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여자 입 사용권.
* * *
"빨리빨리 오십쇼!!"
벌써 저 앞까지 달려 나간 이지수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우리를 재촉했다.
그에 맞춰서 흔들리는 가슴에 시선이 돌아갔지만, 천오가 내 옷깃을 잡아당겨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내성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서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서아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같이 나오지 못했다.
밖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회복된 상태였다.
아직까지 곳곳에 파괴된 흔적과 핏자국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좋았다.
안수성을 점거한 혁명단이 당분간 세금을 공화국에 상납할 정도만 받는다고 했는데 그게 도움이 된 듯했다.
제국과는 다르게 공화국 특유의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주변을 구경하며 걸었다.
"이..이거 맛있어 보입네다!!"
입을 헤 벌린 이지수가 옆에 있는 노점상을 가리켰다.
노점상 위에는 '대머리 아저씨의 타코야끼'라고 적혀 있었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쁜 아가씨가 보는 눈도 있구만! 하하하!"
노점상의 아저씨가 불판 위에 있는 동그란 것들을 뒤집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세 개 주십쇼!! 제가 사겠습네다!!"
이지수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동전을 꺼냈다.
"그래그래! 잠시만 기다리시게!"
동전을 받아든 아저씨가 인상을 굳히더니 열심히 동그란 것들을 작은 상자에 주워 담았다.
"근데 이게 뭡니까."
아저씨가 뒤집는 것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다코야끼 라는 건데. 안에 문어가 들어가 제법 맛있습네다."
이지수가 입 옆에 흐른 침을 손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제국에서는 본 적 없지만, 공화국에서는 제법 유명한 음식인 듯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아저씨가 작은 상자들을 우리에게 건넸다.
상자마다 6개의 작은 알들이 들어 있었으며 그 위에는 뭔가가 잔뜩 뿌려 있었다.
소스가 에일 버드 튀김 소스와 비슷한 색이라 기대됐다.
"맛있습네다!!"
냉큼 상자 하나를 받아 입에 넣은 이지수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천오에게도 상자 하나를 쥐여주고 나도 이지수를 따라 작은 꼬치로 알 하나를 찍어 입에 넣었다.
이지수의 말처럼 제법 맛있기는 했다. 안에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문어와 그 위에 다양한 소스들까지.
물론 에일버드 튀김만큼은 아니었지만.
"웩"
천오는 입에 안 맞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어느 한 여자에게 붙잡혔다.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네다...!!!"
얼굴을 보니 그때 말악마에게서 구해준 여자 중 하나였다.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내게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까 꽤 미인이다.
"아 예. 뭐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막상 앞에서 감사를 표하니 기분이 묘했다.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서 대충 둘러대며 대답했다.
"오! 그때 에이든 동무가 구해준 여자 중 하나인가 봅네다! 저기 보지는 괜찮습네까?!"
대뜸 여자와 내 사이에 끼어든 이지수가 여자를 보며 물었다.
깜빡이도 켜지 않는 이지수의 질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네?!"
이지수의 물음에 여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악마가 어마어마하게 큰 성기를 가지고 있던데 그 성기에 박혔으니 보지가 씹"
나는 황급히 이지수의 입을 막았다.
내게 붙잡힌 이지수가 온순하게 동작을 멈췄다.
"몸이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아! 네 정말 감사합네다. 혹시 은인 분의 성함이..? 제가 평생 감사를 표하겠습네다."
여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다시 숙이며 물었다.
"읍읍!"
여자의 질문에 이지수가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내게 막혔다.
이름이라.
이름을 알려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평생 감사를 표한다는 사실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애초에 여자를 구할 생각으로 움직인 게 아니기도 했으니까.
물론 이럴 때는 늘 쓸모있는 이름이 있었다.
"드숀 이라고 합니다."
늘 그렇듯 나는 자연스럽게 드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음?
그러고 보니 드숀 얘는 어디서 뭐 하고 있지.
뭐 아카데미에서 잘살고 있겠지.
