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악마를 잡으려면 악마의 입 속으로!
* * *
빠르게 주변을 훑어서 상황을 확인했다.
비키는 아직 아까 그 악마와 전투 중이고 키아나는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안드레아 쪽은 기절 상태지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키아나가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했다.
"용기는 가상하군 인간"
핏빛 늑대 악마가 누런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료를 앞에 둔 개새끼 같아서 내 기분을 더럽게 했다.
웃는 거 맞겠지?
오른쪽 팔에 기운을 보내 부러진 뼈를 고정했다.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이제 이 정도 고통은 익숙했다.
"하지만 너무 나약하군."
순간 늑대 악마의 모습이 사라졌다.
[검을 들게 소년!]
이를 악물고 땅에 발을 박아서 중심을 굳게 잡은 다음 양손에 힘을 잔뜩 넣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른 검에는 이제는 익숙한 회색빛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검기의 색이 참으로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쾅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악마가 내 몸집 두 배는 될 것 같은 주먹을 내게 휘둘렀다. 한 눈으로 봐도 막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다른 선택 사항이 없었다.
최대한 검을 비스듬히 세워 악마의 주먹을 흘리기 위해 노력했다.
카카카카캉
검이 갈리는 소리가 들리며 악마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분명 주먹을 피했는데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나며 내 옷의 부분부분이 찢겨 나갔다.
이거 시발 너무 강한 거 같은데?
악마는 재빨리 나를 물기 위해 흉한 주둥이를 쩌억 벌렸다. 그 주둥이가 얼마나 큰지 내게 먹히는 에일 버드 튀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입에 먹으려고 하면 안 될 텐데
나 가시가 있는 고기란 말이야.
이를 악물며 검을 고쳐 잡았다.
캉!
주둥이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악마의 대가리가 옆으로 크게 돌아갔다.
"사제 괜찮아?!"
검에 정제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키아나가 황급히 내 앞을 막으며 물었다. 그 완벽한 모습에 나는 동화 속 공주님이 된 것만 같았다.
"예 그런대로 괜찮아요."
얼얼한 손을 흔들어서 풀며 답했다. 아직 조금 더 휘두를 수 있어.
"건방진!!!"
포효하는 악마의 대가리 옆부분에 이쁜 상처가 빨갛게 새겨져 있었다. 악마가 사람 반만 한 크기의 손톱들을 길게 뽑아냈다. 손톱 관리를 전혀 안 하고 산 모양인지 그 손톱들에 때가 잔뜩 껴 있어서 보는 사람의 눈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제가 왼쪽으로 갈게요."
아까보니 늑대 악마는 오른손잡이인 것 같았다. 그럼 무조건 왼쪽으로 가야지. 키아나에게 말하고 악마의 왼쪽으로 뛰었다.
키아나가 오른쪽으로 뛰었다. 아마 늑대 악마라면 더 위협적인 키아나를
"죽어라! 크하하하!"
키아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악마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휘둘렀다.
애미 시발 왜 난데.
어미 욕 좀 했다고 악마가 존나 쪼잔하네.
악마끼리는 원래 안부 인사로 부모 욕 하는 거 아니었어?
이번에는 집중하고 있어 어렴풋이 악마의 움직임이 보였다. 이를 악물고 기운을 몸이 터질 정도로 압축한 다음 터뜨려서 움직여 내게 휘둘러지는 끔찍한 손톱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충격의 여파로 내 상의는 다 찢겨 나갔고 옆구리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피한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피해였다.
캉!
다시금 늑대 악마의 어깨 위로 올라간 키아나가 금색 검기를 뿌리며 검을 그림 같은 자세로 휘둘렀다.
그 완벽한 자태에 나도 모르게 악마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을 기대했다.
자고로 왕자님이라면 칼질 한 번에 저런 악마는
키아나의 검이 눈부실 정도의 금색 빛을 뿜어내며 늑대 악마 대가리의 반대쪽 부분을 베어냈다. 늑대 악마의 흉터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지만, 악마는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마치 모기를 쫓듯이 손을 휘둘러 키아나를 떼어낸 악마가 다시금 내게 달려들었다.
왜 시발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지르는 몸을 애써 움직여서 악마와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달렸다.
