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56화 (56/233)

〈 56화 〉 각성했지만 약한...

* * *

"뭐해! 죽이라고!"

케이트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에 넋 놓고 있던 기사들이 정신을 차렸다.

기사들이 서서히 흰 가면의 사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으으음 이상합니다! 왜 대답이 없으신 거죠?!"

뿌득­

흰 가면 사내의 얼굴이 반대 방향으로 기이하게 꺾였다.

시발 뭐야 저거 끔찍하잖아.

기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다가가기 싫은 표정이었다.

"혹시­ 처녀가 아니신가요?!"

흰 가면 사내의 목소리가 약간 낮아졌다.

케이트가 눈에 띄게 어깨를 들썩였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저번 황녀님 납치 사건과 연관 있는 것 같으니 방심하지 말고 확실히 붙잡도록 하세요."

조슈아가 검을 비스듬히 들었다.

조슈아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에도 긴장이 서렸다.

마침내 검이 닿을만한 거리까지 가까워진 기사 한 명이 흰 가면의 사내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괜히 황실 기사단이 아닌 듯, 기사의 찌르기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흰 가면 사내는 그 공격을 막지 못하고 몸에 검이 깊숙이 박혔다.

순식간에 사내의 뒤로 붉은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바닥에 붉은색이 가득 칠해졌다.

흰 가면 사내의 목이 힘을 잃은 듯 뒤로 꺽였다.

뭐야 시발 뭔가 있어 보여서 긴장했는데.

그냥 개 좆밥이잖아.

검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어졌다.

긴장한 표정이었던 기사도 허무해 보였다.

기사가 열 명이나 둘러서서 포위하고 있던 게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좆밥이었다.

"...방심하지 말고 연행하세요."

조슈아가 검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말하는 조슈아도 방심한 것 같았지만 이해가 될 만큼 허무한 결말이었다.

검을 찔러넣었던 기사가 검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흰 가면 사내의 머리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끼요오옷! 너무 짜릿해서 정신이 순간 놔버렸지 뭐에요!?"

흰 가면의 사내가 괴상한 효과음을 내며 기사의 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고통은 ! 늘! 언제나 새롭다는 것! 신님의 축복이에요! 끼요오옷!"

맨손에서 피가 터져 나왔지만 흰 가면의 사내는 신경 쓰지 않고 더욱더 강하게 검을 잡았다.

"읍"

그 모습에 기사가 침음성을 내며 검을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흰 가면의 손가락들이 잘려서 땅에 떨어지며 기사의 검이 흰 가면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흰 가면의 손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피가 온 바닥에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약간 어지러웠다.

"이러면 밥 먹기가 너무 힘듭니다만! 나는 오른손잡이라는 것! 푸하핫!"

흰 가면 사내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양손을 과장되게 흔들었다.

그러자 분명히 손가락이 하나도 없던 사내의 손이 다시 멀쩡해졌다.

아니 분명하게 봤다.

사내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자라났다.

시발 저게 뭐야.

저 새끼 미친 괴물이었잖아.

혹시나 해서 하늘을 봤지만, 하늘에는 보름달이 아니라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살짝 뒤로 물러나서 키아나의 뒤로 숨었다.

"어?! 손가락이 다시 생겼습니다! 우하핫! 아 맞다! 여러분 저는 신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흰 가면의 사내가 한껏 흥분한 음성으로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저게 뭐야..."

케이트가 중얼거리면서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 모습이 키아나 뒤에 숨은 내 모습과 묘하게 비슷해서 기분이 나빴다.

"큼큼... 제가 너무 흥분했나 보군요. 그럼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흰 가면 사내가 우스꽝스럽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그때 흰 가면 사내의 뒤에 있던 기사가 흰 가면 사내의 목을 단칼에 날렸다.

보통 저럴 때는 기다려주는 게 매너 아닌가.

목을 베어낸 기사가 검에 묻은 피를 털고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기사의 표정에는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쿵­ 데구르르­

흰 가면 사내의 머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나뒹굴었다.

"조사를 해야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유일한 단서를 죽여버리면..."