"드숑. 은인의 이름 평생 기억하겠습네다. 드숑 님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여자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내 대답에 이지수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지만, 별다른 반발은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더 감사를 표한 여자가 돌아갔고 우리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파전 입네다! 파전은 꼭 먹어야 합네다!"
이지수가 허름한 가게를 가리키며 대뜸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우리는 허름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꽤 맛집인지 가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거랑 이거 주십쇼! 맛있게 부탁드립네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이지수가 싹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든 동무는 아직 파전 먹어본 적이 없습네까?!"
주변을 구경하는 내게 이지수가 시원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 공화국은 이번에 아카데미 때문에 온 게 처음이니까."
약간 허름한 식탁이 못내 미더웠다.
"실망하지 않을 겁네다! 공화국의 파전은 제국까지도 널리 퍼진 음식이니 말입네다! 제국민들이 파전을 먹고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습네다!"
이지수가 코에서 열기를 뿜어내며 열심히 설명했다.
제국에서 파전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 없었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에이든 동무가 공화국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군요! 자고로 공화국의 문화는 대륙에 널리 퍼질 정도로 우수한... 제가 오늘 에이든 동무를 풀코스로..."
열심히 설명하는 이지수에게 고개를 대충 끄덕여주며 흔들리는 가슴이나 구경했다.
이지수의 열띤 설명은 점원이 음식들을 가져오자 끝났다.
음식이 담긴 그릇마저 식당처럼 허름했다.
아마 허름함이 이 식당의 특색인 듯했다.
그래도 제법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들이 우리의 식탁을 가득 채웠다.
"자자 이것은 양파 절임이라고 하는데 맛있습네다! 드셔보십쇼! 드셔보십쇼!"
이지수가 뭔가를 집어 내 입에 내밀었다.
먹으니 상큼한 맛이 나며 제법 괜찮았다.
"이것은 해물파전이라고"
그 후로도 이지수는 한참동안이나 내게 이것저것을 먹였다.
조금이라도 내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이지수의 표정이 안 좋아졌기 때문에 나는 애써 웃어줬다.
그냥 쥐어팰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지수는 나를 위해서 몸을 던졌었으니까 참았다.
"웩"
천오는 이 식당의 모든 게 입에 안 맞는 듯했다.
입에 들어간 음식을 자꾸만 뱉어냈다.
"이건 막걸리라고 합네다! 공화국의 대표적인 술로"
이지수가 흰 액체가 가득 담긴 잔을 내게 내밀며 시원하게 웃었다.
술이라
술을 보니 수녀 삼인방이 생각났다.
뭐 잘 지내고 있겠지만.
"아! 공화국에는 유명한 말이.. 있습네다."
마시기 위해 잔을 든 내 손을 이지수가 막으며 붉은 입술을 우물쭈물했다.
"무슨 말?"
저 입에서 또 무슨 말이 튀어나올까 걱정됐다.
"그... 이거 마시면 저랑 아이 낳는 겁네다?"
금세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이지수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를 낳는다니 이게 또 뭔 개소리야.
그러던 중 이지수의 큼지막한 가슴이 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내가 잔을 입에 가져가려는 찰나
"웩"
천오가 냉큼 내 손에서 잔을 뺏어 마시고는 도로 뱉어냈다.
"아앗?! 그걸 천오 동무가 왜 마십네까!! 나와 천오 동무는 애를 만들 수 없습네다! 천오 동무가 올바른 성 지식이 없는 것 같기는 했습네다만"
이지수가 황급히 천오의 손에서 잔을 뺏었지만, 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리고 이 귀한 걸 왜 뱉어냅니까!! 맛없다니! 그건 다 천오 동무가 먹는 법을 몰라서 그런겁네다!! 이걸 이렇게 해서"
"웩"
천오가 다시 한번 뱉어냈다.
그렇게 시끄럽게 파전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해가 완전히 져서 거리가 어둑어둑했다.
적당히 마신 술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저 저것도 마셔봅시다! 천오 동무. 공화국 음식이 맛없을 리가 없습네다!! 다 천오 동무가 먹을 줄 몰라서 그러는 겁네다! 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공화국 음식을 싫어할 리 없습네다!!!"
