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62화 (62/233)

〈 62화 〉 추리를 잘하는 키아나.

* * *

사제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안 좋아 보여서 걱정됐다.

나에게 수녀님을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하는 사제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 해 보였다.

그런 사제의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 습격 때 사제의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내가 사제를 지켜줬어야 했는데.

그 괴물에 붙잡힌 기사의 목숨이 위험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갔었다.

마지막 폭발 때도 사제를 지켰어야 했지만, 바로 옆에 기절해서 쓰러져있는 기사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내가 지키지 않으면 이 기사들은 죽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폭발에 맞서 검을 뽑아 드는 사제의 모습에 사제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도 있었다.

다행히도 폭발의 연기가 사라지고 드러난 루나 씨에게 안긴 사제의 모습은 군데군데 타기는 했지만 괜찮아 보였다.

기력 탈진 증상이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기력 탈진은 시간만 지나면 금방 괜찮아지니까.

그 모습에 나는 바보 같이 안심했다.

하지만 바보 같을 정도로 따뜻한 사제는 우리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었던 걸까.

오늘 본 사제의 모습은 거의 죽기 직전의 사람 같았다.

자꾸만 다문 입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사저로서 사제부터 챙겼어야 했는데.

조급한 마음에 거의 뛰듯이 성당에 도착하여 안드레아 수녀님을 찾았다.

저번 습격의 여파 때문인지 꽤 많은 수의 환자가 성당 주변에 있었다.

안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니.

아마 폭발 사건 때보다 루나 씨와 그 괴물이 격돌하는 중에 일어난 여파때문에 발생한 피해겠지.

혹여 사제는 입원실에서 이 모습을 보고 다 낫지 않은 몸으로 성당을 나선 거 아닐까.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사제라면 그랬겠지 당연히.

환자들 사이에서 안드레아 수녀님은 피곤한 표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 부탁하기 미안했지만, 사제와 관련된 일이었다.

"저 안드레아 수녀님."

내 부름에 안드레아 수녀님이 피곤한 얼굴로 돌아봤다.

그러다 나를 확인한 안드레아 수녀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예. 키아나 님. 무슨 일이신가요?"

차가운 말투에 절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 제 사제인 에이든과 관련되서 부탁할 일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드레아 수녀님이 벌떡 일어났다.

"끄윽... 수녀님?"

한창 안드레아 수녀님에게 치료받던 환자가 갑작스럽게 멈춘 치료에 입에서 피를 토했다.

"다른 분이 치료해 줄 거에요. 저는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합니다."

그런 환자를 안드레아 수녀님이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하시던 치료 마치고 가셔도 됩니다."

위급해 보이는 환자의 모습에 다급하게 덧붙였다.

"항상 에이든 님이 최우선입니다."

안드레아 수녀님이 눈을 찌푸리면서 화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 시선이 마치 폭발 사건 때 사제를 지키지 못한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다.

"가시죠."

안드레아 수녀님이 뒤에서 고통을 부르짖는 환자를 뒤로한 채 내게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차가워 보여서 한 번 더 말리려던 나는 말을 삼켰다.

피 토하는 환자의 모습에 다른 수녀가 황급하게 뛰어와서 치료를 이어갔다.

"사제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서 이렇게 왔습니다. 사제가 안드레아 수녀님을 모셔와 달라고 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급하게 걷는 안드레아 수녀님에게 말했다.

"네. 에이든 님이 저를 필요로 하신다니. 빨리 가죠."

안드레아 수녀님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성당에서 기숙사까지 이렇게 멀었었나.

차가운 안드레아 수녀님의 분위기 때문에 기숙사가 더 멀게만 느껴졌다.

"...이번 사건 때 에이든 님과 같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안드레아 수녀님이 차갑게 말했다.

"예. 같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에이든 님의 사저라고 들었습니다만."

"예. 같은 스승님 밑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안드레아 수녀님의 목소리에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근데. 당신의 사제인 에이든 님은 저렇게나 다쳐서 왔는데... 당신은 아무 상처조차 없군요."

안드레아 수녀님이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그 눈빛에는 수녀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내 신념에 따라 나는 사제가 아니라 기절해 있는 기사를 지킨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안드레아 수녀님의 말이 맞았다.

결국 나는 사제인 에이든을 지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에이든이 다친 것은 내 잘못이 맞았다.

안드레아 수녀님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 아닙니다. 에이든 님과 관련된 일이라 제가 말이 너무 거칠게 나왔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에 한결 누그러진 안드레아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경우에는... 에이든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세요."

안드레아 수녀님의 목소리에서 말을 고르는 듯한 신중함이 느껴졌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귀중한 분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생명에 경중이 있다니.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물론 사제는 내게 소중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생명보다 귀중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 의문을 담은 눈빛을 느꼈는지, 안드레아 수녀님이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에이든 님은 이미 큰 희생을 치르고 여기 오신 분이에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항상 에이든 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세요."

안드레아 수녀님의 말을 끝으로 기숙사에 도착했다.

