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17화 (117/233)

〈 117화 〉 조 뽑기 운이 없는 에이든.

* * *

"자! 교수진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이번에는 조를 발표하겠습니다­"

미친 노인네를 본 순간부터 내 멘탈은 무너졌고 다음으로 나왔던 교수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다리를 덜덜 떨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기억을 되짚었다.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어쩐지 나를 순조롭게 풀어주던 순간부터?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전해준 종이에 쓰여 있던 그대로 순진하게 움직인 게 잘못이었나?

애초에 내 인생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순간이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미친 노인네랑 마주친 순간부터 내 인생은 꼬인 게 분명해.

"...야!"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지난 반년간 매일같이 미친 노인네한테 두들겨 맞고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내게 깊이 학습되어 있었다.

내가 병신같다고 인식하고 있어도 도망갈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깊숙이.

"야!"

옆에서 부르는 드숀 덕분에 깊이 침체한 생각을 뿌리칠 수 있었다.

"어?"

주변을 둘러보니 학생들이 다 같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뭐해? 우리도 조 확인하러 가야지."

좆같은 드숀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다른 의미로 더러워졌다.

조?

고개를 드니 강당의 앞부분에 글이 잔뜩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이름과 옆에 조 그리고 어디서 조가 모이는지 장소가 적혀 있었다.

근데 아카데미에서 조라니?

문득 조에 대해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2­A로 가면 된대. 2층이네."

드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 나랑 같은 조냐?"

드숀과 같은 조라니 이번 조도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저기 적혀 있잖아. 졸업할 때까지 같은 조로 움직인다고 하던데? 신기한 시스템이네."

제발 나머지들은 정상인.

언젠가 이런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드숀과 나는 2층으로 올라가 2­A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방은 작은 크기에 6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정중앙에 있었고 주변에는 회색 서랍장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는 이미 세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 조에 다섯 명인가?

그런데 테이블에 앉아있는 세 명의 모습이 전부 다 개성이 뛰어나 더욱 불안해졌다.

"아! 나머지 동무들이 오셨습네다! 반갑습네다! 이것으로 우리 조는 더더욱 혁명에 가까워진 것 같습네다!!"

검은 단발머리에 빨간 베레모를 눌러쓴 여자가 시원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큰 눈망울 갈색 피부­ 여자는 시원하게 생긴 미인상이었지만, 강한 말투와 잔뜩 힘이 들어간 눈이 거부감을 들게 했다.

군복처럼 보이는 검은색 옷을 입은 상태였는데, 소매는 잔뜩 말아 올려 잔 근육이 있는 팔뚝이 보였다.

수준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꽤 열심히 훈련한 것 같았다.

"자자! 이쪽으로 앉으라우! 이거 참 우리 조의 조합이 혁명적입네다!"

여자의 목소리에 담긴 힘 때문에 드숀과 나는 자연스럽게 빈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나는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빨간 베레모 옆에는 흰 머리와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는 소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소녀는 마치 소풍을 온 것처럼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옷 밖으로 드러난 팔뚝에는 전혀 훈련의 흔적이 없었다.

치유사 같은 건가?

아무래도 전투 직종은 아닐 것 같았다.

살짝 고개를 들었던 소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아까보다 깊숙하게 숙였다.

친해지기 어렵겠네.

"닌닌!"

그때 내 옆에서 검은 면으로 온몸을 칭칭 감은 여자가 말했다.

온몸을 칭칭 감고 있음에도 뚜렷하게 튀어나온 가슴이 여자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드러난 쌍꺼풀 없이 큰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시발.

문득 아까 병신같이 달리던 검은 무리가 생각났다.

"닌닌!"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자 여자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뭐 어쩌라고. 시발."

그 답답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말이 거칠어졌다.

"닌닌?!"

내 거친 대답에 여자가 황급히 자신의 가슴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온 여자의 손에는 검은색으로 잔뜩 칠해진 날카로운 물건이 들려 있었다.

가슴 속에 무기를 넣고 다니는 건가?

좆밥 같은 게 깝죽거리네.

