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드숀의 순결.
* * *
위기를 느낀 드숀은 일행에게서 몰래 도망쳤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주변에서는 자꾸만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드숀은 그 마물들에게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공포에서 정신이 차려진 드숀이 다시 일행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후였다.
드숀은 최대한 소리를 낮추고 기억을 더듬어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들린 인기척이 일행이라 생각해 황급히 달려온 참이었다.
근데 왜 여기서 에이든이 나오는 거지?
그리고 이 새끼는 왜 욕부터 박는 거야.
지금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내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데.
드숀은 에이든의 욕설에 서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런 지옥 같은 곳을 왜 왔는데!
"이 건방진 평민 놈이...!!"
내 욕지기에 드숀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맞받아쳤다.
나는 드숀의 말을 무시하고 혹시 드숀의 뒤에 다른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다.
정말 뻐킹 어글리 오렌지 혼자였다.
이 상황에 만난 사람이 좆밥 드숀이라니 나는 죽을 운명인 게 분명했다.
"아니... 근데 너가 왜 여기 있어?"
허탈함에 손이 풀리면서 들려있던 검이 떨어졌다.
피투성이가 된 내 주변을 확인한 드숀이 흠칫 놀라며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뭐 하는 거야 저 병신.
"너 구한다고 애들이 모여서 가길래 나도 껴서 왔지."
드숀이 자신의 검 손잡이를 잡으며 대답했다.
"나 구한다고? 누가? 루나?"
그 좆같은 아카데미에서 나를 구하러 올 사람이 있나?
"비키랑 키아나랑 황녀님이랑 등등 뭉쳐서 왔어. 으 근데 그 피들 다 뭐냐?"
드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못생긴 얼굴이 더욱 못생겨졌다.
비키는 뭐 나랑 교미한 사이니까 그럴 만 하고.
키아나는 내 사저니까 구하러 올 만하지.
케이트도 어찌 되었건 나랑 교미했으니까.
그렇게 구성된 거였구나.
나 제법 많은 친구가 있네.
"여기 마물들 존나 나오잖아. 그래서 다른 애들은 어디 있는데?"
대충 주변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다시 앉았다.
일단 지금은 움직일 몸 상태가 최악이라 다른 마물들이 나타나기 전에 최대한 쉬어야 했다.
"저기 저쪽에 있을 거야. 아마..."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말하던 드숀이 불안하게 뒷말을 흐렸다.
아니 애초에 왜 애들이랑 떨어져 나온 거지.
이 새끼 개 좆밥이잖아.
"너는 왜 혼자 다니냐? 여기 마물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냥 나눠서 찾아보는 거지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았다니까 하하!"
드숀이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대답했다.
"오! 자네의 친구인가 보군! 반갑네! 나는 스칼이라고 하네."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내가 드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하고 있었네.
뭐 굳이 남자 이름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반갑습니다! 드숀이라고 합니다. 하하! 스칼님 굉장히 잘 생기셨네요!"
드숀이 웃으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하하! 칭찬 고맙네! 자네도... 나쁘지 않게 생겼군! 하하!"
스칼이 말하다가 잠깐 멈추고 다시 말했다.
저 새끼 지금 주저한 것 같은데.
확실히 드숀에게 잘 생겼다고 말하는 건 조금 놀리는 거 같기는 하지.
"야 드숀 힐링 포션 같은 거 없냐? 다음 마물 나타나면 나 검 못 들 거 같은데."
내 옆에 있는 마물 시체를 검으로 찌르며 드숀에게 물었다.
"... 이걸 네가 잡았다고? 스칼 형님이 아니라?"
드숀은 마물 시체에 깜짝 놀랐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응시했다.
언제 봤다고 벌써 형님이야.
둘이 같은 병신이라 통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 새끼 개 쓸모 없는 새끼야.
"그렇네. 나는 전투 능력이 전혀 없거든. 다 저기 있는 친구가 잡은 걸세."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구라치지 마! 너가 이런 흉악한 마물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할 리가 없잖아!"
나를 쳐다보는 드숀의 눈에서 불타는 듯한 질투가 느껴졌다.
