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혁명적인 남자.
* * *
화면 안에서 벌어진 일을 보자마자 최지수는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해 움직였다.
화면 앞에 놓인 비상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최지수는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에 동작을 멈췄다.
온몸이 굳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최지수는 이를 질끈 깨물고 기운의 근원지를 향해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제국 제일검이 보였다.
그 허허로운 표정에 잠시 상대가 제국 제일검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방안은 순식간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제국 제일검을 응시했다.
으득
"...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제국 제일검."
최지수는 몸을 묶고 있는 힘을 풀기 위해 악착같이 힘을 끌어올렸다.
실핏줄이 터졌는지 시야가 잠시 붉어졌지만, 굳은 몸은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있게.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를 죽이는 취미는 없으니."
제국 제일검의 말에 옆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하시는 행동의 의미를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말을 할 때마다 입안에 모래를 문 것처럼 텁텁했지만, 최지수는 억지로 말을 뱉어냈다.
"모를 리가 있나 멍청한 공화국 놈이 자살한 것을 우리 아이한테 뒤집어 씌우는 걸 막는 거지. 공화국 놈들이 하는 짓이야 뻔하지 않나?"
제국 제일검이 빙글 웃으며 최지수를 쳐다봤다.
그 표정에 최지수는 속이 꿰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석의 아들이 죽었다.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지금 비상벨을 울리지 않으면 아니 올리더라도 자신의 목은 효수가 되어 정중앙에 걸리겠지.
그래도 보고를 올리면 자신의 가족까지는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런 자네를 막았다. 자네는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네."
말을 마친 제국 제일검이 다시 여유롭게 맥주를 마셨다.
"크흠 영감님 일단은 말이야. 여기는 공화국이잖아. 이러면 우리까지 곤란하게 된다고?"
마주 맥주잔을 들고 있던 헤르만이 큼큼거리며 기운을 일으켰다.
웅웅 거리며 헤르만에게서 묵직한 기운이 일어났다.
"나는 저런 애새끼들 똥 닦아 주다가 공화국에게 쫓기기는 싫다고. 영감도 알잖아? 공화국 놈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여유롭게 말하면서 헤르만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의자 옆에 세워둔 도끼 자루를 잡았다.
"자네라고 예외는 없네. 맥주는 고맙지만 움직이지 말게."
헤르만은 자신을 굳은 얼굴로 보는 제국 제일검을 보며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아아 이 감각이군
최상급 단계에 오르며 한동안 걷지 못했던 사선.
그 사선들 중에 제일 뚜렷한 사선이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존재감을 뽐내고 온몸의 근육이 생각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충동질했다.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는 늘 헤르만을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헤르만"
옆에서 시타리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헤르만을 말렸지만, 온 신경을 제국 제일검에게 집중한 헤르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미친 새끼
시타리를 입술을 깨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흐음... 젊다는 건 좋지만, 객기와 용기는 구분하게나."
천천히 헤르만의 기세가 올라가는 걸 보며 제국 제일검이 인상을 찡그렸다.
"크하하. 영감님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면 내 심정이 어떤지 알 텐데?"
마침내 도끼 자루를 잡은 헤르만이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무겁고 움직일 때마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감각이 헤르만을 압박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몸은 그런 것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으니.
"미안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적수가 없었다네."
기세를 잔뜩 뿜어내는 헤르만을 보면서 제국 제일검이 혀를 찼다.
쯧
자신이 일선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자신과 맞먹으려 하다니.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말이야.
하여튼 요즘 것들은
어르신 공경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제국 제일검님의 지위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제국 제일검님이 행하시는 지금 이 행동은 제국이 공화국을 적대한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지수는 사시 나무 떨듯 떨리는 몸을 애써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제국은 그럴 여유가 없잖아?
"음? 크할할할할!"
최지수의 말을 들은 제국 제일검이 정말 재밌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실성했나 생각할 정도로 크고 길게 웃었다.
"아아 정말 오랜만에 크게 웃었어. 근데 젊은이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군."
제국 제일검이 남은 맥주를 한숨에 다 마시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제국은 단 한 번도 전쟁을 두려워한 적 없네. 젊은이."
제국 제일검이 사냥감 앞의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오랜만이군
이런 깽판은.
공화국 한복판에서 난장판을 피우고 말이야.
정말 호랑 말코 같은 녀석 때문에 이 나이에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만.
제국 제일검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상상하며 오랜만에 재미를 느꼈다.
