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38화 (138/233)

〈 138화 〉 드숀의 사형.

* * *

똑똑똑­

에이든은 노크 소리에 무거운 잠에서 깼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 몸이 매우 개운했다.

꽤 쌓여있던 성욕을 풀어서 그런가?

"에이든 님 일어나셨나요­?"

그렇게 정신을 깨고 있자 문밖에서 부드러운 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일어났습니다."

잠긴 목을 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내가 준 장식품을 한 서아가 있었다.

­ 붉은색 티팬티.. 겉과 속이 다른 여자로군.

루나검의 말에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아.. 좋은 아침이에요­ 에이든 님!"

서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서아 씨는 아침부터 아름답네요."

아름다운 서아의 모습에 작게 감탄했다.

"아.. 감사해요! 이런 옷은 처음 입어봐서­ 어색하지는 않나요?"

살짝 얼굴이 붉어진 서아가 치마의 양쪽을 손가락으로 잡으며 물었다.

"네. 완전 잘 어울리는데요? 왜 안 입고 다녔어요?"

평소에 워낙 편하게 입고 다녀서인지 원피스를 입은 서아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그냥 바지가 편해서요.."

서아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오늘은 왜 원피스를?"

바지가 더 편한가?

치마도 편해 보이는데.

보기도 좋고.

"...그냥 입었어요! 식사하러 가실까요?!"

대뜸 언성을 높인 서아가 먼저 걸었다.

나도 그런 서아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그래도 치마를 입으니까 서아 씨의 명품 엉덩이가 안 보여서 아쉽네요."

치마도 보기 좋았지만, 그래도 바지를 입었을 때 서아의 명품 엉덩이가 더욱 탐스럽게 보였다.

"예에에?! 아니 왜 갑자기 그런!! 그.. 일단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닌가?!"

내 말에 서아가 화들짝 놀라며 횡설수설했다.

뒤에서 보이는 서아의 하얗던 목이 금세 붉어져 있었다.

언제 놀려도 반응이 좋은 여자였다.

진실­...

나를 힐끔 돌아본 서아가 어색하게 원피스의 치마 양쪽 끝부분을 잡더니 슬쩍 당겼다.

그러자 치마가 엉덩이에 딱 붙었고 가려져 있던 탐스러운 엉덩이의 형태가 드러났다.

"오­ 역시 명품 엉덩이입니다."

나는 그 모습에 크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서아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내 반응을 확인하고는 좀 더 치마를 잡아당기며 걸었다.

내가 반응을 할수록 서아는 치마를 더욱 밀착시켰고 식당에 도착할 때쯤에는 엉덩이 사이 골까지 보일 정도가 됐다.

"아아­.. 도착했네요!!"

서아가 치마를 놓고는 식당 문을 잡았다.

"서아 씨의 명품 엉덩이를 보다 보니 금방 왔네요."

내 말에 작게 웃으며 감사를 표한 서아가 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 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식당에는 이미 이름 모르는 사내들과 이지수, 천오, 강낭콩이 식사하고 있었다.

서윤은 보이지 않았다.

"에이든 동무! 일어났습네까!!"

이지수가 입에 있는 음식을 꿀꺽 삼키더니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아 작게 웃었다.

천오는 이상한 투명한 액체를 마시고 있었는데 잘 보니 기름 같았다.

"이쪽으로 오십쇼!! 에이든 동무!!"

이지수가 자신의 옆쪽에 있는 의자를 빼면서 내게 소리쳤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서아가 내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오­ 음식들이 진짜 맛있는데요?"

큼지막한 소세지들이 들어간 수프 맛에 감탄했다.

공화국 음식들은 대륙 아카데미에서 먹기는 했지만, 모두 너무 짜든지 매웠는데 이 음식들은 제국민인 내게도 맛있었다.

"...감사합니다­"

옆에서 서아가 작게 감사를 표했다.

"이거 다 서아님이 하신 거예요?"

서아의 반응에 놀라 되물었다.

"예­ 요리는 제가 하는 게 더 편해서.."

