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사춘기가 뒤늦게 온 수녀.
* * *
이미 미친 노인네의 훈련 난이도는 극악인데, 거기서 난이도를 어떻게 더 올린다는 거야.
"이런 못난 제자 때문에 괜히 스승님 손만 더럽혀질까봐 걱정이 됩니다."
훈련 하기 싫다고 시발.
물론 내 얼굴은 웃고 있었다.
"끌끌끌 걱정하지 말거라 제자야. 그럼 바로 시작하자꾸나."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 걸음이 마치 노인네가 건강을 위해 산책하는 모양새였지만, 나는 속지 않았다.
시발.
이를 악물며 챙겨온 아카데미 검을 뽑았다.
뽑은 아카데미 검의 잔뜩 상한 날이 보였다.
관리를 너무 안 하기는 했네.
기운을 하단에서부터 끌어올리면서 온몸으로 돌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발버둥 쳐야 미친 노인네의 훈련 강도를 줄일 수 있다.
미친 노인네가 두 번째 발걸음을 띄었을 때, 발 쪽으로 기운을 터뜨리면서 노인네를 향해 질주했다.
마치 내 몸이 선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미친 노인네에게 접근했다.
그 작은 구슬 하나 먹은 거로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나다니.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주름진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을 보며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이거 시발 진짜 저 미친 노인네 배때지에 칼 쑤실 수 있는 거 아니야?
미친 노인네까지 세 걸음 남았을 때, 왼발에 힘을 주어 내디디면서 무게 중심을 돌렸다.
기운이 내 의지에 맞추어서 빠른 속도로 무게 중심을 이동 시켰다.
그리고 마치 피가 순환되듯 자연스럽게 팔 쪽으로 이동한 기운을 따라서 부드럽게 팔이 움직였다.
칙
속도에 못 이겨 몸이 앞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양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저 미친 노망난 노인네를 이쁘게 반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의를 담아.
베어냈다.
이거는 완벽해.
내가 했지만 완벽한 베기였다.
제국 제일검을 반으로 쪼갰으니 이제 내가 제국 제일검인가.
하는 고민을 하며 마침내 내 검이 미친 노인네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깡!
미친 노인네의 손에는 어느새 허름한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 허름한 단검에 내 검이 부딪히는 순간 부드럽게 검이 막혔다.
마치 애초에 내 검에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던 것처럼 부드럽게.
애미 시발 이게 뭐야.
"호오 제자야. 생각보다도 더 강해졌구나. 분명히 재능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놈이었는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야."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저 재능충이라니까요."
허름한 단검에 착 붙어있는 내 검을 떼고 싶었지만, 마치 내 검에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그래. 아무렴 좋지. 재미 삼아 받았지만. 정말 재밌구나. 재밌어."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주절주절 뭔가를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뭐 재밌으니까 말이야."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끙
아직도 내 검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꾸나. 끌끌끌"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줄기의 선이 내게 다가왔다.
죽는다.
본능적으로 검을 놓고 뒤로 뛰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내 몸에 대각선으로 선이 그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끌끌끌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미친 노인네가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사람이 언제 가장 집중력이 좋아지는지 아느냐."
미친 노인네가 뭐라 중얼거리면서 다가왔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상처 부위로부터 피가 쏟아져 나오면서 정신이 살짝 멀어졌다가 돌아왔다.
이럴 때는
생각이 들자마자 기운을 상처 부위로 집중시켰다.
쏟아져 나오던 피가 천천히 멎었다.
물론 아직 상처도 그대로고 쏟아진 피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일단 지혈은 했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밟고 있을 때지 끌끌 지금도 제자의 움직임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느냐."
미친 노인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이다.
저 미친 노망난 노인네는 나를 죽일 셈이다.
지옥 훈련이라는 게 시발 진짜 죽인 다음 지옥으로 보내는 것을 말하는 거였어?
"그러니 정신 놓지 말고 그 경계를 잘 밟고 있거라. 혹시라도 죽으면 귀찮아지니까."
미친 노망난 노인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을 들어서 앞쪽을 막았다.
무언가를 느끼고 막은 것이 아니라 본능을 따라 팔이 움직였다.
쾅
어느새 내 앞으로 이동한 미친 노인네가 휘두르는 단검을 막았다.
그 충격으로 뒤로 튕겨졌다.
다리 쪽으로 기운을 보내서 날아가는 속도를 늦췄다.
막아!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생각하지도 않고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렸다.
