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흑 마법사의 개혁자였던 것.
* * *
수녀들의 어색한 애무에 사정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안드레아가 수건으로 소중하게 닦더니 냉큼 사라졌다.
그러자 남은 두 명도 서둘러서 안드레아를 따라 나갔다.
"저는 아가사 수녀에요. 에이든 님!"
아가사가 나가기 전에 고개를 빼꼼 넣더니 해맑게 웃고 나갔다.
나는 수녀들에게 대딸을 받았다는 끔찍한 자괴감을 느끼며 바지를 올렸다.
미친 치료 받는데 몇 번 주물렀다고 흥분해 버리다니.
나를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안드레아 수녀에게 내 성욕까지 처리하게 했다.
도대체 나는 뭐가 문제일까.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면서 손을 움직이던 수녀들이 생각나 내 죄책감을 더욱 키웠다.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씻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숙소는 방 안에 씻는 곳이 있었다.
머리에 찬물을 붓고 나니까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그래, 어차피 이미 발생한 일이고.
이게 처음도 아니고 뭐 내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니까.
그 손길들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언제 미인 세 명한테 한 번에 대딸을 받겠어.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몸을 헹궜다.
피로가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기분이 다시 좋아진 나는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샤워를 마쳤다.
똑똑
샤워하고 밖으로 나와서 몸을 말리는 데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키인가?
기대를 하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아까 케이트와 있던 흰 머리의 여자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아직 상의를 입고 있지 않던 나는 당황해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여자의 흰 손이 문을 잡았다.
내가 아무리 힘을 줘도 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무... 무슨 일이시죠?"
당황해서 말을 자꾸 더듬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살짝 민 다음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 나도 모르게 비켜섰다.
이 여자는 내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알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 너가 이 방 써라.
난 간다.
나는 여자를 힐끗 보고 나가기 위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나가면 죽어."
높낮이가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여자가 중얼거렸다.
"아하하 문 닫으려고 한 거에요. 여기가 제 방인데 어디를 가겠어요."
눈물을 머금고 방문을 닫았다.
근데 나간다고 죽인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거.
문을 닫기 전에 누구라도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복도를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씻느라 검은 침대 옆에 놓여있었다.
검보다 여자와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검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씻을 때도 검을 들고 들어가야 하나.
여자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거운 발을 움직여 여자의 앞으로 가서 섰다.
"무슨 일로...?"
나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물론 끝이 살짝 올라간 내 눈 때문에 효과는 없을 테지만.
"이름?"
여자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질문했다.
"에이든입니다."
나는 두 손을 공손하게 앞에 모으고 대답했다.
"직업?"
"용사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종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교라도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넓고 열린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답을 하다가 여자의 눈썹이 살짝 움직인 것 같아서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부모님?"
"고아입니다."
내 대답에 여자의 눈썹이 살짝 모였다.
부정적인 것 같은 여자의 반응에 괜스레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나를 취조하고 있었다.
대답만 잘하면 별일 없겠지...?
"용사 될 건가?"
"일단은 그렇지 않을까요? 용사 아카데미 학생이니까... 네! 당연하죠! 세상을 구하는 용사! 마왕도 쳐부수고! 마물들도 다 쳐부수는 그런 멋진 용사가 될 겁니다! 하하!"
감정 표현이 없는 여자라 눈썹이 살짝만 움직여도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포닌이 빠졌다는 사내에 대해 알아보거라. 만약 그 사내가 에포닌보다 부족하다거나 심성이 곧지 않다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며 올가는 생각에 빠졌다.
아직 용사 아카데미 학생에다가 귀족도 아니고 부모도 없고 종교도 없다.
심지어 미래에 대해 야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곧은 신념을 가졌는가?
지금 자신의 눈치를 연신 보며 말을 바꾸는 거로 봐서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남자의 얼굴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평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눈매 때문에 인상이 나쁜 쪽에 속했다.
올가가 북부에서 벗어난 것이 처음이기는 하지만 미적 감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부진 남자의 몸은 좋은 편에 속했다.
도대체 이런 남자를 에포닌 님은 왜 좋다는 거지?
심지어 아까 남자의 방에서 본 상황만 봐도 남자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여자관계도 복잡해 보였다.
아까 봤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다 미인에다가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 여자들이 왜 이 남자에게?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이성에 대해 관심이나 경험이 없는 올가는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모든 지표가 이 남자는 구제 불능의 쓰레기라고 알려주고 있었는데, 다른 여자들이 매달리고 있다니.
올가는 자신의 판단이 올바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올가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면서 자신의 눈치를 보는 남자를 관찰했다.
실력은 나이에 비해 나쁘지 않았지만, 북부에 가면 그렇게 뛰어난 실력도 아니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단 한 수에 남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여자들이 들러붙은 것을 보면 남자에게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일은 왕께서 특별히 자신에게 내린 임무.
