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끔찍한 악마 놈들!
* * *
"기억할게! 너는 최고의 보지 마법사였어!!! 크흑!!"
황망히 내게 끌려오는 스칼로 냉큼 내 앞을 가렸다.
"자...자네 이게 무슨?!! 안돼! 안된다고!! 나는 아직 할 게 많단 말이다!!!"
스칼이 발버둥 쳤지만 보지 마법사가 내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스칼로 내 앞을 막고 기운까지 돌려 온몸을 웅크렸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살 수 있지 않을까?
뜨거운 열기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느꼈을 때, 돌연 폭발이 사라졌다.
눈을 뜨자 내 손에 들린 채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는 스칼과 그 앞을 막고 있는 깜둥이가 보였다.
깜둥이의 등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저 새끼들 나한테 폭탄 던진 새끼들이잖아.
나와 눈이 마주친 몇 놈들이 내 시선을 피했다.
"은인 꼭 언제가 됐든 은혜 갚으러 가겠습니다! 지금은 보다시피 머저리들이 많아서! 그럼! 그때까지 평안하십쇼!!"
깜둥이가 나를 보며 시원하게 웃고는 사라졌다.
왜 시발 꼭 복수하러 오겠다는 건데
그냥 대충 용서해주면 되잖아 시발.
스프도 먹여줬는데.
억울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회색 연기가 가득 차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든!!!! 에이든!!"
익숙한 띠꺼운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사제!"
스칼을 깨우기 위해 뺨을 몇 대 쳤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히 스칼의 뺨만 퉁퉁 부었다.
이윽고 회색 연기가 천천히 사라지고 엉망진창이 된 재판장 내부가 보였다.
하지만 따로 인명 피해는 없어 보였다.
"사비에르트 포테가 사라졌습니다!!!"
"사비에르트는 위험 순위가 특급이라고 특급!!!"
"우리 좆됐다!! 빨리 알람 울려!!"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잉!"
"입으로 말고! 이 폐급 새끼야! 아오 진짜!!"
뒤늦게 깜둥이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재판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어차피 무죄 판결을 받은 나는 여유롭게 다시 의자에 앉았다.
쓰러진 스칼은 대충 멱살을 잡아 올린 다음 옆에 던졌다.
"에이든?! 괜찮아?!!"
어느새 내게 다가온 케이트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시발!! 어지러워! 그만해!"
케이트가 너무 세게 흔들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행입니다. 괜찮으셔서."
안드레아가 잔뜩 흥분한 케이트를 말리고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단아하게 웃는 안드레아의 손을 타고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어? 근데 안드레아 수녀님 옷이 바뀌었네요?"
다른 수녀들과 다르게 안드레아는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잘 어울려 보는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예. 어쩌다 보니 분에 넘치게 성녀라는 걸 맡아서..."
내 말에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내 떡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금 내 머리는 며칠이나 씻지 못해 나도 만지기 싫은 상태였는데, 안드레아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성녀요? 왠지 이름이 조금 그렇네요."
"성녀가 그렇긴 뭐가 그래! 머리에 이상한 거만 들어가지고!! 너 그리고 아까 그 여자 누구야! 감옥에서 뭔 짓을 한 거야!!"
케이트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안드레아의 손을 밀어내고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아니 아까 분명히 회색 연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본 거야 얘는.
"악!! 야! 머리 뽑힌다고 시발! 그냥 감옥 옆 방에 있던 애라고! 악!"
그렇게 한참 빡 대가리랑 씨름하고 있는데, 안드레아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뭔가가 옵니다."
안드레아가 하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흐응 둘이 좋아 보이네?"
입꼬리를 올린 비키가 케이트의 손을 쳐 내려고 했을 때
콰아아아앙!
돌연 재판장의 지붕이 날아갔다.
말 그대로 지붕이 사라졌다.
"끼야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
그리고 재판장의 위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근데... 꼭 이렇게 웃어야 해요? 아 알았어요! 할게요! 화내지 마요! 죄송해요!"
그러더니 돌연 고개를 굽신거리며 사과했다.
뭐야 저 정박아는.
