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46화 (146/233)

〈 146화 〉 천오 찾기.

* * *

아니 천오를 잃어버렸다니 무슨 소리야.

걔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잃어버려.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

엉엉 울며 내게 엉겨 붙는 이지수를 겨우 떼어내서 자리에 앉혔다.

이지수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진정됐다.

아직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이지수에게 키아나가 품에 있는 손수건을 건넸다.

"감.. 감사합네다!"

키아나의 눈치를 슬쩍 본 이지수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근데 안수성에서 혁명단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왜 여기 있었던 거야 너는."

이지수가 충분히 진정됐다고 생각해 다시 물었다.

"원래는 혁명단이랑 있었는데.. 제가 에이든 동무를 도우러 가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는데! 혁명단에서는 지금 그럴 여력이 없다! 에이든 동무는 혼자서도 잘 헤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딴 개소리만 하는 거 아닙네까?! 서아 동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천오와 둘이서 밤에 몰래 도망쳐 나왔습네다!! 저 이지수! 의리로 살아온 인생! 에이든 동무가 위험한데 성안에만 숨어있는 그런 겁쟁이 아닙네다!!"

이지수는 말하다가 점점 더 화가 났는지 마지막에는 자신의 가슴을 거칠게 두드리며 호소했다.

아니 시발 그냥 가만히 있으라니까.

왜 굳이 좆밥들끼리 돌아다녀서 일을 만들어.

심지어 너 방금까지 잡혀 있었잖아.

아직도 이지수가 애액으로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구하러 나왔다는 애한테 욕을 박기는 좀 애매했다.

이지수가 두드릴 때마다 거칠게 흔들리는 가슴이 내 기분을 풀어주기도 했고.

"후­ 그래서 천오는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올라오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다시금 물었다.

"그...그게 대우성에 도착했는데.. 공화국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음식인 돼지 불고기 백반이 있는 거 아닙네까! 그래서 아! 이건 꼭 천오 동무한테 먹여야겠다! 하고 사 먹였는데 천오 동무가 또 다 토해내는 것 아니겠습네까!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된다! 해서 그 식당에 있는 음식들을 죄다 천오 동무한테 먹였는데... 결국 천오 동무가 다 토해냈습네다.."

뭔가 찔리는 것이 있었는지 이지수가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래서 왜 잃어버렸냐고."

그 모습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게... 음식을 많이 시켜서 나올 때 보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돈보다 음식값이 몇 배는 더 많이 나와버렸습네다... 그래서 안수성에 가서 돈을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니까­ 식당 측에서 그럼 담보라도 맡기고 가라고 해서... 그보다 동무! 제 젖꼭지가 분홍색인 거 알고 있었습네까? 동무라면 언제든 만져도 좋습네다­. 자! 여기 혁명적인 분홍 젖꼭지 입네다!"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던 이지수가 슬그머니 자신의 큼지막한 가슴을 들어 올려 내게 비볐다.

이지수의 말처럼 연한 갈색인 피부와 다르게 젖꼭지는 밝은 분홍색이었다.

순간 거기에 넘어갈 뻔했지만, 옆에 키아나가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돌아왔다.

방금까지 의리로 살아온 인생! 이러던 새끼가 식당에 천오를 맡겨?

"그래서 거기에 천오를 맡기고 왔다고?"

나는 열심히 내게 가슴을 비비는 이지수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악!! 설거지라도 시켜서 돈을 메꿔야 한다고 해서... 그래서 일단 빨리 안수성으로 돌아가 돈을 가져올 생각으로 나섰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습네다... 그러고 나서 눈을 뜨니 동무 앞에서 자위하고 있었던 겁네다.."

이지수가 내게 맞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럼 시발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린 거잖아.

다시금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분홍색 젖꼭지에 마음이 풀렸다.

그래 뭐 다시 찾으면 되니까.

지금 돈도 꽤 있으니까 문제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천오가 이지수랑 있었으면 설거지가 아니라 더 험한 꼴을 봤을 것이다.

천오가 이지수처럼 매달려서 그 짓을 할 뻔했다니 등골이 오싹했다.

오히려 다행이네.

"그래 일단 알았어. 그럼 먼저 식당부터 가보자."

힐끗힐끗 내 눈치를 보는 이지수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찔끔 놀란 이지수가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사저 미안한데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옆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이지수를 보고 있는 키아나에게 말했다.

"응. 나는 몸 상태가 좋아서 상관없어."