술기운에 얼굴이 잔뜩 상기된 이지수가 천오를 끌고 노점상을 돌아다녔다.
"웩"
천오는 변함없이 뱉어냈지만, 이지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둘을 따라다니며 주변을 구경했다.
나흘 만에 이렇게 활기를 찾을 수가 있나.
"거기 잘생긴 청년!!"
그때 누가 들어도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쥐같은 인상의 사내가 바닥에 앉아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비열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눈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하하. 저를 부르셨습니까."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래그래. 내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눈이 튀어나올 만한 미인들을 양옆에 끼고 다니는군. 잘생긴 외모처럼 능력도 좋은 모양이야."
사내가 비열한 입꼬리를 올리며 현명한 말을 지껄였다.
"보는 눈이 제법이시군요."
바닥에 천을 깔아놓고 앉은 사내의 앞에는 다양한 종류의 반짝이는 장식품들이 놓여 있었다.
보는 눈은 제법이지만, 파는 물건의 종류가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흠흠 그런 눈 하지 말게. 다 자네를 생각해 부른 거니까 말이야."
내 시선에 사내가 헛기침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저를 위해서요? 아무리 제가 잘 생겼다지만, 이런 화려한 장식을 하고 다니는 건 조금"
쪼그려 앉아 장식 중 꽃 모양을 한 것을 집어 들었다.
너무 화려해 남자가 하고 다닐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핫! 자네 하나만 알고 둘과 셋 그리고 넷까지는 모르는구만!"
내 물음에 사내가 다시금 비열하게 웃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 사내의 말에 주먹이 근질거렸다.
적당히 취기도 올라왔고 이곳은 혁명단이 관리하니 쥐어패기 좋은 환경 같은데.
"잘 보게나. 이것의 가격이 얼마일 것 같은가?"
사내가 제법 비싸 보이는 장식을 들고는 내게 물었다.
반짝이는 보석들로 새가 조각된 장식이었다.
"음... 2 골드요?"
나는 짐짓 사내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큰 금액을 불렀다.
실제로는 10 실버만 되도 절대 사지 않을 거지만.
"하하하! 잘생긴 외모답게 통이 크구만!! 잘 보게나 이건... 50 쿠퍼밖에 안 하네."
사내가 손에 들린 장식품을 손가락으로 톡하고 튕겼다.
50 쿠퍼라.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다.
도대체 뭐로 만들었길래 50 쿠퍼 밖에 안 하지?
50 쿠퍼면 에일 버드 튀김 가격과 같았다.
물론 저것을 살 바에야 두둑한 에일 버드 튀김을 사 먹겠지만.
"잘 보게나. 자네도 2골드라고 생각한 장식품이야. 이것을 여자에게 주면 어떤 반응이 나오겠나? 감동한 여자들은 냉큼 가슴 가리개를 던져버리고 자네에게 달려들 것이네! 그럼 자네는 50 쿠퍼로 2 골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거라네. 자 보게"
사내가 뭔가를 먹으며 뛰고 있는 이지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위아래로 격하게 출렁이는 이지수의 가슴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50 쿠퍼로 2 골드의 효과요..?"
사내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자자 만약 자네가 50 쿠퍼로 2 골드의 효과를 누릴 기회를 박찬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겠나?"
사내가 손을 비비며 내게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그건 개 병신이죠! 그런 기회를 놓치다니!"
어떤 병신이 그런 좋은 기회를 놓쳐!
"그렇지! 그리고 남자가 2 골드의 선물을 줬는데, 감동하지 않을 여자가 있을 것 같나?!"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금 내 속을 슬쩍 긁었다.
"2 골드 선물을 줬는데 감동을 안 받으면 그건 애미 터진 련이죠! 시발! 2 골드가 얼마나 큰 돈인데!"
취기에 욕이 평소보다 술술 나왔다.
"애미 터진..? 아니 뭐 그렇게까지.. 여하튼 감동한 여자는 어떻게 하겠나! 심지어 2 골드 만큼의 감동인데!"
