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42화 (142/233)

〈 142화 〉 공화국 좋아요우.

* * *

"거기! 멈추라우!"

앞쪽 골목에서 두 명의 병사가 걸어 나왔다.

한 명은 덩치가 제법 컸고 나머지 한 명은 보통이었다.

얼굴에 귀찮음을 잔뜩 띤 그들이 내게 손짓을 했다.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나는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천천히 다가갔다.

"밖으로 나오지 말란 말 못 들었나?"

키가 보통인 사내가 하품을 쩍­ 하면서 물었다.

어쩐지 밖에 병사들만 보이더라니.

일반 시민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군.

"뭐야? 왜 대답 안 하나?"

사내가 인상을 쓰며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옆에 있는 덩치 큰 사내는 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일단 둘의 경계를 풀어야 했다.

나는 이지수를 생각하며­

공화국 사람이라면 뭐를 제일 좋아할지 고민했다.

"아아­ 죄송하우입네다!"

나는 황급히 어리숙한 말투로 대답했다.

"외국인­?"

사내 둘이 내 반응에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예에­ 공화국 좋아요우!"

최대한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양 엄지를 들어 보여줬다.

"크흠.. 그렇지! 공화국은 대륙 최고라니까! 자네 어디서 왔나?"

덩치 큰 사내가 금세 친절한 미소를 띠며 내게 물었다.

"제국에서 왔어요우­ 어머니가 공화국 분이시라! 공화국이 제국보다 훨씬! 비교도 안될 만큼! 좋아요우!"

그들에게 말을 건네며 주변을 확인했다.

두 놈이 농땡이 치고 있었는지 주변에 다른 인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제! 그렇제! 그 허여멀건하고 건방진 제국보다는 우리 공화국이 최고지라! 뭘 좀 아는구만 이 친구가!"

사내들이 금세 함박웃음을 띄며 내게 다가왔다.

"냉면 좋아요우! 사랑해요! 공화국! 파전 좋아요우! 막걸리 좋아요우!"

나는 최대한 드숀같은 표정을 지으며 공화국에서 먹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래그래! 혹시 부대찌개는 먹어봤는가­? 외국인들이 그거 먹으면 껌벅 죽는다 카던데!"

덩치 큰 사내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근하게 물었다.

"부대찌개 좋아요우! 다 섞어 먹는 거 좋아요우! 다 섞어 먹어요우!"

나는 간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보며 고민했다.

지금 처리할까?

"그렇지! 부대찌개가 최고라니까! 그런데 자네 왜 지금 돌아다니고 있나? 지금 돌아다니다가 잡히면 곤욕을 치를 텐데!"

보통 키의 사내가 호의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오우­ 어머니가 아프셔서 성 밖으로 나가야 해요우­"

나는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사내에게 애원했다.

"크흠­ 지금 비상 상황이라 성 밖에 나가는 건 불가능하네... 일단 모든 성문은 막혔으니까. 나가려다가 잡히면 큰일날수도 있고..."

보통 키의 사내가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벅벅 긁었다.

이미 모든 문이 막힌 상태라니.

일반적인 방식으로 나가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안 돼요우­ 어머니는 혼자 계신단 말이에요우­ 제가 지금 약을 드리지 않으면 어머니까지..."

나는 최대한 슬픈 생각을 하며 사내에게 매달렸다.

"그.. 그렇게 부탁해도 우리도 어쩔 수 없다네­"

사내가 매달리는 나를 난처하다는 듯 보며 말했다.

"어떻게 안 됩니까?! 우리 어머니는 홀로 공화국으로 돌아와 수십 년을 봉사를 하며 사신 분이에요우! 어머니도 부대찌개 좋아해요우!"

순간 나도 모르게 또박또박 말했지만, 사내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크흠... 그 종수. 우리 거기가 있지 않나?"