"지금부터 이 자리에 있는 누구든 움직이면 죽네."
제국 제일검이 선언했다.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목에 검이 걸려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크하하하 죽음이라!!! 내 제일 친한 친구의 이름이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헤르만 혼자 도끼 자루를 고쳐 잡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사선은 언제나 자석처럼 헤르만을 끌어당겼다.
왜 이딴 무식한 남자를 사랑해서
시타리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검을 고쳐잡았다.
***
지이잉 지잉
위기를 강조하듯이 낮은 기타음이 울려 퍼지며
"아아 어머니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제는 잔뜩 쉬어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노래했다.
개 좆같은 노래 부르네 시발.
눈을 부라리자 녀석이 찔끔 놀라며 노래를 멈췄다.
아니 시발 지가 멋대로 깝치다가 떨어져 죽은 건데, 왜 내가 죽였데 시발.
"일단 밖으로 도망가야 합네다!! 여기 있다가 잡히면 재판조차 없이 사형될 게 뻔합네다!! 동무!!!"
안색이 곧 죽을 사람처럼 좋지 않은 이지수가 내게 소리쳤다.
애미 시발.
왜 항상 나한테만 지랄이야.
뭐든 나만 끼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 신물이 났다.
지금도 그냥 퇴학만 당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공화국에게 쫓기게 생겼다.
나는 분명 선량한 의도였지만, 항상 상황은 좆같은 쪽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곱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지 시발.
이를 질끈 깨물고 이지수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안았다.
피를 제법 흘려서인지 이지수가 전보다 가벼웠다.
"시발 지가 좆지랄 하다가 혼자 떨어진 건데"
이지수가 내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 쓰러져 있는 녀석의 옷을 뺏어서 둘둘 묶었다.
"...윽"
이지수의 신음은 무시했다.
한참을 꼼꼼하게 묶자 마치 가방처럼 이지수가 내게 딱 묶였다.
약간은 서늘한 이지수의 체온이 느껴졌다.
"아카데미 밖으로 가면 혁명군 지부가 있습네다. 그곳으로 가면"
이지수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시발 이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도망가라는 거야.
학생 중에 나를 막을 놈은 없었지만, 교수급으로 넘어가면 그 수준이 달랐다.
대륙 아카데미라는 이름답게 각지에서 실력자들을 모았는지 교수진 모두가 최상급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 상태로는 최상급 한명도 힘들었다. 아니 사실 상태가 좋더라도 최상급은 힘들었다.
도망가다가 교수들 중 누구라도 마주치는 순간 끝이었다.
문득 루나한테 오지 말라고 했던 게 후회됐다.
루나가 있었으면 그냥 손잡고 제국으로 이동하면 되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잡혀줄 수는 없었다.
백도 가문도 없는 내가 잡히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으니까.
확률이 0에 가깝더라도 조금이라도 있으면 던져야지.
후
천천히 다리를 풀며 기운을 돌렸다.
기운들이 내 의지에 맞춰 온몸을 돌며 근육을 풀어줬다.
옆에 있는 천오가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고개를 돌리자 고개를 숙인 상태로 힐끗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이 보였다.
얘도 데리고 가야 하나.
아까 보니까 꽤 쓸만한 거 같은데.
"너 달리기 잘하냐?"
천오에게 묻자 녀석이 다시금 고개를 푹 숙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본인이 잘한다니까.
알아서 쫓아오겠지.
뛰어내리기 위해 옥상의 난간에 섰다.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절은 몸을 식혀줬다.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날 줄 몰랐는데 말이야.
하여튼 좆같은 아카데미 시발.
아래를 보자 생각보다 높은 높이에 살짝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모든것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파괴적인 존재감이 아카데미 한편에서 느껴졌다.
내게는 익숙한 존재감이었다.
검강을 만들고 미친 노망난 노인네를 죽이겠다고 찾아간 날 느꼈으니까.
미친 노망난 노인네 시발.
쓸데없이 존나 정정해.
배에 생긴 큼지막한 흉터는 그날 생겼다.
'살아라'
그 존재감이 내게 독촉하는 것 같았다.
"미친 노망난 노인네 시발!!"
입 끝까지 나온 욕지기를 거칠게 뱉으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소름 끼칠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빠른 속도로 땅에 가까워졌다.
이지수가 떨어지지 않게 꽉 붙잡은 다음 땅에 닿기 전 기운을 발 쪽으로 돌려 충격을 완화했다.
쾅
다리가 살짝 저렸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옆에 있는 터진 토마토가 보였다.
