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34화 (134/233)

〈 134화 〉 드숀의 재판.

* * *

콰아아앙­

손아귀가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다시금 채찍을 쳐냈다.

그 사이 빈틈으로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앞으로 뛰었지만, 채찍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내게 쏘아졌다.

다시금 내게 달려드는 채찍을 쳐내며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 쳤다.

남자가 휘두르는 채찍이라니.

기분 개 좆같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대치가 이어졌지만, 악마의 채찍은 상대하기 정말 까다로웠다.

심지어 그 채찍을 휘두르는 게 남자라 정신적인 피해까지 중첩됐다.

이미 몇 번의 공방을 치렀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채찍 때문에 번번이 저지당했다.

검을 든 오른쪽 손아귀는 이미 터진 지 오래였고 내 온몸에도 잡다한 상처들이 즐비했다.

"말보다는 실력이 부족하군그래."

악마가 흉측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말은 너희 어미가 교미한 짐승 중 하나고."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저번에 싸웠던 악마와는 다르게 기교가 뛰어난 스타일.

그래서 더욱 상대하는 게 성가셨다.

"... 악마는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는다."

악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내게 쏘아지는 채찍이 보였다.

사람 뼈처럼 생긴 가시들이 잔뜩 박혀 있는 채찍의 모습은 절대 이것을 잡지 마시오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딱 봐도 잡으면 손이 씹창날 것 같았지만, 이대로 계속 싸우면 답이 안 나올 것 같으니까.

"아무리 어미가 짐승들이랑 교미하는 걸레라고 해도 부정하다니­ 네 어미가 지옥에서 슬퍼하시겠군."

악마에게 보이도록 입꼬리를 비틀며 다가오는 채찍에 왼손을 내밀었다.

"크하하하­ 내 채찍을 손으로 잡으려 하다니 멍청한...?"

악마가 가슴에 난 털이 흔들릴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쏴아아악­

내게 쏘아진 채찍을 왼손으로 잡자 채찍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요란하게 내 팔을 휘감았다.

왼팔에서 찢기고 뚫리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느껴져 절로 욕지기가 나왔지만, 고통 만큼 채찍은 내게 굳건히 고정됐다.

양발을 땅에 굳건히 세우고 왼팔에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애미 시발.

존나 아프네 미친.

팔에서 갈려지는 고통이 느껴지며 다시금 욕지기가 나왔다.

"멍청한­ 인간이 힘으로 내게 될 것 같은가?!"

악마가 말처럼 생긴 발을 쾅­하고 찍더니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그러자 악마의 괴력에 내 왼손이 더욱 씹창났지만­

괜찮다 치료하면 되니까. 죽지만 않으면 된다.

내가 미친 노인네에게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이윽고 채찍이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졌을 때­

나는 땅을 박차고 악마 쪽으로 뛰었다.

악마가 당기는 힘과 내가 뛰는 힘까지 더해지자 나는 순식간에 악마 앞에 도달했다.

"이게 무슨!!!"

당황한 악마가 대뜸 고개를 숙이며 염소 뿔을 내게 들이밀었다.

저게 공격용이었어?

피하기에는 늦었다.

나는 부디 저 뿔에 다른 기능이 없기를 희망하며 오른손에 기운과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이윽고 악마의 좆같이 생긴 염소 뿔이 내 가슴팍에 파고들어 끔찍한 고통을 주어 정신이 혼미했지만,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정신을 붙잡았다.

나는 오히려 왼손을 잡아당기며 악마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정시키고, 찬란한 회색빛을 뿜어내는 루나검을 악마의 목 부근에 쑤셔 넣었다.

검을 잡은 손에서 기분 나쁜 이물감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더욱 힘을 주어 깊숙히 찔러 넣었다.

상처 부근에서 검은 피가 터지듯 쏟아져 나오며 악마의 몸이 마치 절정에 이른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검을 잡은 손에서 불처럼 뜨거운 악마의 검은 피가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좀 더 검을 쑤셔 넣자 악마가 힘에 밀려 내 가슴팍에 박혀 있던 악마의 뿔이 뽑혔다.

악마의 뿔이 파고들었던 내 가슴팍에서 악마의 피와는 대조되는 붉은 색의 피가 터져 나왔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 속에도 나는 내 피가 붉은색이라는 것에 안도했다.

