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22화 (122/233)

〈 122화 〉 아카데미였던 것.

* * *

지이이잉­ 지잉!

"울부 짖어­ 드숀님이 보고 있으니까!"

찢어지는 듯한 노랫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으아아아! 다 죽여버려!!! 드숀님을 위해!"

내 양옆으로 무기를 꼬나쥔 녀석들이 뛰쳐나갔다. 녀석들은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기합을 잔뜩 불어 넣으며 거침없이 빨갱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중간에 두려웠는지 속도를 늦추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결국 녀석들도 뒤쪽에서 미는 힘에 어쩔 수 없이 뛰어나갔다.

"간...간나 새끼들!! 쳐라!!"

"위대한 공화국의 힘을 보여주자!"

그에 질세라 빨갱이들도 마주 고함을 치며 달려 나왔다. 잔뜩 흥분한 녀석들의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고 코에서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녀석들의 손에 들려있는 각양각색의 흉흉한 무기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에겐 드숀님이 함께 하신다!!!"

제일 앞에서 뛰어가는 덩치 좋은 놈이 우렁차게 외쳤다.

본래 저런 애들이 제일 먼저 죽는데 말이지.

나는 일단 녀석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 위해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구경했다.

잔뜩 흥분한 상태로 서로에게 달려간 양쪽은 거침없이 맞붙었다.

제일 앞에 나가던 녀석이 눈이 찢어진 빨갱이 녀석이 휘두른 망치를 피하고 빨갱이의 얼굴에 거침없이 주먹을 박아넣었다. 그러자 빨갱이의 입에서 누런 이가 튀어나오며 창문에 다다닥­ 부딪혔다. 성공적으로 치아를 발치한 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빨갱이 녀석의 반대쪽 뺨에도 주먹을 처박았다. 다시금 누런 이 몇 개가 바닥에 뿌려지며 빨갱이 녀석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보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천오의 눈을 가렸다.

천오는 내 손길에 당황했는지 몸을 잘게 떨었지만, 따로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옷깃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하하하하!"

만족스럽게 웃은 녀석이 빨갱이의 멱살을 잡아 땅에 꽂으려고 하는 순간­

"이! 등치만 큰 간나 새끼!!!"

비겁한 빨갱이 새끼 하나가 자그마한 망치로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녀석이 허물어졌고 그 위를 빨갱이들이 덮쳤다. 그 모습이 마치 벌레떼가 썩은 시체를 먹는 모습과 비슷했다.

"시발­ 이 비겁한 빨갱이 새끼들!!!"

이어 도착한 우리 쪽 애들이 그런 빨갱이들을 밀어내며 거침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빨갱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 무기를 휘둘렀다.

빨갱이들이 일어나자 그 아래로 드러난 녀석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며 정신을 잃은 듯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막으라우! 막아! 이 간나 새끼들을 올라가게 두면 안 돼!!!"

곳곳에서 피가 터지며 비명과 흥분이 섞인 고함들이 울려 퍼지며 양측이 다시금 맞붙었다.

분명 저기 있는 녀석들 전부가 다 대륙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지만, 실전을 겪지 않은 녀석들이 이런 대규모 패싸움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본능적으로 무기나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휘두르는 동작에도 어느 정도 교육의 흔적이 담겨 있어 동네 시정잡배의 움직임과는 궤를 달리했지만, 결국 패싸움이었다.

으아악!! 살려줘­!

거친 싸움에 계단이 점점 피에 젖어갔다.

걸음을 옮기는데 끈적한 피가 내 발을 잠깐 잡아끌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곳이 아카데미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다 좆같은 아카데미 잘못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 첫 계단이라 그런지 빨갱이 애들의 수가 우리 쪽보다 훨씬 부족했고 빨갱이들이 천천히 밀리고 있었다.

"저...저도 혁명적으로 싸우고 싶습네다!!"

이지수가 자꾸만 몸을 움찔거리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아니야."

그런 이지수를 말리며 천천히 계단에 발을 올렸다.

