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28화 (128/233)

〈 128화 〉 살인자 드숀.

* * *

널찍한 회의장에 놓인 ㄷ자형 테이블 주변으로 사람들이 서둘러 앉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급하게 모든 사람이 모였다.

회의장에 작은 소란이 자리 잡고 그 사이로 서아가 들어왔다.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부드러운 표정이지만 서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서아의 말에 다들 하던 말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자리가 부족해 몇몇은 의자 뒤에 서 있었다.

"일단 너무 이른 시간에 깨워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해주세요."

서아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 김재환이 죽었다는 게 사실입네까!!"

그에 멀리 앉아있던 남자 하나가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김재환이 죽었다니 하늘이 저희를 돕는 게 분명합네다."

"패악질을 일삼던 놈 아닙네까? 벌을 받은 겁네다."

"그렇다고 해도 김익한 주석이 살아있는 이상..."

"그런데 김재환을 죽인 사람이 지금 우리 지부에 들어와 있다니­"

남자의 말과 동시에 조용해졌던 회의장이 떠들썩해졌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기대감과 공포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소란을 보면서 서아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조용!!! 조용하라고!!!"

서아와는 다르게 얼굴에 화가 잔뜩 떠오른 서윤이 크게 소리쳤다.

서윤의 외침에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들은 서윤의 심기를 거스르면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단은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부터 들어주세요."

으르렁거리는 서윤의 손을 작게 잡은 서아가 다시금 부드럽게 웃었다.

"크흠­ 죄송합네다."

처음으로 질문한 사내가 서윤의 눈치를 보며 헛기침을 했다.

"여러분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김재환이 죽었다는 것은 저희가 모시는 김두환 님의 서열이 한 단계 올라갔다는 것이니까요."

서아가 손을 흔들어 남자의 인사를 받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김재환이 죽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저희에게 전해주신 분은 에이든 님이라는 분으로 현재 우리 지부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서아가 말을 마치자 회의장 안에는 다시금 소란이 찾아왔지만, 다들 서윤이 두려운지 조용히 중얼거리기만 했다.

"드­숀이라는 분이 김재환을 죽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에이든 님은 그 드숀님의 밑에서 행동하시던 분이고요."

서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드­숑?!"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저는 들어봤습네다. 아카데미에서 악마로­"

"그나저나 김재환을 죽였다니 큰일 났군."

작은 소란이 다시금 회의장에 내려앉고­

"서아 님의 능력으로 확인한 사실입니까?!"

그중 한 사내가 손을 들고 물었다.

회의장이 조용해지며 서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예. 제 능력으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에이든 님의 말은 진실이 분명합니다. 드숀이라는 분이 김재환을 죽였습니다."

왠지 얼굴이 붉어진 서아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개새끼­

그런 서아를 보며 서윤이 조용히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그 에이든이라는 사람을 공화국 측에서 쫓고 있을 텐데­ 어찌하여 받아 주신 겁네까?!!"

이번에는 잔뜩 공포에 절은 목소리가 의문을 제기했다.

"에이든 님은­ 저희에게 필요한 무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최상급에 가까운 무력을 지닌 분이 저희 혁명단에 들어온다는 것을 막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지부는 이미 에이든 님이 들어오신 순간부터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지부보다 에이든 님의 그 무력이 저희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서아가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말을 마쳤다.

으득­

에이든이라는 이름이 다시금 나오자 서윤이 살벌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그런 서윤을 보며 서아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애초에 남자라면 누구든 증오하는 서윤이었는데 처음부터 그런 불상사까지 발생했으니­

앞으로 혁명단이 꽤 시끄러워질 게 분명했다.

'명품 엉덩이­'

생각이 에이든까지 닿은 서아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풀었다.

"서아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시끄러운 회의장 가운데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깔끔한 인상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최상급에 준하는 무력이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포섭하는 게 맞습네다!"

"그렇습네다! 그분이 따로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줘야 합네다!"

사내의 말에 회의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서아의 말을 따라 행동했을 때 손해 본 적이 없었다.