나도 빠르게 내 검 손잡이를 잡았다.

딱 봐도 나보다 한참이나 약한 좆밥이었다.

"잠깐! 동무들 진정하라우! 거기 남성 동무! 원래 닌자 동무들은 말수가 적은 법 입네다! 닌자 동무도 그 표창 집어넣으라우!"

그런 우리 둘을 말리기 위해 베레모 여자가 테이블 위로 몸을 던졌다.

"닌닌! 닌닌­ 닌닌!"

닌자 여자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열심히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시발.

그 저능아 같은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동무가 닌자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고로 의사소통에서­"

베레모 여자가 난감해하며 대답을 했다.

"에이든이 자신을 먼저 모욕했다는데? 자신은 그저 인사를 했을 뿐이래."

드숀이 그 말을 자르며 닌자 여자의 말을 해석했다.

"닌닌!"

드숀의 말에 닌자 여자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뭔 개 병신같은 상황이지.

나뿐만 아니라 베레모 여자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설명하는 드숀을 보고 있었다.

"닌닌! 닌닌! 닌닌­"

"아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닌자어를 해석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점은 노노하 님께서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닌자 여자의 말에 드숀이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닌닌­ 닌닌!"

"그럼요. 세상 모두가 유용한 닌자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자꾸만 저능아처럼 닌닌 거리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 개 같은 소리를 아카데미 졸업할 때까지 들어야 한다고?

"하하! 다행입네다! 이 남자 동무가 닌자 동무의 말을 해석할 수 있다니 말입네다! 반갑습네다 여러분! 저는 공화국 출신의 이지수라고 합네다! 우리 한번 혁명적으로 아카데미 생활을 해봅시다!"

저능아 둘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베레모 여자가 다시 한번 시원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쟤는 왜 자꾸만 혁명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거야.

옆에서는 닌닌 거리고 앞에서는 혁명 거리고 있으니 당장 제국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아카데미 중도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나 정도면 어디를 가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 텐데.

미친 노인네의 주름진 미소가 떠올랐다.

그 노인네라면 내가 어디에 있든 찾아올게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집어넣었다.

"자자! 그럼 저 닌자 동무는 이름이 노노하라는 거 맞습네까?"

"아­ 네 맞습니다. 노노하 님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드숀이라고 합니다. 제국 출신이고요."

이지수의 물음에 닌닌 저능아와 대화하고 있던 드숀이 대답했다.

"아­ 드숑 동무! 반갑습네다! 제국민과 공화국민이 같은 조에 있다니 이 어찌 혁명적인 조합이 아니겠습네까?! 벌써부터­"

"그 드숑이 아니라 드숀 입니다."

"아! 알고 있습네다 드숑 동무!"

"드숑이 아니라­"

"닌닌! 닌닌!"

"노노하 님 그렇게 발음하는 거 맞습니다! 드숀!"

"압네다! 드숑!"

"닌닌!"

점점 언성을 높이며 투닥거리는 저능아 세 명을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흰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다시금 전 보다 더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려 했지만, 테이블에 부딪혔다.

얼마나 세게 고개를 숙였는지 쾅­ 소리가 나고 시끄럽던 저능아 삼인방도 대화를 멈췄다.

"아! 이쪽 눈송이처럼 흰 동무는 스티루마 출신이라고 합네다. 이름은 '천오'하고 들었습네다! 부끄러움이 많아 말수가 적습네다!"

이지수가 천오라고 불린 흰 소녀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힘차게 설명했다.

천오는 이지수가 두드릴 때마다 몸이 휘청였지만, 고개를 숙이고 별다른 반응을 하진 않았다.

"그쪽 남정네 동무는 이름이 어떻게 되십네까?"

이지수가 다시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닌닌!"

천오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깊게 고민했다.

혹시 조를 바꿀 기회는 없나­

있다면 당장이라도 바꾸고 싶은데...

"...에이든입니다."

내 쓰레기 같은 뽑기 운에 절망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에이든 동무! 반갑습네다! 우리 한번 혁명적으로 잘해봅시다!"