키아나가 작게 미소 지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오고고고곡!­

키아나의 아름다운 눈을 쳐다보자 다시금 괴상한 키아나의 신음이 생각나서 황급히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흐트러뜨렸다.

애써 키아나의 음부를 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지수, 식당으로 안내해. 어차피 다시 찾으면 되니까."

몸을 움츠리고 있는 이지수를 부드럽게 밀었다.

"네넵! 정말 죄송합네다! 에이든 동무가 간수 똑바로 하라 했는데! 다음부터는 천오 동무 똑바로 관리하겠습네다!"

이지수가 경례를 올리며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지수를 따라 도착한 식당은 다른 가게들보다 유난히 큰 가게였다.

크게 숨을 들이쉰 이지수가 '김 씨네 돼지불백' 이라고 적힌 식당 문을 밀어서 열었다.

인기 있는 식당인지 안쪽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서옵쇼!!!"

얼굴에 유난히 털이 많이 난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 이 놈입네다! 천오 동무를 가져간 나쁜 놈!!!"

이지수가 대뜸 그 사내의 멱살을 잡더니 소리쳤다.

"가.. 가져가다니요! 그쪽이 맡긴 거 아닙네까!"

"닥치시오! 이 불한당!!!"

"으악!! 왜 때리십네까! 경비대에 신고할 겁네다!!"

"닥치시오!! 거짓부렁 하지 마십쇼!"

사내의 입을 막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이지수를 겨우 뜯어말렸다.

사내가 얻어맞아 터진 입술을 매만지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저 악당 놈의 입을 뜯어야 합네다!!"

다시금 내 눈치를 본 이지수가 공중에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일단 진정하고­ 거기 그 조그맣던 꼬맹이 어디 있어? 돈은 지불할 테니까."

키아나에게 이지수를 맡기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인상을 찌푸린 키아나가 이지수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내가 다가가자 사내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며 내 허리춤에 걸린 검을 훑어봤다.

"저.. 저는 아무 잘못 없습네다! 저 무식한 여자가 음식이란 음식은 다 시키고 배 째라는데 어떻게 합네까!!"

사내가 양손을 저으며 열심히 변명했다.

"아니 알았다고­ 그래서 걔 어디 있냐고."

슬슬 인내심이 달하고 있었다.

"...그게­ 크흠.. 저 여자가 도무지 안 돌아오는 거 아닙네까­ 심지어 그 꼬마는 자꾸만 접시를 깨 먹고 손님 앞에서 토하고 우리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네다..!"

사내가 헛기침하며 말을 천천히 이었다.

"어디 있냐고."

길어질 것 같은 생각에 루나검으로 상대 목을 겨눴다.

"히익­!"

자신의 목에 걸린 검에 사내가 화들짝 놀라더니 까치발을 했다.

"말하겠습네다!! 천오를 마음에 들어 한 손님이 제값의 10배를 주신다고 하셔서...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저 여자는 찾으러 안 오고 그 아이는 자꾸만 사고를 치는데 저희가 어떻게 합네까!! 저 여기 머리 빠진 거 보이십네까?! 이게 다 그때 얻은 스트레스 때문입네다!!"

검을 조금 더 찔러넣자 사내가 황급히 변명하며 자신의 비어있는 이마를 보여줬다.

저건 좀 빠진 지 오래된 거 같은데.

"천..천오 동무를 팔다니!! 이 파렴치한 악당 같은 놈!! 에이든 동무! 저 남자에게 혁명을 보여주십쇼!! 어린아이를 파는 놈들을 다 목을 매달아 버려야 합네다!!"

이지수가 키아나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

키아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발악하는 이지수를 더욱 세게 잡았다.

니가 팔았잖아 미친년아.

욕지기가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당신이 먼저 그 아이를 우리에게 맡기지 않았습네까!!"

사내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억울함을 잔뜩 담아 대답했다.

"닥..닥치십쇼! 에이든 동무 저 어린아이를 파는 악랄한 사내에게 혁명이 뭔지 보여주는 겁네다!!"

그래도 아직 부끄러움이 남아있는지 이지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서 누구한테 넘겼다는 거야."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외지인 같았습네다."

외지인이라니 생각보다 일이 귀찮아 질 듯했다.

"손가락을 따봅시다! 모른다는 놈들은 손가락을 따면 진실을 술술 분다고 들었습네다!"

이지수가 살벌한 말을 하며 다시금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으..으악! 손가락은 안됩네다! 그... 가슴이 컸습네다!!"

