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58화 (158/233)

〈 158화 〉 검귀의 첫 출전식.

* * *

"야야 왜 삐지고 그래.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다는 태도가 그게 뭐야? 진심이 없잖아, 진심이."

나는 잔뜩 멍든 얼굴을 만지면서 케이트를 노려봤다.

이 지독한 계집은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지 내가 항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쥐어팼다.

지금에서야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깔깔거리면서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 게 얼마나 살벌하던지. 저 악독한 계집애가 제국의 황녀라니, 제국의 미래가 실로 걱정됐다.

케이트에게 맞기 전까지는 술 취한 듯한 기분이었다.

내 의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기분이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간 느낌. 군데군데 빈 부분도 존재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젠가부터 내 목을 조이고 있던 목줄을 푼 기분에 가까웠다.

케이트의 주먹이 명치에 꽂히는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미안하다니까?"

케이트가 또 고개를 삐딱하게 세우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저! 악독한 년. 저게 사과하는 태도야?

욕지기가 입 끝까지 올라왔지만, 회복되지 않는 몸과 움직이지 않는 몸이 내게 자비를 종용했다.

"알았다고. 개 같은 년."

나는 툴툴대며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 너 그거 황족 모욕죄야. 그것도 광장에 목 걸린다?"

"무슨 죄다 목이 걸려 시발. 좆같은­... 취소! 취소!! 취소했어!"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죽이는 케이트를 보자 참을 수 없는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다시금 달려들려는 케이트를 보고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런 말 하면 못된 아이가 되는 거야. 아무리 에이든 네가 하층민이라지만, 그래도 용사 지망생이잖아. 자 어디 아픈 데 있어? 안드레아도 같이 왔으니까 아픈 곳 있으면 말해."

케이트가 이제야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한테 맞은 곳밖에 없어! 이! 황녀야! 아­ 안드레아도 왔네요. 안드레아는 오랜만에 보니 더 아름다워지셨는데요?"

"고마워요. 에이든 님도 변한 눈이 잘 어울려요. 어울리기 힘든 색인데 말이죠."

"제 눈이요? 제 눈이 왜­... 악!! 또 왜 지랄이야! 욕 안 했잖아!"

"몰라! 너는 그냥 처맞아! 어차피 성녀도 있겠다 오늘 제대로 맞아보자! 너는 맞아야 해!"

"악!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미친 황녀가 죄 없는 민간인을 팬다!!"

"그냥 맞으라고! 너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렇게 또 한참이나 나를 쥐어패던 케이트는 안드레아가 뜯어말리고 나서야 내게서 떨어졌다. 심지어 안드레아에게 공중에 들리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주먹을 붕붕 휘두르는 모습은 망나니 그 자체였다.

"흥! 꼴도 보기 싫어 진짜!"

콧방귀를 뀐 케이트가 쿵쿵 거리며 밖으로 사라졌다.

진짜 지랄 맞은 년.

"괜찮아요?"

안드레아가 잔뜩 웅크린 나를 부드럽게 안으며 물었다.

"아뇨. 아파요."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대답했다.

"황녀님도 에이든 님이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요."

안드레아가 부드럽게 내 몸을 쓰다듬으며 손에서 빛을 뿜어냈다. 손이 닿은 부분에서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지며 통증이 서서히 옅어졌다.

문제는 내가 아직 나체였다는 것이고 안드레아의 부드러운 손길은 내게 간질거리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어머."

안드레아가 수줍게 웃으며 손을 슬쩍 움직였다.

"아­ 이건 그러니까­"

병신 새끼 치료받으면서 또 흥분하다니. 분명 방금까지 이지수와 서윤에게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하체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넘치는 정력이 내 죄였다.

"괜찮아요. 에이든 님이 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 더 기쁜걸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손을 이불 밑으로 집어넣었다.

"아.. 아니 잠깐만요. 보는 눈도 많은데..."

그 부드러운 손길을 막고 싶지 않았지만, 스칼렛과 아가사가 나를 보며 입을 가리고 웃는 게 부끄러웠다. 스칼렛이야 빗치 수녀라 괜찮을 수도 있었지만, 순진하게 생긴 아가사가 뚫어지게 보는 모습이 내게 죄책감을 심어줬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도 있었죠. 와서 좀 도와주실래요?"

"그런 뜻이 아니라..."

"좋아요! 스칼렛 언니 제가 아래쪽 맡을게요!"

"응. 한 손으로 하기에는 크니까 우리도 도와주자."

둘이 마치 분업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것을 나눠 잡았고 안드레아는 대뜸 입을 들이댔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나는 내게 달려드는 그녀들을 막을 수 없었다.

­ 진짜 힘이 안 들어가나?