이지수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약간 고민했지만, 이미 정해진 조면 어떻게든 좋게 생활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손을 맞잡았다.

여자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굳은살이 가득한 손이 만져졌다.

이 정도면 아마 끊임없이 검을 잡지 않았을까.

"에이든 동무 손이 매우 혁명적입네다!"

이지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웃으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어 흔들었다.

"이지수 님도 열심히 훈련한 느낌이 드네요."

천천히 혁명 소녀의 말버릇이 적응되는 것 같았다.

"닌닌! 닌닌­"

닌자 저능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노노하 님도 손에 자신 있다고 확인해보라는데."

드숀이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잘 걸렸다 개새끼.

나는 냉큼 닌자 저능아의 손을 맞잡았다.

닌자 저능아의 손에도 이지수 못지않게 굳은살이 박혀 있었지만, 내 관심 밖이었다.

기운까지 동원해 맞잡은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닌닌!!!!"

찢어지는 듯한 닌자 저능아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못내 편하게 했다.

비키를 떠올리게 하는 저 큼지막한 가슴이 없었으면 손을 박살 냈을 것이다.

닌자 저능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을 때, 손을 놓아줬다.

"닌닌­ 닌닌..."

닌자 저능아가 내게 붙잡혔던 손을 열심히 주무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 제 친구가 성격이 조금... 하핫! 아니야!"

드숀이 그런 닌자 저능아를 달래다가 내 시선에 황급히 말을 바꿨다.

"자! 그럼 일단 이렇게 소개는 끝났고 이제는 우두머리 동무를 뽑아야 합네다! 우두머리를 하고 싶은 동무 있습네까?!"

이지수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우두머리 동무라면 조장을 말하는 거겠지?

물론 나는 그런 귀찮은 직책을 맡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저능아들에게 조장을 맡긴다는 것은 최악의 수가 분명했다.

저능아 중 누구라도 조장을 맡게 되면 조가 씹창날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들기며 고민했다.

짝­

"자고로 우두머리란 무력이 강해야 하는 법! 우리 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을 골라내어 우두머리를 뽑는 게 가장 혁명적인 방법 아니겠습네까?!"

이지수가 박수를 치며 힘을 잔뜩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일 강한 사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귀찮지 않으면서 조가 씹창나지 않게 하는 법.

"좋은 방법이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며 대답했다.

"그렇습네다! 대륙 아카데미에는 많은 수의 대련장이 있다고 들었습네다! 거기서 혁명적으로 우두머리 동무를 가릅시다!"

열정을 가득 담은 이지수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났다.

"자! 갑시다! 혁명을 향해서!"

공중으로 주먹을 뻗은 이지수가 소리쳤다.

"닌닌!"

혁명무새에 닌자 저능아 그리고 벙어리.

아마 내 아카데미 생활은 좆된 게 분명했다.

***

"2­A 조 확인했습니다. 이용 시간은 2시간입니다."

이상한 사각형에서 사람 목소리가 나오며 우리 앞에 있는 대련장의 투명한 문이 열렸다.

대련장은 회색으로 가득 찬 꽤 큰 크기의 공간이었다.

벽이나 바닥을 대충 손으로 두드려봐도 꽤 강한 강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돈 좀 많이 들었겠는데.

"자! 그럼 우리 혁명적인 우두머리 동무 선출을 해봅시다! 제일 먼저 출전할­"

"내가 나가도록 하지. 누구든지 원한다면 덤비도록."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앞으로 나섰다.

"그... 다섯 명이니까 두 명씩 한 조로 하고 한 명은 부전승으로­"

"그럴 필요 없다. 연승전으로 하지."

"하지만 그러면 에이든 동무가 너무­"

"야! 거기 닌닌 거리는 저능아 새끼 빨리 덤벼."

나는 이지수의 말을 무시하고 닌자 저능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닌닌!! 닌닌!!"

내 말에 닌자 저능아가 큰 눈을 찌푸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그럼 일단 에이든 동무의 말대로 진행하겠습네다. 마지막에 이긴 사람이 우두머리 동무를 하는 것으로­"

"닌닌!"