거짓 판별 능력과 무력 파악 능력은 지금까지 집단을 이끄는데, 유용하게 작용했다.

"그럼 일단 준비가 끝나면 바로 비상문을 통해 이 도시에서 나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준비를 끝내주세요."

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굳혔다.

언제 공화국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이 지부에서 벗어나야 했다.

***

더러움을 씻어내자 저절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공화국이 뭔 대수라고­ 그 강대하던 제국조차 수도가 씹창이 나지 않았는가?

어떻게 하다 보면 무너지겠지.

어차피 기다리다 보면 루나가 찾아올 수도 있고.

그러면 그냥 루나의 손을 잡고 뿅­ 해도 되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고 밖으로 나오자 곱게 접어있는 옷이 보였다.

간편한 바지와 티였다.

서아가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한 거로 봐서는 서아의 취향 같았다.

옷을 입고 옆에 뒀던 검까지 허리춤에 챙겼다.

­ 좋은 시간 보냈나?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지.

루나검의 질문에 서윤의 탐스러운 몸이 다시금 떠올랐다.

욕실에서 나온 나는 일단 이지수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길이 헷갈리기는 했지만, 무사히 이지수를 맡긴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제 수술이 끝났는지 뒷정리 하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왔는가­ 신수가 훤해졌군 기래."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은 사내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예 좋더군요. 여러모로."

사내의 말을 대충 대답하며 이지수를 확인했다.

안색이 나쁘기는 했지만, 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

그 모습에 사내의 수술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다. 지금은 흘린 피가 많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뿐이지만."

사내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으음­?"

이지수를 확인하던 내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분명 전에는 가슴이 하나도 없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비키와 버금갈 정도로 큼지막한 게 가슴 춤에 달려 있었다.

"수술하면서 가슴도 키우신 겁니까? 제법­"

이 사내는 보지 마법사에 비견될 정도의 가슴 확대 수술사 인가?

"그냥 수술하는데 거추장스러워서 저 아이가 가리고 있던 붕대를 푼 것뿐이네. 내가 저 아이의 가슴을 왜 키우겠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잔뜩 인상을 구기며 나를 쳐다본 사내가 말했다.

왜 저 바람직한 것을 가리고 다녔지?

문득 이지수를 살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가슴이면 살릴만한 보람이 충분했다.

"일단 수술은 잘 끝났으니 안심해도 되네."

"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사내에게 감사를 표했다.

"...크흠­"

사내가 헛기침하며 내 시선을 외면했다.

옆에서 누가 내 옷깃을 당기길래 돌아보니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는 천오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얘가 있었지.

"천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방전된 것 같네. 꽤 쓸만한 꼬맹이더군."

내 질문에 사내가 대답했다.

"방전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니까 태양광으로도 충전되는 것 같으니 어디 볕 잘 드는 곳에 널어두면 될 걸세."

말을 마친 사내가 옷을 털며 방을 나갔다.

천오를 돌아보니 사내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사내의 말에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많았지만, 굳이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대충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편하니까.

모자란 머리로 살다보니 깨달은 이치였다.

이지수는 정신을 차릴 때까지 여기 두면 될 것 같고 천오만 어디 해 잘 드는 곳에 두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쭈그려 앉아 천오를 안아 올렸다.

전에 철 같은 게 튀어나오는 걸 봐서 무거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웠다.

덩치보다는 무거웠지만, 그냥 비키 정도의 무게였다.

내 품에 안긴 천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디 동네에서 사람 손 탄 고양이를 안은 기분이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이지수를 한번 보고 방을 나왔다.

건물 구조는 모르기 때문에 대충 창문을 따라 움직여서 햇빛이 제일 잘 들어오는 곳으로 갔다.

그중에서 그나마 땅에 뭔가가 깔린 곳에 천오를 부드럽게 놓고 그 옆에 나도 누웠다.

그러고 보니 난리 통에 나도 자지 못했다.

기운을 돌리며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며칠은 잠을 안 자더라도 몸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 미친 노인네 때문에 오 일 동안 잠을 못 잔적도 있으니까.