하지만 이족 보행인 내가 사족 보행 악마를 따돌릴 수 없었다. 이보다는 사가 크니까.
"크하하하! 달려라! 달려! 도망가라! 도망가! 그럼 더욱 맛난 공포가 생길 것이니!"
내 바로 뒤에서 악마의 숨소리가 물씬 풍겨왔다.
"이 좆같은 개새끼 시발! 너네 어미가 개랑 떡 친 거를 왜 나한테 지랄이야!"
황급히 오른발을 땅에 박아 넣으며 모든 힘을 다해 허리를 돌렸다. 다리 끝부터 터질 것 같은 기운이 위로 올라왔다.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따라 온몸의 힘이 회전하며 점점 더 힘이 배로 커져갔다. 마침내 손까지 도달한 기운은 다시금 회색 검기를 뽑아냈고 나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검을 휘둘렀다.
그 기운의 양이 커질수록 검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쩌억
뒤로 돈 내게 보이는 것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악마의 주둥이였다.
어릴 적 본 동화책 속의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악마를 잡기 위해 기꺼이 악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용사.
스스로 악마의 주둥이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 지옥의 입구 같은 곳으로 뛰어들었다.
양치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 녀석인지 온갖 좆같은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고기를 먹을 때는 가시나 뼈를 조심해야지 이 개새끼야.
나는 녀석에게 교훈을 주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주둥이가 닫히며 세상이 어두워졌다.
밖에서 들리는 비명이나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들은 이제 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 거렸다.
발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침이 내 기분을 더욱 더럽게 했다.
검을 들고 있는 손이 두려움에 덜덜 떨렸지만, 애써 외면하며 주둥이의 천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흉터에서 다시금 불길이 치솟았지만, 온몸에 기운을 두르고 있어서 버틸만했다.
크아아아아악!
마치 세상이 울부짖는 것처럼 악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법 재미가 있는데 이거?
천장에 박힌 검을 온 힘을 다해 끌어 내렸다.
내 움직임에 맞춰서 악마의 입안이 씹창이 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악마가 고통에 발버둥 치는지 세상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에 따라 나는 점점 목구멍으로 끌려갔다. 내 움직임에 맞춰 악마의 흉터도 점점 늘어났다.
[재밌군 재밌어!! 악마의 주둥이로 들어오다니! 좀 더 기운에 집중해라! 기운을 정제해!]
정신없이 휘둘리는 와중에도 목소리에 맞춰 검기에 더욱 집중했다.
검기를 정제하는 것은 다음 단계로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나는 천재 아닌가
일렁이던 검기가 천천히 날카로워졌다. 마치 망치로 두들긴 것처럼 폭은 좁아졌지만, 그 밀도 자체는 더욱 뛰어났다.
역시 나는 천재야.
"씹창나라 씹창! 씹창!!!"
열심히 기합을 넣으며 내 검을 더욱더 깊게 찔러넣었다. 스스로 만든 노래에 점점 리듬이 더해지며 신이 났다.
"지 어미처럼 씹창이 났데요~"
크아악! 후아아악!
돌연 악마가 이상한 비명을 내더니 고개를 앞으로 흔들었다.
그에 대한 반발력으로 나는 악마의 주둥이에서 퉁겨져 나왔다.
어두웠던 세상이 다시금 밝아졌다.
입에서 불길을 줄줄 흘리며 나를 노려보는 악마가 보였다. 그 옆에는 금빛 검기를 뿌리며 악착같이 붙어있는 키아나와 인상을 굳힌 채 창을 꽂아 넣는 올가가 보였다.
둘의 공격이 악마에게 명중할 때마다 악마의 몸에서 큰 불길이 치솟았다. 하지만 둘은 익숙한지 부드럽게 불길을 피해 바로 다음 공격을 찔러 넣었다.
"흐아아아앙!! 에이든이 죽었어!! 병신이었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나름 쓸모가 있는 새끼였는데!!! 으아아앙!"
전장 한복판에서 목 놓아 울고 있는 케이트도 보였다.
저저 빡 대가리 새끼가 누구보고 병신 이래 시발.
날아가던 나는 땅에 검을 박아 넣어 속도를 줄였다.
땅이 길게 갈라지며 천천히 내 몸이 멈췄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감히 내 몸에!"
