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빡 대가리 케이트.
* * *
정신을 다시 차리니 침대 위에 있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
몸을 확인해보니 손가락까지 다 제대로 붙어 있었다.
[몸이 내 격에 맞지 않더군. 좀 아플 거다.]
아프기는 뭐가
애미 시발.
순간 온몸에서 바늘로 깊게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빽빽하게 바늘을 꽂아둔 관에 처박힌 다음 누군가가 관을 세게 닫은 것 같았다.
정신이라도 놓고 싶었지만, 처음 겪어보는 통증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배에 칼 맞았던건 지금의 고통에 비하면 꼬집는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나 뒤질 거 같아 진짜로 시발.
죽는다! 나 죽어!
[엄살이 심하군.]
시발 이게 엄살이라니!
으아아아 나 죽어!
나 죽는다니까 시발!
나 죽어요!!
[이 정도로는 안 죽네.]
개새끼.
이제는 몸 안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 안에서 누군가가 내 살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거기는 찢지 마 시발!
살려줘 제발
신기하게도 안과 밖 두 통증이 다른 느낌의 통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두 통증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억겁의 시간이 지나가고 천천히 끔찍했던 고통이 옅어졌다.
마침내 고통이 끝나고 내 몸을 보니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진짜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애미 시발 존나 아파.
너 다음부터 절대 나오지 마.
그냥 나 뒤질 테니까.
죽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으니까 절대 나오지 마.
천천히 숨을 고르며 땀에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았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덜덜 떨리는 몸이 천천히 진정됐다.
시발 그냥 죽게 놔두지.
좆같게도 지옥 같던 시간이 지나고 나자 몸이 오히려 가벼웠다.
시험 삼아 기운을 돌렸는데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더 큰 기운이 움직였다.
기운이 움직이는 통로가 넓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머리가 맑아졌다.
그제야 주변을 확인했다.
옆을 보니 아까 그 여자가 나체로 쓰러져 있었다.
근데 그 모습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깊게 남은 손자국과 길게 내민 혀 그리고 초점이 없는 눈동자까지.
무슨 짓을 한 거야.
무분별하게 쓰러져있는 여자의 나체에 내 하체가 반응했다.
그래. 이 미친년 때문에 내가 그 고통을 겪었는데.
이건 그 대가야.
나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를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큰 자비니까.
만약 여자를 이대로 보낸다면 여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정의로운 나는 살인 혐의가 있는 여자에게 합리적인 벌을 내려주기로 결심했다.
이건 교미왕으로서의 단죄다.
나는 여자가 깰까 봐 조심하며 여자의 다리를 벌렸다.
여기도 흰색이네.
여자의 뺨을 살짝 두드려서 정신이 있는지 확인했다.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까 아직 기절상태인 것 같았다.
슬그머니 내 것을 들이밀었다.
어 약간 움찔한 거 같은데?
여자의 반응에 놀란 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여자의 숨소리가 다시 고르게 된 것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움직였다.
여자가 일어날 것 같으면 잠깐 멈췄다가 또 움직이고.
그렇게 한참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똑똑똑
조용하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미 시발 깜짝아.
화들짝 놀란 나는 여자에게서 떨어졌다.
누구야 지금 정의로운 형 집행 중이라 바쁜데.
너무 놀라서 심장이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뛰었다.
내가 왜 놀라지?
나는 정의로운 형 집행 중이었던 건데.
여자는 내가 만든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일단 옆에 있는 이불을 여자에게 덮어줬다.
어? 얘 잠깐 움찔한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옆에 널브러져 있는 내 바지를 다시 주워입고 한 손에는 검을 든 다음 문으로 갔다.
방금 큰 교훈을 얻었다.
검은 항상 들고 다니는 게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
똑똑똑!
아까보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분명 참을성 없는 사람인게 분명했다.
문 앞에 선 다음 숨을 다시 고르고 문을 열었다.
"야이 변태 어디갔!...어? 있었네?"
문을 열자 대뜸 욕을 박는 케이트가 보였다.
자신이 황녀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듯 프릴이 잔뜩 달린 분홍색 잠옷을 입고 한 손에는 베개까지 든 상태였다.
