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해치웠나?
* * *
축축하다.
벌써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는 걸까.
혹시 우리 저주받은 거 아닐까?
에이든을 포기하라는 신의 뜻이라던지.
장화 속에 비가 잔뜩 들어가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늘어붙었다가 떨어졌다.
드숀은 비에 젖어 축축해진 우의를 손으로 쳐 물을 털었다.
성에서 급하게 우의를 구했는데, 우의가 우의라는 이름이 우스울 정도로 물을 잘 머금었다.
비를 잘 머금어서 우의라는 건가.
처음부터 물 비린내가 나더라니.
"소풍 가기 정말 좋은 날씨야 그치? 조슈아?"
앞쪽에서 케이트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드숀은 어이가 없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 지나가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케이트에게 주먹으로 맞은 이후부터는 시선조차 조심하고 있었다.
서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황녀니까.
"그렇군요. 아 바구니가 약간 젖었습니다."
조슈아가 왼손에 들린 바구니를 털면서 말했다.
"괜찮아. 그거 마법이 부여된 바구니니까. 물에 넣어도 괜찮을 거야."
케이트가 조슈아의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줬다.
"짜증 나네."
비를 별로 안 좋아하는지 비키가 잔뜩 인상을 쓰며 머리를 털었다.
그 행동에 맞춰서 파멸적으로 큰 비키의 가슴이 흔들렸다.
모두 우의나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비키만 우의를 쓰고 있지 않아 옷이 죄다 젖어있었다.
드숀은 그 흉측할 정도로 아름다운 비키의 몸매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뭐라도 입는 게 어떻습니까."
키아나가 인상을 쓰며 수건을 비키에게 건넸다.
밖에서 그렇게 싸우던 둘은 좌절의 숲에 들어오고 나서는 싸우지 않고 있었다.
둘이 서로 싸우지 않아도 좌절의 숲에서는 끊임없이 마물들이 나타나 비키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난 몸 위에 뭘 걸치는 느낌이 싫어. 이것도 겨우 참고 있는 거라고."
키아나에게 받은 수건으로 거의 속옷이나 다름없는 의상을 털며 비키가 중얼거렸다.
물기를 대충 닦은 비키가 기운을 일으켜 몸에 붙은 물기를 날렸다.
키아나와의 대련 덕분에 비키는 기운을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다.
키아나가 우의를 벗어서 턴 다음 옆에 널었다.
우의에 가려졌던 키아나의 얼굴이 나오자 세상이 약간 밝아졌다.
키아나가 수건으로 자신의 검을 소중히 닦았다.
키아나의 머리는 젖어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드숀은 모두를 가릴 정도로 큰 나무를 올려다봤다.
벌써 좌절의 숲에 들어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분명 제국군 쪽에서 먼저 들어갔지만, 모든 마물을 정리하지는 못했는지 가끔씩 마물들이 뛰쳐나와 일행을 놀라게 했다.
물론 마물이 나타나자마자 비키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정리했지만.
마물의 애달픈 비명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기분이었다.
마물의 피를 잔뜩 묻히고 돌아온 비키를 봤을 때 드숀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버렸다.
저건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저거 막아!!
으아악!
크워어어어!
쿵!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를 치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먼저 진입한 제국군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지.
드숀은 긴장감에 침을 조용히 삼켰다.
"대충 배 채운 다음에 빨리 움직이자. 이제 제국군 경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제국군보다 우리가 먼저 에이든을 찾아야 해. 지도 상으로 보면 거의 중심부에 근접했으니까."
케이트가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옆으로 건넸다.
"... 네 알겠습니다."
조슈아는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황녀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어차피 밖으로 꺼낸다고 해도 황녀가 들을 리가 없었다.
그 대화에 드숀은 괜히 긴장감이 들어 검을 매만졌다.
검의 중심에 새겨진 콘레드 가의 문양이 드숀의 마음을 조금 안정시켰다.
지금까지 쓸 일이 없었지만 콘레드 가의 비기 검법을 사용한다면...
후
"스칼렛 수녀님... 기도하고 싶어요"
스칼렛은 옆에서 보채는 아가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지금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안됩니다."
