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15화 (115/233)

〈 115화 〉 지옥에서의 탈출 (2부 시작)

* * *

사람은 살면서 가슴 속에 뚜렷한 목표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그 삶이 의미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럼 그동안 목표 없이 살아 내 인생이 이 지경이 된 건가?

그런 내게 뚜렷한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이 애미 터진 미친 노망난 노인네를 잔인하고 끔찍하게 죽이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관통하는 목표였다.

"또 딴생각 하는구나!"

우측으로 미친 노인네의 기운조차 실리지 않은 검이 내게 다가왔다.

­ 정신 차리게 소년!

이미 차리고 있었어 시발.

애미 터진 노인네 시발.

이를 깨물고 악착같이 기운을 루나검에 퍼부으며 루나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어느새 내 루나검에는 선명한 검강이 맺혀 노인네의 공격을 막았다.

이 6개월의 미친 합숙 훈련 중에 처음으로 검강을 피워냈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죽음의 경계에서 악착같은 삶의 의지가 내게 검강이라는 경지를 안겨주었다.

검강을 피워내자마자 저 개 같은 노인네의 목을 이쁘게 잘라주기 위해 덤볐지만, 내 필살의 검강은 미친 노인네의 기운이 담기지 않은 검을 이기지 못했다.

기운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노인네의 검과 내 기운을 다 쏟아 넣어 선명하게 불타오르는 회색빛의 검강.

그 둘이 부딪힌다면 백이면 백 내 검강이 이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건만.

나는 세상이 이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끔찍한 상처들과 함께 다시금 깨달았다.

마치 드래곤의 꼬리를 막은 것처럼 양손의 근육이 터져나가며 검강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흩날렸다.

이를 악물고 신성력을 끌어올려 터진 근육을 다급하게 수급했다.

피를 뿜어내며 힘을 잃었던 양손이 다시금 검을 굳게 잡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미친 노인네가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애미 터진 노인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노인네의 애미가 터졌다는 것은 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이였다.

이번에는 찔러오는 미친 노인네의 검을 막기 위해 어느새 회복된 팔로 루나검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휘둘렀다.

미친 노인네의 검과 부딪히자 다시금 근육이 터져나갔다.

도대체 미친 노인네의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길래 저런 괴력은 선보이는 걸까?

그렇게 평소처럼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내 몸은 땀과 피가 잔뜩 묻은 채로 땅을 뒹굴었다.

어째서 나는 수도가 씹창난 날 바로 튀지 않았을까.

수도가 씹창나며 아카데미도 같이 씹창이 났는데, 나는 왜 수도에서 먼 곳으로 도망가지 않았나.

수도가 씹창나고 일주일이나 더 머물었던 머저리 같은 판단이 내게 반년의 지옥을 안겨주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몽롱한 상태로 이제는 흐릿한 기억을 천천히 되짚었다.

첫 번째 문제는 비키와의 교미였다.

'좀 쌓여 있거든 내가?'

혀로 붉은 입술을 핥으면서 옷을 벗어 던지는 비키를 그 누구도 거절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비키의 품에 안겨 정신없이 삼일을 보냈다.

잠을 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은 상태로 허리만 계속 흔들었다.

더 이상 비키의 처녀막이 재생되지 않을 때쯤 비키와 떨어졌다.

'흐음­ 이제 한동안 충분할 것 같네.'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은 비키가 기지캐를 키며 떠났다.

비키는 짐을 잔뜩 싸서 어딘가로 떠났다.

소문으로는 더 강한 마물을 찾아 끊임없이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그 모습이 비키와 어울려 기침이 날 정도로 웃었다.

두번째 문제는 비키가 떠나고 수녀 삼인방과의 저녁 식사였다.

수녀 삼인방이 성녀의 길을 떠나기 전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내게 제안했다.

내가 미녀들이 제안하는 식사를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신나게 그녀들과의 저녁을 만끽했고 미녀들이 주는 술을 들이마셨다.

살짝 잡은 안드레아의 부드러운 손과 스칼렛의 요염한 미소 그리고 아가사의 귀여움에 홀딱 넘어가 정신없이 술을 마셨다.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침이었고 나는 침대 위에 혼자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하루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문제는 어두운 밤에 나를 찾아온 루나였다.

루나는 그 사건 이후로 내게 큰 미안함을 느꼈는지 한참이나 나를 피해 다녔다.

그러다 혼자 호텔에 누워있는 내 앞에 목줄을 한 상태로 나타났다.

나에 대한 미안함과 복종을 표현하는 의미로 하고 온 것 같은데, 그 움츠러든 모습이 불쌍해 나도 모르게 용서했다.

