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39화 (139/233)

〈 139화 〉 오줌싸개 드숀.

* * *

"히익­!"

지붕에 오르다가 가슴이 지붕의 끄트머리에 걸린 이지수가 넘어질 뻔한 걸 에이든이 황급히 잡아 끌어올렸다.

이지수는 왜 지붕에 올라와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일단 에이든의 말이니 믿고 따랐다.

집결 장소는 광장이라 다른 혁명단원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천오는 에이든의 등에 업혀서 편하게 올라왔다.

지붕에 올라 아래를 보니 바글바글하게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이지수는 묘한 기시감에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었다.

"이야­ 사람 진짜 많네. 야!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아래를 둘러보던 에이든이 기어 다니던 벌레를 집어먹는 천오를 황급히 말렸다.

에이든에게 벌레를 뺏긴 천오는 시선을 돌려 다른 것을 찾았다.

그런 둘에게서 시선을 돌려 단두대를 보자 이지수는 꾹꾹 눌러뒀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지수는 기억에게 급속도로 먹혔다.

'숨거라!! 어서! 밖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나오지 마! 알았느냐?! 그가 꼭 널 찾아올 테니까!'

언제나 침착하던 아버지가 처음 듣는 급박한 말투로 이지수에게 소리쳤다.

'...잘 지내야 한다. 아가.'

두꺼운 문을 닫으며 어머니가 서글픈 표정으로 웃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이게 마지막임을 직감한 이지수는 눈물을 참으며 억지로 웃었다.

'이 반동분자 새끼들­'

밖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참지 못한 부모님의 비명이 들렸다.

이지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말 때문에 나갈 수 없었다.

이지수는 그저 그 작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리며 숨을 죽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쾅쾅­

굳혀 있던 닫힌 문이 열리고 아버지의 동료들이 보였다.

'...우리와 같이 가자.'

굳은 얼굴의 사람들이 이지수를 부드럽게 안았다.

그렇게 이지수는 혁명단원들에게 거두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지수는 광장에서 잡힌 혁명단원들의 처형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면 안 된다. 가면 너까지 위험해져. 그들이 사람을 모아놓고 처형하는 것은 반응을 보고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을 찾기 위함이니까.'

혁명단원들이 그런 이지수를 완강하게 말렸다.

하지만 이지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밤바다 베개를 적실 정도로 부모님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지수는 처형식이 이루어지는 날 남들 몰래 광장으로 갔다.

사람들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단두대가 잘 보이는 위치까지 갔다.

단두대에 올려진 부모님의 얼굴은 이지수도 겨우 알아볼 정도로 상해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었고 어머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번에 처리할 모양인지 옆에 있는 사내가 하품하며 둘을 나란히 단두대에 눕혔다.

어!­ 읍...

소리치려던 이지수의 입을 누군가가 막았다.

옆을 보니 혁명단원 중 한 명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가끔 아버지와 술을 잔뜩 마시고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사내였다.

단두대 옆에 있던 사내가 큰 목소리로 부모님의 죄를 읽어내려갔다.

그에 동조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저 침묵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지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혁명단원에게 붙잡힌 상태라 움직일 수 없었다.

하나 남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는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한 번에 이지수를 찾아냈다.

이지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지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어머니의 입술에 집중했다.

'... 혁명해라­ 아가.'

앞의 말은 보이지 않았지만, 뒷말은 어렴풋이 알아챘다.

혁명해라­.

부모님의 얼굴이 나란히 굴러떨어졌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흉측한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피했다.

그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이지수가 울부짖으며 반항했고 혁명단원은 그런 이지수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궁금해해서 데려왔더니 너무 충격적이었나 봐요.'

물기 젖은 목소리로 주변에 사과하며 혁명단원이 이지수를 안았다.

급격하게 떠오른 기억들이 이지수의 머리를 휘젓고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살기 위해 억지로 묻어둔 기억들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진 이지수가 휘청였다.

"이지수!!"

천오의 손에서 벽돌을 뺏고 있던 에이든이 휘청이는 이지수를 황급히 잡았다.

에이든의 목소리에 이지수의 정신이 돌아왔다.

"...네 에이든 동무."