서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와. 이쁘고 몸매도 좋고 음식까지 잘하니 서아 님은 정말 부족한 게 없네요?"

나는 다시금 앞에 있는 수프를 떠먹으며 감탄했다.

"그.. 일단 감사합니다!! ...그래도 부족한 게 더 많은 걸요 저는."

서아가 붉어진 얼굴을 숙이며 작게 대답했다.

"에이든 동무!! 저도 요리할 수 있습네다!!"

이지수가 대뜸 포크를 식탁에 강하게 내려놓았다.

"...네가?"

이지수가 요리를 한다니.

먹어본 적은 없지만, 절대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모습은 아니었다.

"예!! 자고로 공화국 음식은 이렇게 계집처럼 적당한 맛이 아니라!! 사나이처럼 매콤하고! 짜고! 달아야 합네다!! 이것도 이렇게 먹는 게 아니라! 이렇게! 딱­ 국물을 넣어서 먹어야 맛있습네다!! 자자­ 에이든 동무도 한번 먹어보십쇼!"

이지수가 대뜸 앞에 있는 붉은 액체를 수프에 넣고는 스푼으로 휙휙 섞었다.

그러자 수프가 절대 먹고 싶지 않은 색으로 변했다.

"먹어보십쇼! 공화국 음식의 정수가 담겨 있습네다!!"

이지수가 내게 수프가 담긴 그릇을 내밀며 자꾸만 손을 휘저었다.

"이지수 님!! 제가 공들여 만든 음식을 그렇게 다 섞어 버리면 어떻게 해요!!"

서아가 이지수를 손가락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서아 동무는 음식 먹는 법을 모르는 게 확실합네다! 공화국 음식이란 자고로 이렇게 다 넣은 다음 섞어서 먹어야 합네다!!"

이지수가 이제는 이상한 색이 된 스프가 담긴 그릇을 내밀며 서아를 타박했다.

"그게 개밥이지 무슨 음식을 먹는 방법이에요!! 에이든 님 저런 건 먹지 마세요! 괜히 속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서아가 질린다는 눈빛으로 이지수를 보며 나를 잡아끌었다.

"자꾸 에이든 동무에게 젖 비비지 마십쇼!! 서아 동무만 젖 있는 줄 압네까?! 저도 큼지막한 젖이 있습네다!!"

잔뜩 인상을 구긴 이지수가 대뜸 내 팔에 자신의 가슴을 뭉개기 시작했다.

"젖이라니!! 그런 상스러운 단어 좀 쓰지 마요!! 그리고 제가 언제 젖을 아니아니! 가슴을 비볐다고..!! 어어?! 뭐 하는 거예요!! 떨어져요! 떨어져!! 에이든 님 입꼬리가 왜 올라가요!!"

서아가 다급하게 외치며 나를 더욱 세게 잡아끌었다.

"젖이 뭐 어때서 그럽네까!!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또 젖을 문대다니! 서아 동무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상여우입네다!!"

"아니아니!! 저는 비빈 적 없어요! 없다고요!! 그냥 이건 당기다가 부딪힌 거라니까요!!"

"이미 제게 다 간파당했습네다!! 발뺌해도 소용 없습네다!"

이게 식사 자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물론 양쪽에서 미인이 가슴을 뭉개는 게 싫진 않았기 때문에 안 말렸다.

"웩­"

조용히 이지수가 만든 스프를 떠먹던 천오가 다시금 뱉어냈다.

그렇게 한참이나 싸우던 둘이 이내 진정이 됐는지 다시금 떨어졌다.

나는 그사이에 여유롭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후으­ 그.. 방금 보신 모습은 잊어주세요.. 에이든 님.."

서아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내게 작게 속삭였다.

"예. 뭐 매일 보는 모습인데요."

나는 식사를 마치고 과일 종류를 먹었다.

망했어­

내 대답에 서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후아! 오늘도 제가 이겼습네다!! 보셨습네까?! 에이든 동무!"

이지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래 고생했다."