"왜 이런 곳에서 자고 있어요?"

부드러운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따뜻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는 서아가 보였다.

잠에서 깨자마자 이런 미인의 미소를 보다니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게 분명했다.

"아­ 그냥 해가 잘 들어서요."

옆을 보니 어느새 일어난 천오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충전이란 게 무사히 끝난 것 같았다.

"풋­ 무슨 강아지 같아요."

서아가 작게 입을 가리며 웃었다.

사람한테 개 같다는 건 욕이 분명했지만, 미인의 입에서 나오니 칭찬으로 들렸다.

역시 사람한테는 외형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만약 서아가 남자였으면 이미 나한테 쥐어 터져서 땅에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크흠­ 뭐 종종 듣는 소리예요."

굳은 몸을 풀며 대답했다.

바닥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지만, 기운을 몇 번 돌리자 다시 괜찮아졌다.

"정말 에이든 님은 재밌는 분이시네요."

서아가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금 작게 웃었다.

뭐가 재밌다는 거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굳이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저는 이제 뭐 하면 됩니까? 귀족 목 자르기? 방화? 테러?"

이제 혁명단에 들어왔으니 하루라도 빨리 공화국을 무너뜨려야지.

"예?!! 아뇨아뇨!! 저희는 그런 살벌한 짓들은 하지 않아요!! 물론 악덕 귀족들을 처벌하기는 하지만­ 인도적인 절차에 따라..."

내 물음에 작게 비명을 지른 서아가 손을 황급히 흔들며 대답했다.

혁명단이 저것들을 안 하면 도대체 뭘 한다는 거지?

저 세 개가 대표적인 혁명단의 업적들 아닌가.

내 생각보다 더 답답한 조직인 것 같았다.

"그럼 도대체 뭘...?"

답답함에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을 찾았다.

아 아까 버린 바지에 뒀었지 시발.

"저희는 인도적인 절차에 따라서­ 혁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들이 잔악무도하다고 저희까지 손에 피를 묻히면 똑같은 사람이 되잖아요? 심지어 지금은 대륙에 튀어나온 악마들 때문에 국민들이 더 힘들어하고 있어서 그들을 구제하는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서아가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서아 씨는 손도 아름답네요."

서아의 부드러운 손을 마주 잡으며 쓰다듬었다.

이들의 나약한 방식으로는 백 년이 걸려도 이 녀석들은 혁명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지금도 공화 국민들이 잔혹한 윗놈들의 횡포에 못 이겨 고통 속에 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놈들은 글러 먹었다.

내가 올바른 방법으로 고쳐줘야겠다.

좀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화국이 최대한 빠르게 무너지게.

혁명적으로.

"예에에?! 아! 일단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다시금 얼굴이 시뻘게지는 서아를 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근데 손 진짜 부드럽네.

검 같은 건 한 번도 안 잡아본 건가?

그 촉감에 나도 모르게 손을 자꾸 움직였다.

"아앗!!! 왜 깍지를 끼시는 거죠?! 에이든 님! 너무 빨라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서아가 내게 잡힌 손을 꼼지락거리며 소리쳤다.

***

겨우 진정한 서아가 이 지부에서 벗어날 계획이라는 걸 알려줬다.

그에 나는 내 몫의 물품들을 챙겨서 보급받은 가방에 넣었다.

대충 식량이랑 옷가지들이었다.

천오도 자기 몫의 가방을 챙겼지만, 그 조그마한 덩치에 비해 가방이 커 우스운 모습이 됐다.

하지만 힘은 충분한지 넘어지지는 않았다.

"동무! 고맙습네다!!"

다 쑤셔 넣은 가방을 어깨에 메는데 옆에서 이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진 거야?"

고개를 돌리니 이지수가 시원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다.

"예! 몸 상태가 혁명적으로 좋습네다!!"

이지수가 과장되게 몸을 움직이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런 이지수의 가슴은 내가 봤을 때처럼 큼지막한 상태였기에 이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한 모습이었다.

"아...! 이건 그러니까­ 붕대가 없어서 못 묶었습네다!"

