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24화 (124/233)

〈 124화 〉 드숀이 그랬어.

* * *

루나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어두운 옥상을 환하게 밝혔다.

이제 끝에 거의 다 왔으니 굳이 시간을 끌 필요 없지.

끝나고 지킬 약속들도 있고­

문득 케이트와 루나 중 누구에게 먼저 가야 되는지 잠깐 고민했다.

물론 가슴은 케이트가 더 크고 그 맛도 좋았지만, 루나는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에.

나머지는 끝나고 생각하기로 하고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원래 항상 먼저 치는 쪽이 유리하니까.

발 쪽에서 기운을 폭발적으로 터뜨리며 순간적으로 내달렸다.

제일 앞에서 폼 잡고 서 있던 다섯 명은 내가 혼자 돌진할 줄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 실력답게 경험도 제법 있는지 방패를 든 사내가 앞을 막으며 사내의 뒤로 나머지가 숨었다.

그러자 내게는 큰 방패만 보였다. 마치 벌레가 웅크린 것 같네.

"우리를 단단하게 만드사­"

뒤에서 작은 외침이 들리고 사내의 방패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마 단단하게 만드는 종류 같은데­

나는 방패를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내의 바로 앞에서 땅을 박찬 나는 공중에 떠 사내를 지나쳤다.

아래로 보이는 사내의 황망한 눈빛에 시원하게 웃어주며 뒤쪽으로 이동했다.

"제길! 대열을 바꾼다­ 로카스 사라를 방어해!"

처음 겪는 일인지 상대들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잠시라는 시간은 이런 싸움에서 치명적이었다.

"아­ 아?!"

"누가 못생겼데 시발련이."

나는 제일 뒤에 있던 여자의 얼굴에 주먹을 시원하게 꽂아 넣었다.

나름 미인이었던 여자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뭉개지며 뒤로 쓰러졌다.

"사라를 치료하겠다­ 나머지는 저 녀석을 막­"

방패맨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 개자식이 사라를!!!"

사라라고 불린 여자의 바로 뒤에 있던 사내가 눈에서 분노를 뿜어내며 검을 내게 찔러넣었다.

다섯 명이 동시에 덤볐다면 이것보다 힘들었겠지만, 일대일로는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왜 얘가 네 좆집이야? 좋은 가슴이네. 부드럽고 막 녹을 것 같아­"

나는 코를 찡긋거리며 일부러 사라라고 불린 여자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아직 정신이 희미하게 남았는지 사라가 반항했지만, 뺨을 한 대 더 쳐올려 정신을 잃게 했다.

오 생각보다 크기가.

도발할 생각으로 한 행동이지만, 나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졌다.

"이 개 같은 놈이!!!"

그리고 그런 내 표정이 효과적으로 상대에게 작용했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사내의 검 끝이 살짝 흔들리며, 사라의 뒤에 있던 나를 노리던 검이 애매하게 공중을 찔렀다.

"아. 미안­ 네 좆집이라 그랬지! 가져라!"

사내에게 사라를 밀어 넣자 사내의 자세가 한 번 더 무너지며 빈틈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 빈틈에 검을 찔러넣어 사내의 복부를 깊게 찔러넣었다.

사라를 품에 안은 사내가 피를 뿜어내며 허무한 표정으로 흔들렸다.

언제나 느끼지만, 사람의 배에 검을 찔러넣는 촉감은 좆같았다.

"더러운 새끼!!"

어느새 내 주변으로 다가온 나머지들이 양쪽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검을 박아넣은 사내의 머리를 끌어당겨 다가오는 검들을 막았다.

"미­ 미친!!!"

그런 내 행동에 내게 검을 찔러넣던 여자가 황급히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이미 거리가 너무 가까워 사내의 등에 검이 박혔다.

"동료의 등에 칼을 박다니! 이 악랄한 놈들!!!"

인류애를 저버린 녀석들에게 절절한 분노가 차는 것을 느끼며 사내의 복부에 꽂아뒀던 검을 뽑았다.

­ 너무 저열하게 싸우는 거 아닌가? 강해진 만큼 이제는 조금 더 신사적으로...

닥쳐 시발.

이게 내 방식이니까.

검을 뽑자 사내의 상처에서 내 손에 후끈한 피가 쏟아지며 온도를 후끈 달아 올렸다.

뽑은 검을 다시금 힘을 주어 움직여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에게 찔러넣었다.

쾅­

방패 사내가 그런 내 검을 막았다.

루나검이 사내의 큼지막한 방패에 굵은 파임을 만들었지만, 유효타를 넣지는 못했다.