둘 중 누구도 승자가 아닌 게 분명했지만,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든 동무 어제 잠은 잘 잤습네까?"

이지수가 앞머리를 시원하게 쓸어 넘기며 물었다.

적당한 크기의 이쁜 이마가 드러났다.

"응. 서아 씨가 청소 도와줘서 완전 푹 잤지."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서아를 슬쩍 보며 말했다.

"아아앗!!! 그..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에요!!"

내 예상대로 서아가 발작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놀리는 보람이 있는 여자다.

"어떤 청소 말입네까?! 제 방은 이미 깨끗하던데.. 에이든 동무 방은 청소가 안 되어 있었습네까?"

이지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이지수 님은 몰라도 됩니다!"

내가 말을 하기 전 서아가 황급히 이지수에게 소리쳤다.

"에엑?! 에이든 동무에게 도움이 됐다면 저도 하고 싶습네다!! 그 청소라는 거!!"

누가 봐도 이상한 서아의 반응에 이지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안 돼요!! 안돼!! 에이든 님 청소는 제가 할 거예요!! 관심 갖지 마요!! 서윤도 있어서 둘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서아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식탁을 세게 내려쳤다.

과민하게 반응하는 서아를 보니 마냥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은 듯했다.

"진짜 이상합네다!! 뭔데 혼자만 하려고 합네까!!"

둘은 다시금 으르렁거리며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웩­"

나를 따라 과일을 입에 넣은 천오가 다시금 뱉어냈다.

"...근데 서아님 어제 무슨 큰일이 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문득 어젯밤 서아의 말이 생각나 물었다.

"에이든 님 청소는 내가 전담할 거니까! 관심도 갖지 마요!! 아­ 에이든 님."

이지수의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지르던 서아가 내 물음에 금세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맞다!! 청소 때문에 잊고 있었어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아가 이지수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이잇! 저도 알려 달라 말입네다!!"

대뜸 이지수가 서아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으윽... 그 에이든 님이 .. 악! 말씀하셨던 드숀 님이라는 분이 윽­ 공화국 수도에서 사형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거 놔요!!"

이지수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서아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지만, 중간중간 고통을 참지 못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지수님! 제가 상사라니까요 상사!!"

서아가 언성을 높였지만, 이지수는 들은 체하지도 않았다.

또 한참이나 투덕거리던 둘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어 말려야 했다.

"후으­후으­ 고마워요."

"하아­ 고맙습네다!"

연신 거친 숨을 가다듬는 둘에게 물컵을 하나씩 쥐여줬다.

"후­ 그런데 에이든 님 괜찮나요? 그 드숀이라는 분이 친구분 아니셨나요?"

서아가 배를 두드리며 앉아있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인가?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죠."

입에 넣은 자그마한 과일에서 상큼한 향이 퍼졌다.

"음­ 근데 친구분이 사형된다는데 괜찮아요?"

"사형 될 만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런 건가요?"

"제 친구라고 그런 짓까지 봐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아주 아수라장이 될걸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따로 구출할 생각은 없는 건가요?"

"굳이 범죄자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요."

"으음... 그렇군요."

"드­숑 동무는 과격하고 과묵하고 포악하기는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죄목이 무엇입네까?!"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이지수가 물었다.

"김재환 살인죄로 잡혀 들어가서 이것저것 다 뒤집어쓴 것 같던데요. 아! 여기 묻었어요."

서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내 입 옆에 묻은 것을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아­

맞다 그랬었지.

국가 주석의 아들을 죽였으니 사형당해도 할 말 없겠네.

문득 처녀교에 내가 납치되었을 때 드숀이 구하러 왔던 게 떠올랐다.

뻐킹 어글리 오렌지가 죽어도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묘하게 가슴이 가려웠다.

"수도에서 사형당한다고 했습니까?"

가려우면 긁을 수밖에 없었다.

"예. 거기에 저희 동무들도 잡혀들어간 상태여서 저희도 구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이제 혁명단도 본격적으로 활동할 생각이기도 하고."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생각해보니까 그 친구에게 제가 빚이 있어서요."