내 시선을 눈치챈 이지수가 황급히 손을 내리며 말했다.

"훨씬 보기 좋은데? 그냥 묶고 다니지 마."

가방을 어깨에 메니 제법 무게가 나갔다.

"아... 정말입네까? 좀 둔해 보이고 뚱뚱해 보이지 않습네까?"

내 말에 얼굴을 살짝 붉힌 이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참 혁명적인 가슴이야. 계속 보고 싶은걸­"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방이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했다.

"혁명적인 가슴... 알겠습네다!! 안 묶고 다니겠습네다! 에이든 동무가 원한다면 제 가슴을 언제든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이지수가 가슴을 자랑스럽게 내밀면서 중얼거렸다.

"자! 다들 준비되셨으면 출발하겠습니다!"

그런 이지수의 말은 멀리서 소리치는 서아의 목소리에 묻혔다.

"응? 뭐라고?"

"아­ 아닙네다! 서둘러 가봅시다. 동무!"

이지수가 과장되게 뒤돌며 소리쳤다.

"무거우면 말해 들어줄 테니까."

옆에서 내 옷깃을 잡고 걷는 천오를 향해 말했다.

내 말에 천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니 건물 안쪽 벽에 철문이 있었다.

철문 안쪽에 있는 구덩이로 사람들이 서둘러 내려가고 있었다.

서아는 먼저 출발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우리 차례가 됐다.

이지수가 먼저 내려가고 그다음 나 그리고 천오 순으로 움직였다.

아래는 꽤 공을 들여 만든 토굴이었다.

토굴 특유의 짙은 흙냄새와 축축한 내음이 물씬 풍겼다.

바닥에는 지나다니던 벌레가 발에 밟혀서 죽었는지, 죽은 벌레들이 있었다.

토굴의 높이가 생각보다 낮아서 나는 목을 숙이고 걸어야 했다.

뒤를 돌아보니 천오는 아무 무리 없이 걷고 있었다.

마치 패잔병이 적들을 피해 몰래 도망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무가 혁명단에 들어오다니 정말 혁명적으로 좋습네다!"

앞에 가던 이지수가 나를 슬쩍 돌아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래. 나도 너랑 같이 혁명단 되니까 좋네."

이지수의 말에 문득 내가 혁명단에 가입한 게 새삼 상기됐다.

애미 시발.

제국민인 내가 공화국 혁명단이라니.

개 병신 같잖아 이거.

"저저도 좋습네다!!"

이지수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 앞에 가던 사람들도 놀라 뒤를 돌아보고 토굴 천장에서는 흙이 조금 떨어졌다.

"알았어. 토굴이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무너질 것 같네 시발 이거."

나는 그런 이지수를 다급히 말렸다.

"아­ 죄송합네다! 너무 혁명적이라 그만! 그래도 저도 동무랑 같은 혁명단이 돼서 정말 좋습네다!"

화들짝 놀라 자신의 입을 막았던 이지수가 다시금 시원하게 웃었다.

이지수는 전에도 이쁜 얼굴이었지만, 무식하게 큰 가슴이 생긴 상태에서 웃으니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역시 여자는 가슴이지.

"그래.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는 미친 노망난 노인네도 없으니.

대륙 아카데미보다는 낫겠지.

"예! 동무! 저만 믿으십쇼! 혁명!"

"으악! 똑바로 안 걸어?!"

잔뜩 기합이 들어간 이지수가 뒷걸음질 치다가 앞에 있던 사내를 밀어 사내가 넘어졌다.

"죄송합네다!!"

당황한 이지수가 황급히 그런 사내를 일으켜 세웠다.

옆에서 옷깃을 잡아당겨 고개를 돌려보니 멍한 눈에 잔뜩 힘을 준 천오가 보였다.

천오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입을 뻐끔뻐끔하고 있었다.

"너도 좋다고?"

이제는 천오에게 익숙해진 나는 천오의 뜻을 대충 짐작했다.

내 말에 천오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나는 그런 천오의 머리를 습관적으로 쓰다듬으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위에서 떨어진 흙이 내 머리를 더럽혔다.