이지수의 목소리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젖어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에이든이 표정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런 에이든의 얼굴을 보며 이지수는 저 표정에 담긴 감정이 짜증과 걱정 중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지수에게 에이든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내였다.

"아닙니다. 너무 긴장한 것 같습네다.."

이지수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어지러운 머리를 다스렸다.

그날 이후로 처음 와 본 광장은 이지수에게는 너무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이든과 혁명단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안 좋으면 빠져. 걸리적거리니까."

아마 짜증인 듯했다.

거침없는 에이든의 말에 이지수가 작게 웃었다.

"야!!"

에이든이 또 뭔가를 입에 넣는 천오를 보며 소리쳤다.

"저 너무 긴장됩네다­ 에이든 동무."

이지수가 돌아서는 에이든의 등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큼큼­ 긴장될 게 뭐 있어."

에이든이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럴 때는 또 단순한 사내였다.

이렇게 젖을 비비면 금세 태도가 변하니까.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조차 입꼬리가 헤실거리고 있었다.

이지수는 그 모습에 작게 웃으며 몸을 더욱 밀착했다.

"그냥... 두렵습네다 저는."

굳이 남에게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니 자세한 말은 삼켰다.

"걱정하지 마. 다른 건 몰라도 네 가슴은­ 아니. 너는 지켜줄 테니까."

에이든이 부드럽게 이지수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지수는 태어나 처음으로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늘 무겁고 귀찮은 물건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이야.

"그리고 뭐 공화국 쪽도 지금 정신없다며. 제국군이 갑자기 움직여서. 별일 없을 거야."

에이든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 시작한다."

에이든이 활짝 웃으며 가면을 뒤집어썼다.

도깨비 가면은 에이든에게 제법 잘 어울렸다.

이지수도 호랑이 가면을 내려썼고 천오는 에이든이 직접 가면을 씌워줬다.

"자자 그럼. 우리 내기 하나 할까?"

에이든이 기분 좋은지 발로 지붕을 툭툭 치며 말했다.

"내기 말입네까? 어떤 거 말입네까?"

처음 쓴 가면이 조금 불편해 이지수는 몇 번이나 가면을 고쳐 썼다.

"드숀이 처형당할 때 오줌을 싸는지 안 싸는지로 말이야. 나는 싼다에 걸겠어."

에이든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설명했다.

"뭘 걸고 내기할 겁네까?"

이지수가 단두대를 응시하며 물었다.

"음­ 그냥 간단하게 소원 들어주기로 하자."

에이든이 작게 박수를 쳤다.

이지수는 순간 에이든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을 향한 걸 눈치챘다.

그 시선에 이지수는 몸이 뜨거워졌다.

그런 거라면 굳이 소원까지 안 쓰셔도 되는데­

"좋습네다! 그럼 저는 드­숑 동무가 혁명적으로 싸지 않는다에 걸겠습네다!!"

이지수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응? 너도 하고 싶다고? 너는 이제 선택지가 없는데?"

에이든이 천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천오가 에이든의 옷깃을 몇 번 더 잡아당겼다.

"으음­ 그래. 그럼 너는 둘 다 하는 거로 하자. 됐지?"

에이든의 말에 천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수는 말하지 않는 천오의 뜻을 이해하는 에이든이 신기했다.

"자자! 그럼 뻐킹 어글리 오렌지!! 어서 오렌지즙을 짜내라고!"

에이든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이지수의 긴장이 풀어졌다.

이지수도 기대를 하고 단두대로 시선을 돌렸다.

드­숑이 오줌이 싸지 않기를 바라면서.

덜덜 떨고 있는 드­숑의 얼굴을 보며 이지수는 패배를 직감했다.

"웩­"

"그건 또 왜 먹어!!"

둘의 모습에 이지수는 가면 밑으로 작게 웃었다.

***

"네 놈은 누구냐!!!"

드숀의 옆에 있던 사내가 큼지막한 도끼를 꺼내며 소리쳤다.

"히이이익­"

드숀은 사내가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칠까 봐 두려워서 비명을 질렀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무기를 빼 들며 지붕 위를 응시했다.

에이든 옆에 있는 가면 쓴 애들은 아마 이지수와 천오일 것 같았다.

