서 자리에 앉았다.
"나 요리 진짜 잘해!"
자리에 앉은 케이트가 내게 바짝 붙어서 내 귀에 속삭였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사실 그때 같이 납치되었을 때도 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었다.
"알았어. 너 요리 잘하는 거 내가 잘 알지."
그렇지만 굳이 그 사실을 말해서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흥흥 그치? 저 바보같이 가슴만 무식하게 큰 여자 말은 무시해."
내 대답에 케이트가 만족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느새 식탁 위에는 케이크들이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그 테두리에는 각양각색의 음료들이 있었다.
와 무슨 보라색 음료도 있네.
먹기 존나 싫게 생겼어.
"자 우리 변태 이거 먹어봐."
비키가 내게 하얀색 케이크를 먹였다.
음 이건 우유 맛이 강하네.
"이것도 먹어! 우리 평민!"
그러자 케이트도 바로 노란색 케이크를 내게 먹였다.
이건 치즈 맛인가?
"그럼 이것도"
비키가 냉큼 다른 케이크를 내게 먹였다.
잠깐만 이거 시발 설마.
"이거!"
케이트가 또 먹였다.
애미 시발.
이 정신병자들이 이미 가득 찬 내 입에 경쟁하듯이 케이크를 더 쑤셔 넣고 있었다.
미친 목막혀. 씹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입안이 케이크로 가득 찼지만, 이들은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변태 이것도!"
"이익! 이것도!"
시발.
결국 목막힘 때문에 잔기침이 올라왔다.
안 돼.
반대편에서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키아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키아나에게 비키라고 손바닥을 흔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키아나가 미소지었다.
아니 시발 비키라고 미친.
키아나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나를 따라서 손짓을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비키라고.
"이것도 처먹어!"
그때 케이트가 내 입 깊숙이 케이크를 하나 더 찔러넣었다.
"에엣취!"
더는 참을 수가 없던 나는 입안에 잔뜩 담겨 있는 것들을 힘차게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황급히 내용물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입에서 튀어져 나와서 키아나를 향해 날아가는 케이크들의 모습이 느리게 보였다.
키아나의 눈이 더욱 커졌다.
앞으로 펼쳐질 끔찍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케이크가 키아나에게 쏟아지기 바로 전.
키아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들 그만하시죠."
내 뒤에서 키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내 뒤로 이동한 키아나가 양쪽에서 내게 케이크를 더 쑤셔 넣으려고 하는 손들을 잡았다.
"이 손 놓지?"
심기가 불편한 말투로 비키가 말했다.
"사제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키아나의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물론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역시 사저밖에 없다!
"흥!"
케이트가 키아나의 손을 쳐내고는 팔짱을 꼈다.
사저가 말씀하시는데 저저 싸가지 없는 새끼.
"다 먹었으니까 가자. 변태."
키아나의 손을 쳐내고 비키가 일어났다.
그래 나는 충분히 다 먹었어.
이제 다들 갈 길 가자.
비키와 둘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흥 맛없어!"
케이트가 포크를 딱하고 내려놨다.
"우리도 일어나자 조슈아!"
케이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그런 케이트를 따라 조슈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케이트가 다시 내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러자 비키도 내 반대쪽 팔에 팔짱을 낀 다음 끌어당겼다.
"악!"
몸이 두 개로 나뉘어져 정체성에 혼란이 올 것 같은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내 비명에 놀란 비키와 케이트가 손을 뗐다.
"거기까지 하시죠."
그런 나를 키아나가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이건 또 뭐야?!"
케이트가 키아나를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제 사제가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까. 그만하시죠."
키아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런 키아나의 등 뒤에 숨었다.
역시 사제가 최고야.
저 미친년들 좀 치워줘.
"흐응 그래. 근데 내 것은 돌려주지 않겠어?"
"평민이 왜 니꺼냐고!!"
"그거야 내가 내 것 하기로 했으니까. 불만 있어?"
"이익!!! 당연히 있지!!"
"무슨 불만? 혹시 꼬맹이 우리 변태를..."
"닥쳐!!! 내가 황녀니까 다 내 것이야! 니 것은 없어!"
"그만하시라고 말씀..."
"넌 좀 빠져!! 뭔데 자꾸 껴들어!"
"제 사제 입..."
"어쩌라고!!!!"
저저 싸가지 없는 말버릇 보소.
또 언성을 높이며 싸우려고 하는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발 그래. 니들끼리 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나는 조용히 방문으로 향했다.
그들은 싸우느라 내가 도망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침내 문손잡이를 조용히 잡았을 때,
똑똑똑
"황녀님에게만 드리는 저희의 특별한 케이크입니다."