이지수의 말을 자르며 닌자 저능아가 땅을 박찼다.

닌자 저능아는 전처럼 가슴에 양손을 넣어 검은색으로 칠해진 암기를 꺼냈다.

그 동작에 맞춰서 닌자 저능아의 큼지막한 가슴이 흔들려 나도 모르게 잠깐 집중이 깨졌다.

그 잠깐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닌자 저능아가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쏘아지듯이 내게 날아오는 검은색 암기를 보며 검을 빼냈다.

만약 지금이 어두운 밤이라면 막기 까다로웠겠지만, 이렇게 빛이 환한 공간에서 검은색 암기라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팅!팅!팅!

분명 두 개를 던진 것 같았지만, 암기 뒤에 미세하게 붙어서 날아오는 암기가 하나 더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검을 비스듬히 세워 마지막 암기를 흘려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내 바로 앞까지 온 닌자 저능아가 양손에 든 검은색 단검을 찔러넣었다.

저건 꽤 크기가 큰데 어디에 넣어 뒀던 거지. 슬쩍 큼지막한 가슴을 보며 자세를 고쳤다.

닌자 저능아의 동작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빨라 막기 까다로웠지만, 내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단검을 막기보다는 더 빠른 속도로 검을 찔러넣어 닌자 저능아의 목을 노렸다.

가늘게 뜬 닌자 저능아의 눈이 다시금 큼지막하게 커지고­

내 검은 닌자 저능아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물론 닌자 저능아의 단검은 내 몸 가까이에 오지도 못한 상태였다.

"닌닌­"

잠깐 눈동자가 흔들리던 닌자 저능아가 단검을 놓았다.

항복했다는 뜻이겠지.

"그니까 깝치지 말라고 좆밥이면."

검의 면으로 닌자 저능아의 목을 툭­ 치고 검을 거뒀다.

"닌닌!"

내가 검을 거둔 순간 닌자 저능아의 눈이 빛나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항복한 척하고 기습하기! 닌자의 비기를 보다니!"

옆에서 환호하는 드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비기야.

그냥 개 쓰레기 같은 거지.

닌자 저능아의 모습에서 누군가가 보이는 듯해서 기분이 나빴다.

"닌닌!"

내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닌자의 복부에 발을 꽂아 넣었다.

이번에는 힘 조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며 닌자 저능아는 멀리 날아갔다.

"노노하님!! 괜찮습니까!!!"

벽에 날아가 부딪힌 닌자 저능아에게 드숀이 뛰어갔다.

"자 그럼 다음."

"큼큼­ 그럼 이번에는 제가 나가겠습네다! 혁명적으로 잘 부탁드립네다!"

이지수가 목을 가다듬으며 허리춤에 묶인 검을 뽑았다.

검은 한눈에 봐도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내가 아카데미에서 받았던 검과 비슷해 보였다.

"그럼­!"

이지수가 빠른 속도로 내게 접근하며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는 이지수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수없이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지수의 검을 가볍게 옆으로 쳐내자 이지수는 익숙한 듯 자세를 바꾸며 검을 찔러넣었다.

이지수의 반응을 보기 위해 다시금 검을 쳐내며 빈틈을 보였다. 분명 내가 검을 쳐낼 때마다 이지수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통증을 느낄 게 분명했지만, 이지수는 잠깐도 멈추지 않고 다시금 검을 가다듬었다. 이지수가 내게서 살짝 거리를 벌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쁘지 않네.

물론 그렇다고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재능도 좋은 것 같았다.

다만 적당한 스승이 없었는지, 혼자 검을 휘두른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호흡이 가라앉은 이지수가 다시금 내게 뛰어들었다. 나는 반격은 하지 않고 이지수의 검을 쳐내기만 했다. 중간중간 본인이 빈틈을 깨달을 수 있도록 슬쩍 검을 움직였다. 내게 검이 단 한 번도 닿지 않고 몸에서는 열기와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우습게도 이지수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랜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물을 마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미소였다.

"...졌습네다! 동무는 정말 혁명적으로 강합네다!"

