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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50화 (150/233)

〈 150화 〉 안타까운 세상.

* * *

나는 답답함에 가면을 벗어 품에 집어넣었다.

슬슬 하반신에 힘이 돌아올 때쯤 키아나가 돌아왔다.

돌아온 키아나의 손은 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가면 아래로 보이는 키아나의 눈이 울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런 키아나의 손을 잡아줬다.

맞잡은 키아나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래에서 본 모습이 키아나에게 제법 큰 충격을 준 듯했다.

이제 주변에서 더 이상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목놓고 우는 소리만이 들렸다.

천오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고 이지수도 잠든 상태였다.

나는 이지수를 업고 천오를 안았다.

우리는 조용히 도시에서 나왔다.

김종인은 따로 가겠다고 말했다.

불안한 눈빛을 보니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듯했다.

옆에서 사연을 본 새끼가 저러니까 섭섭하네.

나는 그저 손을 휘젓고 다시 걸었다.

키아나도 자꾸만 휘청이는 것을 보니 걸어서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전부터 자꾸만 아래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고 하지 않았나?"

"...저주 받은 거지 저주받은 거야."

"여기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네. 빨리 떠나야지."

성문 주변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은 푹 꺼진 땅을 보면서 혀를 찼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지나쳤다.

성문 밖에는 마차들이 여러 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마부에게 태워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만, 마부는 콧방귀 끼며 채찍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나는 그중 제일 큰 마차에 다가갔다.

용병들도 고용한 모양인지 마차 주변에 험상궂은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흉흉한 외모와 다르게 수준은 죄다 하급이었다.

나는 그중 서류를 보며 짐을 확인하고 있는 뚱뚱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천운이지 천운이야. 음­ 철은 수량이 딱 맞고... 음? 뭡니까?"

뚱뚱한 사내가 나를 보며 경계했다.

주변에 있던 용병 몇몇이 무기를 꼬나쥐고 다가왔다.

바지가 피에 젖어있는 나나 손에 피를 묻히고 있는 키아나나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 하운성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어디까지 가나?"

나는 품에서 골드 몇 개를 꺼내 손에서 굴렸다.

"끄읍­ 안수성으로 갑니다. 그쪽이 요즘 좋다길래."

내 손에 들린 골드를 보고 사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때마침 사내의 목적지도 안수성이었다.

"마차 좀 얻어 타고 싶은데. 돈은 지불하지."

골드를 사내에게 튕겨줬다.

"아이고! 환영입니다! 역시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어이­ 이분들 내가 타는 마차로 모셔드리게!"

뚱뚱한 사내가 골드를 허겁지겁 받아 들더니 생글생글 웃었다.

몇 대 쥐어박고 싶은 몰골이었지만, 참으며 용병을 따라갔다.

"흐흐­ 여자 세 분이랑 여행 중이시라니... 부럽습니다.."

용병이 손을 비비며 이지수와 키아나를 훔쳐봤다.

그에 가면 아래로 드러난 키아나의 입꼬리가 굳었다.

용병에게 대충 손을 저어주고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뚱뚱한 사내에 걸맞게 실내가 꽤 넓었다.

이지수와 천오를 옆에 앉히고 나도 앉았다.

키아나는 아무 말 없이 창가 옆에 앉아 밖을 응시했다.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하긴 나는 멀리서만 봤으니.

잠시 뒤 마차 문이 열리며 뚱뚱한 사내가 들어왔다.

사내는 반대편 의자에 앉아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자 고기 냄새가 마차 안에 물씬 풍겼다.

저 새끼 진짜 쥐어박고 싶네.

사내가 마차 문을 쾅쾅­ 두드리자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종이를 보며 끊임없이 뭔가를 확인했다.

마차의 짐이 제법 되어 보였으니 꽤 큰 크기의 상단을 운영하는 듯했다.

침묵 속에서 마차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나는 기운과 신성력을 돌리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어찌 되었건 저들과 우리는 남이니까.

종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사내가 고개를 든 것은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여전히 키아나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새 드러누운 이지수는 배를 긁고 있었다.

"후­ 제대로 됐군. 아!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리베트라고 합니다."

