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처녀교 입교식.
* * *
쾅!
저번 사건을 겪고 나서 마법까지 보완해서 덧씌운 문이 굉음을 내며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그 개 같은 마법사들 뻐드럭대면서 거금을 요구하더니 소용 하나도 없잖아.
그리고 저 여자는 왜 항상 문을 걷어차면서 들어오는 거야.
저 문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
치밀어 오르는 욕지리를 조용하게 내뱉으며 그레이슨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공손하게 양손을 앞에 모으고 기다렸다.
문이 있었던 곳을 통해 붉은 머리의 여자가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피처럼 붉은 머릿결에 파멸적인 몸매
그레이슨이 꿈에서도 보기 싫은 비키였다.
"비키님 이런 누추한 곳에는 또 어쩐 일로"
그레이슨은 최대한 공손함을 담아서 질문했다.
"정보"
비키가 손님용 의자에 앉아서 매끈하게 드러난 두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려 꼬았다.
그레이슨은 비키의 심기가 매우 많이 불편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정보 길드에서 일하면서 그가 제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에 대한 본능이었다.
"어떤 것에 대한 정보를 모아드릴까요?"
그레이슨은 지금 착수한 작업을 잠시 멈추는 것에 대해 손익을 계산했다.
꽤 큰 손해가 발생하겠지만, 그레이슨의 목숨값보다는 저렴했다.
"처녀교에 대한 모든 정보 가져와. 최대한 빨리."
비키가 씹어 뱉듯이 천천히 말했다.
"넵!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정보를 수집해서 드리겠습니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절절한 분노에 그레이슨은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빠르게 대답한 그레이슨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처녀교라면 그레이슨도 들어본 종교였다.
최근에 점점 세를 크게 불려 나갔다던
그래도 이번에는 모아둔 정보가 있어서 빠르게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넘기고 다시 하던 작업들을 시켜야지.
복도에는 멍청한 표정으로 내 사무실을 쳐다보는 연놈들이 보였다.
대장 방에서 저렇게 큰 굉음이 들렸으면 최소한 누군가는 달려와서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애사심이 없어요. 애사심이.
눈만 뒹굴뒹굴 굴리는 녀석들을 보면서 그레이슨은 길드의 앞날이 걱정됐다.
오늘은 다 야근이다 이 월급 도둑놈들아.
"다 튀어나와!!!"
그레이슨이 괜히 비키에게 들리게 크게 소리쳤다.
까칠한 그레이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놈들도 뛰쳐나왔다.
"지금까지 하던 작업 잠깐 멈추고 '처녀교'에 대한 정보를 전부 취합해서 내 방으로 가져다 놓도록"
그레이슨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한숨들을 들은 그레이슨은 머리끝까지 열이 뻗쳤다.
"하기 싫으면 관두든가! 니네 말고도 그 봉급이면 한다는 애들 밖에 널리고 널렸다 이 새끼들아!!!"
그레이슨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직원들이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진짜
골드 벌기가 쉬운 줄 알아요.
정신 교육을 제대로 해놔야겠어.
그레이슨이 중얼거리며 사무실 중 빈 곳으로 들어갔다.
***
처녀교의 일은 사내의 관심사와 딱 맞아떨어져서 천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사내는 일이라고 생각도 안 들 만큼 재밌게 그리고 열심히 처녀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나갔다.
이번에는 꽤 이쁜 처녀들이 많네
교에 가기 전에 이곳에 한 번 들르면 좋을 텐데 말이야.
물론 처녀 상태로 교에 보내야 하지만 그 전에 여기저기 주무르는 것 정도는 눈감아줬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사내는 갑자기 무언가에 끌려 밖으로 꺼내졌다.
사내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은 방금까지 건물 내부에서 열심히 처녀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는데 지금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어떤 소녀 앞에 띄워져 있었다.
사내에게는 일종의 직업병이 있었다.
여자를 보면 천천히 가치를 뜯어보는 습관.
사내의 앞에 있는 소녀는 한 눈에 봐도 최상급의 처녀였다.