병신 새끼 이 쉬운 걸 못해서.
으휴 시발 한심한 새끼.
저런 게 황태자라니 공화국의 미래도 암울했다.
슈우웅
천오가 발에서 불을 뿜어내며 소리도 없이 내 옆에 안착했다.
그리고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는 것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문득 천오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의문을 풀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팡팡
이것도 퇴학인가.
기침처럼 터진 웃음을 뱉으며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발 쪽에서 기운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쭉쭉 나아갔다.
"어디 가는 멈!춰!라!"
앞쪽에서 나를 막는 베레모를 쓴 녀석의 얼굴에 발차기를 먹여 조용히 시키고 지나쳤다.
녀석은 얼굴이 뭉개지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손을 움직여 호루라기를 울렸다.
"그 피는 뭡네까!! 멈추시오 동무!!!"
그 이후로도 베레모를 쓴 녀석들이 자꾸만 내 앞을 막았다.
그리고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점점 더 늘었다.
"멈추시오!! 멈추지 않으면... 끄아아아악!!!!"
검 손잡이를 잡아 뽑으며 내게 검을 휘두르는 녀석의 팔을 날렸다.
녀석의 쏟아지는 피와 고통이 담긴 신음에 나머지 녀석들이 잠깐 주춤거렸다.
역시 폭력은 늘 제일 빠른 대화 수단이다.
팔 잘린 녀석을 발로 차 녀석들에게 밀어 넣으며 땅을 박찼다.
녀석들이 피투성이인 녀석을 받으며 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나는 아카데미의 정문을 넘어갈 수 있었다.
곳곳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나를 압박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멈추는 순간 둘러싸일 게 분명했으니까.
내 다리가 멈추는 순간 끝날 것이다.
"저...저쪽으로"
이지수가 가리킨 방향에 따라서 움직였다.
어느새 우리는 공화국 특유의 회색 건물이 잔뜩 밀집된 곳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좁은 골목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나는 이제 방향을 가늠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이지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자꾸만 앞을 막는 베레모 녀석들을 처리했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꾀죄죄한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들이 제대로 못 먹고 사는지 죄다 삐쩍 마른 상태였다.
"과자라도 사먹어라 시발. 이건 에이든이 준거야. 에이든!"
익숙한 아이들의 몰골에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전부 꺼내 던져주고 지나쳤다.
와아아아 에이든!!
뒤에서 아이들의 기쁨 섞인 환호성이 들렸다.
이러면 나도 천국 갈 수 있겠지?
이렇게 착한데 말이야.
대가를 생각하고 베푼 행동은 선의가 아니라고 하지.
뭐래 시발 애들 좋아하는 거 못 봤어?
"간나 새끼! 크하아악"
앞 골목에서 험상궂게 생긴 녀석들이 튀어나와 내게 검을 휘둘렀다.
그 검에 달린 기운이 제법 되었기 때문에 무시하지 못하고 검을 뽑아 녀석의 검을 흘리고 베어냈다.
녀석의 뜨거운 피가 내 몸을 적시며 다시금 내 정신을 깨웠다.
점점 상대하는 녀석들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었다.
공화국의 지휘 체계가 쓸데없이 효율적이었다.
어떻게 이 좆같이 좁고 복잡한 골목에서 나를 찾아내는 거지.
"으윽"
앞에 있는 녀석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으며 녀석의 머리채를 잡아 옆에 있는 벽에 박아 넣었다.
쿠웅 벽에 작은 균열이 생기며 녀석의 얼굴이 보기 좋게 박혔다.
나는 내 작품에 만족할 틈도 없이 다음 녀석의 검을 피해야 했다.
누군가를 안고 싸운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자꾸만 몸이 걸리고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여자에게 검을 찔러 넣다니! 치사한 새끼
이지수 쪽으로 검을 찌르는 녀석의 검을 왼손을 내밀어 잡고 오른손에 들린 검으로는 녀석의 목을 찔렀다.
으득
왼손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이를 악물며 참았다.
검을 뽑자 녀석이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씹창이 난 왼손에 신성력을 돌리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이제 걸음을 옮긴다는 자각조차 되지 않았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정신이 자꾸만 흐트러졌다.
위쪽에 빨래인듯 널린 수건 중 하나를 쥐어 왼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
뒤에서는 고개를 푹 숙인 천오가 열심히 다리를 움직여 쫓아오고 있었다.