내 욕지기에 약간 당황한 사내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음... 뭔가를 해주려 하겠죠?"
감동을 하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개년이지!
"그렇지! 그런데 여자에게는 2 골드 만큼의 돈이 없는 거야! 그럼 여자가 어떻게 하겠나?"
사내가 음흉하게 웃으며 손을 다시 비볐다.
"그럼 몸으로라도 갚아야죠!"
내 얼굴에도 사내와 비슷한 웃음이 떠올랐다.
"정답일세! 2 골드라면 옷을 벗어 던지며 가랑이까지는 벌리지 않더라도 양심이 있다면!... 입으로라도 해주지 않겠나?"
흐흐 사내가 더욱 음침하게 웃었다.
입으로...?
처음 들어보는 획기적인 방법에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그렇게 할 수도 있단 말이야?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자! 그럼 잘생기고 똑똑한 청년!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이것들을 봐보게. 이제 뭐로 보이는가!"
사내가 과장되게 손을 휘저으며 장식품들을 가리켰다.
술 기운 때문인지 사내가 가리킨 장식품들이 아름다운 입술들로 보였다.
그 입술들은 케이트,비키,안드레아,이지수 다양했다.
"이...이건!!!"
당황한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 이건 50 쿠퍼 짜리 여자 입 사용권들일세..! 내 특별히 자네에게만 전수해준 거야."
사내의 얼굴에는 이제 단 하나의 음침함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거룩함과 신성함만이 사내의 얼굴에 보였다.
"그러니까. 빨리 챙기게.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말이야."
사내가 짝하고 박수를 쳐 내 정신을 깨웠다.
"몇 개나 줄까?"
사내의 눈빛이 나를 가늠하는 듯했다.
너는 그릇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 사내인가?
물론 내 그릇의 크기는
"전부 다 주십쇼."
나는 시원하게 주머니에서 골드를 꺼내 사내의 손에 튕겼다.
"아아 외모처럼 그릇의 크기가 영웅과도 같은 사내였구만.."
작게 감탄한 사내가 가방에 장식품들을 쓸어 넣었다.
"부족한 감이 있지만, 이 정도면 몇 달은 쓸 수 있겠군요."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가방을 건네받았다.
"..자네는 영웅이 될 사내가 분명하네."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단언했다.
그런 사내에게 시원하게 웃어준 뒤 걸음을 옮겼다.
묵직한 가방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입술 사용권들이라니
정말 획기적인 생각이야.
"간만에 개 호구 새끼 잡았구만."
호구 당하고도 당당하게 돌아가는 고객을 보며 사내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
"돌아오셨습니까"
눈 밑이 퀭해진 서아가 우리를 반겼다.
천오는 내성에 들어오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졌다.
"지금까지 계속 일하신 겁니까? 좀 쉬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서아를 보며 물었다.
"원래 대장은 힘든 법입네다! 저 이지수! 그럼 먼저 씻으러 가보겠습네다!!"
시원하게 웃으며 말한 이지수가 내게 윙크를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윙크를 반대로 했다.
"왜 에이든 님에게 윙크하는 거예요! 이지수 님! 합체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금세 얼굴이 붉어진 서아가 언성을 높였다.
"서아 동무는 정말 고리타분합네다!"
서아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 이지수가 다시금 윙크하고 도망갔다.
물론 이번에도 윙크를 반대로 해서 서아에게 보였지만.
이지수의 윙크에 서아가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그... 에이든 님? 아무래도 혁명단이 지금 바쁜 시기이다 보니까... 그 혁명단 내부에서 그거는 조금 조심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서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거요? 어떤 거요?"
그런 서아의 모습에 장난기가 올라왔다.
"..아무튼 그거요!"
내 물음에 서아가 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서아의 분홍빛 입술을 보며 나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방에서 꽤 서아와 어울리는 새가 그려진 장식품이 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아가 시선을 돌려 내 손에 들린 장식품을 봤다.