마침 혁명단도 같이 움직이니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도 가겠습네다! 드­숑 동무랑 친하지는 않지만!!"

이지수가 손을 들며 소리쳤다.

"웩­"

천오가 이번에는 뭔지 모를 것을 뱉어냈다.

***

"뭔가 다들 얼굴에 웃음이 없네. 옷도 다들 칙칙하고."

공화국의 수도는 모든 건물이 죄다 회색이었다.

수도라 그런지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수도에 옷 가게가 하나밖에 없는 듯 죄다 비슷한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미리 혁명단에서 배급받은 옷도 회색이었다.

중간중간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인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다행입네다!"

이지수는 옷이 작은지 가슴 크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었음에도 탄탄한 배가 드러났다.

그 갈색빛의 탄탄한 배를 슬쩍 보고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혁명단원들은 공화당의 의심을 피하고자 작은 단위로 수도에 들어가 사형장 주변에서 다시 모이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지금은 천오,나,이지수 이렇게 세 명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밀려가는 천오를 황급히 잡아당겼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이것저것 좀 사 먹어도 됩네까?!"

옆에 보이는 노점상에 이지수가 군침을 흘리며 물었다.

"그러지 뭐. 구경이나 하자."

어차피 다른 중요한 계획들은 위쪽에서 알아서 세울 테니 별문제는 없을 듯했다.

무엇보다 드숀을 구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역시! 에이든 동무! 혁명적인 판단입네다!"

내 말에 이지수가 눈을 빛내며 내 손을 잡고 노점상 쪽으로 향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걷는 천오를 놓지 않기 위해 허리춤을 잡아 들었다.

"이건 순대라는 겁네다! 이렇게 먹으면 맛이 일품입네다! 드셔보십쇼 동무!!"

이지수가 먹기 싫은 검은색의 음식을 내게 건네며 엄지를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음식들을 집어 먹었다.

그러던 중 가면을 팔고 있는 매대를 발견했다.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보다 가면이라도 쓰고 있는 게 혹시 나중에 발생할 귀찮은 일을 막아주지 않을까?

혁명단원들은 혁명이 실패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제국민인 나는 달랐다.

굳이 얼굴을 깔 필요가 없었다.

"가면 좀 사야겠다."

입에 잔뜩 뭔가를 쑤셔 넣은 이지수와 연신 토해내는 천오를 끌고 이동했다.

어서 옵쇼­

푸근한 인상의 사내가 인사했다.

"가면이라니­ 뭔가 혁명적인 생각입네다 동무!"

이지수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호랑이 모양의 가면을 잡았다.

천오는 토끼 모양의 가면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주물럭거렸고.

나는 그중 제일 험악해 보이는 인상의 푸른색 가면을 집었다.

"오­ 그건 도깨비 가면입네다! 도깨비란 자고로 공화국에서 유래되어­"

내가 집은 가면을 보며 이지수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한 귀로 흘렸다.

사내에게 돈을 지불하고 나오니 멀리서 큰 종소리가 울렸다.

혁명단에서 알려준 신호였다.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이지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우리 합체는 언제 합네까? 보통 큰일을 치르기 전에 합체를 하면 긴장을 완화해 준다고 하던데­ 저 진짜 많이 긴장됩네다..!"

들려오는 이지수의 말을 무시하고 토끼 가면을 입에 넣는 천오를 들었다.

움직일 시간이었다.

***

자신이 사형당한다는 사실을 계속 부정했지만, 결국 드숀은 억척스러운 손길에 마치 도살장에 가는 짐승처럼 끌려갔다.

다른 사내들도 죽음을 각오했다고는 하지만, 아까보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누구도 죽음 앞에 초연할 수는 없었다.

"자­ 여기 얌전히 있으라우. 쓰레기 같은 범죄자 놈들아."

드숀을 끌고 온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드숀과 사내들은 좁은 방안에 갇혔다.

