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드숀은 남자다.
* * *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좋은 아침이군 소년.
정신을 차리자 검이 인사했다.
잠을 얼마 자지 않은 것 같은데?
창문을 보니 해가 슬슬 뜨고 있는 시간이었다.
케이트는 정신 못 차리고 입을 헤 벌리고 자고 있었다.
짝
세상모르고 자는 케이트의 뺨을 때렸다.
"에엑?! 누구냐 감히 황녀인 본좌를...! 읍읍?!"
오른쪽 뺨이 빨갛게 부은 케이트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무슨 얘는 일어나자마자 대뜸 황녀 타령이야.
소리치는 케이트의 입을 손으로 막고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고 알려줬다.
똑똑똑
다시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히익!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케이트의 눈이 커졌다.
"누구세요?"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내서 물었다.
"사제 나야. 아침 훈련하자."
문밖에서 상쾌한 키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옷을 벗고 있어서. 금방 나갈게요!"
혹시나 문을 열까 봐 다급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응응 천천히 준비해!"
"황녀님이 사라지셨다!"
창밖에서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납치되셨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찾아! 어제 경계하던 놈은 어디 갔어!"
"그 갑자기 뒤통수에 큰 충격을 입고 기절했었답니다!"
"그 새끼 당장 튀어오라고 해! 전 병력 다 깨워서 주변 다 뒤지고!"
밖에서 다급한 기사들의 목소리와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너 기사 머리 갈기고 왔냐?"
무슨 황녀가 일단 갈기고 보냐 얘는.
"나보고 나가지 말라고 하잖아 바쁜데!"
케이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기 일을 열심히 수행했을 뿐인 기사가 불쌍했다.
다만 운이 좋지 않아 케이트에게 배정된 게 녀석의 잘못이겠지.
"일단 내가 먼저 나갈 테니까. 눈치 보다가 조용히 돌아가. 또 기사 머리 후두려 까지 말고."
"뭐 왜 쟤랑 가는!!... 읍?!"
또 언성을 높이는 케이트의 입을 다급하게 막았다.
"훈련하러 가는 거라니까. 목소리 좀 낮춰."
내 말에 케이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옆에 놓인 검을 허리춤에 매고 복장을 점검했다.
"...야!"
문으로 가려는 순간 케이트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케이트가 부드럽게 나를 안았다.
잠깐의 부드러운 입맞춤이 지나가고
"...그냥 가는 게 어디 있어..."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케이트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떨어졌다.
"...어 그그럼 이따 보자."
그 케이트답지 않은 수줍은 반응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운 말투였다.
"풉. 응"
케이트가 입을 가리며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져서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갔다.
문 앞에는 가벼운 복장을 한 키아나가 창밖을 보면서 서 있었다.
"사제 얼굴이 좀 붉은데 괜찮아?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인기척에 돌아본 키아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에요. 저도 마침 몸이 찌뿌둥하던 참이라."
"그래"
키아나가 화사하게 웃었다.
키아나와 숙소 뒤편에 마련된 작은 공터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얘네도 다 이 숙소에 묵고 있었던 건가.
꽤 큰 공간인 공터에는 곳곳에 짐이 쌓여있었다.
"공간이 여의치 않으니까 간단하게만 하자."
키아나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검을 뽑았다.
나도 마침 지금 내 수준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검기까지 뽑아내니까 좀 쓸만해 지지 않았을까?
루나검을 검집에서 천천히 빼내었다.
흐으으읍! 오랜만에 나오는 군! 으랴랴랴랴럇!
요상한 소리를 내는 검은 무시했다.
찬란한 루나검의 표면에 햇빛이 반사되어 밝게 빛났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전설의 검처럼 보였다.
번번이 말하지만 나는 전설의 검이 맞네! 소년.
루나검이라니까 너는.
중간에 큼지막하게 써진 루나와 내 이름을 보며 천천히 기운을 돌렸다.
키아나는 그저 검을 들고 서 있었지만, 막상 공격하려고 하니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두꺼운 벽 앞에 선 느낌을 받으며 검을 쥔 손을 풀었다.
내가 쳐다만 보자 키아나가 자세를 약간 바꾸었다.
그러자 빈틈이 살짝 드러났다.
아마 들어오라는 거겠지.
발 쪽에 기운을 터뜨리며 단 세 걸음으로 키아나에게 뛰었다.
첫걸음을 떼며 기운을 경쾌하게 폭발시키고.
두 걸음째에 허리를 부드럽게 돌리며 검에 회전력을 더했다.
