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06화 (106/233)

〈 106화 〉 성녀의 기본 조건.

* * *

"그러니까 왜 평민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루크는 목을 죄는 단추 하나를 풀고 자리에 앉았다.

"일단 에이든 씨는 아카데미 학생이니까요. 회장님."

혜진이 챙겨온 종이를 테이블에 나누어 놓았다.

"평민에게 굳이 씨를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혜진 씨. 정말 그깟 평민 하나가 뭐라고 쯧."

혜진에게 받은 종이를 읽어보며 루크가 투덜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크는 에이든과 관련된 일이면 가시를 잔뜩 세웠다.

혜진은 그런 루크가 오히려 에이든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납치되었다가 아카데미로 돌아오자마자 황실 쪽으로 끌려가다니...

에이든 씨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게 분명했다.

테이블에 종이를 다 배분하고 물까지 놓으니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또 뒤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만 해봐!!! 니네들 수염 내가 다 뽑아버릴 테니까! 알았어?! 내가 제모해버린다고 수염!"

황녀가 길길이 날뛰면서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황녀님 일단 진정을 조금..."

"조슈아는 닥치라고! 닥쳐!"

옆에 있는 기사가 말리는 것 같았지만, 전혀 소용 없어 보였다.

분명히 학기 초만 해도 황녀가 저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카데미에서 자신이 황녀인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저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왜 갑자기 저렇게 사람이 변했지?

혜진은 의문이 들었지만, 조용히 루크의 옆에 가서 앉았다.

"크흠... 아무리 황녀님이라도 여기는 용사 아카데..."

"뭐야 넌!? 너 소속 어디야!! 이 수염도 그지 같은 게!!"

"에?!! 잠깐만요!! 황녀님!!! 으아악!! 안돼!!! 내 수염!! 말려! 말리라고!!"

염소수염을 가진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황녀에게 정중하게 말하자마자 황녀는 바로 남자에게 뛰어들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녀는 기어코 염소수염을 가진 선생의 수염을 뽑아 자랑스럽게 위로 들었다.

수염을 뽑는 실력이 늘었는지, 선생의 염소수염이 정말 순식간에 뽑혔다.

수염을 뽑힌 남자가 어린 아이처럼 울부 짖으며 회의장에서 뛰쳐 나갔다.

손에 잔뜩 뽑힌 수염을 아무렇지 않게 터는 황녀를 보며 다른 선생들은 말을 삼켰다.

저 막무가내인 황녀에게 괜히 밉보일 필요는 없었다.

수염을 가진 사내들은 조용히 자신의 수염을 손으로 가렸다.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그런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보던 교장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상석에 앉았다.

사실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대뜸 목을 치는 게 황족인데, 수염을 뽑는 선에서 멈추는 건 자애로운 편이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교장도 슬쩍 수염을 가렸다.

회의장에는 ㄷ자 형태의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교장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선생들과 학생회 왼쪽에는 케이트 등이 앉았다.

"그럼 저희 아카데미 학생이 황실에 기소된 건에 대한 대책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학생회장?"

교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의자에 묻었다.

교장의 지명을 받은 루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으며 시선을 끌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보시면 됩니다. 용사 아카데미 3학년 에이든은 황실에 '처녀교 입교 혐의'로 기소된 상태입니다. 종이에는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이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루크는 잠깐의 시간을 주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적막한 회의장을 채웠다.

"뭐야 이건? 처녀교에 납치된 에이든이 특급 신도 혐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인상을 쓴 케이트가 삐딱하게 루크를 올려다봤다.

"...거기에는 제 의견을 적은 게 아니라 황실 쪽에서 제시한 혐의가 적혀 있는 겁니다."

자신에게 하대하는 황녀를 보며 루크는 지적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뭐? 전담 처녀? 이건 또 뭐야. 납치된 에이든이 그 능력을 인정받아 특급 신도로 배정받고 전담 처녀까지 받았다­ 그 에이든이? 황실 쪽에서는 이게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기가 찬다는 듯 케이트가 이죽거렸다.

근데 설마? 에이든 이 새끼가?

에이 그래도 사람이라면 납치돼서도 그랬겠어?

케이트는 문득 든 생각을 애써 고개를 흔들어 흩트렸다.

황녀인 케이트가 황실을 비웃는 광경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실 그 부분은 루크도 의문이었다.

규모가 작은 종교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처녀교는 제국군이 나설 정도로 규모가 큰 종교였다.

그런 종교에서 유급생인 에이든의 실력을 인정해주고 꽤 높은 지위까지 주다니.

사실 말이 안 되기는 했다.

에이든은 아카데미에서도 답이 없기로 유명했으니까.

"저도 그 점이 의문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황실 쪽에서 제시한 혐의니까 적어뒀습니다."

