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꼬여가는 입학식.
* * *
아카데미로 가는 길은 의외로 찾기 쉬웠다.
딱 봐도 아카데미 입학생처럼 보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드숀과 나는 그들을 따라서 걸었다.
"저...저것보게! 닌자네 닌자!"
드숀이 검은 옷들을 뒤집어쓰고 뭉쳐 다니는 이상한 녀석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들은 몸에 딱 붙는 검은 옷을 입고 얼굴도 눈만 빼고 다 검은 천으로 둘둘 두른 상태였다.
그리고 드러난 눈은 잔뜩 인상을 쓰고 있어서 절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인상이었다.
"닌자가 뭔데."
뭐야 쟤네.
존나 음침하게 생겼네.
"닌자도 몰라?! 암살이라던가 첩보 같은 비밀스러운 일들을 해내는 것으로 서쪽에서 유명하다던데. 닌자들의 잠입술은 너무 조용해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보기 쉽지 않고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상대하기 절로 껄끄럽다고 유명해."
잔뜩 흥분한 드숀이 연신 손가락질을 하면서 설명했다.
그때 닌자라고 불린 것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손을 뒤로 빼고 상체를 숙인 다음 뛰었다.
"딱 봐도 병신들 같은데."
그 흉한 자세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다.
"크흠 닌자 달리기의 낭만을 모르다니."
슬쩍 손을 뒤로 뺀 드숀이 내 눈치를 보면서 상체를 숙였다.
그런 드숀의 머리를 몇 대 쥐어박아 자세를 바로 세웠다.
그렇게 우리는 아카데미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입구는 크고 회색인 기둥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간판이 있었다.
간판에는 빛나는 글자로 대륙 아카데미라고 적힌 글이 계속 움직였다.
대륙 아카데미 스티루마 제작. 광고 문의
스티루마가 뭐지.
사람들이 정문 앞에 줄 서서 들어가고 있었다.
드숀과 나도 줄의 뒤에 서서 기다렸다.
"저저... 엘프네 엘프!"
드숀이 우리 앞에 있는 귀가 뾰족한 녀석들을 손가락질하며 대놓고 말했다.
드숀의 말이 들렸는지, 앞에 있던 엘프가 뒤돌아서 한번 노려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엘프까지 있다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구만."
드숀이 엘프의 시선에 목소리를 한층 낮추고 낮게 읊조렸다.
나도 엘프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미의 종족이라는 설명답게 여자는 아름다웠고 남자들은 재수 없었다.
종족의 모두가 기본적으로 아름답기는 했지만, 뾰족한 귀가 못내 이상했다.
괜히 손가락으로 한번 튕겨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우리 차례가 왔다.
"초대 코드가 적힌 초대장을 보여주세요."
얼굴에 괴상한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가 꺼림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로 만든 것 같은 마스크에는 눈 부분만 푹 파여 있었는데, 그 부분마저 가려져 있어서 눈이 안 보였다.
저렇게 된 마스크를 썼는데 앞이 보이나?
심지어 마스크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묘하게 높낮이가 없어서 듣는 사람에게 기시감을 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 나와 다르게 드숀은 들뜬 목소리로 품에 있던 초대장을 내밀었다.
"제국 소속 드숀님. 확인했습니다"
마스크에서 빨간빛이 나와 종이의 부분을 비추니 띡하는 소리가 났다.
"아아"
그 모습에 드숀이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제국 소속 에이든님. 확인했습니다."
이어 내 종이에도 빨간빛을 비춘 여자가 전과 똑같은 높낮이로 말했다.
검사를 마치고 아카데미 정문을 통과했다.
다시 한번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중간만 가자.
나는 미친 노망난 노인네를 피해서 온 것뿐이니까.
적당히 존재감 없이 있다가 졸업만 하면 될 것이다.
귀찮게 튀지도 말고 밑에 있지도 말고 정확하게 중간만 가면서
전에 즐기지 못한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는 거야.
파릇파릇하고 정상적인 여학우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즐거운 상상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거기! 통나무 바꿔치기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교내에서 총 금지입니다! 제발! 이쪽으로 움직이세요!"
안쪽에 들어서자 마자 열심히 안내하는 사람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전혀 통제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의 건물들은 큰 사각형 뭉텅이들이 놓여 있는 모습 같았다.
그 건물들은 밖에서 봤을 때, 창문이 하나도 없어 보여 삭막한 느낌을 주었다.
"오오 야만인들도 있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어!"
드숀이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웃통을 까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들이 흉흉한 눈빛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굵직한 근육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실력이 좋아 보였다.
물론 나에 비하면 좆밥들이었지만.