어떻게 이 소녀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기도에 대한 생각이 나는지.
스칼렛이 우의에서 스며든 물 때문에 젖은 수녀복을 짜내며 대답했다.
단호하게 대답한 스칼렛은 슬쩍 안드레아의 눈치를 봤다.
안드레아는 좌절의 숲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표정은 마치 감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잔뜩 굳어 있었다.
손을 계속해서 까닥까닥 움직이고 있었는데 손에서 가끔 하얀 불꽃이 일어나기도 했다.
스칼렛은 그런 안드레아가 무서워 거리를 조금 더 벌려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안드레아에게 부탁을 못 하게 된 아가사는 스칼렛에게 시도 때도 없이 졸랐다.
"아아 그래도... 잠깐만 하면 안 될까요? 기도하고 싶어서 자꾸만 정신이 어지러워요."
아가사 수녀가 특유의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스칼렛에게 매달렸다.
"안됩니다. 그리고 여기는 다른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아아... 미칠 것 같은데... 그럼 살짝이라도 만져주면 안 될까요? 아니면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에게 부탁해야 할 거 같은데..."
아가사가 초조한 말투로 말하며 슬쩍 뒤를 쳐다봤다.
아가사의 입에서 나온 안드레아의 이름때문에 스칼렛은 고민했다.
이대로 두면 이 소녀가 무슨 짓을 벌일 것만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시골 처녀처럼 순했던 아가사가 이렇게 변한 것에 대해 스칼렛의 책임도 있었다.
스칼렛은 눈을 돌려 굳은 표정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안드레아를 확인했다.
저런 상태의 안드레아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지지던 안드레아의 모슴이 생생했다.
"...알았어요. 진짜 살짝이에요. 가까이 붙어요."
스칼렛은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렛의 대답에 아가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가사가 냉큼 스칼렛 수녀에게 몸을 밀착했다.
아가사의 몸에서 물에 젖었음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된 거지.
스칼렛은 고민을 하며 슬쩍 뒤를 쳐다봤다.
다들 옷을 말리거나 식사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아가사의 반대편에 사람들이 있어서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여기요..."
아가사가 주저 없이 자신의 수녀복 앞부분을 들어 올렸다.
아가사는 아예 속옷조차 입고 있지 않았다.
깨끗한 음부에서는 뻐끔거리며 무언가 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속옷조차 입고 다니지 않는 아가사의 모습에 스칼렛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슬쩍 손을 아가사의 음부로 가져갔다.
빨리 끝내자 빨리
스칼렛은 마음을 먹고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흐읏"
아가사의 입에서 짙은 열기가 섞인 신음이 나왔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다른 수녀의 음부를 주무르고 있다니.
스칼렛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수치심과 배덕감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정도 했으면 됐겠지.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스칼렛이 슬쩍 손을 내렸다.
그런 스칼렛의 손을 아가사의 작은 손이 잡고 다시 자신의 음부 쪽으로 끌었다.
"더 해요! 아니면 안드레아 수석 수녀한테 말할 거니까 빨리!"
아가사의 말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격적이었다.
투명한 갈색의 눈동자가 스칼렛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눈동자는 안드레아의 눈동자와 다른 느낌으로 위험하게 보였다.
"아가사 수녀 지금 그게 무슨 말버..."
스칼렛은 변한 아가사의 태도에 당혹감을 느꼈다.
"빨리 더 만지라고 안드레아 수석 수녀한테 가기 전에."
스칼렛은 강압적인 아가사의 말투에 움츠러들었다.
아가사의 입에서 나온 안드레아라는 이름이 스칼렛을 겁먹게 했다.
아가사가 다른 손으로 스칼렛의 목을 끌어당겼다.
"빨리 하라고!"
아가사의 거친 말이 스칼렛의 귀에 들렸다.
스칼렛은 자신보다 작은 소녀에게서 공포감을 느끼며 손을 움직였다.
아아
그제야 아가사의 굳은 표정이 풀어졌다.