그런 의문을 삼키고 루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신수의 처녀막 연구­ 이거는 뭡니까?"

처녀막이라니­ 이런 걸 왜 연구하지?

키아나가 머뭇거리면서 손을 들고 물었다.

"아! 키아나님­ 그건 에이든이 처녀교 쪽에서 맡았던 연구라고 들었습니다."

루크는 키아나의 아름다운 외모와 고귀함에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목소리 뭐야... 개느끼해. 우웩­"

케이트가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중얼거렸다.

"크하하하!"

옆에 있던 비키가 케이트의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명백한 모욕에 루크는 손이 떨렸지만 참아야만 했다. 상대는 황녀였다.

루크는 크게 심호흡하며 화를 삭혔다.

"제 사제가 이런 이상한 연구를 했을 리 없습니다."

키아나가 인상을 굳히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든이 제국 제일검 제자로 들어갔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실이었나.

도대체 제국 제일검님이 왜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을.

루크는 가슴 속에서 질투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 감정이 질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질투가 아니라 벌레에 대한 혐오감이다.

"일단 황실 쪽에서 제시한 혐의입니다. 그에 대한 진실 여부는 후에 재판에서 판명 날 것입니다."

평민 하나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니­

루크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구겨지려는 얼굴을 애써 폈다.

"그럼 일단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제일 우선이군요."

머리를 질끈 묶고 있는 피오라 선생이 차분하게 말했다.

"크흠­ 아카데미 측에서 변호인을 따로 구해야 하는 겁니까? 그... 에이든은 가문도 없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변호사 선임 비용을 받을 수 있을지..."

사내 한 명이 케이트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수염을 손으로 가렸다.

"그 비용이라는 거 나한테 청구하던지!! 무슨 아카데미에서 쪼잔하게 돈 때문에 학생 변호를 망설여?! 그지야 너네?!"

케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지르며 선생들을 손가락질 했다.

"... 아카데미 학생이니 저희가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맞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사 아카데미에 그 정도의 자금은 있으니."

눈을 감고 있던 교장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평민­"

몇몇 선생이 황녀의 눈치를 보며 반박했다.

"우리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반문을 제기하는 선생의 말을 교장이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잘랐다.

제국 제일검의 제자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가 증명되는 것인데.

지금까지 제국 제일검이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었던 이유도 제자인 키아나 때문이었다.

그 가치를 모르는 선생들이 교장은 답답했다.

케이트가 방금 소리친 선생들을 하나하나 노려봤다.

선생들은 케이트의 시선에 찔끔해서 고개를 돌렸다.

"... 그럼 변호사 선임이 우선돼야 할 문제군요. 저희 쪽에는 제국법에 대해 박식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회의가 점점 루크가 원치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변호사십니다."

루크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혜진이 손을 들었다.

루크는 그런 혜진을 노려봤지만, 혜진은 앞을 보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아­ 혜진 학생의 가문이 대대로 판사 가문이었죠. 아버님이 지금은 판사를 그만두셨습니까?"

용사학 개론을 맡은 베르하임이 물었다.

"예. 최근에 정년을 맞이하셔서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수도에 계시니 가격만 맞는다면 도와주실 게 분명합니다."

혜진이 검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그 가격이 꽤 나가는 게 문제지만, 그건 아카데미 쪽에서 해결할 것이다.

"...혜진씨?"

루크가 나지막하게 불렀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아 혜진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럼 쟤가 변호사 맡고, 더 필요한 건 뭐야?"

케이트가 손뼉을 짝­ 소리가 나게 쳤다.

"...후­ 변호사 선임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나 증명이 필요합니다."

깊게 한숨을 뱉은 루크가 대답했다.

"권위 있는 분들이 황실 쪽에 탄원서를 제출해주시면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루크의 말을 옆에 있던 혜진이 받아서이었다.

혜진이 자꾸만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회의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어갔다.

루크는 그런 혜진을 말리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탄원서? 조슈아! 내 이름으로 당장 탄원서를 쓰도록!"

케이트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조슈아를 가리켰다.

"그... 그건 황녀님의 이름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거라 조금 더 심사숙고해보심이..."

조슈아는 자신의 이름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게 분명한 케이트를 말렸다.

비공식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사용하는 것과 공적인 문서에 황녀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그 무게가 달랐다.

권리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쓰라니까?! 조슈아?! 황녀 명령이야 황녀 명령!!"

조슈아의 말을 케이트가 가볍게 씹었다.

"그럼 저도 가문에 요청해보겠습니다. 가문에서 들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은 표정의 키아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문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사제와 관련된 일이다.

자신의 껄끄러움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래! 너도 가문이 공작이라고 했지? 그 정도면 꽤 쓸만하니까­"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을 꽤 쓸만하다고 평가하는 케이트를 보며 사람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마 황녀는 계급 체계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럼 일단 1차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 회의는 변호사가 선임된 후에 필수 인원들만 모아 진행하겠습니다."

