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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51화 (151/233)

〈 151화 〉 가슴 만지기.

* * *

결국, 소년만 살아남았다.

악마들은 용병들에게는 위협이 될 정도였지만, 내게는 조금 귀찮은 정도였다.

대충 악마들을 처리하고 용병들의 시체를 한쪽으로 치웠다.

다른 것보다 마차 안에서 죽은 뚱뚱한 사내를 처리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정리를 다 마치고 대충 쓰러진 용병의 옷 중 깨끗한 곳을 뜯어 손과 검을 닦았다.

이윽고 소년이 마부 석에 앉았고 마차는 다시 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지수와 천오는 곤히 자고 있었다.

"...고생했어 사제."

키아나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키아나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검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았다.

"별 것 없더라고요. 보기 흉하기만 하지."

마차에 묻은 피가 거슬렸지만, 길바닥에서 청소까지 할 여유는 없었다.

내 말에 키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침묵 속에서 마차는 다시 출발했다.

해가 떠오를 때쯤 대우성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정지! 정지!"

경비대가 우리 마차를 세웠다.

곳곳이 깨지고 피가 묻은 마차는 누가 봐도 의심스러웠다.

마차가 멈추자 나는 밖으로 나갔다.

"어엇?! 당신은!!"

운 좋게도 우리를 막아 세운 경비대원은 김종인이 나를 만나러 올 때 대동했던 사내였다.

나를 알아본 사내에게 손을 대충 흔들었다.

"영..영주님은 어떻게 되셨습네까?"

피에 젖은 마차의 모습에 사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별 일없을 거다. 따로 돌아오기로 했어."

"알겠습니다. 통과!!"

우리는 성문을 통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소년에게 제법 큰 여관 앞에 마차를 세우도록 했다.

"자. 이거 가지고 잘 살아라."

뚱뚱한 사내의 주머니에는 금화가 잔뜩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소년에게 금화 몇 개를 던져줬다.

아마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은인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리버라고 합니다!"

소년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딱히 얘를 구하고 싶어서 구한 것도 아니고 쥐여준 돈도 내 돈이 아니라 소년의 순수한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드숀이다. 잘 지내라."

자꾸만 눈을 빛내며 나를 보는 소년의 등을 밀었다.

소년은 가면서도 몇 번이나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나는 그냥 대충 손만 휘저어줬다.

"사저. 잠시 쉬고 가죠. 어제 잠을 못 잤으니까요."

내 말에 키아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아나는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나는 자는 이지수와 천오를 챙겨 여관으로 들어갔다.

방을 세 개 잡은 다음 이지수와 천오를 한 군데에 몰아넣고 나머지 두 개 방을 나와 키아나가 각각 썼다.

방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오자 점원에게 부탁했던 새 옷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이미 피에 잔뜩 절은 옷은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점원의 눈이 좋은 듯 몸에 딱 맞았다.

그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웠다.

어떻게 하다 보니 도시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렸지만, 살아남았다.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다른 거야 어떻게 되건 말건.

우습게도 뚱뚱한 사내의 말처럼 사람에게는 자신이 제일 중요했다.

자려고 몸을 뒤척이다 보니 키아나의 불안한 모습이 신경 쓰였다.

아래에서 얼마나 흉한 모습을 보고 왔는지, 키아나는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분명 우리 잘못이 아니었지만, 키아나의 올곧은 성격이 되려 좀먹고 있는 듯했다.

눈을 감자 덜덜 떨리는 키아나의 손이 떠올랐다.

나는 한숨 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가슴을 만져줘서 기분을 좀 풀어줘야 했다.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키아나도 거절하지 못하겠지.

약속은 꼭 지키는 성격이니까.

키아나의 하얗고 알찬 가슴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줘!!

키아나는 그 이후부터 계속해서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흙에 짓눌린 채 자신에게 절규하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차마 키아나가 잡지 못해 땅에 떨어진 사람이 피눈물 흘리며 키아나를 노려봤다.

그런 지옥의 중심에 키아나가 있었다.

수많은 죽음에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에이든의 판단에 의문을 품은 건 아니었다.

거기서 폭탄을 터뜨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으니까.