"하지만 거기는 우리 둘만 쓰는 곳 아닌가!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쓰다가 걸리면­"

"저렇게 바른 청년의 효심을 무시하고도 우리가 밤에 잠을 잘 수 있겠나? 그리고 저 청년은 반뿐이래도 공화국민 아닌가!"

"음­ 공화국민끼리는 도와야 되지만..."

내 매달림에 사내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눈물을 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일단 그렇게 하지. 자네 따라오게나."

잠시 뒤 토론을 마친 사내 둘이 나를 불렀다.

나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준비하며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가끔 쓰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자네에게 특별히 사용하게 해주지. 물론 단 한 번일세! 알았나?"

보통 키의 사내가 인상을 굳히며 내게 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화국 사람들 너무 따뜻해요우! 사랑해요우­ 공화국!"

"하핫! 그래 공화국 사람들끼리 서로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는가! 자네도 어머니가 공화국이니 공화국민이라고 봐도 무방하네!"

"그렇지! 그런 제국놈 피보다 우리 공화국의 피가 더 진하니까! 자! 어서 가자고!"

호구 두 명이 신나서 떠들며 나를 안내했다.

사내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은 성벽이었다.

그중 쓰레기 같은 것들로 가려진 곳이 있었다.

사내들은 그 앞에 서서 익숙하게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레기들이 다 치워지자 작은 땅굴이 보였다.

"여길세! 이리로 오게나."

쓰레기를 치우느라 힘들었는지 사내들이 땀을 닦으며 나를 불렀다.

"반밖에 섞이지 않았어도 자네는 공화국 사람일세!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공화국민다운 자네의 효심을 잊지 말게나!!"

사내들이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땅굴 쪽으로 밀었다.

"오우! 공화국 사람들 너무 착해요우­ 어머니에게 꼭 전해드릴께요우!!"

그런 그들을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웃는 낯으로 바꾸고 마주 인사했다.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겠지.

찝찝할 것 같기도 하고.

"하핫! 빨리 가게!"

사내들의 인사를 받으며 땅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술을 들여오던 용도였는지 땅굴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축축한 흙과 냄새를 참으며 몸을 움직여 땅굴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와 몸에 묻은 흙을 털고서 기운을 운용했다.

앞에는 푸른색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뒤 조금 더 멀리 울창한 숲이 보였다.

어느 정도 돌아온 기운을 터뜨리며 빠른 속도로 초원으로 달려갔다.

발이 비명을 질렀지만, 아직 더 움직일 수 있다.

안수성으로 가면 되겠지.

"자네들 어디 갔다 오는가!! 지금 난리 난 거 모르나?!"

다시 구역으로 돌아간 종수, 종남은 애탄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동국을 만났다.

"으음... 알지­ 사형수들이 탈출했다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곧 다시 잡힐.."

"말조심하게!! 지금 그 사형수들을 탈출시킨 혁명군 때문에 지금 난리네! 심지어 혁명군 중에 이미르 님을 이긴 놈이 존재한다더군. 아마 수도에서 못 나갔을 거라고 하던데.. 자네들도 눈이 찢어지고 약간은 비열하게 생긴 놈을 보면 무조건 보고를 올리게! 사안이 전에 없이 중하네 지금!!"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설명하는 동국을 보며 종수, 종남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음... 그 눈이 찢어지고 약간은 비열하게 생긴 놈이 이미르 님을 이겼다고 했나?"

종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네! 그놈은 특별 위험인물이라 마주치면 섣불리 달려들지 말고 상부에 보고를 올리라고 지시가 내려왔네. 자네들도 빨리 구역으로 돌아가 순찰하게! 나는 자네들이 상황도 모르고 또 이렇게 농땡이 피고 있을까 봐 알려주러 온거 니까!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말을 마친 동국이 헐레벌떡 돌아갔다.

남겨진 종남과 종수는 찝찝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그놈... 눈이 찢어졌지?"

".. 비열하게 생기기도 했지."

"아까 보니까 옷 끝에 피가 묻어있던 거 같은데.."

"왜 말 안 했나!! 나는 못 봤네!"