화들짝 놀란 사내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가슴이 컸다고? 어느 정도로? 쟤?"

문득 생긴 궁금증에 이지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정도로 크진 않았습네다.. 그 옆에 있는 분과 저 여자의 사이 정도의 가슴이었습네다."

"음.. 몇 분의 몇 정도?"

"저 아름다운 분보다 살짝 더 컸습네다."

"오­ 그렇군. 적당한 크기야."

"사제...? 그게 중요한 거야?"

왠지 얼굴이 붉어진 키아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지수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삐쭉 내밀었다.

"...그럼­ 다른 특징은?"

"흑발의 생머리였고 섹시하게 생겼습네다!! 아내밖에 없던 저도 불끈­ 아닙네다! 그.. 목에 검은 뱀 문신이 있었습네다!"

열심히 말하던 사내가 주방 쪽을 돌아보고 황급히 말을 이었다.

"검은 뱀 문신? 그리고 또 없어?"

"으으... 아! 다른 사람이 그 여자가 내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습네다!"

루나 검이 사내의 목을 찔러 피를 방울지게 하자 사내의 입에서 쓸만한 정보가 튀어나왔다.

내성이라.

그럼 그 돼지 남자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그건 그거고.

"...예?"

내가 손을 내밀자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열 배를 받았다며. 본전빼고 남은 건 줘야지. 걔도 내 껀데."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만큼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

다시 돌아온 홀은 어느새 정리돼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애액 냄새가 짙게 풍겼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만 신경 쓰이는 건가?

높은 의자에 관리라던 돼지 남자 김종인이 앉아 있었다.

아내를 잃어서인지 김종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심하게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흉측한 악마로 변한 아내의 얼굴을 봤을 거라 예상했다.

"검은 뱀 문신 말씀입네까?!"

김종인이 내 질문에 매우 놀라며 되물었다.

"응. 내성에 들어가는 걸 봤다는데?"

생각보다 격렬한 김종인의 반응에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흠... 일단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네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어이­ 다 치우고 나가!!"

헛기침을 한 김종인이 손을 저으며 주변에 있던 병사들을 물렀다.

병사들이 나가고 홀에 우리밖에 없게 되자 김종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피를 파는 자들... 이라고 아십네까?"

이제 홀에는 우리밖에 없음에도 김종인은 주변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피를 파는 자드으으을!!!"

이지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는 이름이야?"

"처음 들어봤습네다! 그냥 이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습네다!"

내 물음에 이지수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진짜 딱밤 마렵네 이 새끼.

"나는 들어본 적 있어. 전쟁이나 분란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이라 어떤 더러운 일도 한다고."

키아나가 얼굴을 굳혔다.

"...맞습네다. 전에 아내가 그자들을 내성으로 불렀습네다. 아마 처녀들의 공급을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 당시의 저는 전혀 몰랐다가 후에 피를 파는 자들이 왔다고 들어서 알고 있습네다."

"그럼 지금 걔네들은 어디 있는데?"

"아마 암흑 시장에 있을 겁네다. 그들의 본거지가 거기라고 알고 있습네다."

"암흑 시장?"

이것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음침하고 위험한 느낌이 드는데.

"예. 이런저런 모든 것들을 파는 곳입네다. 노예나 여자 같은 불법적인 것도 많이 판다고 들었습네다."

김종인이 슬쩍 키아나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김종인의 말에 슬슬 불안해졌다.

애초에 걔네는 천오를 왜 데려간 거지?

"거기는 어떻게 가는데?"

"그 비밀스러움에 걸맞게 암흑 시장은 철저하게 회원제 입네다."

"회원제?"

"예. 회원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긴 하지만... 마침 제가 회원이니 저와 같이 가시면 될 것 같습네다. 동반자까지 포함해서 최대 4인까지 가능합네다."

김종인이 살쪄서 두꺼운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마침 딱 4명이었다.

***

우리는 창문도 없는 마차에 앉아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김종인은 그 살집 때문에 건너편에 혼자 앉았고 우리는 한쪽에 세 명이서 껴서 앉았다.

"...암흑 시장이라니."

키아나가 작게 중얼거리며 검 손잡이를 매만졌다.

키아나는 천오를 알지 못함에도 내 요청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동행했다.

암흑 시장이라는 이름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키아나와 같이 가면 괜찮을 것이다.

"에이든 동무! 저 보지가 가렵습네다!!"

"끄읍!"

