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52화 (152/233)

〈 152화 〉 털복숭이 우두머리.

* * *

역시 가슴을 만지는 게 특효약인 듯 키아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다만 나를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사제 이것도 먹어봐. 맛있어."

키아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내 입에 고기를 갖다 댔다.

"아­ 고맙습니다. 사저."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받아먹었다.

물론 키아나 같은 미인이 먹여주는 건 당연히 좋지만, 문제는 옆에 있는 애들이었다.

"이익! 이것도 드셔 보십쇼!! 공화국에서는 이렇게 먹어야 제대로 인 겁네다!!"

이지수가 뭔가를 잔뜩 섞은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서 내게 먹였다.

먹기 싫었지만, 이지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키아나를 힐끔거려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우웩­

예상대로 혼미한 맛에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애써 참았다.

이지수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든 듯 방긋 웃었다.

"..."

이번에는 천오가 숟가락 위에 자그마한 그릇을 올려 내게 내밀었다.

"그건 그릇이야. 먹는 게 아니야."

나는 황급히 그릇을 뺏어 내려놨다.

천오가 뭔가를 우물우물 씹으며 나를 쳐다봤다.

"너 입에 뭐야."

천오의 빵빵한 볼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웩­."

천오의 입에서 잘게 부숴진 그릇 조각들이 떨어졌다.

"야! 얘 뭐 먹는지 감시 잘 하랬지."

황급히 천오의 입을 벌려 안을 확인했다.

"천오 동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두고 왜 그릇을 집어먹는 겁네까!!"

화들짝 놀란 이지수도 옆에 붙어서 같이 확인했다.

에­.

천오의 입안은 보통 사람과 모습은 똑같았지만, 그릇을 씹었는데도 상처가 전혀 없었다.

애가 이상한 건 알고 있었는데 그릇까지 씹어먹을 줄이야.

"천오 동무는 입안이 참 혁명적입네다. 저런 걸 씹어도 괜찮다니. 속이 더부룩하거나 하진 않습네까? 아악!"

이지수가 천오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씹히자 비명을 지르며 천오의 등을 두들겼다.

"웩­."

천오의 입 옆으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악! 천오 동무가 제 손가락을 먹었습네다! 아픕네다! 아픕네다!!"

이지수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보며 비명을 질러댔다.

"손가락은 멀쩡히 붙어 있어. 그냥 좀까진 것 뿐이니까 엄살 부리지 마. 그러니까 애 입에 왜 손가락을 넣냐."

옆의 냅킨으로 천오 입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어? 진짜 살짝 깨물기만 했습네다."

피를 보고 발작하던 이지수가 내 말에 진정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살폈다.

"근데 뱉다니..이건 무슨 뜻입네까! 천오 동무! 제 손가락이 맛없습니까?! 손가락을 잃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 손가락이 맛없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입네다!! 여기에 소스를 좀 더 뿌리면... 자! 이번에는 어떻습네까!"

이지수가 자기 손가락에 식탁에 있던 소스를 뿌리고 다시 내밀었다.

나는 그 멍청한 모습에 참지 못하고 이지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악!!! 왜 때립네까?! 에이든 동무 취향이 그쪽인 겁네까?! 저는 괜찮습네다! 더 때리십쇼! 탱글탱글 할겁네다!"

머리를 부여잡고 울먹이던 이지수가 대뜸 자신의 가슴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이런! 다 큰 처자가 밖에서 가슴을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옆에 있던 키아나가 황급히 이지수를 막았다.

"헹! 제 탄탄하고 탱글탱글한 가슴이 부럽습네까?! 절벽녀!"

"저는 가슴이 큰 편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쪽이 무식하게 큰 것뿐입니다."

"뭐라구요~? 가슴이 작아서 잘 안 들립니다만­ 에베베."

"이..이!!"

결국 키아나가 참지 못하고 이지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악!"

이지수가 머리를 부여잡고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웩­."

그세 또 뭔가를 주워먹은 천오가 뱉어냈다.

"이 절벽녀가 저를 때렸습네다!! 에이든 동무!!"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한 이지수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이..이건 사제 그러니까­..."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키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손을 저었다.

주변이 자꾸만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

정신 사납기는 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안수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제는 이제 괜찮은 것 같으니까, 나는 제국군 쪽으로 돌아갈게. 스승님도 합류하셨을 테니까.'

