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진짜 미친 세상.
* * *
"저는 남자 성기삽니다!"
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사도인 내가 검을 들었으니 당연히 성기사지.
"진... 진실입니다!"
내 말에 서아가 아름다운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말했다.
"안수성의 성주는 악마가 확실합니다!"
이번에도 내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사도인 내게 거슬린다? 그게 악마 새끼지.
"진실...입니다!"
서아가 전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방금 대지신님이 제게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말을 이었다.
사..사도야?! 내가 언제?!
물론 내가 사도라는 사실을.
그건 사기야! 사도야! 사도가 그런 사기를 치면...
아잇! 시끄러.
"진실입니다..."
이어서 말하는 서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마 더 이상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다고 느꼈겠지.
"명품..."
계속 진실입니다.라는 서아의 대답이 따라오니, 무슨 미니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앗!! 그거는 지금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서아가 내 입을 고운 손으로 막았다.
감사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서아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갑작스러운 서아의 행동에 주변 사람들이 당황했다.
서윤은 이를 갈면서 검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그..그러니까 에이든 님이 말씀하신 건 제가 느끼기에 모두 진실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서아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잔뜩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고는 중얼거렸다.
"정말 안수성의 성주가 악마라니"
"지금까지 인간을 학살하기는 해도 인간 사회에 파고든 악마는 없지 않았습네까?"
"맞습네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네다."
"... 그렇다면 공화국 내부는 이미"
"어쩐지 악랄한 놈들이 많다 싶더만."
서아의 확인에 사람들이 침음성을 삼켰다.
역시 악마만큼 쉽게 분노와 공포를 불러올 존재는 없었다.
쾅!
"..혁명!!! 혁명이 필요합네다!!!"
대뜸 이지수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지수의 몸은 분노 때문에 덜덜 떨리고 있었으며, 눈은 잔뜩 확장된 상태였다.
사람들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이지수에게 집중했다.
역시 항상 적절한 시기를 안다니까.
"혁명이요?"
서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마 서아는 과격한 방식으로 향하게 될 혁명을 어떻게든 막고 싶을 것이다.
물론,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달았지만.
"감히 악마가 우리 동무들을 괴롭히고 있다니...!! 저 이지수! 더는 못 참습네다!! 혁명이 필요합네다!! 우리는 혁명단이 아닙네까!!!"
이지수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쾅 내려치면서 마치 노래를 하듯이 리듬을 맞췄다.
아마 그 이상한 밴드한테 영향을 받은 듯했다.
"혀..혁명!"
"맞습네다! 우리는 혁명단입네다!!"
그리고 이지수의 열기는 손쉽게 번졌다.
점점 사람들을 선동하는 실력이 느는 것 같은데
"그..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씀인가요?"
서아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지수를 보며 물었다.
그 표정이 내게 묘한 흥분을 일으켰다.
저런 표정도 이쁘다니.
괜히 울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악마임을 확인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네다."
돌연 이지수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급변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이지수에게 집중했다.
이지수는 정말 언변가의 기질을 타고난 듯했다.
같은 말도 이지수가 하면 더욱 와닿았고 손쉽게 집중시켰다.
물론 이지수가 하는 말이 대부분 똥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불태우면 됩네다. 그럼 확인할 수 있습네다."
굳은 얼굴의 이지수가 다시금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단언했다.
이지수의 말이 끝나자 잠깐의 정적이 방 안에 가라앉았다.
"화형!! 정통적인 악마 확인 방법입네다."
"맞습네다!! 불태웁시다!! 동무들을 괴롭히는 악마 따위 불태워버려야 합네다!!"
"불태우면 악마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겁네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지수의 의견에 동조했다.
"잠..잠시만요!! 불태워서 확인할 수 있다 해도 만약 사람이라면 이미 늦잖..."
그 사이로 서아가 발버둥 치며 타당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미 잔뜩 흥분한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불 태우자!! 불 태우자!!"
이미 이지수의 말에 잔뜩 선동된 사람들은 살벌한 구호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 태우자!!"
사람들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서윤은 그런 사람들의 의견이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검 손잡이를 매만졌다.
잠..잠깐만요 조금만 이성을 되찾고...
그 중 오직 서아만이 사람들을 말리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정신이 잔뜩 돌아간 사람들에 밀려서 땅에 쓰러졌다.
쓰러진 서아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리러 나가는 겁네다!!!"
이지수가 오른팔을 곧게 뻗으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 움직임에 맞춰 이지수의 큼지막한 가슴이 보기 좋게 흔들렸다.
