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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12화 (112/233)

〈 112화 〉 대지신 이자벨라의 사도.

* * *

어떡해! 어떡해!

대지신은 밑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저 쓰레기 같은 남자가 죽게 되면 그 후에 자신의 화신도 죽을 게 분명했다.

아니 화신이 죽지 않더라도 남자가 죽으면 지금처럼 가파른 성장세를 못 보여줄 게 확실했다.

저 화신은 남자가 신이라 생각해 빠른 속도로 신성력이 늘고 있었으니까.

얼마 전에 화신이 성녀의 기본 자격을 꽃피웠을 때, 자신의 예상이 맞음에 기뻐하며 눈물까지 흘렸었는데­

왜 또 갑자기 이런 시련이.

대지신은 황급히 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사도 한 명을 만들 정도의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도는 단 한 명만 임명할 수 있었다.

저 쓰레기 같은 남자를 사도로 임명하는 게 옳을까?

예로부터 사도들은 악을 벌하며 심지가 굳고 청렴한 사람들을...

대지신은 불안함에 다리를 덜덜 떨며 머리를 계속해서 굴렸다.

"안 돼애애애! 내 화신이 죽었어!!!"

저 멀리서 이름 모를 신의 절규가 들렸다.

그래. 어차피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건 상황이었다.

대지신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남은 포인트를 모두 쏟아부었다.

제발­

신의 힘을 받게 되면 조금이라도 인성이 괜찮아지기를 빌면서­

대지신은 도박쟁이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

­ 대지신 이자벨라가 사도 요청을 보냈습니다. 승낙하겠습니까?

이건 또 뭔 좆같은 소리야.

내게 다가오는 개새끼의 산만한 손이 느리게 보였다.

으 손바닥에도 털난 것 봐 존나 흉측하네.

­ 살고 싶으면 승낙해!!

이거 시발 부정한 계약 아니야?

승낙하면 지옥 구석으로 떨어지고 그런 거?

일부러 죽기 직전에 계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시하는 것 보니까 뒤가 구린데?

­ 승낙하라고!! 더 이상 못 버티니까!

알았다고 알았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서운해지려고 하네.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서운하게 하려는 건 아닌데­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있다면 승낙해야지.

"스으응낙한다!!"

내가 말을 함과 동시에 몸 안에서 거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마치 새벽 해처럼 청량하며 눈부셨다.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온몸의 고통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찢어졌던 근육이 다시 메꿔지며 전보다 더욱 굵어졌고, 이제 한 줌도 남지 않았던 기운이 마치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전보다 강해졌고, 그 상대가 악마라면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마치 내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당장 죽어도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악을 벌할 힘을 가졌다.

온몸을 가득 채운 활기를 느끼며­

"후반전이다. 이 애미가 수간 해서 낳은 개새끼야­"

짙게 미소를 그렸다.

내 입꼬리는 더는 굳어있지 않았다.

­ 아악!!! 망했어!! 사람이 그대로야!! 어떻게 내 힘을 받았는데 그대로일 수가 있지?!

부서진 검에서 흰색 검기가 터질 것처럼 뿜어져 나오며 악마의 손을 갈랐다.

"크아아아악! 네...네가 어떻게 그 힘을?!!"

이번에 가른 악마의 손에서는 불길이 아니라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악마가 전장이 흔들리는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뒷걸음질 쳤다.

이미 나를 끝낼 생각으로 올가와 키아나의 공격을 방치했던 악마의 몸에는 많은 상처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야 내가 착하게 살았으니까­ 어미가 개새끼들이랑 수간해서 낳은 새끼야."

"그럴 리 없다! 너같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 어떻게 대지신의 힘을! 이자벨라! 미친 것이냐!!"

악마가 불길을 내뿜으며 덩치를 더욱 부풀렸다.

­ 다...닥쳐라! 이 악마야! 내 사도 에이든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치...?

"그럼 그럼.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데. 잘 선택한 거야. 나 만한 사람이 없다니까."

대충 둘의 대화로 내가 얻은 힘이 어떤 힘인지 감이 왔다.

악을 벌하는 신의 힘이라니 참으로 주인공에 어울렸다.

"자­ 그럼 악을 벌할 시간이다. 이 수간충 새끼야. 너희 어미처럼 내 꼬치에 헐떡이게 해주마!"

