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18화 (118/233)

〈 118화 〉 두려움에 떨어라! 드숀이 가까이 왔으니.

* * *

혁명해라­

꿈까지 따라온 목소리에 이지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간밤에 꾼 악몽 때문에 몸이 젖을 정도로 흠뻑 난 식은땀이 이불까지 축축하게 적셨다.

이지수는 익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맡에 둔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았다.

혁명해라­

지옥 같은 인민 아카데미를 떠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대륙 아카데미로 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지수를 따라다녔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지수의 머릿속에 떠돌며 압박했다.

"후­"

이지수는 책상에 미리 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잠에서 깼다.

인민 아카데미에서는 4인 1실이었는데, 대륙 아카데미는 1인 1실이라 훨씬 편하고 쾌적했다.

심지어 인민 아카데미에서는 같은 호실을 쓰는 아이들은 이지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으니까.

악몽을 꾸기는 했어도 꽤 오랜만에 마음 놓고 잤다.

땅에 떨어져 있는 붕대를 집어 들어 익숙하게 가슴 부분을 꾹꾹 눌러 동여맸다.

큰 가슴은 이지수에게 방해만 됐다.

분명 어머니는 가슴이 작았었는데 자신은 왜 이렇게 가슴이 커졌을까.

공화국 놈들에게 이런 모습을 들켰다가는 어떤 시비를 당할지 모르니 매일 아침 붕대를 감는 것은 이지수의 일과 중 하나였다.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꾹꾹 눌러서 압박하고 나서야 일반적인 가슴 크기가 됐다.

숨 쉬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그 위에 해진 운동복을 챙겨 입고 다리를 풀었다.

몸을 다 푼 이지수는 벽에 붙어있는 선이 너저분한 그림을 보며 작게 웃었다.

조잡한 그림에는 단란한 가정이 웃고 있었다.

공원에서 그림쟁이에게 몇 푼 쥐여주고 받은 그림인데,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지수에게 제일 큰­ 아니,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림 위에 빨간 글씨로 적혀 있는 '혁명해라!' 문구를 보며 이지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오늘도 열심히 혁명적인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혁명의 날까지! 혁명해라!"

기합을 강하게 넣어 어지러운 머리를 다잡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자신은 쉴 자격이 없었다.

이지수는 밖으로 나와 어제 봐뒀던 운동장으로 향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널찍한 운동장에는 생글생글한 잔디가 깔려 있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잔디 때문에 약간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운동장에는 이미 몇 사람이 뛰고 있었다.

입학 다음 날부터 아침 운동을 하다니 역시 대륙의 인재들이 모인 아카데미구나­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지수는 작게 감탄했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발목을 푼 이지수도 그들에 섞여 천천히 달렸다.

달리기하는 동안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지수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자신 있는 운동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달리기 시작한 날부터 하루 빼고는 단 한 번도 쉬지 않았으니까.

속도를 조절하며 열심히 뛰고 있는 이지수의 옆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지나갔다.

에이든 동무­

어제 편성된 조의 제국 출신 남자 동무였다.

첫인상은 끝이 올라간 눈 때문에 좋지 않았지만, 첫인상과는 다르게 에이든은 대련에서 아무 말 없이 이지수의 부족한 점을 천천히 돌아보게 도와줬다.

그는 자신의 모든 수를 가볍게 막아내고 자세의 빈틈을 슬쩍 찔러 넣어주기도 했다.

이지수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타인의 친절이었다.

처음부터 싹수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그 격차는 이지수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인민 아카데미에서는­

이지수는 고개를 흔들어 안 좋은 기억을 흩트렸다.

굳이 대륙 아카데미까지 와서 지옥 같았던 인민 아카데미 생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니까.

물론 그렇게 강해 보이던 그도 드숀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단 한 수만에.

그렇다면 드숀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검강까지 피워냈으니 아마 상급 전사 이상이겠지?

