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47화 (147/233)

〈 147화 〉 암흑 시장 탐험기.

* * *

"그럼 암흑 시장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가면을 쓴 여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암흑 시장 내에서 폭력과 살인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매나 거래의 경우에는 괜찮습니다."

여자가 손가락을 하나 접으며 말했다.

폭력과 살인이 금지되어 있다니.

생각보다 안전한 곳인가.

근데 구매나 거래는 무슨 소리야.

"무엇을 보든 본인의 가치관과 어긋난다고 해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면 참견하지 마세요. 이 두 개가 암흑 시장 내에서 지켜야 할 전부입니다."

여자가 손가락을 하나 더 접으며 설명을 마쳤다.

참견하지 말아라­.

불안한 느낌이 드는 규칙이었다.

"자­ 이건 기본으로 제공되는 가면입니다. 개인의 자유이기는 하지만 되도록 가면을 벗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럼."

여자가 어디에서 꺼냈는지 가면을 우리에게 건넸다.

입술 위쪽을 가리는 검은색 반 가면이었다.

나는 냉큼 받아서 얼굴에 썼다.

가면은 꽤 좋은 재질인지 큰 이물감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나머지도 나를 따라 가면을 썼다.

고개를 들자 여자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여자가 있었던 자리 뒤로 빨간 조명으로 가득 채워진 큼지막한 입구가 보였다.

그 조명이 마치 피처럼 붉어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마치 악마의 주둥이로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말에 키아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지수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입구로 다가가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중 다른 가면을 쓴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가슴을 대놓고 드러내고 다니는 여자도 있었다.

물론 자랑할 만한 크기였다.

매대들이 쫙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구경했다.

암흑 시장은 분명히 실내인데도 그 끝이 안 보일 만큼 넓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는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일단 폭력과 살인이 금지라니까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거야. 네 명이 다니는 것보다 둘둘 나뉘어서 찾으면 더 빠를 테니 여기서 둘둘 나뉘자."

간단히 정리한 생각을 일행에게 말했다.

"저는 에이든 동무랑 같이 가고 싶습니다! 혁명 동지!"

이지수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아니 나는 사저랑 다닐게. 너는 쟤랑 다녀. 지금이 12시니까 못 찾아도 4시에 여기서 한 번 모이는 거로 하자."

김종인에게 들은 바로는 암흑 시장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올곧은 키아나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되지 않았다.

이지수도 불안하기는 하지만, 키아나가 더 불안했다.

"에엑­! 저런 노잼녀와 다니면 재미없을 게 분명합네다! 가슴도 작고!!"

"...왜 제가 노잼녀입니까. 그리고 제 가슴은 작은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편에 속하는 데 그쪽의 가슴이..."

둘이 또다시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그렇게 알고 자­ 이건 카드야. 혹시 천오를 발견했을 때 만일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걸로 계산해. 충분할 거야."

키아나를 잡아끌어 둘을 떼어놓고 이지수에게 카드를 건넸다.

대륙 아카데미에서 번 돈의 일부를 넣어둔 카드였다.

말도 안 되게 큰돈을 벌었으니 그 일부라고 해도 제법 되었다.

"오오옷..! 동..동무! 혹시 만약에 제가 필요한 게 있다면 조금 사도 됩네까?!"

카드를 받아 소중하게 안은 이지수가 가면 사이로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물었다.

벌써 이지수가 뭘 살지 불안했다.

"그래. 꼭 필요한 거만 사고."

입안에 모래가 있는 것처럼 텁텁했다.

"오옷!! 알겠습네다! 저 이지수! 꼭 천오 동무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겠습네다!"

경례를 올리며 큰 소리를 낸 이지수가 어딘가로 뛰어갔다.

김종인도 이지수를 따라 뛰었다.

멀리 갔던 이지수가 갑자기 다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김종인은 힘든지 헉헉댔다.

"왜?"

"그.. 에이든 동무! 이런 비밀 작전을 할 때는 암구호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네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이지수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이게 무슨 비밀 작전이야.

그냥 네가 버린 천오 찾으러 온 거잖아.

"그래 암구호. 비비바바로 하자."

물론 이지수를 설득하기보다 원하는 걸 주는 게 더 빨랐다.

"비비바바! 알겠습네다! 비비바바... 비비바바.."