그리고 마지막 걸음에 검으로 기운을 보내며 모든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키아나가 다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키아나에게 작은 상처도 입히지 못했으니까.
키아나가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비스듬히 세워 찔러넣었다.
마치 맥을 짚은 것처럼 키아나의 단 한 수에 내 검에 서려 있던 기운이 흩어지며 내 검을 막았다.
그래도 단 한 번에 막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좀 어울려줘야 재미가 있지.
"아! 미안 사제! 사제 실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늘어서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내 표정을 읽었는지 키아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다시! 다시 해보자! 이번에는 좀 더 괜찮을 거야."
키아나가 마치 아이를 달래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이미 흥이 식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기도 좀 그랬다.
나는 다시 한번 기운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이번에는 키아나가 조절했는지 제법 많은 공방을 펼칠 수 있었다.
"거기서는 좀 더 기운을 팔 쪽으로 보내야 해!"
"다리에 힘 더 주고!"
"상대의 어깨 쪽을 잘 살피면 공격 방향을 예측할 수 있어!"
내 검을 튕겨내면서 키아나가 계속 조언을 해줬다.
"듣자마자 응용하다니! 역시 사제야!"
충고를 들을 때마다 잊고 있었던 정보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습득이 됐다.
마치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역시 천재라니까 나는.
캉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 슬슬 출발할 준비 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내 검을 가볍게 쳐낸 키아나가 개운한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대련이었다.
내 수준이 올라간 만큼 키아나와의 대련에서 얻는 것도 많아졌다.
이게 천재들 간의 대련에서 나오는 시너지인가.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검을 집어넣었다.
크흡... 천재인 소감이 어떤가?
짜릿하지.
천재라는 건 늘 최고야.
"그럼 이따 출발할 때 봐."
숨을 고르는 내게 키아나가 인사하고 먼저 들어갔다.
꽤 거칠었던 대련에 얼굴에 흐르는 땀을 대충 닦은 다음 방으로 돌아갔다.
케이트는 잘 돌아갔는지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간다고 들었으니까 간단하게 씻고 나와서 짐을 챙겼다.
나가려는데 서랍 위에 작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귀여운 글씨체로 바보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케이트가 쓴 종이를 대충 구겨서 버렸다.
숙소 앞으로 나오자 출발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마차가 여러 대 놓여 있었고 그 마차에 사람들이 짐을 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루나 얘는 어디 간 거야.
루나랑 편하게 갈 줄 알았는데.
"너 똑바로 경계 안 서? 만약 황녀님이 산책이 아니라 납치됐으면 어쩔 뻔했어!"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네 실수 때문에 우리 조 다 처형될 뻔했다고 이 폐급 새끼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기사단 생활 다 끝나지? 끝나?!"
구석에서 갈굼 당하는 기사를 애써 못 본 척 하며 마차로 다가갔다.
"일어나셨군요. 에이든 님"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미소 지으면서 인사했다.
"아! 안드레아 님 좋은 아침입니다."
"저도 있어요! 아가사에요!"
안드레아의 뒤에서 아가사가 튀어나와 발랄하게 인사했다.
"아가사 수녀님도 좋은 아침입니다."
참 기운 넘치는 수녀였다.
"스칼렛! 너도 인사해야지!"
"... 좋은 아침입니다. 에이든님."
아가사가 마치 강아지 대하듯 스칼렛을 불렀다.
아가사의 말에 스칼렛이 작게 떨면서 인사했다.
"스칼렛 님도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사보다 스칼렛이 더 나이가 많을 것 같은데, 의외였다.
"잘했어!"
아가사가 까치발을 하고 스칼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는 것 같아서 묘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수녀님들이 치료해주셔서 완전 멀쩡합니다."
문득 어제 수녀들에게 성욕을 풀게 했던 게 생각나 잠깐 얼굴이 뜨거워졌다.
"다행입니다. 이건 특별히 제조한 성수입니다. 전보다 더 효과가 좋을 겁니다."
하지만 안드레아는 아무렇지 않은지 평온한 말투로 말하며 내게 유리병을 건넸다.
유리병 안에는 전보다 더 불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처녀교에서 받았던 포션에서도"
문득 스칼이 줬던 포션이 생각나서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옆에서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야 시발.
마물이라도 나타난 건가?
선명한 죽음의 기운에 나도 모르게 자세를 잡고 검 손잡이를 쥐었다.
고개를 돌리니 짜증이 가득한 표정의 비키가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내 방으로 오라고 했을 텐데...?"
비키의 손이 불안하게 까닥거리고 있었다.
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발.
"하하... 그게 제가 피곤해서 깜빡 잠자리에 들어서..."