푸욱­

공격이 막히자마자 뒤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어느새 내 뒤에 다가온 사내 한 명이 내 등에 검을 찔러넣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복부에서 느껴졌다.

고통이란 건 언제 느껴도 좆같을 정도로 좆같았다.

맞는 말인가?

불에 덴 것처럼 격렬한 통증에 혼미해지는 정신을 이를 꽉 물어 되돌렸다.

좆같기는 했지만, 이미 반년간의 지옥 생활로 인해서 고통에는 꽤 익숙해졌기 때문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를 통과해 튀어나온 길이를 보니 검사가 쓰는 검이라기보다는 암살자가 쓰는 검 같았다.

나는 그 검이 다시 뽑히기 전에 끝을 손으로 잡았다.

시발 또 존나 아프겠지?

세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힘을 주어 몸을 돌렸다.

"아아악!! 존나 아퍼 시발 미친 애미 터진 새끼야!!"

진짜 예상처럼 존나 아팠다.

생각지도 못한 내 반응에 검을 놓고 거리를 벌리려는 사내가 보였다.

음침하게 생긴 것을 보니 암살자가 맞는 것 같았다.

남 등에 칼을 꽂아 넣는 음침한 암살자 새끼들!

짙은 분노를 느끼며 사내를 따라 뛰었다.

뛸 때마다 검이 박힌 복부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오히려 자신에게 붙는 나를 보며 당황한 사내가 허벅지에서 단검 두 개를 뽑아 들었지만, 단검으로는 검강이 씐 루나검을 막을 수 없었다.

사내의 단검 두 개를 그대로 잘라내고 사내의 가슴팍을 깊게 베었다.

사내의 검은 옷이 풀어 헤쳐지며 뜨거운 피가 밖으로 뿜어졌다.

이 정도면 치료한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쿵­

그때 뒤쪽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지며 앞쪽으로 날아갔다.

내 복부에 박힌 검이 다시금 깊게 박히며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고통을 줬다.

이 악랄한 새끼들 죄다 뒤에서 공격하네 시발.

날아가며 공중에서 억지로 자세를 잡아 발을 고정했다.

어떻게든 멈출 수는 있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자리에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복부에 박힌 검이 밀려 밖으로 나왔다.

시발 미친 존나 아프네­

나는 황급히 몸속에 있는 신성력을 돌렸다.

그러자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갔다.

물론 흉터는 남겠지만­

상처가 치료되고 체력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자고 일어난 것처럼 상태가 좋아졌다.

역시 나는 주인공이란 말이야.

"괴...괴물!!!"

멀쩡하게 일어나는 나를 보며 여자가 손가락질하며 경악했다.

괴물이라­

그러고 보니 그때 수도에서 만난 집행관이랑 비슷하게 보이려나.

물론 나는 그런 불결한 힘이 아니라­

성스러운 힘이니까.

"괴물이 아니라 신의 사도다. 이 애미 터진 것들아."

굳이 힘주지 않아도 내 입꼬리가 호선으로 깊게 휘었다.

­ 으응... 맞아 사도야­ 그러니까... 좀 말 좀 순화해서 해주면 안 될까? 나도 신이라 평판이란 게 있는데...

쿵­

"회복력이 뛰어난 놈일 뿐이다. 니르! 정신 차려라. 우리가 그동안 상대했던 마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굳은 얼굴의 방패맨이 방패를 땅에 찍어 여자의 정신을 일깨웠다.

"알았어. 윌리엄­"

정신이 돌아온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린 검을 다시금 고쳐 잡았다.

"너도 가슴이 컸으면 좋겠네."

나는 일부러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까닥까닥 움직였다.

"...변태 새끼."

굳어 있던 여자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물론 그들이 정신을 고쳐 잡는다고 날 막을 수는 없었다.

다섯 명을 다 기절시키고 숨을 가다듬었다.

꽤 강한 상대들이었지만, 내 상대는 아니었다.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들에게는 절대 지지 않으니까.

그 수가 몇이 됐건 말이야.

"괴물입네다! 괴물!!"

"도...도망가야 합네다! 심지어 아직 드숀이라는 자는­"

"그 이름을 말하지 마라!! 동무!!"

피에 젖은 내 모습에 남은 빨갱이들이 경악했다.

옥상의 끝자락에 서 있는 녀석들이 난간 가까이 뒷걸음질 쳤다.

"진정해라 이 새끼들아!! 상대는 겨우 하나야!!"

빨갱이 녀석들의 제일 뒤에 있는 놈이 큰소리로 외쳤다.

근데 저 새끼 어디서 본 적 있는 놈인데­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되짚었다.