닥쳐 분위기 좋잖아.

***

몸은 한 번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졌다.

몸이 전에 없이 가벼웠다.

정액이 그렇게 무거웠나?

­ 큼큼.. 그게 아니라 내가 피를 흡수하며 자네의 능력도 향상된 걸세. 어찌 되었건 자네는 현재 내 주인이니까 말이야.

알아. 농담이잖아.

옆에 누워있던 이지수와 서윤은 사라져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간단하게 풀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가 벗어뒀던 옷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반듯하고 깨끗한 새 옷이 침대 옆에 개어져 있었다.

온몸이 찝찝하고 냄새났기 때문에 일단 씻기 위해 움직였다.

이렇게 냄새나는 걸 안드레아는 잘도 입에 물었네.

마지막에 볼을 부풀린 채 황급히 뛰어나가는 모습은 제법 귀여웠다.

온몸에 엉겨 붙은 피와 체액을 물에 씻어내고 새 옷을 입었다.

살짝은 거친 새 옷의 감촉이 내 기분을 한결 좋게 만들었다.

쾅쾅쾅!

검을 옆에 차고 있을 때 누군가가 거칠게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케이트가 잔뜩 인상을 쓰고 노려보고 있었다.

"식사하게 내려와! 굳이 이렇게 알려줘야겠어?!"

입이 뾰족 나와 있고 고개를 비스듬하게 세우고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자신의 화남을 주장하고 있었다.

도대체 얘는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야.

나는 이 망나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숙녀를 만났을 때는 바뀐 점을 칭찬하는 게 효과가 좋네. 크흠.]

[교미왕답게 밀어붙여라. 저건 욕구 불만이 분명하다.]

들려오는 말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런가? 욕구 불만인가?

자세히 살피니 가슴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양새가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붉은 게 곧 터질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바뀐 점이라. 바뀐 점?

조금 더 키가 커졌나? 이뻐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칭찬하기 위해 케이트를 자세히 뜯어봤다.

"뭐..뭐야? 그 재수 없는 눈빛은?"

"그러고 보니 너..."

"나? 뭐?"

몸을 부르르 떨던 케이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그 눈에 담긴 작은 기대가 내 말을 독촉했다.

[바뀐 점을 칭찬하게!]

[교미왕 답게 거칠게.]

나는 둘의 의견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대처법을 생각했다.

"젖이 더 커진 것 같다?"

나는 케이트의 양 가슴을 거칠게 쥐어 잡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미친놈.]

[역시 교미왕의 기질을 타고났어! 하하!]

짝­.

기억이 다시 끊겼다.

눈을 뜨니 나는 기다란 식탁 앞에 앉혀있는 상태였다.

익숙한 얼굴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기억이 또 끊겼나?

"아! 에이든 님 일어나셨어요?"

내 옆에 앉아 있는 안드레아가 황급히 손을 움직이며 미소 지었다.

저거 손이 어디 있었던 거야.

나는 흐릿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예. 그나저나 여긴?"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대화를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기절하셨다던데요.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지금은 식사 시간이라 다들 이렇게 모여서 에이든 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내 옷을 정리해줬다.

음... 내가 피곤했나?

그러고 보니 얼굴이 쑤시는 것 같기도 한데.

"이것 좀 먹어봐요. 맛있어요."

안드레아가 고기를 내게 먹여주며 단아하게 웃었다.

"이..이것도 먹어보십쇼! 제가 만든 공화국의 정수입네다!"

어쩐지 잔뜩 붉은 얼굴의 이지수가 이상한 게 잔뜩 담긴 숟가락을 내게 내밀었다.

색도 푸르딩딩한 게 먹으면 배탈이 날 게 분명했다.

"환자라 그런 건 먹으면 안 됩니다. 치우세요."

다행히도 안드레아가 이지수의 암살 시도를 차갑게 막아냈다.

"그..그런 공화국 차별적인 생각을..."

이지수는 평소와 다르게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고 말끝을 흐렸다.

"흥! 다치면 얼마나 다쳤다고 먹여줘! 손도 멀쩡하구만!"

제일 상석에 앉아 있는 케이트가 언성을 높이며 손가락질했다.

케이트의 옆에는 서아와 서윤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쳐다보자 서아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서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나저나 눈은 왜 그런 거예요?"

스칼렛이 요망한 눈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눈이요? 제 눈이 왜요?"

그러고 보니 다들 아까부터 눈 이야기를 하던데.

"멍청이! 자기 눈 바뀐 지도 모르네! 역시 멍청해!"

케이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손거울을 내밀었다.

손거울에는 보석이 잔뜩 장식되어 있어서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비쌀 것 같았다.