그 나이에 벌써 상급 전사라니­

분명 쓸모가 단 한 개도 없어 보이는 외모였는데.

역시 사람은 외면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작은 깨달음을 이지수는 가슴 깊이 되새겼다.

이지수는 벌써 저 멀리 달려가는 에이든에게 인사하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에이든은 이지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었기 때문에, 발에 불이 난 것처럼 뛰고 나서야 에이든의 옆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억­ 에이든 동무! 좋은 아침이라우!"

가슴을 압박하는 붕대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어 말에 맥아리가 없었다.

"뭐야."

슬쩍 이지수를 본 에이든이 다시금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속도를 올렸다.

이지수는 악착같이 그를 따라가기 위해 속도를 더 올렸지만, 따라잡지 못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보기보다 부끄러움이 많은 동무인갑네.

이지수는 작게 웃으며 천천히 달리기를 멈췄다.

에이든을 따라잡기 위해 억지로 속도를 높이는 바람에 생각보다 아침 달리기가 빨리 끝났다.

아직도 거침없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에이든을 보며 이지수는 자신도 작게 감탄했다.

저 체력을 가지기 위해 에이든이 했을 노력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알아갈수록 대단한 사내였다.

'혁명은 길게 봐야 한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 낼만큼 공화국은 만만한 대상이 아니야. 그러니 지수야 대륙 아카데미로 가거라. 대륙의 인재들이 모두 모였다는 대륙 아카데미로 가서 미래의 힘이 될 동무들을 사귀거라.'

혁명단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혁명해라­

이지수는 다시금 머리를 저어 생각을 물리면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조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단 한 번도 스치지 못한 에이든 동무와 벌써부터 상급 전사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드숀 동무까지.

실력이 뛰어난 두 동무는 앞으로 제국의 큰 주축이 될 확률이 높았다.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든 두 동무와 친해져야 한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이용해서라도.

이지수는 굳게 다짐하며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대륙 아카데미에서는 잠자는 시간 빼고 기상 이후부터 취침 전까지 무조건 조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으니 빨리 씻고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야 했다.

만약 조로 움직이지 않는 게 걸리면 감점이라고 했으니까.

"반동 분자­"

정신없이 걷는 이지수 앞을 뱀같이 생긴 남자가 막았다.

이지수는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으득­

이 남자는 이지수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인민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끔찍할 정도로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김재환.

반동 분자라는 꼬리표는 이지수가 공화국에서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모지리 반동 분자가 대륙 아카데미까지 오다니 이거 놀랍기래?"

김재환이 웃자 얇은 입술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었다.

이지수는 도망치기 위해서 뒤를 확인했다.

"어디를 가려고. 우리 아직 아침 운동을 못 했기래."

이지수의 뒤에는 어느새 덩치 좋은 사내가 서서 막고 있었다.

아침 운동­

지긋지긋한 단어였다.

인민 아카데미에서도 이지수가 어디에 숨어있든 찾아내어 아침마다 흠씬 두들겨 팼다.

심지어 악랄하게 옷에 가리지 않는 부분만 가격해서 티 나지도 않았다.

"이 가스나가 정말 반동 분자네?"

어느새 이지수의 주변에는 다섯 명 정도 되는 사내가 둘러싸고 있었다.

"기래. 이 가시나의 부모가 빨갱이라 목이 날아가는 걸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기래."

김재환이 슬쩍 웃으며 이지수에게 다가왔다.

김재환의 말에 이지수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처럼 아려왔다.

혁명해라­

이지수는 입을 질끈 깨물었다.

"반동 분자라. 우리 공화당의 일원으로서 도저히 넘길 수 없지."

다섯 명의 사내가 점점 이지수를 압박했다.

이지수는 앞에 있는 사내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했다.

검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의 자신이 다섯 명의 사내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김재환은 자신과 다르게 명문 가문 출신이라 수준도 높았다.

자신은 다섯 명이 아니라 저 김재환 한 명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혁명해라­

목소리가 이지수의 마음을 다잡았다.

