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낭만을 모르는 세상.
* * *
화가 잔뜩 난 케이트가 위로 올라갔고 식당 안의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둘 식당을 떠났다.
서아는 모두가 사라진 식당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빠져 포크로 식탁을 톡톡 두들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이상한 거야…’
자신이 틀렸나 깊게 생각했지만, 여자를 타고 일기토에 나가는 것이 정상일 리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서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니까.
에이든이 또 그 흉측한 몰골로 일기토에 나가기 전에 서아라도 말려야 했다. 물론 케이트의 말도 무시하는 에이든이었지만, 그래도 서아의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거니까.
결심을 내린 서아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서아의 눈에 한껏 정리되지 않은 식탁이 보였다. 물론 다른 분들이 치우겠지만, 서아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홀로 남아 가득 찬 식탁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식당을 나섰다.
‘에이든 님을 말려야 해.’
서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에이든의 방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에이든의 방에 갔을 때가 떠오르며 얼굴이 붉어졌지만, 애써 숨을 골라 뜨거워진 얼굴을 식혔다.
“이히이이잉!!”
에이든의 방문 앞에 서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방에서도 저러고 있을 줄이야. 서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에이든 님! 서아입니다!”
“들어오세요.”
에이든의 허락에 서아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서아 방과 같은 문이지만, 왜 이렇게 무거운지….
‘왜 다 큰 여자가 남자 방에서 저러고 있는 거야!!!’
안에 들어가 제일 처음 본 광경에 서아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방 안에는 나체인 이지수가 네 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말 울음소리를 입으로 내고 있었다. 심지어 등에는 이상한 쇳덩이를 멘 상태였다. 이지수에게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없는지, 서아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는 다시 뛰어다녔다.
“왜 이지수 님이 나체로 방에서…?!”
서아는 자꾸만 높아지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며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말은 원래 옷을 안 입잖아요?”
“이히히히히이잉!!”
에이든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 본다는 눈빛으로 서아를 쳐다봤다. 그에 맞춰서 이지수가 투레질했다. 큼지막한 이지수의 가슴이 보기좋게 흔들리는 모습이 서아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왜 진실인 건데?!!’
에이든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진실에 서아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서…설마 내가 중요한 시간을 방해한 건가?’
당황한 서아는 에이든을 확인했지만, 에이든은 옷을 입은 상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드는 안도감에 서아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표정을 고쳤다.
‘그래, 나체로 방을 뛰어다니고 있을 수도 있지.’
둘의 반응에 서아는 억지로 생각을 고쳤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다만, 이지수의 하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무언가가 살짝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이예요? 앞발이 조금 더 늦게 나간다! 이지수!”
“이히이이잉!!”
부드럽게 말하던 에이든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지수가 투레질하며 얼굴을 흔들었다. 이지수의 얼굴에 흥건히 맺혔던 땀이 흩뿌려졌다. 자신의 손을 보던 이지수가 다시금 움직였다.
“아… 그 내일 있을 일기토에 대해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서아는 식당에서 골랐던 말을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기토요? 아 맞다. 내일이 바로 일기토지. 이지수! 오늘 두 세트 더 한다!”
몰랐던 것 같은 에이든의 반응에 서아는 혹시나 자신이 실수한 것 아닐까 고민했다.
“그…그게 에이든 님의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일기토에 이지수 님을 타고 나가는 것은 조금… 이지수 님도 성인 여자인데…”
서아는 혹시나 에이든이 자신을 건방지다고 생각하게 될까 두려웠지만, 참고 말을 꺼냈다. 그래도 자신은 아직 혁명단인 에이든의 상관이니까.
“음… 서아 님?”
잠시 고민하던 에이든이 서아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이 서아를 못내 불안하게 만들었다.
“네네?! 혹시나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청소가 필요해서요. 청소 좀 해주실래요?”
에이든이 당당한 눈빛으로 서아를 보며 요구했다. 서아는 에이든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이마를 찌푸리다가 저번 만남이 생각나 얼굴이 확 하고 붉어졌다.
“예에에?!!”
에이든의 당당한 요구에 서아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서윤과 의붓아버지의 과보호 아래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던 서아라 저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에이든과 그런 일을 했었지만,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찾아온 서윤이 이런저런 성교육을 해줘서 자신이 얼마나 낯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 깨달은 상태였다.
성교육을 받은 상태였지만, 에이든이 저렇게 당당히 청소를 요구하자 서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왜 진실인 건데!!’