작은 가슴이 약간 감점이기는 하지만 외모가 그를 보완할 만큼 훌륭했다.
소녀의 가치를 판단한 사내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사내의 옆에는 처녀교 사람들이 자신처럼 공중에 들려서 쭉 줄 세워져 있었다.
자신이 제일 오른쪽에 있었다.
"처녀교 본단 위치"
소녀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로 제일 왼쪽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물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소녀가 그 사람을 보면서 검지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상대의 머리통이 그냥 생으로 비명을 지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뽑혔다.
머리가 뽑히면서 끔찍할 정도로 많은 피가 밖으로 쏟아지고 몸이 무너졌다.
무너진 몸은 공중에서 떨어져 땅에 처벅하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본 사내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무언가에 막혀 있었다.
소녀의 손가락은 무심하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처녀교 본단 위치"
소녀가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똑같이 물었다.
다음 사람이 대답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입이 막혀있어서 대답하지 못했다.
소녀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이번에도 끔찍하게 머리가 뽑혔다.
머리가 뽑히면서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 피가 땅을 적셨다.
소녀는 그런 끔찍한 모습에도 아무 느낌이 없는지 무심하게 다음 사람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었다.
천천히 움직인 소녀의 손가락이 마지막 사내를 가리킬 때까지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종교에 대한 충성과는 별개로 무형의 힘이 입을 막고 있었으니까.
사내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나 지금 본단 위치고 뭐고 알고 있는 정보 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입이 막혀 있어서 말하지 못한다.
제발 입을 막고 있는 이것 좀 치워달라!
"아 내가 입을 막아놨었지."
소녀의 말이 끝남과 사내의 입을 막고 있던 무형의 힘이 사라졌다.
"처녀교 본단의 위치는"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무형의 힘이 사라지자마자 사내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사내에게는 더 이상 종교에 대한 의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
녀석은 나를 숲속 깊숙한 곳까지 데리고 갔다.
이제 태양은 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이 정도면 여기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도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 정도로 숲은 울창했고 똑같은 모습의 반복이었다.
"처녀교의 기본 교리는 '처녀가 아닌 여자는 살 가치가 없다.'입니다. 어때요 완전 멋지죠?! 하핫!"
옆에 있는 큼지막한 나무를 자세히 확인하던 녀석이 내게 말했다.
"와 그거 정말 완벽한 교리네요!"
나는 녀석이 확인하는 것을 눈여겨보며 열심히 호응했다.
녀석은 내 호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녀석은 살벌한 행동들과는 다르게 의외로 다루기 쉬운 녀석이었다.
"그렇지만 처녀들도 합법적으로 처녀를 벗는 방법이 있습니다! 처녀교의 교인에게 처녀를 바친다면 처녀를 잃었음에도 살아갈 수 있죠!"
표식을 확인한 모양인지 다시 움직이는 녀석이 설명했다.
처녀가 아닌 여자는 살 가치가 없지만, 자신들에게 처녀를 바치면 괜찮다?
완전 쓰레기 악마같은 집단 아니야 이거.
녀석의 말에 찌푸려지는 인상을 안간힘을 다해서 폈다.
내 대답이 없다는 것 눈치챈 녀석이 나를 돌아봤다.
"와 정말 현명하고 봉사하는 종교군요! 저도 빨리 처녀교의 교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지만 제대로 말했는지도 의문인 문장이었지만, 녀석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아하핫! 역시 인재답군요! 조금만 더 가면 저희 본단에 들어갈 수 있으니 좀만 참으시죠!!"
잠시 침묵하던 녀석이 만족스럽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렇게 구역질 나는 녀석의 비위를 맞추며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던 중 밤이 찾아왔다.
낮에도 깜깜했지만, 저녁에는 완전한 어둠이 자리 잡았다.
녀석은 굵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횃불을 만들어서 나를 주었다.
"저는 밤눈이 밝아서 괜찮습니다. 우하핫!"