"일단 여기 계시죠. 제가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남자 기숙사에 수녀가 들어가는 것은 모양이 이상했다.

분명 내가 들어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수녀인 안드레아보다는 내가 나을 것이다.

안드레아 수녀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기숙사의 정문으로 들어가 사제의 방으로 향했다.

사제는 이미 큰 희생을 치르고 여기 왔다니.

안드레아 수녀님의 말은 무슨 뜻일까.

생각할수록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제 방 앞에 도착해서 문을 두들겼다.

몇 번이나 두들겼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설마 쓰러졌나?

다급하게 문을 열자 바닥에 눈을 감고 정자세로 앉아있는 사제가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경건해 보여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사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잠깐이지만 사제의 눈이 빛난 것 같았다.

마주친 사제의 눈이 나를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 안의 공기가 물을 잔뜩 머금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사제의 존재감이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존재감은 스승님의 존재감보다도 더 무거웠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드래곤을 마주한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압도적인 존재감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 그 암컷이군."

사제의 입에서 처음 듣는 걸쭉한 목소리가 나왔다.

사제의 음성을 듣자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아랫배가 뜨겁다를 넘어서 녹아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난생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역시 내가 본 그 어느 암컷보다 아름답군."

사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마치 먹잇감을 보는 듯한 짐승의 눈빛으로 천천히.

위험하다.

내 본능이 끊임없이 내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사제가 짐승처럼 웃으며 내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위험해.

하지만 답답한 내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움직여 제발.

움직이라고.

"소용없을 것이다. 암컷이라면 내 앞에서 감히 내 허락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마침내 사제가 바로 앞에 멈췄다.

무거운 눈동자를 움직여 사제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을 쳐다봤다.

그것과 눈을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것의 눈동자는 무저갱처럼 깊어서 헤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오직 표면에 드러난 패도적인 기운만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죽게 될 것을.

왜 나는 헛된 꿈을 꾸어 내 동생에게 짐을 넘겨줬나.

그냥 어머니 말씀처럼 곱게 시집이나 갈 것 그랬나.

짐을 동생에게 넘기고 도망친 지난 삶이 후회됐다.

으득­

어느새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끊임없이 검을 잡은 결과였다.

검 손잡이의 차가운 느낌에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압도적인 기운에 나도 모르게 포기해버렸다.

역시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문득 폭발 앞에서 검을 뽑아 휘두르던 사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않던 사제의 모습.

사제에게 모범이 돼야 할 내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사제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란 사저였다.

내가 죽더라도 저 사제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에게서 사제는 구해야지.

움직이지 않던 몸이 마음을 굳게 먹자 조금이나마 움직였다.

"암컷이 내 앞에서 움직이다니 대단하군. 물론 아직 애송이지만 말이야."

그것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몸이 무거워졌다.

그것이 천천히 내게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것의 손길이 내 바로 앞까지 왔을 때, 눈을 감았다.

끝인가. 못나고 나약한 사저라 미안해 사제.

"나도 보상은 받아야 하니까 말이야."

우악스럽고 거친 손길이 내 가슴을 주물렀다.

그 거친 손길 한 번에 몸이 열불이라도 난 듯 뜨거워졌다.

순간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눈을 뜨니 그것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만큼 가슴도 최상품이군. 하하하. 충분한 보상이야."

그 말을 끝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침내 사제가 눈을 깜박이고.

다시 사제 특유의 자유로움이 담긴 눈빛으로 돌아왔다.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쉬어지지 않던 숨이 쉬어졌다.

살았어­

주물­

사제의 손이 부드럽게 내 가슴을 한 번 더 주물렀다.

아까의 거친 손길과 다르게 부드러우면서 조심스러운 손길은 사제가 틀림없었다.

다시 이해되지 않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지금 사제가 내 가슴을 주무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얼굴이 다시 뜨거워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맞아 사제도 남자였지.

"그 사제... 왜 갑자기 내 가슴을... 물론 사제가 싫다는 게 아니라... 이건 너무 갑자기라서..."

떨리는 음성을 애써 힘주어서 말했다.

그래도 볼품없이 떨리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에엑?!"

사제의 턱이 빠질 듯이 벌어지고.

사제가 갑자기 쿵­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세게 땅에 박았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사제의 머리에 혹이라도 날까 걱정될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사제가 절절한 음성으로 사과했다.

괜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런 사제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사제. 별것도 아닌데 미안해할 거 없어."

사제가 엄청나게 미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마치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 모습 같아서 귀여웠다.

"그리고 사제도 남자니까."

맞아 남자니까­

나도 모르게 되새겼다.

아직 가슴에 사제의 온기가 남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사제는 한참이나 내게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했지만, 사제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사과했다.

"그런데 사제 몸은 괜찮아?"

마침내 사제가 좀 진정이 된 후에 물었다.

"예.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진 것 같아요."

사제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사제의 상태가 전보다 괜찮아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같이 기숙사 밖으로 나가 안드레아 수녀님과 만났다.

