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20화 (120/233)

〈 120화 〉 아아­ 이름조차 두려운 자! 드숀이여!

* * *

나는 좆 됐다.

이제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후­

드숀은 입에 물린 시가를 제법 폼이 나게 빨며 인상을 구겼다.

연기가 물씬 목을 타고 넘어오며 드숀의 활력을 일깨웠다.

처음 필 때는 연신 기침하고 난리가 났었지만, 이제 하루에 최소한 시가 한 개비를 피우지 않으면 손이 덜덜 떨렸다.

'자고로 흑막이라면 시가를 피워야지­'

대뜸 이상한 소리를 하며 드숀의 입에 시가를 쑤셔 박은 에이든이었지만, 더 이상 상관없었다.

이미 상황은 자신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아니 자신의 손뿐이랴. 상황은 모두의 손을 떠나 저 멀리 간 지 오래였다.

분명히 이 주일 전만 해도 상황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검술 수업에서 제국 제일검에게 지명받아 수업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흠씬 두들겨 맞은 이후부터 에이든은 더욱 격하게 변했다.

'씨발­ 이래도 퇴학 안 시켜?! 이래도 참는다고?!'

제국 제일검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든 에이든은 말 그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에이든은 누구라도 눈이 마주치면 일단 쥐어패고 드숀의 이름을 언급했다. 아니 사실 눈이 안 마주쳐도 쥐어팼다.

심지어 에이든은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명문가의 자제든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쥐어팼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평등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아카데미 안에서 에이든에게 맞은 학생이 과반수를 넘어가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에이든의 시간표를 계산해 피해 다니는 경로가 유명해졌다.

폭행을 당한 학생들이 아카데미 측에 찾아가 항의와 신고를 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아카데미 측은 학생들 사이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선언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이래도 참아? 허­ 시발.'

그러자 에이든은 잘 사는 가문 학생들의 금품을 뺏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은 돈으로 시작했지만, 그 금액이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공화국의 자제들은 어찌나 그렇게 돈이 많은지 뺏어도 뺏어도 돈이 계속해서 나왔다.

분명 제국에서 만민의 평등을 지향하는 공화국은 가난한 느낌이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것도 참는다고?'

그렇게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자 에이든은 사업에 손대기 시작했다.

에이든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시가나 연초 같은 것들을 사 와서 아카데미 안에서 비싼 값에 팔았다.

계속해서 이지수와 붙어 다니는 것을 보니 이지수의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민인 에이든이 공화국에서 시가나 담배 같은 것들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시가나 연초를 피면 마나와 기운에 대한 집중력을 올려준다 카더라­'

아카데미내에서 누가 퍼뜨렸는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소문으로 시작했지만, 마법 담당 교수인 루나가 수업 시간에 해당 소문이 근거가 있다고 인정하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졌다.

소문이 퍼지자 산처럼 쌓아뒀던 시가와 연초들이 금세 다 팔렸다.

복도에서 시가나 연초를 피우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시가나 연초는 그 중독성 때문에 한 번 피기 시작한 학생들은 또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 교칙에 시가나 연초에 대한 교칙이 없었으니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굴리는 돈이 커지자 노노하 님도 에이든에게 합류했다.

검은 옷으로 몸을 두른 닌자들은 에이든이 주는 돈을 받으며 이런저런 업무들을 처리했다.

애초에 닌자들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집단이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노노하는 에이든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렇게 정보력까지 얻게 된 에이든은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드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에이든이 모든 일에 자신의 이름을 대고 다니니 점점 더 악명이 쌓였다.

악명도 명성이라고 높이 쌓이니 학생들이 드숀을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아니 드숀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은 드숀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그 분'이라고 불렀다.

'저를 받아주십쇼!! 이 몸 어둠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자신에게 패거리에 받아 달라고 무릎 꿇는 학생들만 해도 몇십 명이었다.

웃긴 점은 그들 중에 고귀한 엘프들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드숀은 부담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드숀이 어딜 가든 험상궂은 애들로 구성된 친위대가 호위했다.

쟤네들은 왜 아카데미까지 와서 친위대 같은 걸 돈도 안 받고 하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애들 투성이였다.

아카데미 측에서 드숀 패거리 (라고 쓰고 에이든이라고 읽는다.)의 폭주를 막지 않자 학생들은 자체적으로 뭉쳤다.

