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또 너냐 드숀!
* * *
"아가사 수녀님. 잠깐만 저랑 같이 가주시겠어요?"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부르셨다.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은 아가사가 제일 흠모하는 인물이었다.
언제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시며 신성력은 일반 성당에 있기에 너무 아까울 정도로 높으셨다.
심지어 온화하며 단아하고 청순한 외모까지.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은 아가사가 닮고 싶은 인물 중 1위였다.
안드레아 수석 수녀는 아가사 뿐만 아니라 같은 성당에 있는 다른 수녀에게도 제일 인기 있는 수녀였다.
2위는 최근에 오신 요염한 스칼렛 수녀님.
스칼렛 수녀님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었다.
그 빨간 입술에...
아가사는 고개를 흔들어 불경한 생각을 멈췄다.
죄송합니다 신님!
근데 그런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이 누군가를 따로 불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아가사는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의 부름에 기억을 되짚었다.
혹시 어제 저녁 기도를 빼먹은 것이 걸렸나?
하지만 어제는 아가사가 청소 담당인 날이라 기도를 올릴 시간도 없이 바빴다.
사실 아가사 말고도 저녁 기도를 빼먹는 수녀들은 많았다.
불안한 마음을 잔뜩 안고 아가사는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을 따라갔다.
근데 어디까지 가시는 거지?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은 성당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깊은 곳 끝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여기는 성당에서 창고로 쓰는 방이었는데 쥐가 나왔다는 소문이 있어서 수녀들이 기피하는 곳이었다.
거기서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이 바닥에 있는 나무판자를 치우셨다.
그러자 바닥에 쇠로 된 둥근 문이 보였다.
우리 성당에 이런 지하실이 있었나?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이 익숙하게 지하실 문을 연 다음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거 따라 내려가야 되는 거야?
아가사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왜 성당에 이런 지하실이 있는 거지.
"아가사?"
아래쪽에서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의 단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아가사의 마음이 놓였다.
그래.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이랑 가는 건데 별일 있겠어.
아가사는 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이렇게 깊어?
한참 동안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손이 뻐근할 때쯤 바닥에 닿았다.
주위를 둘러본 아가사는 주변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옛 이교도들을 고문할 때 쓰던 방인듯 온갖 고문 도구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근데 고문 도구들이 최근에도 사용한 것처럼 깨끗하게 닦여 있는 모습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곳곳에 붙어있는 촛불들이 살짝씩 흔들렸다.
쾅
조용한 공간에 지하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뭔가 확실히 잘못됐다.
"아...안드레아 수석 수녀님?! 이곳은 무슨...?!"
아가사 수녀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 겁먹지 않으셔도 돼요. 아가사 수녀님."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이 빙그레 웃으며 흉한 도구를 만지작거렸다.
촛불에 비친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의 얼굴이 붉어 보였다.
뒷걸음질 치던 아가사가 뭔가에 부딪혔다.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 아가사의 눈에 최근에 성당으로 온 스칼렛 수녀님이 보였다.
스칼렛 수녀님이 전혀 수녀처럼 보이지 않는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아가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스칼렛 수녀님! 안드레아 수녀님이 조금 이상해요."
공포에 질려있는 아가사는 왜 이 공간에 스칼렛 수녀가 있는지 생각할 수 없었다.
아가사는 마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스칼렛에게 매달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사 수녀님."
스칼렛 수녀가 부드럽게 아가사를 껴안았다.
"에?! 이잇?!"
타인과의 접촉에 익숙하지 않은 이 순진한 아가사 수녀는 스칼렛 수녀의 포옹에 화들짝 놀라서 굳어 버렸다.
"아가사 수녀님에게 올바른 신을 알려드리려고 하는 거랍니다."
아가사의 귀에 대고 스칼렛 수녀가 속삭였다.
아가사는 달콤한 스칼렛 수녀님의 목소리에 귀가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꽉 잡아요. 스칼렛"
이유모를 열기가 잔뜩 담긴 안드레아 수석 수녀의 목소리와 동시에 둔탁한 통증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쿵
도대체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과 스칼렛 수녀님이 왜?
아가사는 누군가 자신의 옷을 벗기고 어딘가에 묶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속에서도 순진한 아가사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나체가 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럼 에이든 님을 위한 포교 활동을 시작해 볼까요?"
한껏 들뜬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의 목소리를 끝으로 아가사의 정신이 멀어졌다.
***
문에서 보낸 신호에 루나는 곧바로 에이든의 방으로 이동했다.
