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96화 (96/233)

〈 96화 〉 쓸모 있는 마법.

* * *

"여기서부터는 아직 토벌되어 있지 않아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황실의 문양이 그려진 갑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가려는 케이트를 막았다.

사내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사내의 옆구리에 찬 검집에도 형형색색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사내의 말에 케이트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드숀은 곧 케이트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올 것을 예상하며 몸을 움츠렸다.

"하? 지금 나한테 말한 거야? 네 소속 어디야."

케이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조슈아는 그런 케이트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황실 기사단 4조 소속 알버트입니다."

사내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확실히 저런 젊은 나이에 황실 기사단 4조까지 올라갔다니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케이트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그래봤자 결국 황실의 개 일뿐이니까.

"근데 나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말하네? 눈이 두 개라서 하나 정도는 필요 없나 봐? 응?"

삐딱하게 선 케이트가 도끼눈으로 사내를 올려다봤다.

"... 저는 4조 소속입니다."

케이트의 살벌한 말에 사내가 눈에 띄게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상위 조는 오직 황제의 명령만 듣는다... 사내는 속으로 되새겼다.

황녀의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

"4조는 뭐 황실 소속이 아니야? 4조는 다른 곳 소속인가 봐? 황실 소속이 아니야? 어?! 아직도 눈 그렇게 뜨고 있네? 혹시 우리엘 공화국 출신이야? 어머! 그런 거였어?"

케이트가 발로 사내의 정강이를 툭툭 치며 살벌한 말을 쏟아냈다.

"아닙니다! 저는 제국 출신입니다!! 우리엘 공화국은 우리의 적! 깨부수자!"

케이트의 입에서 나온 공화국이라는 단어에 사내가 다급하게 부인했다.

제국에서 공화국과 연관되면 자기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내의 입에서 공화국 이야기만 나오면 자동으로 나오게 교육된 문구가 튀어나왔다.

"뭐가 아니야? 아니라고 말하면 다 끝나? 어? 아직도 똑바로 서 있네?"

사내의 정강이를 발로 차는 세기가 점점 더 강해졌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사내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케이트를 올려다봤다.

사내가 무릎을 꿇으며 아래에 고여있던 물이 튀며 갑옷의 내부까지 젖었지만 사내는 신경 쓸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응? 죄송하면 다 끝나나 봐? 응? 다 끝나냐고!"

케이트가 소리 지르면서 뒤쪽으로 손짓했다.

"아닙니다!!!"

사내는 어느새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분명 자신은 황제의 명령만 듣는 상위조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뻗댈 수도 없었다.

황족과 관련된 일로 가족의 목까지 날아가는 것은 부지기수니까.

"어?! 눈이 왜 그래? 내가 띠꺼워? 띠껍냐고! 말해봐! 괜찮아~ 말해봐 내가 띠껍지? 응? 쪼끄만게 막 툭툭 건드리니까 화나고 그러잖아?"

케이트가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제국군들은 애써 못 본 척 다른 곳을 봤다.

다만 케이트를 호위하던 황실 기사들만 안쓰러운 눈빛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일행들은 제국군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몇 번 더 소리 지른 케이트도 제국군을 넘어왔다.

그런 케이트를 더 이상 아무도 막지 못했다.

"까불고 있어 짜증 나게."

케이트가 손을 탁탁 털면서 인상을 구겼다.

크뤄어어어!

제국군이 청소한 곳을 넘어서자 곳곳에서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찔끔 놀란 드숀이 슬쩍 일행의 제일 뒤에 숨었다.

언제라도 바로 도망갈 수 있도록 발의 근육을 풀었다.

그렇게 일행은 좌절의 숲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계속해서 나오는 마물들이 비키 혼자 막을 수 있는 양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도 나서서 마물의 처리를 도왔다.

이미 드숀을 제외하고 다들 마물의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물들의 습격을 막은 일행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천천히 다가왔다.

"저것들은 뭐야?"

