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66화 (166/233)

〈 166화 〉 모르는 사람입니다.

* * *

공격이 통하지 않자 검은 성벽 위에 다양한 무기들이 올라왔다. 그중에는 불을 뿜어내는 것도 있었고 번개를 쏘아 보내는 것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도 안 오는 다양한 무기들이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무엇이 됐건 금빛 파도는 모두 가볍게 막아냈다. 이따금 출렁거릴 때마다 전 병력이 티가 나게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하! 이게 되는구먼!”

베하른이 금색 머리를 쓸어넘기며 호탕하게 말했다. 개새끼. 나는 그 말에 담긴 뜻을 애써 모른척했다.

“4조, 크리톤, 후로아, 검귀는 올라가서 성문을 열도록. 나는 여기서 방벽을 유지하겠다.”

베하른이 방패를 탕탕 두들기면서 명령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하른의 두꺼운 방패가 전보다 훨씬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이지수 여기 잘 숨어 있어. 성문 열면 들어오고.”

“넵! 저 덩치 큰 놈 뒤에 잘 숨어 있겠습네다!”

내 말에 이지수가 경례를 올리며 재빠르게 대답했다. 원래 예의상 한번은 같이 가겠다고 하지 않나?

바로 아래에서 보니 검은 성벽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았다. 검은 성벽이 매끄럽기는 하지만, 그 벽에 군데군데 튀어나온 곳이 존재했다.

될 것 같은데?

나는 다리에 기운을 두르며 몸을 풀었다.

기운이 순환되며 다리가 터질 것처럼 부풀었고 그를 망설임 없이 터뜨렸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순식간에 하늘에 닿을 것처럼 내 몸이 치솟았다. 힘을 잃고 떨어지기 전에 성벽의 튀어나온 곳을 밟고 다시 한번 뛰었다.

저 높은 성벽을 뛰어 올라가다니.

이게 주인공이지 시발.

말도 안되는 내 무용에 입꼬리가 자꾸 헤실거렸다.

마침내 성벽의 끝부분이 보였다. 나는 다시금 뛰어오르며 첫 대사를 골랐다. 분명 나를 본 녀석들이 얼빠져 있을 텐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나는 도착한 성벽 위에 가볍게 착지하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예상대로 얼빠진 얼굴로 나를 보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래 내가 이 성벽을 타고 올라왔다.

놀랍겠지 인간이 성벽을 수직으로 타고 오르다니.

녀석들의 멍청한 눈빛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누구냐!”

가까이 있는 병사에게서 상투적인 질문이 나왔다.

클리셰적인 질문이군.

“…검귀다.”

나는 최대한 무섭게 웃어 보이면서 목소리를 내리깔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병사들 사이에 작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섭겠지. 성벽을 타고 올라온 사람이 검의 귀신이라니. 지금 당장 도망가고 싶을….

“…풉.”

“크큭. 자기 입으로 검귀래. 크하하하!”

병사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애미 터진 새끼들.”

얼굴이 뜨거워진 난 재빨리 검을 뽑았다.

내 앞에서 웃고 있던 녀석들 다섯이 한 번에 반 토막이 나자 웃음이 끊겼다.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녀석들의 표정이 굳었다.

“검…검귀다!!!”

잠시 뒤 만족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게 바로 검귀를 봤을 때 반응이지.

­ 크흡… 소년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입으로 검귀라고 하는 것은….

검의 목소리는 애써 무시했다.

탁탁.

내 옆에 기사들이 하나둘씩 올라왔고. 이내 크리톤도 올라왔다.

“목표는 성벽. 빠르게 점령한다.”

전과 달리 크리톤의 얼굴은 한껏 진지했다. 다른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성문 쪽으로 움직였다. 크리톤 뿐만 아니라 기사단의 실력도 출중했다. 공화국군은 빠르게 돌파하는 우리를 막지 못하고 계속해서 밀려났다.

­ 크하하하! 맛있다 맛있어! 달다 달어! 완전 꿀맛이구만!! 물론 나는 꿀을 먹어본 적 없지만!

잔뜩 흥분한 검의 목소리에 피를 더욱 많이 묻히기 위해서 대열의 제일 앞에서 움직였다. 피를 머금은 검은 일 검에 방패를 쪼개고 두꺼운 갑옷도 손쉽게 베어 넘겼다.

나는 그야말로 거칠 게 단 하나도 없는 인간 병기 그 자체였다.

“괴…괴물!!”