먼지가 잔뜩 묻은 머리를 털면서 욕지기를 뱉었다.

아­ 드숀 때문에 이게 뭔 개고생이야 시발.

***

"빨리빨리 가라우!! 간나 새끼!!!"

거친 사내의 목소리에 잔뜩 움츠러든 드숀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엘프 둘을 끼고 누워 있었는데.

드숀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은 다 털리고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팔과 발에는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쇠사슬이 묶여 있었다.

왜 나를 아카데미에서 퇴학이 아니라 감옥으로 끌고 가는 건데?

에이든 이 새끼는 뭘 어떻게 했길래.

내가 국가 주석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거야.

드숀은 억울함에 입을 열고 싶었지만, 이미 아까 입을 열었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사내들을 우악스럽게 드숀을 끌고 가더니 딱 봐도 탈출하기 힘들어 보이는 감옥으로 끌고 갔다.

감옥 밖에는 높고 굵은 벽이 세워져 있었고 그 중간에는 밖을 감시하는 탑들이 놓여 있었다.

끌려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올 것 같은 모습에 드숀은 저항했지만, 다시금 얻어터질 뿐이었다.

안쪽에는 마물을 방불케할 정도의 덩치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 살벌한 분위기에 잔뜩 움츠러든 드숀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이런저런 검사와 절차들을 마치고 드숀은 검은 복장을 한 사내들에게 인도됐다.

드숀 앞에 사내 한 명이 있었고 뒤에는 두 명이 따라붙었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무죄야!!!"

"으히히히히히!!! 똥이다 똥!"

"이 더러운 공화국 놈들!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어머니­ 흐흐흐흐흑­"

양쪽에 늘어선 쇠문 너머로 사람들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렸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 아닐까? 드숀은 두려움에 오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끔찍한 주변 모습에 드숀은 도망가고 싶었지만, 앞서가는 사내의 거친 힘에 하릴없이 끌려갔다.

그렇게 드숀을 끌고 가던 사내는 어떤 방 앞에서 멈췄다.

옆구리에서 길쭉한 몽둥이를 꺼낸 사내는 굵은 팔로 쇠문에 달린 잠금장치를 풀었다.

잠금장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풀리고 사내가 천천히 힘을 주어 쇠문을 밀었다.

쇠문이 얼마나 무거운지 문을 여는 사내의 굵은 팔에 핏줄이 터질 것처럼 튀어나왔다.

문이 열리자 사내는 드숀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그 거센 힘에 드숀이 힘없이 밀려 방안으로 쓰러졌다.

쿵­

드숀의 뒤쪽에서 세상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겁에 먹은 드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밖에 있었던 사내가 아이로 보일 정도로 험상궂은 사내들이 드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따­ 야. 야들야들 하겄는디?"

사내 중 한 명이 흉악하게 웃으며 천천히 드숀에게 다가왔다.

드숀은 그런 사내를 피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이내 등에 닿는 싸늘한 벽에 부딪혔다.

"흐흐흐. 도망가게? 어디 한 번 가보라니까."

잔뜩 겁먹은 드숀을 보며 사내가 천천히 손을 풀었다.

"나­ 나는 드숀이다! 콘레드 가의­"

드숀은 발악하듯이 입을 열었다.

"이 안에서는 귀족이건 뭐건 상관없다니까. 귀족이면 좀 더 야들야들 하겄는디?"

사내가 우악스럽게 드숀의 머리채를 쥐어 당겼다.

사내에게 끌려간 드숀은 방의 정중앙에 널브러졌다.

쓰러진 드숀을 중심으로 사내들이 둘러쌓았다.

드숀에게는 세상이 흉악한 남자들로 가득 차 보였다.

"어이 콘 뭐시기야. 혹시 남자 것을 빨아본 경험이 있나?"

사내 중 한 명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드숀에게 물었다.

이곳은 지옥이 분명했다.

자신의 뺨을 톡톡 두드리는 사내의 두꺼운 손가락에 드숀은 깨달았다.

드숀은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몸을 움츠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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