고개를 큼지막하게 끄덕인 이지수가 중얼거리며 다시 멀어졌다.

숨을 고르던 김종인은 이지수를 따라갔다.

"그럼 우리도 움직일까요?"

내 물음에 키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지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이건 누구든 마시면 헉헉­ 거리며 성욕의 노예가 되는 전설의 발정제!! '육변기 제조기' 입니다!! 이것만 먹으면 아무리 귀부인이라도­!"

옆의 매대에서 뿔이 그려진 가면을 쓴 남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남자의 옆에는 늘씬한 몸매의 여자가 나체로 매대 위에 누워 침을 질질 흘리며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키아나가 내 얼굴을 부드럽게 밀어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 반대편의 모습이 더 심했지만.

"자자­ 단돈 1골드이면 이런 미인에게 칼을 꽂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중요 부위는 2골드!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다른 매대에서는 여자가 십자가에 묶여 있었고 몸 곳곳이 단검에 찔려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얼굴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때마침 돈을 낸 사내 하나가 여자에게 칼을 찔러 넣었고 여자는 환희에 찬 신음을 흘렸다.

우리의 걸음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꺄아아악­!

으아악!

하하하핫!

광기에 가득 찬 소리가 자꾸만 우리의 귀를 어지럽혔다.

"인간 암컷은 3 골드! 수컷은 80 실버! 엘프 암컷은 30 골드! 엘프 수컷은 15 골드! 뭐­? 어린 인간 암컷? 그건 좀 더 비싼데..."

그 사이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내게 꽂혔다.

키아나도 들었는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큼지막한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끔찍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쇠사슬 우리에 발가벗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종족들이 갇혀 있었다.

묶인 사람들은 밖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손이 위쪽으로 묶여 있었다.

그들은 몸에 이런저런 흉터가 찍혀 있었고 고통에 신음하며 벌벌 떨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확인하며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으득­.

검 손잡이를 잡은 키아나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어린 인간 암컷은 어디 있습니까!?"

마침 덩치가 큰 사내가 물었다.

"아! 그건 이쪽으로 오십쇼."

홀쭉한 사내가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키아나의 덜덜 떨리는 손을 잡고 사내를 따라갔다.

키아나가 내 손길에 잠깐 움찔했다가 깊은숨을 내쉬며 움직였다.

우리는 사내 둘을 따라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밖보다 작은 쇠사슬 우리에 아이들이 떨어져 갇혀 있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천오가 아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안을 확인했다.

거기에 천오는 없었다.

나는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대로 판단되지 않았다.

조금 더 있으면 사고 칠 것 같았기 때문에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사제..."

가면 사이로 잔뜩 찌푸려진 키아나의 눈이 보였다.

"사저. 일단 제 친구부터 찾아야 합니다."

자꾸만 검 손잡이로 향하는 키아나의 손을 붙잡았다.

잠시 고민하던 키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 말을 잃은 채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제 아내랑 자면 10 실버 드립니다! 물론 저희를 만족 시킬 경우­"

"20cm 우람남 대기 중!! 30 실버입니다! 만약 남자라면 50 실버입니다! 이종족 안 가립니다!"

"맛있는 인육 만두 있습니다! 매콤한 맛! 달콤한 맛!"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자꾸만 정신을 흐리게 했다.

그때마다 키아나의 손에 힘이 들어가 손이 저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어지러운 정신을 부여잡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유독 내 시선을 끄는 천막이 있었다.

'이쁜 보지 만들기.'

천막에는 대문짝만하게 흉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문구가 내 기억을 자극했다.

설마 보지 마법사인가?

나는 확인하기 위해 천막 쪽으로 향했다.

"사제...? 응? 거기는 왜..?"

내 손을 잡고 있던 키아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딱히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걸음을 옮겼다.

"그...거기를 왜 이쁘게?! 나는 필요 없어 사제­. 잘은 모르지만­ 나는 거기도 이뻐서 필요 없어! 아악! 이게 아닌데! 그게 아니라­."

키아나가 정말 당황했는지 횡설수설하며 내게 끌려왔다.

정신을 어지럽히는 키아나의 말을 무시하며 천막 문을 걷고 들어갔다.

그래도 사제가 원한다면­...