그들을 제일 먼저 발견한 비키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일행 쪽으로 똑바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전투 준비­"

조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옆에 쉬고 있던 기사들도 일어나 케이트를 둥글게 둘러쌌다.

마침내 그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혹시 처녀십니까?"

그들 중 제일 앞에 선 사내가 비키를 향해 물었다.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

비키가 뒤쪽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처녀십니까?"

사내가 비키에게 다시 질문했다.

"아니?"

비키가 시원하게 웃었다.

"뭐야!! 너 왜 처녀가 아니야!!!"

비키의 대답에 뒤에서 케이트가 발작했다.

"혹시 다른 분들도 처녀가 아니십니까?"

사내가 이번에는 케이트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어어어!! 나는 처녀거든! 처녀라고! 진짜라니까?!"

케이트의 얼굴이 금세 붉어지며 말을 더듬었다.

"무엄하다 어찌 감히 황녀님에게 그런 질문을...? 황녀님...?"

사내에게 화를 내던 조슈아가 그런 케이트의 반응에 눈을 가늘게 떴다.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양손을 앞쪽으로 모았다.

"더러운 비처녀들...! 너희같은 죄인들이 살 공간은 더 이상 없다!!!! 심판이다!!!"

사내의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나 처녀라고!!! 진짜 처녀라니까!! 완전 처녀야!!"

"굳이 저 사내한테 주장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황녀님이 처녀라고 믿습니다. 처녀죠...?"

계속해서 주장하는 케이트를 조슈아가 말리고 작게 물었다.

조슈아의 시선을 외면하며 케이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한 케이트의 반응에 조슈아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시이임판!!!"

"아 시끄러."

소리 지르는 사내의 주둥이에 비키의 손이 거칠게 들어갔다.

다시 나온 비키의 손에는 피투성이의 혀가 길게 뽑혀있었다.

사내의 입으로 피가 튀며 비키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으아아악!!!"

드숀은 그 끔찍한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사람의 혀를 맨손으로 뽑았어 지금!!

사내의 몸도 붉어지며 점점 묘한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다.

비키가 그런 사내를 막기 위해 머리를 터뜨리려 했지만, 사내의 몸이 먼저 부풀어 올랐다.

쾅­

부풀어 오른 사내의 몸이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제일 가까이에 있던 비키에게 강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충분히 견딜만했다.

충격보다는 몸에 묻은 사내의 살점들이 기분 나쁘게 했다.

"시이이임판!!!심판!!!"

사내의 뒤쪽에 있던 사람들도 똑같이 울부짖으며 몸이 부풀어 올랐다.

쾅!

쾅!

쾅!

곳곳에서 사람이 터져나가며 폭발이 주변을 휩쓸었다.

비키는 인상을 찌푸릴 뿐 그 폭발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시원한 통증을 느끼며 비키는 다만 에이든을 만나기 전에 깨끗하게 씻을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쁘니까 빨리 움직이죠."

안드레아의 주변으로 환한 빛의 보호막이 생기며 살점이나 폭발을 막아냈다.

보호막을 타고 피와 살점들이 주르륵 흘렀다.

안드레아는 그런 끔찍한 모습을 감정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는 에이든 님과 다 같이 기도하고 싶어요! 정말 기대된다니까요! 스칼렛도 그렇지? 응? 천박하게 헐떡이고 싶잖아?"

아가사가 앞에 보이는 끔찍한 모습에도 밝게 웃으며 스칼렛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아가사의 손가락 하나가 미묘하게 스칼렛의 엉덩이 사이로 들어갔다.

천박하게 젖어 있기는­

입꼬리를 올린 아가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스칼렛은 아가사의 거침없는 태도에 움찔했지만 반항하지 못했다.

이제 스칼렛은 안드레아보다 아가사가 더 무서웠다.

케이트의 앞에는 어느새 올가가 서 있었다.

올가의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창이 들려 있었다.

"괜찮습니까?!"