"지옥 가서 애미 만나면 다음에는 사자나 곰 같은 쓸모있는 동물이랑 교미하라고 해."

악마의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지며 검은 피를 울컥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이죽거렸다.

"끄윽­ 내 어미는­..."

붉은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악마가 입을 열었지만, 공기 빠지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알았냐고.. 이­ 시발 좆밥 수간충 새끼야."

다시금 검을 움직여 몸과 어울리지 않는 악마의 머리를 뜯어냈다.

조종간을 잃은 악마의 몸은 허물어졌고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악마의 머리를 땅에 내리쳤다.

콰직­

악마의 흉측한 얼굴이 검은 피를 뿜어내며 찌푸려졌다.

그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이겼다는 확신이 들자 참았던 통증이 나를 엄습했다.

애미 시발 존나 아파.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통에 다리가 풀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신성력이 자동으로 상처를 수복할 테니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야 하지만­

가까워지는 땅을 보며 이를 질끈 깨물고는 고개를 돌리기 위해 힘썼다.

나는 뒤로 넘어져도 이가 깨질 정도로 재수가 없으니까.

땅에 닿기 바로 직전­

푹신한 감촉이 나를 감쌌다.

감았던 눈을 뜨니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윤이 보였다.

날카롭던 서윤의 얼굴에서 독기가 사라지니 더욱 아름다웠다.

"뭘 그딴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

어울리지 않게 간지러운 서윤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왔다.

말을 뱉고 나니 지금까지 서윤을 놀렸던 게 떠오르며 서윤이 내 목을 벨까 봐 걱정이 됐다.

그래도 내가 구해줬는데 시발 그러진 않겠지?

이래서 평소 말 습관이 중요하다는 건데­

"..."

내 거친 말에 서윤이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나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

얼굴에 느껴지는 서윤의 풍만한 가슴이 내 고통을 한결 덜어줬다.

물론 그래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팠지만.

"고마워?"

자꾸만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서윤은 그저 똑같이 오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마우면 한번 대주던지 시발."

최대한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서윤의 얼굴에 서려 있는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병신."

내 말에 서윤이 피식 웃으며 욕지기를 뱉었다.

다시 돌아온 서윤의 눈빛에 나도 따라 웃으며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놓았다.

눈을 감기 전 서윤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본 거 맞나?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 오우야아!! 대박이다! 대박이야!! 이게 얼마야!! 야! 바다신!!! 가서 물 떠와!!! 뽀찌 줄 테니까 떠오라고!!

***

왜 정신을 못 차리시는...

그러니까­ 합체를 해야 합네다...

자꾸 그런 낯뜨거운 단어를...

아니면 서아 동무가 합체를...

아니 어떻게 그런...

주변의 시끄러운 대화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본인이 안 할 거면서 왜 합체를 반대­

"하시는 겁네까!!! 비키십쇼!! 제가 할 테니까!!"

이지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내 흐릿한 정신을 일깨웠다.

눈을 뜨니 큼지막한 침대가 보였고 그 옆에 둘러선 다양한 얼굴들이 보였다.

"어찌 남녀가 유별한데 합체를..! 그리고 합체를 하더라도 왜 지수 님과.."

시뻘게진 얼굴을 거칠게 흔드는 서아가 보였다.

"어?! 에이든 동무 일어났습네까!!"

서아의 손을 쳐낸 이지수가 내게 달려들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끝난 거야?"

잠을 푹 잔 것처럼 머리가 상쾌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에이든 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서아가 이지수를 밀어내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비..비키십쇼!! 저는 에이든 동무와 할 일이 있습네다!!"

그런 서아를 이지수가 다시금 밀어내고 자리를 잡았다.

"이익!! 혁명단 내에서 합체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지수에게 옆으로 밀린 서아가 얼굴을 붉혔다.

"헹! 합체가 안 된다니 혁명단이 그렇게 고리타분하면 안 됩네다!! 그런 썩어빠진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혁명단의 중책을 맡았습네까!"

서아를 보며 이지수가 입꼬리를 잔뜩 올렸다.