뜬금없는 이지수의 말에 키아나가 딸꾹질했다.

이지수는 악마 사건 이후로 후유증이 남았는지 자꾸만 보지를 만져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바로 옆에 키아나가 있어서 거절했지만, 이지수는 끈질기게 요청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디 다 큰 처녀가 남자한테!"

금세 얼굴이 붉어진 키아나가 몸을 움찔거리며 나를 끌어당겼다.

"서아 동무처럼 고리타분한 사람이 또 있습네다! 보지가 가려워서 좀 긁어달라고 하는 게 문제입네까?! 같은 동무끼리 보지 좀 긁어줄 수 있지! 그쪽도 악마의 미약을 마셨다고 들었는데 그쪽은 안 가렵습네까?!"

이지수가 그런 키아나의 말에 뻔뻔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가슴을 내게 문댔다.

"...안 가렵습니다! 애초에 거기가 왜 가렵습니까!"

이지수의 말에 키아나가 눈에 띄게 움찔거리며 소리쳤다.

오고고고곡­

티나게 몸을 움찔거리는 키아나의 모습에 다시 기억이 떠올랐고 나는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가려우면 제가..."

"닥치십쇼! 제 보지는 에이든 동무 전용입네다! 또다시 그런 개 같은 말하면 확­ 혁명시켜 버리겠습네다!"

은근슬쩍 물어보는 김종인을 향해 이지수가 퉤­ 하고 침을 뱉으며 삿대질을 했다.

아니 그게 언제부터 내 전용이 된 건데.

주변의 정신 사나운 대화에 자꾸만 정신이 흐려졌다.

"그래서 혁명단은 어떤 상태인데?"

내 다리에 자꾸만 배를 비비는 이지수를 애써 무시하며 대화를 돌렸다.

"이익! 이게 왜 안 되지?! 분명 책에서는­.. 아! 혁명단 말입네까? 제가 나올 때는 순조로웠습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국 쪽이 공화당을 압박하고 있어서 혁명단 쪽에 쓸 정신이 없는 듯했습네다. 앞으로 서서히 영토를 늘려갈 거라고 들었습네다."

마치 발정 난 동물처럼 열심히 몸을 문지르던 이지수가 내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마 천오를 찾은 다음 혁명단에 돌아가도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사..사제 자리 바꾸자."

얼굴이 잔뜩 붉어진 키아나가 내 팔을 끌어당겼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옮겼다.

이상한 자세로 내게 음부를 비비고 있던 이지수가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아앗! 노잼녀가 왜 여기 오는 겁네까! 저는 당신한테 관심 없습네다! 물론 얼굴이 이쁘기는 하지만 가슴이 작지 않습네까!"

"...저는 당신의 관심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슴이 작다뇨?! 그쪽이 무식하게 큰 겁니다! 저는 일반적인 여성보다 큽니다."

"원래 가슴은 크면 클수록 좋습네다!! 분명히 에이든 동무도 그쪽보다 제 젖꼭지를 입에 물고 싶을 겁네다!!"

"아니!! 사제가 제 젖꼭지를 왜 뭅니까! 아! 사제 싫다는 게 아니라! 아니지­ 악! 잠깐만..."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키아나를 금세 무너뜨리는 이지수에게 작게 감탄했다.

이지수에게는 남을 열 받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시끄러운 대화를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가고 나서야 마차 문이 열렸고 우리는 검은 세계에 들어왔다.

도착한 곳은 동굴이라기보다는 신전 같았다.

검은색 대리석이 천장과 바닥 그리고 벽에 가득 깔려 있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둥그런 물체들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암흑 시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면을 쓰고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은 늘씬한 여자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그러자 드러난 여자의 알찬 가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끌렸다.

"사제."

키아나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역시 가슴이 최고입네다. 에이든 동무도 동의합네까?"

내게 다시금 가슴을 비비는 이지수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꾹꾹­

키아나가 전보다 더 세게 내 옆구리를 찔렀다.

***

"제1 황녀 프라타 님이 입장하십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회의장의 문이 열렸고 그 사이로 프라타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프라타에게 존경을 표했다.

프리타는 늙은 황제를 대신해 전선으로 왔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작게 고개를 숙인 프라타는 상석에 앉아 손을 저었다.

'재수 없어­.'

케이트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물론 약속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럼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엄숙한 표정의 사내가 우렁차게 말했고 사람들이 집중했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루한 회의에 케이트는 자꾸만 하품이 나왔다.