조슈아가 기사에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렇지만 조슈아도 묘하게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아아­"

그 순간 땅에 떨어진 흰 가면 사내의 머리가 들썩였다.

"왜 갑자기 제 눈높이가 낮아졌죠?"

흰 가면 사내의 머리가 경쾌하게 말했다.

"으악! 시발 깜짝아!"

그 기괴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키아나의 옷을 잡아끌었다.

"사...사제 옷을 그렇게 세게 당기면..."

키아나의 손이 옷을 잡아당기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저저! 시발! 괴물이다! 괴물이야!"

애미 시발 목이 날라가고도 말을 하다니.

분명 오늘 밤에 잘 때 저 흉측한 모습 때문에 악몽을 꿀 것이 분명했다.

"괴물이라뇨! 저는 엄연히 신의 은혜를 입은!"

흰 가면 사내의 머리 아래로 몸이 급격하게 자라고 있었다.

"집행관입니다. 이 불신자들이여."

이윽고 머리 아래로 깨끗한 남자의 몸이 생긴 흰 가면 사내가 이어서 말했다.

옷은 재생이 되지 않는지 흰 가면 사내는 깨끗한 나체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나체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마치 넥타이를 정리하는 동작을 취했다.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 기괴했다.

"으악! 저 흉측한 거 빨리 치워!"

케이트가 자신의 눈을 가리면서 소리쳤다.

"신의 은혜를 입은 저에게 흉측하다니! 그런...! 이크!"

중얼거리던 흰 가면 남자가 자신의 뒤에서 기사가 휘두르는 검을 손으로 잡았다.

검이 흰 가면 사내의 손을 날렸지만, 그로 인해 약간 속도가 느려졌다.

그 틈에 흰 가면 사내가 반대쪽 손으로 기사의 안면을 잡았다.

그리고는 어느새 다시 자란 손을 기사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런 흰 가면 사내를 막기 위해 다른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지만 신경 쓰지 않고 사내의 입에 넣었던 손을 빼내었다.

손에는 피범벅인 혀가 흉측하게 뽑혀 있었다.

"모욕적인 언사를 하면 응당 그 혀를 뽑아버리는 것이 적절한 형벌! 아마 성전에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흰 가면 사내가 우스꽝스럽게 혀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땅에 패대기쳐진 혀가 뭉개지면서 피가 튀었다.

"으아악­!"

그 끔찍한 모습에 케이트가 비명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지는 케이트를 조슈아가 잡아서 옆에 앉히고는 검을 뽑아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다른 기사들이 흰 가면 사내의 몸에 검을 찔러넣어서 피가 튀었지만 흰 가면 사내는 오히려 좋다는 듯 기분 좋은 소리를 내었다.

"고통이란! 속죄이자 신의 은혜! 흐읏! 여러분들도 속죄할 기회를 제가! 드리겠습니다!"

흰 가면 사내가 말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지만, 꾸역꾸역 끝까지 말했다.

흰 가면 사내가 몸에 박힌 검 중 하나를 잡아서 끌어당겼다.

기사가 당황해서 검에 힘을 주었지만 이미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양손으로 기사의 머리를 잡은 흰 가면 사내가 당겨서 자신의 머리에 박았다.

분명 기사는 머리에 단단해 보이는 투구를 쓰고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머리를 박아 넣었다.

흰 가면 사내의 머리에서 피가 터지고 머리가 뭉개졌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박치기를 했다.

마침내 기사의 투구가 깊게 구겨지고 기사가 쓰러졌지만 흰 가면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흰 가면 사내는 아예 기사의 위에 올라가 더욱 본격적으로 기사의 머리를 짓이겼다.

주변에는 기사의 피와 흰 가면 사내의 피가 잔뜩 뿌려져서 첨벙첨벙 소리가 연신 들렸다.

그 끔찍한 광경에 주변 기사들은 기가 질려 말릴 생각조차 못 하는 듯했다.

아니 아무리 검을 찔러넣어도 신경쓰지 않고 금방 재생하는 괴물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마침내 기사의 머리가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가 되고 나서야 흰 가면 사내가 멈추었다.

"아아­ 한 분이 속죄하셨습니다! 다음 분은 누구신가요?!"