루나의 머릿속에는 왜? 라는 의문이 가득 찼다.
왜 지금 여우가 에이든의 방에 있는 거지?
저번 회차의 여우는 마지막에 가서야 나타났었다.
부서져라
루나는 강한 염원을 담아 여우를 가리켰다.
여우가 있던 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마나가 움직였지만, 여우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검은 문은 멀쩡했지만, 주변의 벽과 바닥이 통째로 날아갔다.
갈 곳을 잃은 검은 문이 쿵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루나 멈춰"
뒤에서 에이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루나는 애써 못 들은척했다.
에이든의 말을 듣고 멈추기에 여우는 너무 위험했다.
전 회차에 봤던 익숙한 흰 도복 차림으로 변한 여우가 보였다.
여우의 뒤로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는 꼬리가 다섯 개
저번 회차로 비추어 봤을 때, 지금 자신의 수준이라면 여덟 개까지는 괜찮았다.
루나는 여우의 머리를 확인했다.
나부끼는 은발의 생머리.
은발의 생머리를 묶어주던 흰색 머리끈이 안 보였다.
그렇다는 건 여우가 아직 처녀교에 묶여있다는 것.
흰색 머리끈 없이 여우는 꼬리를 여덟 개까지 꺼내지 못할 터
만약 여우가 미쳐서 꼬리를 다 꺼내더라도 시간만 버티면 그들이 잡아갈 것이다.
승기는 이쪽에 있다.
루나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손을 움직였다.
잘라져라
루나는 양손으로 박수를 치며 마나를 움직였다.
루나의 박수 소리에 따라서 루나의 앞쪽으로 거미줄처럼 빗금이 퍼졌다.
그리고 그 빗금을 따라 건물의 바닥과 벽이 갈라졌다.
"대화도 하지 않고 대뜸 죽이려고 하다니 너무하네!"
여우의 뒤로 새로운 꼬리가 하나 생겼다.
웃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한 여우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귀찮은 도술.
저 도술 때문에 루나는 전 회차에서도 신수들과 싸우는 것이 귀찮았다.
찾아내
루나는 사라진 여우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마나를 원 모양으로 둥글고 넓게 퍼뜨렸다.
마나에 여우의 위치가 희미하게 걸렸다.
오른쪽으로 대각선 부근.
부서져라
루나는 여우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그쪽을 향해서 주먹을 쥐었다.
"흥"
여우의 붉은 눈이 마나의 약한 부분을 찾아냈다.
여우가 단검으로 자신의 주변을 덮은 마나의 한 부분을 갈라냈다.
베어진 부분이 마치 수면 위의 물결처럼 퍼져나가 주변을 뒤덮었던 마나가 흩어졌다.
저 귀찮은 붉은 눈.
원래는 그냥 압도적인 마나로 부수면 되는데, 회귀 전보다 마나가 적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우가 여섯 개의 꼬리를 흔들어서 연기를 피워낸 다음 연기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사라진 여우가 루나의 위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루나는 그런 여우를 쳐다보지 않고 마나를 둘렀다.
챙
방어용으로 두른 마나는 여우가 가를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았다.
여우의 단검과 루나의 마나가 부딪힌 부분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꽃이 튀자마자 여우가 다시 사라졌다.
귀찮아
루나는 이 주변 일대 전체를 무너뜨리고 싶었지만, 뒤에 있는 에이든이 문제였다.
에이든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루나의 최우선 목표였다.
루나는 손을 좌우로 흔들어서 공간을 좀 더 넓혔다.
옆방과의 벽이 허물어지고 복도와의 벽이 다 허물어졌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아카데미 측에서 마법 처리를 해두어서 기둥 하나만 남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공간이 넓어지자 마나를 운용하기가 좀 더 편해졌다.
루나는 마나를 거미줄처럼 뿌리는 것을 상상하며 마나를 움직였다.
마나는 늘 그렇듯 루나의 의지대로 움직여줬다.
눈을 감고 마나에 집중했다.
마나가 신호를 보내자마자 그곳을 마나로 짓눌렀다.
"하."
이번에는 여우가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듯 눌린 자리에 약간의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
루나는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마나를 뿌렸다.
이번에는 자신의 바로 앞
루나는 바로 자신의 마나를 방어용으로 견고히 세웠다.
이번에는 여우의 단검이 자신의 마나를 쉽게 베어냈다.
여우의 뒤에 있는 꼬리는 이제 일곱 개.