여기는 2층이었고, 빨갱이들이 모여있는 곳은 8층이었다.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굳이 벌써부터 앞에 나서서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쓸 수 있는 패라면 다 써야지.

앞에서 땀과 피를 흘리며 엉켜있는 녀석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열기에 약간은 서늘했던 아카데미가 후끈해졌다.

"혁명 발차기!!! 헤­"

이지수가 지나가며 옆에 기절한 빨갱이에게 발차기를 먹이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이미 기절해 있던 녀석의 입에서 누런 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얘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오늘 퇴학당할 거고 그럼 더 이상 볼 일 없으니까.

지징­ 지이이잉! 빠바바바밤­

"그들의 목을 뜯어­ 드숀님의 목소리를 들어!"

연주는 점점 능숙해지며 고조되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 양쪽이 휘두르는 폭력의 수위가 점점 세지고 있었다.

"뒤져!!! 이 빨갱이 새끼야!!!"

앞을 보니 빨갱이 녀석의 배때지에 본격적으로 칼을 쑤셔 넣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근데 저런 칼은 어디서 구해온 거야.

녀석은 검이 아니라 짐승들의 가죽을 손질할 때 쓸 것 같은 작은 사이즈의 칼을 사용하고 있었다.

좁은 전투 공간에 긴 검보다 짧은 칼이 더 적당했다.

근데 이 새끼들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은 알고 있겠지?

문득 걱정됐지만, 저 정도로는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대륙 아카데미 학생인데 말이야.

배에 칼 좀 맞았다고 죽겠어?

칼에 맞은 녀석의 배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오늘 야근이 확실한 수녀들의 생각에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단 양옆에는 부상자들이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그중에는 빨갱이들도 있었고 우리 쪽 애들도 있었다.

그래도 빨갱이들이 많이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우세인 것 같았다.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눈빛이 흐려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베레모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쪽인 듯했다.

나를 보는 녀석의 눈에는 기묘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 드숀님이 너를 기억하실 거다."

뭐라도 말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그냥 대충 생각나는 말을 내뱉었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드숀의 이름이 입에서 나왔다.

"­ 그럼 됐습..."

눈에 다시 힘이 돌아와 대답하던 녀석의 목이 꺾였다.

뭐야 시발 뒤진 거야?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니 그냥 기절한 것 같았다.

뭔 기절을 저렇게 살벌하게 해.

나는 녀석을 지나쳐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뒈져!! 이 빨갱이 새끼들아!!"

"감히 제국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앞에서는 여전히 원초적인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금 이름 모를 녀석이 깨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놈들이 싸우면서 쓰러진 녀석을 점점 밀어냈다.

난전 중에 쓰러진 녀석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계단 옆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구석으로 밀렸고 만약 운이 없다면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쾅! 쿵!

이번 녀석은 운이 없었다.

무언가가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뭐 아직 2층이니까 괜찮겠지.

"뚫어라! 우리에겐 드숀님이 함께 하신다!!!"

앞에서 등빨 좋은 녀석이 소리치며 손에 들린 창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런데 창을 휘두르는 그 기세가 제법 살벌해 장군으로도 손색없었다.

창을 돌리는 힘이 얼마나 센지 창에서 붕붕­ 소리가 나며 녀석의 주변으로 작은 공간이 생겼다. 그러자 녀석은 거침없이 앞쪽으로 창을 찔러넣었다. 좁은 공간이라 피할 수 없었던 빨갱이들은 찌르기 한 번에 두, 세 명이 맞고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크하하하! 나약한 빨갱이 녀석들!"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린 녀석이 쾅 소리가 나도록 창을 땅에 찍었다.

거­ 참으로 장군감인 녀석일세.

나는 수십 명 앞에서 호탕하게 웃는 녀석의 기세를 보며 감탄했다.

퍼억!

그리고 그런 녀석의 머리에는 여지없이 다른 무기가 박혔다.

기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런 난전에서는 소용없었다.

녀석이 쓰러지자 다시금 시끄러워지며 피가 튀기 시작했다.

퍼억!

