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76화 (76/233)

〈 76화 〉 준비된 인재 에이든.

* * *

갑자기 에이든에게 걸어둔 추적 마법이 먹통이 됐다.

루나는 황급히 추적 마법이 마지막으로 보낸 위치로 공간 이동을 준비했다.

여우에게 마지막으로 쓴 마법에 마나를 많이 사용해서 공간 이동을 할 마나가 부족했다.

루나는 마치 산소가 희박해진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남은 마나로 몸을 띄워서 추적 마법이 마지막으로 보낸 좌표로 이동했다.

밖에는 쓰레기들이 잔뜩 몰려서 건물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도움 안 되는 쓰레기들.

"루나 양 괜찮으신 건가요?!"

"와­! 루나 양이 침입자를 쫓아냈다! 역시 우리 아카데미의 자랑!"

"근데 루나 양이 어딘가로 가는데?"

"잠깐 기다려봐요. 루나 양­ 저는 기숙사 담당­..."

쓰레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역겨운 말들을 무시하고 이동했다.

추적 마법이 마지막으로 보낸 위치는 운동장의 구석진 부분이었다.

도착한 곳에는 루나가 에이든에게 선물한 검과 그 옆에 쓰레기가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에 루나의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설마 이 미친 쓰레기들이 주제도 모르고.

루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잡았다.

­소녀!! 들리는가?!

"어어어떻게된거야!!!"

루나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나왔다.

에이든은 어디 가고 자신이 선물한 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단 말인가.

­그때 봤던 집행관이 에이든을 납치했네. 집행관의 말로는 스카우트­ 라고 하던데...

검의 뒷말은 루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루나는 무거운 쇠를 지고 깊은 물에 뛰어든 것처럼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처녀교를 해체시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처녀교에게 계속해서 압박을 주면 그 쓰레기는 참지 못하고 제국을 향해 뛰쳐나올 게 분명했다.

그 쓰레기는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타입이니까.

지금 단계의 처녀교는 제국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귀찮게 자신이 그 쓰레기를 상대하지 않고도 알아서 해체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집행관이 자신에게 교화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집행관은 저번 회차에서도 구제불능의 쓰레기였으니까.

집행관에게는 어떤 방법이나 회유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집행관이 다른 마음을 먹어도 자신에게 절대 해악을 끼치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쓸데없는 자신감과 안일함이 만든 결과는 처참했다.

자신의 안일함­

집행관이 자신에게 해악을 못 끼칠 거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내가 멍청했기 때문에 에이든이 위험에 빠졌다.

루나 멈춰­

에이든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왜 너는 에이든의 말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지?

너는 에이든의 것이라며­

왜 물건이 의지를 가진 거지?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멍청한 년.

멍청하면 에이든의 말이나 잘 따르던가.

에이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년이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쓰레기 같은 년­

에이든과의 연결이 끊어진 루나는 점점 가라앉았다.

숨 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몸은 물에 잔뜩 젖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루나는 끊임없이 자책했다.

­정신 차리게 소녀! 소년을 구해야 하네!

루나가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려 얼굴이 새하얘졌을 때, 검의 외침이 루나를 깨웠다.

멈추었던 루나의 생각이 다시 움직였다.

그래 일단 에이든부터 찾아야지.

에이든이 먼저야.

벌은 그 뒤에 받아도 돼.

스카우트­

전 회차에서도 집행관은 스카우트를 몇 번 했었다.

그래 집행관이 스카우트라고 했으니까, 아직 에이든은 안전 할 거야.

에이든은 쉽게 죽는 사람이 아니니까.

루나는 숨을 다시 들이마시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정신이 돌아온 루나에게 마나가 다시 물밀듯이 차올랐다.

루나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처녀교의 지부를 되짚었다.

건방진 쓰레기들이 감히 나의 에이든을­

나의 에이든은 아무도 못 건드려.

으드득­

­딸꾹!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어서 소중하게 껴안은 루나가 밝은 빛을 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

언제 느껴도 기분 나쁜 부유감을 느끼며 다시 눈을 떴을 때 케이트는 다시 수도에 도착해있었다.

케이트의 옆에는 조슈아와 올가도 있었다.

케이트는 올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자신의 할아버지가 인정할 정도면 강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데리고 왔다.

이 정도면 에이든 옆에 붙은 그 건방진 것들을 치울 수 있을 거야.

다시 따뜻해진 날씨에 케이트는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벗었다.

케이트가 벗은 두꺼운 옷을 조슈아가 익숙하게 받아서 챙겼다.

올가는 이미 북부에서도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특유의 생기 없는 느낌 때문에 케이트는 올가를 대하기 껄끄러웠다.

"그럼 아카데미로 돌아가 볼까!"

케이트는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한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서 목소리가 밝았다.