나는 괜히 따라서 팔에 힘을 주어 굵게 만들었다.
드숀은 점점 언성을 높이며 주변에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손가락질했다.
드숀의 무례한 행동과 흥분한 목소리에 점점 창피해졌다.
원래도 창피한 녀석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심했다.
"잠시 뒤 강당에서 입학식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곳곳에 세워진 이상한 막대기에서 아까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섞여서 유난히 큰 사각형 안으로 들어갔다.
"제국 쪽은 이쪽으로 움직이시고 공화국은 이쪽으로"
강당 안은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절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잠깐의 난리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무리에 맞춰서 강당을 채웠다.
"에이든 님도 오셨군요."
혜진이 검은색 안경을 치켜올리며 내게 인사했다.
그러고 보니까 얘도 재판장에서 봤던 것 같은데, 용케 살아남았네.
"혜진 님도 왔네요. 그럼 그"
혜진을 보니 문득 재수 없던 녀석도 생각났다.
혜진과 살짝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재수 없는 루크 녀석이 나를 힐끔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문득 용사 아카데미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주먹이 근질근질했지만, 벌써부터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참았다.
어차피 앞으로도 녀석을 쥐어 팰 기회는 많을 것이다.
오랜만에 본 루크는 확실히 나보다 약했다.
좆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루크를 쥐어팰 생각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제국 쪽의 사람들을 둘러보니 루크와 혜진을 제외하고 나머지들은 처음 보거나 이름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오랜만에 볼 수 있나 해서 약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키아나, 비키는 여기에 없는 것 같았다.
하긴 그들의 무력이 학생의 수준을 벗어나기는 했다.
지금 나만 봐도 최상급 용사는 아직 힘들겠지만, 상급 용사 정도는 쉽게 이길 실력이니까.
나도 아카데미에 입학할 실력은 아니지만, 미친 노인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아무리 대륙에서 인재들을 모은 아카데미라고 해도 나보다 강한 녀석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천재니까.
크흡...
제국 쪽을 세어보니 수가 대충 4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강당에는 200명 정도 있는 것으로 보면 제국 쪽이 꽤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제국 측 옆에는 빨간 베레모를 눌러쓴 공화국 측의 인물이 서 있었다.
공화국 측은 그 수가 제국 측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많아 보였다.
그들은 연신 무슨 구호를 외치며 기합을 다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니 그다지 분위기가 좋은 집단은 아닌 듯했다.
그 외 밖에서 봤던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도 강당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물론 그 수가 제국 측이나 공화국 측 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 모이니 전체의 절반 정도는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입학식 시작하겠슴둥. 집중합네다."
강당 앞쪽에 설치된 짙은 회색 단 위로 빨간 베레모를 쓴 여자가 올라왔다.
미인인 얼굴이었지만, 얼굴을 가로지르게 난 굵은 흉터가 그 미모를 약간 가렸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어서 떠들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집중했다.
"저는 여러분들의 아카데미 생활 선도를 맡게 된 최지수 입네다. 타지에서의 아카데미 생활이라 불안한 점도 있겠지만, 제 인도를 잘 따라주시면 별다른 문제 없이 졸업하실 수 있을 겁네다."
짧게 말한 여자가 살짝 목을 숙인 다음 말을 이었다.
여자는 그 후로 이런저런 교칙들을 막힘없이 설명했다.
교내에서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총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
지각이 몇 번 이상 쌓이면 결석으로 처리한다. 같은 자질구레한 교칙들을 쭉 나열했다.
"...이상까지 교칙이었습네다. 그럼 다음으로 교수진과 경영진의 간단한 소개가 있겠습네다."
말을 마친 여자가 손에 들린 무언가를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강당의 불이 꺼지고 중앙 부분만 빛을 비추어 강조했다.
그 모습이 무슨 연극에 나오는 모습 같아서 이상했지만, 확실히 집중하게 하는 효과는 있었다.
"대륙 아카데미에는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 그리고 문화들이 모인 만큼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네다. 여러분들은 대륙 아카데미에서 실전에 필요한 기술들과 지식만을 쌓아갈 겁네다. 자 그럼 먼저 여러분들에게 다양한 무기를 가르치실 무기술의 달인 최상급 용사 겔 헤르만 님을 소개합네다!"
여자가 점점 목소리를 올리며 사람들의 집중을 모았다.
빛의 중심으로 근육 덩어리의 사내가 걸 어나왔다.
헐벗은 상체에는 다양한 형태의 흉터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다양한 형태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교수진에 최상급 용사라니 아카데미에서 돈 좀 썼겠는데?
"반갑다. 애송이들아."