"어 저것들이 알아서 치워져서 다행이네. 빨리 가자!"

케이트는 발끝에 묻은 살점을 털어내며 말했다.

"미...미친!!!"

사람들이 스스로 폭발한다니...

지옥보다도 끔찍한 모습에 드숀이 뒷걸음질 쳤다.

자신은 저 미친놈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절대 못 들어간다.

심지어 자신을 제외하고 다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저들도 미친 게 분명했다.

드숀은 인생에서 제일 큰 용기를 내서 일행들의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잡히면 쥐어터지겠지만 그래도 드숀은 살고 싶었다.

하지만 드숀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무도 드숀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쿵­

좆같이 질겼던 마물이 드디어 쓰러졌다.

이 마물이 조금만 더 질겼으면 위험할 뻔했다.

검을 대충 옆에 꽂아두고 쓰러진 마물위에 주저앉았다.

몸의 모든 부분이 통증에 비명 지르고 있었다.

시발 존나 안 뒤지네 진짜.

퉤­

입에 잔뜩 고인 핏물을 뱉었다.

금세 빗물에 씻겨 나갔다.

"하하! 자네 정말 대단하구만­ 보티르를 혼자 해치우다니!"

사내가 나무에서 슬쩍 나와서 내게 다가와 쓰러져 있는 마물을 구경했다.

저 개 쓸모없는 새끼.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순간 머리에 화가 확 올랐다.

"거 시발! 왜 그딴 마법밖에 쓸 줄 모르는 건데요."

"...원래는 다른 마법도 쓸 줄 알았지만... 처녀교의 간부로 오래있다보니까 다른 마법들은 굳이 필요가 없어서 하하! 그나저나 자네 정말 대단하구만!"

사내가 내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마물의 앞에 쭈그려 앉은 사내가 시체를 뒤적거렸다.

내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저 새끼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것도 시발.

"후­"

그렇다고 저 새끼한테 화내봤자 변할 것도 없으니까 애써 기운을 아꼈다.

사내가 품에서 작은 잔을 꺼내 마물의 피를 담았다.

그 흉측한 모습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그거를 왜 담는 거야 시발.

"마시게. 보티르의 피는 피로랑 기운 회복에 특효니까 말이야."

사내가 마물의 피를 가득 담은 잔을 내게 건넸다.

보기만 해도 밥맛이 떨어지는 그 모습에 절대 마시기 싫었지만, 이 상태로 다음 마물을 만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사내에게서 잔을 받았다.

"아! 그리고 굉장히 맛없다고 읽었으니까 코를 막고 마시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손에 들린 잔을 한 바퀴 돌려서 피를 확인했다.

냄새부터 비린내가 진동했다.

시발 내가 마물의 피를 마시는 날이 올 줄이야.

한 손으로 코를 막고 한 번에 들이켰다.

피를 한 번에 다 들이킨 내게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냥 마시지 말고 마물한테 찢겨 죽을걸.

마물의 피는 그 정도로 맛없었다.

그래도 효능은 있는 듯 차가웠던 몸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마치 술 몇 잔을 연거푸 들이킨 듯 열이 올랐다.

"애미 시발 존나 맛없네. 그쪽은 안 마십니까?"

효능과는 별개로 찌그러진 인상이 도저히 펴지지 않았다.

빈 잔을 사내에게 건넸다.

너도 마셔 개새끼야.

"하하... 나는 싸우지도 않았고­ 하나도 안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도 조금 마셔야겠지?"

사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다가 조용히 검 손잡이를 잡는 나를 보며 말을 바꿨다.

그래. 좆같은 거를 나 혼자 마실 수는 없지.

나는 검 손잡이를 꽉 쥔 채로 사내가 피를 들이키는 걸 구경했다.

조금이라도 남기기만 해봐.

사내는 토악질하면서 꾸역꾸역 피를 다 마셨다.

"시발! 존나 맛없구만 이거!"

