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맛없는 위스키.
* * *
삐이이이이
저쪽이다!
서쪽 문이 뚫렸다!!
주변에서 들리는 병사들의 소리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쉽게도 사내와는 아직 결판내지 못했다.
내 회복력을 알아챈 사내는 절대 허투루 공격하지 않았고 틈을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사내의 검은 내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고 내 검도 사내에게 닿지 않았다.
다만 흐트러진 사내의 숨소리가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병사가 도착할 때까지는 사내를 해치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쪽입네다!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네다!!
이제 거의 바로 옆에서 병사들의 외침이 들렸다.
시발 좆같네.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이길 것 같은데 말이야.
"흠 아무래도 곧 낭만 없는 방해꾼들이 몰려오겠군."
사내가 끝이 베어진 중절모를 고쳐 쓰며 말했다.
내가 중절모를 베어냈을 때 사내는 마치 몸이 베인 것처럼 고통스러워 했다.
"좆같은 새끼. 말투 개 좆같네."
입에 잔뜩 고인 피를 뱉어냈다.
입은 이미 수분기가 하나도 없어서 모래를 씹은 것처럼 퍽퍽했다.
신성력이 다시금 내 몸을 치료하며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생사결에 다른 사람의 난입은 낭만이 없으니 어떤가? 술이나 한잔 할 텐가?"
사내가 검을 집어넣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나는 도망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후
거친 숨을 가다듬고 사내를 따라 걸었다.
사내는 건물 옆에 있는 허름한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사내를 따라갔다.
술집 내부에는 물먹은 나무 냄새가 짙게 풍겼다.
몇몇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내들이 곳곳에 앉아 조용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고 잔잔한 기타 소리가 들렸다.
"가면은 벗는 게 좋을걸세. 그 가면은 이미 널리 퍼졌을 테니."
사내가 문 옆에 있는 고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가면을 벗어 옆에 나란히 걸었다.
"크음 오랜만이군. 용케도 살아있었구만."
카운터에 있는 흰 머리 지긋한 점원이 반쯤 뜬 눈으로 사내를 보며 인사했다.
"자네도 살아있는데 나라고 못 살까. 위스키로 부탁하지."
사내가 카운터 앞에 있는 둥그런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자네는 뭐로 하겠나?"
점원이 나를 보며 가래침 끓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같은 거로."
왠지 사내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같은 걸 주문했다.
위스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좀 태가 났다.
"위스키는 낭만의 술이지."
사내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 좆같은 낭만 좀 그만 씨부리지."
나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자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조금 덜해졌다.
아직 내 반대 손은 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여기 있네."
점원이 사내와 내 앞에 각각 허름한 술잔을 놓았다.
술잔에는 마치 석양을 녹인 듯한 갈색 액체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남자에게 낭만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네."
사내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그 낭만 타령을 하고 있구만. 크하하"
점원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웃고 돌아갔다.
나는 사내를 따라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언뜻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게 맛이 괜찮을 거 같았다.
사내를 따라 입에 한 모금 넣자
애미 시발 존나 맛없어.
입과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당장에라도 뱉어내고 싶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홀짝이며 마시는 사내의 모습이 내게 경쟁심을 부추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뱉으면 내가 지는 것 같았다.
"크흠 괜찮군."
나는 자꾸만 구겨지는 표정을 억지로 피며 잔을 내려놓았다.
"낭만의 맛이지."
사내가 술을 음미하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낭만은 무슨 씹 좆같은 맛인데.
우리는 침묵 속에서 천천히 잔을 비워나갔다.
잔잔한 기타 소리만이 술집을 채웠고
잔이 다 비워질 때쯤 주변에 들리던 소리가 한결 작아졌다.
"그럼 가지. 아 이 술은 내가 사겠네."
사내가 비워진 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는 금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비싼 술이네.
나도 타들어 가는 목을 애써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동안 신성력을 계속 돌렸기 때문에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들어온 문과 반대 방향 문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술집에서 창고처럼 쓰는지 작은 공터가 있었다.
어느새 해는 세상과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사내는 말 없이 검을 뽑아 나를 가리켰고.
그에 나도 루나검을 뽑아 사내에게 내달렸다.
사내의 검과 루나검이 다시 한번 얽혔다.
***
나는 잘린 팔을 낑낑대며 맞췄다.
대충 면을 맞추고 신성력을 돌리자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며 팔이 붙었다.
진짜 좆같네.