그 사이에 꼬리를 하나 더 꺼냈나
마나를 가른 단검이 루나의 바로 앞까지 왔을 때, 루나는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이거 완전 사기네?"
왼손 팔에 핏자국이 묻어있는 여우가 허공을 가른 자신의 단검을 허망하게 내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꿰뚫어라
루나는 여우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손가락을 뾰족하게 세워서 여우를 가리켰다.
여우의 꼬리에서 다시 희뿌연 연기가 치솟았다.
연기에 휩싸인 꼬리 중 하나가 루나의 마나를 막았다.
여우의 꼬리에 맞은 루나의 마나가 튕겨 나갔다.
튕겨나간 루나의 마나가 벽에 다시 큰 구멍을 만들었다.
일곱 개부터는 신수화
루나는 여우의 모습을 보며 전 회차의 기억을 떠올렸다.
좀 더 몰아붙여서 꼬리를 한 개만 더 꺼내게 만들면 자신의 승리다.
"나를 알고 있는 눈치네?"
여우가 자신의 꼬리를 확인하는 루나를 보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우의 꼬리가 살랑 살랑 부드럽게 흔들렸다.
"나머지도 꺼내는게 좋을걸"
루나는 자신이 두르고 있는 마나를 견고히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 마나를 덧씌웠다.
이 정도면 일곱 개로는 못 뚫어.
"어머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야?"
여우가 단검을 빙그르르 돌리며 활짝 웃었다.
웃는 여우의 얼굴은 아까보다 피곤해 보였다.
그런 여우를 보며 루나는 고민했다.
여우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좀 더 고차원의 마법이 필요해.
고차원의 마법은 지금 루나가 가진 마나로는 약간 아슬아슬했다.
아슬아슬하지만 할 수는 있어.
에이든에이든에이든
계산을 마친 루나가 자신만의 주문을 읊조렸다.
마나를 뚜렷한 형체로 구체화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지를 덧씌우고
날 부분에 마나를 다시 한번 씌워서 날카롭게 세웠다.
"죽어"
루나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나의 검을 의지로 베어냈다.
루나는 몸속에 있는 마나가 순식간에 빨려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나는 어차피 다시 채우면 돼.
많은 마나를 사용한 대가로 약간의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고차원 마법의 효과는 확실했다.
여우가 있는 공간이 크게 갈라지며 주변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갔다.
전처럼 움직이려던 여우는 마나가 무겁게 공간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건 누르고 있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마나가 뜯어 내버렸다.
그리고 뜯어진 공간에 대한 공백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여우는 검은 머리 소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녀의 말처럼 꼬리를 더 꺼낼 수는 없었다.
소녀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개체 없이 꼬리를 꺼냈다가는 그 늙다리들이 자신을 잡으러 올 게 분명했다.
여우가 그렇게 기대하던 유희는 시작하자마자 그 녀석에게 사기당해 매개체를 뺏겨서 꼬였지만, 그래도 아직 유희를 좀 더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 잡혀가면 또 언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아직 막내 맛도 제대로 못 봤고
꼬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랄 테니까
꼬리 한 개를 내줄 생각으로 여우는 루나가 만든 공백 부분에 꼬리를 흔들어서 넣었다.
좀 아프겠지?
미안해 꼬리야
여우는 찾아올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자신의 주변을 태풍처럼 빨아들이던 마나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뭐지? 갑자기 내게 연민이라도 생겼나?
여우는 황급히 자신의 꼬리를 확인했다.
탐스럽고 부드러운 꼬리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다행이야.
여우는 무사한 자신의 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소녀를 쳐다봤다.
"에이든?"
소녀는 초점이 잡혀있지 않은 눈으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 소녀를 따라 여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지만, 막내가 앉아있던 침대만은 멀쩡했다.
하지만 그 위에 앉아있던 막내는 사라져 있었다.
"에이든!"
소녀가 찢어지는 것처럼 높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소녀의 주위로 마나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쌓이고 또 쌓였다.
마치 신이 현신한 것처럼 경이로운 소녀의 모습에 여우는 경외심을 느꼈다.
그 늙다리들도 내려와서는 저렇게 못 할 텐데 말이야.
어떻게 어린 소녀가 저런 이치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조금만 더 있으면 주변의 모든 것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에 여우는 일곱 개의 꼬리를 흔들어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 그러고보니
계획은 소녀와 싸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스칼이 뭐라고 했더라?
뭐 이제 상관없겠지.