에이든의 말에서 물씬 풍기는 진실에 서아는 터질 것 같은 비명을 애써 참았다.
‘첩! 첩!’
케이트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했다.
“왜요? 그냥 청소일뿐이잖아요.”
에이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아를 보며 되물었다.
그 당당한 눈빛을 보며 서아는 크게 침을 삼키고는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고민했다.
그날 있었던 일이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성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어 결혼하지 않은 우리가 하기에는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말할…? 하지만 그날 노크 없이 들어가 그 상황을 방해한 자신이…
근데 서윤은 왜 그러고 있었던 거지?
서아는 부끄러움에 잊고 있었던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 그렇게 성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이라면 서윤은 왜 혼자 거기서 청소를 한 거야?
서아는 갑자기 서윤과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의붓아버지가 주신 사탕에 대해 먹으면 안 되는 거라고 거짓말하고 숨긴 다음 혼자만 먹던 서윤의 얄궂은 모습이 생각났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에이든이 미간을 찌푸리며 열심히 고민하는 서아에게 물었다. 그 시선에 담긴 부드러움과 걱정이 서아의 의심에 확신을 더했다.
‘맞아! 그렇게 성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이면 에이든 님이 저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리 없잖아. 심지어 우리는 연애하는 사이도 아닌데! 물론 남자의 것을 입에 무는 게 부끄럽지만… 그래도 에이든 님이니까… 에이든 님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점점 깊게 생각할수록 서아는 확신했다. 왜 서윤이 혼자서 청소를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번에 했을 때 기분이 묘했으니까 그것 때문이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아니면 에이든 님을 도와주며 혼자 더 친해질 생각인 건가? 아무리 서윤이라지만,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서윤의 말에 속아 괜히 에이든 님을 이상하게 생각할 뻔했어.’
서아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에이든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에이든은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내렸고 서아는 그 크기에 놀라 숨을 삼켰다.
‘…부끄러워.’
잠시 머뭇거리던 서아는 에이든의 투명한 눈빛에 숨을 깊게 들이쉬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서아 님이 아니었으면 또 제가 난처할 뻔했네요.”
에이든이 열심히 청소하는 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서아는 그 목소리에 담긴 애정에 대답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투르지만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이히이잉…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서아의 심기를 긁었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가온 이지수가 옆에 쪼그려 앉아 서아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느낌이 가득 차 있었다.
“으음… 그렇게 하면 제대로 안 될 텐데… 아휴 답답합네다.”
“거기서는 조금 더 깊게 넣어야합네다.”
옆에 붙은 이지수가 서아에게 끊임없이 훈수를 뒀다. 서아는 시선을 올려 에이든을 확인했지만, 에이든은 그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아를 내려볼 뿐이었다.
옆에서 들리는 이지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의식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서아는 이지수의 말에 따라 조금씩 동작을 바꾸고 있었다.
“손도 좀 이렇게 팍팍! 움직이고! 아휴!”
이지수가 서아의 손을 움직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내가 그렇게 못하는 건가?’
하지만 에이든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저렇게 자신을 따뜻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고 훈수를 두는 이지수 때문에 점점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한참이나 움직이고 나서야 청소가 끝났다.
“고생했어요. 서아씨. 고마워요.”
에이든이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듯 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서아는 입안에 가득 찬 것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어휴…”
서아는 에이든을 향해 고개를 깊게 숙이고 그 옆에서 한숨 쉬고 있는 이지수를 한번 노려본 다음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갔다.
‘근데 내가 에이든님 방에 왜 왔었지?’
서아는 문고리를 잡고 무언가 중요한 걸 잊은 기분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에이든의 방문 앞에는 안드레아가 서 있었다.
‘왜 안드레아 님이 여기에…’
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드레아를 확인했다. 안드레아의 손에는 말채찍이 들려 있었다. 왜 성녀가 저런걸…?
“…서아 님이 여기는 무슨 일로? 입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죠?”
안드레아가 싸늘한 눈빛으로 서아의 잔뜩 부푼 볼을 보며 물었다.
평소의 부드럽고 단아하던 모습과는 다른 안드레아의 반응에 서아는 움찔하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대답…! 대답해야 하는데!’
서아는 평소에 케이트의 괴롭힘을 가끔 말려주는 안드레아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입이 가득 차 있어서 대답할 수 없었다. 서아는 황급히 입에 가득 담긴 것을 억지로 삼켰다. 살짝 퀴퀴한 맛이 났지만, 어떻게든 삼킬 수 있었다.