키아나가 작게 중얼거리며 따라 들어왔다.

들어가자마자 양다리를 훤히 벌리고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고 그 앞에 사내가 앉아있었다.

"지금은 진료 중입니다.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내가 고개도 안 돌리고 말했다.

우리를 본 여자가 하체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지 가면 아래로 드러난 입술을 쪽­ 하고 내밀었다.

나는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사..사제 저분이 먼저 진료 중이라니까­ 기다렸다가... 그렇게 급한 게 아니잖아. 급한 거야? 그..급해 사제?!"

옆에서 중얼거리는 키아나의 말도 무시했다.

"밖에서 기다리라니까­ 지금 진료 중인 거 안 보입니까?"

사내가 인상을 쓰며 뒤돌았다.

그러자 보인 사내의 얼굴은 내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재수 없게 생긴 보지 마법사.

스칼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보지 마법사."

좆같지만 반가웠다.

"보지 마법사라니­... 아! 자네군. 가면을 쓰니 제법 괜찮은 얼굴이야."

스칼이 입꼬리를 올리며 인사했다.

"사제 아는 사람이야? 그럼 저렴하려나?"

키아나의 말은 무시했다.

스칼의 진료가 끝날 때까지 옆의 의자에 앉아서 대기했다.

키아나는 자꾸만 뭐가 불안했는지 다리를 달달 떨면서 내 손을 굳게 잡았다.

필요는 없지만... 사제가 원한다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잠시 뒤 진료가 끝났고 스칼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이것 좀 봐줄래요? 어때요? 잘 됐어요? 이뻐요?"

여자가 나를 보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 이쁘네요."

확실히 스칼이 실력이 있는 듯 정말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흐응­ 고마워요. 감사의 의미로 관심 있으면 쓰게 해줄까요?"

여자가 다리를 활짝 벌리며 입술을 삐쭉 올렸다.

"2~3일 정도는 관계를 피하는 게 형태 유지에 좋습니다."

스칼의 말에 여자가 어깨를 으쓱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후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 모습에 키아나는 숨을 거칠게 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말 오랜만이구만. 하하."

스칼이 손에 낀 장갑을 벗으며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 시발 먼저 손 좀 씻죠. 장갑과 상관없이 기분 문제니까요."

방금까지 스칼이 뭔 짓을 했는지 본 입장에서 그 손을 맞잡기 꺼려졌다.

"으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잠시만 기다리게."

내 말에 스칼이 옆으로 가서 손을 씻었다.

"나중에 보게 되면 한 번 쓰게 해줄게요."

여자가 입으로 쪽­ 하고 소리를 내더니 밖으로 나갔다.

후우­후우­

여자의 말에 키아나의 숨소리가 더욱 커졌다.

"깨끗이 씻었네."

스칼이 웃으며 물기가 남은 손을 내밀었다.

"진짜 보지 마법사로 성공했네요.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예요?"

나는 찝찝했지만, 그 손을 맞잡았다.

"뭐­ 사람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그런 자네는 왜 여기 있나?."

"제 친구가 이쪽으로 잡혀간 것 같아서 찾으러 왔어요."

"친구? 혹시 그 마물에게 겁간을 당한..."

스칼이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요. 걔 말고 다른 애 있어요. 이쁘고 조그맣고 귀여운 애. 본 적 있어요?"

나는 대충 손을 들어 천오의 키를 가리켰다.

"흐음­ 잘 모르겠네. 나는 여기서 진료만 보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자네 그새 또 여자를 바꿨나?"

스칼이 내 옆에 앉아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키아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기 가서 누우면 됩니까?! 남자에게 그곳을 보인다는 게 죽을 것처럼 부끄럽지만 그래도 사제가 원한다면..!!"

스칼의 지목에 대뜸 자리에서 일어난 키아나가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야 이건 또.

"사저! 왜 그래요. 이쪽은 제 사저에요. 사저 이쪽은 스칼이에요. 예전에 처녀교에 있을 때 제 탈출을 도와준 사람이에요. 왠지 이 천막에 쓰여 있는 문구가 낯익어서 들어온 거예요."

나는 황급히 키아나의 입을 막으며 소개했다.

"으음­ 그렇군. 사제 관계로군. 반갑네."

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엑? 으윽! 으음... 하하! 반갑습니다! 제 사제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키아나가 말을 더듬었다.