남자가 긁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마 본인은 미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절로 움츠러드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기운이 당당히 서 있는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지, 강당에는 얕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남자와 나를 가늠했다.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해볼만 할 것 같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검집을 톡톡 두들기며 수를 생각했다.
"응? 반응이 없네?"
남자가 볼을 굵은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근육! 근육!"
"근육!!"
그때 아까 봤던 야만인들 무리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아마 본인들과 비슷한 행색을 한 겔 헤르만에게서 친숙함을 느낀 것 같았다.
야만인들의 함성이 터지며 강당의 정적과 긴장감이 깨졌다.
"하하! 그래 야만인 놈들이 왔구나. 반갑다! 무기술을 맡게 된 겔 헤르만이다. 최상급 용사라는 직위답게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으니 애송이들이 배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큰돈을 써서 나를 불러준 제국 놈들에게 감사함을 가져라 하하!"
풀어진 분위기에 겔 헤르만이 다시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내 조교 시타리다. 생긴 것은 여리여리하게 생겼지만, 보기보다 성질이 더러우니 주의하도록."
헤르만이 살짝 비켜서자 굳은 얼굴로 헤르만을 노려보는 여자가 보였다.
둘은 노출에 대한 공통적인 가치관이 있는지, 여자도 거의 중요 부분만 가리고 나머지는 다 드러낸 상태였다.
그에 매력적인 몸매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남자로 하여금 음침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몸이었다.
오
강당에 있는 남자들이 가볍게 환호성을 내뱉었다.
"무기술 조교 시타리다."
시타리라고 불린 여자가 그런 환호성이 익숙한지 가볍게 넘기며 인사했다.
고개를 숙일 때 혹시라도 가슴이 삐져나올까 봐 기대했지만, 세상은 익숙하게 내 기대를 배신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헤르만과 시타리가 뒤로 빠졌다.
"자! 다음은 정령술 담당 교수님 입네다. 정령학 계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시고 있는 하이 엘프 로티나 님이십네다."
다시금 여자의 설명이 이어졌고 하얀 피부에 긴 귀를 지닌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여자의 머리색은 마치 눈처럼 투명하게 희었다.
"...로티나다."
전과 다르게 짧게 설명한 여자가 오연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비현실적인 외모와 차가운 눈빛이 마치 여왕 같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움츠러들게 했다.
"이쪽은 내 조수 에포닌이다."
여자가 살짝 비켜서며 익숙한 얼굴이 앞으로 나섰다.
여자를 따라 오연한 눈빛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자꾸만 실룩거리는 입꼬리에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트가 보였다.
시발 케이트잖아.
쟤가 왜 저기 있어.
심지어 조교라니 왜?
"크흡...에포닌이다!"
로티나를 흉내 내고 싶었던 모양인지 낮게 목소리를 깔았지만, 전혀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큼지막한 케이트의 가슴이 말할 때마다 들썩거렸다.
로티나때와 다르게 강당에 작은 환호성이 깔렸다.
그 환호성이 못내 기분이 나빴다.
"나는 조교니, 학생들이라면 응당 내 말을 잘 듣도록. 알겠나? 크흡"
관중을 살피던 케이트가 나를 발견했는지 거만한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이 내 기분을 더 나쁘게 했다.
왜 시발 쟤는 조교고 나는 학생이야.
쟤 개 좆밥인데 시발.
"특히 거기 너 앗! 저 아직 말 안 끝났어요!! 아직 더 놀려야..."
케이트가 다시 한번 입을 열려고 하자 로티나가 황급히 손을 잡아끌었다.
그에 케이트는 아쉬운 표정으로 발버둥치며 끌려갔다.
인사를 마친 로티나와 케이트가 뒤로 빠졌다.
뭔가 점점 상황이 이상하게 되는 것 같았다.
"자! 다음은 마법학을 담당하는 교수진입네다. 최근 마도 왕국에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경지를 기록하신 루나 님입네다! 모시느라 정말 힘들었습네다!"
이번에 소개할 때는 여자의 목소리가 다소 격양된 듯했다.
근데 시발 루나라고?
에이 동명 이인이겠지.
반년 전만 해도 나랑 같이 학생이었는데, 교수라니.
말도 안 되잖아.
"아아"
고깔모자를 푹 눌러쓴 루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다.
작게 목을 가다듬은 루나는 단번에 나를 찾아 또렷하게 쳐다봤다.
"주인님! 저 여기 있어요! 주인님의 노예! 루나"
루나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루나의 목에 채워져 있는 목줄이 루나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목줄보다는 액세서리에 가깝게 보이겠지만
나는 루나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옆에 있는 드숀의 배를 힘껏 쥐어팼다.
