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49화 (149/233)

〈 149화 〉 늘 그렇듯.

* * *

"야!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케이트가 잔뜩 화난 얼굴로 안드레아를 노려봤다.

"어떤 것이요?"

안드레아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우는 서아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그 새끼가 또 여자를 늘렸잖아! 아주 무슨 원대한 꿈이라도 있는지 이번에는 엉덩이가 튼실한 애로!! 도대체 저런 엉덩이는 어디서 구한 거야?!"

말하면서 더욱 화가 치솟았는지 케이트가 서아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서아는 몸을 움츠리며 자신의 엉덩이를 가렸다.

"...화가 왜 나죠?"

안드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오! 답답해!! 너 에이든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 개자식이 여자를 자꾸 늘리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안드레아의 반응에 답답해진 케이트가 언성을 높였다.

"좋아한다는 단어로는 부족해요. 사랑한다는 단어도 조금 모자란 데. 음... 적당한 단어가 없는 듯하네요."

안드레아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단아하게 웃었다.

"뭐...뭐라는 거야!!! 무슨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그런데 에이든의 여자가 늘어도 상관없다고?!"

안드레아의 말에 화들짝 놀란 케이트가 뒷걸음질 쳤다.

"예. 제가 에이든 님을 사랑하는 것과 에이든 님의 여자가 느는 것­ 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죠?"

안드레아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케이트를 응시했다.

케이트는 평소에도 저 수녀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정말 뭔가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가 늘어나면 당연히 싫어해야 하는 거 아니야?

"좋..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를 만들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니?! 진짜 이상해 너!!"

잠깐 머뭇거리던 케이트가 말을 이었다.

"이상한 건 그쪽 같은데요? 혹시 본인의 저열한 소유욕과 사랑을 헷갈리는 것 아닙니까? 만약 에이든 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에이든 님의 행복을 바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에이든 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열과 성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케이트의 말에 안드레아가 되려 인상 쓰며 케이트를 지그시 노려봤다.

"저..저열한 소유욕?!"

뻔뻔한 안드레아의 반응에 케이트는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정말 뻔뻔해서 케이트는 정말 본인이 잘못 한 건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건 저쪽이었다.

분명 안드레아는 올바른 연애관을 교육받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무..무슨 궤변을 늘여놓고 있어!! 그럼 너는 에이든의 여자가 마구잡이로 늘어도 상관없다고?!"

"그것이 에이든 님이 원하는 것이라면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에이든 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힘이 늘어나니까 장점도 있습니다."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쳤어 진짜! 네가 그런 이상한 태도를 취하니까 걔가 주제도 모르고 신나서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야! 너 엉덩이! 일어나봐!"

얼굴이 붉어진 케이트가 소리를 빽­ 하고 지르면서 서아를 손가락질했다.

"예에?! 저는 엉덩이가 아니라 서아라고...!!"

"일로 오라고!!"

케이트가 인상을 쓰며 소리 지르자 화들짝 놀란 서아가 뛰어왔다.

"야! 엉덩이! 너는 네가 좋아하는 남자의 여자가 많아도 상관없어?!"

케이트가 서아를 노려보며 물었다.

"...여자요? 예.. 뭐 딱히? 공화국에서는 능력만 된다면 삼처사첩도 일상이라... 그리고 여자들이 많으면 더 화기애애하고 좋지 않을까요? 저만해도 나중에 서윤이랑 같이 살 수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서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얼굴 보기도 힘들다던데. 그런 것보다는 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게 더..."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뭐?! 삼처사첩?!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화기애애하다고?! 에이든이 이상해서 그런지 이상한 애들 투성이야 진짜!!"

케이트가 경악하며 서아를 밀었다.

꺅­!

밀린 서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넘어지며 무릎이 까진 서아가 다시금 울먹였다.

흥!

케이트가 넘어진 서아를 보며 잠시 움찔거리다 이내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돌렸다.

안드레아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넘어진 서아에게 다가갔다.