케이트의 옆에 조슈아가 붙어있었고 올가는 살짝 뒤에서 따라왔다.

익숙한 수도의 활기에 케이트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천천히 가도 그분은 그대로 있을 거예요."

그런 케이트에게 조슈아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조슈아는 에이든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케이트의 선택이다.

자신이 그것에 대해 참견할 입장은 아니었다.

"뭐래! 그냥 하지 않고 온 과제가 생각나서 그런 거거든!!"

조슈아의 말에 케이트의 얼굴과 목이 단번에 잘 익은 사과처럼 붉어졌다.

발작하듯이 대답하는 케이트를 본 조슈아가 큰 소리로 웃었다.

케이트는 조슈아를 한번 노려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케이트는 괜히 조슈아의 말에 자신의 발걸음이 신경 쓰였다.

그로 인해서 왼발은 빠르게 걷고 오른발은 천천히 걷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조슈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올가는 그런 둘을 아무 관심 없는 눈빛으로 따라갔다.

덥네­

이게 수도에 처음 온 올가의 소감이었다.

마침내 용사 아카데미의 정문에 도착한 케이트는 더는 감출 게 없다는 듯 뛰기 시작했다.

조슈아는 웃음을 참기 위해 헛기침까지 하며 그런 케이트를 따라갔다.

"이게 뭐야­!!!"

뛰어서 남자 기숙사에 도착한 케이트의 눈앞에는 거의 폐허가 된 남자 기숙사 건물이 있었다.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케이트를 엄습했다.

케이트가 손에 짐을 잔뜩 든 채로 옆을 지나가는 남학생의 멱살을 잡았다.

조슈아는 그런 케이트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남학생의 멱살이 케이트에게 꽉 잡힌 이후였다.

"흐­엑?! 어?"

깜짝 놀란 남학생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케이트의 얼굴을 보며 말을 잃었다.

"이거 왜 이렇게 된 거야!"

케이트가 그런 남학생의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그게 외부인이 남자 기숙사를 습격해서 루나 양과 전투가­..."

남학생은 케이트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며 일부러 낮게 깐 목소리로 설명했다.

"루나?! 그 건방진 꼬맹이가! 에이든은!!!"

남학생의 입에서 루나 이름을 들은 케이트는 불안한 느낌이 더욱 커졌다.

루나라면 병실에서 에이든에게 찰떡같이 붙어 있던 여잔데­

남학생 기숙사에서 루나가 침입자와 전투를 벌였다.

그 이유에 에이든이 있을 거라고 케이트는 예상할 수 있었다.

"에이든? 에이든이 누구­"

남학생은 점점 대담하게 케이트의 얼굴을 보며 답했다.

"그 유급생!!"

남학생의 시선에 케이트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 케이트를 보자마자 올가가 남학생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올가의 오른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하얀색 창이 들려 있었다.

그 창이 남학생을 찌르기 바로 직전에 조슈아가 검으로 겨우 막았다.

"흐이이익!"

하얀색 창의 끝부분이 남학생의 목을 살짝 찔러서 피가 나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놀란 조슈아가 올가의 창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올가의 창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조슈아는 압도적인 힘에 당황했다.

왜 막은 거지?

따분해 보이는 올가의 눈빛이 조슈아에게 묻는 듯했다.

"멈춰! 대답은 들어야 할 거 아니야!!"

여전히 남학생의 멱살을 쥐고 있는 케이트가 소리쳤다.

케이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올가의 손에서 창이 다시 사라졌다.

조슈아도 검을 다시 집어넣으며 방금 상황을 떠올렸다.

조슈아의 검이 창을 막았다기보다는 조슈아가 검을 뽑는 것을 보고 올가가 창을 멈춘 거였다.

조슈아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켰다.

"말해! 말하라고! 에이든! 어디 있냐고!"

케이트가 남학생의 멱살을 흔들면서 독촉했다.

"유유급생 에이든을 말하는 거면! 납치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정말 몰라요!"

남학생의 대답을 듣자마자 케이트가 멱살을 놨다.

케이트는 이마를 찌푸리며 남학생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이든이 납치됐다고­?

도대체 걔가 왜?

케이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자신이야 어쩌다 보니 에이든에게 답도 없을 만큼 푹 빠져 버린 거지.

에이든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치가 없었다.

뛰어난 성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그런 에이든을 납치한다고­?

아카데미까지 침입해서?

굳이 왜?

일단 자기 혼자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이럴 때는 가장 윗대가리를 만나는 게 제일 빠르다.

교장실의 위치를 떠올리며 케이트가 발걸음을 옮겼다.

쓰러져서 자신의 목을 만지는 남학생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올가가 케이트를 따라서 움직였다.

***

"내가 바로 콘레드가의 둘째 아들 드숀이다!!!"

드숀은 크게 소리 지르며 잠에서 깼다.

뭐야 꿈이었나?