"고..고리타분이라니! 저 서아 그렇게 고리타분한 사람 아닙니다!! 그.. 그쪽이 오히려 너무 개방적인­"

서아가 어울리지 않게 언성을 높이며 이지수를 손가락질했다.

"에이든 동무 몸은 괜찮습네까?! 합체할 수 있겠습네까?! 저 이지수! 경험은 없지만 잘할 자신 있습네다!! 제가 이번에 속옷도 새것으로..!!"

침대로 올라온 이지수가 대뜸 바지를 내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드러난 이지수의 탄탄한 허벅지와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속옷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홀린 듯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다가 멈췄다.

"이..!! 어찌 남녀가 유별한데!! 내려오세요!! 빨리!! 에이든 님 눈 감으세요!!!"

그런 이지수의 뒤에 붙은 서아가 언성을 높이며 이지수의 바지를 잡아 끌어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분명 방금까지 괜찮았던 머리가 다시금 지끈거렸다.

"아악!! 살 찝혔습네다!! 잠깐만!! 아픕네다!"

이지수가 고통을 호소하며 발버둥 쳤지만, 서아는 무시하며 힘을 썼다.

조금 시간이 더 지나고 엉망진창이 된 서아와 이지수가 겨우 진정했다.

승자는 의외로 서아였다.

이지수의 바지에 살이 찝힌 게 승리의 큰 요인인 듯했다.

"후­ 그러니까 혁명단 내부에서 합체라는 낯뜨거운 단어를 꺼내지 마세요!"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지만, 입가에는 승자의 미소를 띤 서아가 말했다.

"...저는 에이든 동무와 세상­구원­혁명­합체하기로.."

얼굴에 멍이 든 이지수가 중얼거리다가 서아의 시선에 말을 삼켰다.

물론 서아에게 맞아서든 멍이 아니라 발버둥 치다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생긴 멍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아 물었다.

"아! 에이든 님..! 방금 본 것들은 잊어주세요...!"

내 말에 서아가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그... 예."

평소에 부드럽던 서아가 몸싸움까지 벌인 건 쉽게 잊힐 일이 아니었지만.

"...진짜로요! 그냥 혁명단원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니까요!!"

잔뜩 붉어진 서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예. 뭐 그럴 수도 있죠. 단원끼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지수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보며 입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다시금 다물었다.

"일단은 안수성을 점거하고 있기로 했어요. 본부에도 따로 편지를 보냈고요."

서아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본부요?"

"예. 혁명군의 본부는 수도 근처에 있거든요. 아마 본부 쪽에서 지원을 보내줄 것 같아요. 공화국은 성을 악마가 점거하고 있을 때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서아는 머리에 엉킨 부분이 있는지 인상을 썼다.

"공화국은 그저 세금만 제대로 올라오면 관심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혁명단은 이 성을 점거하고 본격적으로 세를 드러낼 생각이에요."

마침내 엉킨 부분이 풀렸는지 서아가 활짝 웃었다.

물론 아직도 머리는 엉망이었지만.

"이미 혁명은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을 하던 서아가 잠깐 우물쭈물했다.

"에이든 님 계속 저와­ 아니! 저희와 함께해 주실 거죠?"

서아가 마치 비를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뭐 저도 공화국을 무너뜨려야 하니까요."

굳었던 몸을 살짝 움직이자 뿌드득­ 소리가 났다.

아싸!­

작게 중얼거린 서아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방긋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방금 핀 꽃처럼 아름다워 잠시 멍해졌다.

"저도 에이든 동무와 같은 혁명단원으로 열심히 하겠습네다!!"

우렁찬 이지수의 목소리에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이지수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고개를 돌리자 창문 옆에 널브러져 있는 천오가 보였다.

아마 충전인가 뭐시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나저나 서윤은­?"

마지막으로 봤던 서윤이 생각나 물었다.

"응? 방금까지 여기에...! 어디 갔지?!"

내 물음에 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아가 가리킨 곳을 보니 방금까지 누가 앉아 있었던 듯 자국이 남은 의자가 보였다.

이거 지금 약속 지키기 싫어서 도망간 거야? 야박하네 진짜.

"동무! 동무! 동무가 기절한 동안 안수성이 조금 회복했습네다!! 나가서 같이 구경하시겠습네까?!"

다시금 활기를 띤 이지수가 시원하게 웃으며 물었다.