이제 아카데미는 드숀 패거리, 레드빈즈, 스캐빈저 이렇게 삼파전으로 바뀌었다.

분명 대륙의 위기에 맞서서 화합을 위해 만든 아카데미 아니었나?

이제는 아무도 그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매일 서로의 파이를 노리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물어뜯기 바빴다.

레드빈즈라는 놈들은 공화국 놈들이 똘똘 뭉친 집단인데, 그 수가 아카데미 내의 패거리 중에 제일 많기도 했고 외부에서 인력도 빌려와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일단 아카데미의 위치가 공화국 내부에 있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아카데미 내에는 이제 제법 수가 되는 빨간 베레모들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절대 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스캐빈저는 나머지 놈들이 모인 집단인데, 수틀리면 뭔가 터뜨리는 놈들이라 부딪히기 제일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그냥 또라이들이 어쩌다 보니 취미가 비슷해 모인 소수 집단이었다.

레드빈즈나 드숀 패거리 둘 다 웬만해서 스캐빈저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제 학생들은 자신들의 패거리와 항상 뭉쳐 다니며 더 적은 수의 패거리를 만날 경우 거침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대륙 아카데미는 더 이상 아카데미가 아니라 그저 어디 빈민촌의 뒷골목처럼 바뀌었다.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는 항상 비명이 울려 퍼졌으며 누군가의 피가 흘렀다.

물론 빵빵한 수녀단이 있었기 때문에 죽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그로 인해 폭력은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대륙의 희망이었던 대륙 아카데미는 이제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무너져갔다.

드숀은 이 주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 에이든의 능력에 감탄했다.

저 정도면 문제 일으키는 것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의 손을 떠난 상황에 드숀은 그저 정신을 놓고 시가나 뻑뻑 피웠다.

드숀은 시가의 독한 연기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억지로 인상을 써 숨겼다.

흑막은 시가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 안 되니까.

눈물 흘리면 에이든에게 쥐어 터지니까.

"콜록!콜록! 앗! 죄송합니다! 드숀님! 살려주세요!!"

드숀의 옆에서 속옷 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던 엘프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용서를 구했다.

그래­

에이든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미의 종족인 엘프들에게 부채질을 받았겠어.

애써 좋게 생각하기 위해 드숀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드숀은 아직도 엎어져 있는 엘프에게 일어나라고 하기 위해 훤히 드러난 엘프의 어깨를 두들겼다.

"제...제발! 뭐든지 할 테니까요!!"

드숀의 손짓에 눈에 눈물이 고인 엘프가 애절하게 매달렸다.

그 얼굴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잠시 감상하던 드숀이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러니까...

그냥 일어나라는 건데.

그런 엘프의 격한 반응에 당황한 드숀은 다시 한번 엘프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말은 할 수 없었다.

에이든이 흑막에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목소리라고 말을 금지했으니까.

벌써 마지막으로 말을 한 지 몇 주는 됐다.

"제발! 목숨만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엘프가 덜덜 떨면서 속옷마저 벗어 던지며 나체로 땅에 다시금 납작 엎드렸다.

"저도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 제발 셀레나는!!"

그러자 반대쪽에 서 있던 엘프도 속옷을 벗어 던지며 같이 엎드렸다.

미의 종족인 엘프 둘이 나신으로 앞에 엎드린 상황에 드숀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 될 대로 되라지.

내가 언제 엘프 둘이랑 동시에 잠자리를 가지겠어.

"크흐흐흐흐­"

드숀은 최대한 흑막인 것처럼 미소 지으며 옷을 벗었다.

물론 남이 보기에는 어정쩡한 웃음이었지만.

나는 흑막이다­

드숀은 다시금 되새겼다.

고맙다 에이든.

개새끼야.

드숀은 엘프 둘의 머리를 잡아끌어 동시에 키스했다.

우습게도 키스하는 엘프의 입에서는 담배 찌든 냄새가 났다.

물론 내 입에서도 시가 냄새가 날 테니 불만은 없었다.

***

"그러니까 4층부터는 레드빈즈인가 하는 그 빨갱이들이 몰려 있다고? 참 이름도 좆같이 지었네."

"닌닌!"