아 그때 봤던 이지수 친구들이구나.

쟤가 빨갱이들 대장이라니 의외네.

존나 약했었는데 말이야.

"빨리! 도망갈 생각하지 마라! 도망가면 우리 아바이가 용서치 않을 테니!!"

놈이 앞에 있는 녀석들의 등을 힘주어 밀치면서 소리쳤다.

놈의 말에 녀석들이 표정을 굳히며 손에 든 무기들을 다시금 쥐었다.

이미 끝난 일인데 귀찮게 끝까지 발악하네.

"동무!!! 정말 혁명적으로 대단합네다!! 어떻게 상급 전사 다섯을 혼자!!!"

"역시 보스­ 빨리 끝내고 내 분홍색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우리 패거리가 내 쪽으로 움직였다.

"마지막이다. 드숀님의 이름을 부르짖게 하자."

주머니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개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다 끝나고 피는 게 낫겠지?

주머니에서 손을 빼 검을 고쳐 잡았다.

"드­숀!!!"

상남자 녀석이 내 말을 따라 외치며 빨갱이들에게 달렸다.

"드숀!"

나머지 녀석들도 상남자 녀석을 따라 힘차게 뛰었다.

녀석들은 계단을 오르느라 지치고 피투성인 상태였지만, 얼굴에는 희열이 담겨 있었다.

그와 반대로 빨갱이들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았고 상태도 멀쩡한 데다 수도 우리의 배는 됐지만, 이미 패배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빨갱이들은 억지로 무기를 들고 맞섰다.

양측이 맞붙자 다시금 피가 튀면서 욕지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우리 측 기세가 좋더라도 이대로 두면 질 게 뻔하기 때문에 기운을 순환시키며 뛰었다.

"개 좆같은 빨갱이 새끼들을 쳐 죽이자!!"

제일 앞에 있는 녀석의 복부에 발을 꽂아 넣으며 소리쳤다.

바닥에 피가 흥건해지며 빨갱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뭐해!! 이 문디 새끼들아! 우리가 더 많잖아!!!"

김재환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에이든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처음 에이든을 만난 날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치료를 받은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이 쑤셨다.

근데 그런 놈이 지금은 피 칠갑이 된 상태로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금 그날의 공포가 김재환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피를 파는 자!! 어디 있습네까!!! 나오라! 돈값을 하라우!!"

점점 옥상의 끝에 밀리는 김재환은 다급하게 공중에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더러운 새끼들­

역시 피를 파는 자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

김재환은 혹시나 해서 주머니에 넣어둔 총기를 매만졌다.

'교내에서 총기 사용은 금지입니다.'

아마 지금 총을 사용하면 대륙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할 게 뻔했다.

머리가 공포에 잠식당해 어지러운 와중에도 김재환은 억지로 머리를 굴렸다.

만약 여기서 져서 저 악귀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아카데미까지 뺏겼다는 이야기가 아버지에게 들어가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 남자는 자신의 혈육에게도 가차 없으니까.

차라리 총기로 상대를 죽이고 퇴학당하는 편이 그 남자에게는 점수가 높을 것이다.

결심을 굳힌 김재환은 주머니에서 총기를 꺼냈다.

많은 값을 지불하고 산 총이다.

효과도 이미 확인했고­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빗나갈 일도 없었다.

김재환은 천천히 숨을 죽이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악귀를 쳐다봤다.

후­

살짝 흐트러진 숨을 가라앉혔다.

빨갱이들은 피를 뿌리면서 전부 쓰러져있었다.

물론 우리 측도 나를 제외하고는 이지수와 천오밖에는 서 있지 못했지만.

이제 남은 빨갱이는 저번에 봤던 뱀처럼 생긴 놈이었다.

녀석은 빨갱이들이 다 쓰러져 갈 동안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휘관의 기질을 타고난 건가?

"김재환 동무 다 끝났습네다. 저희의 혁명이 더 강했습네다."

피 칠갑인 상태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서 있는 이지수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반면 천오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상태로 그저 내 옷깃을 잡고 있었다.

"...끝나지 않았다!!!"

뱀처럼 생긴 놈이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렀다.

결국 끝까지 가야 정신을 차리는 놈인가 보네.

빨리 끝내고 쉬러 갈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지독한 새끼­ 이것도 맞고 살 수 있을까!!!"

대뜸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 녀석이 희한한 물건으로 나를 가리켰다.

뭐지 저건 시발?

지팡이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처음 보는 물건에 나는 순간적으로 멈췄다.

"동무­! 안 됩네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런 싸움에서 순간은 꽤 큰 시간이었다.