그 모자란 모습과는 다르게 불안한 느낌이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느낌이 좋지 않네. 비켜"
비키가 케이트를 밀쳐내며 앞으로 나섰다.
"...칠흑보다 어두운 어둠 속에!!! 자라나는 절망이여!!! 아아! 혼돈이여!!... 풉! 내게 강림하소서!!! 그! 거대한 으음 힘으로! 이 미개한 세상을 모두 개혁하소서!! 두드리고 두드려 이 몸으로 세상의 끝을 열겠다!!!"
여자가 듣기만 해도 불안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분명 말려야 할 것 같았지만, 중간중간 들어가는 여자의 웃음 소리 때문에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닿기에는 너무 높은 위치에 여자가 있었다.
"그... 저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앞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비키에게 물었다.
"... 그래야겠지?"
몸에서 으드득 소리를 내며 몸을 풀던 비키가 돌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도무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도약력으로 비키는 단숨에 여자가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비키가 여자에게 닿기 바로 전에 누군가가 비키를 막았다.
"보통 주문 외울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식입니다. 인간."
재수 없는 느낌이 드는 악마가 등 뒤로 보기만 해도 흉측한 뼈날개를 펼치며 비키를 떨어뜨렸다.
날개가 없는 비키는 남자의 손짓 한 번에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비키가 땅에 박히며 굉음이 퍼졌다.
"열려라! 지옥의 문! 크흡... 열려라 지옥의 문이래..."
여자가 손을 뻗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애미 시발 하늘이 갈라지네?
그리고 찝찝하고 강대한 마나가 갈라진 하늘에서 뿜어져 나왔다.
재판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 절망이 자리 잡았다.
나는 단번에 지금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시발 개 좆됐다.
***
쓰레기들
나의 에이든 주변에 쓰레기들이 잔뜩 붙어 있는 게 보였다.
화가 난 루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마나를 문에 쏟아부었다.
원래 열려던 문보다 배는 큰 문이 하늘 높은 곳에서 열렸다.
뭐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들 똑같은 쓰레기니까.
루나는 다만 혹시나 에이든이 위험할까 봐 집중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그 순간
흥분에 덜덜 떨리는 몸을 느끼며 루나는 침을 삼켰다.
나의 에이든은 내가 구할 거야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꾸만 웃음이 새 나왔다.
***
"이번에도 우리의 승리구만!! 멍청한 남부 악마들 크하하하!"
"너네들이 비열하게 드레이크 피로 유혹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니냐! 비열한 놈들!!"
"악마에게 비열하다니 최고의 찬사로군. 패배자 남부 놈들아!"
"... 청렴결백한 북부 놈들!"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심성이 고운 남부 놈들!!"
하잘드와 리엘리하가 연신 불길을 내뿜으며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남부 측 악마와 북부 측 악마의 내전은 늘 절반의 승리로 끝맺었다.
이 늘어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남부 악마들과 북부 악마들은 늘 치고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옥에서는 정말 할 게 없었으므로.
"이렇게 23130 대 23131 이구만! 크하하하 남부 놈들 정말 패배자들이군!"
"...한 판 이겼다고 좋아하기는. 다음에 다시 붙으면 우리가 이길 게 분명하다! 짐승 같은 북부 놈들아!"
"원래 마지막에 이긴 놈이 최종 승자라는 것을 모르나? 크하하하!"
북부 쪽 대장 악마인 하잘드가 늑대처럼 수북하게 난 털이 연신 움직이며 자신이 크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 하잘드의 모습에 리엘리하의 머리 위에 살아움직이는 뱀들이 츠르르 소리를 냈다.
"저... 장군님들...?"
그런 둘 사이로 쭈뼛쭈뼛 한 악마가 다가왔다.
악마는 둘의 기운을 버티기 힘들었는지 몸이 잘게 떨렸다.
"뭐냐?"
리엘리하가 눈썹을 찌푸리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크흠 당당하게 말하거라!"
하잘드가 슬쩍 리엘리하의 기운을 막아주며 물었다.
"저기에 문이 열렸는데요?"
악마가 그런 둘의 눈을 피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악마가 가리킨 곳에는 언제 생겼는지 큰 균열이 열려 있었다.