뚱뚱한 사내가 튼실한 볼살을 끌어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이름을 보니 공화국 사람이 아닌 듯했다.

"에이든이라고 합니다."

나는 찜찜했지만, 사내의 손을 마주 잡았다.

"하하! 제국 분이셨군요. 저도 제국 출신입니다. 기회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지만요."

사내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렇군요."

나는 그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빼내었다.

손에 묻은 기분 나쁜 기름기를 바지에 슥슥 닦았다.

"에이든 씨도 운이 좋으셨군요. 후후­."

피에 젖은 내 바지를 보며 사내가 낮게 웃었다.

"운이 좋다고요?"

이 새끼가 놀리는 건가?

지금 시발 바지 피 칠갑 된 거 안 보여?

"예. 어찌 되었건 이렇게 무사히 하운성에서 탈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음침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사내는 꽤 긍정적인 성격인 듯했다.

"사실 어제 저 용병 놈들이 자꾸만 게으름 피워 일정이 생각보다 늦어져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성에 들어가지 못해 도시를 앞에 두고도 야영을 해야 한다는 멍청한 상황에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는데 막상 자려고 침낭을 꺼내니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는 저 꼴이 된 겁니다."

사내가 살집이 잔뜩 잡힌 입꼬리를 올리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는 하운성의 무너짐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분이 정말 좋은 듯했다.

"음.. 그래도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한 사고 아닙니까."

나는 사내를 응시하고 있는 키아나를 보고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안타까운 사고기는 하죠.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신이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요. 이건 비밀인데 아마 성주 놈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천벌이요?"

"예. 잔악한 성주 놈이 세금을 자그마치 5% 나 올린 거 아닙니까? 5%라니... 천벌 받고도 충분합니다. 암 그렇고 말고요."

사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키아나의 피 묻은 주먹에 핏줄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나는 여기서 사고 쳐서 이지수와 천오를 들고 안수성까지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황급히 손을 뻗어 키아나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세금으로 저 정도의 인명 피해라니... 이치에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제발 좀 닥쳐 이 돼지 새끼야 시발.

하지만 눈치 없는 돼지 새끼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이야 뭐.. 지금 세상에서 제일 값싼 게 인간 아닙니까. 심지어 암흑 시장에서는 인간 하나에 1골드도 안 된다던데... 이 작은 금화 하나보다 인간이 더 가치가 없는 세상입니다. 아마 그 간악한 성주 놈도 인간이 죽은 것보다 건물들이 무너진 게 더 뼈아플 겁니다. 물론 같이 묻혔겠지만. 안타깝기는 해도 지금 세상이 그런 세상 아니겠습니까?"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띠꺼웠지만, 죄다 사실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우리는 암흑 시장을 가서 그 모습을 봤으니까.

나는 그저 침묵하며 키아나의 손을 더욱 세게 쥘 수밖에 없었다.

키아나가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세금을 올린 성주가 죽었다는 사실이 못내 기분이 좋은 듯 끌끌­ 거리며 웃었다.

"안수성에 혁명단이 결성됐다고 들었습니다. 제국 쪽과 신교들도 공화국을 압박하는 상황을 보니... 혁명단에도 제법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저는 거기로 향하는 중입니다.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 일에 제 전부를 걸 생각입니다."

사내는 기분이 정말 좋은 듯 끊임없이 입을 나불거렸다.

"혁명단이요?"

사내의 입에서 나온 혁명단이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

"예. 세를 부풀리는 게 꽤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나름 공화국 승계 순위에 있는 인물도 갖췄다고 하고.. 제국 쪽과도 연이 있어 보이니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내가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말했다.

혁명단이 제국 쪽과 연이 있었어?

처음 듣는 소리인데.

하기사 나는 혁명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게 많았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가 아닙니다! 같은 제국민이라 말해주는 건데 원래 이런 건 초기에 들어가야 후에 받는 게 큰 법입니다. 에이든 씨도 검을 보니 실력이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저와 같이 혁명단에 들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공화국 놈들은 죄다 머리에 뭘 박아놓은 것처럼 멍청해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제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휴­"

사내가 뜬금없이 내게 혁명단을 권유했다.