스칼렛 수녀는 이 작은 소녀가 점점 더 무서워졌다.
무언가 심하게 잘못되고 있었다.
스칼렛은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더욱 열심히 움직였다.
빨리 이 시간이 끝났으면
"크아아아앙!"
옆의 나무가 무너지며 큰 덩치의 흉측하게 생긴 초록색 마물이 나타났다.
거의 3미터는 될 것 같은 덩치에 주둥이는 마치 개처럼 길고 그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들이 튀어 나와 있었다.
마물이 성인 남성 두 개는 합친 것 같은 굵은 팔뚝으로 나무를 밀어서 우지끈 부쉈다.
"뭐야?! 쟤네 청소 제대로 안 해?!"
그런 마물을 보며 케이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질렀다.
"보티르 입니다!"
조슈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검을 뽑고 케이트의 앞에 섰다.
그 행동이 마치 준비된 것처럼 매끄러웠다.
"으아아악!"
드숀은 비명을 지르며 마물에게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어느새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저런 마물을 어떻게 이긴다는 거야!
우리는 다 죽었다 다 죽었어!
나는 여자랑 손도 못 잡아 봤는데!
드숀은 넘어져 흙탕물에 구르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마물에게서 멀어졌다.
"크하하하! 이건 내꺼야! 다들 꺼져!"
그런 드숀의 옆으로 비키가 크게 웃으며 보티르에게 달려들었다.
"저저 무식한 여자 교양 없기는."
케이트가 손에 들린 찻잔을 다시 마시며 중얼거렸다.
콰앙
보티르의 주먹을 피하며 비키가 뛰어들었다.
보티르의 주먹이 박힌 땅이 푹 파이며 땅에 고여있던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쿼어어어!"
비키의 주먹이 보티르의 훤히 드러난 배에 박혔다.
우습게도 그 배가 순간적으로 움푹 들어가며 보티르가 약간 움츠러 들었다.
고통 속에 보티르가 손을 휘둘렀지만, 비키는 보티리의 털이 무성하게 난 가슴을 가볍게 밟고 뛰어 보티르의 얼굴로 달려들었다.
"크뤄어?"
마물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게 생긴 보티르의 눈동자를 보며 비키가 신나게 웃었다.
"우리 같이 놀자고!"
비키가 보티르의 주둥이의 위아래를 양손으로 잡았다.
보티르의 큼지막한 눈동자에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이 자리 잡았다.
우지직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보티르의 큼지막한 주먹이 비키를 두드렸지만 비키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마침내 보티르의 초록피가 비처럼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후아
그 피를 맞으며 비키가 시원하게 웃었다.
"쯧쯧 교양 없어"
케이트가 고개를 흔들며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놨다.
"멈추지 말라고 스칼렛"
이제는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아가사를 보며 스칼렛은 공포에 빠졌다.
***
사내의 검이 내 목을 노리고 찔러왔다.
나는 기운을 한껏 담은 검으로 그런 사내의 검을 악착같이 쳐냈다.
캉!
다행히 검의 경로를 살짝 움직일 수 있어서 죽지는 않았지만, 사내의 검이 목을 스쳐 피가 튀었다.
아 존나 따가워 시발.
검이 스친 부분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이 개새끼!! 내 소중한 피를 시발!"
욕지기를 내뱉으며 오른쪽 팔꿈치를 사내의 얼굴로 찔렀다.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뒤로 살짝 움직였다.
내 팔꿈치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사내와의 몇 번의 교전 끝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 나보다 세다.
좀 많이.
"입과는 다르게 실력은 별로구만."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한번 내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 흐릿하게 보일 정도였다.
챙!
그렇지만 집중하고 있던 나는 가까스로 사내의 검을 막아낼 수 있었다.
막았지만 사내의 검에 달린 힘에 중심을 잃고 뒤로 살짝 밀렸다.
사내가 검을 끌어당긴 다음에 다시 검을 찔러넣기 위해 움직였다.
이대로는 안 돼.
"여우 보지 쫄깃쫄깃!"
이렇게 추잡하게 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좆밥인걸.