녀석의 말이 사실인듯 녀석은 횃불도 없이 잘 돌아다녔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걷던 녀석이 갑자기 나를 멈춰 세웠다.
"아무래도 불신자들이 온 모양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시죠."
녀석이 나를 보며 얼굴을 뿌드득 소리를 내면서 한 바퀴 돌렸다.
내 예상대로 저 행동은 녀석 특유의 몸 푸는 행동이 맞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런 깊숙한 숲속에 불신자들이라니.
불신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처녀교의 교인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 저들과 합심해서 이 녀석을 해치워야 하나?
녀석이 몸을 숙이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런 녀석을 조용하게 따라갔다.
턱 끝까지 차오른 긴장감을 애써 침을 삼켜 내려보냈다.
녀석이 준 단검을 역수로 잡고 녀석을 따라 움직였다.
"뭐뭐야!!! 끄아악!!!"
소름 끼치는 남자의 비명 소리가 앞쪽에서 들렸다.
조금 더 발을 빨리 움직여서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녀석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네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자.
녀석은 그중 사내 한 명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
저들 전부 아무리 높게쳐도 중급 용사 수준이었다.
저 정도로는 녀석에게 안 된다.
나는 다시 단검을 품속에 넣고는 뒤쪽으로 움직였다.
"으아아아악!!!"
아까 녀석과 있었던 공간까지 돌아와서 귀를 막았다.
비명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귀를 막고 주저앉아 있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막던 손을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자꾸만 떨리는 손은 감추기 위해 뒤로 숨겼다.
"이거 놔 이 미친 새끼야!!!"
녀석은 한 손에 아까 봤던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 왔다.
여자는 어떻게든 저항하기 위해 녀석을 쥐어팼지만, 녀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운 좋게도 불신자들 중에 처녀가 섞여 있었습니다!! 우하하! 이런 행운이!"
녀석이 여자를 거칠게 내 앞에 던졌다.
"꺄악!"
내 앞에 쓰러진 여자가 증오가 잔뜩 서린 갈색 눈동자로 나를 노려봤다.
그 저도 같이 납치당하는 입장입니다.
나는 억울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봤지만 내 약간 치솟은 눈꼬리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윽!"
녀석이 쓰러진 여자 등 위에 쭈그려 앉으며 나를 쳐다봤다.
우드득
녀석의 목이 한 바퀴 돌아갔다.
"보기 드문 미인이군요. 하하"
그 눈빛이 마치 나를 떠보는 것 같아서 토할 것 같았지만, 애써 빙그레 웃었다.
"...으하핫! 역시 인재 답군요! 맞아요!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했는데! 이렇게 가는 길에 1등급 처녀가 있다니 역시 저는 운이 좋아요!!"
녀석이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끌어당긴 다음 여자의 볼을 주물럭거렸다.
"이 인간쓰레기들 악마같은 녀석들! 내 언니 에밀라 어디에 뒀어!!!"
여자가 고통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질렀다.
"흐음 에밀라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녀석이 여자의 볼을 장난스럽게 쿡쿡 찌르며 답했다.
"발뺌하지 마! 이 악마같은 녀석들!! 너네가 에밀라 납치한 거 다 알고 있어!"
여자의 눈에는 증오가 줄줄 흘러서 넘치고 있었다.
근데 하필 그 시선이 향한 게 나였다.
그 저도 같이 납치되는 입장이라니까요.
물론 나는 억지로 생글생글 웃으며 여자를 가지고 노는 녀석을 쳐다봤다.
아마 좋지 않은 내 인상 때문에 악당으로 보일 게 분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도 저희 교에 같이 가게 될 테니까요! 거기 가면 그 에밀라라는 분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녀석이 여자의 머리채를 놓았다.
녀석은 여자를 따로 묶지 않았다.
아마 도망가더라도 금방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겠지.
여자는 나와 녀석을 노려보면서도 같이 움직였다.
아마 여자는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든 에밀라라는 사람을 찾고 싶은 듯했다.
참으로 멍청한 판단이었다.