"에이든 님! 제가 이번에는 도망치면 안 된다고 했죠! 아무리 에이든 님이라도 인간의 몸에 그런 존재가 담겨 있으면 위험해요!"

안드레아 수녀님이 영문 모를 소리를 사제에게 속삭였다.

물론 뒷말은 사제에게 귓속말로 했지만, 내게는 다 들렸다.

인간의 몸에 그런 존재가 담겨있으면 위험하다고­?

나는 안드레아 수녀님의 마지막 말을 되씹었다.

사제가 그런 안드레아 수녀님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순간 흠칫 놀란 사제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한참이나 수녀님과 입씨름을 한 사제가 치료를 더 받고 스승님에게 향했다.

엄청나게 가기 싫어하는 사제였지만, 나는 스승님의 부름에 가지 않았을 경우 발생하는 일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애써 달래서 보냈다.

사제를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운동장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방금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사제에게서 보였던 아득한 수준의 그것.

사제에게는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게 확실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사제를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분명 단순한 기운 탈진 증상임에도 죽을 것처럼 좋지 않았던 사제의 상태까지.

사제는 지금 위험한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소설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어느 한 마을에 나타난 규격 외의 괴물.

그 괴물을 처리하지 못해서 결국 자신들의 목숨을 대가로 괴물을 자신의 아이에게 봉인한 소설.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괴물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

그 괴물의 힘으로 강해지는 소년의 이야기까지.

사제는 내게 부모 이야기를 한 적 없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내게 자신의 메론빵을 다 줄 만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제였지만, 용사 아카데미에서는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것처럼 사제를 깎아내리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또한 아까 내가 마주쳤던 사제의 몸에 들어가 있는 소름 돋을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그것까지.

심지어 사제는 그 내용을 기억조차 못하는 듯 했다.

'인간의 몸에 그런 존재가 담겨 있으면...'

조용하게 읊조리던 안드레아 수녀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심지어 검에 재능이 전혀 없는 사제지만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괴물이 다녀간 뒤에 강해진 사제...

소름 돋을 정도로 소설의 내용과 딱딱 맞아떨어졌다.

사제는 혼자서 그것과 끊임없이 고통스럽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유롭게 웃던 사제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 이면에는 남모르는 고통이 담겨져 있었으리라.

나도 모르게 그런 사제가 안타까워 눈물이 나왔다.

그런 힘든 싸움을 남에게 말 못 하고 혼자서 견뎌냈을 사제가 대견하고 불쌍해서.

고작 가족의 지지를 못 받았다고 힘들어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한참동안을 눈물 흘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언니! 소설 좀 그만 읽으라니까!'

매번 자신이 추리할 때면 자신을 구박하던 동생이 생각났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실제로 도움 될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

키아나는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소설의 내용을 되짚어갔다.

그 소설의 히로인이 어떤 성격이었지?

아니 그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었지.

사제가 만진 가슴 부근이 따뜻했다.

키아나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제는 내가 꼭 지켜줄게­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

"아무리 에이든 님이라도 인간의 몸에 그런 존재가 담겨 있으면 위험해요!"

안드레아가 슬픈 눈으로 내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제법 커서 깜짝 놀랐다.

얘는 또 뭔 개 좆같은 소리야 시발.

안드레아의 피곤한 얼굴을 보니 너무 성실하게 일해서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 같았다.

심지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전보다 더 극진해졌다.

안드레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미친 노망난 노인네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늦으면 훈련이 고통스러워질 게 분명하니까.

자꾸 귀찮게 들러붙는 안드레아를 억지로 떼어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애써 움직여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부른 곳으로 향했다.

다행인 점은 야만인이 일 처리를 똑바로 했는지, 온몸에 힘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큰 기운이 안에서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배웠던 기운 활용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앉아있는 공터로 갔다.

왜 개인 훈련장을 놔두고 이런 산으로 부르는 거야.

탁­

괜히 모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왔구나. 못나고 나약한 제자야­"

나를 발견한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불길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같이 순수해 보여서 더 무서웠다.

저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려고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부른 거야 시발.

"그럼 키아나는 가보거라."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말에 아까부터 심각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보고 있던 키아나가 인사하고 내려갔다.

분명해 키아나는 아까 내가 가슴 만진 거를 담아두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근데 그 가슴의 감촉이 매우 훌륭해서 나도 담아두고 있었다.

비키처럼 엄청난 크기는 아니지만, 적당히 큰 사이즈에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우면서...

"제자야­"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말에 생각이 끊겼다.

"네 스승님!"

나는 냉큼 달려가 미친 노망난 노인네 앞에 무릎 꿇었다.

"기운이 제법 정순해졌구나. 많아지기도 했고 말이야­"

미친 노인네가 짐짓 점잖은 체를 하며 말했다.

"예. 다 고명하신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내 입에서 거짓말이 막힘없이 나왔다.

"고럼고럼. 그럼 이제 훈련 난이도를 좀 더 올려도 되겠어. 끌끌­"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불길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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