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잘생긴 놈은 믿으면 안 된다.
* * *
"야야 미안하다고"
케이트가 쪼그려서 울고 있는 드숀 옆에서 사과했다.
흐어어어엉
사과를 받은 드숀은 서러움이 더 커졌는지 아예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 미안해. 몰랐지. 솔직히 누가 마물한테 강간당해 똥꼬가 찢어져서 피를 흘린다고 생각하겠냐. 심지어 남자가... 풋"
케이트가 드숀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하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살짝 웃었다.
끄으윽
드숀은 이제 숨까지 꺽꺽대며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다고!! 그만 안 울어?!"
벌써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케이트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드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런데 인내심이 너무 빨리 바닥난 거 아니야?
개차반 케이트가 저 정도면 많이 참은 건가.
흐읍!
드숀이 케이트에게 맞은 부분을 움켜쥐면서 울음을 삼켰다.
"혹시 쟤 상처 치료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옆에서 난리치는 둘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단아하게 웃고 있는 안드레아에게 물었다.
"...치료요? 아! 저분이요. 예 가능합니다. 그럼 치료 받으시려면 저희 마차에 타야 하겠네요."
안드레아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약간 느리게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수녀님들은 세 분 아니신가요? 마차는 4인승인데, 드숀을 태우고 제가 다른 마차로 가면..."
다섯 명이 타기에는 마차가 4인승이라 작았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스칼렛을 무릎에 앉히면 되니까요! 그렇지 스칼렛?"
아가사가 손을 번쩍 들고 발랄하게 말했다.
"...으응. 그러면 되지."
대답하는 스칼렛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가는 길이 꽤 멀 텐데..."
그리고 스칼렛을 무릎에 앉히기에는 아가사가 더 작지 않나.
"괜찮아요! 스칼렛이랑은 종종 이러고 다니니까요! 그렇지? 스칼렛?"
아가사가 스칼렛에게 팔짱을 끼며 해맑게 웃었다.
아가사의 물음에 스칼렛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 사이가 좋은 수녀들이네.
그래. 뭐 어차피 가다가 드숀 치료 끝나면 마차를 옮기든지 하면 되니까.
"야! 그만 울라고!!! 진짜 짜증 나게 하네!!! 너만 박혀 봤어?!! 너만 박혀 봤냐고!! 아주 그냥 박힌게 상전이야 상전!!"
드숀을 달래던 케이트가 짜증을 참지 못했는지 다시 드숀을 쥐어패고 있었다.
드숀이 울음을 참으며 애써 몸을 웅크렸다.
저 빡 대가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케이트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황...황녀님 그게 무슨?!!"
세상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을 한 조슈아가 케이트에게 매달렸다.
"조슈아는 닥치라고! 닥쳐!! 조슈아는 닥친다! 황녀 명령!"
"으악! 악! 아파요! 죄송해요! 안 울게요!! 그만 때려요! 죄송합니다! 똥꼬 찢어져서 죄송해요!!!"
비명 섞인 드숀의 울음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결국 드숀과 나는 수녀 삼인방과 함께 마차를 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나중에 마차를 바꿔 타기로 합의해서 진정시켰다.
자기들끼리 마차 순번을 정한 것 같았다.
"자! 여기에 앉아! 스칼렛!"
아가사가 마치 강아지를 부르듯 자신의 무릎을 두드렸다.
스칼렛은 얼굴을 붉히며 잠시 고민하다가 아가사의 눈썹이 구겨지자 황급히 앉았다.
아가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스칼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끄으윽 끄윽 끄윽!"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드숀을 부축해서 마차에 태웠다.
남자를 부축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게 없었지만, 차마 피 묻은 드숀의 바지를 보고도 화낼 수는 없었다.
이건 남자의 도리였다.
"끄읍... 고맙네 친구."
천천히 드숀을 앉히자 드숀이 감동한 눈으로 쳐다봤다.
기분이 좋은 눈빛은 아니었지만, 애써 고개를 끄덕이고 드숀의 옆자리에 앉았다.
드숀의 피 묻은 바지가 자꾸만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래 순결을 잃은 놈인데 내가 참아야지.