"밖에 돌아다니다가 서아님 생각이 나서 샀습니다."
잔뜩 움츠려 있는 서아의 손에 장식품을 올려줬다.
"...예?! 제 생각이요?! 일단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이쁩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장식품을 보며 잠깐 입을 벌린 서아가 황급히 감사를 표했다.
장식품을 품에 소중하게 끌어안은 서아가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음.. 한 번에 안 되는 건가?
장식품을 주고 바지춤을 잡고 있었던 손을 내렸다.
아쉬움이 들기는 했지만, 아직 장식품은 많으니까.
미동도 하지 않는 서아를 보며 혀를 차고 방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이지수에게 줘볼까.
이지수에게는 두 개 줘야겠다.
서아는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한참이나 숨을 골라야 했다.
손에 쥐고 있는 눈부신 장식품이 자꾸만 서아의 가슴을 뛰게 했다.
'서아님 생각이 나서 샀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에이든 님의 목소리에는 진실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내 생각이 나서 샀다니
언제 에이든 님이 나를 이렇게까지...
남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서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고백이었다.
나는 에이든 님을 어떻게 생각하지?
그 생각에 서아의 심장이 다시금 두근거렸다.
서아는 잔뜩 뜨거워진 얼굴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지수의 윙크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여자와 에이든 님의 합체라니!!
절대 혁명단 내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아는 다급하게 에이든 방으로 올라갔다.
***
"응?"
방에는 온종일 보이지 않던 서윤이 침대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뭐"
불을 켜지 않아 방이 어두워 서윤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여기 내 방인데."
혹시 모르니까 슬금슬금 가방에서 장식품 하나를 꺼냈다.
"응 알아."
그런 나를 지켜보던 서윤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
가방에서 꺼낸 내 손에는 검 모양의 작은 장식품이 들려 있었다.
제법 서윤과 어울리는 장식품이었다.
몇 개 더 꺼낼까?
"그런데?"
혹시나 서윤이 대뜸 검을 휘두를까 봐 조심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여기 왜 왔겠어. 병신이야?"
서윤의 목소리에는 짙은 짜증이 담겨 있었다.
병신이라니.
말이 심하시네.
물론 상대가 미인이라 그다지 화나지 않았다.
"날 죽이러?"
침대 옆에 서자 서윤의 얼굴이 보였다.
눈빛은 평소의 날 볼 때처럼 경멸하고 있었지만, 굳어있는 얼굴과 묘하게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 애써 참는 듯하지만, 덜덜 떨고 있는 몸까지.
참으로 괴상한 모습이었다.
"..병신."
내 말에 서윤이 작게 웃으며 대뜸 뒤로 누웠다.
그러자 이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윤의 아래가 보였다.
서윤은 윗옷은 입고 있었지만,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저번에 봤던 털이 나지 않은 옅은 분홍색의 그것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달라며. 대주러 왔다. 시발. 빨리 끝내."
얼굴이 붉어진 서윤이 고개를 돌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씩 숨이 거칠어지며 몸이 뜨거워졌다.
"싫어? 싫으면 말고."
내가 반응이 없자 서윤이 나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서윤의 이마는 찌푸려져 있었다.
"싫을 리가."
오므려지는 서윤의 허벅지를 거칠게 잡아 벌렸다.
"윽!"
서윤이 작게 저항하며 잔뜩 붉어진 얼굴을 돌렸다.
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야"
순식간에 옷을 벗어 던지고 서윤의 위에 몸을 눕혔다.
"...뭐."
묘하게 겁먹은 서윤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선물이야."
그런 서윤의 입에 아까 꺼낸 장난감을 물리고는 몸을 강하게 밀었다.
읍!
고통에 일그러진 서윤의 얼굴을 보며 몸을 움직이는 데
똑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에 당황한 서윤이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서윤의 얼굴에는 고통과 흥분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그에 웃어주며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에이든 님?!"
하지만 밖에서 서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딸깍
"어디 가셨나? 어 열려있네?!"
열린 문 사이로 수줍게 웃는 서아의 얼굴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