"저 정도면 나도 넘어갈 수 있겠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둘의 반응은 달랐지만, 둘 다 균열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분명 마왕님이 자신이 부를 때까지 중간계로 넘어오지 말라고 했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균열로 뛰어들려는 하잘드를 리엘리하가 막았다.
"크하하하! 그렇게 소극적이니까 너희 남부 놈들이 우리를 못 이기는 거야! 안 들어갈 거면 비켜라!!"
하잘드가 불길이 뚝뚝 흐르는 손톱을 리엘리하에게 휘둘렀다.
그 손톱에 담긴 흉흉한 기세에 리엘리하는 비킬 수밖에 없었다.
정면 승부로는 하잘드를 이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분명 마왕님이...!"
"닥쳐라! 이 겁쟁이 놈들아! 애들아!! 일어나라! 수확하러 가자!"
하잘드의 말에 엎어져서 쉬고 있던 악마들 중 절반이 일어나 날아올랐다.
"끼에에엑! 수확이다 수확!"
"꺄하하하하!"
절반의 악마가 하잘드의 뒤로 붙었다.
"자! 드가자!"
하잘드는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균열로 뛰어들었다.
그 크고 털로 수북한 몸이 금세 균열 사이로 사라졌다.
"드가자!!!"
악마들이 그런 대장을 따라 거침없이 균열로 뛰어들었다.
"저 대장 어떻게 합니까? 저 남부 놈들 공포 수확해서 오면..."
"...멍청한 짐승 같은 북부 놈들 마왕님이 그렇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다른 악마의 질문에 리엘리하의 머리에 달린 뱀들이 소리 내며 움직였다.
"우리도 간다."
리엘리하가 회색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균열로 뛰어들었다.
***
"끼에르르르륵!!!"
"인간이다! 공포다! 수확한다!"
"크하하하!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기구나!"
갈라진 하늘에서 각양각색의 악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멀리서 느끼기에도 그들 하나하나에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벌레떼처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악마들이 낙하하고 있었다.
애미 시발 좆됐네.
왜 갑자기 하늘에서 악마가 쏟아져 나오는 거야 시발.
끔찍하게 쏟아져나오는 악마들을 보며, 나는 언젠가 봤던 세상의 종말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악마들은 입에서 불길을 뿜으며 연신 웃었다.
왜 내가 무죄 선고를 받은 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혹시 내가 무죄 받아서 신이 노한 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지랄이야.
"에이든 님!!"
안드레아가 내 이름을 부르짖으며 하얗고 투명한 기운을 주변으로 뿜어냈다.
왜 내 이름을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운에 온몸에 활력이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부수거라! 마시거라! 공포를 마음껏 취하거라 크하하하하!"
건물 정도의 큰 크기를 지니고 있는 악마가 온몸에 난 핏빛 털을 흔들며 울부짖었다.
그 악마에게서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압도적인 힘이 느껴졌다.
이거 시발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황급히 주변을 살폈는데, 이미 악마들은 땅에 내려온 상태였다.
"크아아악!"
"달다 달아!"
악마들이 사람들의 머리를 뽑고 그 피를 마셨다.
이미 병사 중 제법 많은 수가 악마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인간들이다!! 인간!! 우워어어!"
그중에서 마치 책에서 본 오우거처럼 생긴 악마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악마의 큼지막한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는데, 땅에 떨어진 침이 주변을 녹였다.
존나 끔찍하게 생겼네! 시발.
"흐응 오늘 완전 내 생일이네!! 캬하하하!"
몸을 풀던 비키가 신나게 웃으며 마주 달려 나갔다.
쾅
비키와 악마가 맞붙으며 땅이 움푹 파였다.
악마의 큼지막한 주먹을 옆으로 비켜내며 비키가 악마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악마가 황급히 달려드는 비키에게 침을 뱉어냈지만, 비키는 붉은 기운을 머금은 주먹을 휘둘러 침을 옆으로 흘렸다. 그렇게 악마에게 들러붙은 비키는 악착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비키의 주먹이 악마의 몸에 박힐 때마다 악마의 몸이 움푹 파였다.
악마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땅을 뒹굴었다.
"캬하하하! 더 하자고 더!! 더!"