"그럼 치료를 시작할게요. 환부를 제 쪽으로 해주시겠어요?"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숀이 스스로 의자에서 일어나 엎드렸다.
혼자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취했던 자세인 듯 능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체를 의자에 엎어진 자세였다.
그러자 엉덩이 부분이 수녀 쪽으로 향했다.
수녀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가사는 스칼렛의 뒤로 숨기까지 했다.
드숀이 엎드린 상태라 그 얼굴을 못 본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봤으면 또 엉엉 울지 않았을까.
"...그럼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안드레아가 굳은 얼굴을 풀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끄윽"
드숀이 잠깐 신음하더니 슬금슬금 바지를 내렸다.
그러고 보니 성당에서도 똥꼬를 드러낸 채 했다고 했지.
문득 내가 반대편에 앉아서 드숀의 똥꼬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드숀은 바지를 내리고 팬티까지 내리고는 가만히 대기했다.
"...뭐하시는거죠?"
안드레아가 얼굴을 굳혔다.
명백하게 혐오하는 표정이었다.
"꺄악 어머... 원래 저렇게 작아? 분명 에이든 님 것은..."
아가사가 작은 목소리로 스칼렛에게 속삭였지만, 마차 크기가 작다 보니 나에게도 들렸다.
"히끅"
스칼렛이 작게 딸꾹질을 했다.
"끄읍 치료하신다고 하셔서..."
드숀이 우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가사의 말을 들은 게 분명했다.
"굳이 환부를 보여줄 필요 없습니다. 옷 올려주세요. 보기 좋지 않습니다."
고개를 돌린 안드레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끼이익! 네! 죄송합니다!!"
이상한 소리를 낸 드숀이 황급히 옷을 올렸다.
그런 드숀을 보며 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후 시작하겠습니다."
안드레아가 다시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드숀의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안드레아의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서 드숀의 엉덩이로 퍼졌다.
"아흐 아아"
드숀이 환희에 가득 찬 신음을 냈다.
"이상한 소리 내지 마세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안드레아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끄읍. 죄송합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리며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그 좆같은 용사 아카데미로.
마차가 달그락거리며 움직였다.
"아! 맞다! 스칼렛! 스칼렛은 가슴이 커서 무겁지?! 내가 좀 들어줄게!"
"아니!아니! 괜찮...!"
아가사가 스칼렛의 대답도 듣지 않고 스칼렛의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나는 그 반대편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그 황홀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아가사에게 가슴을 붙잡힌 스칼렛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응? 무겁잖아~ 그치? 이렇게 큰 거를 달고 다니면 무겁잖아?"
스칼렛의 가슴을 움켜쥔 아가사의 손이 거칠게 움직였다.
내가 케이트 가슴을 만지는 것보다 더 거침이 없었다.
마치 소의 젖을 짜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저게 들어주는 게 맞는 건가.
물론 내게는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나는 대놓고 그 모습을 구경했다.
"괜...괜찮으니까 그만 좀..."
스칼렛이 몸을 움찔거리며 붉어진 얼굴을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아흑!
아가사의 손이 스칼렛의 가슴을 거의 짜내는 것처럼 움켜쥐었다.
요즘 수녀들은 정말 사이가 좋구나.
정말 좋은 모습이야.
왜? 에이든 님 앞이라 흥분돼? 아래 젖은 것 봐 천박한 년
아가사가 스칼렛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스칼렛은 짙은 모멸감과 수치심에 머리가 점점 멍해졌다.
천박한 년
그런 스칼렛의 귀에 아가사가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계속해서 속삭였다.
천박한 년
아가사의 속삭임이 스칼렛의 머릿속에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았다.
***
중간에 비키에게 숲으로 끌려가 거칠게 교미를 당했다던가.
드숀이 잘 때 갑자기 수녀 삼인방이 와서 대딸을 했다던가.
케이트의 성질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무사히 아카데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사 아카데미의 정문이 보였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아카데미야.
분명 좆같은 아카데미였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쉬자.
"고생했다!"
"끄윽! 네! 황녀님! 황녀님에게 밟혀서 영광입니다!"
케이트가 드숀의 등을 밟고 마차에서 경쾌하게 내렸다.