마침내 더 이상 못 버틴 이지수의 손에서 검이 튕겨 나갔다.

"그래. 너도 나쁘지 않네."

열심히 하는 사람의 모습은 안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지수에게서 루나를 만나기 전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저것보다도 훨씬 약했지만.

자꾸만 혁명을 말해서 저능아 같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에이든 동무 고맙습네다! 이 가르침 제가 죽을 때까지 뼈에 새겨두겠습네다!"

물론 부담스러운 건 별개였다.

"천오 동무도 도전할겁네까?"

떨어진 검을 주워 넣은 이지수가 물었다.

멍하니 우리를 보고 있던 천오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저었다.

"천오 동무는 도전하지 않고­ 그러면 드숑 동무만 남았슴둥!"

이지수의 활기찬 말에 닌자 저능아를 돌보던 드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저도"

드숀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올라와."

"응?"

"올라오라고."

검지를 까닥거리며 드숀을 불렀다.

드숀이 빠지면 안 되지.

"닌닌­"

"알겠습니다. 노노하님!"

내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드숀이 닌자 저능아를 내려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남자라면 지는 걸 알더라도 도전하는 법!"

드숀이 앞으로 나오며 검을 뽑았다.

제법 인상을 쓴 모습이었지만, 애초에 드숀이 인상을 써봤자 앵그리 뻐킹 어글리 오렌지가 되는 법이다.

근데 이게 될까?

­ 나도 잘 모르겠군.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겠나?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이제는 익숙한 기운을 회전시키며 천천히 검에 기운을 몰아넣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하면 되니까.

닌자 저능아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집중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인상을 잔뜩 굳힌 드숀이 내게 뛰어들었다.

근데 왜 기합을 넣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저능아 드숀이니까 대충 이해했다.

허점투성이인 드숀의 베기를 검으로 막으며 드숀의 검 가드 부분에 검을 끼웠다. 드숀은 검을 빼지도 못하고 넣지도 못한 상태로 굳었다.

천천히 검을 타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드숀의 검으로 넘어간 내 기운이 자꾸만 흩어지려고 했지만, 집중력을 발휘해 억지로 붙잡았다.

될까?

터질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 드숀의 모습이 보였다.

안되면 말고.

점점 더 내 몸에서 막대한 기운이 검을 타고 넘어가 드숀의 검에 맺혔다.

어느새 드숀의 검에는 찬란한 검기가 맺혔고­

"검...검기?!"

드숀이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며 소리쳤다.

나는 더욱 집중력을 발휘해 드숀의 검에 맺힌 검기를 가다듬었다.

생각보다 더 큰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어느새 내 이마에는 땀이 줄줄 맺혔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기운이 흩어지겠지만, 반년간 늘 운용한 기운은 이제 능숙했다.

드숀의 검에 맺혔던 검기는 정제되어 점점 더 가라앉았고 이제는 얇은 막처럼 검을 둘러 빛내고 있었다.

검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지­

검강.

그 뚜렷한 검사들의 꿈이 드숀의 검에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회색빛을 강하게 띠면서­

"검강!!! 드숀 동무!!!"

"닌닌!!"

확실한 주변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천천히 검을 놓았다.

내 검과 떨어진 드숀의 검에서는 금세 검강이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아직 남아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묻는 듯한 드숀의 표정을 보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흑­ 검강이라니. 내가 졌다!"

스스로 듣기에도 내 목소리에는 짙은 패배감이 담겨 있었다.

"...예?!"

상상도 못 한 내 말에 드숀의 입이 벌어졌다.

"그..그럼 드숑 동무가 우리 조의 혁명적인 우두머리 동무구만! 미안합네다 드숑 동무! 사실 처음 드숑 동무를 봤을 때 쓸모없어 보인다고 몰래 생각했습네다! 그런데 검강의 경지라니! 대단합네다! 드숑 동무!"

"닌닌! 닌닌! 닌닌­!"

환호성 섞인 목소리와 박수가 대련장을 가득 채웠다.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보는 드숀.

역시 내가 하기 싫고 남 주기 싫으면­

드숀을 시키면 되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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