닌자 저능아가 전해준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 검은색 끈 팬티!

가볍게 무시했다.

드숀이 전에 말했던 것처럼 닌자들은 정보를 모으는 부분에 있어서 꽤 유능했다.

지금 종이에 적힌 내용만 봐도 빨갱이들의 신상과 그 부모에 대한 정보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자세한 정보는 필요 없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야!! 너! 내가 가슴 집어넣으라고 했지!! 어디 건방지게 가슴을 내밀고 다녀!!"

옆에서 케이트가 대뜸 닌자 저능아를 손가락질하며 단속했다.

­ 하트 모양이 그려진 팬티!

"닌닌!"

닌자 저능아가 황급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물론 그렇다고 닌자 저능아의 그 큼지막한 가슴이 숨겨지지는 않았지만, 케이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왜 여기 있는 건데 도대체."

이미 좁은 방안은 조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케이트까지 더해지니 다닥다닥 붙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공간이 부족했다.

내 왼쪽에는 천오가 조용하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고 오른쪽에는 케이트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천오는 아직도 말수는 없었지만, 빼지 않고 계속 조를 따라다녔다.

이따금 입을 뻐끔거리는 게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이내 조용히 다시 다물었다.

"뭐?!... 제국의 황녀로서 제국 패밀리가 공화국 놈들한테 지는 꼴은 못 보니까! 그리고 너네들은 사람 거느린 경력 없잖아! 이럴 때 경력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잠시 고민하던 케이트가 다시금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야!

케이트가 닌자 저능아의 어깨를 찰싹 때리면서 소리쳤다.

케이트의 손찌검에 닌자 저능아가 다시금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 케이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케이트가 합류하고 더 조직적으로 바뀌었으니까.

케이트는 정말 새로 들어온 애들을 쥐잡듯이 잡았다.

갈구는 방식이 보는 사람도 치가 떨릴 만큼 지독했다.

진짜 경력직이라는 게 믿기는 갈굼 실력이었다.

"...너는 조교인데 여기서 같이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냐?"

점점 더 빠르게 망가져가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분명 내가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커질 줄 몰랐다.

그냥 눈에 보이는 애들을 다 쥐어패고 다니면 퇴학당할 줄 알았지.

그럼 나는 그 미친 노망난 노인네에게서 벗어나서 행복한 생활로 다시금 돌아가면 되는 거였는데­

아카데미가 내 생각보다도 더 너그러운 게 문제였다.

나를 퇴학시키지 않는 아카데미에게 화가 나서 애들의 금품도 갈취해보고.

이지수의 도움을 받아 담배들도 외부에서 대량으로 매입해서 아카데미에 풀기도 했다.

거기에 루나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담배는 정말 불티나게 팔렸다.

아카데미 내부는 이제 담배 연기로 가득 차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카데미 측에서는 아무 반응 없었다.

오히려 쌓인 돈이 더 늘어날 뿐이었다.

여기까지 오자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퇴학을 당하리.

이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계속하다 보니 이게 의외로 재밌기도 했다.

내 생각보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모이기도 했고.

대륙에서 유망한 인재들이 모여서 그런지 여기 학생들은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았다.

아카데미 밖에 있는 조직들에게서 연락이 올 정도로 꽤 큰 단위의 돈을 굴리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문제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범죄에 연루됐다가는 퇴학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퇴학을 원하는 거지 다시 감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제 눈에 거슬리는 건 레드빈즈와 스캐빈저 두 단체였다.

레드빈즈­ 속칭 빨갱이들은 벌레들처럼 정말 똘똘 뭉쳐 다녔다.

그 빨갱이들은 언제나 대가리 수를 믿고 덤볐는데, 그것도 나한테 몇 번 깨지니 이제는 밖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교내에는 살짝 까다로운 실력자들이 제법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다들 교칙에 따라서 청소부나 하인으로 들어온 것 같았지만, 저 정도의 실력자들이 청소부나 하인일 리가 없었다.

치사한 새끼들.

처맞았다고 외부 인력까지 동원해?

학원물의 낭만을 모르는 녀석들임이 분명했다.

아카데미 내부의 일은 내부에서 끝내야 하는 데 말이야.

이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야! 너는 왜 거기 있냐고! 내려와 너도!!"