항상 남을 질투만 하던 나였는데.
내가 저런 눈빛을 받으니 기분이 좀 묘했다.
확실히 내가 강해지긴 했지.
그렇다고 굳이 좆밥의 말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힐링 포션 있냐고."
피로를 느끼며 드숀에게 다시 물었다.
"진짜 저 좆밥 평민이 이 마물을 잡았다고요?!"
내 무시에 드숀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하하... 좆밥이라니. 저 친구는 확실히 강하다네. 지금까지 마물들을 다 저 친구가 처리하기도 했고. 내가 본 저 나이대의 청년 중 제일 강한 것 같군."
사내가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잔뜩 인상을 쓴 드숀이 나를 노려봤다.
진짜 좆같이 생겼네.
한대 쥐어패고 싶었지만,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던 드숀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껏 고급스러워 보이는 병에 빨간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도 귀족이라고 포션을 들고 다니네.
꽤나 귀한 포션인지 드숀이 포션을 들고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아니면 마물 나타나면 너가 잡아도 되고."
좆밥 드숀은 내게 포션을 건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 마셔라! 평민!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포션이니까!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마시도록! 이 큰 은혜는 너의 평생에 걸쳐서 갚도록 하여라!"
내 말을 들은 드숀이 포션을 냉큼 내밀면서 애써 근엄한 척 했다.
드션이 준 포션의 뚜껑을 열었다.
포션에서 향긋한 딸기향이 물씬 풍겨졌다.
약간의 갈증을 느끼며 내 가슴에 난 상처에 포션을 조금씩 뿌렸다.
근데 효능이 아까 사내가 준 것보다 별로였다.
가문의 포션이라는 드숀의 거창한 설명과는 다르게 중급 포션 정도의 성능이었다.
이게 가문의 포션이면 저 새끼 가문은 얼마나 쓰레기인 거야.
괜히 술집에서 쳐맞던 게 아니었네.
그래도 표선을 부은 부분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어져 갔다.
흉터는 남겠지만 상남자의 몸에 흉터는 명예니까.
앗! 따가 시발.
따끔거리는 통증에 몸을 떨었다.
그래도 포션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에 모든 흉터에 바를 수 있었다.
상처들이 치료되며 약간 간지러운 느낌이 올라왔다.
남은 포션은 입에 머금어서 헹구고 삼켰다.
향처럼 딸기 맛이 느껴지며 기력이 서서히 되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점점 차오르는 기운들을 회전시키며 몸 상태를 회복시켰다.
살기 위해서 계속 기운을 바닥까지 끌어서 사용하다 보니까 기운의 운용이 전보다 훨씬 능숙해졌다.
이제는 순식간에 검기를 뽑아낼 수 있었다.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소년을 성장시킬 뿐이지. 후훗]
아 나도 그거 책에서 읽었는데.
꽤 좋은 문구였지.
[크흠...그렇군.]
기운을 돌리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자 몸 상태가 점점 괜찮아졌다.
역시 포션이 최고야.
돌아가면 어떻게든 포션을 구해서 들고 다녀야겠다.
일어나서 몸을 풀었다.
이 정도면 살아나갈 수도 있겠는데.
옆에 떨어진 검도 다시 주웠다.
윤기 나던 검신은 반복된 전투에 윤기를 잃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처녀에는 심,기,체 세 종류의 자격이 있다는 거야."
"심기체요?"
내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두 명이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얼핏 들은 단어만으로도 좋은 대화가 아님을 직감했다.
"애들한테 가자. 안내해 드숀."
검을 흔들어 검에 묻은 피를 날렸다.
"잠깐만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까! 그래서 심기체라는 것이 어떤...?"
"심이란 자네를 만나기 전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 적이..."
이 미친 모지리 새끼들.
내가 검을 쥐고 다가가자 둘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가면서 하시죠!"
드숀이 냉큼 걸음을 옮겼다.
"하하 그러지! 일단 심은 그런 것이고 그다음이 기인데 기란 기술을 뜻하네! 처녀란 응당 교미에 대한 기술을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게 기의 논리이네. 하지만 번외로 처녀 빗치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런 드숀의 옆에 사내가 붙어서 신나게 설명했다.