눈물까지 고이며 억지로 삼키는 서아를 본 안드레아는 작게 혀를 찼다. 건방진…어찌 저 귀한 게….
‘그러고 보니… 내가 에이든 님에 방에 간 건 청소때문이 아닌데!’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아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아니야. 그래도 확실히 말했잖아.’
서아는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고는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내일 일기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왔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지수 님을 타는 것은 아닌 듯해서요.”
서아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서아의 친절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는 여전히 쌀쌀하게 서아를 흘겨보고는 지나쳤다.
퍽.
지나치면서 부딪힌 어깨에 서아가 휘청였다.
“죄…죄송합니다!”
서아는 황급히 사과했지만, 이미 안드레아는 방에 들어간 후였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이신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아는 얼얼한 어깨를 주무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꾸만 입에 에이든의 냄새가 맴돌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물이라도 빨리 마셔야 할 것 같았다.
***
서아가 나가고 안드레아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안드레아의 손에는 채찍 같은 게 들려 있었다.
“오! 그건 또 뭐예요?”
아래에서 열심히 고개를 처박고 있는 이지수를 밀어내며 물었다. 이불로 대충 내 아래를 가렸다. 우리 중 유일하게 승마의 낭만을 아는 안드레아는 내게 다양한 승마 도구를 선물해줬다. 그 대가로 속옷이나 옷가지들을 자신이 청소하게 해달라는데, 내가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거래였다.
“이거는… 이렇게! 쓰는 거예요!”
살짝 고개를 숙인 안드레아가 대뜸 채찍을 이지수에게 휘둘렀다.
찰싹!
“아악!! 아픕네다! 왜 때리고 그럽네까!!”
“이렇게! 말을! 채찍질하는! 도구입니다!”
단아한 미소를 한 안드레아가 채찍을 들고 이지수를 쫓아다니며 엉덩이를 내려쳤다. 그럴 때마다 찰싹 소리가 나며 이지수가 비명을 꽥 하고 질렀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인가?
성녀 옷을 입은 안드레아가 채찍을 들고 나체인 이지수를 쫓아다니는 모습이 꽤 우스웠다. 이지수는 그 와중에도 본인의 역할인 말을 유지하기 위해 네 발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가만히 있어요! 기다려! 멈춰!”
“저… 저는 에이든 님의 종마입네다! 안드레아의 종마가 아니란 말입네다!!”
“기다려요! 건방진 종마! 왜 혼자만 독식을!”
예상외로 둘이 제법 친한 듯했다.
“아픕네다!! 에이든 동무!! 이 미친 여자 좀 말려주십쇼!! 아픕네다!!”
찰싹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지수의 엉덩이에 점점 붉은 자국이 늘어갔다.
물론 미인 두 명이 뛰어다니는 보기 좋은 모습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
하남성.
이번이 수도로 가기 전 마지막 성이었다. 이 성만 지나치면 다음이 바로 공화국의 수도였다. 수도와 제일 가까운 성이기 때문에 병력을 수도에 집중시켰다고 하더라도 전보다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하남성도 다른 성처럼 우리에게 일기토를 제안했다.
제국군 측이야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당연히 받아들였고 그에 나는 당연히 일기토에 지원했다.
이전에는 여자를 타는 것에 대한 낭만을 모르는 녀석들이 나를 말렸지만, 이제는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리지 못했다. 이미 ‘젖소를 탄 검귀’ 의 유명세는 퍼질 만큼 퍼져서 일기토에 내가 나가지 않으면 병사들이 아우성 칠 정도였으니 병력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나가야 했다.
“…큼큼. 내가 요즘 하체 운동을 하는데 말이야.”
케이트가 아까부터 내 앞에서 깔짝거리며 헛기침했다. 슬그머니 치마를 걷어 자신의 다리를 보여주는가 하면 대뜸 팔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내게 등을 보였다.
나는 빡 대가리에 맞는 멍청한 행동이라 생각하며 무시하고 출전을 앞둔 이지수에게 집중했다. 손에 들린 채찍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이지수. 오늘이 제일 큰 무대야. 지금처럼만 하면 돼. 그럼 우리는 전설이 될 수 있어. 알았어? 긴장하지 말고.”
“이히이이잉! 푸르르르.”