사내의 표정이 금세 경악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마 내가 유급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뭐이 미천한 놈이!?"
사내의 검 끝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에 따라 목표점이 흔들린 사내의 검을 전보다 더 수월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자 사내의 중심 부분이 훤하게 내게 열렸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개새끼야.
"여우 보지 복숭아 맛!! 시발련아!"
입을 악착같이 놀리며 몸을 회전시켰다.
발끝에서부터 힘이 끌어 올려지는 게 느껴졌다.
다리가 돌고 허리가 따라서 움직이며 마침내 팔까지 기운이 폭풍처럼 흘렀다.
이거는 못 막겠지! 개새끼.
터질 것 같은 손을 억지로 움직여 사내의 드러난 가슴 부분을 향해 휘둘렀다.
쾅!
베기에 어울리지 않는 효과음이 나며 사내가 날아갔다.
해치웠나?
나는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고 날아가는 사내에게 뛰어서 붙었다.
뭐든지 목을 따놔야 안심이 되는 성격이거든
방심하지 않고 검을 고쳐 잡았다.
사내의 가슴에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날 정도로 이쁘게 생긴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부분을 통해 피가 뿜어져 나와 내 시야를 가렸다.
나는 사내의 목을 겨누며 검을 다시 한번 베기 위해 붙었다.
그리고 이제 베어내려고 하는 데
내가 뿌려지는 피 사이로 사내의 눈이 나를 차갑게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발을 땅에 박아 넣으며 자리에서 멈췄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는 생각이 들며 동시에 내 목에서 옅은 통증이 느껴졌다.
아래를 보니 내 목에 옅은 붉은색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조금만 더 갔으면 이거 이등분 당했다 시발.
"후우 눈치는 좋군."
사내의 가슴에서 나오던 피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사내는 다시 비릿하게 웃으며 검을 내게 겨눴다.
저 정도 상처를 받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얕았나?
하지만 바닥에 뿌려진 피의 양이 상당한 것을 보니 얕지는 않았다.
나는 목에서 난 피를 소매로 대충 닦으며 사내를 관찰했다.
사내의 검이 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새끼 저거 허세다 시발!
"허세 부리지 마 십려나. 존나 아프지?"
검을 잡은 손을 풀며 몸의 기운을 다시 돌렸다.
"아프지 그렇지만 이보다 더한 상처도 많았었다."
사내가 자세를 숙이며 검을 횡으로 세웠다.
사내의 가슴팍에서 피가 약하게 흘렀다.
괴물 같은 새끼.
그냥 좀 뒤지지 시발.
탁
작은 소리가 나면서 사내가 내게 달려들었다.
근데 그 속도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캉!!
나는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검을 들어서 막았다.
내가 자신의 검을 막자 사내의 눈이 약간 커졌다.
시발 그 미친 노인네한테 받았던 폭력들이 진짜 훈련이었다니.
사내의 검이 비스듬히 세워지며 내게 찔러 들어왔다.
나는 식겁해서 중심을 옆으로 돌리며 상체를 기울였다.
미처 다 피하지 못한 사내의 검이 내 가슴 부분을 스쳤다.
검은 후드의 앞부분이 작게 잘라지며 안에 입은 가죽 갑옷이 살짝 잘렸다.
역시 챙겨 입길 잘했어.
검을 밀어 넣고 싶었지만, 사내의 검에 달린 가드에 막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왼쪽 무릎에 기운을 보내 차올렸다.
내 중심이 무너지며 사내의 복부에 내 무릎이 박혔다.
"크흑"
사내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검을 당겼다.
"아프지 개새끼야? 여우 보지 쫄깃쫄깃 보지!"
나는 이죽거리며 그런 사내에게 달라붙었다.
사내의 인상이 구겨지며 이번에는 검이 더 날카로워졌다.
한계를 넘어선 도발이 사내에게 오히려 힘이 된 것 같았다.
시발 적당히 놀릴걸.
어떻게든 몸을 한계까지 움직여 사내의 공격을 흘려내고 있었지만, 점점 내 몸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쌓여갔다.