둘이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이 신나게 떠들며 걸음을 옮겼다.
근데 쟤 길은 알고 있는 거야?
자신감 있게 걷는 드숀의 뒷모습이 못내 못 미더웠다.
***
"애미 시발련! 길치 새끼! 좆밥새끼! 무능력한 새끼! 좆같은 드숀!!!"
거칠게 욕을 퍼부으면서 내게 달려드는 마물의 배를 갈랐다.
꼭 원숭이처럼 생긴 마물의 배가 갈라지며 노란색 피가 흥건하게 쏟아졌다.
도대체 뭘 먹길래 피가 노란색인 거야 시발.
배가 갈라진 마물을 발로 걷어찬 다음 옆에 있던 마물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나무에 처박았다.
마물의 머리가 터지며 손을 타고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다지 좋은 감촉은 아니었다.
"우끼끼끾!"
어느새 내 등 뒤에 붙은 마물이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개새끼 내 소중한 머리를.
다급하게 검을 뒤로 찔러넣어 녀석을 해치웠다.
그렇게 몇 마리의 마물을 순식간에 해치우자 나머지 녀석들이 살짝 거리를 벌렸다.
전에 만났던 마물들보다 훨씬 지성이 있는 녀석들 같았다.
이미 우리 주변은 마물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그 수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시발 드숀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진짜.
"괜찮나 자네?! 나는 그래도 아직 괜찮다네!"
사내는 이미 여기저기를 뜯겼는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주먹을 쥐고 내밀고 있었는데 딱봐도 좆밥 같았다.
진짜 좆됐네.
저 병신 드숀을 믿고 따라간 내 잘못이지.
"으아아악! 나 잡혀간다아아아!! 살려줘!! 에이드으으은!!! 나 잡혀가아아아!!!!"
드숀이 마물들에게 발목을 잡혀서 끌려가며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다.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것 같았지만 좆밥 드숀이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드숀의 주변에 있는 마물들은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신나게 끽끽대며 박수쳤다.
"이 마물의 이름은 베일드 몽키라네. 사람을 사냥하면 성별에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교미를 한 다음 먹어 치운다고 하더군... 그래서 베일드 몽키한테 당한 시체를 보면 그곳이 헐다 못해 터져있다고 전해지네. 남자는 항문이..."
마물에 대해 설명하는 사내의 눈빛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사내의 모습에서 마물에게 잡히면 스스로 혀를 깨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미친 마물한테 교미를 당한다니.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나는 검의 달아버린 끝부분을 확인했다.
검의 이가 많이 나가기는 했어도 검기로 덮으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잡힐 것 같으면 제가 목을 베어드릴 테니까."
사내가 내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한 번에 베면 아프지는 않겠지.
물론 나는 베여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끾끾끾!!!"
"안돼애애애!!! 내 바지이이이!!!!"
단말마의 비명을 남긴 드숀이 마물들 사이로 사라졌다.
못생겼지만 심성도 곱지 못했던 내 아는 사람의 죽음에 작은 애도를 표했다.
내가 아는 죽음 중에서 저 죽음이 제일 고통스럽지 않을까.
"흐어어억!!!"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드숀의 비명에 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위기임을 직감했다.
내 순결을 지키기 위해 검기를 필사적으로 피워올렸다.
회색빛의 검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타올랐다.
"덤벼!! 이 발정난 원숭이들 새끼야!!!"
힘껏 소리를 외쳐서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수가 많은 것은 문제지만 그 하나하나가 강하지는 않았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하면 살아남을 수도 있어.
"끼끼끼끾!!!"
마물들이 슬금슬금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내 거리가 줄어들자 우리의 주변에 있던 마물들이 한 번에 달려들었다.
거의 모든 부분을 빼곡하게 채워 달려드는 마물들의 모습이 마치 촘촘한 그물 같았다.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최후를 직감했다.
나는 황급히 검으로 사내의 목을 치기 위해 뻗었다.
사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검을 향해 목을 내밀었다.
내 회색빛 검기가 사내의 목을 베기 바로 직전에
"우끾?"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공중에 있는 모든 마물들이 멈췄다.