이지수는 가슴 때문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병신인가. 이런 가면쓰고 형장에 난입했는데 뭐 하는 놈이겠어."

에이든이 특유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죽거리며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드숀은 그 모습에 기겁했지만, 에이든은 벽을 몇 번 짚더니 땅에 가볍게 착지했다.

땅에 착지한 에이든이 폼을 잡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가면을 쓰다듬는 것을 보니 방금 착지가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

"저 간나 새끼 잡으라우!!!"

어딘가에서 명령이 터져 나왔고­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병사들은 모인 사람들을 뚫고 에이든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그런 병사들을 피해 도망쳤고 광장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됐다.

"좆밥 새끼들! 애미 터진 새끼들!"

에이든이 욕지기를 마치 기합처럼 내뱉으며 주변에 모인 병사들을 말 그대로 쓸어 넘기고 있었다.

병사들은 에이든의 한 수조차 막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에이든은 정말 양 떼에 난입한 늑대처럼 병사들을 유린했다.

"하하하하!!! 재밌다 재밌어!"

에이든이 병사의 얼굴에 주먹을 쑤셔 넣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분명 올해 초만 해도 나처럼 쓰레기 같은 놈이었는데.

"그..뭐야­ 왜 이렇게 된 거지?! 이..일단! 혁명해라!!"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혁명해라!!"

그리고 그 말은 불씨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 말이 사람들 마음 속에 묘한 울림을 줬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이런 쓰레기 같은 빨갱이 새끼들!"

드숀의 옆에 있던 사내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드숀을 노려봤다.

"그­ 선생님? 원래 이럴 때는 기다려주는 게 도리인데­"

사내의 번들거리는 눈빛에 드숀은 황급히 주둥이를 놀렸다.

"빨갱이 새끼들이 도리는 무슨 도리! 야!! 네놈들 빨리 쓰레기들 머리를 베어라! 집행이 먼저다!"

사내는 에이든의 목표가 사형수들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명령을 내린 사내가 도끼를 하늘 높이 들며 우람한 팔뚝을 자랑했다.

"잠깐마아안요!!!"

드숀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에이든이 도착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남아있었다.

"크하하하!! 좆밥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니! 이거 완전 좆밥 세상이네! 덤벼라 좆밥들아!!"

아무래도 에이든은 병사들을 쥐어패는데 재미가 들린 듯했다.

심지어 이제는 단두대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좆밥 프레스!! 빨갱이 프레스!!"

에이든이 도망치는 병사를 기어코 잡아 땅에다 꽂아 넣었다.

"끼에에에엑­"

머리부터 땅에 박힌 병사가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질린 병사들이 슬금슬금 에이든을 피하고 있었다.

"뒤져라 빨갱이!!!"

사내가 도끼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살벌한 도끼가 빠른 속도로 드숀의 목에 다가왔다.

개 같은 에이든 새끼.

다가올 고통에 드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애써 엘프들의 가슴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떠올린 기억에서 영원토록 머물게 된다는 속설을 믿으며.

캉­

"일을 크게 만드는 재주는 진짜 대단하군."

묵직한 목소리가 들리며 이윽고 사내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천천히 눈을 뜬 드숀의 시선에 덩치가 매우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마치 강낭콩 같은 느낌을 주는­

"네가 그 드숀이냐?"

남자가 우악스럽게 드숀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드숀은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들었다.

"예예. 맞습니다! 제가 드숀입니다!!"

방금까지 드숀의 목을 날리려던 사내의 머리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내는 원통한지 목이 날아간 지금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저게 자신의 모습이 될 뻔했다는 사실에 드숀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일단 내려가지."

강낭콩 남자가 손에 들린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그에 드숀은 찔끔 놀라 몸을 움츠렸지만, 따로 느껴지는 고통은 없었다.

차르릉­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던 쇠뭉치가 잘려 있었다.

남자는 이어 드숀의 뒤에 부복하고 있던 다른 사내들의 구속구도 풀어줬다.

"...혁명단에서 나오신 겁네까?"

사내들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강낭콩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는 건... 혁명단이 이제­"

사내들이 머뭇거리며 다시 물었다.

"자세한 건 내려가서 설명해줄 것이다."