이지수의 손짓에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나갔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엎어져 있는 서아의 옆으로 가 부드럽게 안아 세워줬다.
내 손길에 흠칫 놀란 서아의 몸이 굳었다.
"감.. 감사합니다. 에이든 님."
서아가 물기 젖은 얼굴로 나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아 님은 울어도 이쁘네요."
그런 서아의 모습을 보자 놀리고 싶어졌다.
"예에?! 아니아니! 일단 감사합니다! 감사한데 이런 못난 모습이 왜...!"
내 말에 금세 얼굴이 붉어진 서아가 황급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불태우자
문밖으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물을 닦은 서아가 울어서 벌게진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
악마 새끼를 잡아다가 그냥 불태우면 되지.
아니면 말고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 사소한 거에 신경 쓰면 쓸데없이 일이 늦어지는 법이다.
"서아 님은 저만 믿으면 됩니다."
시원하게 웃으며 서아의 눈가에 남은 물기를 닦아줬다.
"진짜 믿어요 저..?"
묘하게 멍해진 눈빛으로 서아가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당연하죠."
그런 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가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그리고 성주 나쁜 놈이라며?
사도야...! 들려? 듣고 있지? 응? 일단 악마로 몰고 불태워서 확인한다니.. 그러면 안 돼.. 사도야 사도는 사도잖아... 응? 들려?
***
점점 죽어가던 안수성에 갑자기 활기가 찾아왔다.
아니 활기라기보다는 불길에 가까운 열기가 점점 퍼졌다.
탕!탕!탕!
아내를 잃고 나서부터는 공방에서 되도록 나가지 않는 덕남은 밖의 열기와 상관없이 망치질만 하고 있었다.
덕남은 조금이라도 그때의 아픔을 지우기 위해 억척스럽게 망치질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는 관리 놈이 요구한 조건을 맞춰야 하니까.
이미 손은 오랜 망치질에 터져나갔지만, 덕남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쾅
"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공방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팔식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식 말인가."
결국 그 열기는 덕남한테도 전해졌다.
덕남은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팔식을 보며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직감했다.
그 관리 놈이 이번에는 또 어떤 악마 같은 짓을
"그 쓰레기 같은 관리 놈이 악마 새끼였다는 구만!!"
팔식이가 눈에서 분노를 줄줄 흘리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탕!!!
덕남의 손에 들린 망치가 모루를 부술 것처럼 크게 두들겼다.
"그 관리놈이 악마라니 정말인가?!"
덕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렇다네!! 성기사님에게 신님이 계시를 내렸다는군!! 자네도 알잖는가 그 관리 놈이 얼마나 악랄한지!! 사람이라면 동무들한테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걸세!!"
팔식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악마 새끼가 감히"
덕남은 참아왔던 모든 분노가 치솟는 걸 느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빨리 가세나!! 다들 모여 있다네 지금!!"
팔식이 그런 덕철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독촉했다.
"어디를?"
덕남은 망치를 던지고 옆에 두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술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악마놈을 찔러 죽일 수만 있다면.
"어디긴 어딘가!! 그 악마 놈이 숨어있는 내성이지!!!"
팔식이가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문을 손가락질했다.
"..이거 들게나. 다 챙겨 가라우!"
덕남이 옆에 잔뜩 놓인 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덕남의 말에 팔식이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끝나면 내가 술 거하게 사겠네! 하하하!"
품에 검을 잔뜩 안은 팔식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술로 되겠나? 고기까지 사게! 우리 아내가 말고기를 좋아하니"
덕남이 손에 든 검을 굳게 잡으며 대답했다.
불 태우자!
멀리서 메아리처럼 군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뭔가?"
남자는 때아닌 시끄러움에 인상을 찌푸렸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내성 앞에 모여 있습니다."
남자의 질문에 사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인간들이?"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빼앗길 때도 입을 다물던, 그 멍청한 인간들이 모일 일이 있나?
"예.. 근데 그것이 조금"
사내가 말끝을 흐리며 남자의 눈치를 봤다.
"뭔가."
사내의 머뭇거림에 남자가 인상을 썼다.
"저희보고 악마라고..."
사내가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말에 남자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어떻게 알았지?"
남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당황한 목소리가 나왔다.
"새로 들어온 상단에 성기사가 있었나 봅니다. 신이 그 성기사한테 계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마지막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신..? 신이 그런 식으로 개입할 수 없을 텐데?"
