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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23화 (123/233)

〈 123화 〉 무지개 파티 결성.

* * *

퍽­

"으아아악!!"

또 이름 모를 녀석 하나가 힘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이번 녀석은 운이 좋은지 복도 쪽으로 쓰러져 옆으로 밀려났다.

계단은 이제 열기로 인해 걷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났다.

물론 땀보다는 피가 더 많이 났지만.

앞을 보니 이제 빨갱이들의 기세도 한풀 꺾여 있었다.

우리 쪽도 악만 남아서 정신없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이제 우리 쪽이 수가 더 많았다.

"밀어!! 어떻게든 올라가라고!!!"

어떤 녀석이 머리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앞이 보이지 않는지 공중에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미...미친 간나 새끼들!! 왜 이렇게까지...!!"

그 흉흉한 기세에 빨갱이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게, 시발.

나도 얘네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

누가 그 좆같은 미친 노인네를 교수로 데려오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역시 이건 아카데미 측의 잘못이 분명했다.

"당연히 전사들의 무덤에 가기 위해서지!!! 크하하하!!"

내 뒤에 있던 웃통을 벗은 사내 한 명이 크게 웃으며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검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한 근육과 그 위에 덕지덕지 그려진 문신들­

외관상 녀석은 제국이나 공화국 출신이 아닌 듯했다.

뭐야 이런 녀석이 있었나?

그리고 이런 녀석이 여기 왜 있는 거지?

전사들의 무덤은 또 뭐야 시발.

뜻은 모르지만, 단어부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의 큰 근육이 들썩거리며 빨갱이들을 밀어냈다.

"끄아아아악!!!"

"아마 ... 왕국 출신인 것 같습니다."

그런 내게 붙어서 혜진이 설명했지만, 중간에 비명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열심히 채찍을 휘두르던 혜진도 지쳤는지, 다시금 침착한 혜진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이상할 정도로 내게 달라붙어서 자꾸만 몸을 비볐지만.

다시 루크에게 반납하고 싶었지만, 녀석은 중간에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아마 지속력이 부족한 타입인 것 같았다.

쯧쯧 남자라면 지속력이 중요한데.

쾅­

"아아아악!!"

"크하하하! 나약한 녀석들은 전사들의 무덤에 가지 못한다!!"

녀석이 붙잡은 사내 한 명을 계단 아래로 떨어뜨렸다.

근데 지금은 좀 위험한 높이 아닌가.

문득 계단에 쓰여 있는 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퍼억­

저 멀리서 뭔가가 터지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뭐 죽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대륙 아카데미 학생인데.

"그를 돕자!!! 혁명으로 가는 길이다!!! 혁명!!"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이지수가 목청을 높이며 소리쳤다.

의외로 쓸만한 실력을 가진 이지수의 몸에는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이지수는 출신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패싸움에 능숙했다.

검을 고쳐잡은 이지수가 소리 지르며 사내 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막아야 합네다! 막아!!"

어떻게든 빨갱이들이 악착같이 사수했지만, 남은 수가 우리를 막기에 너무 적었다.

근데 분명 빨갱이 새끼들이 쓸만한 녀석들을 들여왔었는데, 어디에다 둔거지?

아까 슈슉 거리던 놈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빨갱이 쪽에서 강한 녀석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지금처럼 저런 애들이 물량으로 막아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나도 지금까지 꿀 빨면서 올라올 수 있었지만.

"안...안 된다­"

"돼!!!"

상남자 녀석이 6층 계단에 남아있는 마지막 빨갱이 새끼를 계단 아래로 다시금 밀어 넣었다.

끄아아악­

퍼억­

비명소리가 불길할 정도로 길게 들리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다시금 났다.

마지막 녀석까지 사라지자 처음으로 잠깐의 휴식이 찾아왔다.

개미 떼처럼 내려오던 빨갱이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놈들은 8층에 모여 있는 건가?

"허억­ 허억­"

드러난 웃통에 방금보다 더 많은 상처가 새겨지고 빨간 피를 흘리는 상남자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더운 실내가 녀석 때문에 더욱 더워졌다.

"승리했다­! 크하하하하!!!"

상남자가 양손을 번쩍 들며 크게 외쳤다.

그에 상체에 무수히 새겨진 상처들이 벌어져 피가 쏟아져나왔다.

분명 녀석의 표정이 움찔했지만, 이내 괜찮은 척 다시금 광소를 터뜨렸다.

피곤하게 사네 쟤도.

녀석의 상체가 피로 흥건했다.