또 한 놈의 대가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계단 아래로 끌어내려 졌다.

어느새 계단은 피범벅이 되어 자꾸만 발이 미끈거렸다.

이거 나중에 청소하기 힘들겠네.

"와아아아!!!"

한 차례 환호성이 들리며 계단을 막고 있는 빨갱이들의 수가 늘었다.

위쪽에서 빨갱이들의 지원이 내려온 것 같았다.

그 수가 눈대중으로도 현재의 배는 됐다.

늘어난 빨갱이들의 수에 우리 쪽 애들이 약간 주춤했다.

이제 위쪽으로는 빨갱이들이 가득 차 그 뒤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타다다닥! 지이잉! 지징!

"불에 타 사라지더라도­ 재는 남을 거야­"

다시금 기타와 노랫소리가 심금을 울렸고 무기를 고쳐 잡은 녀석들이 이를 꽉 깨물며 달려 나갔다.

진짜로 쓸모 있네 이거.

가까워진 노랫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전투 바드 밴드들의 아래에 있는 발판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꽤나 쓸모있는 기술이 접목된 물품 같았다.

커진 노랫소리에 나조차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며 뛰쳐나가고 싶었다.

"불타 죽자!!! 이 빨갱이들아!!!"

하지만 다른 애들한테는 이성을 날릴 정도의 충동질이었던 것 같았다.

이제는 남녀 가리지 않고 입에서 침까지 질질 흘리며 악착같이 계단을 올랐다. 우리 쪽의 흉흉한 기세에 계단을 막고 있는 빨갱이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어떻게 보면 정말 훌륭한 전투 바드 밴드이기는 했다.

저렇게 사람의 이성을 날려버려 두려움을 잊게하고 원초적으로 싸우게 만드니까.

"크아아아아악!!!"

"뚫어!!! 길을 열어!!!"

이제는 두 조직이 한데에 뒤엉켜 누가 누구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 우리 쪽이 더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크흑­ 큭­ 혁...명­ 불타고 싶다! 불타고 싶어!! 혁명적으로 싸우고 싶어!!"

눈이 벌게진 이지수가 자꾸만 몸을 움찔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가던지 너도."

더 이상 녀석을 주체하기 힘들어 보였다.

"혁명...! 혁명을 일으키는겁네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입에 게거품을 문 이지수가 뛰쳐나갔다.

이지수가 전투 대열에 합류하자 계단을 오르는 속도가 전보다 빨라졌다.

"혁명!!!"

간간히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 멀쩡한 것 같았다.

쾅­

"크아악­"

그때 양측이 뒤엉켜있는 곳에서 우리 쪽 사람이 퉁겨져 나왔다.

튕겨 나온 놈이 땅에 닿기 전 또 몇 명의 사람이 퉁겨졌다.

그러자 대열에 작은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일을 벌인 놈이 보였다.

구부정한 자세로 양손에 단검을 들고 있는 쥐새끼처럼 생긴 놈.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절대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외양이었다.

겉늙었다는 것도 그 한계선이 있는 것인데 저놈은 젊게 봐도 40 이상이었다.

주책없이 어린애들 노는 곳에 끼어든 좆같은 놈에 의해 전투는 잠깐 소강상태가 되었고 우리 쪽은 뒤로 살짝 물러섰다.

"슈­슈슉­ 슈슈슉­ 제국 놈들아­ 슈슉­ 슈슈슉­ 제국 놈들­"

입가에 버짐이 핀 녀석이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자꾸만 자세를 바꿨다.

그 흉측한 모습에 아군 적군 상관없이 녀석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대충 봐도 상급 용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좆같은 모습과는 별개로 실력 있는 녀석이었다.

그것을 느낀 우리 쪽 애들이 녀석에게 덤비지 못했다.

"참으로 혁명적으로 못생긴 동무입네다!!! 혁명!"

물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섞여 있었다.

이미 맛이 간 눈을 하고 있는 이지수가 검을 고쳐잡고 슈슉 놈에게 뛰어들었다.