앞에 있는 놈을 수직으로 쪼개자 그 뒤에 있던 녀석이 창을 찔러넣으며 소리 질렀다. 몸을 비스듬히 틀어 창을 피해내며 검을 녀석의 몸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괴물이 아니다. 검귀다. 따라 해봐. 검­귀. 아 죽었네. 쩝.”

녀석의 눈에 담긴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검을 횡으로 베어 몸에서 끄집어냈다. 따뜻한 피가 내 몸에 묻어 열기를 더욱 달구었다. 눈이 다시금 화끈거렸다.

탕!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습관적으로 검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총알이 날아오는 것이 느리게 보였다.

쾅!

총알을 막은 손이 얼얼했다. 손을 한번 털고 다시금 움직였다. 공화국군들도 성문을 악착같이 지키기 위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몇 명이나 베어 넘겼을까. 온몸이 피에 젖어 있을 때쯤 성문에 도착했다.

성문은 사람 세 명은 될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쇠 걸쇠에 잠겨있었다.

“이렇게 큰 걸쇠가 있다니. 자 거기 잡아보게.”

걸쇠 앞에 선 크리톤이 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했다. 굵직한 근육을 보니 혼자서도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크리톤의 말에 기사들 몇이 같이 붙어서 낑낑대며 걸쇠를 열었다. 걸쇠의 무게가 제법 무거운 모양인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막아!! 막으라고!!”

뒤에서 공화국군이 악착같이 밀려 들어왔다. 기사들이 방패를 들고 그를 막고 있었지만, 중간중간 기이한 무기를 쓰는 녀석들 때문에 점차 밀렸다.

나는 다시 두꺼운 걸쇠를 낑낑대는 놈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거 왠지 벨 수 있을 것 같은데?

­ 당연하지 소년. 내가 벨 수 없는 것은 없다네.

미심쩍기는 했지만,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기운을 이끌어 검강을 검에 둘렀다. 검강은 마치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빠르게 검에 맺혔다.

“이건 흑철로 만든 걸쇠라 검으로 베어내기는….”

“안되면 말죠. 뭐.”

크리톤의 만류를 가볍게 무시하고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쇠 걸쇠는 마치 두부처럼 단번에 베어졌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자…자네 무슨? 일단 성문을 열어라!!”

“으랴아아앗!”

나를 보며 잠시 넋을 놓던 크리톤이 명령했고 기사들이 들러붙어 성문을 열었다.

근데 이럴 거면 그냥 밖에서 내가 성문을 베면 되는 거 아니야? 뭐하러 여기까지 피범벅이 되면서 뚫은 거지. 문득 든 생각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애써 생각을 흩트렸다.

지금 기분이 좋았으니까.

끼기기기긱­

성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 앞에 잔뜩 기세등등한 제국군이 서 있었다. 밖에서 꽤 큰 고난을 겪었는지 아까보다 금빛 파도가 옅어진 상태였다.

“고생했네! 전군!! 약진 앞으로!!!”

““약진 앞으로!!””

약간은 지친 표정의 베하른이 우렁차게 소리쳤고 성문 사이로 제국군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심장을 찌르는 검’은 들어오는 제국군을 피해 옆에 따로 모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심장부로 향할 것이네.”

베하른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다들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검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았다.

“빨리 끝내고 저녁은 제대로 된 곳에서 먹자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말이야.”

베하른의 말에 다들 작게 웃었고.

“죽어라!!”

“으악!! 미안해 마를렌!!”

“살고 싶어! 살고 싶다고! 시발!”

주변에서 들리는 비명과 아우성이 우리의 표정을 다시 굳혔다.

“이 지독하게 뛰는 심장을 멈추러 가보자고.”

베하른이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를 기사들이 따랐다.

“에이든 동무!! 제가 지금 다섯 명이나 해치웠습네다! 저 혁명 숙녀 이지수! 혁명에 한껏 이바지하는 중입네다!”

“그래. 내 뒤에 딱 붙어 있어라. 이제부터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근데 언제 자기 별명을 만든거야 얘는.

나는 얼굴이 한껏 상기된 이지수와 같이 기사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안쪽에서는 공화국군들과 제국군이 한데 뒤엉켜서 아비규환이었다. 곳곳에서 피가 튀며 사람들이 죽어 나가며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제국군의 훈련 수준이 조금 더 높은지 공화국군들이 밀리고 있었다.

‘만약, 김익한이 정말 악마라면 좋아하겠네.’

잡다한 생각을 하며 뚫린 길을 따라 걸었다.