흰 가면 사내가 개운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은 보는 이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일깨웠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시발 좀 움직여 다리야.

주먹으로 말 안 듣는 다리를 때렸다.

흰 가면 사내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 기사들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지만 흰 가면 사내는 피하지 않았다.

기사의 검이 흰 가면 사내의 팔을 통째로 날렸다.

흰 가면 사내가 잘린 팔에서 뿜어지는 피를 기사에게 뿌려 시야를 가린 다음에 머리를 다시금 붙잡았다.

"으아악!­"

머리를 붙잡힌 기사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을 때, 내 앞에 있던 키아나가 사라졌다.

어느새 흰 가면 사내의 옆에 나타난 키아나가 흰 가면 사내의 팔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키아나는 내가 준 레이피어를 들고 있었다.

"흐음­! 등급을 매길 수조차 없을 정도로 황홀한 미인이시군요."

키아나를 본 흰 가면 사내가 동작을 멈췄다.

"제가 본 그 어떤 미인보다도 뛰어납니다! 당신은! 신님이 매우 기뻐할 거에요!"

흰 가면 사내가 어느새 재생된 팔로 익살맞게 키아나를 가리켰다.

그 틈에 몇명 남지 않은 기사들이 뒤로 물러섰다.

키아나라고 해봤자 딱히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이거 시발 도망가야 하는데.

키아나는 흰 가면 사내의 말에 답하지 않고 검을 비스듬하게 세우며 자세를 낮췄다.

흰 가면 사내가 손으로 짝­하고 손뼉을 쳤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큼큼. 처녀이십니까?"

흰 가면 사내가 목을 가다듬고 점잖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가면을 제외하고 나체인 모습으로 점잖게 물어본다고 점잖아 보일 리가 없었다.

"무례한 질문입니다."

키아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을 찔러넣었다.

어느새 흰 가면 사내의 몸 곳곳에 구멍이 생기며 피가 줄줄 흘렀지만, 사내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큼큼.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처녀가 아니신가 보군요."

흰 가면 사내는 키아나의 공격을 피하지 않으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키아나가 사내의 얼굴에 검을 찔러넣었지만, 가면에 검이 퉁겨져 나왔다.

가면을 무엇으로 만들었길래 저렇게 단단해.

"질문이 무례하다는 겁니다."

키아나가 거리를 살짝 벌리고 자세를 다시 잡았다.

"이해합니다. 그 정도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외모라면 처녀를 지키기에는 힘들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처녀를 잃은 죄를 피해갈 수는..."

흰 가면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얼굴이 붉어진 키아나의 검에서 파란색 기운이 일렁였다.

오 저 나이에 벌써 기운을 유형화하다니 대단하군.

나도 저 나이 때에는 저 정도 경지를 이루지 못했었는데 대단한 레이디야.

"그렇다고 해도. 처녀를 잃은 것은 큰 죄입니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봐주기에는 힘들군요."

흰 가면 사내가 양팔을 넓게 벌리며 키아나에게 뛰었다.

"봐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키아나가 그런 사내를 향해 검을 빠르게 찔러넣었다.

그러자 키아나의 검을 감싸던 파란 기운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흰 가면 사내는 피하지 않고 기운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파란 기운에 부딪힌 흰 가면 사내는 가면 부위만 제외하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머리만 앞으로 나뒹굴었다.

머리가 나뒹굴 때마다 몸이 급격하게 재생이 되며 세 바퀴를 돌자 어느새 멀쩡한 상태가 된 사내가 키아나를 향해 다시 뛰었다.

"처녀가 아닌 자! 제가 기꺼이 속죄 시켜 드리겠습니다! 이히히힛!"

뛸 때마다 덜렁거리는 흰 가면의 그곳이 끔찍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며 키아나가 눈썹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기운을 이끌어냈다.

그때 쾅­소리가 나면서 흰 가면 사내가 땅에 처박혔다.

"흐음­ 재밌는 장난감이잖아 이거."

어느새 사내의 머리를 잡아서 땅에 박은 비키가 중얼거렸다.

쾅­

쾅­

쾅­

비키가 사내의 머리를 잡고 연신 땅바닥에 처박았다.