"응?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는데?"

어쩐지 생각보다 몸이 너무 가벼웠다.

"나흘간 누워 있었습네다! 저희는 동무가 잘못된 줄 알고 깜짝 놀랐습네다!! 심지어 서아 동무는 에이든 동무의 옆에서 눈물을 줄줄­"

"조용히 하세요!! 에이든 님은 아직 환자예요!!"

잔뜩 얼굴이 붉어진 서아가 신나서 설명하는 이지수의 입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소리쳤다.

"아­ 그러고 보니 배고프네."

이지수의 말을 듣고 나니 허한 배가 느껴졌다.

"아! 혹시나 에이든 동무가 소화 못 할까 봐 서아 동무가 음식을 입으로 꼭꼭 씹어서­"

"조용히 해주세요!! 제발!! 제발 조용히 좀!! 우리 둘 사이의 혁명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요!!"

"그렇지만 에이든 동무와 저는 혁명동지 사이라 비밀이 없어야 합네다!! 어쩔 수 없습네다!!"

"그래도 그거를­..."

다시금 투덕거리는 둘의 모습에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에는 해가 밝게 떠 있었고 꽤 활기를 띤 사람들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흘 만에 이렇게 복구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성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끄으­"

누워있던 천오가 작게 기지개를 켰다.

근데 뭔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사소한 거니까 기억이 안 날 테니까 말이야.

***

드숀은 손에 들린 잔뜩 더럽혀진 걸레를 빨며 눈물을 삼켰다.

입소한 날부터 드숀은 방의 모든 잡다한 업무들을 혼자 다했다.

청소부터 빨래­ 방의 모든 일을 드숀이 도맡아서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빨래에 얼룩이 묻어 있으면 그날은 밤새도록 얻어맞았다.

어젯밤에는 방에 벌레가 나왔다고 처맞아서 지금도 온몸이 쑤셨다.

개 같은 놈들.

거친 생활에 한층 입이 거칠어진 드숀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걸레를 다시금 짜냈다.

드숀은 언젠가 자신의 무죄가 밝혀지는 날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감옥에서의 생활을 지냈다.

그것이 드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이 드­숑! 내 바지는 어디 있나?"

얼굴에 잔뜩 상처가 새겨진 대머리가 드숀에게 물었다.

"거기 걸어뒀습니다."

이 빡빡이 새끼야.

좁은 방에서 그게 어디 갔겠어.

드숀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래그래. 빨리 바닥 걸레질 마치고 화장실 청소도 해라­"

빡빡이가 히죽 웃으며 이죽거렸다.

개새끼들.

분명 용사 아카데미 출신이라 보통 사람에 비해서 강한 드숀이었지만, 여기에는 흉악범들만 모아뒀는지 하나같이 자신보다 강했다.

몇 번이나 덤볐지만, 결국 자신은 이 방의 막내였다.

막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명이라도 쥐어패야 하는데­

걸레를 빨면서도 짬짬히 주먹을 쥐었다피며 근력을 수련했다.

눈물을 참으며 걸레질을 마친 드숀은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화장실 가득 풍기는 끔찍한 냄새에 드숀은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도대체 같은 것을 먹었으니 같은 것을 쌀 텐데, 얘네들은 냄새가 왜 이리 심하지.

쾅쾅쾅­

"드­숑 재판 날이다."

그때 문밖에서 드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올 게 왔구나!

드숀은 손에 들고 있던 청소 도구를 내팽개쳤다.

방안에 가득 모여있던 험상궂은 사내들이 그런 드숀을 보며 인상을 썼다.

그 표정에 드숀은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잘 있어라. 이 흉악범 새끼들아. 천년만년 여기서 반성하면서 살아!! 쓰레기 같은 놈들!!"

드숀은 양손의 중지를 시원하게 들어 그들에게 보였다.

"이­ 건방진 새끼가!"

"야 잡아!"

드숀의 행동에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가왔지만, 방안에 들어온 교도관에 막혔다.

교도관들은 잔뜩 흥분한 사내들을 검은색 몽둥이로 쥐어패서 진정시켰다.

사내들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설움이 한 번에 풀렸다.

"크헤헤헤헤! 잘 있어라! 이 흉악범 새끼들아!! 그러니까 착하게 살지 그랬어!!"