혁명단인 내가 아직 혁명단에 들어가지 않은 사내에게 혁명단을 권유받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때 꺼림직한 기운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질척이고 절로 기분이 나빠지는 기운은 악마가 분명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마차로 날아왔다.

나는 막을 수 있었지만, 굳이 막지 않았다.

피잉­!

마차가 뚫리며 맹수의 이빨 같은 굵고 날카로운 것이 사내의 머리에 정확하게 박혔다.

사내가 피를 뿌리며 날아가 마차의 벽에 부딪히며 비명을 질렀다.

"끄윽­ 사..살려주십쇼..."

머리가 반쯤은 날아간 사내가 흐릿한 시선으로 나를 보며 애절하게 매달렸다.

안쪽 주머니였지.

나는 그런 사내의 품 안에 손을 넣어 뒤졌다.

제법 두꺼운 주머니가 만져졌다.

"미안하지만. 그쪽보다 마차 값이 더 나갈 듯해서 말이야. 안타깝지만... 그런 세상 아니겠어?"

매달리는 사내에게 웃어주며 품 안을 좀 더 뒤졌다.

사내는 신중한 성격인 듯 반대편에서 더 무거운 주머니가 나왔다.

내 말에 사내가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주머니들을 꼼꼼하게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리니 키아나가 떨리는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손도 부들부들 떨리는 게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듯했다.

"사저는 여기서 쟤들 좀 지켜줘요. 제가 나갔다 올게요."

내 말에 키아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루나검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마차 문을 열었다.

밖에는 어김없이 끔찍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웨에에에엥­!!!"

등에 곤충처럼 날개를 달고 있는 나체의 사내들이 가랑이를 벌린 상태로 날아다녔다.

얼굴은 이미 곤충처럼 잔털이 잔뜩 난 상태였고 중요한 그곳에는 마치 벌침처럼 날카롭고 흉흉한 게 튀어 나와 있었다.

저것을 쏜 게 마차를 뚫고 들어온 듯했다.

진짜 좆같이 생긴 악마네 시발.

으아아아악!!!

용병들은 악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뜯어 먹히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마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마차 몰 줄 모르는데.

웨에에에엥­!!

좆같은 악마 하나가 내게 날아왔다.

"마차 몰 수 있는 사람! 선착순 한 명!"

악마를 가볍게 반으로 가르며 소리쳤다.

"저요! 저는 어릴 적부터 마차를 몰았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심지어 말에 몰래 고추를 넣어본 적도 있습니다!!"

전혀 용병처럼 보이지 않는 소년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근육도 없고 손에 들고 있는 무기도 단검인 것으로 보아 아마 심부름꾼인 듯했다.

발이 빠른지 악마들을 피해 잘 도망 다니고 있었다.

말을 몰 수 있다면 다른 건 상관없었다.

근데 시발 뭘 넣었다고?

­ 음.. 이 악마 피는 좀 달군. 입이 텁텁해.

넌 입 없잖아.

­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럭저럭 기분은 나니까 말이야!

같잖은 농담을 하는 검과.

'한 마리도 놓치지 마! 사도!! 저것들 꽤 짭짤해! 가랏! 사도몬!! 몸통 박치기!!'

악마를 보며 눈을 빛내는 신.

좆같네 진짜.

방금까지 용병의 무기를 손질하고 있던 소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아까 용병이 내기에서 졌다고 신을 욕하던 것을 신이 들었나?

고작 욕 좀 했다고 몰살을 시켜버리다니­

정말 그렇다면 고블린 보다 쪼잔한 신이 분명했다.

"으악!!"

정신없이 도망치던 소년은 유난히 큰 돌을 보지 못하고 걸려 엎어졌다.

온몸이 바닥에 쓸리는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가득 찬 공포 때문에 소년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웨에에엥!!!

가랑이를 벌린 나체의 남자가 날개를 펄럭거리며 쓰러진 소년에게 날아왔다.

"으아아아악!!!"