탕­!

입을 질끈 깨문 녀석이 손가락을 움직였고 꽤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앞으로 뛰어든 이지수가 어깨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판단이 잘 안 되었다.

본능적으로 쓰러지는 이지수를 받아 안으며 기운을 억지로 최대한 빠르게 돌렸다.

억지로 움직인 반동으로 실핏줄이 터져 눈 앞이 붉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기운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익!!! 반동 분자가 끝까지!!!"

그사이 뱀처럼 생긴 녀석이 다시금 손가락을 움직였고­

탕­ 탕­ 탕­

큰 소음이 울려 퍼졌다.

퍽­

전과는 달리 무언가에 막혔다.

옆을 보자 천오의 오른손이 분리되어 그 사이로 잔뜩 갈라져 나온 철 같은 것들이 내 앞을 막고 있었다.

무수히 갈라져 나온 철들은 작은 소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은 천오의 눈에는 기하학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탕­ 탕­ 탕­

이어 소리가 또 들렸지만, 천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막아냈다.

"상태 위급. 응급처치 시작."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천오의 입에서 나왔다.

천오의 왼손이 갈라지더니 정체 모를 철들이 나와서 내 품에 안겨 있는 이지수의 상처 부위로 다가왔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쓰러진 이지수가 먼저였기 때문에 나는 천오가 보기 편하도록 이지수를 들었다.

"관통 상태 아님. 총알을 빼내는 과정 필요 현재 불가능. 상처 봉합. 후에 전문의 치료 필요."

천오에게서 나온 얇은 철의 끝에서 실 같은 것들이 나오더니 이지수의 상처를 꿰맸다.

천오는 짧은 시간 안에 이지수의 상처를 봉합하고 그 위를 불로 지졌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지 이지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지만, 내가 억지로 못 움직이게 잡았다.

탁­

"아...아니야­ 내가 원한 건.. 반동 분자가 아니라고!!"

뱀처럼 생긴 사내가 손에 든 물건을 땅에 떨어뜨리고 뒷걸음질 쳤다.

저 개새끼.

이따 보자 시발.

어차피 옥상이라 녀석이 도망갈 장소도 없었다.

"동무­ 괜찮습네까?"

다시 정신을 차린 이지수가 희미하게 뜬 눈으로 내게 물었다.

병신 같네 진짜.

그 모습에 입 끝까지 욕지기가 차올랐다.

어차피 내가 맞았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프기는 했겠지만, 나는 자가 치료도 가능하니까.

분명 이 머저리도 아까 내가 다치고 스스로 회복하는 모습을 봤을 텐데.

"...그래"

그렇다고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한테 욕을 할 수는 없었다.

"다행입네다­ 그럼 혁명은..."

힘없는 목소리로 이지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치료된 거야?"

이지수의 멍청한 물음을 무시하고 천오에게 물었다.

"과다출혈,총상,총알 내부 존재,위험한 상태."

무표정인 천오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럼 성당으로 가면 되나?"

아마 안드레아라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의 수술 필요."

내 물음에 천오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치료와 수술의 차이는 잘 몰랐지만, 천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신뢰가 가는 소녀였다.

"이 개같은 제국 놈들­!!!"

어느새 난간에 올라간 녀석이 다시금 소리쳤다.

뭐야 시발 거기를 왜 올라가 있어.

순간 나는 녀석이 땅으로 뛰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높이가 높기는 했지만, 대륙 아카데미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라면 기운을 사용해 다리 부숴지는 정도로 퉁칠 수 있을테니.

어떻게 보면 현명한 판단이기도 했다.

나는 녀석에게 최대한 고통을 줄 생각이었으니까.

"야­ 잠깐 내려와 봐. 거기 위험하다? 너 시발 삐끗하면 목숨 나갈 수도 있어!"

다급하게 난간에 서서 욕지기를 뱉는 녀석을 말렸다.

"닥쳐! 이 악마 같은 놈!!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나를 잡아 뼈 하나 남기지 않고 분지르려는 네 속셈을!!"

녀석이 난간에서 흔들거리며 내게 소리쳤다.

"아니. 다 분지르지는 않고 몇 개는 남겨둘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녀석을 달래기 위해 황급히 말을 이었다.

"닥쳐라! 네 놈한테 맞을 바에야 뛰어내려서­ 으응? 으아아아악!!!"

내게 다시금 악을 지르던 녀석이 무언가에 끌려간 것처럼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연기하다니.

연기력이 일품이네 이 녀석.

어차피 녀석을 다시 볼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쥐어패면 되니까­

퍼어억!!!