교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루크는 좋은 방향으로 끝난 회의에 속에서 무언가가 꼬이는 것 같았다.

고작 쓰레기 같은 유급생 하나에 이런 난리를 피워야 한다니.

가치 없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 힘을 쓰는 게 분명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다들 에이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뒷정리를 위해 혜진과 루크만 회의장에 남았다.

"...혜진씨 왜 그런 일을 자처했습니까. 굳이 그런 유급생 하나를 위해서­"

루크가 짜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열심히 뒷정리하는 혜진에게 말했다.

"지인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종이를 모으던 혜진이 루크를 잠깐 보며 대답했다.

쾅­

"지인이라니 그게 무슨?! 억!!"

혜진의 대답에 루크가 의문을 표할 때 누군가가 루크의 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너 아까부터 자꾸 거슬리게 하더라?"

루크를 벽에 처박은 비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끄윽­ 제가 무슨­ 끅! 학생회장인 저의 목을­ 이건 용서받지 못할 끄윽! 행동입니다­"

목이 막혀있는데도 불구하고 루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누가 나를 용서해? 나는 다른 사람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필사적인 루크의 말에 비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비키에 루크는 손으로 마나를 돌렸다.

점점 더 목을 조르는 비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한쪽으로 봐줄게. 다음에도 또 거슬리게 하면 고작 이 정도로 안 끝나."

비키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핥으며 낮게 말했다.

한쪽이라니?

루크는 빠르게 오른손에 얼음 창을 캐스팅해 비키의 복부에 박아 넣었다.

하지만 얼음창은 비키의 몸에 닿는 순간 마나가 흩어지며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비키의 손이 루크의 오른쪽 귀를 잡았다.

끄아아악­!

루크의 찢어지는 비명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아 미안. 오랜만에 하니까 이쁘게 안 뜯기네. 이번에는 제대로 해줄게."

얼굴에 피가 잔뜩 묻은 비키가 환하게 웃었다.

***

"여기 앉으시죠."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로버트 추기경이 자리를 안내했다.

추기경의 사무실은 이라는 높은 지위에 걸맞지 않게 수수했다.

수녀들은 로버트가 가리킨 의자에 다들 나눠서 앉았다.

"여긴 어쩐 일이냐 아가사야.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로버트 추기경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아가사를 쳐다봤다.

"평소에도 가끔은 찾아왔잖아요! 삼촌!"

아가사는 의자가 꽤 넓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스칼렛과 붙어 앉았다.

"클클. 수도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밖에 오지 않았잖느냐. 그때도 용돈을 받기 위해 온 거고."

로버트 추기경이 때가 탄 찻잔들을 수녀들 앞에 놓았다.

잔에는 익숙한 향이 나는 차가 담겨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왔잖아요!"

아가사가 스칼렛에게 기대면서 대답했다.

"모자란 조카를 돌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미소 지으며 보던 추기경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사 수녀는 저희 용사 아카데미 대지신 성당의 자랑입니다."

안드레아가 그에 단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자랑이라니. 분명히 사고만 치고 다닐 녀석이..."

"삼촌!!"

"여기서는 추기경님이라고 하거라. 보는 눈이 많으니까."

추기경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입을 삐쭉이던 아가사는 스칼렛에게 더욱 기대었다.

슬쩍 가슴을 건드리자 굳어지는 스칼렛의 몸이 아가사의 기분을 좋게 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추기경이 안드레아를 보며 물었다.

"... 황실과 관련되어 추기경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잠깐 주저하던 안드레아가 말을 꺼냈다.

안드레아의 말에 추기경이 침음성을 흘렸다.

황실에 대한 문제는 추기경으로서도 함부로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 위험했다.

"황실과 관련된 문제는 대성당에서도 꽤 까다롭습니다. 혹시 저희 대지교의 신자가 관련된 문제입니까?"

잠깐 고민하던 추기경이 물었다.

"... 신도라기보다는­ 제게 소중한 분이라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안드레아의 대답에 추기경의 표정이 굳었다.

황실과 관련되어 있으면 대지신의 신자라도 관여하기 어려운데 신자가 아니라니.

아무리 아가사의 동료 수녀라도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거절하기 위해 추기경이 입을 여는 순간, 안드레아에게서 거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막대한 신성력이 안드레아의 등 뒤로 천천히 모였다.

이 정도의 신성력이라면­

그 신성한 모습에 추기경의 주름진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안드레아의 뒤에는 천천히 신성력으로 구성된 한 쌍의 아름다운 날개가 생기고 있었다.

빛으로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빛 송이들이 주변으로 뿌려졌다.