이 겁쟁이들은 회의만 할 뿐이지 도무지 전진할 생각이 없었다.

그 모습에 빨리 공화국을 밀어버리고 에이든에게 목줄을 채우고 싶은 케이트는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제국 병력은 경계 부근에 밀집 완료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언제든 진군할 수 있습니다."

회의장임에도 투구를 깊게 눌러쓴 덩치 큰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프라타는 그에 고개만 까닥거리며 다음 순서로 넘겼다.

그렇게 전과 같이 똑같이 회의가 진행됐고 그 답답한 모습에 케이트는 점점 짜증 났다.

그리고 더이상 참지 못한 케이트가 터지기 직전에­

"지금 진군하지 않으면 저희 신교들은 제국군과 따로 행동할 것입니다."

프라타와 비슷한 위치의 의자에 앉은 안드레아가 짜증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안드레아 뒤에 서 있던 신교 측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트는 어제와 다른 전개에 박수를 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 성녀님 그렇게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프라타가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경계에 있는 군사 중 신교 측 수도 제법 됐다.

물론 부상자와 사망자가 넘쳐나게 될 전쟁에서 성직자의 필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신교들 측이 따로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보다 확실한 협박이었다.

"눈앞에 악마를 두고 신을 따르는 자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제국군 측이 지금처럼 어물쩍 거리고만 있다면 무고한 백성들의 피해만 늘어날 뿐입니다."

황녀를 앞에 두고도 또박또박 말하는 안드레아를 보며 케이트는 감탄했다.

성녀가 된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떻게 벌써 저런 자리까지 간 건지 의문이었다.

"...어물쩍 거리는 게 아니라 신중한 겁니다. 저희가 앞둔 건 몇천 아니 몇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전쟁입니다."

프라타의 말에 케이트는 참지 못하고 작게 웃었다.

저 여자가 언제부터 사람들을 걱정했다고 저렇게 연기를 하는지 참 우스웠다.

분명 저 여자는 지금도 손익을 계산하며 최선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잔악한 악마에 의해 무고한 피해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안드레아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눈동자로 프라타를 응시했다.

"찬성! 전쟁하자 전쟁! 개 같은 악마 놈들 치워버리자고! 악마들이 우리 수도를 씹창낸 걸 다들 벌써 잊은 거야?!"

그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케이트도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옆으로 프라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케이트는 무시했다.

"크흠­..."

"흐음.."

그런 둘의 말에도 셈을 굴리는 놈들은 침음성을 내며 대답하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반응에 케이트가 늙은이들의 수염을 뽑기 위해 주먹을 쥐었을 때, 다시금 회의장 문이 열렸다.

회의장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또각또각 걸어들어왔다.

갈색 머리를 굳게 묶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여자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누구길래 감히 황녀보다 늦게 들어오는 것인가?

사람들이 작게 웅성거렸고 프라타는 인상을 찌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화국 혁명단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서아라고 합니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부드럽지만, 힘이 담겨있었다.

혁명단이라­

케이트는 다시금 에이든이 떠올랐다.

에이든이 공화국의 혁명단에 들어가서 지금 이 지랄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얼굴과 큼지막한 가슴을 지니고 있는 서아가 혁명단이라는 사실에 케이트는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

설마 그 새끼가 또? 에이 아니겠지.

사람 새끼라면 공화국에 쫓기듯 들어간 혁명단에서도 여자를 만들었겠어.

지금 지 새끼 때문에 우리가 무슨 지랄을 하고 있는데. 설마­.

애써 그렇게 생각한 케이트였지만, 찡그려진 얼굴은 도무지 펴지지 않았다.

전에는 에이든이 걱정됐지만, 서아의 유난히 큼지막하고 탄력적인 엉덩이를 보고 다른 걱정이 들었다.

케이트는 슬쩍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

이 정도면 나도 한 엉덩이 하는 거겠지?

에이든도 내가 최고라고 했으니까­.

에이든 생각에 케이트의 입꼬리가 헤실거렸다.

"갈색 머리에 혁명단... 혹시 자네... 서강과 연관이 있는가?"

늙은이 중 한 명이 눈을 침침하게 뜨며 물었다.

늙은이의 입에서 나온 '서강'이라는 단어에 다들 흠칫 놀랐다.

"예.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바로 영웅 서강입니다."

질문에 서아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회의장에는 깊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영웅이라­.

누군가가 적개심을 담아 작게 중얼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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