이지수로는 슈슉 놈을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하고 움직이려는 데 누군가가 나를 막았다.

옆을 보니 검은 안경을 추어올린 혜진이 막고 있었다.

얘는 왜 여기 있어.

아­ 제국 측이니까 여기겠구나.

사실 삼파전에서 제국 측은 우리 쪽이 아니면 갈 곳이 없었다.

"벌써부터 보스가 나서면 안 됩니다."

내 의문 섞인 시선에 혜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혜진의 시선에서 묘한 열기를 느꼈다.

마치 비키가 나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얘가 원래 이런 눈빛이었나?

"이런 건 아랫것들을 시켜야 합니다. 보스­"

혜진이 보스라는 단어를 입에서 굴리며 뒤쪽에 손짓했다.

그 손짓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루크가 보였다.

저 새끼도 여기 있었네.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재수 없는 새끼­

"루크씨? 쓸모를 보이시죠."

움직이지 않는 루크에게 혜진이 차갑게 말했다.

둘의 관계가 이상했다.

분명 혜진이 루크를 따랐던 것 같은데...?

"...공화국 놈들에게 지는 게 싫어서다. 널 돕는 게 아니고."

나를 노려보며 읊조린 루크가 땅을 박차며 슈슉 놈에게 뛰었다.

달려가는 루크의 오른손에는 고급스럽게 생긴 검이 들려 있었고 왼손에는 화염구를 쥐고 있었다.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쓰는 모습은 흔하지 않아 다들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심지어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그 모습이 제법 태가 났다.

"으아아악­ 혁명!!"

"슈슉­ 슉슉­ 시­ 슈슉­ 발럼아­"

이지수를 튕겨내고 자세를 고쳐잡은 슈슉 놈이 루크와 맞섰다.

쾅!!

루크는 검을 찔러 넣으며 슈슉 놈의 공간을 제한하고 화염구를 녀석의 바로 앞에서 터뜨렸다.

저렇게 가까이에서 터뜨리면 본인도 피해를 받지 않을까 했는데, 본인 마나라 별 상관없는 듯했다.

유연하게 허리를 돌려 루크의 검을 피한 슈슉 놈이 단검을 교차 시켜 화염구를 막았다.

"슈슉­ 슉슉­"

슈슉 놈이 화염구의 충격파로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지만, 금세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금 루크에게 뛰어들었다.

루크는 슈슉 놈의 끔찍한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금 검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손에는 어느새 화염구가 다시금 들려 있었다.

검과 마법을 동시에 쓰니 상대하는 입장에서 정말 까다로워 보였다.

슈슉 놈이 유연하게 루크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단검을 찔러넣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다시금 기타의 낮은음이 울려 퍼지고­

"움직여­ 드숀님의 손길이 닿기 전에­ 계속 뛰어!!!"

긁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금 노래를 이어갔다.

"멈추지 마라!! 마검사를 도와!!!"

피투성이가 된 사내 한 명이 계단을 오르며 소리쳤다.

"으아아아!! 올라가! 멈추지 마!!"

사내의 말이 신호탄이 된 듯 우리 쪽 애들이 다시 움직였다.

"흐아압!! 우리 오빠 돌려줘!!!"

너는 시발 남자가 왜 오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거야.

심지어 입고 있는 옷이 터질 정도로 우락부락한 놈이 시발.

애미 시발.

그 기분 나쁜 모습에 머리가 아파 습관적으로 품에서 연초를 꺼내 입에 물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라이터가 어딘가에 떨어졌는지 없었다.

"으아악!!"

"밀리지 마라! 우리는 공화국의 전사들이다!!"

"도와! 우리 잘생긴 오빠 구해!!"

어떻게 할지 잠깐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혜진이 내 연초에 불을 붙였다.

이제는 익숙한 연기가 내 속을 가득 채우며 두통을 가라앉혔다.

"대륙 아카데미를 장악할 생각을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손에 금빛 라이터를 든 혜진이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장악할 생각은 없는데­ 그냥 다 때려 부술 건데.