이제 7층이다.

녀석들이 있는 곳은 8층으로 알고 있으니 거의 다 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쪽은 나를 제외하고 10명 정도가 남아있었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생각보다는 꽤 많이 남았다.

나는 원래 혼자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생각보다 꽤 쓸모 있는 녀석들 덕분에 편하게 올라올 수 있었다.

7층은 스캐빈저 녀석들이 사용하는 층이라 별다른 저항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 녀석을 지나쳐 7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내 뒤로 다들 몸을 추스르면서 따라 올라왔다.

근데 시발 저건 또 뭐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계단을 오른 순간 보인 7층의 모습에 내 눈이 잘못됐나 해서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아! 드디어 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우리를 살갑게 웃으며 맞이하는 여자는 중요 부위만 가린 복장을 한 채로 한가롭게 웃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떠 있는 미소와 의상이 우리와 너무 격차가 심해 순간적으로 괴리감까지 들었다.

분명 바로 뒤에는 피와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는데, 여기는 이렇게 평화롭다니.

여자의 뒤로는 쉬기 좋게 침대가 쭉 늘어서 있었고 옆에서는 고기까지 굽고 있었다.

다른 스캐빈저들의 의상도 어디 휴양지에서나 볼 듯한 하늘하늘한 의상들이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잠깐 휴식을 하고 가실 수 있게 저희가 준비해뒀습니다."

여자가 싱그럽게 웃으며 옆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드러난 새하얀 목이 잠깐 시선을 끌었다.

무슨 속셈이지 이 새끼들.

전부터 스캐빈저들의 속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소수인 그들은 다른 조직과 교류하지 않고 그들끼리만 다녔다.

어차피 피곤하지도 않은데 굳이 수상한 녀석들 사이에서 쉴 필요가 있을까.

"오­ 훌륭한 젖을 가진 여성이군! 혹시 그대는 짝짓기의 짝을 구하고 있나?"

그런 내 옆으로 상남자 녀석이 근육을 불끈거리며 지나갔다.

"하하하­ 짝짓기는 아직 생각 없어요. 근육이 멋진 남성분 일단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크하하하! 보는 눈이 좋은 여성이군!!"

여자는 그런 상남자 녀석을 부드럽게 다루며 데리고 갔다.

"보스­ 다른 아랫놈들도 지친 상태라 일단 쉬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혜진이 검은 안경을 추어올리며 내게 제안했다.

이런 찝찝한 애들 사이에서 쉬고 싶나?

뒤를 둘러보니 피범벅이 된 녀석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희도 잠깐 목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열심히 노래 부르던 놈이 손을 번쩍 들고 잔뜩 쉰 목소리로 주장했다.

너네는 5층부터 노래도 안 불렀잖아 시발

어차피 남은 빨갱이 녀석들은 위에 있으니까 도망갈 수도 없겠지.

찜찜하기는 했지만, 쉬고 가는 것도 좋아 보였다.

"그래 쉬어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제일 가까이에 있는 침대에 다가가 앉았다.

그런 내 옆으로 천오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옆에 따라 앉았다.

"보스. 혹시 성욕이 쌓인 상태입니까?"

혜진이 오른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내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시발.

뜬금없는 혜진의 말에 당황해 대답할 말을 잊었다.

"아­ 간혹 피를 보고 흥분해 발기하는 남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보스도 그런 과이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경험은 없지만 관련 서적을 많이 읽으며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그런 내 반응에 혜진이 자신의 옷을 매만지면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너도 그냥 저기 가서 쉬어라."

루크 이 개새끼 나한테 이런 걸 던지고 가다니.

잠깐 머뭇거리던 혜진이 내 옆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슬금슬금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살색 스타킹을 입은 혜진의 길쭉한 다리가 드러났다.

미친년이네 진짜.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려 주변의 모습을 확인했다.

나머지 애들을 각각 원하는 곳으로 가 이런저런 것들을 받고 있었다.

뭔지 모를 음식을 먹고 있는 녀석도 있었고 희한한 색의 음료수를 마시는 놈도 있었다.

속 모를 스캐빈저들이 제공하는 것들이라 나는 전혀 손이 가지 않았다.

"혁명적인 맛입네다!! 더 없습네까?!"

붉은 음료를 들고 요란하게 소리치는 이지수가 보였다.

"있긴 합니다만. 더 마시면 일일 복용량을 넘어서서 위험합니다."

그 앞에 있는 침착한 인상의 여자가 이지수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왜 음료수에 복용량이 있는 거지?