분명 귀여운 느낌의 잠옷이었지만 케이트의 거대한 가슴에 묘하게 매혹적이었다.
근데 얘가 왜 여기 있어.
"꺄악! 왜 벗고 있는 거야!!"
나를 살피던 케이트가 내 몸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베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뭔데."
지랄한다 지랄해.
내 소중한 형 집행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졌다.
"이...일단 뭐라도 입어! 왜 벗고 있냐고!!"
케이트가 베개를 살짝 내렸다가 다시 가렸다.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 이미 서로 벗은 몸 본 사이인데."
바지까지 입고 있는데 왜 난리야.
"무무슨 소리야!!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뭐라도 입으라고!"
눈을 질끈 감은 케이트가 베개로 열심히 나를 쳤다.
"아니 할 말 없으면 가고."
"그러니까 일단 비켜봐!!"
눈을 질끈 감은 케이트가 내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지금 침대에 인사불성이 된 여자가 나체로 누워있는 게 생각났다.
다른 여자면 별 상관 없지만, 그 여자는 케이트가 데려온 여자가 아닌가.
지금 나체인 그 여자를 본다면 케이트가 얼마나 지랄할지 상상조차 안 됐다.
다급한 마음에 방으로 들어가려는 케이트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야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야! 아프다고!!"
머리끄덩이를 잡힌 케이트가 인상 쓰면서 소리쳤다.
"이게 어디를 마음대로 들어가려고 해. 나가!"
짐짓 화난 척하면서 말했다.
"뭐어? 너 반응이 이상하다?! 옷 벗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열기가 나는 것도 이상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내게 머리채를 잡혀서 까치발로 서 있는 케이트가 나를 노려봤다.
멍청한 머리와는 다르게 보기보다 눈치가 빨랐다.
"하기는 뭘 해. 운동하고 있었는데."
괜히 찔끔해서 케이트의 시선을 피했다.
"이상하다니까! 이상해!! 역시 너 그 무식하게 가슴만 큰 여자랑 뭐 하고 있었던 거지!!! 이 변태들!!"
케이트가 까치발로 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였다.
"아니라니까 비키가 왜 여기 있냐고."
나는 다시 케이트의 머리채를 잡아 밖으로 끌었다.
"아악! 당기지 마! 나 황녀야! 너 지금 황녀 머리채 잡고 있는 거라니까?! 삼대가 멸하고 싶어?!"
머리채를 잡힌 게 아팠는지 케이트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손가락질했다.
저 새끼 말 함부로 하는 거 보소.
"삼대를 어떻게 멸해 내가 고아인데 빡대가리야."
"어쩌라고! 왜 방을 못 들어가게 하냐고!! 이상하다니까?!"
공중에 팔을 붕붕 휘두르며 케이트가 화냈다.
"네가 왜 내 방을 들어가려고 하냐니까 네가 뭔데"
내 말이 끝나자 케이트의 얼굴이 돌연 울먹거렸다.
아니 왜 갑자기 우는 거야.
케이트의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큼지막한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냥 걱정돼서 온건데 ...그래 맞아 내가 뭐라고 에이든 방을 검사하겠어."
케이트가 물기 젖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마치 비 맞은 강아지 꼴을 하는 케이트를 보며 당황했다.
나는 케이트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고 머리를 부드럽게 넘겨서 정리해줬다.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들어간다고 하니까 내가 당황했잖아."
"..."
내 위로에도 불구하고 케이트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무 심했나?
눈물에 순간 사고가 멈췄다.
본능적으로 케이트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 안았다.
"그냥 네가 너무...?! 억?!"
"불심 검문 펀치!!!"
방심한 내 명치에 케이트의 주먹이 제대로 꽂혔다.
이 미친년이 진짜.
주먹질을 연습하는 모양인지 점점 그 세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피할 수도 없이 정통으로 맞았다.
순간적으로 숨이 안 쉬어지면서 무릎을 꿇었다.
"나와!!!"
케이트는 쓰러진 나를 밟고 넘어간 다음 침대로 달려갔다.