"그냥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은 줄 알았지! 왜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건가!"

"자네가 먼저 언성 높이지 않았나!"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근데 그런 놈을 우리가 탈출시킨 건가? 심지어 밀반입하는 통로로?"

"... 비밀로 하는 게 맞겠지?"

종남과 종수는 서로를 보며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머니가 아프다는 것도 거짓인감..?"

종남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에이 설마 그러겠나. 아무리 쓰레기 같은 놈이라도 자신의 부모를 걸고 거짓말하겠나? 어차피 우리 둘만 아는 일이니, 별일 없을걸세!"

종수가 종남의 말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둘이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

끼리리리­

울창한 숲속에서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추라우!!!"

앞쪽에서 병사 무리가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지쳤다.

좆같은 공화국 놈들은 정말 앞쪽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아마 혁명단을 뒤쫓던 놈들 같은데...

이들을 계속 마주친다는 것은 내가 가는 방향이 옳다는 건가.

이를 악물고 다시금 기운을 터뜨려서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기운을 돌리자 물 먹은 것처럼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막아라!! 푸른 도깨비다!!"

병사들이 이상한 소리를 외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전부터 자꾸 저런 이름으로 부르던데.

잡다한 생각을 하며 병사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막아! 끄아아악!"

"너무 빠르다!! 우리로는 역부족­!!"

병사들의 검은 내게 너무 느렸고 내 검은 그들에게 너무 빨랐다.

물론 그와 별개로 계속되는 전투로 축적된 피로가 내 정신을 자꾸만 흐리게 했다.

"막아라!!"

제일 가까이 있던 병사가 방패를 들어 올리며 내 앞을 막았다.

­ 어디 이런 쓰레기로 이 몸을 막으려고!

기운을 돌린 루나검이 병사와 방패를 한 번에 베어 넘겼다.

흩뿌려지는 병사의 피가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피를 마셔라­ 그럼 체력이 돌아올 것이다.]

필요 없어. 그런 비린 거 안 마셔도 충분하니까.

"죽..죽어라!!"

잠깐 흐려진 정신 사이로 병사가 찌른 검이 내 배를 통과해 앞쪽으로 튀어나왔다.

입에서 피가 울컥 나오려고 했지만, 억지로 삼키며 병사의 목을 베었다.

병사의 목이 깔끔하게 베였고 원통함에 가득 찬 병사의 얼굴이 땅을 뒹굴었다.

배에 생긴 이물감에 인상을 찌푸리며 깊게 박힌 검을 뽑았다.

극심한 통증에 흐릿했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 사..사도야! 이제 포인트가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신중하게..

닥쳐 시발 내놔.

­ 히끅! 그래도 내가 신인데..

재깍재깍 내놓으란 말이야 시발.

다시금 차오르는 신성력을 돌려 상처를 치유하고 검을 다시 쥐었다.

"괴...괴물!!"

옆에 있던 병사가 뒷걸음질 치며 말을 더듬었다.

괴물이라.

"그럴지도­"

병사의 심장 부근에 검을 찔러넣으며 옆으로 밀었다.

옆에서 내게 검을 찔러넣던 병사까지 한 번에 베여 쓰러졌다.

뒤쪽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며 몸이 휘청였다.

이를 악물고 흔들리는 다리를 멈춘 다음 뒤쪽을 베어냈다.

또 하나의 병사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쓰러졌다.

떨어진 체력과 정신력 때문에 이런 좆밥들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자꾸만 상처가 늘었다.

"끄으으윽­"

마지막 남은 병사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으며 잠깐 숨을 골랐다.

몸이 극심한 통증과 피로에 비명을 질러대며 쉬기를 간청했지만, 아직 멈출 수 없었다.

병사에게 박혀있던 검을 뽑자 시원해 보이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그 모습에 잠시 침이 고였지만, 억지로 몸을 돌렸다.

나는 아직 더 걸을 수 있었다.

[아니 이제 곧 한계다.]

뭐래 병신이.