무언가가 터지는 불길한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듣는 사람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소리였다.

애미 시발.

이 병신 새끼.

이지수를 안은 상태로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난간으로 달렸다.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보니 흉하게 머리가 터져 붉은 피로 바닥을 적시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녀석의 머리는 형체조차 남지 않았고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시발 대륙 아카데미 학생이 8층에서 뛰어내렸다고 죽어­

개 병신 같은 새끼네 정말.

욕지기를 내뱉으며 난간에서 떨어졌다.

"즉사. 회생 불가능"

내 옆에 따라온 천오가 중얼거렸다.

그런 건 굳이 말 안 해도 알아 시발.

"...설마 김재환 동무 죽었습네까?"

내 반응을 본 이지수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병신 새끼가 발을 헛디뎠나 본데. 아예 머리가 박살 났어. 성녀가 와도 치료 못할 거야 저건."

그런 이지수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우리 큰일 났습네다 동무­"

내 대답을 들은 이지수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큰일 난 건 저런 머저리 새끼를 키운 저 새끼 부모가­"

녀석을 생각하자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김재환 동무가 공화국 국가 주석의 첫째 아들입네다!!!"

그런 내 말을 이지수가 자르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국가 주석?

그게 뭔데.

의문에 찬 내 표정을 본 이지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국으로 치면... 황태자가 방금 죽은 겁네다."

공포에 질려 하얘진 이지수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말했다.

애미 시발.

저 머저리가 공화국의 황태자라고?

지랄 하지 마. 쟤 개 병신인데.

그런 좆같은 장난 치지마.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꿀꺽 침을 삼킨 이지수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지수의 진지한 표정에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포에 덜덜 떨고 있는 이지수의 몸은 연기라기에는 너무 현실적이었으니까.

"그... 드숀이 그랬는데?"

말도 안 되게 꼬인 상황에 습관적으로 변명이 나왔다.

드숀 개새끼야 왜 그랬어 시발.

머저리 드숀­

***

"어때 조슈아?! 이 옷이 어울려? 이게 더 이쁜가?"

조슈아는 하루 종일 자신을 붙잡고 옷을 물어보는 케이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돌아오고 나서부터 밥도 먹지 않고 계속 쭉 저런 상태였다.

"황녀님은 무엇을 입어도 다 잘 어울리십니다."

조슈아는 진심을 듬뿍 담아서 말했다.

가슴도 크고 얼굴도 미인인 이 황녀는 뭘 입어도 다 잘 어울렸다.

아마 거지 옷을 입혀둬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볼 게 분명했다.

"그런 성의 없는 대답 하지 말라고!! 멍청한 조슈아!! 진지하다니까!!! 이따 만날 때 무슨 옷 입어야 할지!!"

조슈아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진 케이트가 소리치더니 다시금 옷을 꺼냈다.

조슈아는 방 안 가득히 널려있는 옷들을 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옷을 몇 벌이나 가져오신 것인지.

"그럼 이건 어때? 이게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하던데..."

흉하게 망사로 된 옷을 입은 케이트가 몸을 배배 꼬며 물었다.

아니 애초에 옷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중요 부위만 가린 상태였다.

"황녀님!!! 제발 체통을!!!"

조슈아는 다급히 옆에 있는 천을 들어 올려 케이트의 몸을 가렸다.

"하지만 젊은것들이 너무 많단 말이야!!! 그럼 나는 농익은 노련미로­"

뾰로퉁한 표정을 지은 케이트가 소리치면서 천을 걷어찼다.

"황녀님도 충분히 어립니다!!"

조슈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런 케이트를 다시금 가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고르는 케이트를 보며 조슈아는 가슴이 쓰라렸다.

황녀인 케이트의 결말은 뻔했다.

가장 쓸모 있고 효과적인 정치적 도구.

지금의 행동은 결말이 정해져 있는 불장난일 뿐이다.

분명 황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억지로 외면하고 있는 거겠지.

"제 생각에는 분홍색 옷이 황녀님에게는 제일 잘 어울립니다­"

조슈아는 억지로 쓰린 가슴을 무시하며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렇지?! 황녀 하면 분홍색이지!!!"

조슈아의 말에 케이트가 활짝 웃었다.

"...읍"

그때 케이트의 그림자가 잠깐 일렁였고­

어느새 나타난 올가가 창을 케이트의 그림자에 거침없이 찔러넣었다.

"야! 너!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말랬지!!! 무슨 애가 고양이도 아니고 어디 숨어 있다가 자꾸 나오는 거야!!"

방 안에는 그런 올가를 타박하는 케이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