그 평민을 가면 쓴 놈이 데려가고 있었는데.

드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둘러보던 드숀은 순간 말을 잃었다.

왜 내 침대 주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거지?

혹시 내가 자는 동안 각성을 해서 초인이 된 건가?!

드숀은 밤바다 읽던 소설의 한 부분을 생각하면서 주먹에 힘을 쥐었다.

힘이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드숀은 유독 미인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는 건 혹시 최면이나­ 조교 같은 능력이?

드숀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제일 앞에 있는 미인을 생각하며 나에게 봉사하라­ 라고 되새겼다.

저 미인의 이름이 뭐였지?

아! 그 황녀 케이트구나.

케이트가 드숀의 바람대로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자­ 이제 옷을 벗고­

드숀은 헤실거리며 케이트의 벗은 몸을 상상했다.

케이트의 압도적으로 큰 가슴을 상상했지만, 여자의 벗은 몸을 본 적 없는 드숀은 자세히 떠올릴 수 없었다.

뭐 어차피 이제 곧 벗은 몸을...

"으헉­!"

"빨리빨리 말하라고! 답답하게 진짜!"

케이트가 드숀의 얼굴에 주먹을 시원하게 박았다.

"딸꾹!"

드숀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해서 딸꾹질까지 나왔다.

"바쁘니까 빨리 말하라고!"

"황녀님 조금 진정을..."

"일단 드숀 학생도 환자니까..."

다시 한번 드숀을 쥐어박으려는 케이트를 선생님들이 쩔쩔매며 말렸다.

"아오! 진짜 쟤가 답답하게 하잖아! 야! 너! 뭐?! 어디 가문이라고!? 말해!!!"

조슈아가 나와서 주먹을 공중에 휘두르는 케이트를 말리며 뒤로 데리고 갔다.

"딸꾹!"

드숀은 케이트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아프고 왜 자신이 얻어 맞아야 하는지 서러웠지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데서 울 수 없었다.

"드숀 학생­?"

단아하게 아름다운 수녀가 드숀의 앞에 다가오며 이름을 불렀다.

"딸꾹!"

수녀의 친절하고 단아한 미소에 드숀의 마음이 약간 풀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저희에게 설명해주시겠어요?"

수녀가 친절하게 드숀에게 질문했다.

"어떤 거 딸꾹! 를요? 딸꾹!"

드숀은 아름다운 수녀에게 짐짓 멋진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나오는 딸꾹질이 방해했다.

"왜 우리 에이든 님이 납치되었는지에 대해서요­ 빠뜨리는 것 하나도 없이 자세하게 부탁합니다."

수녀가 단아하게 웃으며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런데 펜을 잡고 있는 수녀의 손이 매우 심하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는 드숀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포를 느꼈다.

"딸꾹!"

지금 보니 주변 사람들이 다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그 살벌한 시선에 드숀은 울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나 콘레드 가의 둘째 아들 드숀인데...

드숀은 그 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천천히 말했다.

자신이 첫 눈에 반한 에이든의 누님부터 시작해서­

응 누님?

열심히 더듬거리며 설명하는 드숀의 눈에 문 쪽에 있는 여자가 보였다.

처음 보는 여자였지만 드숀은 왠지 모르게 여자에게서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드숀과 눈이 마주친 여자가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쉿.

여자의 두 눈이 요염하게 휘었다.

***

"흐으읍!"

숨을 깊게 들이쉬며 정신이 깼다.

주변을 둘러보니 울창한 숲 안이었다.

짙은 초록색의 길쭉한 나무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숲.

무슨 종인지 모를 새 소리를 들으며 에이든은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앞에는 누가 피워놓은 것처럼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흰 가면을 쓴 사내가 내 목을 조르는 것이었는데­

'아! 스카­우트! 스카우트에요!'

흰 가면 사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럼 그 미친놈이 진짜 자신을 납치한 거야?

내가 여자도 아니고 왜 나를?

무엇보다 남자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에이든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일단 몸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기운도 가득 차 있었고 몸이 따로 결박되어 있지는 않았다.

항상 들고 다녔던 루나검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일어났네요!"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몸집만 한 큰 돼지를 잡아 온 흰 가면의 사내가 보였다.

나는 온몸에 기운을 돌리며 사내와의 거리를 쟀다.

"흐음­ 반항하시려고요?! 뭐 저는 상관없어요! 오히려 고통이라는 큰 축복을 베풀 수 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기대가 되네요!"

흰 가면의 사내가 돼지를 옆쪽에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놨다.

그런 사내를 보며 내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검이 없는 내가 저 사내를 죽일 수 있을까?

그때 비키가 사내를 끊임없이 쥐어박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재생하는 저 사내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항한다고 해도 나한테 오는 이득이 있나?

아니.