잘린 면이 매우 깔끔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맞추기 꽤 번거로웠을 테니까.
"괴..물이군. 쿨럭"
피범벅이 되어 벽에 기대앉아있는 사내가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그런가."
하긴 잘린 팔을 스스로 붙이는 게 정상은 아니지.
언제부턴가 이런 일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살짝 두렵기는 했다.
"쿨럭! 뭐 무슨 상관인가. 자네의 낭만이 내 낭만보다 강했을 뿐. 내가 졌네."
사내가 옆에 떨어진 중절모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워 머리에 썼다.
중절모는 이미 여기저기가 베어져 흉했지만, 사내는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후으
이번에는 왼쪽 다리에 건너편이 보일 정도로 크게 난 구멍을 메꿨다.
신성력을 악착같이 돌리자 흉했던 상처가 점점 메워졌다.
물론 불타는 것처럼 뜨거운 통증은 아직 남았지만, 참을만했다.
그렇게 몸에 있는 상처들을 하나하나 치료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럼증에 잠깐 몸이 흔들려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사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그 눈에는 약간의 후회와 후련함이 담겨 있었다.
"자 이쪽을 베면 되네. 되도록 한 번에 부탁하네."
사내가 수염이 듬성듬성 난 목을 내게 보였다.
그 모습에 검을 잡은 손에 잠깐 힘이 들어갔지만, 흥이 나지 않았다.
사내의 목은 별로 베고 싶은 형태가 아니었다.
"술값 대신이라고 생각해. 물론 좆같이 맛없는 술이었지만."
피가 잔뜩 묻은 루나검을 서아가 준 손수건으로 닦았다.
손수건은 이제 원래 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비싼 술이기는 하지."
사내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자꾸만 흐릿해지는 정신을 깨우고 걸음을 옮겼다.
걸음이 물을 잔뜩 먹은 것처럼 무거웠다.
"...혁명단 내부에서 정보가 샜네. 지금 가면 위험할걸세."
다시 고개를 숙인 사내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위험이라 뭐 새삼스럽게."
후 거칠어진 숨을 애써 누르며 숨을 골랐다.
"그렇군. 내가 오해했네. 자네에게는 나보다도 뜨거운 낭만이 있네."
사내가 입에서 피를 토해내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좆같은 낭만은 무슨 시발.
끝까지 이어지는 사내의 낭만 타령에 피식 웃으며 술집 문을 향했다.
"사실 위스키는 나도 맛없었네."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사내의 눈은 저멀리 지고 있는 해를 보고 있었다.
맛없는 술 두 잔에 금화 2개를 지불하다니.
참 피곤하게 사는 새끼네.
물론 그 덕분에 위기를 넘겼지만.
나는 냄새나는 술집 문을 힘주어 밀었다.
"부디 낭만이 계속 자네와 함께하길"
물론 낭만은 수명을 긁어먹지만...
닫히는 문 사이로 사내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술집 안은 아까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사내들 앞에 놓여있던 술잔이 아까보다 좀 더 비워져 있어 시간이 꽤 지났음을 알았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운터로 갔다.
"음 뭐로 마시겠나?"
점원이 피투성이가 된 나를 훑어보더니 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런 점원의 두 손은 카운터 아래에 내려가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총이라도 숨겨뒀나.
"살아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모래 맥주로."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다른 손으로는 검 손잡이를 매만졌다.
"모래 맥주라 술 마실 줄 모르는군."
점원이 인상을 쓰고는 큼지막한 맥주잔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럴지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맥주잔을 들어 시원하게 마셨다.
목이 타는 갈증이 가라앉았다.
"크 시발 이게 술이지. 그런 개 좆같은 거 말고."
나는 단숨에 술을 다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값은 밖에 있는 새끼가 낼 거야."
굳은 얼굴의 점원에게 말하고 돌아섰다.
뒤쪽에서 황급히 뒷문으로 달려가는 점원의 발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술값을 받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 듯했다.
나는 문 옆에 걸어둔 가면을 품 안에 챙기고 두꺼운 술집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자 해가 세상의 끝자락에 걸려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낭만이라
이상하게 입에 붙는 단어였다.
***
대지신 교에서 성녀의 위치는 애매했다.
성녀 자체가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아닐뿐더러
신에게서 직접 선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경력이 짧은 사람도 성녀로 지목되곤 했다.