그런 곳에 언니를 찾으러 왔다고 하면서 끌려가면 그 언니라는 사람이 참 좋아하겠다. 쯧.
나는 굳이 여자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녀석의 비위를 맞추며 한참을 더 걸어서 들어가자 큰 동굴의 입구가 나왔다.
동굴은 숲속의 공터에 뜬금없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같지는 않았다.
"여기입니다!! 처녀교의 본단 입구!!"
녀석이 우스꽝스럽게 양손으로 동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와 정말 엄청나게 멋지게 생겼군요! 역시 처녀교 입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맞춰서 열심히 호응했다.
"...병신"
그런 나를 보고 여자가 중얼거렸지만, 안 들리는 척 무시했다.
동굴 앞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경계하고 있었다.
녀석은 당당하게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
여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살짝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고 녀석을 따라갔다.
참으로 멍청한 여자였다.
물론 나도 녀석을 따라갔지만.
녀석은 꽤 높은 지위의 사람인지 보는 사람들마다 경기를 일으키며 인사했다.
녀석은 그런 인사를 무시하고 동굴을 따라 들어갔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은 여자가 지나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침을 삼켰다.
그런 기분 나쁜 시선을 받을 때마다 여자가 움찔거렸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동굴 특유의 기분 나쁜 습기를 느끼며 깊숙이 들어가자 활짝 열린 큰 돌문이 보였다.
돌문은 크기가 얼마나 큰지 큰 동굴을 빈틈없이 막고 있었다.
돌문 앞에는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문지기 ! 오랜만입니다!"
녀석이 사내에게 친숙하게 인사했다.
"아 집행관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문지기라고 불린 사내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목소리였다.
나는 힘을 줘서 자꾸만 구겨지는 인상을 폈다.
"이번에도 괜찮은 처녀를 데리고 오셨군요. 역시 집행관님입니다. 근데 저 남자는"
문지기는 우리를 힐끔 보더니 나를 가리켰다.
"내가 이번에 특급 신도로 추천할 인재입니다! 인재!"
녀석이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 집행관님이 추천하신다면 본교에 적합한 분이시겠죠. 집행관님의 추천이라면 바로 특급 신도로 배정도 가능하고요. 음... 하지만 특급 신도 입교식에 담당 처녀를 배치하기에는 현재 본교의 처녀 수급에 약간 차질이 생겨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문지기가 난처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럽니까?! 그럼 제가 데리고 온 처녀로 하죠! 우하핫! 이거 오는 길에 1등급 처녀를 만난 건 운명이었나 봅니다!"
녀석이 우스꽝스럽게 웃으며 처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나를 쳐다봤다.
처녀가 고통 때문에 표정을 구겼지만,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녀석이 나에게 그렇죠? 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담당 처녀로 배치하기에는 외모가 좀 높지만... 집행관님의 추천이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입교식을 하겠습니다."
문지기가 잠깐 고민하더니 흔쾌히 답했다.
"입교식까지 바로 하다니! 역시 문지기님은 인재입니다!"
입교식이 뭔데 시발.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문지기가 손가락을 딱딱 튕겼다.
그러자 작은 키에 치졸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달려왔다.
"오늘부터 특급 신도가 되실 분이다. 집행관님의 추천으로 온 거니까 저 여자로 바로 입교식 진행시켜."
문지기가 나와 내 옆의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치졸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여자를 음흉한 눈빛으로 훑어보더니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딱 봐도 좆밥같이 생겼는데.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사내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 다음에는 교내에 만나겠군요! 우하핫! 충분히 즐기세요!!"
어쩐지 잔뜩 신난 집행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즐기기는 뭘 즐기라는 거야.
돌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가자 큰 마을처럼 구축된 모습이 보였다.
일정한 모양으로 생긴 건물이 쭉 늘어서 있었다.
아니 동굴 안에 이렇게 큰 공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검은 로브를 쓰고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벌레같이 느껴졌다.
처녀교의 규모가 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미친놈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여자도 그 모습에 경악한 것 같았다.
사내는 그사이를 익숙하게 걸어갔다.