자꾸만 입꼬리가 헤실거리며 웃음이 기침처럼 나왔다.

­ 그... 내 사도야­ 언어를 조금만 더 순화해주면 안 될까?

만류하는 목소리에 잠깐 고민이 됐다.

저 목소리가 이 힘을 다시 가져갈 수 있을까?

[내가 알던 사도와 같은 개념이면 아마 불가능할 것이네. 저쪽에서 자네를 선택한 것이니까 말이야.]

그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내 어미는 수간 충이 아니다!! 우리 악마는 교미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숨을 헐떡이며 내게 악착같이 소리쳤다.

한 눈으로 봐도 악마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딱 봐도 주인공이 막타 넣기 전 상태였다.

"닥쳐라! 이 어미가 수간 해서 낳은 개보지 새끼야! 나 대지신 이자벨라의 사도가 명하니 너희 어머니는 수간 충이 맞다!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죄! 대지신 이자벨라의 사도로서 내가 벌하겠다!! 수간충 아웃!!"

­ ...나는 이제 망했어­

세상을 밝히는 빛을 뿜어내며 에이든이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

으드득­

이 무능력한 쓰레기들.

제국군에게 천천히 밀리는 악마들을 보며 루나가 이를 갈았다.

에이든에게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의 에이든은 각성이라도 했는지 온몸에서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악마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영웅과도 같은 모습에 루나는 아랫도리가 축축해졌다.

아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에이든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자꾸만 움찔거리는 몸을 애써 참았다.

에이든이 강해진 만큼 구해줄 기회가 더욱 적어질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에이든을 구해야 해.

결심한 루나는 하늘의 균열에 마나를 조금 더 쏟아부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균열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흥흥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루나의 작은 입이 호선으로 휘었다.

***

"아­ 이거 정말 오랜만이군."

균열 사이에서 검은 머리의 미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공중을 천천히 걸었다.

남자의 주변에 있던 악마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남자에게 경배를 표했다.

"...바네인님."

인간의 피를 마시고 있던 라엘리히가 다급하게 남자의 앞에 부복했다.

"신기하군. 이렇게 중간계에 나올 수 있다니. 답답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바네인 이라고 불린 미남자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아­ 이 유황 냄새가 나지 않는 공기 정말 오랜만이야."

라엘리히는 그저 몸을 잘게 떨면서 미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벨은 어디 있지?"

미남자가 시선을 돌려 라엘리히를 보며 물었다.

미남자의 시선을 받은 라엘리히는 세상이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으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

"... 아직 움직이지 않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문은 마왕님이 여신 문이 아닙니다."

"분명 벨이 대기하라고 했었을 텐데? 그리고 벨이 아닌 다른 자가 이 몸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균열을 열었다­?"

미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 저도 그렇게 말했지만... 그 멍청한 하잘드가 냉큼 뛰어들어서 말리기 위해 따라 나왔습니다! 정말입니다!"

라엘리히의 머리에 달린 뱀들이 츠르르­ 하며 고개를 숙였다.

쾅!쾅!

"하잘드? 그 멍청한 개?"

미남자가 굉음이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라엘리히는 바네인이 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하잘드와 대지신의 기운을 뿌리는 남자가 싸우고 있었다.

대지신의 기운을 뿌린다고 해도 하잘드가 질 정도는 아닌데, 중간계로 나오며 줄어든 힘과 몸에 누적된 상처들에 고전하는 것 같았다.

"우스운 모습이군."

살짝 웃은 미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고전하고 있던 하잘드가 미남자의 손길에 단숨에 앞으로 끌려왔다.

"바...바네인님!"

미남자의 앞에 끌려온 하잘드가 숨을 헐떡이며 애절하게 불렀다.

"쓰레기 같은 놈."

미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다시 한번 젓자 하잘드가 천천히 무너져 사라졌다.

라엘리히는 손짓 한번에 장군급을 역소환시키는 바네인의 힘에 전율했다.

악마들은 중간계로 넘어올 때 그 급에 맞춘 억압을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짓 한 번에 역소환을 시키다니...

츠르르­

라엘리히의 머리 위에 있던 뱀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며 존재감을 죽였다.

"그나저나 대지신의 힘이라니 재밌군."