내 가죽 갑옷은 이미 해질 대로 헤졌으며 검도 조금씩 이가 나가고 있었다.
시발 전쟁 대비용 보급품이라며.
이렇게 구린 검을 주면 어떻게 해.
분명히 처녀교 내에 군자금을 빼돌리는 놈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사회의 악 같은 놈!
마침내 흘리지 못한 사내의 검이 내 목을 노리고 찔러올 때,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약간 느렸다.
애미 시발 이렇게 뒤지는 거야?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사내의 검 끝을 보며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케이트와의 첫 교미
비키와 미친듯히 했던 교미
에이미와의 교미까지
수 많은 교미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교미 한 번 더 할 걸
사내의 검이 내 목에 닿기 바로 직전에.
쾅!
"크흑 무슨?!"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며 사내가 흔들렸다.
그로 인해 사내의 검이 다시 한번 천운처럼 비껴갔다.
나는 사내와의 거리를 다시 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잔뜩 굳은 얼굴로 지팡이로 사내를 가리키고 있는 재클린이 보였다.
역시 재클린!
믿고 있었다고!
정말 완벽한 순간이었어!
심지어 나조차도 너가 도망간 줄 알았지 뭐야!
근데 좀 더 빨리 했어도 좋았을 거 같아!
"추가로 여우님의 젖꼭지 모양까지 알려주십쇼! 에이든 님!!!"
재클린이 다시 주문을 읊으며 소리쳤다.
"알았어! 다 알려줄게!!! 여우의 애액이 무슨 맛인지까지 !!!"
다시 생긴 승산에 검을 잡은 손에 다시 한번 힘을 줬다.
손이 덜덜 떨리지만, 아직 더 싸울 수 있었다.
하루 종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번 정도는 더.
그래 시발 이렇게 뒤질 수 없지.
좆밥도 맞들면 낫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
"이런 미천한 놈들이...! 감히 여우님을"
사내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런 사내의 등 뒤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큼지막하게 남아 있었다.
사내는 눈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살기가 퍼져 나왔다.
존나 살벌하네! 시발.
"여우 보지 쫄깃쫄깃 보지!"
나는 마치 기합처럼 크게 외치며 검을 고쳐 잡았다.
"여우 보지 탱글탱글 보지!"
굳은 얼굴의 재클린이 나를 따라서 외쳤다.
"다 죽인다! 다 죽인다! 다 죽여서 시체를 토막 낸 다음 마물들의 먹이로 주마!!!"
사내가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며 기운이 터져 나왔다.
애미 시발.
계획이 너무 구체적이잖아.
사내는 보기보다 계획적인 성격인 것이 분명했다.
너무 자극했나?
사내에게서 마치 각성을 이룬 것처럼 폭발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무슨 너가 주인공이냐고.
마치 자신의 히로인이 악당에게 겁탈당하는 것을 본 주인공처럼 기운이 폭주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끔찍한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여우 보지 탱글탱글 보지!"
눈치 없는 재클린이 신나서 한 번 더 소리쳤다.
재클린은 저 대사가 참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만해 제발.
나는 눈치 없는 재클린을 원망하며 사내에게 집중했다.
사내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내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바로 발 쪽에 기운을 터뜨려 재클린의 앞을 막아섰다.
아슬아슬하게 사내보다 먼저 재클린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쾅!
사내의 검을 막은 손으로 막대한 힘이 느껴졌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게 무슨 시발.
"여우~ 보지~ 쫄기잇!~쫄기잇!... 보지? 으헉!"
박수로 리듬을 넣고 음까지 넣어서 신나게 외치던 재클린이 머뭇거렸다.
음은 또 언제 넣은 거야.
근데 또 우습게도 그 음이 매력적이었다.
입에 착착 붙어서 자꾸만 맴도는 그런 명곡이었다.
닥치라고 병신아.
그만 자극해 시발 더 강해지잖아 이 새끼.
"다 쳐 죽일 거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사내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애미 시발.
"쪼오올깃~ 쪼오올깃! 보지! 여우! 보지!"
닥쳐 좀 시발.
머리에 맴돌잖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