서아의 옆에 쪼그려 앉은 안드레아가 까진 서아의 무릎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서아 님은 종교가 있나요?"

안드레아가 손에서 밝은 빛을 뿜어내며 물었다.

"종교는 딱히 없는데요. 갑자기 왜...?"

"아­ 좋은 말씀이 있어서. 서아 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저 돈 없어요..."

"아니요. 아니요. 여자들만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남자는 받을 생각도 없고­."

"그래요...?"

안드레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아의 까진 무릎은 어느새 깨끗이 치료되어 있었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서아가 안드레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야!! 어디서 아픈 척이야! 일로 와!"

그런 둘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케이트가 다시금 손가락을 까닥였다.

케이트의 불호령에 서아가 황급히 뛰어가서 차려자세를 취했다.

"너희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 이런 건 위계질서가 중요해! 그건 황족인 내가 더 잘 알아!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게 하면 안 된다고! 알았어?!"

허리에 손을 올린 케이트가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서아는 케이트의 볼을 잡아당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눈을 내리깔았다.

"네가 아무리 엉덩이가 크다고 해도 정실은 나야! 알았어?!"

케이트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소리쳤다.

"네넵!!"

서아는 아까부터 케이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또 저 여자가 엉덩이를 꼬집을까 두려워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돼?!"

"넵!!!!"

"대답은 '네 알겠습니다!' 로 한다 알았어?!"

"넵!!"

"네 알겠습니다! 라고 이 멍청아! 어디서 이런 폐급이 왔어?!"

"네 알겠습니다!"

"더 크게!"

"네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 목소리를 유지하도록!"

케이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서아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제국의 황녀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 앉으면서 '케이트 님은' 일어나면서 '정실이다' 외치는 거야 알았어?"

케이트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턱을 들었다.

"예?"

서아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예에?! 예에?! 이게 아주 빠져가지고?!"

케이트가 서아에게 달려들어 엉덩이를 쥐어뜯었다.

"아앗!! 꼬집지 마요!! 악! 잘못했어요!!"

서아가 울먹거리며 엉덩이를 매만졌다.

"후­ 꼭 맞아야 말을 들어요! 자­ 그럼 앉아!"

호흡이 흐트러진 케이트가 숨을 골랐다.

"...케이트 님은."

서아가 케이트의 눈치를 보며 앉았다.

"어쭈­ 목소리 봐라? 일어나!!"

케이트가 조그마한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아앗! 정실이다!!!"

서아가 황급히 일어나며 소리쳤다.

"목소리 좋다!! 그럼 앉아!"

"케이트 님은!"

"일어나!"

"정실이다!!"

케이트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입에 호루라기까지 물고 있었다.

삑삑대는 소리와 함께 서아가 땀 흘리며 열심히 앉았다 일어섰다.

안드레아가 그런 바보 같은 둘의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드레아는 문득 정말 이대로 저런 바보 같은 것들이 계속 늘어나도 괜찮은지 잠시 고민했지만, 에이든 님이 원한다면 자신은 상관없었다.

다만 앞으로 저런 애들이 더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골치 아팠다.

"힘들어욧!!"

"조용히 해! 이 첩아!! 엉덩이 집어넣어! 이 오리 궁둥이야!!"

"첩이라뇨?! 저...저는 첩이 아니에요!! 오리 궁둥이도 아니라구요!!"

"닥쳐! 조용히 해!! 앉아!!"

"케이트는!!!! 아악! 저 쥐 났어요!!"

서아가 돌연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부여잡았다.

"쥐?! 누워봐!! 이거 어떻게 하지?! 야!! 안드레아 와서 치료해!!"

케이트가 황급히 안드레아를 불렀다.

"흐어어엉!!"

"울지마! 시끄러워!! 고작 쥐 하나 난 거 가지고!! 이래서 첩 할 수 있겠어?!"

"첩 아니라구요!! 으아아앙!!"

"아악!! 가만히 있어 주무르잖아!!"