"당연히 영광이지! 내 발판이 되려면 백작은 돼야 하는데! 남작 주제에 내 발판이 되다니! 평생 그 감동 간직해!!"
"가문의 영광으로 대대로 물려주겠습니다!!"
며칠간의 여행 끝에 드숀은 케이트의 충실한 종이 되어 있었다.
정문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둘러 서 있었다.
뭐지? 지금 점심시간도 아닐 텐데.
마차는 아카데미 앞에 섰는데 주변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거지?"
어느새 내 옆에 온 드숀이 물었다.
"나도 모르지. 이 뻐킹 어글리 오렌지야."
드숀의 등에는 작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들 뭔 구경 났어?!! 다 꺼져!!"
잔뜩 인상을 쓴 케이트가 손을 휘저었다.
케이트의 외침에 몇몇이 화들짝 놀라서 거리를 벌렸다.
아카데미 안에서 선생님들이 뛰어나왔다.
왜 저렇게 급하게 오는 거지?
얼굴을 아는 선생님도 있었고 입학식 때 봤던 교장 선생님도 있었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큰 키를 지닌 늙은이.
골골거린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뛰어다닐 정도면 아직 정정한가 보네.
저들이 저렇게 급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아마 케이트 아니면 키아나에 관련된 일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배고프다. 점심 뭐 먹지?"
드숀도 같은 생각인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착한 기념으로 내가 사주마. 물론 5 실버 이상은 안 되지만."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10 실버는 써야지 5 실버면 라면 먹으면 끝인데."
"싫으면 꺼지던가."
"물론 5실버도 충분하지! 허허!"
서둘러 달려온 선생님들이 우리 앞에 섰다.
잠시 숨을 고르던 교장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에... 에이든이 누구냐!!!"
교장 선생님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와 말이 섞여 나왔다.
애미 시발?
왜 저기서 내 이름이 나와?
나를 찾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드숀은 교장 선생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마자 슬금슬금 내게서 멀어졌다.
"...전데요?"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살짝 올라간 눈꼬리 때문에 별 소용은 없을 테지만.
"너... 정말로 처"
"비켜주시죠. 크립트 님. 황실의 일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을 때, 그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살짝 인상을 쓰던 교장 선생님이 옆으로 비켜섰다.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남자는 정말 차갑고 깐깐하게 생긴 인상이었다.
정말 얽히기 싫게 생긴 외모였다.
날카로운 눈매가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 들게 했다.
왜 이런 사람이 나를 찾는 거야.
"용사 아카데미 3학년 에이든. 처녀교 입교 혐의로 특별 입건한다."
사내가 나를 차가운 눈빛으로 보며 품에서 작은 쇠고리를 꺼냈다.
애미 시발.
처녀교가 여기서 왜 또 나와.
"야! 너는 뭐야!! 무슨 얘가 처녀교야!! 얘는 처녀교에 납치된 거라니까!!"
인상을 잔뜩 쓴 케이트가 사내와 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렇지! 잘한다!
네가 왜 개차반 케이트인지 보여줘!
"삼 황녀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황제님께서 만든 처녀교 특별 기구에서 진행되는 사항으로 황녀님께서는 권한이 없으십니다."
남자는 케이트의 얼굴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작게 고개를 숙인 다음에 말을 이었다.
"뭐뭐?! 너 내가 누군지... 알구나. 근데 그렇게 나온다고?!! 얘 처녀교에 납치된 거라고!!"
소리 지르던 케이트가 남자의 평온한 반응에 당황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자세한 정황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녀교의 간부로 추정되는 사내가 붙잡히면서 에이든이라는 이름을 말했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에이든이 맞습니까?"
남자는 다 안다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스칼 이 개새끼.
은혜도 모르는 씹새끼.
어쩐지 얼굴이 재수 없게 생겼더라니.
이래서 잘생긴 새끼들이 안 된다니까.
잘생긴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
"저 드숀인데요."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느낌에 습관적으로 내 입에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쓸데없는 거짓 진술은 죄를 더욱 무겁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예. 에이든 맞습니다."
알면서 왜 물어봐 시발.