직원이 포장된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애미 시발.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니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가 우리 변태?"
비키가 살벌한 눈빛으로 물었다.
"...하하 화장실이요."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 남자 화장실은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친절한 직원이 그런 내게 화장실의 위치를 설명해줬다.
시발.
"감사합니다."
그런 직원이 얄미워서 딱밤 한 대를 때려주고 싶었다.
"갔다가 안 오면 알지?"
비키의 붉은 입술이 호선으로 휘었다.
"하하 당연히 갔다 오죠..."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다시 한번 설명해주는 직원을 노려보고 나왔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방안은 진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그럼 우리는 갈 데가 있어서 말이야."
내가 들어오자 비키가 벌떡 일어나서 내게 팔짱을 꼈다.
"이익!!! 나도 갈 데 있거든!?"
그러자 케이트도 냉큼 일어나서 내 반대쪽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러던지. 꼬맹이."
비키가 그런 케이트를 보며 피식 웃더니 나를 끌고 나갔다. 비키의 힘에 내가 끌려가자 케이트도 자연스럽게 끌려왔다.
케이트가 안 끌려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힘에서 비키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 우스운 모습으로 카페를 나가서 돌아다녔다.
뒤에서는 조슈아와 키아나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따라왔다.
비키는 나를 끌고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비키의 말에 따르면 이곳이 수도에서 제일 큰 식료품점이라고 했다.
내 손으로 요리를 해먹지 않는 나는 식료품점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다.
식료품점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료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사람이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흐응"
비키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서 확인했다.
힐끔 보니 종이에는 사야 될 목록들이 적혀 있었다.
비키가 나를 끌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바구니에 식료품들을 담았다.
그중에는 내가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았다.
식료품들까지 직접 사는 모습을 보니 뭔가 새로웠다.
진짜 요리를 좋아하는 구나.
"나도 요리할 줄 안다고! 잘 봐! 이건 당근이란 거야!!!"
그런 비키의 모습을 아니꼽게 보던 케이트가 손가락으로 옆에 있는 것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양파입니다..."
조슈아가 조용히 케이트에게 말해줬다.
"당근이나 양파나 거기서 거기지!"
자신이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케이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조차도 당근과 양파는 아는데 좀 심하네.
어떻게 당근이랑 양파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빡대가리 케이트니까 납득했다.
"푸흡. 꼬맹아 이게 당근이야."
비키가 조소를 잔뜩 머금은 얼굴로 당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익! 그게 그거지! 생긴 것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하구만!!!"
케이트가 비키의 손에 들린 당근을 뺏어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당근에 흙이 약간 묻어 있었던 것 같은데 괜찮은건가.
맛이 괜찮았는지 케이트의 표정이 풀어졌다.
케이트가 입에 있는 당근을 먹고 양파도 쥐어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으 저건 좀 매울 텐데.
오묘한 표정을 짓던 케이트의 얼굴이 점점 울상으로 바뀌었다.
열심히 움직이던 케이트의 입이 점점 느려졌다.
"으... 매워..."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케이트가 중얼거렸다.
케이트의 입이 열리자 매운 냄새가 확 풍겼다.
"푸하하하"
그런 케이트의 모습에 비키가 박장대소했다.
"뱉으세요!"
조슈아가 다급히 손수건을 꺼내서 케이트의 입에 갖다 댔다.
"다른 데 봐!!!"
케이트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더러워서 안 볼 거야.
결국 케이트가 입에 잔뜩 머금은 양파를 조슈아의 손수건에 뱉어냈다.
"으흑 나 요리 진짜 잘한다구..."
돌아보니 케이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울 정도로 매웠나.
"푸하하하 쟤 좀 봐!"
비키가 그런 케이트를 손가락질하면서 신나게 웃고 있었다.
"이... 이것을 드십쇼!"
울고 있는 케이트의 모습에 조슈아가 다급히 딸기를 케이트에게 내밀었다.
케이트가 조슈아에게 받은 딸기를 한입에 넣고 씹었다.
딸기처럼 잔뜩 붉어진 얼굴로 울면서 열심히 딸기를 씹는 케이트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
잠깐의 소란이 지나가고 필요한 식료품을 다 산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다행인 점은 양파 사건 이후로 케이트가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근데 그건 뭡니까 사저?"
뭔가를 잔뜩 산 키아나에게 물었다.
"아. 메론빵 재료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한번 직접 만들어 보려고. 사제한테도 꼭 줄게."
키아나가 소매를 걷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사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 먹기까지 하다니.
진정한 메론빵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근데 메론빵에 진짜 멜론이 들어가는 거였어?
"그럼 우리 변태 가고 싶은 곳 있어?"