나도 황급히 사내의 목을 베려던 것을 멈췄다.
내 검기에 찔린 사내의 목에서 피가 찔끔 흘렀다.
"쓰레기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공중에 있던 마물들이 한 번에 터졌다.
터지면서 흐른 피가 비와 섞여서 노란색 비가 내렸다.
수많은 마물들이 한 번에 터지는 모습에 내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렸다.
좆같은 강간 마물 새끼들!
그 사이로 구원자처럼 루나가 나타났다.
나를 발견한 루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뛰어왔다.
비 사이로 나타난 루나의 미소에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내게 다가온 루나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를 세게 안으면서 시간이 다시 흘렀다.
내게 안긴 루나에게서 익숙한 책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루나를 만나니 우습게도 살았다는 안도가 들었다.
한때는 루나가 제일 무서웠는데 말이야.
"에이든에이든에이든"
내 옷은 이미 피와 땀에 가득 절여 있어서 더러울 텐데도 루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얼굴을 파묻었다.
킁킁대며 내 냄새를 맡는 루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루나는 비를 한 방울도 안 맞은 것처럼 깨끗했다.
내 품에 안긴 루나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이나 얼굴을 내 가슴에 비벼댔다.
나는 그런 루나의 모습에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정감을 느끼며 하염없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흠"
옆에서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내게 손짓했다.
"루나?"
아직도 내 가슴팍에서 열심히 냄새를 맡는 루나를 불렀다.
"응응응 에이든! 이제 걱정하지 마! 내가 왔으니까"
나를 올려보는 루나의 눈동자에서 간질거리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네의 애인인가? 저런 미인이 애인이라니 자네 생각보다 능력이 굉장히 좋군."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말이야.
사내가 짐짓 점잖은 체를 하며 물었다.
사내의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도 일단 구해줬으니까 애인이라고 해야 하나?
"...응응응! 애인! 사랑하는 사이! 그렇게 보이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루나가 내 품 안에서 발끝을 쫑긋 세워 나와 눈을 맞추었다.
루나의 투명한 눈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내의 물음에 기분이 좋아진 루나가 자꾸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루나에게 애써 웃어줬다.
내 웃음을 본 루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미소가 그렇게 치명적인가?
나중에 거울 앞에서 한번 웃어봐야겠네.
"루나 다른 애들은?"
잔뜩 흥분한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시켰다.
"다른 애들?"
내 물음에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허어어어엉!!!"
그때 나무 사이에서 드숀이 엉엉 울며 나타났다.
아 맞다 쟤가 있었지.
드숀은 찢어진 바지를 손으로 애써 잡으며 걸어왔는데 그 걸음걸이가 묘하게 이상했다.
드숀이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리를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그 모습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 루나의 눈을 가릴까 했지만, 루나는 애초에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으흐으으윽... 으허어어엉!! 아버지이이이!!!! 어머니이이!!!!!"
드숀이 거칠게 내리는 빗물을 맞으며 정말 서럽게 아주 슬프게 목놓아 울었다.
사내와 나는 그런 드숀을 애써 못 본 척했다.
그것이 남자들 사이의 도리였으므로.
"에이든에이든에이든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루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결을 잃은 드숀의 모습을 보고 나자 나를 구해준 루나가 더욱더 고마웠다.
평소였으면 소름끼쳤을 루나의 대사였지만 오늘은 사랑스럽게 들렸다.
"고마워 루나 구해줘서."
내 진심을 듬뿍 담아서 루나에게 전했다.
하읏
내 말을 들은 루나가 몸을 크게 부르르 떨면서 쓰러졌다.
나는 그런 루나를 자연스럽게 안아줬다.
***
"여기가 아닌가?"
방금까지 인간의 한 부분이었던 것들이 잔뜩 뿌려져 있는 곳에 서있는 비키가 중얼거렸다.
비키의 온몸에는 이미 피가 잔뜩 묻어서 마치 빨간 물감통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비키가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손으로 닦은 다음 두리번거렸다.
키아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본 끔찍한 모습들과 추악한 감정들에 지친 상태였다.