비키는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악마와 같이 뒹굴었다.
"사제 내 뒤로 와."
키아나가 검을 뽑으며 나를 살짝 당기고는 앞을 막았다.
캉!
"오 아름다운 숙녀분이시군요."
어느새 우리 앞에 나타난 느끼하게 생긴 악마가 손톱을 휘둘렀다.
키아나는 침착하게 그 손톱을 막으며 검을 찔러넣었다.
"역시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죠!"
느끼하게 생긴 악마가 비릿하게 웃으며 손톱을 비스듬히 세워 키아나의 검을 막았다. 둘이 부딪힌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키아나의 검에서 찬란한 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악마 손톱의 끝부분을 베어냈다.
느끼한 악마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표정이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던 내게 목이 뽑힌 병사의 손에 들린 검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병사의 손에 들린 검을 빼내기 위해 달렸다.
병사는 아직 삶에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검을 꽉 붙들고 있었다.
그쪽보다는 제가 쓰는 게 더 좋아 보이니까 제가 좋은 곳에 쓸게요.
어차피 그쪽은 더 이상 쓸데없잖아요.
검을 쥔 병사의 손을 눌러 부신 다음 검을 빼내었다.
검의 손잡이 아래에 자그맣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글씨체가 너무 삐뚤빼뚤해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대충 찰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찰스 씨 거기서는 검 쓸 일 없으면 좋겠네요.
간단하게 고개 숙인 다음 움직였다.
캉!캉!캉!
키아나와 악마는 아직 교전 중이었는데, 평온한 키아나와는 다르게 느끼하게 생긴 악마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느끼하게 생긴 악마의 등짝으로 뛰었다.
악마는 키아나와 교전 중이라 뒤를 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
회색빛 검기를 일으킨 검으로 훤히 드러난 악마의 등짝에 큼지막한 상처를 만들어줬다.
내가 만들었지만, 제법 태가 나는 흉터였다.
아마 저 악마는 이제 악마들 사이에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크학! 이 비열한 놈들이!! 둘이서 합공을 하다니!"
악마가 분통을 터뜨리며 황급히 뒤돌았지만, 그런 악마의 등에 키아나가 검을 찔러넣었다.
"네 다음 악마 시발련아."
분통을 터뜨리는 악마에게 시원하게 웃어주며 그 느끼한 머리를 날렸다.
악마의 얼굴에 떠 있는 원통함이라는 감정이 나를 못내 시원하게 만들었다.
"신성한 구역"
안드레아가 온몸에서 빛을 뿜어내어 둥그런 원을 만들었다.
그 뒤에 붙은 스칼렛과 아가사는 눈을 감고 안드레아에게 손을 올리고 있었다.
안드레아가 만든 원이 안전해 보여 키아나의 손을 잡고 황급히 뛰어갔다.
원에 부딪혔지만, 아무 이질감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에...에이든!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붉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케이트가 내게 다급하게 물었다.
"어 너는 괜찮냐? 뭐야 그 피는."
멀쩡한 나와는 다르게 케이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멍청한 조슈아와 올가가 처리를 못 해서 옷에 피가 튀었잖아! 퉤퉤"
케이트가 침을 땅에 뱉으며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사제?"
얼굴이 붉어진 키아나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런 키아나의 손을 놓아주고 안드레아에게 향했다.
안드레아는 눈을 감고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둥그런 원 주변에 악마들이 있었지만, 악마들은 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안드레아의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니 그렇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렸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아니 수도에서 이 지랄이 났는데 제국은 뭐 하는 거야 시발!"
내가 말하기 무섭게 곳곳에서 강대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감히 제국의 수도를 침범한 악마들을 벌하라!"
언젠가 봤던 황실 문양이 그려진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은 각자 기운을 뿜어내며 악마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악마들의 기세가 한풀 꺾이며 뒤로 밀렸다.
그래도 늦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저 황실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겠지?
손으로 원을 살짝 건드렸다.
버틸 수 있겠지?
쾅!!!
"크하하하!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구나! 인간!!! 하지만 아직 부족하군!!"