이지수는 이를 질끈 다물며 고통에 대비했다.

어차피 흠씬 두들겨 맞는 건 이제 이지수에게 익숙했다.

물론 그 괴롭힘이 대륙 아카데미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지만.

견디고 견디면 언젠가는 혁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 가스나 얼굴이 제법 반반한기래?"

처음 보는 남자가 음침함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지수는 그 목소리에 담긴 저열한 욕망에 몸을 흠칫 떨었다.

"조심하라우. 아무리 반반해도 반동 분자인기래. 몸을 섞었다가는 자네도 반동 분자에게 오염될 수도 있다는 기래!"

김재환이 사내에게 타박을 주며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안심할 수 있었다.

저 멍청한 놈들은 반동 분자가 무슨 질병인 것처럼 여겼으니까.

자신의 몸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크흠­ 기래도­ 만지는 것 정도는..."

사내가 못내 아쉬운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 가시나는 가슴도 없는데, 뭘 기래 아쉬워 하는 건가­"

김재환이 입가에 비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동무는 그게 오히려 더 좋다는 것을­"

사내가 전보다 더 음침하게 웃으며 중얼거릴 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그 일정한 발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지수는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은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호의롭지 않다는 것을 이미 인민 아카데미에서 깨달았으니까.

"그­ 좀 비키지?"

어딘지 귀찮음이 잔뜩 담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지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살짝 올라간 눈매에 귀찮음을 잔뜩 머금은 표정.

에이든이 길을 막고 있는 사내들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갈 길 가시지 기래?"

에이든의 탄탄한 몸에 김재환이 경계심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니까 갈 길 갈 테니까 비키라고. 너희가 내 길 막고 있잖아. 시발."

에이든이 거침없이 욕지기를 뱉었다.

이지수는 그런 에이든의 모습에 순간 작은 기대감을 가졌다.

어제 잠깐 느꼈던 그 따뜻한 모습이라면 혹시­

"이 간나 새끼가 무슨 말...!"

"그만하라우. 여긴 인민 아카데미가 아니라 대륙 아카데미인기래. 어서 지나가라우."

성급히 나서려는 사내를 김재환이 막고 길을 터줬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멈췄던 에이든이 뚫린 길을 통해서 지나갔다.

이지수는 순간 에이든과 눈이 마주쳤지만, 에이든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이지수는 외면하는 에이든을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과 에이든은 불과 어제 본 사이였다.

그렇다고 해도 시큰한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이지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찾아올 고통에 대비했다.

반항하지 않는 편이 더 빨리 끝나니까.

"거 싱거운 간나군 기래. 그럼 다시 반동 분자에게 교훈을 주자네."

"그럼 만지는 정도는 괜찮은 기래?"

"조 별로 안 움직이면 감점이니까­ 귀찮더라도 빨리­"

어쩐지 오늘은 그 괴롭힘이 평소보다 더 더러울 것 같았다.

뭔가를 움켜쥘 것처럼 움찔거리는 손들이 이지수를 두렵게 했다.

"잠깐만­ 뭐라고? 감점?"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다시 들렸다.

"갈 길 가라고­"

"근데 시발 너희 왜 자꾸 반말이야. 좆밥 새끼들이."

눈을 뜨자 인상을 잔뜩 쓴 상태로 사내들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에이든이 보였다.

그 모습이 주변에 둘러싼 사내들보다 훨씬 더 불량배 같아 이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간나 새... 으익!"

"너 시발 왜 자꾸 깝쳐."

욕지기를 뱉던 사내가 어느새 얼굴이 짓뭉개진 채 땅을 뒹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옆에 있던 사내들이 황급하게 몸을 움직였지만, 에이든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김재환이 유일하게 한 번을 막았지만, 바로 이어진 발길질에 구토하며 땅을 뒹굴었다.

"아­ 시발 묻었잖아! 이 애미 터진 새끼야!"

땅에 뒹구는 김재환을 에이든이 거침없이 두들겨 팼다.