웩­

사내가 헛구역질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이 우스워 소리 내 웃다가 다시 피비린내가 맡아져 토악질했다.

우웩­

둘 다 그렇게 한참이나 토악질을 하고 나니 조금 진정됐다.

"그래도 책에서는 마실 만은 하다고 들었는데 미안하네. 하하"

한참이나 토악질해 둘 다 얼굴이 핼쑥해졌다.

"다음부터는 먼저 마셔요. 남한테 권하기 전에 시발."

몇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야겠군. 이 정도일 줄이야..."

그르릉­

낮은 울음소리가 멀리에서 들렸다.

마물에 꽂아놓은 검을 빼냈다.

마물의 피 효과 덕분에 몸 상태가 괜찮았다.

"이번에는 노래라도 불러봐요. 웬만하면 여자에 관련된 거로."

기운을 몸에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래? 내 노래는 정말 별로일 텐데... 저 마물 피랑 비슷할 거네. 내 장담하지."

"그럼 시발 뭐라도 해봐요. 성의의 문제잖아요 성의 시발."

세상에 마물의 피와 비슷한 노래라니.

그 재...뭐시기보다 더 쓸모없는 놈이 있을 줄이야.

검을 공중에 휘둘러 묻어있던 마물의 피를 털었다.

사내가 내 대답에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는 척했지만 아마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컹컹!

큰 개가 짖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늑대같이 생긴 마물들이 뛰쳐나왔다.

성인 남성만 한 덩치의 마물들이 내게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왔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 같네.

다섯 마리 정도 되나.

다리에 기운을 터뜨리며 앞으로 뛰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회색빛의 검기가 가장 앞에 선 마물의 옆구리를 길게 베어냈다.

방금까지 녀석의 몸 안에 있던 따뜻한 피가 물씬 뿌려졌다.

우웩­

그 피비린내에 헛구역질하며 옆에서 달려드는 마물의 주둥이를 피했다.

왼손으로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땅에 패대기치고 검을 깊게 찔러넣었다.

검이 살을 파고드는 좆같은 감촉을 느끼며 더욱 깊게 찔렀다.

잠시 발악하던 녀석이 금세 잠잠해졌다.

순식간에 내게 두 마리나 죽자 나머지 녀석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지성이 있는 건가?

검을 뽑으며 가장 가까이 있는 녀석에게 뛰었다.

뽑은 검에서 피가 땅으로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 피는 피에 금세 씻겨나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녀석의 쩍하고 벌려진 주둥이에 검을 찔러넣고­

뒤에서 내게 달려드는 놈의 주둥이를 피하고자 상체를 숙였지만,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동작이 느렸다.

어깨에 불타는 고통을 느끼며 검을 뽑아 녀석에게 박아줬다.

존나 아프네 진짜.

고통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 강해졌을지도?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은 자세를 낮추며 눈치를 보다가 뒤돌아 도망갔다.

굳이 쫓고 싶지는 않았다.

애미 시발.

존나 힘드네.

기운을 갈무리하며 주저앉았다.

전투의 긴장이 끝나자 피로가 다시 몰려왔다.

검이 무거워 땅에 떨어뜨렸다.

미친 노인네가 봤으면 개지랄했겠구만.

"정말 대단하구만... 하하!"

어딘가에 숨어있던 사내가 전투가 끝나자 슬금슬금 나타났다.

저거 진짜 개 얄밉네 시발.

"너무 그렇게 보지 말게... 그래도 유용한 마법이 생각났으니까!"

사내가 멋쩍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유용한 마법이요?"

미심쩍은 마음에 사내를 흘겨보며 물었다.

"그래! 내 생명력을 조금 소모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 숲에서 나가지 못하면 쓸모없는 생명력 아닌가? 잠시만 기다리게."

생각보다 진중해 보이는 사내의 태도에 일단 미심쩍은 마음을 거뒀다.

사내는 눈을 감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제법 있어 보여 무슨 마법이 나올까 기대됐다.

마침내 사내의 중얼거림이 점점 작아지고.