에이든은 상황에 맞춰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좀 더 강해서 그들 모두를 제압할 수 있었다면­.

에이든이 그런 판단을 안 내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키아나를 좀 먹었다.

키아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움직여 몸에 묻은 피를 지웠다.

한참이나 찬물 속에서 몸을 씻었지만, 손에 묻은 피는 그대로였다.

이 피는 아마 앞으로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키아나는 숨죽이며 한참이나 찬물을 뒤집어썼다.

키아나는 결국 피를 다 닦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물기를 닦지 못해 키아나의 발아래로 물이 고였다.

그 물방울이 붉은 듯해 키아나가 몸을 움츠렸다.

나도 데려가 줘­.

바닥에서 피가 잔뜩 묻은 손들이 올라와 키아나를 붙잡았다.

키아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발을 휘저었다.

키아나의 발에 닿은 손은 안개처럼 사라졌지만, 이내 다시 생겨 키아나를 붙잡았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키아나의 정신이 돌아왔다.

어느새 손들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이내 슬금슬금 다시 올라왔다.

키아나는 손을 피하고자 황급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이제는 전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다부진 남자가 된 에이든이 서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얼굴에는 이런저런 흉터가 생겼지만, 그 순수한 눈망울만은 그대로였다.

아마 자신이 걱정돼서 왔으리라­.

자신보다 그런 큰 결단을 내린 본인이 더 괴로울 것이 분명한데...

늘 그렇듯 자신보다 성숙한 사제였다.

자신은 그런 사제에게 부족한 사저였고.

에이든이 몸을 떨고 있는 키아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키아나는 참지 못하고 에이든의 품에 안겼다.

사제의 품은 자신의 생각보다 넓고 포근했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에이든이 그런 키아나를 부드럽게 안고 토닥였다.

키아나는 환청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더 이상 피 묻은 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에이든의 품에 안겨 울었다.

***

시발 왜 다 벗고 있어.

방문을 열자마자 나체로 맞이하는 키아나의 모습에 당황했다.

키아나의 나체를 보니 다시금 오고고고곡­ 이 떠올랐다.

방금까지 쫀득 가슴 만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키아나가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늘 올곧았던 그 눈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가슴 만져주는 게 특효약이지.

마침 옷을 다 벗고 있어서 만지기도 쉬웠다.

나는 키아나의 쫀득 가슴을 만지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잠깐 고민하느라 멈칫거렸다.

그 사이에 키아나가 대뜸 내 품에 안겨들었다.

이..이거 신호인가? 신호겠지?

가슴 만지라는 거겠지?

쫀득 가슴을 만지기 위해 좀 더 손을 내밀었다.

근데 마주 보고 안은 상태라 가슴을 만지기 힘들었다.

이리저리 손을 넣어봤지만, 도무지 자세가 안 나왔다.

손끝으로만 옆 가슴을 문지르는 게 전부였다.

내 품에 안긴 키아나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일단 방문을 닫고 잠갔다.

키아나가 마치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을 빼낼 것처럼 엉엉 울었다.

그 모습에 키아나와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울면서 웃고 그러면서 메론빵을 주워먹던 키아나.

얘도 미친년이었지.

잠시 아름다운 외모에 속아 잊고 있었다.

아니 쫀득 가슴에 속아 잊고 있었다.

그냥 이지수 가슴이나 만지러 갈걸.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서서 키아나를 안아줬다.

얼마나 울었는지 목이 다 쉴 때쯤 키아나가 내 품에 쓰러졌다.

나는 혀를 차며 그런 키아나를 침대에 눕혔다.

잠시 아름다운 키아나의 나체를 구경하다가 냉큼 그 옆에 누웠다.

침대가 좁긴 했지만, 붙으니 대충 둘이 누울 수 있었다.

나는 키아나가 확실히 기절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뺨을 몇 대 때렸다.

뺨이 붉어졌는데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완전히 기절한 듯했다.

나는 그제야 키아나의 쫀득 가슴을 마음껏 만졌다.

그렇게 주물럭거리다 잠자리에 들었다.

"사제. 저녁 먹어야지."

누군가가 흔드는 느낌에 눈을 뜨니 키아나가 옆에 앉아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에 아침이 온 것처럼 방이 살짝 밝아졌다.