닌자 저능아를 쥐어패던 케이트가 이제는 고개를 돌려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루나를 보며 소리쳤다.

루나는 케이트의 말을 무시하고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교육을 확실하게 한 뒤부터 루나는 이제 나를 제외한 외부 요인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이었으면 여기서 한 번 더 난리가 났겠지만, 그저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물론 이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려오라고! 악! 뭐야 이거!! 아파! 따가워!"

그렇다고 케이트가 자신에게 손대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 빨갱이들이 외부에서 들여온 사람들의 목록은 없나?"

종이를 끝까지 읽고 닌자 저능아에게 물었다.

"닌닌!"

드러난 눈을 지그시 감으며 닌자 저능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대충 면목 없다는 뜻일 것이다.

몇 주간의 생활 끝에 이제 저 좆같은 언어를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으아아악!

양손을 걷어붙이고 루나에게 손을 뻗던 케이트가 전기라도 옮은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이미 빡대가리는 몇 번이나 저거에 당했지만, 학습 효과가 없는지 번번이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그냥 내가 다 치워줄까?"

뒤에서 난리 치는 케이트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루나가 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 크흠­ 이 소녀의 팬티에는 큼지막하게 에이든이라고 적혀 있군...

이번에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아니 됐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루나는 아무것도 하지 마! 알았어?"

루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진짜 미친년인 루나가 나서면 또 일이 얼마나 커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저번에는 수도를 씹창냈으니까.

"응응! 주인님."

내 손에 슬금슬금 자신의 목줄을 쥐여주며 루나가 해맑게 웃었다.

"뭐?! 주...주인님?! 너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애한테 무슨 짓을!! 목에 그건 또 뭐야!! 너 그런 성향이 있었어?! 왜 나한테­"

겨우 전기를 떨쳐낸 케이트가 다시금 주먹을 쥐면서 달려들었다.

으갸갸갸갹!­

물론 이번에도 루나에게 막혔지만.

"에이든 동무! 그냥 혁명적으로 다 터뜨려 버리면 되지 않겠습네까!?"

전보다 눈이 조금 더 맛이 간 듯한 이지수가 출처가 불분명한 폭탄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물었다.

­ 붉고 헤진 팬티!

터뜨리기는 뭘 터뜨려 이 미친년이.

이지수는 전에도 이상했지만, 스캐빈저랑 어울리더니 애가 더 이상해졌다.

"폭탄은 안 된다니까. 그건 아카데미 교칙이 문제가 아니라 공화국 측에 잡힌다고­ 너 그리고 스캐빈저랑 그만 어울리랬지."

다시금 내게 안기는 루나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루나가 얼굴을 내 가슴에 비볐다.

"그...그렇지만 스캐빈저 동무들이랑 혁명적으로 말이 잘 통해서... 그래도 혹시나 폭발이 필요하시면­"

내 가슴에 안긴 루나를 흘겨본 이지수가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너 시발. 설마 폭발물 더 산 거야?"

내 물음에 이지수가 돌연 고개를 숙이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친년.

아카데미에 폭발물이 왜 필요해.

그리고 스캐빈저 그 놈들은 도대체 학생들이 폭발물을 왜 만드는 거야.

"산 건 괜찮은데, 폭발물 관리 똑바로 해. 자다가 터져 죽기 싫으니까."

어차피 이미 돈은 다 못 쓸 정도로 많아서 상관은 없었다.

"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네다 동무! 내가 책임지고 혁명적으로 관리하겠습네다!"

내 말에 다시금 자신감을 얻은 이지수가 냉큼 경례를 올리며 대답했다.

왜 폭발물을 혁명적으로 관리한다는 거야.

그냥 조심히 관리하면 안 돼?

이지수가 힘차게 경례를 올리느라 손에 들렸던 폭발물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폭발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보였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루나의 머리채를 잡아 그쪽에 가져다 댔다.

내게 머리채를 잡힌 루나가 얼굴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콰앙­!

땅에 떨어진 폭발물이 터졌지만, 루나의 마법에 막혀 밖으로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폭발의 여파로 방이 잠깐 흔들리며 매캐한 연기가 방을 가득 채웠다.

쿠웅­

옆에 쌓아뒀던 지폐들이 쓰러졌다.