다급하게 비키에게 항복의 표시로 양 손바닥을 보여줬다.
"흐음 그래 내 꺼가 이제 좀 살만해졌나 봐? 내 꺼가 감히 내 말을 무시하기도 하네?"
비키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분명 돌로 되어있는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남는 비키의 발자국이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니요!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냥 너무 피곤해서 기절한 거에요! 진짜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조금이라도 비키와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흐응 그래. 피곤하면 자야지? 그치? 깊은 잠 잘래?"
비키의 입꼬리가 불길할 정도로 휘었다.
비키의 손이 내 목덜미를 잡기 바로 직전에.
"야!! 너네 뭐해!!!"
케이트가 소리 지르면서 비키와 나 사이로 끼어들었다.
내 앞에 서서 비키를 노려보는 케이트의 자그마한 등이 조금 듬직했다.
"꼬맹아 너는 빠져. 내 꺼랑 볼일이 있는 거니까."
비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에이든이 왜 니 꺼냐고!! 그리고 꼬맹이?! 뭐 이 가슴만 무식하게 큰 게!!!"
개차반인 케이트는 비키에게도 굴하지 않았다.
근데 가슴은 너도 무식하게 큰데.
케이트가 비키를 싫어하는 건 내가 드숀을 싫어하는 것처럼 동족 혐오가 아닐까.
그래도 케이트는 황녀니까 쥐어패지는 않겠지?
비키는 고민하는 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을 풀었다.
"꼬맹이 비키는 게 좋을 거야"
결심을 내린 듯 비키가 손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에이든에게서 손 떼!! 아악! 내 손!!! 치료!!"
케이트가 기세 좋게 비키의 손을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쳐냈지만, 오히려 자신의 손이 아픈지 울먹거리며 손을 옆에 있는 안드레아에게 내밀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안드레아가 그런 케이트의 주먹을 치료했다.
"두 번은 안 봐줘."
비키에게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주먹이 움직였다.
나는 케이트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비키의 주먹을 막기 위해 검을 쥐었다.
시발 이게 사람의 기운이 맞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설마 화난다고 성안에서 대뜸 사람을 쥐어 패 죽이겠어?
캉!
검을 반쯤 뽑았을 때 내 앞에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어제 나를 죽이려 했었던 눈사람 여자였다.
눈사람 여자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창을 찔러 넣었다.
비키의 주먹이 눈사람의 창에 막혀 앞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비키가 인상을 쓰며 기운이 한 차례 더 거세게 끌어올렸다.
비키의 팔과 눈사람의 창이 부딪힌 곳 주변으로 돌바닥이 파이며 기운이 터져 나왔다.
애미 시발 왜 이러는 거야.
나는 황급히 케이트를 끌어안고 뒤로 뛰었다.
"헤헤 또 지켜줬어"
내 품에 안긴 케이트가 마냥 해맑게 웃었다.
그 해맑은 웃음에 열이 뻗쳤다.
지금 웃고 있을 때냐 이 빡 대가리야.
눈사람의 창과 비키의 주먹이 다시 움직이려 할 때.
"그쯤 하시죠 두 분 다."
차분한 안드레아의 목소리가 둘을 말렸다.
안드레아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침착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한 번 더 서로에게 달려들려던 둘이 멈췄다.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애들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안드레아가 싸늘한 표정으로 둘을 나무랐다.
눈사람은 창을 집어넣고 나를 다시 한번 힐끔 본 다음에 사라졌다.
혹시나 비키가 안드레아한테도 달려들까 봐 걱정했지만, 진정된 모양인지 곱게 기세를 줄였다.
"출발 준비 끝났습니다!!"
때마침 기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정말로 적절한 순간이었다.
"야! 좀 떨어져 봐"
아직도 나를 안고 있는 케이트를 살짝 밀어냈다.
"뭐뭐!? 내가 안고 있던 게 아니라 네가 안았잖아!! 감히 황녀를 안다니 삼대가 멸할 중죄지만!! 아량이 넓은 내가 봐줄게! 고마운 줄 알아!"
케이트가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네 이놈 감히 황녀님을 안다니...!!!"
조슈아가 불같이 화를 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조슈아는 그냥 닥쳐!!"
"하...하지만..."
"닥치라니까! 황녀 명령!"
"출발 준비가 끝났는데..."
전해주러 다가온 기사가 둘의 모습에 당황하며 말을 흐렸다.
"그럼 일단 출발부터 할까요?"
간단한 갑옷을 입은 키아나가 말했다.
현재 가진 마차들이 다 4인승이었다.