이런 끔찍한 곳에서 사제를 납치하다니.
분명 이들은 사제 안에 담겨있는 것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조급한 마음을 느끼며 키아나는 검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래도 이제 곧 사제를 찾을 수 있으리라.
키아나는 날카롭게 기세를 갈무리하며 중얼거렸다.
사제는 자신이 지킬 것이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여기였는데!! 왜 없는 거냐고!!!"
눈 밑이 퀭해진 케이트가 짜증 내며 가슴 안에서 지도를 꺼냈다.
"황녀님! 거기에 물건을 넣고 다니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조슈아가 가슴 사이에서 지도를 꺼내는 케이트의 모습에 황급히 다른 이가 보지 못하게 가렸다.
"봐봐! 맞잖아. 여기! 여기 보면 동굴 입구도 있고!!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는데! 에이든은 어디 있는 거야!!"
조슈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케이트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발 가슴을 조금..."
지도를 꺼내느라 약간 삐져나온 케이트의 가슴을 조슈아가 갈무리했다.
"혹시 에이든 님을 아시나요?"
몸이 조각조각 난 상태라 분명 죽어야 하는 게 마땅한 모습이었지만 사내는 살아 있었다.
말 그대로 억지로 살아만 있었다.
그런 사내의 앞에 안드레아가 쪼그려 앉아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죽여줘..."
사내의 목에서 바람빠지는 소리가 나며 애원했다.
사내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싶었지만, 앞에 있는 여자가 자꾸만 깨웠다.
"다시 묻겠습니다. 에이든 님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안드레아가 그런 사내에게 열심히 신성력을 불어 넣으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죽여줘 제발 죽여줘..."
사내는 이미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나간 듯했다.
"끄아아아악!!!"
안드레아가 눈을 감는 사내의 구멍 난 목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휘저었다.
사내가 끔찍한 고통에 몸을 뒤틀며 비명 질렀다.
"똑바로 들으세요 에이든 님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내의 목에서 나온 안드레아의 손가락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 모르니까 제발 죽여줘... 이 끔찍한 신성력을 거둬줘...!"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 에이든 님을 들은 적 없습니까? 말하지 않으면 죽을 수 없어요."
안드레아는 무심한 눈으로 사내에게 다시 질문할 뿐이었다.
히끅
스칼렛은 살벌한 안드레아의 모습을 뒤에서 멍하니 쳐다봤다.
"스칼렛은 이 상황에서도 흥분되나 봐요? 진짜 천박하다"
아가사가 이죽거리며 스칼렛의 엉덩이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조금씩 움직였다.
일행의 뒤에서 사내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케이트에게 다가가려는 사내를 호위하던 기사가 막았다.
"무슨 일인가?"
기사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그게 황녀님이 찾으신다던 분의 성함이 에이든 맞나요?"
기사의 흉흉한 기세와 주변의 끔찍한 풍경에 사내가 몸을 움츠리며 말을 더듬었다.
사내의 입에서 나온 에이든이라는 단어에 모든 사람이 집중했다.
안드레아도 신성력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를 응시했다.
안드레아가 피가 잔뜩 묻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끄으윽 흐어
사내는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죽음을 가질 수 있었다.
"에이든이 왜?!"
케이트가 냉큼 사내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사내보다 훨씬 작은 키의 케이트가 멱살을 잡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케이트의 성격을 아는 이들은 웃지 못했다.
"그 에이든이라는 분이... 부넬라 성에 무사히 도착하셨다는데요...?"
사내가 케이트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대답했다.
"납치된 새끼가 왜 거기 가 있냐고!! 대답해!!!!"
케이트가 사내의 멱살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멋지게 구해내고 고백을 받으려던 케이트의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그게 드숀이라는 분이 구출하셨다고..."
사내는 이해 못할 황녀의 분노에 사지를 덜덜 떨었다.
"드숀이 누군데!!!"
케이트가 비명처럼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행들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고민했지만, 아무도 드숀이 누군지 떠올리지 못했다.
"드숀이 누구냐고!! 걔가 뭔데 에이든을 구하냐고!!!"
다만 일행들 모두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