자신은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한다.
"그... 약간 방이 쌀쌀해서 옷을 입어도 될까요?"
남자가 눈치를 연신 보며 물었다.
남자의 시선을 보니 침대 옆에 세워진 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같잖은 생각이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남자가 검을 든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침대 옆으로 다가가더니 슬그머니 검을 집었다.
제 딴에는 내가 눈치 못 채게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 훤히 보이는 동작이었다.
천천히 손을 움직이던 남자가 조용하게 검 손잡이를 잡았다.
"뒤져! 이 눈사람 같은 년아!"
남자가 거침없이 욕을 내뱉으며 검을 뻗었다.
검을 휘두르는 남자의 자세가 생각보다 좋았다.
아니 좋다 못해 완벽에 가까웠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자의 검에 맺혀있는 기운의 밀도와 검의 속도였다.
재밌네
올가는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손을 밀어 넣었다.
올가의 손에서 튀어나온 눈처럼 새하얀 창이 남자의 검을 가볍게 막았다.
남자가 창에 막혀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검에 당황하는 것 같았다.
위기를 느끼자마자 대뜸 칼부터 날리다니 나쁘지 않은 태도였다.
올가는 남자가 북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가산점을 줬다.
검기에 능숙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하핫! 제가 가끔 습관적으로 칼을 날리는 병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한 번 더 힘을 쓴 남자가 검이 움직이지 않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검에서 힘을 뺐다.
자신과 상대의 차이를 느끼고 바로 굽히는 태도는 북부인인 올가에게는 신선했다.
보통 북부인은 검을 뽑으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법인데.
남자의 신선한 반응에 올가는 오랜만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일부러 빈틈을 드러냈다.
아마 남자에게는 내가 방심한 거로 보이겠지.
"라고 할 줄 알았냐! 이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십려나!!"
올가가 빈틈을 보이자마자 남자가 맹렬한 기운을 피어 올리며 찔러 넣었다.
아까보다 기운을 올리는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네.
빈틈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검을 찔러넣는 결단력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상대와의 차이를 정확하게 자각하지 못한 점은 감점이었지만.
남자의 검은 올가의 창에 자연스럽게 막혔다.
"... 병이 또 도졌네. 아이고 약 먹을 시간이 지났나?! 하하"
남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거두었다.
올가는 신선한 남자의 반응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이번에는 창까지 집어넣으면서 더 큰 빈틈을 보였다.
"니가 지옥에 갈 시간이 지났다!! 개년아! 시발!"
남자는 자신의 빈틈을 보자마자 습관처럼 검을 다시 휘둘렀다.
남자의 검은 휘두를수록 날카로워졌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합격점은 아니었다.
"이게 다야?"
올가는 하품을 하며 검을 쳐내고 남자의 목을 향해 창을 가볍게 찔러넣었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여기서 남자가 더 보여줄 게 없다면 끝이다.
지금까지의 남자의 모습은 흥미로웠지만, 에포닌에게 어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올가는 정말로 남자를 죽일 생각이었다.
이곳은 너무 더웠다.
애미 시발.
좆 됐네 이거.
나에게 찔러오는 창의 날카로운 끝을 보며 생각했다.
좀 억울한 면도 있었다.
내가 얘한테 뭘 했다고 대뜸 창을 찔러 넣는 거야.
물론 나도 검을 휘두르기는 했지만 그건 정당방위니까.
창을 막기 위해 검을 필사적으로 당겼지만, 그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저 미친년은 진짜 나를 죽일 생각으로 창을 찔러넣고 있었다.
으악 시발 나 뒤진다!
마지막의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검을 당겼지만 막을 수 없었다.
창이 목을 찌르기 바로 직전에
[번번이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이번 대가는 좀 더 클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당기는 것처럼 정신이 멀어졌다.
창이 남자의 목을 찔러넣기 바로 전
올가는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남자의 기세가 바뀌어 있었다.
언젠가 봤던 북부에 있는 그 끔찍하고 위험한 괴물과 같은 기세였다.
올가는 필사적으로 창을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암컷이 내 앞에서 움직이려 하는가. 우습군"
남자의 입에서 저 깊은 심연처럼 낮은 목소리가 울리듯이 퍼져 나왔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올가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뜨거워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흥분에 올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창 실력이 암컷치고는 제법이다만."
올가는 자신의 안에 있던 모든 기운을 끌어올려 남자의 기세에 대항했다.
공간의 온도가 낮아지며 올가의 창에 날카로운 서리가 앉기 시작했다.
올가는 잠깐이지만 북부를 이곳에 가지고 왔다.
어지럽던 정신이 잠깐이지만 돌아왔다.
지금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위험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혀를 깨물어서 입 옆으로 핏줄기가 짙게 그려졌다.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휘저었다.