"악! 잠깐! 으악! 동무! 미안하다기래! 미안하우! 악!"

언제나 자신에게 벽 같았던 김재환이 두들겨 맞아 뒹구는 모습이 이지수에게는 못내 새로웠다.

"시발! 좆같은 미친 노망난 노인네 새끼!! 애미 터진 게 분명한 새끼!"

이지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거침없이 남자들을 쥐어패는 에이든을 구경했다.

에이든은 그동안 쌓였던 화가 많았는지 이지수는 이해 못 할 욕지기를 뱉어내며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연신 주먹과 발을 휘두르면서도 올라간 에이든의 입꼬리에 이지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후­ 시발 속이 다 시원하네."

한참 동안 움직이던 에이든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숨을 가다듬었다.

"크흑­ 간나 새끼... 우리 아부지가 용서하지 않을 기래."

김재환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너 아버지 있었냐? 고아 새낀 줄 알았는데."

이지수는 그제야 에이든이 저들의 배경을 모른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 에이든 동무 구해준 건 고맙지만, 저들의 가문이..."

이지수는 에이든의 팔을 황급히 끌어 귓속말했다.

에이든은 그제야 저들의 옷이 이지수의 옷과는 다르게 꽤 고급지다는 것을 눈치챘다.

애미 시발.

나 사람 잘못 건든 건가?

"하하... 간나 새끼 이제야 눈치 챈 기래? 도대체 뒤에 누구가 있어서 이런 짓을 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큰일 난 기래."

김재환은 열심히 코를 손으로 막고 있었지만, 이미 피는 손을 넘쳐흐르고 있었다.

대륙 아카데미라고는 해도 위치가 공화국 내부에 있었다.

공화국 주요 인사의 자제를 건드리고 멀쩡할 리 없었다.

이거 시발 좆된거 같은데.

감점이라는 말에 이 혁명무새만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욕지기에 순간 손을 참지 못했다.

딱 봐도 나보다 좆밥인 새끼가 감히 나한테 욕을 하다니 이걸 어떻게 참아.

나는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동무! 괜찮습네다! 내가 어떻게든 혁명적으로!"

옆에서 혁명무새가 팔을 잡아당기며 자꾸만 정신 사납게 했다.

"간나 새끼... 뒤에 누가 있던 내가 반드시­"

내 표정을 봤는지 띠껍게 생긴 놈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내 뒤에 누가?

아! 맞다 그게 있었지.

내 뒤에도 있잖아 그거.

"네 놈 뒤에 누가 있던 내 뒤에는 드숀님이 있다. 이것도 다 드숀님의 뜻이다!. 이 애미 애비 둘 다 터진 새끼야."

드숀이 있었지 내 뒤에는.

"드숀?! 그게 누구?! 크학!!! 드숀이 누구든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

띠꺼운 녀석의 안면에 발을 다시 한번 먹였다.

그제야 녀석이 피가 섞인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정말 드숀님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입네까? 저들의 가문은 공화국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내 옆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팔을 잡고 있는 혁명무새가 물었다.

혁명무새는 가슴이 어찌나 작은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느낌조차 없었다.

케이트나 비키 였으면 내 팔이 묻혀서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래­ 드숀님이면 다 해결된다."

혁명무새의 팔을 쳐내고 다시 걸었다.

가슴 작은 여자는 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에이든의 뒷모습을 보며 이지수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참 사람 마음 간지럽게 하는 사내가 분명한 기래.'

혁명해라­

다시금 이지수의 정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황급히 움직였다.

늦어서 감점당하면 혁명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것이니까.

***

"드... 드숀이다! 그 검강을 일으켰다던­"

"드숀이야! 도망가!!"

"쉿!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큰일 난다는 거 못 들었기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드숀을 피했다.

"눈 안 깔아?! 감히 드숀님의 얼굴을 쳐다보다니! 중죄다! 이 애미 터진 새끼야!"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에이든이 대뜸 자신의 앞에 있던 남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이...이게 무슨!"