쾅
쨍!
미친 노망난 노인네 새끼 시발.
이번에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땅을 뒹굴었다.
퉤
다시 자세를 잡고 일어나 입에 잔뜩 들어간 흙을 뱉었다.
미친 노인네가 이번에는 달려들지 않고 제 자리에서 뒷짐 지고 서 있었다.
그 모양새가 고고해 보여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학자라고 생각할만한 모습이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시발 내가 무슨 지 제자 하고 싶다고 했나.
지 좆대로 제자 시켜놓고 이제는 죽이려고 하네.
진짜 좆같은 노인네.
손을 보니 아카데미 검은 마지막 충격에 반 토막 난 상태였다.
3년 동안 정들었던 친군데.
잘 가라 시발.
아카데미 검을 던지고 루나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조심해라 소년. 저 노인은 소년을 정말 죽일 생각이야.'
나도 알아.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시발.
루나 검이 매끄럽게 검집에서 뽑혔다.
검집에서 나온 루나 검이 햇빛을 받아 빛났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검신이었다.
그 위에 적힌 낙서들만 빼면 말이야.
"수준에 맞지 않게 쓸데없이 좋은 검이군. 근데 루나?."
미친 노인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루나 검을 손에 쥐자 기운이 전보다 훨씬 안정되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 몸의 효능이지.'
어차피 내가 달려들지 않으면 미친 노인네가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다시 기운을 순환시키며 정신을 검에 집중시켰다.
자꾸만 베인 곳이 불에 덴 것처럼 아팠지만 애써 무시했다.
기운을 터뜨리며 미친 노인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미친 노인네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좆같은 노인네 시발.
피가 다시 튀며 고통이 나를 짓누른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삼킨 다음 검을 휘두른다.
어쩔 수 없었다.
내 공격이 멈추면 죽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 내 공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매끄럽게 흘려 넘기며 노인네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렇지! 그거야! 역시 제자 같이 재능 없는 놈들은 이런 방식이 특효라니까! 끄할할할!"
좆같은 노인네 시발.
미친 노인네가 갑자기 왜 더 지랄 같아진 지는 모르겠다.
물론 저 미친 노인네가 진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노인네가 내게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나는 죽음을 느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더 이상 힘이 남지 않았다.
쓰러지면 노인네한테 더 처맞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쓰러지고 싶지 않았지만 서 있을 힘이 남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땅에 쓰러졌다.
"쯧 이것밖에 못 버틴다니. 이것 좀 치료해주게나."
미친 노인네가 누군가한테 말했다.
타닥타닥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부드럽게 나를 만졌다.
안드레아?
궁금증에 눈을 뜨니 보라색 머리의 미녀가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인상은 안드레아와 비슷했지만, 얼굴과 머리색이 달랐다.
안드레아는 하늘색 생머리지만 이 수녀는 보라색 단발 머리였다.
안드레아가 강아지상의 미인이라면 이 미녀는 고양이상의 미녀였다.
근데 원래 수녀들은 다 미인인가?
안드레아의 치유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안드레아의 치유가 안쪽에서부터 채워 나가면서 치료한다는 느낌이라면.
이 수녀의 치유는 겉면에서부터 닦아 나가는 느낌이 드는 치유였다.
치유 속도는 안드레아보다 느린 것 같았다.
내 눈을 피하지 않던 수녀가 눈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미인이라 나도 모르게,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나?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몸의 상처들이 다 멀쩡해졌다.
흘린 피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그대로였지만.
"감사합니다."
언제나 감사 인사에는 돈이 안 든다.
나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지금 움직이시면..."
귀여운 목소리가 수녀의 입에서 나왔다.
물론 나도 쓰러져 있고 싶지.
하지만 쓰러져있으면 미친 노인네의 손이 더 매워질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훈련 강도를 낮추려면 있는 힘을 다해서 발악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미친 노인네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좆같은 노인네
"괜찮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떨어져 계십쇼."
수녀에게 습관적으로 웃어 주고 다시 미친 노인네에게 향했다.
퉤
좆같은 노인네
나를 따라서 미친 노인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포기하면 되지 않나?'
포기한다고 놔줄 노인네도 아니고.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포기하기는 죽어도 싫네.
'그렇군.'
검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다시 한번 기운을 터뜨렸다.
한 번 포기하면 두 번째는 더 쉬우니까 말이야.
닥쳐.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포기 안 할 거야.