나는 손거울을 조심스럽게 받아 내 얼굴을 비추었다.

그 안에 있는 내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눈 색이 달라져 있었다.

왼쪽 눈은 붉은색이었고 오른쪽 눈은 금색이었다.

"애미 시발! 이게 뭐야!"

화들짝 놀라 손거울을 뒤집어도 보고 눈을 비비기도 해봤지만, 색은 그대로였다.

"풉­. 멍청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케이트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떴지만, 눈 색이 변하지 않았다.

근데 자세히 보니까 이거 좀...

"멋있는데?"

나는 감탄하며 눈을 하나씩 번갈아 가며 살폈다.

물론 전의 갈색도 마음에 들었지만, 붉은색과 금색이 반반 섞인 게 묘한 느낌을 줬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네다! 눈깔 병신 같기는 하지만 제법 괜찮습네다!"

"어울리기 힘든 색이지만, 잘 어울려요."

"... 진짜 멍청이들뿐이야."

케이트를 제외하면 주변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데스 윙크!"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오른쪽 눈을 감으며 붉은 눈으로 이지수를 응시했다.

"...에? 아! 아악!! 저 이지수! 에이든 동무의 눈길에 죽었습네다!"

잠시 고민하던 이지수가 우스꽝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얼마나 연기가 실감 났는지 땅에 엎어지는데 우당탕 소리까지 들렸다.

그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움찔거리는 서아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자신에게 할까 봐 속으로 연습하는 듯한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명품 윙크!"

이번에는 왼쪽 눈을 감으며 금색 눈으로 서아를 응시했다.

"아악...? 안돼!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명품 윙크가 뭐예요! 도대체! 완전 이상해!"

"저런 병신 짓 안 받아줘도 돼."

작게 비명을 지르던 서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런 서아를 서윤이 말리면서 나를 노려봤다.

"진짜 머저리들."

케이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에이든 님. 아­."

나는 케이트의 욕지기를 무시하며 안드레아가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

"저게 그 후잉성이라고?"

"아니 후잉이 아니라 후아라니까? 몇 번을 설명해야 해? 진짜 멍청이야?"

"후잉이 입에 더 잘 붙는 걸 어떻게 해. 후아가 뭐야 후아가."

내 질문에 케이트가 투덜대며 언성을 높였다.

뭐 때문에 화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케이트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나를 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니까 헷갈릴 수도 있지. 그쵸?"

"예. 당연하죠. 저도 헷갈리는데요."

내 물음에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수녀들은 모두 대열로 돌아갔지만, 안드레아만 내 옆에 남아있었다.

성녀라 짬이 꽤 찬 모양인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듯했다.

"저..저도! 그렇게 생각합네다! 후잉성으로 짓지 않은 걸 보니 저들은 멍청한 게 분명합네다!!"

옆에 있던 이지수가 손을 들고 방방 흔들었다.

"그만 노닥거리고 준비나 해!"

그 모습을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던 케이트가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내가 제일 먼저라고 했나? 검귀의 무서움을 보여줄 때군."

최근에 내 별명이 검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검의 귀신이라. 참으로 멋진 칭호였다. 듣는 순간 오금이 저리게 되는 그런 압도적인 명칭.

아마 앞으로 나를 상대할 적들은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큽.."

"풉­."

주변의 자그마한 웃음은 무시했다.

멋진 칭호를 갖지 못한 자들의 시샘이니.

아아 검귀라­.

나는 검의 귀신.

'사..사도야? 잠깐 쌓인 포인트 좀 쓰고 왔더니 애 상태가 왜 이래?! 신의 사도가 귀신이라니!'

시샘하지 말도록.

"그나저나 천오 동무는 어디로 사라진 것 같습네까?"

내 오른쪽 발을 주무르던 이지수가 물었다.

"몰라. 알아서 잘 다니겠지. 또 이상한 거 주워 먹고 있을까 걱정되기는 하지만, 애도 아니니까."

처음 천오가 사라졌을 때 걱정했지만, 제 발로 나갔다는 증언들이 많아서 일단은 안심했다.

외관은 아직 청소년기 소녀지만, 대륙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니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발로 나갔다는 애를 찾으러 가기도 애매하고.

지금 내가 신경 쓸 건 집 나간 천오가 아니었다.

영토로 들어온 제국군을 상대로 갉아 먹기를 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공화당 측은 병력을 수도 쪽에 집결시키고 있었다.

아마 거기서 뭔가를 해볼 생각인 듯한데, 너무 손쉽게 성들을 넘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가 뭘 알겠느냐마는.

그런 전략이나 전술 같은 복잡한 것들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수도로 가는 길에 거쳐야 할 성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처음으로 마주친 성이 후잉성이었다.