사내가 눈을 번쩍 뜨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사내의 눈에서 순간 빛이 나며 나를 향해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 시발 간부라며.

그럼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아무리 병신같은 처녀교의 간부라고 하더라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사내를 쳐다봤다.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기운이 내게 흡수되었다.

무언가 충만한 기분이 물씬 느껴졌다.

이거 내 기운을 증가시켜주는 건가?

서둘러 몸속에 있는 기운을 확인했지만, 양은 그대로였다.

뭐지?

인상을 찌푸리며 몸 곳곳을 확인했지만, 전혀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묘하게 몸에 활력이 증가한 것 같기는 한데...

사내는 마법을 사용하기 전보다 몇 년은 늙은 듯한 안색이었다.

저 꼴을 보니 진짜 생명력을 소모해서 사용한 마법 같은데...

왜 차이가 느껴지지 않지?

"처음 해보는 마법이었지만 보기 좋게 성공했네!! 역시 내 감은 아직 죽지 않았어! 하하! 근데 소모되는 생명력이 너무 커서 두 번은 못 하겠군."

사내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근데 무슨 마법인데 이게."

미묘한 활력 말고는 차이를 도무지 모르겠다.

사내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정력 증가 마법이라네! 이제부터 자네는 밤새도록 교미를 해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이며! 한 번에 열 명의 여자도 안을 수 있을 거야! 와하하!"

사내가 자신감 가득한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새끼인가 진짜.

지금 시발 마물이랑 싸우는데 왜 정력 증가 마법을 걸어 시발.

심지어 사내는 마법을 쓴 이후에 피곤하다고 주저앉았다.

굳이 지금 힘까지 다 쓰며 정력 증가 마법을 거냐고.

[한 번에 열 명의 여자라니 너무 적은 데. 뭐 지금보다는 낫겠지.]

[크흠. 신사라면 응당 한 명의 숙녀와 관계를 가져야 하는 법이네.]

하지만 내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뭐 그래도 정력 증가면 좋기는 하네.

이거 영구적인 건가?

"후­ 좀만 쉬었다 가지."

사내가 젖은 머리를 털었다.

"근데 이거 영구적인 마법입니까?"

묘하게 느껴지는 활기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렇다네. 내 생명력으로 건 마법이니까 말이야. 어때 마음에 드는가?"

사내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묘하게 기운이 생기는 것 같기는 하네요."

"나중에 사용해보고 효과 좀 알려주게."

사내의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

"그 정도야 뭐."

이 정도면 비키를 지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입꼬리가 더욱 높게 올라갔다.

크후우우우우우!

또 마물의 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여기서 쉬고 계시죠. 제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아. 혹시 또 다른 마법은 없습니까?"

검 손잡이를 다시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묘하게 도는 활기가 내게 힘을 주었다.

"... 생각해보겠네."

사내가 내 검을 보더니 작게 대답했다.

"예 그럼 쉬고 계십쇼."

사내가 더 괜찮은 마법을 기억해내면 좋겠는데...

이제야 좀 사내를 지켜줄 마음이 생겼다.

"쿠와아아앙!"

나무 사이로 2미터는 될 것 같은 곰처럼 생긴 마물이 튀어나왔다.

근데 곰이 무슨 갑옷을 입고 있어.

마물이 한 손에 철퇴처럼 생긴 흉측한 무기를 들고 내게 두 발로 뛰었다.

마물이 뛸 때마다 발 주변에서 빗물이 튀었다.

기운을 돌리며 나도 마주 달려 나갔다.

질척거리는 땅의 감촉이 거슬렸다.

묘하게 기운의 속도가 빨라진 것 같기도 하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익숙한 회색빛의 검기가 치솟으며­

울부짖는 마물의 가슴팍으로 뛰었다.

[점점 더 검기를 다루는 게 능숙해지는군. 좋은 징조라네 소년.]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천재 에이든인데.

[크흡...]