뭐 그 사태로 내가 잃은 거라고는 언젠가 루나가 줬던 돈들밖에 없어서 용서가 더 쉽기도 했다.

어찌 됐건 나는 다시 살아남았고 신성력이라는 편리한 힘을 얻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도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사랑해준다고 약속도 했고.

나는 목줄을 거칠게 잡아끌어 루나를 한참이나 사랑해줬다.

루나는 내가 준 고통을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끊임없이 갈구했다.

교미왕으로서 철저하게 밑바닥부터 루나를 교육시키며 새겨나갔다.

마법을 제외하고는 연약한 몸인 루나는 오히려 비키보다 쉬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피범벅이 된 침대 위에서 루나에게 다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어기면 다시는 안 보겠다고 했으니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루나가 이제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갈 것도 아니라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음날 내게 길게 입맞춤을 한 루나도 준비할 게 있다며 사라졌다.

그 표정이 내가 본 어느 표정보다 행복해 보이고 굳은 결심이 느껴져 내심 교미왕으로서 뿌듯함도 느껴졌다.

마지막 문제는 수도에서 떠나기 위해 나서는 길에 마주친 케이트였다.

울먹거리며 내게 안긴 케이트를 버리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같이 씹창난 수도에서 온전한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잠깐의 데이트를 즐겼다.

민생이 터진 상황에서 황족이 이렇게 밝게 웃으며 돌아다녀도 되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내 일이 아니니 굳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 동안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호텔까지 가게 됐다.

황녀가 호텔을 갈 수 없다던 케이트는 어디서 산 검은 천으로 얼굴을 둘둘 두르고 따라 들어왔다.

씹창난 수도에서 번듯한 호텔은 몇 개 없었다.

이미 세 번이나 간 호텔이라 눈치 없는 직원이 나를 보고 엄지를 들어 올려서 방에 올라간 뒤에 한참이나 케이트에게 두들겨 맞았다.

물론 그 주먹은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투덕거림은 천천히 농익은 분위기를 가져왔고 우리는 정신없이 뒤섞였다.

씹창난 수도에서 황녀와의 교미는 색다른 느낌을 내게 가져다줬다.

다음 날 이불에서 얼굴만 쏙 빼놓은 케이트가 내게 자신이 몇 번째인지 물었다.

네가 마지막이야.

내 대답을 들은 케이트는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주먹으로 나를 몇 대 쥐어박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트는 옷을 주워입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키아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데. 수녀들은 성녀의 길을 걷는다고 떠났고 그 빨간 머리도 북쪽에 있는 마물들을 사냥하겠다고 올라갔고­'

속옷을 입은 케이트가 밝게 웃었다.

'그러니까 나도 멈춰 있을 수 없잖아. 나도 움직일 거야. 끊임없이 열심히 발악할 거야.'

케이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드레스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다른 애들이 뭐가 됐건 무조건 정실은 나니까. 황녀인 내가 다른 애들 밑으로 갈 리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케이트의 얼굴은 불과 며칠 전보다 더욱 성숙해 보였다.

뭔가 멋진 대사를 하는 케이트를 보며 나도 말을 골랐다.

나도 멋진 대사를 해야할 것 같았다.

'행운을 빌게! 넌 할 수 있을 거야.'

최대한 신사적으로 웃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이거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뭐?! 행운을 빌게?! 이런 호로 새끼가 뭐가 좋다고 내가!!!'

그리고 그 후로 한참이나 두들겨 맞았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생각이냐."

미친 노인네의 목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더 이상 여력이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스승님."

그 잠깐의 달콤함이 내가 반년 동안 이 지옥에서 뒹굴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흠... 진짜 움직일 수 없느냐?"

미친 노인네가 칼로 내 팔을 찔렀다.

귀신같은 노인네.

찔린 부분에서 피가 뿜어지며 불에 데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피하면 이 훈련을 빙자한 고문을 몇 시간이나 더 해야 할 게 분명했다.

"아악!!! 아픕니다! 아파요!!!"

물론 그렇다고 입까지 참을 필요는 없었다.

내 반응에 잠깐 고민하던 미친 노인네가 검을 집어넣었다.

저 개 시팔 호로 같은 애미 터진 미친 노망난 노인네.

얼마 남지 않은 신성력을 운용해 남은 상처들을 천천히 치료했다.

물론 흉터는 남을 테지만, 그래도 피만 안 나면 충분했다.

이 지독한 훈련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이 훈련이 끝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내 영혼이라도­

­ 안 돼!!! 악마는 안 돼!! 응~? 사도야 좀만 참자...

"이거 받아라­"

쓰러진 내 몸 위로 종이 한 장이 날아왔다.