남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내 양손에 쇠고리를 채웠다.
옆에서 케이트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럼 재판도 없이 바로 구속되는 겁니까?"
표정을 굳힌 키아나가 옆에서 물었다.
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키아나의 모습이 묘하게 든든했다.
그래, 나 구속되면 누가 네 메론빵 챙겨두냐고!
네 빵셔틀 책임져.
"예. 처녀교에 대한 혐의는 모두 구속 수사입니다."
키이나의 얼굴을 본 남자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가 다시 굳었다.
저런 남자의 표정까지 풀리게 한다니 대단한 외모임에 틀림없었다.
"내 꺼를 멋대로 가져간다고? 감히?!"
비키의 몸에서 거센 기운이 일어나며 앞으로 나왔다.
비키의 기세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주머니에 뭔가 있는지 남자가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일단 비키 잠깐만. 지금 반항하면 에이든에게는 더 안 좋으니까. 아직 혐의가 인정된 것도 아니고"
이를 갈며 나서는 비키를 키아나가 달랬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분명 치고받고 싸우지 않았나.
"만약 혐의가 없다면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것입니다."
남자가 내 손에 걸린 쇠고리를 검사하며 말했다.
"당연히 무죄지!! 설마 에이든이 처녀교에 입교를 했겠어?! 그런 쓰레기 교에서 에이든이 활동했겠냐고!!!"
조슈아에게 들린 케이트가 공중에서 발버둥 치면서 소리 질렀다.
맞아! 나는 이상한 놈한테 납치됐을 뿐이라니까!
... 근데 입교한 건가?
전담 처녀를 배정받기는 했었는데...
신나게 에이미와 교미하던 게 생각났다.
에이 설마.
물론 신수의 처녀막 연구도 하기는 했는데.
에이 설마.
...나 활동한건가?
"예.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혐의가 인정된다면 특별법으로 사형이지만, 혐의가 없다면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남자가 뒤쪽에 손짓했다.
그러자 남자와 비슷한 복장을 한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나와서 나를 끌고 갔다.
애미 시발 사형?
그 새끼들이 병신들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두 사형이라니 시발.
순수하게 처녀막을 연구하던 놈들도 있다고.
그냥 순수한 병신들도 있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에이든 님 저희가 반드시 무죄를 밝혀내겠습니다."
끌려가는 내게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안드레아의 손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전혀 믿음직하지 않잖아.
"나는 결백해! 나는 무죄다! 나는 무죄야!!"
내 양팔을 사내들이 두꺼운 팔로 붙잡자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무죄라고!!!"
"사제!! 걱정하지 마! 내가 사제의 무죄를 꼭 증명할 테니까!"
뒤쪽에서 청아한 키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죄를 증명한다는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무죄가 아니어도 구해주면 안 돼?
솔직히 나 정도면 무죄지.
"이거 놓으라고!!! 에이든!!! 나 황녀라니까!!!"
뒤에서 큰 소리로 소리치는 케이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마차에 실렸다.
다른 마차들과는 다르게 마차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나를 중간에 앉히고 덩치 큰 사내 둘이 내 양옆으로 앉았다.
건너편에는 아까 내게 말했던 그 남자만 편하게 앉아 있었다.
저기 자리 남잖아.
왜 굳이 낑겨서 타는 거야.
심지어 사내들이 덩치까지 커서 나는 몸을 잔뜩 웅크려야 했다.
"그... 좁은데 한 분은 저쪽에 앉으면 안 되나요?"
이 새끼들 팔뚝은 또 왜 이렇게 굵은 거야.
사내들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저기요? 그쪽 덩치들 때문에 숨을 못 쉬겠는데... 흐으 흐으엑!"
혹시 안 들렸나 해서 숨쉬기 힘든 척까지 섞어서 말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품에서 수첩을 꺼낸 남자가 뒤쪽 시트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마차가 출발했다.
"한 사람의 말만을 믿고 이렇게 무고한 사람을 입건해도 되는 겁니까? 애초에 저는 아카데미 학생인데 그리고 심지어 저는 납치까지 됐다가 구출돼서 이제야 돌아온 겁니다."