제국군에 혁명단까지 가세한 우리의 기세를 일개 성이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성문을 연 다음 환영하기도 애매하니 후잉성에서 꺼낸 생각이 일기토였다.

각 진영의 대표 장수 세 명이 나와 서로의 무를 겨눠 승부를 가리는 것.

애초에 공화국에서도 최상급 전사가 흔하지 않은데 일개 성에서 강자가 나와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대충 서로 눈 가리고 넘어가자는 제안이었다.

물론 공화당이 수도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에 제국군 측은 일기토를 받아들였고, 나는 그 일기토에 지원했다.

나는 제국군이 아니었지만, 별 상관없는 듯했다.

원래 이긴 놈 말이 진실인 세상이니까.

그리고 내가 일기토의 첫 순서였다.

"에..에이든 님! 힘내세요! 다치면 안 돼요!"

왼쪽 발을 열심히 주무르는 서아가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당연하죠. 제가 바로 검귀인데요."

나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풋­

주변에서 들리는 웃음은 다시 무시했다.

평야에서 수만이 넘는 병력이 서로 대치하는 모양새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절로 뛰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검을 고쳐 잡으며 걸어 나가는 나를 케이트가 붙잡았다.

"근데 말은?"

케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말? 무슨 말? 나 말 못 타는데. 타면 말이 몸 비틀면서 개 지랄해."

"말을 못 타는데 일기토를 왜 나간다고 했어! 이 멍청아!!"

케이트가 주먹을 내 복부에 꽂아 넣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최상의 상태인 내게 케이트의 주먹은 너무 느렸다.

케이트의 주먹은 검귀에게 닿을 수 없었다.

"당연히 공화국의 악몽 검귀인 내가 일기토에 나가야지. 근데 뭐야? 말 타야 돼?"

"일..일기토라는 게 장수들이 서로 말을 타고 싸우는 게 일반적이라.."

"그래요? 그럼 뭐라도 타고 나가야 되나?"

"물론 말이 없어도 에이든 님이 이기시겠지만, 나가서 내리더라도 타고 가시는 게..."

내 물음에 서아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말 같은 거 타지 않아도 에이든 동무가 이길 게 분명합네다!!"

열 내며 열심히 팔을 흔드는 이지수가 보였다. 시선을 내리니 이지수의 탄탄한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교미할 때도 나를 태우고 움직였으니까 충분하겠지?

"뭐라도 타면 된다는 거지?"

"그래. 그게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타고 나가서 버리더라도­"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옆쪽에 가져온 말을 가리켰다.

말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나는 말을 탈 수 없었다.

정말 모든 것에 재능이 없기는 했지만, 특히나 재능이 없던 게 승마니까.

"야! 이지수 이리 와!"

"저 말입네까?! 여기 대령했습네다!!"

내 부름에 이지수가 마냥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냉큼 달려왔다.

나는 말은 못 타지만, 대신 다른 건 잘 탔다.

검귀의 화려한 첫 출전을 위해 교미왕의 강력한 탈 것을 꺼내 들었다.

***

"이히이이이잉! 푸르릇!"

"가자! 혁명적인 적토마!!"

"끼이이잉!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은 입으로 안 내도 돼."

"알겠습네다! 이히히이이잉!"

"가자!! 검귀이자 교미왕의 첫 출전이다! 저들에게 공포를 보여주자!"

이지수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에이든이 짝­ 하고 쳤다.

잠시 부르르 떨던 이지수가 뒤뚱뒤뚱 뛰어나갔다.

기어코 이지수의 등에 타서 수만 명 앞으로 나가는 에이든을 보며 남은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냅다 이지수의 등에 올라탄 에이든은 뭐에 꽂혔는지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쓸데없이 무력이 강해진 에이든은 더욱 고집불통이 되어 주변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양측의 병력이 그 꼴을 보며 바닥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고, 상대 장수는 투구 아래로 드러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긴 창을 쥔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저저! 진짜 개 머저리 새끼! 멍청한 새끼! 어휴­ 진짜 참신한 병신 새끼! 정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니까! 내가 왜 저런 쓰레기를!!"

그 흉측한 모양새에 케이트가 기겁하며 몸을 털었다.

"... 이번은 조금 심한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에이든 님이니까 생각이..."

늘 유지하던 안드레아의 단아한 미소도 깨졌다. 안드레아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맙소사... 맙소사... 우리 측 장수가 여자를 타고 나갔어... 맙소사..."

충격을 받은 서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자꾸만 말끝이 흐려졌다.

"병신."

서윤의 욕지거리에 다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이지수와 에이든은 꿋꿋이 상대 장수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오늘 전설을 쓰는 거다! 이지수!"

"이히히히이이이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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