­

"애미 시발 어떻게 되먹은 숲이야 이게!"

그 좋던 검이 마물들의 살과 뼈를 가르며 무뎌졌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거의 쓰러지듯이 나무에 기대앉았다.

움직이느라 거칠어진 숨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마물을 만나고 잠깐 숨을 돌리면 또 괴상한 마물이 울부짖으면서 튀어나왔다.

정말 쉴 새 없이 마물과 뒹굴었다.

심지어 같이 있는 사내는 전투만 벌어지면 냉큼 나무 뒤로 숨어버리니 나 혼자서 모든 마물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거 진짜 죽을 수도 있겠는데?

내 속에 있는 기운이 점점 더 바닥나고 있었다.

조금씩 회복되던 것도 이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 고생했네."

사내도 이제 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진짜 못 싸워요. 기운이 없어요. 그거 있어요? 아까 줬던 그 애액으로 만들었다는 거? 그거라도 마셔야 할 거 같은데."

맛이 별로기는 해도 마시면 적게라도 기운이 나는데.

내 가슴팍에 길게 난 마물의 발톱자국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거는 이제 없네. 꽤 귀중한 거라 나도 하나밖에 없었어. 큰일이군..."

사내가 내 상처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저 없었으면 어떻게 이 숲에서 나가려고 한 거예요?"

손에 빗물을 받아 상처에 뿌려서 피를 닦았다.

흐려졌던 정신이 칼로 찌르는 것만 같은 통증에 돌아왔다.

마지막에 다리가 풀려서 위험했어.

조금만 더 깊었으면 저 마물이랑 사이좋게 누워있을 뻔했다.

"여우랑 같이 탈출할 생각이었으니까. 마물따위가 문제 될 리 없었지."

사내의 입에서 나온 여우라는 단어에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바로 어제 일이라니.

내게는 마치 몇 주나 된 일처럼 느껴졌다.

"이거라도 씹게. 고통을 줄여줄 걸세."

사내가 옆에서 풀을 몇 개 뜯어서 내게 내밀었다.

저번 피 사건이 있어서 미심쩍었지만,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었다.

사내가 건네준 풀을 씹자 알싸한 향이 풍기며 통증이 덜해졌다.

"어떤가?"

사내의 목소리에서 묘한 의문이 느껴졌다.

이 새끼 확실하게 알고 준 거 맞지?

"확실히 통증이 덜해지기는 하네요. 좀 쓰기는 하지만 향도 나쁘지 않고."

입을 열자 알싸하면서 상쾌한 향기가 주변으로 퍼졌다.

"그게 맞았군! 하하 약간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야!"

그냥 대충 준거네 개새끼.

사내도 몇 개 더 뜯어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타닥타닥­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우리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좆됐네 이제 진짜 좆밥 만나도 질 것 같은데.

일어나려는 나를 사내가 부축해줬다.

"인간 발소리에요 이번에는."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검을 잡았다.

"신도들일 수도 있겠군."

사내의 얼굴이 착잡해졌다.

"그래도 간부잖아요. 돌려보낼 수 있죠?"

존나 쓸모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부잖아.

"모르겠네. 분명히 내가 아는 계획에서는 이쪽으로 오지 않을 텐데 말이야."

사내가 불안한지 손으로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억지로 손에 힘을 주어 검 끝을 세웠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면서 흐려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마침내 바로 앞까지 가까워진 발소리가 멈추고.

나무 사이로 익숙한 오렌지가 튀어나왔다.

"어?! 평민?!"

드숀의 멍청한 두 눈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볼에 있는 주근깨가 우습게 뭉쳐졌다.

"또 너냐 드숀!! 왜 하필 너야!! 이 좆같은 새끼야!!!"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가 뻐킹 어글리 오렌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폭발해버렸다.

뒤지기 바로 직전에 마주친 게 왜 하필 쓸모 없는 드숀이냐고 시발!!!

드숀의 눈동자에 억울함이 가득 담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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