키아나는 안수성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와 헤어졌다.

하긴 제국의 귀족이 공화국의 혁명단에 들어가는 게 우습기는 했다.

심지어 키아나는 공작가였으니까.

내게 키아나는 보험 같은 존재라 같이 다니면 좋았지만, 굳이 간다는 걸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나는 좆밥이 아니니까.

안수성은 내가 떠날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성안에는 전보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무장한 상태였다.

건물들도 예전의 그 칙칙한 회색에서 알록달록한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문에서 마주친 사내가 나를 알아보고 내성으로 안내했다.

다른 건물들이 바뀐 것처럼 내성도 바뀌어 있었다.

내성의 아랫부분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흉측한 모습이었다.

색을 칠할 때 손바닥으로 칠한 듯 손 모 양으로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서 혁명단의 굳은 의지 같은 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그저 피로 된 손바닥이 잔뜩 찍혀 있는 모습이었다.

관광객이라면 마왕이 거주하는 성이 아닐까 의심할 것 같았다.

우리는 내성의 홀로 안내되었다.

저번에 왔을 때는 말악마가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홀에 들어서자 시끄럽던 홀이 조용해졌다.

뭐야 이 익숙한 분위기는.

문득 용사 아카데미 시절이 생각났다.

짝짝짝!

잠깐의 침묵 뒤에 우렁찬 박수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왜 사람들이 박수 치는 지 모르겠지만,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오옷!! 드디어 저의 진가를..!! 제가 바로 혁명입네다!"

박수에 잔뜩 흥분한 이지수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무릎을 굽히며 한쪽으로 팔을 쭉 뻗었다.

옆에 있던 천오가 슬그머니 이지수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따라 했다.

내 양옆으로 두 명이 팔을 괴상하게 쭉 뻗었다.

그 흉한 모습에 박수가 잠시 멈췄다가 황급히 이어졌다.

"고생했네."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중년 남성이 걸어 나왔다.

그때 봤던 서아의 양아버지였다. 이름이 김지훈이었나.

그 뒤에는 인상을 잔뜩 쓴 서윤이 서 있었다.

내가 슬그머니 손을 흔들자 서윤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띠껍기는 하지만 굳이 밉보일 필요는 없지.

나는 서아의 명품 엉덩이를 생각하며 점잖은 표정을 지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네."

나를 보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던 김지훈이 다시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김지훈의 손을 마주 잡았다.

김지훈이 맞잡은 손에 갑자기 힘을 주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더 큰 힘을 줬다.

"윽­. 이런 버릇없는.. 하하! 그래 이쪽으로 오게나."

김지훈이 작게 욕지기를 내뱉으며 내 손을 놓았다.

다시 웃는 낯으로 바꾼 김지훈이 나를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홀의 안쪽에는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얼굴에 수염이 잔뜩 난 남자는 짙은 검은색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머리에는 괴상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한 눈으로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보다 비범한... 아니 그냥 병신 같았다.

근데 저거 수염이랑 선글라스만 똑같으면 애비도 못 알아보겠네.

"혁명단의 에이든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수도에서 혁명단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혼자 낭만 검사를 막았습니다."

김지훈이 나를 가리키며 남자에게 소개했다.

"큼큼­. 아! 반갑군! 나는 김두환이라고 하네!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뒤에 남았다니 정말 의리 있는 사내구만! 마음에 들어!"

남자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그럼 이 남자가 그 승계 순위에 있다는 사람인가.

"하하!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거는 건 용사의 의무죠. 하나도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내의 위치를 알자 내 입에서 자연스레 입바른 소리가 나왔다.

"후후 정말 마음에 드는 사내구만. 사내 중의 사내야! 옆에 여자를 두 명씩 끼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어! 자고로 남자라면 여자를 양손과 양발에 하나씩... 하여튼! 의리 넘치는 자네가 살아 돌아와 정말 다행이네."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자자­ 머리 아픈 건 일단 내려두고 우리의 영웅이 돌아왔으니 다들 즐기자고!"

"어제도 즐겼습니다. 이제는 그만 즐기고..."

"난세는 영웅을 부르는 법이지! 자 말해보게! 우이든! 자네는 영웅이 될 준비가 되어 있나?!"

김지훈이 슬그머니 남자를 말렸지만, 남자는 내 어깨를 부여잡으며 언성을 더욱 높였다.