불안한 예감이 더욱 크게 들었다.

"괜찮습네다!! 혁명에는 복용량이 따로 없습네다!!!"

그렇게 이지수는 여자의 손에 있는 붉은 음료를 뺏어 다시금 입에 넣었다.

그런 이지수를 보며 앞에 있는 여자가 들고 있는 종이에 이것저것 체크했다.

"침대의 만족도는 숫자로 따지면 0에서 10까지중 몇입니까?"

사내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런 사내의 질문에 내 찜찜함은 더 커졌다.

그리고 시발 나는 왜 남자야.

심지어 수영복처럼 보이는 팬티만 입은­

"몰라 시발 꺼져."

나는 찝찝함을 숨기지 않고 입에 담아 말했다.

"아­"

사내는 내 대답에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이내 다시 인상을 피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

내 옆에 앉은 천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아 애 앞에서 너무 험한 말을 했나.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가지고 있을 때,

"크하하하하! 내 몸이 파랗게 됐다!!!"

일어날 것 같았던 문제가 시작됐다.

"저는 붉은 색입네다!! 혁명의 붉은색!!! 이제 혁명이 정말 가까이 왔습네다!!!"

정말 말처럼 온몸이 붉은색이 된 이지수가 신나게 소리쳤다.

곳곳에 음료수를 마시던 녀석들의 몸이 다양한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피부색이 변한 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신나게 웃으며 뛰어다녔다.

"...!"

그 모습을 보고 노란색 음료를 쥐고 있던 천오는 황급히 음료를 옆에 내려놨다.

"생각보다 복용량이 더 적은 것 같네."

"아마 각자 신체의 특징이 달라서 그런 것 같군."

"흐음 복용량을 지금보다 20% 정도는 낮춰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여성성을 어필하는 것이 방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이었어. 예상 대로야."

난리 치는 녀석들을 보면서 스캐빈저들이 중얼거렸다.

진짜 지랄한다 지랄해.

웃긴 건 녀석들이 단 하나의 겹치는 색 없이 다양한 색으로 변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웃고 떠들던 녀석들이 내 말에 동작을 멈추고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물론 심각한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색들이 다 알록달록해서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았지만.

"잠깐 아직 하지 못한 실험이­ 크악­"

다시 나를 말리는 사내의 입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사내가 입에서 은색 이들이 우르르 뱉어내며 쓰러졌다.

근데 왜 이가 은색이야 이 새끼는?

대륙 아카데미를 와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일단 귀찮을 때는 쥐어 패놓으면 일이 쉬워진다는 점.

주변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고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8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오가 침대에서 일어나 황급히 내게 붙어 옷깃을 잡았다.

"크흠­ 전사들의 무덤을 향해 가도록 하지!!"

다른 녀석들도 정신을 차렸는지 나를 따라 움직였다.

"보스­"

8층으로 올라가기 직전 혜진이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복숭아처럼 분홍색으로 변한 혜진이 보였다.

"이것을 마시기 전에도 제 젖꼭지와 생식기는 옅은 분홍색을 띠기는 했지만, 지금은 완연한 분홍색이 됐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읽은 바로는 남성들은 여성의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혜진이 슬쩍 자신의 앞가슴을 풀면서 내게 은근히 말했다.

그 사이로 제법 크기가 있는 혜진의 분홍색 가슴이 보였다.

미친년­

나는 혜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하여튼 정상인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시발 좆같은 아카데미들.

내가 다시는 아카데미에 오나 봐라.

심각한 표정을 짓는 녀석들과 계단을 올랐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8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새끼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렸나 싶었지만, 위쪽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방향을 알려줬다.

어디서 본 건 많은 녀석들이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귀찮게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났지만, 그래도 후덥지근한 실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잔뜩 쌓여있는 기운들을 보니 꽤 많은 인원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다시금 계단을 올랐고 다른 녀석들이 그런 나를 뒤따랐다.

"지금처럼 선명한 분홍색을­"

어느새 채찍을 다시 손에 쥔 혜진이 속삭였고.

"지금 저는 혁명걸입니다!! 혁명걸!! 혁명의 붉은색!!!"

아직도 흥분한 이지수가 소리쳤다.

"전사들의 무덤!!!"

옥상으로 향하는 두꺼운 문을 상남자 녀석이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쿠우웅­

두꺼운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고 옥상 안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이 후끈 달아오른 몸을 식혔다.

해는 어느새 져서 희미한 달빛이 내리쬐고 있는 옥상에 잔뜩 모여있는 빨갱이 녀석들이 보였다.