"이게 뭡니까?"

억지로 손을 움직여 종이를 폈다.

"대륙 아카데미 초대장이다."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륙 아카데미?

좆같은 이름에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지만, 이 노인네한테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하하하! 대륙의 부름! 이건 어쩔 수 없는 인재의 의무! 어쩔 수 없군요! 대륙 아카데미! 부름에 따라 저는 거기로 가야 하겠군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살면서 제일 기쁜 순간이었다.

"쯧. 쓸만해 지기는 했지만, 아직 부족한데... 일단 졸업부터 하고 오거라."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혀를 찼다.

내가 다시는 이곳으로 오나 봐라.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든 아카데미 졸업하기 전까지 저 미친 노망난 노인네보다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청출어람이 뭔지 미친 노인네의 배때기에 새겨줄 것이다.

그나저나 대륙 아카데미라니 포부가 남다른 이름이네.

나는 기대감을 갖고 천천히 초대장을 열었다.

펼쳐진 종이에는 내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기괴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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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시발.

불길함을 느낀 나는 황급히 종에서 손을 뗐다.

***

"즐거운 공화국 여행 되길 바람돠­"

기시감이 줄어들며 생소한 풍경이 나를 반겼다.

전체적으로 회색으로 통일된 길쭉한 건물들.

색이 최대한 들어가지 않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공화국은 제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처럼 타지인도 있는지, 약간은 밝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워프 계단을 내려와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애초에 나도 회색 옷을 입고 있어서 금방 현지인처럼 섞일 수 있었다.

건물들의 간판에는 이해 못할 언어로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제국어로 작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며 천천히 공화국을 구경했다.

차가운 면?

저건 뭐지.

돌아다니던 내게 신기한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에 꽂힌 나는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슬쩍 쳐다본 가게 안에는 침침한 색의 공화국 사람들만 잔뜩 앉아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맛있겠지?

내 주머니 속의 돈을 만지작거리며 계산했다.

이런저런 난리가 난 뒤라 내 주머니에는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이렇게 써도 될까.

혹시 저 음식이 맛없으면 어떻게 하지.

"끄아아악! 너희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감히 내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옆 골목 사이에서 익숙한 비명이 들렸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골목 안의 비명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제국이라면 이미 몇 사람이 신고하거나 말리기 위해 뛰어들었을 텐데.

참으로 각박한 나라네.

나는 궁금증에 천천히 비명이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깊게 들어가자 쓰레기들이 쌓인 곳 옆에서 공화국 사람처럼 보이는 다섯 명에게 둘러싸여 두들겨 맞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나는 콘레드가의 드숀이란 말이다! 이 무례한 놈들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소리 지르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아 또 너구나 드숀.

타지에서 만난 동향 사람은 묘한 반가움을 가져다줬다.

문득 내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대사를 골랐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선행인데, 그래도 꽤 멋진 대사로 시작해야지.

거기 녀석들 멈춰라!

너무 진부한가?

벌건 대낮에 강도라니 참으로 얄궂은 세상이구나.

너무 오글거려.

"어이 거기 동무 이쪽으로 와보라우­"

그렇게 대사를 고르고 있을 때, 그쪽에서 먼저 나를 발견했다.

"에...에이든! 나의 친우 에이든!!"

잠깐 폭력이 멈춘 사이에서 나를 발견한 드숀이 황급히 내게 뛰어왔다.

"나를 구하러 와줬구나! 에이든!"

드숀은 내 등 뒤에 숨으며 내게 말했다.

"나쁜 놈들 애 얼굴을 씹창을 내놓다니! 그러고도 너희가 사람이냐!"

보면 입맛이 떨어질 정도로 씹창난 드숀의 얼굴을 가리켰다.

"... 티 나면 안된다고­ 얼굴은 안 때렸는데."

드숀이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아 원래 씹창나있었지. 그나저나 내가 너 구해줬으니까 점심 사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약자들과의 짜릿한 싸움에 드는 기대감을 만끽하며 말했다.

"으응... 점심쯤이야. 당연히 사야지 나를 구해줬는데."

드숀의 대답에서 어쩐지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동무­ 기렇게 함부로 남의 일에 끼어들믄 큰일납네다."

"보아하니 제국민 같은데 공화국은 계집애같은 제국과 다르게 철저하게 약육강식이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네다."

다섯 명의 무뢰배들이 품 안에서 살벌한 연장들을 꺼내며 내게 이죽거렸다.

"아­ 약육강식?"

그럼 나도 굳이 맨손으로 싸울 필요 없지.

이제는 손에 감기는 루나검의 손잡이를 잡아 뽑았다.