아까 하늘에 떠 있던 핏빛 늑대의 털을 가진 악마가 안드레아의 원을 주먹으로 때리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그럴 때마다 원이 눈에 띌 정도로 출렁였다.
안드레아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보며 불안했다.
애미 시발 조금만 더 버텨봐.
"에...에이든님!"
안드레아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예! 안드레아 님!"
황급히 그런 안드레아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제게 키스를!"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안드레아가 간절하게 외쳤다.
"예?"
뭐라는 거야 이건.
"서둘러야 합니다! 어서!"
안드레아의 얼굴에 절박함이 자리 잡았다.
쾅!쾅!
"아우! 질기다 질겨! 하지만 곧이다!! 너희들의 따뜻한 피로 내 목을 축이겠다!! 크하하!"
핏빛 늑대 악마의 손짓에 원이 계속해서 희미해졌다.
"꺼져!! 지애비 닮아서 흉측하게 생긴 개새끼야! 개새끼의 모습을 닮은 것 보니까 지 애미가 수간 해서 낳은 게 분명하구만!! 얼마나 좆같이 생겼으면 개랑 떡을 쳤을까? 시발! 목이 마르면 가서 너희 애미 젖이나 먹어!!! 여기서 칭얼대지 말고!! 물론 다른 개새끼들이 이미 실컷 마셔서 더 이상 안 나오겠지만!!"
"애미? 그...그게 무슨?"
내 욕설에 핏빛 늑대 악마가 일순간 동작을 멈추고 되물었다.
죽기 싫어 시발!
나는 황급히 안드레아의 볼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청량한 느낌이 안드레아의 부드러운 입술을 타고 넘어왔다.
"너네 뭐해!!! 이 미친 것들아!!!! 뭐하냐고!!! 꺄아아악!!"
케이트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일단 살아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안드레아의 부드러운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와 악착같이 침을 모아서 가져갔다.
슬그머니 눈을 떠서 주변을 보니 그럴 때마다 원이 점점 굳건해져 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침을 먹을 때마다 원이 강해지는 건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작게나마 내가 살 길이 보였다.
악착같이 내 안에 있는 모든 침을 모아 안드레아에게 넘겼다.
약간의 피도 같이 넘어간 것 같았다.
"흐아"
안드레아가 들뜬 숨을 내뱉자 주변에 있는 원은 이제 불투명할 정도로 두꺼워졌다.
이대로 제국군이 도달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살았다!
살았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았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자꾸만 귀엽게 꼼지락거리는 안드레아의 혀에 나도 모르게 혀를 마주 움직였다.
살았다는 감정에 너무 심취한 나는 습관적으로 교미왕의 혀놀림을 취해버렸다.
"하읏"
내 혀놀림에 안드레아가 외마디 신음을 내뱉더니 뒤로 넘어갔다.
응?
주변에 있던 원이 안드레아가 기절하자 사라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황급히 주변을 확인했다.
"내 어미는 개랑 떡치지 않았다!! 우리 악마는 그렇게!!!..."
열심히 원을 두드리던 핏빛 늑대 악마와 눈이 마주쳤다.
"내 어미가 무엇이라고?"
나와 눈이 마주친 핏빛 늑대 악마의 큼지막한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애미 시발.
황급히 모든 힘을 다해 안드레아의 뺨을 때렸지만, 안드레아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절한 안드레아를 던진 다음 황급히 옆에 있는 검을 들었다.
콰앙!
검을 타고 압도적인 충격이 넘어왔다.
검을 든 팔이 부서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보거라! 인간! 내 어미가 어떻다고? 크르르"
핏빛 늑대 악마가 입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웃었다.
큰 덩치에 흉측하게 생긴 핏빛 늑대 악마가 불길까지 뿜어내니, 어릴 적 봤던 동화책 속에 나오는 악마와 비슷해 보였다.
"너네 엄마 개새끼랑 떡 쳤다고 시발련아."
어차피 악마가 살려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죽거리며 온몸에 있는 기운을 돌렸다.
그럼 나는 동화책 속에 나오는 용사3 정도 되려나?
유급생에서 출세했네.
"오늘이 복날이다. 개새끼야."
나도 모르게 핏빛 늑대 악마를 따라 시원하게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