저 빡 대가리를 막아야 하는데...
도저히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딱 걸렸지!! 남자 방에 몰래 숨어든 년!!!!"
뭉쳐있는 이불 옆에 도착한 케이트가 기세 좋게 외치며 이불을 거뒀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나는 노력했어.
네가 스스로 저지른 일이다.
"...으응? 아무도 없네?"
케이트의 당황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응?
케이트의 말에 침대 쪽을 살폈다.
뭐야 진짜 사라졌네.
언제 일어난 거지.
물론 다행이긴 하지만.
"하핫! 아무도 없네! 서프라이즈!"
케이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하늘로 뻗었다.
미친년 사람 명치에 주먹부터 꽂고 서프라이즈래.
"나는 에이든을 믿고 있었어! 응! 진짜 믿고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왜 문을 안 열어줘! 하핫"
케이트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부축했다.
"괜히 에이든이 이상한 반응을 보여서 내가 헛된 생각을 하게 만든 거라니까?"
그래도 지 잘못은 아는지 케이트의 얼굴을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꺄악!"
"농민 봉기 펀치!"
케이트의 앙증맞은 배에 내 매콤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이 미친놈아!!"
케이트가 배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그 모습에 십 년 묵은 체중이 내려갔다.
쟤가 먼저 때렸으니까 이건 정당방위야.
"깝치지마 그러니까. 후"
오랜만에 활약을 펼친 매콤 주먹을 쓰다듬어줬다.
"미친놈이 진짜로 때렸어! 아 진짜 아프다니까!! 배가 터진 거 같아"
케이트가 배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했다.
그렇게 세게 때리지는 않았는데?
문득 내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시발 저거 뒤지는 거 아니야?
황족 시해 죄의 형량을 떠올리니 간담이 서늘했다.
"야야 괜찮냐? 여기서 죽지마! 나가서 죽어!"
황급히 케이트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가 가까워지자
케이트의 눈이 번뜩거렸다.
"진심 황녀 펀치!!!"
다시 한번 내 명치에 케이트의 주먹이 정확하게 꽂혔다.
이 미친년 진짜 주먹질 연습하는 게 분명해.
눈앞이 흐려졌다.
"꺄하하하!! 그니까 감히 황녀한테... 야! 괜찮...!"
사람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신나게 웃는 게 황녀라니.
제국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정신을 놓았다.
짝
볼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에 눈을 떴다.
"야야! 일어나! 엄살 부리지 말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케이트가 보였다.
미친년 지가 주먹 쥐어박은 다음에 왜 울고 있어.
울고 있는 케이트의 모습에 화를 내기도 애매해졌다.
"...괜찮아."
근데 이 빡 대가리 정신 차리라고 내 뺨 때린 거야?
진짜 악독한 년이네.
"뭐야! 고작 주먹 좀 맞았다고 기절하면 어떻게 해! 완전 약해빠졌어!"
이년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울컥 짜증이 났지만, 케이트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에 애써 화를 참았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따라서 쭈그려 앉아있던 케이트도 일어났다.
"그럼 확인했으니까 된 거지?"
좀 가라 이제 나도 쉬게.
"...아니! 변태가 그 무식하게 가슴만 큰 여자 방으로 갈 수도 있잖아! 안 되겠어!!"
케이트가 들고 온 베개를 침대에 던지고 그 위에 누웠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습하고 온 게 아닐까 의심됐다.
"아니 애초에 내가 비키 방에 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얼굴만 보이도록 끌어올린 케이트를 보며 말했다.
"... 그런 변태 같은 행위는 황녀인 내가 용납할 수 없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는 케이트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빨리!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말고 누워!! 누우라고!"
얼굴이 붉어진 케이트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치면서 말했다.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침대는 넓었으니까 둘이 누워도 충분하긴 했다.
활짝 열린 문을 닫고 케이트의 옆자리로 갔다.
"뭐야 그 음흉한 눈은...! 그냥 잠만 자는 거야!"
케이트가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 눈이 뭐 어때서.
케이트의 말에 괜스레 내 눈꼬리를 주물렀다.