그 간격이 일정해 마치 무기점에서 들었던 망치 소리 같았다.

"끼요옷!"

사내는 기묘한 신음을 내며 비키의 손을 떨치기 위해 발악했지만 비키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니까 마음껏 가지고 놀아도 안 부서진다는 거지?"

비키의 입꼬리가 불길할 정도로 올라갔다.

"끼욧! 혹!"

쾅­

"시 처!"

쾅­

"녀 이십!"

쾅­

"니까?!"

쾅­

"흐응­ 어떨 거 같아?"

비키가 넝마가 된 사내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끼욧? 큼큼 그 어마어마한 흉부로 봤을 때는 처녀가 아니신 것 같습니다만?!"

흰 가면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땡­ 잘 아는 척하더니 형편없네. 틀렸으니 벌을 받아야지?"

비키가 시원하게 웃으면서 다시 한번 사내를 땅에 처박았다.

"끼욧!­ 드디어 특등급의 처녀를 발견했다니!"

땅에 계속해서 박히는 와중에도 사내의 입은 쉬지 않았다.

"저와 같이 가시죠!"

쾅­

"응? 내가 왜?"

쾅­

얼마나 땅에 세게 박았는지 비키와 흰 가면 사내를 중심으로 어느새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쾅­

"음­ 저희 대장님이 처녀를 좋아하거든요! 저와 같이 가면 대장이 잘 대해줄 겁니다! 윽!"

흰 가면 사내가 넝마가 된 모습과 어울리지 않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쾅­

"미안하지만 내가 남의 말을 듣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야. 남자 말은 더더욱."

쾅­

"흐음­ 곤란하군요. 특등급의 처녀를 완전한 상태로 가지고 가고 싶은데. 큭­"

쾅­

"뭐 어쩔 수 없죠. 그럼."

사내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쾅­

흰 가면 사내의 몸이 불길할 정도로 붉게 빛났다.

뭐야 저거 터질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내 불길한 느낌은 대부분 정답이었다.

나는 황급히 뒤에 있던 에일 버드 튀김대 뒤로 숨었다.

에일 버드 청년은 언제 도망갔는지 사라져 있었다.

나도 데리고 가지 정 없는 새끼.

문득 옆에 기절해 있는 케이트가 보였다.

조슈아가 챙기겠지?

조슈아는 이미 기사와 합류해서 비키와 흰 가면 남자가 싸우는 곳을 포위하고 있었다.

아니 시발 너는 얘 지켜야지 왜 거기 가 있어.

콰아아앙­

흰 가면 사내의 몸에서 짙은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굉음이 들렸다.

진짜 터지네 애미 시발.

순간적으로 땍땍거리는 케이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 시발 저거 놔뒀다가 혹시라도 살아나면 그 난리를 어떻게 버텨.

단지 땍땍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 뿐이었다.

발 쪽에 기운을 터뜨리며 케이트 쪽으로 뛰었다.

'나를 뽑게 소년.'

뽑기 창피한 검이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없었다.

루나라고 잔뜩 적힌 검이 밝게 빛났다.

그 중 중앙에 적힌 루나 에이든이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 특히 밝게 빛났다.

레이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훌륭한 마음가짐이군.

닥쳐 시발 그냥 땍땍거리는 거 듣기 싫을 뿐이니까.

레이디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소년이라... 내가 좀 도와주도록 하지.

갑자기 검을 드는 자세가 편해졌다.

마치 손에 든 것이 검이 아니라 내 손이 길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검이 베지 못하는 건 없네. 소년.

네 검 말고 내 검은?

어떨 것 같나?

몰라 시발 내가 물었잖아.

나도 모르겠군.

개새끼.

기운이 몸 안에서 맹렬하고 거칠게 돌아다녔다.

마치 몸 안에 몇백 마리의 곤충이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악착같이 그 기운들을 모아서 검 쪽으로 보냈다.

기운들이 자꾸만 반항하면서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갔다.

말 좀 들어 시발.

기를 쓰고 흩어지는 기운들을 모았다.

점점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화염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나에게 혀를 날름거리는 악마 같아서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시발.