"그럼 제 친구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요?"

갑자기 고장 난 키아나를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으음.. 여기야 워낙 이상한 것들이 감이 안 오는구만. 아­ 그럼 나는 이만."

고민하던 스칼이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 행동이 묘하게 기분 나빴다.

"뭐겠나. 여기서 떠날 준비지."

스칼이 큼지막한 가방에 흉측한 도구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왜 갑자기 떠나요?"

"자네가 나타났지 않은가. 들리는 소문으로는 자네 대륙 아카데미도 터뜨렸다고 하던데 사실이지?"

스칼은 정말 시선도 돌리지 않고 열심히 짐을 챙겼다.

"아니 그렇기는 한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어요."

이 새끼는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혹시 소문난 건가?

얼마나 집어넣었는지 스칼의 가방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처녀교도 터뜨리고 말이야. 수도도 터뜨리고 대륙 아카데미도 터뜨린 자네가 암흑 시장에 나타났다? 뻔한 결과지. 이건 버려야겠군. 너무 커."

스칼이 어디 쓰는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괴상한 물건을 뒤로 던졌다.

"그­ 잠시만요. 뭐라도 도움이 될만한 거를 내놓고 가요."

나를 마주치자마자 헐레벌떡 도망칠 준비를 하는 스칼의 모습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도움이 될만한 거? 아, 이거면 꽤 도움이 되겠군. 내가 VIP라 받은 거니까 자네가 유용하게 쓰도록 해. 오늘 아침에 받은 거니까 쓸만할 거야."

잠시 고개를 기울이던 스칼이 내게 작은 책자를 던졌다.

스칼이 준 책자에는 큼지막하게 '암흑 시장 카탈로그'라고 적혀 있었다.

"아! 그리고 암흑 시장에서 사고 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위험할 걸세. 피를 파는 자들은 상대가 누구건 원한을 사면 자신들이 파멸해도 끝까지 가니까 말이야. 그게 그들의 생존 전략이니 부디 조심해서 사고 치시게. 그럼 이제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네! 잘 살게!"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멘 스칼이 손을 흔들더니 뛰어서 사라졌다.

이거 시발 기분 묘하게 나쁘네.

그거 다 사연이 있다니까.

내가 부순 것도 아니고 시발.

억울함에 주먹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으음... 사제 그건 뭐야?"

이내 다시 평정을 되찾은 키아나가 내 손에 들린 책자를 보며 물었다.

"카탈로그라고 하는데요? 보니까 어디서 뭘 파는지랑 행사 같은 게 적혀 있네요."

책자에는 외설적인 내용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그중에는 글자임에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었다.

후우­후우­

책자를 같이 보기 위해 내 옆에 붙은 키아나의 숨소리가 묘하게 거칠었다.

얘는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어지럼증을 참으며 천천히 카탈로그를 읽었다.

카탈로그의 제일 처음 부분에는 행사 일정이 적혀 있었다.

나는 행사 일정의 위부터 천천히 읽어 나갔다.

'무언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드워프 수컷의 똥꼬 쇼!'

뭐야 이 좆같은 건 시발.

이런 걸 보러 가는 사람이 있다고?

'엘프 암컷은 과연 드레이크 수컷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본격적인 ...'

어후 시발. 근데 가능한가?

나는 애써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내 시선을 잡아끄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병약 미소녀의 구토 쇼 ­ 뭘 먹든 토해드립니다. 동쪽 황금빛 분수대 앞.'

애미 시발.

이 미친 새끼들이.

나는 황급히 책자를 챙겨 일어났다.

"사제?"

옆에서 보고 있던 키아나가 당황한 눈빛으로 날 불렀다.

"찾은 거 같아요. 제 동료."

내 입에서 말이 씹어 뱉듯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루나검의 손잡이를 잡은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럴 때는 머리를 뽑아 피를 마시는 게 최고지.]

[개인적으로 이번 놈들은 피를 뽑는 거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네. 머리를 뽑아서 마물에게 먹인 다음 그 몸은...]

***

"야! 너 뭐야?!"

서아는 자신 앞에 삐딱하게 서서 노려보는 금발의 여자를 보며 당황했다.

이 소녀는 제국의 삼 황녀가 분명한데...