'왜지?'
그냥 좆같아서.
포기는 원래 내 전문이었는데, 왜 갑자기 포기하는 게 좆같지.
원래 포기는 좆같은 거니까.
그렇지.
다시 한번 기운을 터뜨리며 미친 노인네에게 뛰어들었다.
물론 결과는 형편없었지만.
***
미친 노인네의 단검이 내 왼쪽 어깨를 찌를 때, 고통에 이를 악물며 왼쪽 무릎을 차올렸다.
미친 노인네가 피식 웃으며 오른손으로 내 무릎을 눌렀다.
으득
아 시발 내 무릎 뼈 부러진 것 같아.
미친 노인네가 단검을 뽑으며 나를 발로 걷어찼다.
나는 볼품없이 굴러서 보라 머리 수녀 앞에 도착했다.
수녀가 질린 표정으로 익숙하게 피투성이인 나를 치료했다.
지금이 몇 번째지.
땅은 이미 내 피로 흥건했다.
내 피가 이렇게 많았나.
치유하면 피도 재생이 되나?
어느새 보라색 머리 수녀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여기서 더 움직이면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어요."
수녀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목소리로 나를 말렸다.
그런 수녀의 만류를 무시하고 일어났다.
퉤
침이 붉었다.
이 정도면 그냥 피를 뱉은 건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뒤에서 수녀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고 있지.
이런 열정적인 모습 나와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야.
'좆같아서?'
아아 그랬지.
"좆같아서요. 시발. 저 미친 노망난 노인네 배때지에 이쁘게 흉터라도 그려줘야죠."
퉤 다시 한번 침이 붉었다.
확실해 이건 침이 아니라 피야.
그렇죠?
수녀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수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뭐 상관은 없지만.
다시 한번 미친 노인네를 향해서 뛰었다.
"끄할할할! 정말 마음에 드는 제자야!"
미친 노인네의 몸에도 어느새 피가 흥건했다.
물론 저것도 다 내 피지만 말이야.
내 아까운 피 시발.
좆같지만 미친 노인네의 말이 사실인 듯, 죽음의 위기 속에서 내 검술을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다.
챙
미친 노인네의 단검을 드디어 쳐냈다.
짜릿한 희열이 온몸을 강타했다.
몸의 모든 부위에서 지르는 비명을 무시하고 미친 노인네의 배때지에 검을 휘둘렀다.
그런 내 검을 미친 노인네가 손으로 쉽게 잡았다.
이미 내 검에는 기운 한 점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군."
미친 노인네가 나를 손가락으로 툭 하고 밀었다.
그 손길 한 번에 내 몸은 뒤로 무너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밀리면서도 악착같이 왼손을 휘둘렀다.
왼손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든 것 같은데.
땅에 쓰러져서 올려다본 하늘은 어느새 어두컴컴했다.
분명 아침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시발 내 황금 같은 하루.
"끄할할할!"
미친 노인네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멀어졌다.
좆같은 노인네 시발.
***
제국 제일검님이 내게 훈련 도우미를 부탁하셨다.
제자가 훈련하다가 다치면 치유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훈련이길래 치유를 위해 수녀까지 필요한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제국 제일검님의 부탁이었다.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이건 기회였다.
제국 제일검님과 좋은 관계를 다질 수 있다니.
상급 용사 파티와의 선약이 있었지만, 다음으로 밀어버렸다.
반발이 있을 테지만 상관없었다.
만약 상급 용사 파티에서 강퇴당해도 다른 파티를 찾으면 된다.
자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찾으면 상급 용사 파티는 꽤 있었다.
하지만 제국 제일검은 단 한 명.
비교할 가치도 없었다.
제국 제일검님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나중에 성녀가 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녀가 되는 것.
스칼렛은 자신의 목표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자신은 성녀가 되어 최고가 될 것이다.
어느 날 신탁이 내려와 내게 말했다.
성녀가 되라고
그 이후부터 신성력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신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급 용사 파티에도 합류했다.
이대로라면 성녀가 될 수 있을 거야.
다만 힘들었던 건 신님이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연애도 하지 말라
섹스도 하지 말라
외박도 하지 말라
술도 마시지 말라
결국 성인이 된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은 처녀였다.
예전에 엄격했던 잣대와는 다르게 요즘은 수녀들의 성생활에도 너그러웠다.
심지어 요즘은 빗치 수녀들도 있다고 들었다.