역시 어느 순간부터 빨갱이의 숫자가 적어졌나 싶더니만 여기 다 있었구만.

빨갱이들은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빨갱이들의 앞에 유난히 강한 느낌을 주는 연놈들이 다섯 명 서 있었다.

밖에서 초빙한 녀석들도 여기 있었군.

어쩐지 너무 쉽게 올라왔다고 느끼기는 했다.

"전사들의 무덤에 걸맞은 장소로군!! 크하하하!!!"

상남자 녀석이 소리치며 등에 메고 있던 큰 도끼를 꺼냈다.

그렇게 우리 쪽이 의지를 다지며 옥상으로 올라왔고­

"뭐야. 저 머저리 같은 무지개들이 우리 상대라고?"

강해 보이는 다섯 명 중에서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이죽거렸다.

"상대가 누가 됐건 방심은 옳지 않다."

큰 방패를 든 덩치 큰 사내가 그런 여자를 타박했다.

"하­ 윌리엄은 너무 재미없다니까. 그래도 저 꼴을 보라고 왜 애들이 죄다 알록달록해? 푸하하하."

여자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 나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알록달록한 녀석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무지개를 연상시켰다.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인데, 분위기를 못 잡을 정도로 우리 측의 모습이 너무 엉망이었다.

뭐 어차피 상관없었지만.

주머니에 있는 연초 두 개비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복숭아 물이 잔뜩 들은 혜진이 내 연초에 불을 붙였고 나는 연기를 길게 빨아들였다.

안에서 하루종일 피 냄새만 맡다가 밖에 나오니까 상쾌해서 좋네.

"...흡."

어느새 노란색으로 변해 에일 버드를 연상시키는 천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쭈­ 쟤 담배까지 피우는데? 윌리암? 학생 주제에 아주 건방져­ 우리가 선배님인데 말이지."

나를 손가락질하며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선배는 니네 어미한테 가서 찾으시고요 시발련아."

끝이 다 탄 연초를 땅에 비벼끄며 여자를 마주 보며 웃어줬다.

"이 못생긴 새끼가!!"

여자는 부모 욕에 내성이 없는지 단번에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를 질렀다.

근데 시발 못생겼다니?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못생기지는 않았어.

"보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남성은 외모보다는 야망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스는 훌륭한 남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제 분홍색을 확인하는 것은­"

옆에서 들리는 혜진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검을 뽑았다.

­ 우효! 겟또다제!

이 새낀 또 뭐라는 거야.

­ 아! 예전 주인이 즐겨하던 말이라 따라 해봤네.

하여튼 정상이 나밖에 없어 시발.

입에 남은 연기가 숨처럼 밖으로 뿜어졌다.

***

"하핫­ 영감님 어떡합니까!"

헤르만이 다 비운 맥주잔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음? 뭘 말인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손을 덜덜 떨면서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제국 제일검이 되물었다.

"나머지들은 다 어중이떠중이들이지만, 아무리 영감님의 제자라고 해도 상급 전사 다섯 명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영감님의 제자는 아무리 좋게 봐도 상급에서 최상급 사이 정도 같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헤르만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기의 꽃은 잃은 상대방을 놀리는 것.

그 원칙을 헤르만은 제국 제일검을 상대로도 지키고 있었다.

시타리는 남한테 안 보이게 테이블 밑으로 헤르만의 발등을 찍었지만, 헤르만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 걱정하지 말게. 내 제자니까 말이야."

제국 제일검이 헤르만의 깐족거림에 피식 웃더니 손에 들린 맥주를 마셨다.

"영감님의 제자라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상급 전사 다섯인데­"

헤르만은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는 시타리의 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 헤르만의 말에 듣던 키아나도 슬슬 걱정됐다.

아무리 공화국 내부에 있는 아카데미라고 해도 어떻게 학생이 상급 전사 여섯이나 되는 수를 운용할 수 있는 거지.

상급 전사 하나만 하더라도 학생 수준에서 부담할 수 없는 비용일 텐데­

이겨야 돼 사제­ 지면 진짜 스승님이 사제를 죽일지 몰라.

마음이 조급해진 키아나는 앞에 놓인 팝콘이라는 것을 손톱으로 긁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제국 제일검이 손을 저으면서 헤르만의 말을 잘랐다.

"제국 제일검인 내가 저 녀석을 지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뒀다는 뜻이네."

그렇게 말하는 제국 제일검의 표정에는 오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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