재밌었으니까
***
"루나 멈춰"
벽을 말 그대로 때려 부수는 루나의 모습에 황급히 루나를 불렀다.
하지만 루나는 이미 이성이 날아간 상태인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삼 년 동안 정들었던 내 방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었다.
루나의 손이 가리킬 때마다 벽이 뭉텅이로 부서지고 바닥이 날아갔다.
근데 이렇게 부서지는 데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하네.
그래 다 부셔라. 부셔.
나는 이성을 놓은 루나를 말리는 걸 포기했다.
여우와 루나 둘이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싸우는 데 잘 들리지 않았다.
뭐 대충 서로한테 패드립하고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여우의 뒤에 있는 꼬리가 여섯 개가 되었을 때, 나는 이 건물이 무너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 괴물 두 명은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괜찮겠지만 나는 위험하다.
무너진 건물에 갇혀서 굶어 죽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차피 둘 다 나한테 관심 없어 보이는데 여기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침대 아래에 숨겨뒀던 주머니를 꺼내서 품에 챙기고 내 뒤로 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건물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선생님들도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 선생님들이 알아서 말리겠지.
루나가 그만둘지는 의문이었지만.
말릴 수 있겠지...?
삐융삐융
경고음이 아카데미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자 기숙사에서 루나 양과 침입자가 전투를 벌이고 있으니 주변 학생들은 대피하시고 선생님들은 루나 양을 지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경고음 뒤로 방송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침입자가 있다는 걸 왜 이 사단이 되고 나서야 깨닫냐고.
나는 하루종일 침입자한테 끌려 다녔는 데, 존나 무능한 아카데미 시발.
쾅
쾅!
건물 안에서 끊임없이 굉음이 들렸다.
아 시끄러워.
나는 귀를 막고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움직였다.
저게 다 무슨 난리야.
사이 좋게 좀 지내지.
그렇게 굉음을 피해 걷다 보니 어느새 운동장까지 와버렸다.
이제는 굉음이 좀 안 들리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의자에 앉았다.
쾅...
이제는 굉음이 공을 차는 소리만큼 작게 들렸다.
드디어 마음의 안식이 찾아오고 편안히 눈을 감았을 때
뒤!
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루나검을 뽑아 뒤에 겨누었다.
하지만 상대는 내 검을 무시하고 가까이 접근했다.
그런 상대의 움직임에 루나검이 상대의 몸에 깊숙이 박히며 검을 타고 소름 끼치는 감각이 넘어왔다.
시발 내가 죽인 거 아니야!
지가 그냥 갖다가 박은 거라고.
시발 아카데미 안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눈 감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살인하게 된 상황에 당황하면서 상대를 쳐다봤다.
"오랜만입니다. 불신자!"
그때 에일 버드 꼬치를 사 먹다가 봤던 흰 가면 미친놈이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황급히 루나검을 끌어 올렸지만, 흰 가면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루나검이 상대의 뼈와 살을 가르며 움직였다.
그 소름끼치는 감촉을 느끼며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위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우리 교에 적합해 보여서 그 뭐냐..."
흰 가면의 손이 내 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목이 흰 가면의 손에 잡혀서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나는 어떻게든 흰 가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루나검을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목이 잡힌 상태라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 스카우트! 스카우트에요! 당신은 완전 우리 교에 딱 맞는 사람이에요. 제 눈은 정확합니다! 우하하!"
흰 가면이 발음을 우스꽝스럽게 늘리며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흰 가면이 가까이 다가오자 역겨운 피 냄새가 맡아졌다.
마치 피를 계속해서 덧씌운 듯한 역겨운 냄새.
무슨 개소리야 시발.
내가 그런 변태 같은 종교에 적합할 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아마 그럴거야
약간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다.
내 몸에 점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흐려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와 같이 가면 제가 특별히 추천해서 당신이 마음껏 처녀들을..."
흰 가면이 내 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욱더 주며 중얼거렸다.
너무 세게 잡았잖아 개새끼야.
흰 가면에게 잡힌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너! 뭐야! 미천한 놈한테서 떨어져! 나는 그 유명한 콘레드 가의 둘째 아들 드숀이다!"
저 멀리서 드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또 너냐 드숀!
하필 나타난 게 왜 또 너야 드숀.
쓸모없는 너 말고 다른 애들 불러와 나 납치되게 생겼잖아 시발.
"이크! 다른 불신자들이 방해하기 전에 빨리 갑시다!"
마치 동료한테 말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말하는 흰 가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
딸깍
내 목에 차가운 무언가가 씌워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