드숀은 시원하게 웃으며 교도관들을 따라나섰다.

방을 나서는 드숀의 손가락은 잔뜩 물에 불어 꼬질꼬질했다.

"근데 성님. 쟤 반란죄라고 하지 않았습네까?"

"그러게. 쟤 왜 좋아한댜?"

사내들은 교도관에게 맞아 멍든 곳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교도관에게 이끌려 간 드숀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중간중간 몸수색도 받았다.

이게 다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드숀은 그 모두를 기꺼이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꽤 엄숙해 보이는 재판장으로 인도됐다.

재판을 받는 건 드숀 뿐만이 아닌 듯 다섯 명의 사내와 같이 들어갔다.

그렇게 모인 죄수 중에서 유일하게 드숀만 표정이 좋았다.

다른 사내들은 앞으로 있을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한껏 인상을 구기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았어야지­

드숀은 그런 죄수들을 보며 혀를 차고는 표정을 관리했다.

이내 재판장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제일 높은 자리에 검은색 옷을 입은 사내가 앉았다.

잘은 모르지만 대충 분위기상 저 사내가 판결을 내릴 것 같았기 때문에 드숀은 눈을 최대한 선하게 뜨고 사내를 응시했다.

땅땅땅­

"재판 시작하겠습네다."

사내가 엄숙하게 망치를 두들겼다.

이내 재판장은 조용해지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피고인 이수환. 반란죄입니다. 관리들의 곳간을­"

죄수들의 반대편에 앉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땅땅­

"사형"

판사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충 망치를 두들기며 판결을 내렸다.

사내는 그런 판사가 익숙한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종이를 꺼냈다.

응?

드숀은 그 모습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보통 재판에서 변호인은 무조건 있지 않나?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제국에서는 필수적으로 변호사를 붙여준다.

얼마나 저 남자가 뚜렷한 범죄를 저질렀길래 변호사도 안 붙여 준거지.

나와 다르게 저놈은 완전 흉악범인가 보네. 착하게 살지 그랬어.

드숀은 한숨을 내쉬는 죄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쓰레기들은 사형해야 마땅했다.

"다음 피고인 이재덕. 반란죄입니다. 불법 인쇄물을­"

사내가 종이를 무뚝뚝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고.

땅땅­

"사형"

판사는 다시금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판결을 내렸다.

그제야 드숀은 재판장에 변호인 좌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피고인 서아무개. 반란죄­"

사내는 귀찮은지 발음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땅땅­

"사형."

그리고 점점 판사가 사내의 말을 끊는 게 빨라졌다.

"다음 피고인 김덕순."

호명 당한 사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땅땅­

"사형."

판사는 피곤한지 하품까지 하며 망치를 내려쳤다.

아니야 아니야.

그냥 저 죄수들이 너무 뚜렷하고 용서 못 할 죄를 지었기 때문에 변호할 기회조차 없는 거야.

나는 다를 거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엘프 두 명과 교미를 하기는 했지만, 그게 죽을죄는 아니잖아.

어느새 드숀의 몸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고 입에서는 옆의 죄수들처럼 깊은 한숨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숀의 차례가 왔다.

"다음 피고인 드­숑. 반란죄입니다."

사내는 마지막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살짝 밝아졌다.

땅땅­

"사형. 끝인가?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여기 앞에 돼지고기 집이 괜찮던데."

판사는 하품하며 드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들은 마치 작업을 끝낸 노동자처럼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어제 종팔이가 거기 갔는데 괜찮다고 했습네다."

종이를 모아 정리한 사내가 판사의 말에 맞장구쳤다.

"잠...잠깐만요!!! 저는 결백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보며 드숀은 다급히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재판이면 내 의견도 들어봐야 할 거 아니야 !!

물론 그들은 드숀의 말을 들은 체하지 않고 재판장에서 나갔고­

다가온 교도관이 인상을 쓰며 드숀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래도 발버둥 치던 드숀은 교도관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자른 죄수들과 한데 묶여서 어딘가로 보내졌다.

옆에 있던 죄수들은 그런 드숀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은 아까 드숀이 죄수들을 보던 눈빛과 비슷했다.

읍읍읍!!!­

드숀은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갈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