"으허엉­ 간지럽다구요!!"

"이 멍청이가! 어쩌라는 거야 진짜!!!"

서아가 울먹거리며 땅에 누워 발을 내밀었고 케이트가 그 발을 잡았지만, 둘의 키 차이 때문에 자꾸만 여기저기로 휘둘렸다.

케이트는 어떻게든 서아의 발을 주무르려고 했지만, 자꾸만 들려 땅에 다리가 닿지 않았다.

안드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땅에서 뒹굴고 있는 둘에게 다가갔다.

"옳지!! 1번 첩 너가 처리해!!! 아악! 멍청한 엉덩이!! 가만히 있으라고!!"

"으헤헷! 간지러워요!!"

"둘 다 가만히 있어요."

결국 셋은 한참이나 씨름하고 나서야 진정됐다.

안드레아는 바보들에게 휘둘린 듯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한 병사가 급하게 달려왔다.

"뭐야!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잖아!!"

서아의 엉덩이를 베고 누워있던 케이트가 고개를 들었다.

튼실한 서아의 엉덩이는 그 어떤 베개보다 편안했다.

"그...급한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병사가 당황했다.

"급하지 않기만 해봐 진짜 눈썹 다 뽑아 버릴 거야."

케이트가 손가락을 꾸물대며 병사를 쳐다봤다.

불길하게 꼼지락거리는 케이트의 손을 보며 병사는 잠시 자신이 전하러 온 소식이 급한 일인지 고민했다.

"급한 일입니다!!"

병사는 잠깐의 고민 끝에 급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급한 일이면 빨리 말해! 뭘 자꾸 뜸 들이는 거야!"

병사의 답답한 모습에 화가 난 케이트가 인상을 쓰며 서아의 엉덩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헤헷­ 간지러워요!"

케이트의 손길에 서아가 몸을 비틀었다.

"아! 미안. 아니지 안 미안해! 이 첩아!!"

"저는 첩이 아니라니까요!!"

그들은 또 붙어서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무슨 일인가요?"

안드레아는 자신이 방금까지 저 바보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쉬며 물었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경계에 보급의 큰 축을 담당하던 공화국의 중심 지역 중 하나인 하운성이 폭삭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에 제국군은 지금 같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 공화국의 경계선으로의 진군을 결정했습니다!"

몰래 안드레아의 얼굴을 훔쳐보던 병사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하운성이...?

하운성은 공화국 군대 보급을 담당하는 제일 큰 도시였다.

공화국에서 규모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런 하운성이 무너지다니­.

하늘이 혁명단을 돕는 건가.

케이트에게 엉덩이가 잡혀 있던 서아의 눈이 밝게 빛났다.

"중요하잖아!! 빨리 말해야지! 이 멍청한 놈아!!! 상관 펀치!!"

병사의 말에 케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지르며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날 이후로 제국군 사이에서는 삼 황녀의 주먹이 맵다는 소문이 돌았다.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소문도 같이.

물론,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

키아나와 에이든은 두꺼운 천장을 베어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듯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좆같게도 암흑 시장은 지하에 있었다.

"사저! 길을 열어줘요!!"

나는 기절한 이지수의 목덜미를 잡았다.

"저..저도 데리고 가주십쇼!!"

머리를 감싸고 벌벌 떨고 있던 김종인이 내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집어넣고 김종인의 목덜미도 잡았다.

괜히 두고 가면 찝찝할 것 같았다.

"알았어 사제."

키아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양손으로 쥐고 앞으로 모았다.

키아나에게서 태양처럼 밝은 금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가 점점 차오르더니 뜨거운 열기가 전해질 정도로 짙어졌다.

쿠르르르릉­!

천장이 무너지는 게,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흐읍­"

자세를 낮춘 키아나가 금빛으로 타오르는 검을 위로 찔러넣었다.

검에서 쏟아져나온 빛이 위쪽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그에 위쪽에 둥그런 구멍이 뚫렸고 그 사이로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키아나가 떨어지는 돌덩어리들을 밟고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며 굵직한 바위들을 처리했다.