가까이 붙은 남자에게서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영웅이 될 준비요?"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 털북숭이가.

"그렇지! 영웅! 아아­ 이 얼마나 달콤한 울림인가."

나는 남자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질림을 봤다.

"자자 그럼 다들 잔을 들고! 아­ 여기는 잔이 없군. 재미없는 곳이야. 잔이 없으면 내오면 되지! 거기 의리 친구!! 잔을 내오게!"

남자가 몸을 비틀거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하지만 홀에 있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으음 내 목소리가 작았나? 자! 어서 의리를 지키기 위한 잔을...!"

퍽­

김지훈이 뭉툭한 몽둥이로 남자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남자가 깊게 숨을 내뱉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털북숭이 남자에게 손이 닿고 싶지 않아서 쓰러지는 남자를 잡지 않았다.

그에 털북숭이 남자가 우스꽝스럽게 땅바닥에 엎어졌다.

"하하. 아무튼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지낼 곳은 저 사람이 알려줄 것이야. 일단은 쉬고 내일 내가 다시 부르겠네."

김지훈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쓰러진 남자를 의자에 다시 앉혔다.

"크흐으음­ 의­리이..."

남자의 선글라스가 삐뚤어져 있었다.

"후­ 그럼 다시 본래로 돌아가서­ 제국군의 병력은..."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회의가 다시 진행됐다.

이거 시발...

진영 잘못 선택한 거 같은데?

***

김지훈이 나를 부른 것은 다음날이었다.

"음... 어제는 못 볼 꼴을 보인 듯해서 미안하군."

김지훈이 널찍한 책상에 앉아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아. 뭐 그럴 수도 있죠. 자기 윗사람 뒤통수 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래, 그냥 자유분방하고 젊은 단체라고 생각하자.

노답 단체라고 생각하면 괜히 들어온 게 후회만 되니까.

나도 미친 노망난 노인네한테 검을 박는 게 꿈이기도 하고.

"크흠.. 김두환 님은 좋은 분일세. 다만­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문제지."

김지훈이 볼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술 냄새가 많이 나긴 하더군요."

"그렇지. 만약 거기서 말리지 않았으면 우리는 또다시 연회를 열었을 것이네. 전쟁을 앞둔 지금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어."

슥슥슥­ 김지훈이 서류에 서명하며 말했다.

"전쟁이요?"

가볍게 말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단어였다.

"제국군 쪽과 곧 합류하기로 했네. 제국군의 힘을 빌리면 앞으로 제국이 간섭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네. 공화당과 부딪히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 부족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와 달리 김지훈은 가볍게 말하며 서류를 넘겼다.

"으음... 전쟁까지 벌어질 정도예요?"

"그럼 자네는 혁명을 어떻게 할 줄 알았나."

"나쁜 놈들 목 매달고 그 김익한인가 뭐시기도 목매달면 끝날 줄 알았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네. 물론 목을 날리면 일이 더 쉬워지긴 하겠군."

내 말에 김지훈이 턱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아카데미에서 전쟁은 나쁜 거라고 배웠는데요."

목에 가시라도 걸린 듯 텁텁했다.

"그것뿐이겠나. 악마도 기근도 겁간도 살인도 수탈도 폭행도 모두 나쁜 것이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것들이지. 오히려 선행이 더 드문 빌어먹을 세상이니까 말이야. 자네도 알지 않나?"

김지훈이 펜을 내려놓고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차가운 눈이 내게 대답을 재촉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어차피 내 일도 아니었다.

지들끼리 전쟁한다는 데 내가 말릴 이유도 없고.

기왕 할 거면 내 편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네. 각자가 휘두르는 검과 폭력이 모이면 그게 전쟁이니까. 자네는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명령만 잘 들으면 되네."

말을 마친 김지훈이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김지훈이 서류에 뭔가를 적은 다음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네는 김두환 님의 경호를 맡아주게."

"경호요? 저는 남 지키는 건 해본 적 없는데요."

나는 주정뱅이 털북숭이 남자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악마랑 싸우고 말지.

으으­ 남자랑 붙어 있어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분은 우리의 명분이네. 그분이 없으면 혁명 자체가 성립할 수 없어. 아마 공화당 측에서도 그분을 노릴 게 분명해. 김민철이 빠진 지금 우리 혁명단에서는 자네가 제일 강하니 나는 자네가 그분의 경호를 맡아 줬으면 하네."