남자는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일단 그렇게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내는 침음성을 삼키며 대답했다.
"알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계획을 조금 더 빨리 진행해야 하겠군."
남자가 창백한 손을 들어 휘저었다.
"안돼!! 제발 살려주세요.."
"흐어어엉"
"나는 남편이"
남자의 손짓에 뒤쪽에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던 말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이르지만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갈 때가 왔다. 어차피 인간 놈들의 피를 마시면 되니 그렇게 차질이 있지도 않을 터."
남자가 그런 말들을 사랑스럽게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인간 사냥할 시간이다. 아이들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남자를 보고 있던 말들의 등에 있는 문신이 붉은 빛을 뿜어냈다.
붉은 빛에 맞추어 말들의 근육이 더욱 팽창하여 그 크기가 두 배는 될 것처럼 커졌다.
그렇게 두꺼워진 말들은 천천히 두 발로 섰다.
"꺄아아아악!!"
물론 여자들은 그대로 이어진 채여서 흉하게 같이 일어섰다.
덩치가 커지며 성기도 같이 커진 모양인지 여자들은 말에 강하게 고정된 상태였다.
그러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으로 변했다.
꿈에서 나올까 두려운 모습.
히이이이잉!!!
남자의 옆에 있던 유난히 큰 말이 투레질을 거칠게 하며 두 발로 섰다.
"그래그래. 너의 좆집도 찾을 수 있을 거다. 페이르."
남자의 손길이 마음에 든듯 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을 열어라. 분수를 모르는 녀석들이 스스로 기어들어 오도록."
남자의 피처럼 붉은 입술이 호선으로 휘었다.
***
"일어나는 겁네다!! 분노하는 겁네다!! 혁명하는 겁네다!! 모두 다 불태우는 겁네다!!!"
이지수가 군중들 사이에서 열심히 손을 뻗으며 목이 쉴 정도로 외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어느새 성문 앞에 안수성에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모여 있었다.
기묘하게 우리 상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들밖에 없었다.
심지어 다들 꽤나 힘쓸 것 같은 건장한 체격들이었다.
쓸모 있을 것 같은 사람들만 남기고 쫓아낸 건가?
그런데 굳이 쫓아낼 것까지 있었나.
"불 태워라!!!"
"악마 놈의 머리를 뽑아서 태우자!!!"
이미 잔뜩 흥분한 군중들에게 성주는 이미 악마였다.
사실 그들에게도 성주가 악마든 아니든 별 상관없을 수도 있었다.
관리는 악마보다 더한 악행을 그들에게 행했으니.
"관리 놈은 나와라!! 나와서 신성한 재판을 받으라!!"
"만약 악마가 아니라면 나와서 결백을 증명해라!!!"
사람들 손에는 어느새 제법 괜찮아 보이는 검들이 들려 있었다.
한쪽에서 수레에 잔뜩 검을 들고 온 사내 둘이 검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야
내 생각보다 더 제대로 혁명하네.
그래 이 정도 해야 혁명이라고 할 수 있지.
"에..에이든 님? 정말 괜찮은 걸까요?"
오른편에서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은 서아가 물었다.
서아가 내게 의지할수록 내 팔뚝에 서아의 탐스러운 가슴이 더 크게 뭉개졌다.
참으로 탐스러운 감촉이었다.
서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네. 서아 님은"
나는 그런 서아를 만족스럽게 보며 입을 열었다.
"에이든 님만 믿으면 된다고요... 알았어요"
내게 기댄 서아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맞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진실
서아가 작게 중얼거리며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었다.
이렇게 쉽게 내게 의지하는 것을 보니
아마 그동안 젊은 나이에 혁명단을 이끄느라 꽤 중압감을 가졌던 것 같았다.
사실 서아가 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상황은 서아의 손을 떠난 지 오래여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아는 차라리 내게 의지하는 게 마음 편한 듯했다.
물론 나야 이런 미인이 내게 의지한다면 언제든 환영이지만.
크흠
우리에게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강낭콩이 헛기침했다.
강낭콩은 아까 내가 서아를 안았을 때 달려들었다가, 서아에게 된통 혼난 이후부터는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불 태워라!!!
군중들의 목소리가 서아에게 집중하고 있던 내 머리를 환기 시켰다.
그래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 옷깃을 당긴 천오가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성문을 가리켰다.
천오의 손짓에 고개를 돌리니 천천히 열리는 성문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내성에 병력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분노한 군중들을 들여 보내준다고?