자신의 동기 중에서 아직까지 처녀인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수녀들끼리 남자 이야기를 할 때면 처녀인 자신은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승부욕이 강한 스칼렛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마치 매 순간 신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에 점점 더 답답해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하지 말라는 게 뭐 그리 많은 건지.
최근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내게 강조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남자인데 신님은 내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신님이 이렇게 발작하듯이 경고하는 거지.
그리고 오늘 제국 제일검님의 부탁때문에 참가한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평범한 외모지만 끝이 살짝 올라간 눈꼬리 때문에 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운동을 열심히 한 듯 옷 위로 드러난 몸이 탄탄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스칼렛! 저 남자를 조심해. 최근에 재수 없는 땅개의 수녀인 안드레아라는 아이가 저 남자에 푹 빠져서 자신의 신마저 버렸어! 조심해!
어느 때처럼 신탁이 내려왔다.
안드레아?
설마 내가 아는 그 안드레아?
매번 자신의 앞에 있었던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항상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단순히 재능 하나로 자신의 앞에 있었다.
승부욕이 강한 스칼렛에게 안드레아는 큰 걸림돌이자 스트레스였다.
그녀를 이기기 위해 스칼렛은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단 한 번도 그녀를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졸업하는 순간까지 스칼렛은 안드레아의 아래였다.
안드레아는 상급 용사 파티의 제안을 거절하고 용사 아카데미로 갔다.
참으로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용사 아카데미에 있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었다.
그 이후 스칼렛은 안드레아가 거절한 상급 용사 파티에 합류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그 노력 덕분에 이제는 수도에서 이름이 꽤 알려졌다.
아마 성녀 후보 중에서 자신이 제일 앞서 있으리라.
안드레아! 안드레아! 안드레아!
그 이름은 스칼렛에게 너무 지긋지긋했다.
그런 안드레아가 고작 남자 하나에 푹 빠져서 자신의 신마저 버리다니.
검을 뽑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저 남자에게 어떤 매력이 있길래.
남자는 꽤 괜찮은 움직임으로 제국 제일검님과 부딪혔다.
물론 같이 다녔던 상급 용사에 비하면 형편없었지만, 학생의 실력은 이미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학생치고는 실력이 뛰어났다.
스칼렛! 저 남자를 조심해 알았지?!
자꾸 재촉하는 신님의 음성에 울컥 짜증이 났다.
무슨 엄마도 아니고 뭐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아 진짜.
참았던 반항심이 불쑥 올라왔다.
남자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것 좀 치료해주게나."
제국 제일검님의 음성이 정신을 깨웠다.
달려가서 남자의 상처를 치유했다.
가까이에서 본 남자의 얼굴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치유가 끝나자마자 남자는 다시 뛰쳐나갔다.
남자는 쓰러지고 피가 튀어도 다시 일어나서 덤볐다.
도대체 저 남성은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환자가 걱정되어 몇 번이나 말렸지만 남자는 절대 듣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남자가 내 앞에 쓰러졌다.
지금 일어나면 치유해도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었다.
일어나는 남자를 붙잡았다.
그냥 궁금했다.
지금까지 저렇게 눈 부시도록 불타올랐던 사람이 없어서.
그냥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남자는 내 질문에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좆 같아서요. 시발. 저 미친 노망난 노인네 배때지에 이쁘게 흉터라도 그려줘야죠."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남자가 피식 웃고는 다시 돌아섰다.
그 모습은 불에 뛰어드는 나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걸어가는 남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더 남자다워진 느낌.
남자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수컷.
그래 남자에게서 수컷의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몸이 뜨거워졌다.
좆 같아서요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칼렛! 내가 저 남자랑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않았느냐! 왜 갑자기!
남자에게 말을 걸자마자 들리는 시끄러운 신의 음성에 꾹꾹 눌러뒀던 짜증이 터져버렸다.
스칼!
신탁을 꺼버렸다.
좆 같아서요
남자가 말한 그 단어가 정답이었다.
그래 좆 같았다.
자꾸 사소한 것마다 제재하는 신도 좆 같고.
늘 노력하지도 않고 항상 내 앞에 있던 안드레아도 좆 같고.
다 좆 같았다.
갑자기 그 둘의 공통점이 생각났다.
저 남자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신.
저 남자에게 푹 빠져 신까지 버린 안드레아.
스칼렛의 승부욕이 발동했다.
만약 내가 저 남자를 갖게 된다면...?
스칼렛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