그것과는 별개로 옷은 이미 입은 상태였다.

나는 아쉬움에 혀를 차며 잠에서 깨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고마워 사제. 덕분에 괜찮아졌어."

키아나가 머리를 검은 끈으로 질끈 묶으며 말했다.

그러자 키아나의 흰 목이 드러났다.

"예. 다행이에요 사저가 돌아와서."

나는 그 뽀얀 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대답했다.

"응. 내가 좀 나약해져 있었나 봐. 죽는 건 늘 있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머리를 질끈 묶은 키아나가 나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게요. 죽음을 슬퍼하기에는 좆같은 세상이잖아요."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지 조옷­ 같은 세상이야."

키아나가 어색하게 내 말을 따라 하며 마주 웃었다.

"그래도 눈요기해서 좋았어요. 저는."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이지수에 비하면 볼품없는 걸. 일어나자 애들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내 말에 키아나가 풋­하고 작게 웃었다.

"저도 마침 배고프네요."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지만, 상쾌했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키아나가 돌연 내 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이윽고 진달래 향이 풍기며 키아나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긴장한 모양인지 키아나의 입술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

엄청나게 짧은 입맞춤이 지나가고 키아나가 떨어졌다.

"그냥 고마워서­."

붉어진 얼굴의 키아나가 작게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예­ 뭐. 좋네요."

예상치 못한 입맞춤에 순간 머리가 멍해져 바보 같은 대답이 나왔다.

"푸흐­ 이제야 다시 사제 같네. 최근에 너무 어른스러웠어."

방긋 웃은 키아나가 문으로 걸어갔다.

키아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입에 남은 부드러운 감촉을 음미했다.

내가 그 키아나와 입을 맞추다니?

혹시 나 정말 인기남이 된 건가.

이윽고 키아나가 방에서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키아나가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 맞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너무 세게 만지지 마! 손자국이 다 남았잖아."

키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고는 사라졌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만졌나.

그런데 다음부터라니?

그 단어에 담겨있는 묘한 어감에 자꾸만 아래에 힘이 들어가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

제국군은 경계로 수월하게 진입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는지 그 모든 게 매끄럽게 진행됐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고 있던 황녀는 굴러들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서아는 긴장감 속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제국군의 모습에 안심했다.

물론 이 상태라면 혁명이 성공해도 제국의 입김이 강해지겠지만, 지금의 공화국보다는 나으리라.

다만 서아에게는 불만이 하나 있었다.

"야!! 첩!"

"아앗! 꼬집지 말라고요! 첩 아니라니까요!"

"뭐어?! 이게 아직도 정실인 내게 기어오르네?!"

서아는 끊임없이 자신의 엉덩이를 쥐어뜯는 삼황녀가 불만이었다.

삼황녀는 자신의 엉덩이에 무슨 한이라도 맺혔는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트집을 잡아 쥐어뜯었다.

"이익! 아무리 꼬집어도 엉덩이가 그대로야! 안 되겠어! 첩! 너는 오늘부터 나랑 같은 천막을 쓴다!"

케이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서아를 가리켰다.

"에엣?! 저는 이미 제국군 쪽에서 지급한 개인 천막이 있는데요..."

서아는 케이트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뭐?"

"아니에요..."

케이트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서아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이렇게 되면 밤에도 저 성질 더러운 황녀랑 꼼짝없이 자게 생겼다.

도대체 어디부터 이렇게 꼬였는지 진짜.

마침내 제국군이 경계를 넘었고 내부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예상과는 다르게 공화국과 바로 부딪히지 않았다.

제국군은 주변이 탁 트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터를 잡을 준비를 했다.

물론 케이트의 천막은 벌써 지어져 있었고 케이트는 그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야!"

"첩! 서아!"

서아의 기합이 잔뜩 들어간 대답에 케이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야!"

"첩! 서아!"

어디서 배웠는지 이상한 놀이에 푹 빠진 케이트가 계속 서아를 꾹꾹 찔렀다.

"첩! 서아! 화장실 가고 싶습니다!"

서아는 어떻게든 케이트에게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단 나가서 좀 떨어진 곳에 개인 천막을 치면 하루는 피할 수 있으리라.