"아아아악!!!! 아파!!! 으악!!"
드숀의 찢어지는 비명이 강당을 가득 채우며 루나의 말을 지우고 시선을 가져왔다.
잠깐 드숀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을 때, 나는 황급히 루나를 향해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루나가 알았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아악! 배가 찢어진 것 같아! 내 배가 터진 것 같아!"
드숀이 내게 두들겨 맞은 배를 부여잡고 땅을 뒹굴었다.
너무 급하게 때리다 보니 힘 조절에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의료진! 의료진!"
여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비켜 주세요! 치료하겠습니다!"
군중들을 헤치고 수녀들이 다가왔다.
근데 그 얼굴들이
"아! 에이든 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성녀 복을 입은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와! 에이든 님이다! 그때는 좋았어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밝게 웃는 아가사와.
"...흣"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히는 스칼렛까지.
왜 수녀 삼인방이 여기 있는 거야.
점점 익숙한 기시감이 뚜렷하게 들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아악 빨리 치료를!"
잊고 있던 드숀이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아! 잠시만요 에이든님 이것 좀 처리하고"
그에 안드레아가 내게 고개를 숙이더니 드숀은 손으로 가리켰다.
안드레아의 손에서 나온 밝은 금빛이 드숀을 감싸자 드숀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졌다.
손을 대지도 않고 치료를 한다고?
"에이든 님 더 듬직해지셨네요? 이 팔뚝 좀 봐!"
스칼렛과 아가사는 그런 안드레아의 모습이 익숙한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에이든 님."
치료를 마친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수녀 삼인방이 돌아갔다.
그래도 안드레아의 미소가 내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
그래 엉망이기는 해도 아직은 그래도 버틸 만해.
어차피 나는 살기 위해 지옥에서 도망 친 거잖아?
안드레아 같은 친절한 미인이 있으면 더 좋은 거고.
"그럼 다시 소개를 이어가겠습니다."
여자의 말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앞쪽으로 모였다.
그래도 루나에게 주의를 줬으니까 이젠 괜찮겠지.
"으음 반가워. 마법학을 맡은 루나다. 쓰레기 같은 너희에게 가르치기는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노력해볼게."
아까보다 표정이 안 좋아진 루나가 거친 말을 쏟아냈다.
루나의 말에 관중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쓰레기 주제에 혹시라도 에이든 님을"
"자자 저는 루나님의 조교를 맡은 아나타라고 합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루나 님이 말은 이렇게 하셔도 마나에게 사랑을 받는 자로 불릴 정도로 천재시니까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합니다!"
루나가 다시금 입을 열려고 하자 다급하게 주황 머리의 여자가 앞으로 나와 루나의 말을 막으며 인사했다.
그에 루나가 인상을 구기며 손가락을 까닥거렸지만, 다행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한차례 소란이 지나가고 루나와 아나타가 다시 뒤로 돌아갔다.
루나는 뭔가를 자꾸 궁시렁거렸지만, 아나타가 열심히 막아냈다.
"큼큼 루나 동무가 약간 특이하시지만, 그 실력만은 마법 쪽에서 최고 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네다. 자 그럼 다음 차례는 모든 용사의 꽃! 검술 수업의 교수진을 소개하겠습니다! 대륙인 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어본 그분! 모든 검사들의 우상!"
여자는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점점 고조시켰다.
길어지는 여자의 설명에 점점 불안해졌다.
에이 설마. 아닐 거야.
내 아카데미 생활이 그렇게 꼬일 리가 없어.
"제국 제일검 님이십네다! 아카데미 쪽에서 모시느라 정말 큰 힘을 들였습네다! 큰 박수로 모시겠습네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들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애미 시발.
미친 노인네가 왜 여기서 나와.
내가 이 아카데미로 왜 왔는데
미친 노인네한테 사기당했다는 충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리에 피가 굳은 게 분명한 미친 노인네에게 당하다니.
근엄한 표정을 지은 미친 노인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 제일검이다."
관중을 둘러보던 미친 노인네가 근엄하게 말을 마쳤다.
미친 노인네의 말이 끝나자 강당에는 불같은 환호성이 가득 찼다.
그 사이로 나를 발견한 미친 노인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처음 동굴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자신의 목을 엄지로 그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너를 죽이겠다.
나를 왜 죽여요! 시발.
만족한 표정을 짓는 미친 노인네의 뒤에서 키아나가 나를 보며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번 아카데미 생활도 평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오! 제국 제일검 님이라니! 든든하구만! 역시 제국이 최고지!"
옆에서 드숀이 연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아아아악!
그런 드숀의 배를 다시 한번 쥐어박았다.
아파하는 드숀을 보니 좆같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