왜 제국의 삼 황녀가 자신한테 이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거지?

"어쭈?! 대답 안 해? 이래서 요즘 것들은! 야! 안드레아! 이거 두고 볼 거야?!"

케이트가 옆에 있는 안드레아를 불렀다.

"...에이든 님에 대해 알고 계시는가요?"

안드레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물었다.

현재 완벽한 성녀에 제일 근접했다는 안드레아 성녀의 입에서 왜 에이든의 이름이 나왔는지도 의문이었다.

서아는 혹시 자신이 꿈을 꾸나 싶어서 볼을 세게 꼬집었다.

"아야!"

통증을 보니 꿈은 아닌 것 같았다.

"뭐야 이 저능아는? 지 볼을 지가 꼬집네?!"

케이트가 인상을 잔뜩 쓰며 서아를 노려봤다.

서아는 그런 케이트의 모습에 무섭다는 생각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래도 무시해?! 빨리 대답 안 해? 에이든 아냐고!"

케이트가 서아의 멱살을 잡고는 주먹을 서아의 눈앞에 갖다 댔다.

"에에­?! 에..에이든 님이요?! 알아요! 저희 혁명단에 들어오셨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아가 황급히 대답했다.

"에이든 님은 잘 계십니까?"

서아의 팔을 잡은 안드레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앗­! 마지막에 공화국 병사들에게 묶이셨는데.. 잡혔다는 소식은 없었으니까 잘 계실 거예요!"

언뜻 지나간 에이든 생각에 서아의 표정이 금세 우울해졌다.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따구야?! 잘 있는 거 맞냐고!"

케이트가 주먹을 공중에 붕붕 휘둘렀다.

"잘..잘 있을 거예요! 공화국은 잡으면 선전부터 하는데 이번에는 조용했으니까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아가 대답했다.

서아도 에이든을 찾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정세가 너무 바빠 그럴 틈이 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서아는 억지로 에이든을 믿어서 그렇다는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에이든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너네 공화국이건 혁명군이건 빨갱이건 뭐든지 다 쓸어 버릴 거야!! 앙?!"

화를 내는 케이트의 뒤로 거대한 형체가 언뜻 보였다.

그에 케이트가 화를 삭이며 서아의 멱살을 놓았다.

서아는 도무지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황녀와 성녀가 에이든을 찾는 거지?

"에이든 님이 질 리가 없습니다. 상대가 무엇이 됐건."

안드레아가 다시금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래­. 매일 에이든에이든 이러더니 이제 와서 괜찮은 척하네. 아! 그건 그거고. 야! 너!"

케이트가 대뜸 서아를 불렀다.

"네넷!"

서아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에이든이랑 잤어?"

케이트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예엣?!"

그 거침없는 말에 서아가 화들짝 놀랐다.

"에이든이랑 교미 했냐고!! 애가 뭐이리 답답해? 진짜 펀치 마렵게 하네!"

케이트가 답답한지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아..아니요! 교미는 안 했어요!"

서아는 황급히 양손을 저으며 부인했다.

"느은? 느은?! 그럼 뭘 했는데?! 일로 와봐!! 너 이거 엉덩이 뭐 넣은거지?! 사람 엉덩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빼! 빼란 말이야! 이 불여시 같은 게 에이든 앞에서도 엉덩이 이러고 다녔지?!!"

대뜸 서아를 다시 붙잡은 케이트가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아악!! 아무것도 안 넣었어요!! 만지지마요! 아앗!! 어딜 들어오는 거에요 진짜!!"

서아가 황급히 케이트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봐봐! 뭐 넣은 거라니까!! 이거를 이렇게 빼면! 어?!"

어느새 서아의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케이트가 신나서 소리쳤다.

"아악!! 아파요!! 왜 꼬집어요! 아무리 황녀라지만 저도 혁명단의 부대장이에요!!"

엉덩이를 쥐어뜯는 케이트의 손길에 서아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소리쳤다.

"..뭐야 진짜네?"

케이트가 허무한 표정으로 손을 뺐다.

아파­

서아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엉엉 울었다.

쯧­

둘의 모습에 안드레아가 혀를 찼다.

부족한가­?

안드레아는 그런 둘에게 보이지 않게 자신의 엉덩이를 슬금슬금 주물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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