김지훈이 내 반응에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음... 그래도 남자는 조금."

그래도 털북숭이는 맡기 싫은데.

술 냄새도 나고.

"만약 자네가 경호를 맡아주면 이지수도 같이 배정해주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지수도 혁명단원일세."

김지훈의 눈이 좀 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혁명은 늘 피를 흘리는 법일세."

아무리 명품 엉덩이의 의붓아버지라지만, 역시 난 이 새끼가 싫었다.

"할게요. 시발."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검 손잡이를 놓으며 대답했다.

"욕은 자제 부탁하네. 그래도 내가 자네의 상관이니까 말이야."

김지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좆같은 새끼.

"아­ 할 말은 끝났으니 이만 나가보게."

김지훈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 모습에 나는 검 손잡이로 향하는 손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자매 덮밥을 생각하며 억지로 숨을 골랐다.

***

천막 안에 있지만, 밖에서 들리는 끊이지 않는 비명 소리에 서아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물론 전쟁을 예상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온 서아지만, 생각과 실제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백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손이 떨렸다.

"응? 차가 입에 안 맞아? 대충 좀 먹어. 전쟁터에서 맛까지 신경 쓸 거야? 염치 없네 진짜."

케이트가 덜덜 떠는 서아를 보며 물었다.

흐릿하게 들리는 비명 소리에 서아는 숨이 막혀 대답할 수 없었다.

"어쭈? 첩이 또 정실 말을 씹네? 이거 교육이 덜 됐나?"

소매를 걷어 올린 케이트가 서아에게 달려들어 엉덩이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서아의 평소와는 다른 반응에 케이트가 혀를 차며 떨어졌다.

"뭔데. 이 재미없는 반응은."

케이트가 서아의 볼을 콕콕 찔렀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서아가 자꾸만 메이는 목에 힘을 주어 말을 꺼냈다.

"뭐가 아무렇지 않아? 아­ 저거?"

케이트가 밖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서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저거 하려고 우리한테 온 거 아니야?"

고개를 삐딱하게 세운 케이트가 되물었다.

"그..그렇기는 하지만­"

서아의 입에서 떨떠름한 대답이 나왔다.

"애가 얼마나 곱게 자랐길래 이 정도에 몸을 벌벌 떨어? 너 전쟁 안 해봤어?"

케이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전쟁을 누가 해 봐!'

서아는 케이트의 말에 발끈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진실에 몸을 잘게 떨었다.

"제국에게 전쟁은 제일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지. 실제로 제국은 전쟁으로 만들어 졌으니까 말이야."

"...사업이요?"

"응. 사업. 대륙 전쟁 이후로 힘이 약해져 지금이야 명분을 찾지만,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면 그냥 쳐들어갔었다고 해. 야만인과도 다를 바 없지만. 뭐 이기면 제국이고 지면 불한당인 거지."

케이트가 과자 하나를 집어 먹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사업이라니­..."

서아가 눈을 찡그렸다.

"황실에서 후손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뭔지 알아?"

케이트가 손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며 말을 이었다.

"...뭔데요?"

서아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궁금했다.

"사람 목숨의 값어치 모두 다르다야. 물론 황실의 정통성 어쩌구를 위한 이야기지만, 나도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해."

신분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든 뻔한 이야기였다.

케이트의 망설임 없는 말에 서아가 몸을 잘게 떨었다.

경박한 행동에 잊고 있었지만, 상대는 제국의 황녀였다.

사고방식이 일반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처럼 뭐 귀족과 평민의 가치가 다르다­ 이런 게 아니라. 사람마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의 가치가 다르다는 거지."

손을 턴 케이트가 아직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니까 내게는 저 밖에 있는 모두보다 한 명의 가치가 더 높아. 애초에 제국에 별다른 애정이 없기도 하지만­..."

케이트가 검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서아는 잠시 말을 잃고 그 손가락을 응시했다.

"그래서 내게는 이 전쟁은 당연한 거래고. 아무렇지 않은 거야."

케이트가 양손을 저울질하다가 한쪽을 깊숙이 내렸다.

마치 그곳에 무거운 추라도 있는 것처럼.

서아는 자신을 보며 웃는 케이트가 안수성에서 봤던 말악마보다 두려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