악마는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하고 내게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내 앞에 도착한 악마가 코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내게 휘둘러지는 오른손을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
흘려내고 싶었지만, 악마의 오른손이 흘려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악마의 손과 부딪힌 내 검에서 큰 충격이 내게로 넘어왔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며 검은 부서졌고, 내 몸은 다시 뒤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한참이나 날아가던 나는 땅에 흉하게 뒹굴었다.
바닥에 튕길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아작나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마 지금 내 몸에서 멀쩡한 뼈를 찾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크하하하하! 약하고 약하다! 그런 건방진 입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미친 개새끼가 크게 웃으며 내게 뛰어들었다.
그런 개새끼를 올가와 키아나가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지만, 미친 개새끼는 모든 공격을 그냥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이제 개새끼의 몸의 곳곳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내게 달려드는 그 속도마저 전보다 느렸지만,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애미 시발 이렇게 끝난다고?
문득 억울한 마음이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이 좆같은 세상은 왜 착하게 사는 나를 못살게 굴지 못해 안달이지 시발.
아작난 발을 슬쩍 움직여 보니 움직이기는 했다.
이를 꽉 깨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움직이면 몸이 치료 불가능할 것이네 소년.]
알아 근데 누워 있으면 밟혀 죽는 것뿐이잖아.
그런 말 있잖아.
엎드려서 죽지 말고
일어나서 살아라! 아닌가?
부딪힌 충격때문인지 머리가 웅웅 거렸다.
시발 루나 이 년은 어디 있는 거야.
정작 필요할 때 없네.
[...내가 나가도 되긴 하지만]
근데 뭐?
말을 끝까지 해.
그리고 나올거면 진작에 나오던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몸이 자꾸만 바람 앞의 등불처럼 휘청였다.
[저번에 깨진 격의 차이가 아직 회복 전이라 나가게 되면 그릇이 완전히 깨지게 될 것이네.]
그럼 어떻게 되는데.
다시 기워 붙이면 되나?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광견병 개새끼가 좆같은 침을 질질 흘리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지 애미 닮아서 존나 흉하게 생겼네 시발.
[그릇이 깨지면 아마 흩어지겠지. 확실하진 않네.]
예로부터 확률 공개되지 않은 도박은 하는 게 아니랬어.
억지로 기운을 움직이자, 상처들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아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인간 내 어미가 뭐라고?"
어느새 내 바로 앞에 도착한 개새끼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내게 물었다.
키아나의 공격을 무시한 녀석의 몸에는 상처들이 쌓여 있었다.
"피해! 사제!!!"
악마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키아나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키아나의 검에서 뿜어지는 금색 빛은 이제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키아나의 검에 맺힌 검기가 전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단계를 또 넘어선 건가?
근데 이렇게 씹창난 몸으로 저 미친 개새끼를 어떻게 피하라는 거야 시발.
"니네 어미가 개랑 교미 존나 해서 너가 태어난 거라니까 출생의 비밀이 궁금한 거였어? 물론 아빠를 찾기는 힘들 거야.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도 노력해봐! 혹시 알아?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 중에서 네 애비가 있을지?"
나는 녀석이 최대한 좆같게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뒤질 거면 상대를 최대한 좆같게라도 해야지.
그게 미덕이니까.
그렇지?
[크하하! 그렇지! 검마저도 안되면 저주를 해서라도 상대를 넘어뜨려야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말을 하네.
"끝까지 주둥이를 멈추지 못하는 군"
내 미소에 화답하듯 개새끼가 으르렁거리며 마치 벌레를 잡는 것처럼 양손을 내게 휘둘렀다.
"시발. 참 좆같은 세상이야."
양쪽에서 다가오는 손바닥을 보며 욕지기를 뱉었다.
검을 들고 있던 양손 모두가 아예 찢어져서 살짝이라도 움직이면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 손잡이와 삼분지 일만큼 밖에 남지 않은 검을 다시금 들었다.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검에 기운을 다 쏟아부었다.
검의 끝부분에서 일어난 미약한 회색빛 검기가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나는 가시가 있다고 개새끼야."
굳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아무리 작은 가시라도 가시는 가시니까.
녀석에게 조금의 따까움이라도 주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