각 마차에 탈 일행들을 나누기 위해서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수녀들은 세 명이니까 같이 타기로 했고.
키아나랑 비키가 같이 타고.
케이트는 조슈아와 눈사람까지 같이 마차를 타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타야 하는 마차였다.
"그래서 사제는 어디 탈래?"
키아나의 질문에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웃으며 붉은 입술을 핥으면서 은근히 가슴을 드러내는 비키.
묘하게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케이트.
수녀들이 모인 곳에서는 아가사가 나를 보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마차를 선택하든 피곤해질 거라는 것을.
살아나갈 길이 없을까.
한없이 방황하는 내 눈동자에 구석에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그렇지 저 새끼가 있었지.
잊고 있었던 내 좆밥
"아! 저는 제 친구 드숀이랑 탈게요."
구석에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는 드숀을 가리켰다.
"으엑?! 나나나?!!"
내 지목을 받은 드숀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 쟤가 드숀이구나
곳곳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너구나 드숀이!!! 이 구출 도둑놈 새끼!! 드디어 찾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양손을 젓는 드숀에게 케이트가 달려들었다.
"이 도둑놈 새끼!!! 황녀 펀치!!!"
"으아악!!! 잠깐만요 잠깐만!! 나 환자라고요!!"
케이트가 드숀의 머리끄덩이를 우악스럽게 잡아 흔들며 배에 주먹을 갈겼다.
"안 돼!!! 터...터진다!!! 으아아악!"
드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드숀의 바지가 붉게 물들었다.
아아
나는 그 잔인한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 여자였어?!! 더 용서 못 해!!! 황녀 펀치!!!"
드숀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넣으려는 케이트를 조슈아가 안간힘을 다해서 말렸다.
여자 아니라고
게이 아니라고
드숀의 울음 섞인 외침이 들렸다.
***
"자 따라 해 보아라 인간 칠흑보다 어두운 어둠 속에 자라나는 절망이여"
"치...칠흑보다! 크흡! 어두운 어두우움 속에... 크흡! 죄송해요! 도저히 못 하겠어요!!"
엘린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싶었지만, 또 실패했다.
"아니 이렇게 멋들어진 문장을 말하는 게 뭐가 어렵다는 건가 인간!!"
엘린 옆에 무릎 꿇고 안은 악마가 분통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악마님!! 화내지 마세요! 제가 정말 죄송해요!"
엘린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과했다.
악마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인간 여자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이게 어딜 봐서 장군급을 소환한 흑마법사인가.
흑마법사 특유의 음침함도 없었고.
패기도 없고 야망도 없다.
흑 마법의 인식을 개선시키겠다는 이상한 꿈만 가지고 있었다.
근본이 어둠인 흑 마법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시키겠다는 건지.
여자는 성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맑았다.
도대체 흑 마법사의 길을 왜 걷고 있는 거지 이 여자는?
의문이 들었지만 사브나크는 이제 거의 바닥난 인내심을 겨우 발휘해 여자의 머리통을 부술 뻔한 손을 내렸다.
어찌 되었건 자신을 소환한 이 흑 마법사가 죽으면 자신도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중간계로 온 이상 악착같이 공포를 수확해야만 한다.
중간계만큼 공포를 모으기 쉬운 곳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건방진 샥스 놈보다 순위를 높여 그 꼴 보기 싫은 콧대를 꺾어 버려야 한다.
"후 진정하고 다시 해보자. 칠흑보다 어두운 어둠 속에 자라나는 절망이여"
사브나크는 자신의 뛰어난 인내심에 감탄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으음 칠흑보다 어두운 어둠 속에... 끄흡!! 못 참겠어요. 진짜! 왜 어두운 어둠인데요!!! 어두운 어둠이래!! 꺄하하!"
이제는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며 웃는 여자를 보며 사브나크는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뚝
여자의 머리통을 부수기 위해 움직이던 손이 막혔다.
옆에 있는 검은 단발의 여자가 따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 작은 손짓에 지옥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끔찍한 고통이 사브나크를 덮쳤다.
사브나크는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장군급 악마인 자신이 고통에 고개를 숙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입술에서 불길을 내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물론 사브나크는 이미 무릎을 꿇은 상태이기는 했다.
"아앗! 죄송해요! 제가 실수한 거예요! 악마님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어두운 어둠! 어두어둠!! 나는 어둠이다! 꺄하하! 죄송합니다!"
자신을 대신해 연신 고개를 바닥에 박으면서 사과하는 흑 마법사를 보며 사브나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겨우 잡고 있었던 정신을 놓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