강낭콩 남자가 귀찮다는 듯 대답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드숀은 황급히 움직이지 않는 사내들을 지나쳐 강낭콩 남자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자 남은 사내들도 드숀을 따라 움직였다.

계단은 시체로 가득했다.

시체들에게 남겨진 거대한 검흔은 강낭콩 남자의 검과 일치했다.

쾅­!!!

그때 땅이 울릴 정도로 큰 폭발음이 들렸다.

강낭콩 남자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사내들과 드숀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져 이제는 계단을 뛰듯이 내려갔다.

마침내 계단을 다 내려와 밖으로 나왔을 때 보이는 풍경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위이이이잉!!!!"

사이렌이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큰 소리로 울리고 있었고.

일반 시민들은 비명 지르며 도망가고 있었다.

병사들과 회색 두건을 두른 사람들은 한대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고생하셨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습니다."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여자가 작게 웃으며 강낭콩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하얀 피부에 탐스러운 갈색 머리와 부드러운 얼굴에 풍만한 몸까지.

정말 완벽한 여성이었다.

드숀은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그게 다 저 녀석 때문 아닙니까."

강낭콩이 인상을 쓰며 병사들을 두셋 묶어 들고 다니는 에이든을 가리켰다.

"저희야 에이든 님이 시선을 끌어주니 더욱 편해졌죠. 그럼 급하니 빨리 갈까요?"

잠깐 에이든 쪽을 응시한 여자가 밝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여자의 미소에 심장이 두근거린 드숀은 주머니에 챙겨뒀던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

앞을 막던 병사의 복부에 기운을 실은 발을 먹였다.

병사가 흉하게 음식을 토해내며 땅에 뒹굴었다.

나는 곧바로 상체를 숙여 뒤쪽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한 다음 상대의 가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쿠레레레렉!"

상대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괴상한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쓰러진 녀석의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고 이동했다.

[머리를 뽑아 피를 마시게!!]

닥쳐 좀 시발.

기운을 돌리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드숀과 혁명단원들은 무사히 빠져나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좆밥들을 패느라 신나서 너무 날뛰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보다 약한 놈들과 싸움은 마약처럼 달콤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미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었고 몇 안 되는 병사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죽어­! 억."

뒤에서 내게 검을 휘두르던 병사 하나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쪽을 양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천오가 보였다.

또 뭔가를 주워 먹었는지 입에서 뱉어내고 있었다.

저저 시발 주워 먹지 말라니까­

나는 천오에게 손을 흔들어 감사를 표하고 다시 움직였다.

수도임에도 생각보다 병력의 질이 낮았다.

지금까지 최상급은 고사하고 상급조차 만나지 못했다.

정말 제국군 때문에 병력을 돌렸거나.

아니면 이쪽에 큰 관심이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공화국이 좆밥이거나.

그 덕분에 나는 나의 강함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드숀과 혁명단원들이 빠져나간 것을 보고 발을 크게 굴러 루나검을 회수하기 위해 단두대 쪽으로 움직였다.

단두대 주변에는 많은 병사가 쓰러져 있었다.

거침없는 검흔을 보니 아마 강낭콩이 한 짓 같았다.

나한테는 손속에 사정을 두라더니 지 새끼는 신나게 놀았네.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 단두대에 꽂힌 루나검을 회수했다.

­ 으음.. 검을 던지는 건 검사로서 옳지 못한 행동이네.

토라진 루나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니까 검이 너밖에 없는 걸 어떻게 해.

위에서 보니 광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많은 수의 병사들과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 중에는 혁명단도 제법 있는 듯했는데 다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부상자들은 혁명단에서 데리고 가고 사망자만 남은 건가?

"동무!! 여기입네다!!"

한 골목 앞에서 손을 흔드는 이지수를 보고 단두대에서 뛰어내려 움직였다.

"정말 굉장했습네다! 동무!!"

내가 다가가자 이지수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빨리! 움직이라우!!!"

광장으로 더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몰려 들어왔다.

검과 갑옷이 잘 관리된 것을 보니 원래 광장에 있던 병력보다 수준이 높은 것 같았다.

"저기다!!"

그중 하나가 우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병사들이 그 소리에 우리 쪽을 향해 뛰었다.