"자꾸 시끄럽게 할 거면 나가."
짐짓 무섭게 인상을 썼다.
"꺄하하하 뭐야 그 바보 같은 표정은?!"
케이트가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래 내가 이 빡 대가리랑 무슨 말을 하냐.
모범이 돼야 할 황실의 자식 교육이 이렇게 개판이라니.
제국의 미래에 대해 깊은 걱정을 하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이불까지 같이 덮자고?!"
"내 이불이야. 네 것도 가져오든지 그러면."
"됐어! 너 혼자 다 덮어!"
케이트의 말에 나는 냉큼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았다.
"야! 그렇다고 너 혼자만 다 쓰냐!!"
그런 내 이불의 끝을 잡고 케이트가 당겼다.
"덮기 싫다며."
"그래도 춥다구! 같이 좀 덮어!"
아득바득 내게 들러붙은 케이트가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한참이나 이불로 씨름하던 우리는 결국 공평하게 이불을 절반씩 나누고 누웠다.
지가 필요 없다더니.
이제와서는 또 악착같이 이불의 반을 가져갔다.
진짜 성격 지랄맞네.
"하아 하아 그러니까 그깟 이불 좀 그냥 나눠주지!"
거칠어진 케이트의 숨에 따라서 거대한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문득 저 아름다운 가슴을 만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파멸적인 생각은 내 머리를 금세 가득 채웠다.
남자 방까지 와서 저렇게 누워있으면 당연히 만져달라는 것 아닐까?
오히려 안 만져주면 여자 입장에서는 서운할 테니까.
나는 넓은 마음으로 케이트의 기분을 위해서 대뜸 케이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옷 너머로 녹을 것처럼 부드러운 케이트의 가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지는구만.
부드러운 덩어리를 꽉 쥐었다.
케이트가 큼지막하게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어졌고 앙다문 입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반응과는 조금 다른데?
"이 미친 변태 새끼가!!!"
케이트의 주먹이 내 얼굴에 꽂혔다.
순간 눈앞에 별이 튀면서 정신이 흐려졌다.
이 새끼 주먹 연습하는 게 확실했다.
"...내가 분명히 그냥 누워서 잠만 자는 거라고 그랬지!!!"
케이트가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면서 소리쳤다.
코에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코까지 기운이 개통된 건가?
아 코피 나는 거였네.
이 빡 대가리가 그깟 가슴 좀 만졌다고 사람을 쥐어패?
"이 미친 피나잖아!!"
코에서 줄줄 흐르는 피를 케이트에게 보여줬다.
"흥! 그러니까 누가 마음대로 내 가슴 만지래? 이 변태야!"
케이트가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비웃었다.
"가슴이 뭔 대수라고 사람 얼굴까지 쥐어 패!!"
사람이 같이 누워있으면 가슴 좀 만질 수도 있지 시발.
"뭐...뭐어?!!! 대수?!"
케이트의 입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그래 뭐 대단한 거라고! 그깟 가슴 좀 만졌다고 쪼잔하게. 만지면 닳냐! 닳냐고!"
자꾸만 흐르는 코피가 거슬렸다.
"쪼...쪼잔?! 쪼잔하다고?!! 닳냐고...?!!! 너 왜 그렇게 당당해!!"
저러다 터지겠네 싶을 정도로 붉은 얼굴을 한 케이트가 말을 더듬었다.
"그래! 쪼잔하다 쪼잔해! 비키는 얼마든지 만지라고 해주는데! 됐어 비키 가슴 만지러 갈 거야. 저리 꺼져."
흐르는 코를 옆에 있는 수건으로 막으며 일어났다.
일어나는 내 바지의 끝부분을 케이트가 잡았다.
화가 잔뜩 나서 뒤돌자 잔뜩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보는 케이트가 보였다.
"알...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
케이트가 말을 더듬으면서 내게 말했다.
알기는 뭘 안다는 거야.
피에 흥건히 젖은 수건을 반대편으로 돌려 코를 막았다.
잠깐 우물쭈물하던 케이트가 눈을 질끈 감더니 자신의 잠옷을 위로 올렸다.