마침내 사내가 입교식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두려움에 잠깐 주저했지만, 여자는 굳은 얼굴로 먼저 들어갔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따라서 들어갔다.
안에는 고급 여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입교식 남는 방 1개 줘. 특급 신도 입교식이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사람에게 사내가 다가가서 말했다.
"특급 신도 입교식이라니 그런 건 미리 예약을 해야지..."
자리에 앉아있던 사내가 난처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집행관님 추천이야. 불만 있어?"
사내가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마침 남는 방이 있었지!!"
사내의 말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화들짝 놀라더니 황급히 뒤에서 열쇠를 꺼내서 건넸다.
열쇠를 건네받은 사내가 다시 우리를 데리고 올라갔다.
건물 안은 여자의 신음과 질퍽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신음 중에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신음도 들렸다.
내 옆에 있던 여자의 인상이 점점 안 좋아졌다.
입교식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문 앞에 사내가 멈췄다.
"운 좋은 줄 아십쇼. 집행관님 추천이 아니었다면 오크 처녀와 입교식을 해야 했으니까 들어가서 여자의 처녀를 취하면 됩니다. 뭐 이제 담당 처녀로 배정이 될 테니까 거칠게 해도 상관은 없지만, 담당 처녀가 될 여자라 사지는 멀쩡하게 유지 시키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앞으로 계속 써야 하니까요."
아깝다 아까워
사내가 마치 음식을 보듯 여자를 훑어보며 설명했다.
열린 문을 굳은 얼굴의 여자가 먼저 들어갔다.
"심지어 적극적인 처녀라니 아쉽다 아쉬워."
중얼거리는 사내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방안은 규모는 작았지만 갖출 거는 다 갖추고 있었다.
푹신푹신해 보이는 넓은 침대와 씻을 수 있는 시설까지.
동굴 안에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의 방이었다.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자신의 옷을 꽉 쥐고 있었다.
윤기 나는 갈색 생머리와 열심히 단련한 듯 탄탄해 보이는 갈색빛의 몸.
시원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까지.
사내의 말처럼 여자가 미인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자의 몸을 강제로 취한다니.
지극히 평범한 내 윤리관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
내가 입을 열자 여자가 눈에 보일 정도로 움찔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잡혀 온 입장이라... 대충 씻기만 하고 좀 쉬다가 나가면 제가 관계를 가졌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여자의 반응에 괜히 죄의식을 느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듣던 여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눈을 돌렸지만, 어쩔 수 없이 흰자로 여자의 나체를 훔쳐봤다.
갈색 피부인 여자의 몸은 건강함이 넘치는 몸이었다.
탄탄해 보이는 가슴에 털 한 올도 없는 그 부분까지.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훔쳐봤다.
마침내 모든 옷을 벗고 나체가 된 여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사정도 저와 비슷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까 그 악마 같은 사내는 단번에 제가 처녀인 것을 알아봤습니다. 저는 제 언니 에밀라를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저는 굳이 그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원하면 어떤 것이든 할 테니까... 제발 제 처녀를 가져가 주세요."
여자가 알몸으로 내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교미다 교미! 처녀와 교미! 갈색 피부인 게 너무 마음에 드는구만 하하하하!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군...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혼란스러워하는 남자의 표정을 본 에이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은 반드시 에밀라를 구해야 한다.
지금도 고통받을 에밀라를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그런 에밀라를 생각하면 자신의 처녀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처녀인 이유도 자신이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서였을 뿐.
처녀가 소중하다거나 그런 멍청한 이유는 아니었다.
에이미는 언젠가 용병과의 대화에서 들었던 천박한 대사가 생각났다.
'하하 나는 여자가 이렇게 말하면 바로 그냥!'
술에 잔뜩 취한 용병은 허공에 거칠게 허리를 움직이며 경박하게 웃었다.
"제발 저를 따먹어 주세요."
에이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언젠가 용병에게 들었던 대사를 입에 담았다.
남자가 이 대사를 듣고 용병처럼 흥분하기를 간절히 빌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