그 끔찍한 모습에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왕 죽을 거면 한 번에 죽었으면­

이윽고 자신을 덮칠 고통을 생각하며 소년은 벌벌 떨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고통이 아니라 시원한 감촉이 소년을 덮쳤다.

소년이 천천히 눈을 뜨자 자신의 양옆으로 갈라져 있는 시체가 보였다.

소년의 몸은 시체에서 나온 검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검은 피에서 맡아지는 냄새가 소년의 머리를 어지럽혔고 내부가 훤히 보이는 시체의 모습이 소년의 심장을 내려 앉혔다.

그에 소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참 좆같은 세상이야. 그렇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사내가 소년의 앞에서 히죽 웃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든 빛나는 검에서 검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

닌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다.

끈기를 수련하기 위해 폭포 아래에서 맨몸으로 사흘을 버텨야 했으며.

소리 내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물 아래에서 대나무를 물고 이틀을 보내야 했고.

공포를 잊기 위해 독충이 득실득실한 곳에 들어가 누워 하루를 숨죽여야 했다.

위의 고된 과정을 거쳐야 그제야 닌자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 닌자 중에서도 엘리트였던 노노하는 공포를 잊은 지 오래였다.

까드득­까드득­

'무서워!!!!'

옆에서 손톱을 죄다 쥐어뜯는 루나를 보며 노노하는 바지에 시원하게 오줌을 지렸다.

루나는 손에서 피가 터져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어뜯었다.

노노하는 지금 루나 방에서 몇 날 며칠을 보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을 손가락 하나로 이동시키는 루나였다.

노노하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왜왜? 왜 안 오는 거야?"

루나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닌닌!닌닌!"

루나가 터지기 전에 노노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노노하는 지금 이 여자를 밖으로 내보내면 세상이 위험해지는 건 알았다.

세상을 끝내는 것은 이런 미친 여자가 아니라 닌자여야 한다.

그게 닌자의 맹약이었다.

"응? 지금 가면 에이든이 나를 질려 할 거라고? 그런가? 그런 거야? 확실해?"

초점 없는 루나의 시선에 노노하는 조금 더 지렸다.

"닌닌! 닌닌!"

노노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기다리는 만큼 보상이 커질 거라고...?"

루나의 눈에 초점이 살짝 돌아왔다.

"닌닌.닌닌."

그 모습을 보며 노노하는 한시름 놨다.

몇 번이나 터질 것 같은 루나를 막아온 노노하는 루나가 진정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을 눈치챘다.

"맞아맞아. 너무 들이대면 매력이 없다고 했어­..."

루나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무거웠던 공기가 차츰 돌아왔고 입김이 날 정도로 추웠던 실내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닌닌­"

그제야 노노하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루나는 조금 달랐다.

"...근데 만약 에이든이 날 잊은 거라면?"

싸늘한 루나의 목소리가 노노하에게 들렸다.

쩌저적­

루나의 주변으로 공간이 차츰 얼었다.

"주변에 있는 쓰레기들이 에이든의 눈을 가렸다면?"

다시 고개를 들은 루나의 눈은 저 멀리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루나의 손이 공간을 비틀었고 그 사이로 무저갱 같은 균열이 드러났다.

새로운 전개에 노노하는 당황했다. 아니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런 위기 속에서도 노노하는 닌자답게 심호흡하며 머리를 굴렸다.

지금 상황은 방금처럼 달래서 끝낼 상황이 아니었다.

닌자들은 본능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를 안다.

지금이 바로 노노하가 목숨을 걸어야 할 때였다.

닌자의 비기를 꺼낼 때였다.

"닌닌.닌닌."

노노하는 떨리는 목소리를 힘주어 감추었다.

얼고 있던 공간이 멈추고 무저갱 같았던 균열이 천천히 닫혔다.

어긋나 있었던 루나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저..정말? 에이든이 그랬어?"

루나의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닌닌!"

나머지는 에이든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노노하는 통나무 바꿔치기를 사용했다.

물론 그 상대는 에이든이었다.

노노하의 말에 루나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걸로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노노하는 자신에게서 물씬 풍기는 지린내를 애써 무시했다.

닌자에게 이 정도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진정한 닌자 노노하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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