그래서 성녀의 집회 호출에 추기경과 교황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성녀이기는 하지만 수장인 자신까지 호출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다가도 그 상대가 대지신 님의 선택을 받은 성녀이니 또 거부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한참이나 고민하던 셋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별것 아닌 이유로 호출 한 거라면 이 기회에 한 소리 하기로 결심하고.
"아무리 그래도 교황님까지 호출이라니 쯧... 대지신 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말입니다.."
크흠
묘하게 속을 긁는 추기경의 말에 교황이 헛기침했다.
"로버트 추기경과도 연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더 기고만장해서 행동하는 것 아닐까요?"
옆에 붙은 다른 추기경도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됐네! 이 사람들아. 대지신님이 선택하신 성녀님 아니신가. 잔말 말고 가세. 그 이유가 중요하겠지만"
교황의 불편한 얼굴에 추기경들이 냉큼 입을 다물고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셋은 본당의 제일 큰 예배당에 도착했다.
예배당 안은 이미 신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성녀가 열심히 활동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의 신도를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 모습이 마치 대지교 내에서 성녀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득 찬 예배당에 셋은 침음성을 삼켰다.
신도들은 교황과 추기경들이 등장했음에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그 큰 예배당의 끝에 그 유명한 성녀 안드레아가 서 있었고 그 뒤로 수녀 네 명이 서 있었다.
"...외모는 진짜 신이 내려온 것처럼 아름답기는 합니다. 성스럽기도 하고."
"조용하게! 지금 그게 무슨 불경한 말인가!"
교황이 감탄하는 추기경을 혼내고 시선을 돌렸다.
안드레아 성녀의 시선이 잠깐 교황과 추기경들에게 갔다가 다시금 돌아갔다.
"...아"
성녀의 작은 목소리에 약간은 소란스럽던 예배당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툴툴대던 추기경들도 입을 닫고 안드레아 성녀를 응시했다.
"신탁을 받았습니다."
안드레아 성녀가 눈을 감더니 양손을 앞에 모았다.
그러자 성녀의 뒤로 성녀의 증거인 순백의 날개들이 영롱한 빛을 뿌리며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한 쌍이었는데 어느새 세 쌍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교황과 추기경들은 침을 삼켰다.
진짜로 대지신 교에서 완전한 성녀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어떤 신탁이었습니까!"
교황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소리쳤다.
안드레아 성녀가 교황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고귀함 넘치는 시선에 교황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화국의 수장 김익한이..."
안드레아 성녀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공화국이라니?
갑자기?
사람들 얼굴에는 금세 의문이 떠올랐다.
"악마에게 씌웠다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안드레아 성녀는 그 어느 말보다 무거운 말을 마치고 눈을 다시 감았다.
잠깐 정적에 잠겨있던 예배당이 금세 난리가 났다.
악마라는 단어는 모든 종교에서 의미가 컸지만, 대지신 교에서는 유독 컸다.
이전에 한 번 악마가 침공했을 때 대지신 교의 본당이 무너질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악마라니!! 태워버려야 합니다!!"
"당장이라도 쳐 죽이러 가야 합니다!"
"그러니 공화국 놈들이 그렇게 안하무인하고"
사람들이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잠까안"
교황이 신성력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조용히 만들었다.
그에 소란이 점점 잦아들어 모두가 교황을 돌아봤다.
"이런 무례한 질문드려 죄송하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방금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교황은 살면서 지금 하는 말이 제일 무겁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다시금 안드레아 성녀의 붉은 입술에 집중했고
"예. 사실입니다. 대지신 님이 제게 신탁을 내려주셨습니다."
안드레아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빛을 뿜어내는 세 쌍의 날개가 펄럭거리며 안드레아의 말에 신뢰를 더했다.
"성기사들과 수녀, 성직자들을 모아라!!!"
안드레아의 말을 마침과 동시에 눈에서 불을 뿜어내는 교황이 소리쳤다.
"감히 악마가 뻔뻔하게 인간을 다스리고 있다니! 그들의 머리통을 부숴 대지신에게 바치리라!"
교황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예배당은 금세 들끓는 분노로 가득 찼다.
그들은 손에 들린 법전이나 성물들을 굳게 움켜쥐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드레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성전의 시작이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걔 악마 아니야.. 아닌가? 또 모르잖아. 잡아서 머리를 터뜨리면 또 대박 포인트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맞아! 성녀의 말이 맞다!! 대지신이 공언하노라 그 김익두? 김익한? 인가 뭐시기는 악마다!! 잡아서 내 포인트로 만들어라!! 아니면... 말고?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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