심지어 병력들 중 대부분은 성주 측에서 해고했다고 들었다.
누가 봐도 함정이다.
물론,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난 군중들은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다.
"혁명적으로!!! 악마 놈을!! 불 태우는 겁네다!!"
그리고 이지수는 큼지막한 가슴을 흔들며 그런 군중들을 독촉했다.
이지수와 군중들은 열린 성문으로 벌떼처럼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쟤는 진짜 저게 천직이네 천직이야.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지수는 꽤 신경 쓰였다.
"이거 우리도 빨리 가죠."
살짝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게 기댄 서아가 다리가 풀렸는지 살짝 휘청여서 나도 모르게 허리를 잡았다.
습관적으로 생각보다 민감한 부위를 잡아 버렸다.
내 손길에 잔뜩 굳은 서아의 몸이 느껴졌다.
"..네."
서아는 작게 대답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허락인가?
조금 더 손에 힘을 주었지만, 서아는 얼굴을 붉힐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거 그러면 조금 더
슬금슬금 손을 내리려고 할 때,
"꺄아아아악"
성문 건너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강낭콩! 잘 지켜!!"
서아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팔을 풀고 천오를 안았다.
천오는 이제는 익숙한 듯 편안하게 안겼다.
내 지목을 받은 강낭콩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서아의 옆으로 갔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게 손을 뻗는 서아가 보였지만, 애써 고개를 돌렸다.
발에 기운을 터뜨리며 걸음을 옮기자 주변이 쭉쭉 지나갔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못내 시원했다.
사람들을 지나쳐 열린 성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본 것은 지옥도였다.
애미 시발.
저게 뭐야.
진짜 악마였어?
집채만한 크기의 말들이 여자와 결합한 상태로 코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어깨 근육이 잔뜩 팽창한 말들은 예전에 던전에서 봤던 미노타우르스를 연상시켰다.
안고있던 천오를 내려놓았다.
아닌가?
저 모습이면 미노타우르스의 애비인가.
어쩌면 나는 마물의 탄생 장면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말들과 결합된 나체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아아 신이시여!!"
"덕자.. 어째서 그런 꼴로"
그런 끔찍한 모습 앞에서 군중들은 좌절하며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렸다.
응? 뭐야? 진짜 악마네? 이게 웬 꽁 포인트야!! 사도야 힘내! 사도야! 다 죽이는 거야!! 악을 징벌하자! 우리 사도 최고다!!
"히이이익! 너무 혁명적입네다!! 저건!!"
말들의 모습에 기겁한 이지수가 내게 뛰어오며 소리쳤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앞까지 뛰어온 이지수가 숨을 헐떡였다.
그에 맞춰서 흔들리는 이지수의 가슴이 내 시선을 빼앗았다.
잠시 숨을 고른 이지수가 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에..에이든 동무!! 저런 혁명적인 합체를 이기려면 저희도 혁명적인 합체를 해야 합네다..!! 저는 준비 됐습네다!! 에이든 동무라면!!!"
그리고 대뜸 바지를 벗어 던지려는 이지수를 겨우 잡아서 말렸다.
"합체는 나중에 하고 그거 한다고 강해지는 거 아니니까!!"
자꾸만 억지를 부리는 이지수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 조용히 시켰다.
"나.. 나중에 말입네까?!"
엉거주춤하게 바지 끝을 잡은 이지수가 목까지 붉어진 상태로 내게 물었다.
슬쩍 드러난 이지수의 매끈한 엉덩이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응. 나중에. 여기는 좀 그렇잖아."
이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루나검을 천천히 뽑았다.
다른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교미하는 취미는 없었다.
여자라면 모르겠지만.
알겠습네다 약속입네다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대답하는 이지수를 지나쳤다.
"꺄아아아악 살려줘!!!"
흉하게 여자를 꽂고 다니는 말들을 향해 걸으며 고개를 저었다.
히이이이잉!!!!
다가오는 나를 발견한 말들이 거칠게 투레질했다.
그에 맞춰서 말들에게 꽂혀있는 여자들이 다시금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여자를 꽂고 이족보행을 하는 말들이라니
사도야!! 저것들 다 포인트야! 포인트!! 우리 사도 힘내라! 힘!! 아싸! 저게 다 얼마야!!
진짜 시발.
좆같이 미친 세상이야.
[감히 마물 주제에 인간 여자를 취하다니 교미왕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
[크흠 저 갈색 소녀와 교미라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