이지수와 김종인 그리고 천오까지 매고 있는 나는 키아나처럼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속에 있는 모든 기운을 발 쪽으로 돌렸다.

한계를 넘어선 기운의 운용으로 하체가 잘게 다져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어차피 이제 고통은 익숙했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웅웅 거리며 푹­ 내려앉았다.

이윽고 돌덩어리가 땅에 떨어지며 큰 소리를 내었을 때­ 발 쪽에 있는 기운을 한 번에 터뜨렸다.

발에서 느껴지는 찢어지는 고통에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혀를 잘근잘근 깨물며 버텼다.

이윽고 멀었던 하늘이 점점 가까워졌고. 우리는 마침내 땅 위로 올라왔다.

기운을 다 터뜨린 덕분에 주변이 아래로 보일 만큼 높이 올라올 수 있었다.

상쾌한 바깥 공기가 흐릿한 내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주변의 모습을 확인했다.

내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가관이었다.

암흑 시장은 공화국의 큰 도시 아래에 지어져 있었던 듯 주변에 회색의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는데, 지반이 무너지자 도시의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회색빛의 건물들이 무너지며 아래로 처박혔고 사람들이 비명 지르며 같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꽤 돈을 들여 만들었는지 고급스러운 분수대도 땅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이지수가 터뜨린 부분이 중심 부분이었던 듯,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 도시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들은 내 알바가 아니었다.

내게는 내 씹창난 발이 움직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신성력을 끌어올려 최대한 치료 중이었지만, 무리한 기운 운용에 내부부터 박살 난 발을 치료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다시금 땅으로 끌려가는 내게는 그 시간이 부족했다.

"애미 씨발!! 다시 떨어진다!!! 좆같은 세상 시발!"

손에 든 연놈이라도 던지기 위해 이를 악물었을 때, 떨어지는 속도가 천천히 느려졌다.

후우웅­

뒤에서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며 떨어지던 속도가 느려지다가 이윽고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오! 시발 살았다.

"부상 유지­ 연료 부족. 10 초... 9초..."

오랜만에 듣는 천오의 목소리가 나를 재촉했다.

"저쪽! 저쪽!"

나는 무너지는 중에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뭔지 모를 기둥이 박혀 있는 곳이었는데 땅 아래 깊숙이 박혀 있었는지 그 주변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몸이 살짝 기울더니 내가 가리킨 쪽으로 움직였다.

"2초... 1초..."

천오의 불길한 카운트가 끝나기 바로 직전에 안착할 수 있었다.

씹창난 다리가 땅에 닿자 끔찍한 고통이 엄습해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단 손에 들고 있는 짐 덩어리를 대충 던지고 천오를 품에 안아 굴러서 충격을 흡수했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내 바로 아래로 깊이 무너진 땅이 보였다.

"하하.. 시발­ 살았다."

안도감에 힘이 풀리며 드러누웠다.

내 품에 있는 천오는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천오의 온기를 느끼며 신성력을 돌렸다.

"끄아아아악­!!"

"사..살려주세요!"

"신이시여!!"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억지로 고개를 돌리니 키아나가 공중에서 뛰어다니며 떨어지는 사람들을 줍고 있었다.

공중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키아나의 모습이 마치 신기처럼 느껴졌다.

손에 사람들을 한가득 든 키아나가 우리 쪽으로 뛰었다.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키아나가 사람들을 땅에 내려놓았다.

드디어 땅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감격하며 키아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키아나는 그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내게 다가왔다.

"사제 괜찮아?"

키아나가 피범벅이 된 내 바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뭐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이 정도야 조금 있으면 나아요."

나는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그래. 사제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굳은 표정의 키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있는 곳처럼 기둥이 박힌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아래로 처박혔다.

도시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악마가 만든 스튜처럼 끔찍한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살려주세요!!!"

"아아악!! 신이시여!!"