오
프릴이 달린 분홍색 잠옷이 사라지고 드러난 아름다우면서 크기까지 한 가슴을 보자 화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래 이 정도 가슴이면 무죄다.
더 이상 코피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케이트의 가슴은 진통제 그 이상이다.
"...그러니까 그 무식하게 가슴만 큰 여자한테 가지 마."
눈을 질끈 감은 케이트가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어울리지 않게 귀여웠다.
"그러지 뭐"
나는 웃으며 그런 케이트를 부드럽게 누르면서 안았다.
"어...어?! 야야!! 잠깐만! 가슴만 만지라고!!! 뭐해!! 왜 거기를 만지냐고!! 잠깐만!! 아흑!"
내게 안긴 케이트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발버둥 쳤다.
"어? 비키한테 간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고 알았어!!!"
케이트가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곰돌이가 그려진 팬티를 천천히 내렸다.
***
"뭐해?"
옆에서 독촉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엘린의 앞에는 자신이 그릴 수 있는 최대한 크고 정교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법진을 동물의 피로 그렸기 때문에 모양새가 좀 으스스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엘린이 꿈꾸는 흑 마법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저번 할인 행사 때 잔뜩 쟁여둔 밝은 촛불들을 켜놨다.
물론 그 효과 덕분에 실내는 더욱더 음침해졌다.
누가 보더라도 리치가 사용할 것 같은 공간이 됐지만, 엘린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 알았어요 할게요!"
잠깐 말을 흐렸다가 여자의 손에 마나가 모이는 것을 본 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마나가 엘린의 복잡한 마음을 잡아줬다.
일단 살아야 해.
살아남아야 스승님의 염원을 이룰 수 있으니까.
"... 심연에 있는 자여. 고통 속에 존재하는 자... 크흡"
하지만 자꾸 해괴망측한 주문 때문에 실패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주문을 저렇게 감성 가득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엘린은 저런 낯부끄러운 주문에 내성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 저런 낯부끄러운 단어만 모아서 주문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주문이 멈추자 여자의 손에 모인 마나가 날카로운 기세를 뽐냈다.
며칠간 여자와 생활한 엘린은 한 번이라도 더 실패하면 잠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을 죽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여 이 끔찍할 정도로 혼란한 세계에...크흡 가라앉은 평화를 가져다주소서. 이 비루한 종의 몸을 바치나니..."
엘린은 금세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문을 이어갔다.
그 사이에도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버텼다.
마침내 주문이 완성되고 여자가 마법진에 마나를 퍼부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어떤 악마를 소환하려고 이 정도의 마나를...
엘린은 문득 겁이 났다.
마법진이 불길한 검은 빛을 뿜어내며 마나를 천천히 돌렸다.
회전하는 속도에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공중에 작은 원이 생겼다.
원이 점점 커지며 마치 검은 포탈처럼 외형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포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멀쑥한 남자의 머리 위에 여러 방향으로 흉측하게 자란 뿔들이 남자가 악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엘린은 막연하게 자신이 소환한 악마가 장군급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득히 먼 옛날의 성전 때 모습을 드러내어 셀 수도 없는 사상자를 냈다던 장군급.
흑마법사의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던 자신이 그 어떤 흑마법사들보다 더 끔찍한 짓을 저질러버렸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엘린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아 상쾌한 공기는 정말 오랜만이군. 맡아진다 인간의 공포가 파괴의 전초가 이 세상의 멸망이! 파괴하라! 부수어라! 모두 마셔라!"
악마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런 악마의 등 뒤로 뼈로 만들어진 날개들이 펼쳐졌다.
짙은 피 냄새가 악마의 날갯짓을 따라 사방으로 풍겼다.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제가 쓰레기 흑 마법사입니다
정신줄을 놓은 엘린은 무릎 꿇고 양손을 위로 든 다음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꿇어."
생각보다 낮은 게 소환됐네
옆에 있던 여자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혀를 차며 악마를 가리켰다.
악마는 처음 겪어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말을 잃었다.
"멍청하기까지 하네."
여자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엘린의 양손이 덜덜 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