정말 좁아서 드숀과 사내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만 했다.

앞에서 숨을 내쉬면 얼굴에 뜨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 좁았다.

"그 시간이 왔구만..."

"부디 대업이 성공하기를­"

"큭큭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이라도 더 할 걸 그랬네."

사내들이 잔뜩 굳은 얼굴로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좆같은 공화국."

드숀은 그런 사내들과 다르게 다리를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왜 여기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드숀은 아직도 의문이었다.

심지어 사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화국은 쓰레기 집단 아닌가?

쓰레기들에게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사형당할 생각에 드숀은 화가 잔뜩 났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제국의 귀족에 아카데미 학생이지 않은가.

자신은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

점점 사내들도 말수가 줄었고­

이윽고 방 안에는 분노한 드숀의 욕지기만 가득했다.

"제..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번만 용서해주면 다음부터는 절대 엘프들이랑 동시에 교미하지 않을게요!! 아니! 엘프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랑도!! 절대 교미하지 않겠습니다!!!"

점점 더 죽음이 가까워짐을 느낀 드숀은 방 밖을 향해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밖은 묵묵부답이었다.

다른 사내들이 그런 드숀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열심히 소리쳐도 밖에서 대답이 없자 드숀은 소리칠 힘을 잃었다.

제국민인 내가 공화국에서 반란죄로 죽는다니­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끝에 드숀은 소리 내며 엉엉 울었다.

이런 병신같은 이유로 죽는다니 드숀은 가슴에 쌓인 억울함을 눈물로 바꿔 쏟아냈다.

"은지야­ 먼저 간다! 미안하다!"

"흐윽­ 드디어 딸과 아내 얼굴을 볼 수 있겠구만­"

"제발 혁명이 성공하여 우리 자식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하기를­"

그리고 그 울음은 다른 사내들에게 전염이 돼 곧 방안은 눈물바다가 됐다.

사내들은 목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굳게 닫혀 있었던 문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 열렸다.

"자­ 형장에 이슬이 될 시간이다."

문을 연 사내가 이죽거리며 웃었다.

모든 눈물을 쏟아낸 드숀들과 사내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들은 마치 산책하러 가는 것처럼 묵묵하게 사내를 따라나섰다.

사내를 따라 그들은 나무 계단을 올라갔고 마침내 살벌한 단두대 앞에 위치했다.

이미 제법 많이 사용했는지 바닥에 지우지 못한 핏자국이 마구잡이로 그려져 있었다.

곧 죽을 드숀이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여기서 드숀이 발버둥 친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다만 드숀은 단두대 관리자가 성실한 성격이라 날을 날카롭게 갈아뒀길 바랄 뿐이었다.

시선을 돌리니 형장은 광장에 있는 듯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 드숀의 기분이 묘해졌다.

여행 코스에 단두대 체험이 있는 건가?

참으로 고약한 여행 코스임에 틀림없었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형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담긴 분노와 공포 그리고 슬픔을 드숀은 읽을 수 있었다.

그 뚜렷한 감정에 드숀은 다시금 울컥했다.

"드­숑. 앞으로."

자신들을 끌고 온 사내가 깨끗한 종이를 읽으며 손가락질 했다.

드숀은 발목에 감긴 쇠사슬 때문인지 무거운 걸음을 옮겨 단두대로 걸어갔다.

"자네와 함께해서 영광이었네 드­숑."

"비록 제국민이지만, 공화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자네의 고귀한 희생은 영원히 기억될걸세."

굳은 표정의 사내들이 드숀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을 것인데, 기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래도 자신의 죽음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드숀의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단두대의 옆에 있는 덩치 큰 사내가 드숀을 잡아끌어 단두대에 거칠게 눕히자 다 잊혔지만.

"반역자 드­숑!!! 김익한 수령 동지의 아들을 살해한 죄로 사형이다!!"

덩치 큰 사내가 광장 끝까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대체 내가 언제 살해를 했다는 것인지.

엘프들과 교미를 한 게 다인데.