거칠어진 내 숨소리에 비해 천오의 숨소리는 일정했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다행이었다. 짐 덩어리가 두 개였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테니까.
"여기서 왼쪽"
이지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에이든의 피를 보며 신음을 삼켰다.
에이든의 뜨거운 피가 이지수의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에이든은 정말 맹수처럼 거칠게 움직였다.
강하기도 했지만, 그 강함보다 삶에 대한 뜨거운 욕구가 이지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열을 뿜어냈지만, 에이든은 절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든 앞길을 막는다면 주저 없이 검을 찔러넣었다.
지금까지 몇 명의 목숨을 에이든이 뺏었는지 중간부터 세지도 않았지만, 에이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혁명
이지수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 남자는 혁명 그 자체였다.
에이든에게서는 혁명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그 옆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맡아질 정도로 짙게
"...다음 어디야"
에이든의 뜨거운 숨결이 이지수의 정신을 깨웠다.
"저... 저기 입네다!!"
이지수는 황급히 붉어진 얼굴을 숙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카데미 입학 전에 왔었던 혁명단의 지부
밖에서 보기에 수상할 정도로 두꺼운 문으로 된 건물 앞에 에이든이 섰다.
저 멀리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지독한 공화국의 전사들이 거리를 좁히며 점점 더 압박하고 있었다.
쾅쾅쾅!!
에이든이 두꺼운 쇠문을 주먹으로 거칠게 두드렸다.
그러자 잠깐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다시금 조용해졌다.
"여기 맞아?"
에이든이 인상을 찡그리며 이지수를 내려다봤다.
"저 이지수입네다!! 대륙 아카데미에 입학한"
에이든의 시선에 당황한 이지수가 황급히 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이지수의 목소리에 짧은 인기척이 들렸지만,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을 생각이다.
'혁명단은 절대로 동지를 버리지 않는다'
이지수는 혁명단의 첫 번째 원칙을 떠올렸다.
쾅쾅쾅
"이지수라잖아! 이지수 몰라?! 혁명단이라며! 이 개 좆같은 새끼들아!! 열어 시발!!!"
에이든이 다시금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이제는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
버림받았구나.
거칠게 욕지기를 내뱉는 에이든을 올려다보며 이지수는 깨달았다.
자신은 혁명단에게 버림 받았다.
가슴이 쓰리기는 했지만, 이지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공화국 쪽에서 자신들을 쫓고 있었으니까.
아마 자신을 받아주면 이쪽 지부를 포기해야 될 게 분명했다.
그러면 혁명이 좀 더 늦어지겠지.
"야 시발 여기 맞지?"
에이든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지수에게 물었다.
이지수가 그 질문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서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는 우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들렸다.
아마 곧 있으면 우리 위치까지 올 게 분명했다.
아무리 에이든이 강하다 해도 이 도시 안에 있는 모든 공화국 전사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점점 끝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죄송합"
자신이 에이든을 사지로 몬 것 아닐까?
이지수는 미안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시발 꽉 잡아라. 이 개 좆같은 새끼들이."
이지수의 말을 자른 에이든이 문에서 조금 떨어졌다.
이 남자는 포기하지 않구나.
이지수는 묘하게 뜨거운 느낌을 받으며 굳은 얼굴을 한 에이든을 올려다봤다.
잘생긴 것 같기도 해
이지수는 이런 급박한 순간에도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자신을 타박하며 다시금 에이든의 얼굴을 훔쳐봤다.
가까이 붙어있어 느껴지는 에이든의 단단한 몸에 이지수는 낯선 흥분을 느꼈다.
"애미 터진 새끼들"
에이든이 작게 중얼거리며 뒤쪽 벽에 뒷발을 고정했다.
쾅
잠깐 숨을 고른 에이든이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 속도가 주변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바뀔 정도로 빨랐다.
다가올 충격에 이지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쾅!!!!
문 앞에 도착한 에이든은 냉큼 두꺼운 문을 걷어찼다.
마치 성문처럼 두꺼운 문은 에이든의 거친 발차기에 구겨지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쿵
문이 바닥에 쓰러지며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이지수는 황급히 눈을 뜨고 주변을 확인했다.
건물 안에는 다양한 무기를 꼬나쥔 혁명단원들이 황망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눈빛에 이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애미 터진 새끼들이 노크 소리 안 들리냐?"
에이든이 눈을 잔뜩 부라리며 거침없이 말했다.
"푸하하하"
이지수는 에이든의 욕지기에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음에 피가 섞여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혁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