나는 열기 섞인 혜진의 모습에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금 연기를 뱉었다.

"대륙 아카데미를 장악하게 되면 그다음 목표는 무엇입니까? 공화국? 제국? 어디든 좋습니다. 제가 끝까지 보필하겠습니다."

혜진이 검은 안경을 추어올리며 불타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그 모습에 혜진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그냥 야망에 미친년이었구나.

뭔 공화국이랑 제국이 다음 목표야.

내 목표는 퇴학이야 시발.

어이없는 혜진의 말에 헛기침이 나왔다.

"지옥까지 보필하겠습니다."

혜진이 각오를 다진 표정을 하며 검은색 채찍을 꺼냈다.

우습게도 검은색 채찍과 혜진은 매우 잘 어울렸다.

근데 얘 무기가 원래 채찍이었나?

기억을 되짚어보니 나는 혜진이 싸우는 모습을 아직 본 적 없었다.

"크아아아악!!!"

"밀어!! 다 죽여버려!!!"

아직도 앞에서는 양측이 한대 뒤엉켜 끔찍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피가 튀고 사람이 쓰러져 나갔다.

야! 시발 죽이지 말라니까.

저저! 미친 새끼 배에 칼을 몇 번이나 쑤시는 거야!

"속도가 안 나는군요."

손에든 채찍을 쫙 편 혜진이 손을 휘둘렀다.

짝­ 착­ 착­

"움직여라! 이 아랫것들아!! 더 열심히 길을 열어라!!"

열망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한 혜진이 아군 적군 상관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우습게도 전보다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효과가 있네? 남녀 상관없이 혜진의 채찍을 맞은 사람은 더욱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움직여!!! 이 노예들아!!! 주인님을 위해 더 열심히 움직여라!!!"

소리치는 혜진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가 있었다.

근데 그 단어는 좀 위험하지 않나?

잔뜩 흥분한 혜진의 모습에 찝찝함을 느끼며 연기를 다시금 뱉었다.

"슈슉­ 슈아아아악!!"

슈슉 놈의 어깨에 검을 박아넣은 루크가 녀석을 계단 아래로 밀어 넣었다.

꽤 거친 싸움이었는지, 온몸에 피가 흥건히 묻은 루크가 나와 내 옆에 있는 혜진을 똥 씹은 표정으로 보더니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루크가 합류하자 전보다 계단을 오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남의 여자를 뺏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저 잘생긴 놈의 여자를 뺏다니.

만족스럽게 웃던 나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채찍을 휘두르는 혜진의 모습에 더는 웃지 못했다.

아니­ 그냥 다시 가져갈래?

"혁명적으로 움직이는 겁네다!! 동무들!!! 우리가 혁명의 불씨입네다!!"

어디서 주웠는지 전보다 좋은 검을 들고 있는 이지수가 소리 높여 외쳤다.

지이이잉­ 지잉­ 탁탁탁­

"멈추지 마­ 멈추면 드숀님에게 먹힐 수도 있으니­"

다시금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우리는 삼층을 돌파했다.

***

'이뻐해 줄게­'

루나는 에이든의 입에서 그 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어지러웠고 몸은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뻐해 줄게­'

루나는 황급히 에이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물씬 맡아지는 에이든 냄새에 정신이 더욱 어지러웠다.

'이뻐해 줄게­'

저번 에이든과의 밤이 다시금 떠올라 아래가 간지러웠다.

에이든이 오기 전에 준비해두는 게 낫겠지?

루나는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옷을 벗었다.

하아­

자꾸만 애타게 손길을 원하는 아래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하윽­

그때 에이든이 이렇게 만져줬었는데­

머릿속에 가득 차는 에이든을 느끼며 루나는 본능에 따라 어설프게 손을 움직였다.

"지지지직­"

혹시나 해서 에이든의 방에 걸어둔 마법이 작동하며 무언가가 타는 냄새가 났지만, 루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날 밤을 떠올리며 손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에이드으으은!!!!!"

조용한 가운데 루나의 신음 소리가 층을 가득 채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