빗으로 갈기를 넘겨주며 말하자 이지수가 거칠게 투레질했다. 근데 그 투레질이 진짜 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았다.
“흥! 됐어! 이 멍청이들! 알아서 하라 그래!”
대뜸 신경질을 낸 케이트가 천막을 걷어차고 나갔다. 늘 있는 일이므로 가볍게 넘겼다.
“에… 에이든 님. 또 이지수 님을 타고…?”
서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큰 눈망울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게 용사의 운명이니까요. 모양새가 좀 이상하더라도 제가 조금만 고생하면 다른 병사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잖아요.”
나는 최대한 점잖게 웃으며 이지수의 입에 마구를 채웠다. 아 하고 입을 벌린 이지수가 익숙하게 마구를 입에 물었다. 슬쩍 당기니 단단하게 물었는지 꽉 조여 있었다.
“아… 그런 뜻이.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쟤가 병신인 거야.”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아에게 서윤이 속삭였다. 에이든을 쳐다보는 서윤의 눈빛이 서늘했다.
“준비 마쳤으면 나와주십시오! 젖소를 탄 검귀님!”
천막을 열고 들어온 병사가 마치 영웅을 보는 것처럼 선망의 눈길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눈빛이 내 심장을 두드렸다.
“알았다. 가자!”
“이히히히이잉!”
나는 늘 그렇듯 이지수의 등에 올라탔고 이지수는 거침없이 뛰어나갔다.
““와아아아!! 젖소를 탄 검귀!!””
정렬된 병사들이 우리를 보면서 소리쳤다. 대지를 흔드는 환호성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다.
이것이 영웅의 기분…!
다그닥다그닥.
이지수는 건강미 넘치는 발을 곧게 뻗으며 걸었다.
우리는 당당히 수만 명이 만든 공터의 중앙에 섰다. 병사들은 제각각 방패를 두드리며 일정한 리듬을 만들며 우리를 응원했다.
[이제 슬슬 말려야 하지 않나? 웃으며 볼 단계는 지난 것 같은데. 재밌어서 두었더니 끝을 모르는군.]
[말린다고 말려질 놈인가.]
‘사… 사도야? 왜 이렇게 된 거야? 아니 원래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내가 포인트 쓰고 오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낭만을 모르는 녀석들의 말들은 가볍게 무시했다.
상대 진영의 중간이 갈라지며 우리의 상대가 천천히 우리 앞으로 나왔다. 근데 상대의 모습이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과 전혀 달랐다.
갑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의 허리에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은 남자가 탄 모습. 심지어 안장과 마구까지 찬 상태였다. 그 모습이 마치 나와 이지수의 모습 같았다. 다른 점이라고는 둘 다 남자라는 것뿐이었다.
이 비열한 놈들이 우리의 필승 전략을 무단으로 베낀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아이디어라고 해도 재산권이 있는 것인데!
“이 애미 터진 놈들!!!”
노력하지도 않고 남의 좋은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뺏는 녀석들에게 분노하며 검을 빼 들었다.
그런데 분노하지 말아주게.
건방진 검의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가자! 페가수스!”
“이후우웅!”
위에 앉은 사내가 마구를 잡아 당기며 소리쳤다.
멋들어진 이름을 준 것도 화가 났다. 저들의 이름이 더 멋들어지니까 꼭 우리가 복제품 같잖아.
“이지수! 염치없는 놈들을 도륙 내버리자!”
“이히이이이잉!!!”
분노한 이지수가 거칠게 투레질하며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나를 태우는 게 익숙해진 이지수는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지그재그 전법!”
내 명령에 이지수가 빠르게 좌우로 뛰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우리의 말도 안되게 빠른 속도에 복제품들이 당황하여 방패를 들었다.
검귀의 검을 방패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멍청한 놈들이었다.
“손바닥으로는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
내가 아는 말 중 제일 멋들어진 말을 해주며 두 놈을 가볍게 수직으로 갈랐다.
복제품들은 진짜인 우리의 한 수조차 막지 못하고 갈라졌다. 그 후안무치함에 대한 하늘의 분노가 피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이히이이잉!!!”
화가 풀리지 않은 이지수가 시체를 상대 진영으로 걷어찼다.
반으로 갈라진 투구가 상대 진영 앞에 데구르르 굴렀고.
““와아아아!! 젖소를 탄 검귀!!””
이내 조용했던 함성이 다시금 터졌다.
“자! 다음!!”
검을 돌리자 묻어 있던 피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