신성력이 몸을 돌며 상처들을 어루만졌지만, 전보다 회복 속도가 느렸다.

그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에 생긴 구멍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시발 내 아까운 피.

자꾸만 흐릿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깨우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피이이잉­

파공음이 들리며 뭔가가 날아왔다.

나는 바로 반응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날아온 화살은 내 어깻죽지를 뚫고 들어갔다.

다행히도 왼쪽 어깨였다.

이제는 거의 바닥을 보이는 기운을 억지로 움직여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나무 위에 얼굴에 초록색까지 칠한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내가 손에 들린 활에 다시금 화살을 메겼다.

후­

작게 숨을 내뱉으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활을 팽팽히 당긴 사내가 나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피이이잉­

사내의 손을 떠난 활이 다시금 내 얼굴을 노리며 쏘아졌고 나는 왼손을 내밀었다.

활이 왼손을 파고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어 그 통증을 무시하며 사내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가슴팍에 루나검이 박힌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딜 쪼개 개 좆밥 새끼가."

나는 그런 사내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물론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튀어나와 힘들었지만, 조롱은 참을 수 없었다.

이게 내 진통제니까.

쿵­

사내의 숨을 멈추는 걸 확인하자 내 다리에 힘이 풀렸고 나는 나무에서 떨어졌다.

등으로 떨어져 내 어깨를 관통했던 화살이 다시금 살을 파고들었다.

애미 시발 존나 아파.

후우­

몸이 휴식을 종용했지만, 나는 억지로 다시 일어났다.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후들거렸고 통증이 내 의식을 멀게 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시야가 마치 안개 속에 들어온 것처럼 뿌예졌다.

그래도 저 새끼가 척후병 같으니까.

조금만 더 가면 혁명단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뿌드득­

다리가 불길한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다행히 움직였다.

[피를 마셔라­]

여자 피도 아니고 남자 피를 왜 마셔 좆같은 새끼야.

크윽­

순간 정신이 흔들려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었다.

시발 골 아프니까 말 시키지 마.

"...."

그렇게 악착같이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검은 후드를 눌러쓴 사람이 앞길을 막았다.

후드를 벗은 상대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시야는 뿌옇고 귀는 먹먹했다.

적이겠지.

나는 습관적으로 검을 찔러넣었고 상대는 손쉽게 튕겨냈다.

루나검이 튕겨 나가 땅에 나뒹굴었다.

나는 그 한 수에 상대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발 그냥 피 마실걸.

막상 마시면 또 맛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무리 빨리해도 느린 후회를 하며 몸에 힘이 빠졌다.

"...."

상대가 쓰러지는 나를 포근하게 받아서 안았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쇠 냄새 섞인 진달래 향이 맡아졌다.

어디서 많이 맡은 냄새인데?

사제­

아 그렇군.

나는 부드러운 키아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정신을 놓았다.

***

널찍한 회의실 안에 빨간 베레모를 쓴 인물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종이를 읽었다.

잠시 뒤 큼지막한 회의실 문이 열리고 김익한 수령이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김익한의 등장에 헐레벌떡 일어나 깊게 고개를 숙였다.

김익한은 회의장 중간 다른 의자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의자에 당연하다는 듯 앉았다.

"바로."

회의장을 훑어본 김익한이 낮게 중얼거렸다.

"바로!"

그에 옆에 있던 사내가 따라 외쳤고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각진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비상 대책 회의 시작하겠습네다!"

사내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보고."

김익한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재 제국 측에서 접경지대 쪽으로 군을 위치시켰습네다! 이는 북쪽 녹지 않는 왕국과의 접경지대에 있던 군을 옮긴 것으로 파악 됐습네다!"

사내가 목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열심히 소리쳤다.

김익한은 사내의 설명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도대체 제국 새끼들이 무슨 생각이길래 군을 움직인 거지?

지금 제국은 악마에게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에도 벅찰 텐데.

심지어 북쪽 녹지 않는 왕국과의 접경지대에 있던 병력을 움직이다니.