죽을 기세로 끌어올렸던 올가의 기운이 남자의 손짓 한 번에 사라졌다.
"암컷으로서도 제법인지 궁금하군."
남자의 목소리에 힘이 풀린 올가는 뒤로 쓰러졌다.
자신에게 느긋하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벌어졌다.
올가의 뜨거워서 터질 것 같은 머릿속에는 더 이상의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올가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었다.
***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모았어!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실험에 들어갈 수 있겠어!"
엘린은 실험실에 채운 부정한 마력을 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이 기운을 모으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 냄새 나는 빈민가를 마나 수확기를 들고 몇 바퀴나 돌았는가!
엘린은 흑마법사의 부정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정당하게 부정한 마력을 모았다.
악마와 계약하면 손쉬운 일들이지만 엘린은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
항상 불행이 있는 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그 대가로 윤기 나던 자신의 검은 생머리도 이렇게 푸석푸석해졌다.
비록 지금은 제국에서 흑마법을 금지하고 걸리면 불에 태워버리지만
자신이 정당하게 노력해서 도움이 되는 마법을 개발하면 그 인식도 바꿀 수 있으리라!
'나는 흑 마법사의 개혁가다!'
엘린은 벽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를 보면서 다시 한번 의지를 가다듬었다.
자신의 스승님의 꿈을 꼭 이루어 주리라!
"주! 주인! 침입자가! 끄아악!"
직원으로 고용한 고블린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분명 경계 마법에 걸린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엘린은 황급히 달려가 쓰러진 고블린을 확인했다.
혹시나 다치면 산재처리를 해줘야 하는데 예산이 빠듯했다.
엘린은 안절부절못하면서 고블린을 안았다.
다행히도 충격을 받은 게 전부인지 다치지는 않았다.
그때 실험실로 들어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저곳도 다양한 방어 마법을 걸어둔 곳이지만 어떤 마법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침입자가 걸음마다 마법을 해체하면서 오지 않는 이상은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법 상위 마법들로 구성된 경계 마법을 저렇게 손쉽게 해체하다니?!
엘린은 경악하면서 허리춤에 걸려있던 지팡이를 뽑았다.
마법 상점에서 할인할 때 산 거지만
그래도 제법 돈을 주고 샀으니 쓸모가 있을 것이다.
지팡이를 샀을 때 신나서 웃던 주인의 웃음이 못내 거슬렸다.
마침내 발소리의 주인이 등장했다.
검은 단발머리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소녀.
경계하던 엘린은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다 라고 중얼거렸다.
엘린은 무표정한 소녀에게서 압도적인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절실히 느껴지는 무력함에 손에 들린 지팡이가 흔들거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흑 마법 주문을 외워서 마법을 구성했지만, 사출되기 바로 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류가 났나 해서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아마 저 소녀가 내 마법을 취소시킨 게 분명했다.
구성이 다 된 마법을 끼어들어 취소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다니
아마 저 소녀는 역사 속으로 숨어든 그 드래곤들이 아닐까?
엘린은 공포를 느끼며 서둘러 머리를 땅에 박았다.
아직 죽기에는 지금까지 한 연구가 너무 아쉬웠다.
"머드카 엘린?"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네네! 제가 머드카 엘린입니다!"
여자는 자신도 잊고 있던 자신의 성까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그리고 내가 여기있다는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엘린은 두려움에 떨며 황급히 대답했다.
"악마 소환할 수 있지?"
여자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여자의 물음에 엘린은 덜덜 떨었다.
흑 마법사인 엘린은 기본적으로 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다.
흑 마법의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 빠삭한 엘린은 이론상으로 최상위 악마도 소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 감당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그렇지만 흑 마법사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던 엘린은 다른 흑 마법사들처럼 악마와 계약하지 않았다.
악마와 계약하면 순식간에 거대한 힘을 얻고 쉽게 갈 수 있을 테지만, 그런 방식은 엘린의 가치관에 맞지 않았다.
엘린은 흑 마법을 정말 하나의 학파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공부했다.
흑 마법사로 몰려 화형당했던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일단은 할 수 있지만, 저는 악마와 계약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서..."
엘린은 여자의 눈치를 연신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자신의 가치관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래?"
여자는 미련 없다는 듯 말하며 손가락을 돌렸다.
엘린은 자신의 주위를 옥죄는 압도적인 마나를 느꼈다.
도저히 인간이 부리는 것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로 큰 마나가 엘린을 서서히 쥐어짰다.
"하지만! 하려면 못할 것도 없죠!! 아마 최상위의 악마도 소환할 수 있을 겁니다!! 믿어주세요!!"
죽음 앞에서 버리지 못할 가치관은 없었다.
엘린은 납작 엎드려서 여자에게 빌었다.
일단 흑 마법에 대한 인식 개선도 엘린이 살아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그래! 그럼 어떤 악마를 소환할까?"
소녀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