재수 없다는 말로도 부족한 얼굴의 남자가 내 바로 앞에 나타났다.

마치 루나가 사용하던 마법처럼 남자의 움직임에는 어떤 전조조차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느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저 남자의 옷 조차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남자의 존재감만으로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며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났다.

금세 내 몸은 축축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안에서 나는 빛때문에 모든 존재를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는데 시발.

"헤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재밌는 힘입니다! 헤헤­"

나는 금세 경박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의 말에 동조했다.

살아야 한다.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 맞...맞아! 일단 살아!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살아야 다음이 있지!

"대지신이 급했나 보군."

내 대답에 남자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변을 둘러보자 올가와 키아나도 나처럼 안색을 굳힌채 자신의 무기를 꼬나쥐고 있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니 서있는 것이 최대인 듯했다.

그렇게 모두가 남자의 존재감에 고개를 숙이며 숨죽이고 있을 때­

늘 그렇듯 빡 대가리가 일을 저질렀다.

"야! 너 뭐야!!! 에이든한테서 떨어져!! 잘 생기기만 해가지고! 떨어지라고!!!"

케이트가 악을 담아 소리치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케이트의 큰 눈에는 그렁그렁 한 눈물이 고여 있었고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목은 다 쉰 상태였다.

저 시발 눈치 없는 빡 대가리 새끼 시발.

그리고 다른 애들은 다 굳어 있는데, 저 새끼는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케이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렸을 때, 나는 이를 갈며 이제는 손잡이만 남은 검을 다시 한번 잡을 수밖에 없었다.

­ 안... 안돼!! 무리야!! 그냥 줄건 줘!!

뭔 개소리야.

내 것을 왜 줘 시발.

케이트의 가슴이 얼마나 부드러운 줄 알아?

절대 안 줘.

아니 못 줘.

그거 내 꺼야 시발.

악착같이 움직인 기운과 빛 때문에 팔의 핏줄이 터져 나갔다.

팔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자꾸만 포기를 독촉했다.

하지만 케이트의 부드러운 가슴을 생각하며 정신을 붙잡았다.

손잡이만 남은 검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빛이 마치 전설 속의 검처럼 밝은 빛을 내며 검의 형태를 띠었다.

그 빛이 내게 혹시나 하는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기운을 머금을수록 검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검을 들었으면 자신의 신념을 펼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오직 상대를 물어 뜯어 그 피를 마시기 위해­]

[그 어떤 악과도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위해! 상대의 목을 뽑아라!]

[늘 그렇듯 승리할 것이니!]

좀 닥쳐봐 집중 안 되니까.

[그러니 악을 상대함에 있어서 한 치의 망설임도 갖지 말게나!]

[박았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교미왕의 도리!]

이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검을 누군가가 같이 들어주었다.

답답할 정도로 견갑을 껴 입은 손이 내 아래를 받쳐 주어 팔이 떨어질 정도로 무거운 검을 지탱해주고­

흉터가 즐비하게 늘여져 있는 거친 손이 내 검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남자랑 손 잡은 것 같아서 좆같네.

[동감이군.]

[동감이다.]

"잘생긴 놈은 다 뒤져야 해! 못생긴 놈들의 한을 모르는 녀석들!!"

내 정신을 어지럽히는 끔찍한 고통을 참기 위해 입을 열어 비명을 지르듯 고함을 치며 검을 찔러 넣었다.

케이트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내게 시선을 옮겼다. 나를 본 남자는 눈에 있던 짙은 권태를 지우고 호기심을 띄웠다. 좆같이도 잘 생겼네 시발.

"지옥행 편도다­ 시발련아!"

그런 남자에게 최대한 비열하게 웃어주며 검을 찔러넣었다.

내 무거운 검이 남자의 몸에 닿기 전­

남자가 가볍게 내 검을 손으로 잡았다.

남자의 손에 잡힌 내 검의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내 자신감도 사라진 빛과 함께 없어졌다.

그 허무함에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크흠 조금 부족했군. 하하!]

[부족하군.]

부족하군­ 이 지랄하고 있네 이 미친 새끼들이.

책임을 지란 말이야 시발 새끼들아.

"하하­ 서프라이즈~"

나는 남자의 기분이 풀리도록 최대한 밝게 웃으며 양손을 보여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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