저건 신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자라면 누구든 항상 꿈꾸는 선명한 성녀의 증거였다.

비록 성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선명한 다섯 쌍의 날개가 필요하지만, 날개를 피워냈다는 사실 자체로 교가 뒤집힐 만한 일이었다.

지금 대지교에는 성녀의 기본 자격이 된 수녀조차 없는 상태였으니까.

"만약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대지신의 성녀가 되기 위한 길을 걷겠습니다."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었다.

물론 대지신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지만­

안드레아는 주머니에 쥐고 있는 에이든의 속옷을 더욱 꽉 쥐며 날개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너...너 어떻게 증거를...!"

옆에서 스칼렛이 그런 안드레아를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런 스칼렛의 엉덩이를 아가사가 추기경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조용히 주물렀다.

"드디어 우리 대지교에게도!!! 신의 영광이!!! 아아!!"

어느새 무릎을 꿇은 추기경은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

대지신은 자신의 수녀가 남자의 속옷을 쥐고 날개를 피워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이내 고개를 젓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와중에도 포인트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으니까.

이기기만 해줘.

제발.

***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랬어. 하하 민망하게."

에일버드 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으며 에이든이 겸연쩍게 웃었다.

"... 자네가­ 아니네. 됐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얼굴이 퉁퉁 부은 스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금니도 하나가 빠져서 땅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입안에서 묘한 허전함이 느껴졌다.

화난다고 대뜸 주먹부터 날리다니.

스칼은 자신이 에이든에 대해 다소 좋게 평가하고 있던 것을 인정했다.

"크하­ 좋다­ 좋아! 에일 버드 튀김과 모래 맥주를 같이 가져다주다니! 그럼 나는 여기서 편하게 꿀 빨다가 나가면 된다는 거잖아! 어이 간수! 모래 맥주 한 잔 더!"

에이든이 크게 웃으며 마치 종업원을 부르는 것처럼 간수를 불렀다.

"...그렇지. 즐기면 되네. 제국 쪽에서도 요구하는 건 웬만하면 다 들어주니까 말이야."

신나게 먹고 즐기는 에이든을 보며 스칼은 말을 삼켰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을 밀고했으니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사람이 맞나?

언제 화냈다는 듯 금세 감옥에 적응한 에이든은 연신 간수한테 이것저것 요구하고 있었다.

스칼은 그런 모습을 보며 에이든은 어디를 가더라도 굶어 죽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에일 버드 튀김 한입에 모래 맥주까지­ 크흐흐흐 이게 교미지!"

양손에 튀김과 맥주잔을 든 에이든이 정말 행복하게 웃으며 허리를 앞뒤로 튕겼다.

"교미는 그런 게 교미가 아니라 남녀가 삽입을 하는 게­"

잘못된 에이든의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스칼이 말했다.

크으으으­

에이든이 스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모래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제국 놈들 아니랄까 봐 정말 상종 못 할 정도로 천박하군­"

욕설의 충격에서 빠져나온 사비에르트가 이죽거렸다.

"어디 깜둥이가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버릇없이! 떽! 그러다가 주인님한테 혼나요!!"

사비에르트의 이죽거림을 듣자마자 에이든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뭐...?!"

에이든의 욕설에 사비에르트의 동공이 흐려졌다.

"에이든 자네 잠깐만­! 저분은­"

다시 한번 사막의 영웅에게 인종 차별을 박아버리는 에이든을 보며 스칼은 정신이 다시 혼미해졌다.

그제야 자신이 사비에르트를 에이든에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인종 차별을 서슴없이 박아버리다니.

물론 사비에르트가 먼저 이죽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런 미녀의 이죽거림 정도는 남자라면 포상아닌가.

스칼은 에이든을 말리기 위해 황급히 일어났다.

"요즘 깜둥이들은 버릇이 없어요! 떽! 이거 먹고 조용히 해!"

스칼이 미처 말리기 전에 에이든이 마치 동물에게 먹이를 주듯 튀김 하나를 쇠창살 사이로 사비에르트에게 던졌다.

겨우 정신을 차렸던 사비에르트가 자신의 앞에 굴러온 튀김 조각을 보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심지어 저 천박한 사내는 튀김 부분만 던졌는지 안에 고기도 없었다.

"사비에르트 님!!!"

스칼이 쓰러진 사비에르트를 보며 두꺼운 쇠창살을 붙잡고 절규했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요­ 버릇이. 크­ 이게 교미지! 교미! 교미!"

에이든은 신경 쓰지 않고 소리 내 웃으며 다시 튀김을 주워 먹으며 허리를 튕겼다.

[정확하게 말해주지 그것은 교미가 아니네. 함부로 교미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쓰지 말도록.]

교미왕이 인정한다! 이건 교미다!

크흐­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