끊임없이 재생하는 저 사내와 서로 쥐어박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어차피 자신에게는 지금 저 사내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을 사내도 아니까 굳이 귀찮게 나를 묶어두지 않은 것 같았다.

저 사내가 스카우트라고 했잖아.

그래도 스카우트니까 내 안전은 보장해주겠지?

"하하! 가죽은 제가 벗길까요?"

머릿속에서 빠르게 결론을 내린 에이든이 친절하게 웃으며 물었다.

"역시! 제 안목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요! 가죽 좀 부탁할게요. 형제님! 하하!"

흰 가면의 사내가 익살스럽게 고개까지 젖혀가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손질은 제가 할테니 좀 쉬고 있으세요. 형제님­"

마지막 발음이 매우 자연스럽게 입안에서 굴려져서 나왔다.

'당신은 완전 우리 교에 딱 맞는 사람이에요!'

생각보다 훨씬 매끄럽게 나온 형제라는 단어에 흰 가면 사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에이 설마­

"하하하핫!"

그런 에이든을 보며 흰 가면의 사내가 박장대소 했다.

흰 가면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 거리낌 없이 에이든에게 건넸다.

단검은 날 부분이 몹시 예리하고 손잡이 부분에는 금색으로 조각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케이트의 배를 가르라고 받았던 단검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런 단검으로 동물 가죽을 벗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게 생겼다.

에이든은 그 단검을 받아 손에서 한 바퀴 돌리면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을 길지 않았다.

아니 굳이 저항하지 말자.

어차피 루나가 구하러 오겠지.

이내 단검을 다시 돌려 정수로 잡았다.

그런 내 등을 흰 가면 사내가 툭툭 두드리더니 지나쳐갔다.

동물 가죽 벗기는 거야 어릴 때 먹고 살기 위해서 많이 해봤던 일이다.

해체도 그렇고 발골도 그렇고.

원래 이 험한 세상에서 고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할 줄 아는 게 많아야 하는 법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처음엔 약간 어색했지만, 금방 능숙해졌다.

결국 가죽을 깔끔하게 벗기고 발골 작업까지 해서 먹을 수 있는 고기 부분을 잘라냈다.

"오 능숙하시군요! 역시 인재답습니다!"

흰 가면이 내 옆에서 연신 박수치면서 칭찬했다.

우습게도 칭찬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만든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먹을 양만 빼고는 다 버리죠. 어차피 새로 잡으면 되니까요!"

흰 가면 사내가 흥얼거리며 큼지막한 고기를 집었다.

그럴 거면 빨리 말하던가 시발.

이렇게 힘쓸 필요 없었잖아.

"하하 네 알겠습니다!"

물론 나는 웃고 있었다.

흰 가면의 사내가 피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집은 반대 손으로 흰 가면을 올렸다.

"아! 안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몇몇 분들은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밥을 못 드시더군요. 하하!"

가면을 올리던 사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사내의 맨 얼굴을 볼 생각이 없었다.

물론 궁금하기는 하지만 소설에서 가면 안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죽은 인물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마치 육식 동물이 식사하는 것처럼 고기를 생으로 뜯어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제법 소름 끼쳤지만 애써 무시하고 나는 돼지의 뼈 중에서 큼지막한 뼈를 골랐다.

그리고 그 큼지막한 뼈에 고기를 꽂아서 피워놓은 불에 올렸다.

"구워 드시는 군요!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데요­"

어느새 큼지막한 생고기를 다 먹어 치운 흰 가면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사내의 목 아랫부분부터는 돼지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사내에게는 찝찝함이나 청결이라는 단어가 결여되어 있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흰 가면은 피 한 방울도 묻지 않고 새하얀 상태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워 먹는 걸 좋아해서요 하하!"

뼈를 한 바퀴 돌렸다.

노릇노릇한 고기 익는 냄새가 퍼졌다.

그 냄새를 맡자 순식간에 배고픔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어느 정도 고기가 다 익어서 뼈를 들어 올렸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돼지고기에서 육즙이 줄줄 떨어졌다.

다 익은 고기를 먹으려고 할 때.

뚝­뚝­

옆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내 고기를 쳐다보는 흰 가면 사내의 가면 아래로 침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것도 드시죠."

나는 사내에게 내 고기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래 고기야 아직 많으니까­

"아핫! 감사합니다! 역시 인재답습니다! 인재다워요!"

그러자 사내가 냉큼 내 고기를 손으로 집어서 가져갔다.

아직 고기가 뜨거울 텐데 사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너 다 쳐먹어라 시발.

흰 가면이 다시 들어 올려지고 턱 쪽에 있는 상처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다른 사람의 충고를 무시할 필요는 없으니까.

고기를 다시 굽기 위해 에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에이든을 흰 가면 사내가 먹던 것을 멈추고 쳐다봤다.

드러난 사내의 턱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흉터들이 새겨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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