회색 갑옷을 입은 사내들이 잔뜩 달려오니, 마치 거대한 쇠가 굴러오는 것 같았다.

"가자!"

나는 천오를 한 손에 들고 뛰었다.

탕탕­

천오는 익숙하게 내게 안겨서 뒤쪽을 향해 손에서 뭔가를 쏘아댔다.

이지수는 뒤쪽에 뭔가를 뿌리면서 따라왔다.

"뭘 뿌리는 거야?"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신나서 뭔가를 뿌리는 이지수의 모습에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아­ 혁명의 씨앗입네다 동무!!"

이지수가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앞에 뛰쳐나오는 병사들을 처리하며 골목을 돌았는데­

콰아아아아앙!!!

뒤쪽에서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굉음이 들렸다.

"하하핫! 혁명의 씨앗이 벌써 발아를 했나 봅네다!"

이지수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소리쳤다.

방금 들린 굉음 때문에 귀가 먹먹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미친 시발.

폭탄은 또 어디서 구한 거야.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이 빨갱이 새끼­으억!"

앞쪽에서 뛰쳐나온 병사의 검을 피하고 머리를 잡아 벽에 찍어 눌렀다.

병사는 단번에 힘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우리는 그 위를 지나쳐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혁명단과 마주했다.

혁명단에는 내가 처음 보는 인물들도 제법 있었다.

아마 지원을 받았다고 하더니 저거인 듯했다.

"고생하셨어요 에이든 님."

서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으아아악!!

혁명단의 앞쪽에서 들리는 비명과 대조되는 미소였다.

점점 모이는 병사들과 혁명단이 격렬하게 뒤엉키고 있었다.

"예 뭐. 이제 어디로 갑니까? 야! 먹는 거 아니라고!"

내 허리띠를 입에 넣고 있는 천오를 말리며 물었다.

"서쪽 문으로 가면 됩니다."

서아가 고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운을 다시금 돌렸다.

지금까지 만난 병사들은 죄다 수준이 낮아 아직 몸도 제대로 안 풀렸다.

"에..에이든!!"

드숀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내게 다가왔다.

제법 고생을 한 모양이었는지 얼굴을 꾀죄죄했고 몸은 마른 상태였다.

원래도 볼품없는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형편도 없었다.

"드­숑 동무!"

옆에서 이지수가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이지수?"

드숀이 눈을 가늘게 뜨며 가면을 쓰고 있는 이지수를 쳐다봤다.

"맞습네다!! 건강해서 다행입네다! 드­숑 동무!"

이지수가 드숀의 어깨를 두들기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 내가 반란죄라는­"

드숀이 나를 보며 말을 흐렸다.

"반란까지 일으키려 하다니, 나도 뻐킹 어글리 오렌지가 그 정도의 담력이 있는 줄 몰랐네. 너 때문에 이게 뭔 개고생이야 시발."

버둥거리는 천오를 땅에 내려다주며 말했다.

"평민 네­ 네 놈이...!!"

내 말에 드숀이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중얼거렸다.

구해준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다니.

참으로 쓰레기 같은 인성이었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네다! 드­숑 동무!!"

이지수가 대뜸 큰 소리를 내며 드숀을 불렀다.

"네..?"

드숀이 불안한 눈빛으로 이지수를 봤다.

"오줌 쌌습네까 안 쌌습네까?! 드­숑 동무는 사내니까 싸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네다!!"

이지수가 큰 소리로 드숀에게 물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혁명단원들의 시선도 드숀에게 모였다.

드숀은 때아닌 관심에 눈동자가 방황했다.

"쌌습네까 안 쌌습네까?!! 맙소사 싼 겁네까?! 그깟 칼 좀 떨어진다고 개새끼마냥 오줌을 싸재 끼다니 정말 사내로서 실격입네다!"

이지수가 큰 소리로 거칠게 드숀을 독촉했다.

"안.. 안 쌌어!! 그리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드숀이 비명처럼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구라 치지마 시발. 쌌잖아."

"안 쌌다고!!!"

드숀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헤헤헤­ 안 쌌다고 합네다 동무."

이지수가 바보처럼 웃음을 흘리며 에이든을 뜨거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그 불타는 시선이 못내 불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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