비키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레이피어 레이피어!!! 급하다 급해!'
알았다고 시발.
"저 무기점 좀 가보려고요. 볼 게 있어서."
"흐응 무기점? 이미 검 두 개나 있으면서 욕심이 많네."
"그냥 궁금해서요."
"그럼 무기점으로 가지 뭐."
비키가 지리를 잘 아는 듯 내 팔을 당겼다.
"...그래"
고개를 잔뜩 숙인 채로 내 팔짱을 끼고 있는 케이트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따라왔다.
"오 무기점이라니 언제 가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지."
키아나가 무기점을 간다는 말에 들떠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우스운 모습으로 거리를 걸어서 무기점에 도착했다.
무기점의 건물 위에는 무기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 창과 검이 크게 조각되어 있었다.
저 정도면 굳이 따로 표시가 없어도 사람들이 무기점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지만, 주인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았다.
건물의 앞부분에 '켈트의 무기점' 이라고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비키가 익숙하게 무기점의 대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소리가 크게 나면서 무기점 안에 있는 모두가 우리를 쳐다봤다.
아니 시발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되잖아.
안 쪽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고 큰 덩치의 사내가 우리 앞에 뛰어왔다.
"비키님!!!"
쾅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남자가 비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 켈트."
그런 남자를 비키가 당연하다는 듯 불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이 켈트는 그동안 비키님의 은혜에...!"
남자가 피를 토할 것처럼 절절하게 말했다.
"아니 됐고. 얘가 무기 좀 보고 싶데."
그런 절절한 남자의 말을 무심하게 자른 비키가 나를 가리켰다.
"하하 안녕하세요."
내 몸통만 한 남자의 팔뚝을 보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이분은...?"
나를 확인한 남자의 미간이 좁아졌다.
"내 꺼야. 내 꺼."
비키가 내 팔을 당겨서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러자 옆에서 케이트가 안간힘을 써서 버텼다.
아프다고 시발.
"하지만 비키님은...!"
남자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는 듯 눈을 꿈벅거렸다.
"뭐?"
"아...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비키님의 것님!"
거칠어진 비키의 대답에 남자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근데 시발 비키님의 것님은 뭐야.
정말 기분 나쁜 문장이었다.
우리는 남자를 따라서 무기점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건물은 외곽에서 봤던 것보다 내부가 더욱 컸다.
땅땅땅
상남자같이 생긴 사내들이 안에서 열심히 철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드워프들도 있는 것 같았다.
"에이호! 땅! 그러면 우리도 땅!"
드워프들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비키님!"
그중 몇몇 사내들이 비키를 알아보고 무릎을 꿇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길래 저런 무섭게 생긴 사내들이 비키만 보면 무릎을 꿇는 거야.
비키는 그런 사내들에게 대충 손을 저어줬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무기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곳이 나왔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무기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굉장히 좋은 검들이군요."
키아나가 드물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키아나의 눈이 연신 빠르게 움직였다.
"얼굴도 이쁜 아가씨가 보는 눈이 제대로군! 여기 있는 무기들은 수도에서 제일 뛰어난 우리 무기점에서도 엄선하고 엄선한 것들이라네! 하하!"
그런 키아나의 말에 안내해 준 남자가 신나서 말했다.
"그럼 골라봐 변태."
비키가 나를 살짝 밀었다.
"뭐든 마음에 들면 가져와."
비키가 시원하게 웃었다.
와 개 멋있어.
이 기회에 나도 루나 검을 버리고 새 검으로...?
'큼큼 듣고 있다네 소년.'
농담이지.
'레이피어! 레이피어! 저기 오른쪽 대각선 앞에!!! 쌔끈한 레이피어!!! 잘 빠진 레이피어!!'
검이 말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매끈하게 빛나는 레이피어가 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검신과 금색으로 빛나는 손잡이까지.
'헉헉 킁카킁카! 이거네 이거!'
시발 좀 조용히 해봐.
검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치니 머리가 아팠다.
'어서 나를 저기에 올려줘 올려줘!!'
나는 검집을 그대로 벗어서 루나 검을 레이피어 위에 올려줬다.
'처녀의 냄새가 나는 구나! 긴장을 풀게나 숙녀!'
'윽윽윽! 헉헉헉!'
시발 뭐 하는 거야 저 좆같은 검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검의 이상한 신음소리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으으으윽!!!!'
이상한 신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검이 조용해졌다.
왜 이렇게 빨리 끝났냐 너.
좀 실망인데.
'오해하지 말게... 오랜만이라 그런 것 뿐이네! 나는 이걸 온종일 할 수도 있다네!'