"그렇슴둥. 막말로 제국민들이야 죽어 나가도 공화국에서는 아무 문제 없습네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약자들과의 싸움은 언제나 내게 적은 수고와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내가 아직 힘 조절이 서툴러서 이해해라. 크헤헤헤헤! 좆밥 너무 좋아!"

반년간의 울분을 풀기 위해 힘차게 웃으며 뛰어갔다.

공화국 녀석들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봤다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

"오­ 이거 맛있네."

음식은 차가운 면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시원하게 맛있었다.

"으응... 많이 먹어."

드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뻐킹 어글리 오렌지­ 너는 안 먹냐?"

찰지게 넘어가는 면 소리가 내 만족감을 가득 채웠다.

"그냥 좀 입맛이 없네."

내 손등을 보면서 드숀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드숀의 시선을 따라 내 손을 보자 아직 닦지 못한 피가 묻어 있었다.

아까 다 닦은 줄 알았는데.

"뭐 여하튼 이건 네가 사는 거다? 만두 하나 추가요!"

마침 돈이 얼마 없었는데, 여기서 드숀을 만나다니.

"...그래 많이 먹어."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에 심취해 두 그릇이나 비어내고 나서야 포만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평민 어디 있었던 거냐?"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드숀이 다시 건방져진 말투로 물었다.

"그냥 뭐 좆같은 데 있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에 대충 얼버무렸다.

"너도 여기 온 것 보니까 대륙 아카데미 입학할 생각인가 보네."

드숀이 품에서 주섬주섬 초대장을 꺼냈다.

"어 어쩌다 보니까. 근데 너는 왜 여기 있냐? 너도 대륙 아카데미 입학하는 거야?"

소문으로는 대륙 아카데미에는 인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고 했는데, 드숀이 있는 걸 보니 마냥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나도 오기 싫었는데 그렇게 됐다."

드숀이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나저나 너 다른 애들 뭐 하고 지내는 지 알고 있냐?"

지옥에서 벗어나고 배도 부르니 슬슬 다른 애들이 궁금해졌다.

"누구? 키아나님이나 비키님? 아니면 황녀님?"

"어­ 아무나 알고 있는 이야기 있으면 해봐."

"설마 아무 소문도 듣지 못했다고? 너 무슨 반년 동안 산속에 박혀 있었냐?"

"그럴만한데 있었으니까, 그냥 좀 말해봐."

의외로 빠른 드숀의 눈치에 놀라며 답을 재촉했다.

"큼큼­ 제일 유명한 건 키아나 님이지."

"사저? 사저가 왜?"

"가문의 성으로 돌아간 키아나님이 돌연 자신을 꺾는 사내와 결혼을 하겠다! 발표를 한 게 벌써 반 년 전일이야. 정말 몰라? 대륙이 떠들썩했는데?"

"뭐? 사저가 결혼 발표를 해?"

드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정말 모르나 보네. 제국 제일 미녀로 유명한 키아나님이 그런 발표를 하니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고수들이 다 엘리아스 성으로 몰렸지. 심지어 여자도 있었다더군."

드숀이 마치 이야기꾼처럼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키아나 정도의 외모면 그럴 만도 했다.

키아나는 지금까지 내가 본 외모 중에서 유별날 정도로 특출났으니까.

비키나 케이트 그리고 안드레아 모두 특출난 미인이었지만, 키아나는 그보다 미묘하게 더 이뻤다.

"그래서?"

괜히 목이 타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몇천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도전했지만, 키아나님이 다 이겼다 하더라고. 심지어 키아나님은 결투하면서 더욱 성장해 지금은 그녀의 일합조차 받아내기 힘들다고 하더군. 그래서 지금 키아님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제국 제일검님의 바로 다음인 검후라고 불리고 있다네."

큼큼­ 드숀이 슬쩍 내 반응을 보며 말했다.

그 나이에 벌써 검후라고 불린다니.

하긴 악마와 싸울 때도 나는 몰랐지만, 키아나는 이미 검강을 뽑아내고 있었다.

근데 벌써 그런 높은 경지에 말도 안 되는 천재성까지 가지고 있는 키아나가 자신을 이겨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공언했으면­

사저는 결혼 못 하는 거 아니야?

문득 늙어서도 혼자 궁상맞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키아나가 상상됐다.

그리고 그 상상은 어쩐지 실현될 것 같았다.

"황녀님은 정령을... 엇! 입학식에 늦겠네! 빨리 가자고!"

가게 문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던 드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나이에 또 입학식이라니.

좆같으면서도 은근 기대됐다.

이제 나는 좆밥이 아니니까.

[크흠... 확실한가?]

닥쳐 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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