마치 스튜에 들어간 고기처럼 그사이에 짓눌린 사람들이 도움을 갈구하고 있었다.

"사제는 여기서 쉬고 있어."

그 모습을 본 키아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참 기운이 넘친단 말이야.

"도..동무! 괜찮습네까?!"

정신 차린 이지수가 내 꼴을 보고는 몸을 잘게 떨었다.

그 모습에 잠깐 화가 났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만약 저 안에서 이지수가 폭탄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암흑 시장에서 어떻게 됐을지 미지수였다.

키아나와 내가 있다고 해도 강한 녀석들이 많았고 심지어 우리가 마주치지 못한 녀석들도 있었을 테니까.

결과만 보면 우리는 탈출했다.

물론 다른 것들이 심하게 씹창난 게 문제지만.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니까.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고.

"괜찮냐."

생각을 마친 나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이지수에게 물었다.

"넵!! 에이든 동무는 괜찮습네까?! 다리가 혁명 된 것 같은데..."

이지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지금도 신성력이 하체에 돌면서 고통을 덜어주고 있었다.

"그..그런데 너무 혁명이 커진 것 같습네다. 물론 혁명이 큰 건 좋지만... 괜히 너무 큰 일을 벌인 것 같아서."

이지수가 말끝을 흐리며 내 옆에 앉았다.

어깨 너머로 떨고 있는 이지수의 몸이 느껴졌다.

"그거야 암흑 시장을 도시 밑에 지은 놈들 잘못이지. 애초에 도시 밑에 암흑 시장이 있다는 걸 눈치 못 챈 놈도 잘못했고."

아래에서 들리는 비명을 애써 무시했다.

다리가 씹창난 나는 좀 더 쉬고 싶었다.

"...그렇습네까??"

이지수가 우물쭈물하며 되물었다.

"그렇지. 우리는 그냥 정당방위야. 저거 안 무너뜨렸으면 우리가 위험했을 텐데. 그리고 도시 측에도 잘못이 있지. 아래에서 폭탄 좀 터뜨렸다고 도시가 무너지는 게 말이 돼? 분명 뒷돈 처먹고 부실하게 허가 내준 놈이 있을 거야."

말을 하며 내 생각을 정리했다.

무겁던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

"...에이든 동무 말이 맞습네다! 저렇게 부실하게 지은 놈들을 잡아다가 다 혁명시켜버려야 하는데 참 아쉽습네다!!"

금세 기운을 차린 이지수가 언성을 높였다.

참으로 단순한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내 얼굴을 본 놈들은 다 죽었겠지?

지금은 몸이 무거워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길을 돌려 우리가 있었던 부근을 확인했다.

그 부근에 큼지막한 건물이 박힌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옷!! 암흑 시장에 악마가 좀 있었나 봐! 사도!! 완전 짭짤해!!'

하긴 그 끔찍한 모습을 보면 충분히 악마가 있을 법했다.

그 와중에도 키아나는 열심히 움직이며 땅에 박힌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저 멀리 외성에 있던 병사들이 내려와 망연자실하게 아래를 내려봤다.

그들은 각자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이 내 가슴 한쪽을 찔렀지만, 고개를 흔드니 금방 괜찮아졌다.

이건 정당방위니까.

몇 번 되새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네가 암흑 시장에 나타났다? 뻔한 결과지.'

스칼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시발 똑똑한 새끼였네.

기침처럼 헛웃음이 터졌다.

"왜 그렇습네까 동무?! 혹시 자지가 간지럽습네까?! 제가 대신 긁어­..."

소매를 걷고 내게 달려드는 이지수를 겨우 말려 떼어내고 다시 드러누웠다.

혁명 동지끼리 서로 긁어줄 수도 있지­...

이지수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오늘 밤하늘에는 별이 유난히 밝고 많았다.

죽으면 별이 된다던데. 앞으로 밤이 좀 더 밝을 듯했다.

쌀쌀한 저녁 바람이 내 볼을 간질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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