저거 힘들게 쌓은 건데 시발.

"하...하핫! 역시 폭발이란 참으로 혁명적이지 않습네까?"

그 모습을 멍하게 보던 이지수가 머리를 긁으며 말을 흐렸다.

애미 시발.

진짜 미친년이네 이거.

얘한테 폭탄을 맡겨뒀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게 분명했다.

"너 시발 가진 폭발물 다 가지고 와."

나는 눈을 부릅뜨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 말에 이지수는 품에서 폭탄을 꺼내고 또 옆에 놓인 서랍들에서도 꺼냈다.

그렇게 이지수는 한참이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나서야 멈췄다.

테이블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폭발물을 보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 정도면 아카데미를 통째로 날릴 수 있을 양이었다.

미친년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산 거야.

어쩐지 지폐로 쌓아둔 산 하나가 안 보이더니만.

"그...그게 폭발물은 많을수록 혁명적이라고 해서..."

양손을 위로 번쩍 들고 있는 이지수가 내 시선에 황급히 변명했다.

폭발물의 양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이대로면 또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몰라.

나는 최대한 빨리 상황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오늘 나는 퇴학 당할 것이다.

이건 아카데미 측에서도 지금처럼 무시할 수 없을 거야.

"애들 모아. 오늘 끝내자 그냥. 너무 길어졌다."

내 무릎에 앉아있는 루나가 눈을 반짝였다.

"닌닌!"

고개를 끄덕인 닌자 저능아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혁명! 혁명입네다! 드디어 오늘 혁명이 이뤄집네다! 아아! 혁명하라!! 혁명!"

잔뜩 흥분한 이지수가 목소리를 드높이며 위로 굳게 뻗은 양손을 앞뒤로 파닥파닥 흔들었다.

고개를 숙인 천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데리고 가야 하나?

너무 약해 보이는데.

그래도 대륙 아카데미 학생이니까 쓸 만 하겠지.

"그렇지! 개 같은 공화국 놈들 다 뒤졌어! 애들아!!!"

조직을 구성하면서 입이 거칠어진 케이트가 문밖으로 소리쳤다.

""예! 대모님!""

밖에서 우렁찬 대답이 들렸다.

애미 시발.

대모님은 또 뭐야.

아무래도 케이트는 초점이 한참 엇나간 게 분명했다.

"연장 챙겨라!! 오늘 개 잡는 날이다!"

케이트의 입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나왔다.

혼자서 제법 연습한 모양인지 그 목소리에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정말 뒷골목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예! 대모님!""

밖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대답이 내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나가자. 루나는 여기 있어 따라오지 말고. 갔다 와서 이뻐해 줄 테니까."

품에 있는 루나를 일으켰다.

내 단호한 말에 루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혁명...! 혁명...!"

뜨거운 콧김을 잔뜩 뿜어내는 이지수가 먼저 방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오자 잔뜩 기합이 들어간 학생들이 보였다.

오로지 폭력적인 내 행동에 매료되어 모인 놈들과 다른 두 무리에 속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들어온 학생들까지.

그 뒤로는 검은 천을 둘둘 두른 닌자 머저리들도 있었다.

그들 전부 다 공통점 없이 제각각이었다.

모두 각자 손에 창이나 검 같은 무기를 꼬나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수가 거의 육십은 넘을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모였지 시발.

물론, 이제 더 이상 멈출 수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나는 천천히 목을 가다듬었다.

그들 모두가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드숀님이 아카데미를 원하신다. 아카데미의 전부를­"

나는 익숙하게 드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묘하게 안심이 됐다.

뭔가 더 큰 사고를 쳐도 내 탓이 아닐 것 같은 기분.

정말로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취한다. 드숀님의 이름으로."

진짜 입에 착착 감기는 이름이란 말이야.

드숀­

""드숀님의 이름으로!!""

복도에 우렁차게 드숀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그나저나 이 새끼는 어디 갔지?

어디서 또 시가나 뻑뻑 피우고 있겠지 뭐.

별 상관은 없었다.

드숀의 이름만 있으면 되니까.

오늘 나는 퇴학을 당할 것이다.

아니면 아카데미를 부수던지.

[크하하하! 처녀의 목을 뽑아 그 달콤한 피를 마시자!!]

[크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건 조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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