"으응... 그래! 오냐! 허락한다! 다녀오도록!"

잠시 꿍얼거리던 케이트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왜 자신이 감사를 표하는지 모르겠지만, 서아는 황급히 케이트의 천막에서 나왔다.

혁명단도 상황이 바쁘다 보니 제대로 된 경호 인력을 데려오지 못했다.

데리고 온 병력도 제국군 측에서 한 곳에 묶어서 감시하고 있었다.

아마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한다는 거겠지.

그렇다고 서아가 그들을 풀어달라고 제국군에게 요구할 수도 없었다.

서아는 케이트의 천막을 곁눈질하며 최대한 멀리 멀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천막들에 가려서 더 이상 케이트의 천막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아는 보급받았던 천막을 다시 찾기 위해 빙 둘러서 움직였다.

조그맣지만 포근해 보이는 천막을 받아 빈자리로 움직였다.

서아는 중심과 살짝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래도 주변에 천막이 몇 개 있는 곳에 천막을 폈다.

간단한 마법이 내장된 천막답게 톡 치자 저절로 펴졌다.

안의 공간은 작았지만, 서아의 마음은 편해졌다.

여기는 자신을 괴롭히는 황녀가 없었으니까.

파직­.

만족스럽게 누워 잠을 자려는데,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창이 천막을 찢어발기며 서아에게 쏘아졌다.

서아는 이를 악물며 뒹굴었지만, 창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도대체 제국군 내에서 자신에게 왜?

코앞까지 다가온 창을 보며 서아는 의문을 표했다.

제국군 쪽에서 혁명단을 배신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인다고 혁명단에 큰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적을 하나 더 만들 뿐인데­.

캉!!

날카로운 창이 서아의 심장을 찌르기 바로 직전­

흰색 창이 그사이에 파고들며 창을 쳐냈다.

천막이 찢어지며 앞의 모습이 드러났다.

서아에게 창을 찌르고 있는 사람은 회의장에서 봤던 노인이었다.

그 창을 막아내고 있는 건 흰 머리의 여자였다.

둘은 빠르게 창을 섞으며 기운을 뿜어냈다.

여자의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노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올가! 먼지 날리잖아! 빨리 처리해! 그리고 너! 화장실 간다며!! 이 멍청한 게 진짜 번거롭게 하네?!"

그 뒤로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케이트가 보였다.

"화..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요!"

살벌한 모습에 서아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흐응­ 뭐 꼴을 보니 그런 것 같네. 올가! 힘들어? 도와줘?"

케이트가 서아의 바지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서아는 그 시선에 따라 아래를 봤다가 황급히 바지를 가렸다.

다 큰 처녀가 바지에 지리다니...

서아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흰 머리 소녀가 고개를 젓더니 조금 더 빠르게 창을 움직였다.

"건방진...! 황녀님!! 왜 막는 겁니까!!!"

노인이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창을 움직였지만, 몸에 상처가 점점 더 늘고 있었다.

"건방지게 내 부하를 건드리려고 하다니. 이런 건 확실히 처리해야 한다니까. 괜히 정실인 내 권위까지 떨어지잖아."

케이트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바람이 불며 노인의 발끝을 베어냈다.

"으윽!"

그에 중심이 무너진 노인의 심장에 흰 여자의 창이 꽂혔다.

뿜어지는 피가 백색 창에 흡수됐다.

이내 피가 다 빨린 노인네가 쓰러졌다.

"도..도대체 왜 나를 죽이려고...?"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서아가 중얼거렸다.

"정말 몰라? 네 아빠가 서강이라며."

케이트가 마치 바보를 본다는 눈빛으로 서아를 쳐다봤다.

"네.. 저희 아버지가 그 영웅 서강..."

늘 아버지에게 자부심을 가졌던 서아였지만, 지금은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 영웅이겠지 공화국에서는. 제국에서는 제국 일통을 방해한 죽일 놈이고."

케이트가 손짓하자 흰 머리 여자와 노인의 시체가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너!! 감히 정실한테 거짓말을 해?! 하여튼 이래서 첩이 안 된다니까! 이리 와!!!"

다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온 케이트가 서아에게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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