수첩을 계속 뒤적거리는 남자에게 절절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나 무고하다고!
나 억울해!
"...만약 무죄라면 풀려나실 겁니다. 그리고 고발자가 제출한 서류에는 다른 고위 귀족들도 적혀 있었습니다. 해당 귀족들도 지금 다 구속되어 조사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수첩을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고 대답했다.
너보다 더한 놈들도 고발돼서 조사 중이니까 좀 닥치라는 건가.
남자의 재수 없는 말투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넵. 잘 부탁드립니다. 나으리!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하지만 내 얼굴은 선량하게 웃고 있었다.
내 말에 남자는 그저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 이 개새끼.
은혜도 모르는 십새끼.
그때 그냥 마물한테 강간당하게 내버려 둘 걸 시발.
정적 속에서 마차가 굴러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쟤가 무슨 처녀교야!"
케이트가 선생 중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내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막돼먹은 황녀의 태도에 선생들은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뭐라 혼낼 수도 없었다.
케이트는 제국의 황녀였으니까.
"이...일단 진정하시죠 황녀님. 아직 혐의가 밝혀진 게 아니라 입건만 된 거니까요."
멱살을 붙잡힌 선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황녀를 말렸다.
"애초에 납치된 애가 무슨 처녀교 혐의야!!!"
물론 그런 선생의 노력과 다르게 케이트는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이제는 선생의 염소처럼 난 수염을 붙잡고 있었다.
"안돼애애!! 내 수염!!"
저번에 황녀에게 수염을 뽑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 선생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 처녀교의 간부였던 사람이 제출한 자료에 에이든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교장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이트가 교장을 노려봤지만, 차마 교장한테까지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선생들과 교장은 급이 다르니까.
"일단은 자리부터 옮기시죠. 여기는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교장이 약간 떨어져서 구경하는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용사 아카데미에서 가만히 있으면..."
케이트가 인상을 잔뜩 쓰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케이트에게 붙잡힌 선생은 황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수염에 다가오는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카데미가 학생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학생을 지키겠습니까."
교장이 얼굴을 굳히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이 에이든이 납치되었을 때는 왜 움직이지 않았지.
역겨운 느낌이 들었지만, 케이트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교장을 따라 움직였다.
지금은 에이든을 구하는 게 먼저니까.
자꾸만 기운을 터질 것처럼 일으키는 비키를 키아나가 진정시키며 같이 따라 걸었다.
"저희는 일단 성당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표정이 한껏 굳은 안드레아가 말하고 바로 돌아섰다.
"안녕히 계세요!"
아가사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고 안드레아를 따라 움직였다.
스칼렛도 조용히 둘을 따라 걸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안드레아 수석 수녀님?"
아가사가 안드레아의 옆에 붙으며 물었다.
"일단은 위쪽으로 요청을 보낼 생각입니다. 황실 쪽과 이야기를 하려면 최소 추기경급은 되어야 할 텐데 지금 대지교의 추기경이..."
안드레아가 차가운 표정으로 눈을 자꾸만 깜박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추기경이요? 어! 저희 삼촌이 추기경인데! 수도 대성당에 계세요. 연락해볼까요?"
아가사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진짜입니까?! 역시 에이든 신님이 도우시는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일단 그러면 대성당으로 먼저 가보죠."
안드레아의 눈에 기이한 불꽃이 튀었다.
에이든 님에게는 정말 일이 끝도 없이 벌어지는구나.
스칼렛은 둘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만약 걸음을 삐끗하면 아가사가 자신의 아래에 쑤셔 넣어둔 묵주가 삐져나올 수도 있었다.
"어! 스칼렛 빨리 안 걸어?"
장난스러운 눈빛을 한 아가사가 그런 스칼렛을 슬쩍 밀었다.
아흑
넘어진 스칼렛의 치마 사이로 젖은 묵주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흥분하다니... 스칼렛은 정말 천박하다니까"
아가사가 스칼렛의 볼을 쓰다듬으며 젖은 묵주를 다시금 들었다.
쓰러진 스칼렛은 차마 아가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몸을 덜덜 떨었다.
"이번에는 몇 개까지 넣어볼까?"
아가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