닥쳐 좀 더러우니까 시발.
'이 검을 사주게. 제발! 나와 궁합이 너무 잘 맞아!'
검이 애절하게 부탁했다.
아니 근데 내가 레이피어를 안 쓰는데 이거를 왜 사.
'그냥 좀 사주게! 어떻게든 내가 더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제발! 나와 궁합이 최고라니까!'
무시하기에는 검의 목소리가 너무 절절했다.
그래 일단 검이 있기는 하니까 내가.
루나검을 가지고 나서 강해진 것도 맞고...
흐음 고민되네.
'제발! 검에게도 욕구를 푸는 게 필요하다네! 검권을 존중하라! 존중하라! 존중하라!'
저 레이피어를 안 사면 검이 시끄럽게 계속 떠들 것 같았다.
알았다. 알았어 살게 시발.
'고맙다 고마워! 소년! 내가 꼭 강하게 만들어주겠네! 하하하! 레이피어 이 년! 너는 이제 내...'
뒷말들은 너무 저급해서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응? 레이피어?"
레이피어를 집어온 나를 보며 비키가 물었다.
"아... 이건"
마땅히 생각한 핑계가 없는데.
마침 열심히 검을 둘러보는 키아나의 허리에 맨 허름한 레이피어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키아나의 검이 본인과 어울리지 않게 평벙했다. 키아나한테 주고 가끔 루나검한테 보여주면 되겠다.
제국 제일검이 될 키아나에게 잘 보여서 나쁜 것도 없으니까.
"선물용이에요."
"선물?"
내 대답에 비키의 이마가 구겨졌다.
누나 왜 또 이마를 구겨.
"네."
불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뭐 알았어. 무엇을 사든 변태 자유니까."
비키가 표정을 풀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켈트."
"네! 비키님!"
비키가 나지막하게 부르자마자 사내가 달려와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도대체 비키는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지.
"이거."
비키가 내 손에 들린 레이피어를 가리켰다.
"오 안목이 좋으시군요. 이 레이피어로 말하자면..."
"얼마야."
비키가 남자의 말을 잘랐다.
"그게..."
비키의 단호한 말에 남자가 당황했다.
"으음... 이 정도만 주십쇼"
잠깐 비키의 눈치를 보며 고민하던 남자가 내 생각보다 많이 저렴한 가격을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돈을 받았지만 별로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값을 지불하고 무기점 밖으로 나왔다.
키아나는 뭔가 아쉬운 듯 자꾸만 무기점을 돌아봤다.
"여기 잠깐만 있어 봐. 나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비키가 무기점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나나도 잠깐만!"
케이트가 붉어진 얼굴로 어디로 걸어갔다.
"황녀님! 화장실 가시는 겁니까?! 같이 가시죠!"
"이익! 화장실 아니야!"
"그럼 어디로?!"
"일단 화장실은 아니라고! 이 멍청한 조슈아!!!"
케이트와 조슈아가 요란하게 화장실로 갔다.
그럼 일단 주고 나서 훈련할 때마다 하게 해주면 되지?
'좋군 너무 좋아! 하루 한 번이면 충분하지!'
들고 다니기 무겁고 귀찮으니까 줄 거면 빨리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짬처리는 빠를 수록 좋으니까.
"사저."
"응 사제?"
여전히 무기점을 보고 있던 키아나가 내 부름에 돌아봤다.
"이거 선물이에요."
내 손에 들린 레이피어를 키아나에게 내밀었다.
키아나는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뭐 하는 거야 팔 아프잖아.
"그 선물이에요. 사저가 도와준 것도 많고 챙겨준 것도 많으니까요."
키아나가 딱히 나를 챙겨준 것은 없었던 것 같았지만...
"아... 사제."
내가 살짝 더 내밀자 키아나가 레이피어를 받았다.
"그냥 사저한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웃었다.
꽤 친절해 보이겠지?
"사제... 사람이 이렇게까지 따뜻하다니..."
키아나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아니 시발 왜 울어.
내가 잘못한 게 있었나?
오늘 내 행동을 되짚었다.
평민이 건방지게 귀족에게 선물한 게 문제였나.
아니면 아까 내가 뱉은 케이크가 살짝이라도 튀었나?
더없이 소중하게 레이피어를 품에 안는 키아나를 보며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크흠. 저 레이피어가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답기는 하지. 또 불끈 불끈하는구만.'
이게 다 너때문이잖아 시발.
"사제 고마워."
키아나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그 모습이 평생 기억에 남을만큼 아름다웠지만.
또 소름끼치기도 했다.
바보같이 따뜻한 사제 내가 꼭 지켜줄게
키아나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괜히 준건가.
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