녹지 않는 왕국은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이 공화국과 비슷할 정도로 강대했다.

그런 중요한 접경지대에서 병력을 빼다니­ 미친건가?

"그리고 대지신교에서 공화국 측에 선전포고를 했습네다. 이에 다른 몇몇 교도 동조했는데 바다신교와 구름신교 그리고 바람신교가 있습네다. 그들이 제국군 측에 합류하기 위해 접경지대로 모이고 있습네다."

사내가 김익한의 눈치를 보며 전보다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그 새끼들은 왜!"

김익한이 두꺼운 책상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쳤다.

"...그게."

사내가 그런 김익한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빨리 말하라우!!"

김익한은 사내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독촉했다.

"...김익한 수령이 악마에 씌웠다고­"

사내는 눈치를 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게 뭔 개소리야?

"나랑 장난치는 건가?"

김익한이 사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닙네다!! 그냥 저는 보고가 올라온 대로 읽은 뿐입네다!!"

김익한의 반응에 사내가 황급히 땅에 머리를 찧으며 부복했다.

사내의 반응으로 봐서는 사실인 게 분명했다.

애초에 사내가 그런 장난을 칠 이유도 없었으니까.

김익한은 어지러운 머리를 주물렀다.

"혹.."

그때 옆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 김익한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김익한 동무는 악마에게 씌웠습네까?"

그곳에는 손에 메이스를 움켜쥐고 있는 사냥신교의 이두육 교황이 있었다.

김익한을 보는 이두육 교황의 눈빛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무슨 소리입네까. 아닙네다."

김익한은 교황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공화국에도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냥신교를 품었지만, 어려운 공화국의 환경과 어울려 예상보다 너무 커졌다.

그러니 저렇게 건방진 눈빛으로 지껄이는 거겠지.

"그렇다면.. 제국 측에서 무슨 농간을 사용한 모양입네다."

쩝­ 이두육 교황이 입맛을 다시며 메이스를 내려놓았다.

김익한은 다른 인물들의 눈에도 약간의 의심이 자리 잡은 것을 눈치챘다.

도대체 제국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화국 내부에서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그럼 일단 그 두 개가 끝인가? 그럼 다음으로 대책을­"

김익한은 서로 다른 눈빛을 보이는 얼굴들을 기억하며 말을 이었다.

"아.. 아직 하나가 더 있습네다!"

사내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미 두 개로도 충분히 머리 아픈데 또 뭐가 있다고?

김익한은 어지러운 머리를 억지로 참으며 시선을 돌렸다.

"혁명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네다. 현재 안수성과 그 주변의 3개 성이 혁명단에 넘어간 상태입네다."

사내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혁명단이라­

오래전부터 공화국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던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혁명단은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한 적은 없었다.

나약한 그놈들은 보고를 올리거나 시위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혁명단을 간혹 잡기는 했지만, 뿌리 뽑지 않았다.

그런 놈들이 이제 와서 갑자기 무력을?

"...왜 갑자기 놈들이 그렇게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거지?"

"구심점이 생긴 듯합니다..."

사내가 김익한의 물음에 말을 더듬었다.

더듬거리는 사내의 모습에 김익한은 품 안에 있는 권총을 꺼내 사내의 머리를 터뜨리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았다.

"그­ 구심점이 누군데."

최근에 시작한 스쿼시가 인내심 향상에 도움이 됐는지 화를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김두환 동무입네다."

하지만 사내의 입에서 김익한 자식 중 사춘기를 잘못 보낸 아들의 이름이 나왔고­

'아빠는 국민들 맘 좆도 몰라!!!'

그 아들의 마지막 말이 김익한의 머리에 떠오른 순간.

"탕!!!"

김익한은 더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다른 사내들이 빠르게 달려 나와 머리가 터진 사내의 시체를 능숙하게 수습했다.

김익한은 주변에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담긴 의심이 조금 전보다 더 커진 것을 느끼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