남자가 반항했지만, 에이든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남자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런 잔혹한 모습에 사람들이 비명 지르며 도망갔다.

에이든이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털었다.

"에이든 동무! 오늘도 혁명적입네다! 저 동무의 애비는 잔혹한 수탈을 일삼는­"

그런 에이든에게 잔뜩 흥분한 이지수가 붉은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렇지! 그렇지! 다 이유가 있다니까­ 이게 바로 원초적인 혁명이다. 혁명! 이지수!"

에이든이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랐잖아. 너­

그냥 쟤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쥐어팬 거잖아.

드숀은 입 끝까지 나온 말을 다시금 삼켰다.

"역시 에이든 동무! 저도 혁명에 한 힘 보태겠습네다! 에잇!!"

퍽­ 이지수가 기절한 사내의 얼굴에 주먹을 다시금 먹였다.

"잘했다. 이로써 오늘도 우리 조는 혁명에 한 발자국 가까워졌군."

에이든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랬군요! 혁명...! 이건 인민의 분노다! 분노! 이 악랄한 수탈자여! 이건 혁명이다! 혁명!"

그런 에이든의 반응에 신난 이지수는 쓰러진 사내에게 몇 번이나 주먹을 먹였다.

드숀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입학식을 한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 지났지만, 드숀을 둘러싼 상황은 믿기지 않을 만큼 급변했다.

언젠가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이든은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애들을 막무가내로 쥐어패기 시작했다.

언제 그렇게 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학생 중 누구도 에이든의 폭력을 막지 못했다.

한번은 몇십 명이 뭉쳐 에이든에게 덤볐지만, 에이든은 단 하나의 상처도 없이 그들을 모두 쥐어팼다.

에이든은 용사 아카데미 시절에 받았던 폭력을 대륙 아카데미에서 그대로 풀어냈다.

분명 에이든을 말릴 것 같았던 이지수도 어느새 에이든에게 동조해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도왔다.

물론 대륙 아카데미 측에서는 용사 아카데미처럼 학생들 사이의 다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실전을 사서 해도 부족한 판에 학생들끼리 싸운다니 오히려 권장했다.

그렇게 드숀의 악명은 빠른 속도로 아카데미에 퍼져 나갔다.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검강을 피어낼 수 있는 엄청난 실력­

그리고 검을 뽑으면 반드시 한 명은 죽여야 해서 대부분의 일은 수하가 처리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드숀은 복받치는 억울함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드숀이 복도를 걷기만 해도 학생들이 마치 마왕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피해 다녔다.

이전 검술 시간에 대련 상대는 시작하자마자 대뜸 땅바닥에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머리를 박고 드숀의 자비를 구했다.

"닌닌­"

같은 조인 노노하조차 두려운 눈빛으로 드숀을 힐끔 쳐다보며 거리를 벌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드숀은 입 끝까지 나온 말을 다시금 삼켰다.

이미 꺼냈다가 에이든에게 흠씬 맞은 적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에이든은 자신을 팰 때도 습관적으로 '드숀 님의 뜻이다!' 라고 소리쳤다.

이제 상황은 자신의 손을 떠나도 한참이나 떠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밖에는 없었다.

"꺼져라! 드숀 님이 앉을 자리다! 꺼져!"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에이든이 소리쳤다.

"드...드숀! 죄송합니다! 감히 저희가 드숀님이 앉을 자리에! 제발! 지옥 참마도는 뽑지 말아주세요!"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비켰다.

지옥 참마도는 또 뭐야­

드숀은 하루가 다르게 자신에 대한 헛소문이 커지는 것에 두통을 느꼈다.

에이든은 당당하게 그들이 비킨 자리에 앉았다.

그런 에이든의 옆에 이지수가 냉큼 앉고 나머지는 알아서 빈자리에 앉았다.

드숀은 자신의 이름만 들어도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답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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