내가 주제넘었지 내가 누구를 구한다고.

'집중해 소년'

이미 충분히 하고 있어 시발.

내 집중은 지금이 최고점이라고.

기운을 강제로 손 쪽에 보내면서 온몸의 핏줄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개미가 내 피부 안을 파먹으면서 이동하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코피도 터졌는지 코 밑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눈의 실핏줄도 터졌는지 시야가 붉어졌다.

시발 존나 흉하겠네.

마침내 화염이 내 바로 앞까지 도착했을 때.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시발.

팔이 뽑힐 것처럼 검이 무거웠다.

나는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던 대로 무거운 검을 움직였다.

검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웠던.

아마 수만 번은 반복했을 그 동작.

위에서 아래로.

수직 베기.

천천히 내 검을 따라서 마치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화염이 갈라졌다.

그 모습이 내가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멋있었다.

애미 시발 나 성공한 거야?

위기의 순간에 각성하는 것. 시발 나 주인공 맞네!

내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피로감과 고통보다 쾌감이 더 컸다.

미안하다. 내가 모두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황녀는 지켰으니까.

아마 궁에서 큰 상을 내리겠지.

어쩌면 내게 꽤 살만한 큰 집을 줄지도 모른다.

마침내 화염이 걷히고 모두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나는 처참한 모습을 상상하면서 눈물을 흘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드러난 모습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멀쩡한 모습으로 검을 털고 있는 키아나.

살아남은 기사들의 앞을 막고 있는 조슈아.

조슈아의 갑옷에는 곳곳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큰 피해는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흰 가면 사내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던 비키조차 멀쩡했다.

비키는 사내에게서 약간 떨어져 있었다.

불길에 그을려 비키 옷의 곳곳이 타서 속살이 보였지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뭐야 시발 나만 살아남은 거 아니었어?

그런 멀쩡한 모습들에 비해 나는 몰골이 너무 흉했다.

시발 또 나만 개 좆밥이었네.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허탈함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두 다리의 힘이 빠졌다.

에이 시발 멀쩡한 새끼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 정도면 좆밥으로서 할 건 다 한 거야.

마음 놓고 뒤로 쓰러지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드럽게 안았다.

"에이든?"

고개를 돌리자 눈물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루나잖아.

너가 왜 여기 있어.

우습게도 루나의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됐다.

이 미친년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에이든에이든에이든!"

루나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끼요옷­ 눈이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처녀가 또 등장하다니!! 오늘은 신의 선택을 받은 날이 틀림없습니다!"

발작하듯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쾅­

"닥쳐 이 새끼야."

그 뒤로 비키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

루나가 나를 너무 세게 끌어안아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응응응 에이든"

루나가 나를 보며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루나의 눈빛은 내게서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내 상태가 안 좋아 보이나?

물론 지금도 온몸이 타는 듯한 통증이 계속 느껴졌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기운을 무리하게 사용해서 그런 거라네.'

왜 시발 나만 아파 저 새끼들은 멀쩡하잖아.

'큼큼 그거야 자네가... 크흠... 조옷...'

닥쳐 이 새끼야.

"끼요오옷!­"

자꾸만 들리는 목소리가 거슬렸다.

"루나. 부탁 하나만 할게."

말할 때마다 따끔거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 개새끼 넌 이제 뒤졌다.

"에이든은 내게 부탁할 필요 없어. 그것이 무엇이든 에이든은..."

루나가 눈물이 잔뜩 흐르는 얼굴로 밝게 웃었다.

"내게 말만 하면 돼. 난 에이든의 것이니까."

루나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니가 왜 내꺼야.

뭐 주면 거절은 안 하지만.

여하튼 시발.

쾅­

"끼욧 끼욧!!"

거슬리는 녀석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저 개새끼 좀 조용히 시켜봐. 시끄러워."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웠다.

"응응응. 에이든은 쉬고 있어."

금방 끝낼 게­

약간 화가 난 듯한 루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눈이 감겼다.

개새끼 넌 이제 우리 미친년한테 뒤졌다.

낄낄.

미친년 화이팅!

콰아아아앙!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에 만족하며 겨우 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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