변명이 목 끝까지 솟구쳤지만, 억지로 삼켰다.

어차피 여기서 말한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까.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모두의 안전을 지켜내며 만인을 평등하게 다스리는 공화당에 감히 제국민이 대적하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다니! 그 죄는 사형으로 다스려 마땅하다!"

사내가 우렁차게 소리치며 눈을 부라렸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사내의 눈치를 봤다.

여기서 작은 티라도 냈다가 잡혀간 사람들이 이미 한둘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질병 같은 사상을 지닌 이들이 공화국을 좀 먹고 있다! 그들은 입에 꿀 바른 헛소리를 하며 동무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정신이 똑바로 박힌 동무라면 지금 그대들이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집! 먹고 있는 음식! 들이 다 자비로운 공화국의 은혜인 것을 알 것이다! 다들 주변에 이들처럼 질병 같은 사상을 지닌 인물이 있다면 공화당에 제보하도록!"

조용한 광장을 사내의 목소리가 가득 채웠다.

사내의 뻔뻔한 말에 듣고 있던 드숀은 울컥 화가 치솟았다.

"자­ 그럼 공화국의 마지막 자비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도록."

한참이나 소리를 지르던 사내가 드숀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내의 말에 드숀은 자신의 마지막 말을 골랐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이기는 했지만, 그 마지막까지 볼품없을 필요는 없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숨죽이며 그런 드숀을 응시했다.

드숀은 그런 사람들을 훑어보며 고민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럴싸하게 들릴 것이다.

천천히 고르고 고른 말을 꺼냈다.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옷은 여러분이 만든 옷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집도 여러분들이 지은 집입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음식들도­ 여러분의 피와 땀으로 수확한 것들입니다. 공화당이 여러분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드숀은 그럴싸한 말을 뱉어냈다.

아무 말이나 한 것이지만, 말을 하다 보니 제법 괜찮았다.

제국은 아니지만, 공화국민들에게는 제법 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공화국이 자비를 베풀었건만!! 이슬이 되어라!!"

예상치 못한 드숀의 말에 당황한 사내가 황급히 단두대의 손잡이를 돌렸다.

"저 도둑놈들에게 더 많은 것을 빼앗기기 전에 분노 하십쇼!!!"

드숀은 황급히 말을 끝마쳤다.

기기기긱­!

드숀의 덩치보다도 큰 살벌한 칼날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떨어졌고­

그 기괴한 소리를 들으며 드숀은 참고 있었던 자신의 진정한 마지막 말을 외쳤다.

"에이든!! 이 개! 씨발! 좆같은! 머저리! 새끼!!!"

드숀은 가슴 안에 응어리처럼 웅크려있던 말을 시원하게 쏟아내고는 다가올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끼기기기긱­

콰아앙­!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오지 않았고 드숀의 위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질끈 감은 눈을 뜨고 위를 보니 내려오는 단두대 날을 익숙한 검이 막고 있었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검신과­

그 위에 새겨진 '루나 에이든' 이라는 글귀.

드숀은 혹시 자신이 이미 죽어 지옥에 오지 않았나 하는 합당한 추론을 했다.

에이든이라면 충분히 지옥에 있을 만하니까.

"어이­ 뻐킹 어글리 다잉 오렌지!!!"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광장 옆에 있는 높은 건물 지붕 위에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목소리로 드숀은 상대가 누군지 눈치챘다.

저 듣는 사람의 속을 살살 긁는 목소리­

이 모든 사태의 원흉 에이든이 분명했다.

"이...이 개새끼야!!"

드숀은 참지 못한 욕지기를 뱉었다.

"살고 싶냐­?!! 그럼 살고 싶다고 말­..."

분노하는 드숀에게 에이든이 놀리듯 소리쳤다.

그 얄미운 목소리에 드숀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졌다.

"당연히 살고 싶지­ 뭔 개 병신같은 질문이야!! 이 개 좆같은 호로 새끼야!!"

드숀은 에이든의 말을 자르며 자신이 아는 모든 욕을 뱉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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