베하른과 기사들은 공화국군들을 정말 말 그대로 도륙 내고 있었다. 베하른은 방패로 적을 짓이겨서 언젠가 봤던 파전처럼 만들었다. 물론, 파전과 색이 전혀 다르지만. 약간 더 매워보이는 파전으로.

나는 그 뒤를 따르며 뒤쪽에서 우리에게 붙는 공화국군들을 베어 넘겼다. 이지수는 양손에 작은 총을 들고 열심히 쏴대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애가 검을 쓰고 있었는데….

“빨갱이의 머리에 한 발! 빨갱이의 심장에 한 발! 나는 혁명 숙녀!”

물론 사람으로 꽉꽉 들이찬 이곳에서 총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잔뜩 신이 난 이지수가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삐슈우우웅!!

기이한 소리가 들리며 초록색 광선이 전열의 뒷부분을 덮쳤다. 뒤에 있던 제국군들 몇 명이 순식간에 먼지로 사라졌다.

시발 저게 뭐야.

그 말도 안 되는 위력에 나는 황급히 몸을 숙이며 기사들 뒤에 숨었다.

“저…저! 비겁한 새끼들 이상한 거 쏩네다!!”

어느새 내 옆에 같이 숨은 이지수가 들뜬 숨을 내뱉으며 총을 장전했다.

우리 앞에 있는 기사가 찜찜한 표정으로 돌아보고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걱정하지 마라! 이 정도 되는 위력의 무기를 계속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진군! 진군!!”

베하른이 방패를 위로 들어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베하른에게서 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와 우리를 감쌌지만, 아까보다 그 선명도가 연해서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삐슈우웅! 삐슈우웅!

마치 베하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초록색 광선이 마구 뿜어져 나와 제국군을 덮쳤다. 앞부분을 겨눈 광선들은 베하른의 금빛 기운에 막혔지만, 금빛 기운이 보호하지 못하는 뒤쪽 병사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이 이상하게 되는데 이거.

이지수도 같은 생각인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끼긱­ 끼긱­ 끼긱­

그때 옆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며 무언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삐슈우우웅­

다시 한번 초록색 광선이 우리를 덮쳤고, 금빛 기운이 더욱 연해졌다.

“끄아아악!! 신이시여!!”

“저…저건 뭐야! 저런 게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고!!”

“도망가!! 비키라고!”

기괴한 소리가 들리는 쪽에 있던 제국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제국군이 밀리는 거지.’

호기심에 고개를 돌린 내게 믿기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도…동무!! 저저… 저거 천오 동무 아닙네까?!”

이지수가 그것을 손가락질하면서 소리쳤다.

이지수의 말처럼 그곳에는 등에 큼지막한 쇠로 된 다리가 수십 개 붙은 천오가 공중에 떠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리들이 얼마나 긴지 천오는 저 멀리서도 보일 만큼 높이 올라가 있었다.

삐슈우우웅!!

정체 모를 초록색 광선은 천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천오의 등에 달린 쇠다리의 끝에는 몇 개의 사체들이 꿰뚫려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시체들의 피를 흡수하는 모양인지 시체들은 하나같이 삐쩍 곯은 상태였다.

집 나갔던 천오가 삐뚤어진 사춘기의 소년이 꿈꿀 만한 흉흉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저거 시발 무슨 짓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자네들! 저게 뭔지 아는 건가?! 지금 저것에 죽은 제국군 수만 해도 백이 넘어가네!!”

우리 옆에 있던 후로아가 이지수의 반응에 언성을 높이며 천오를 손가락질했다. 그 잠깐 사이에 쇠다리들이 우아하게 움직이며 제국군들을 꼬챙이에 추가하고 있었다. 천오는 지금 제국군에게 재앙 그 자체였다.

저 모습을 보니 아마 천오는 평생 제국 땅을 못 밟을 것 같았다. 제국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아니 그 정도만 되도 다행이지, 천오와 연관되기만 해도 삼대가 광장에서 목이 걸릴 게 분명했다.

“저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네!!”

잔뜩 인상 쓴 후로아가 언성을 높이며 우리에게 대답을 독촉했다.

“아니요!”

“모릅네다!”

후로아의 질문에 나와 이지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우리는 열심히 사람으로 꼬치를 만드는 천오에서 고개를 돌려 억지로 외면했다.

“잡담하지 말게! 우리의 목적은 적의 심장부야! 걸음을 멈추지 마!”

“하…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가게 되면 병사들의 피해가….”

“우리의 목표를 잊지 말게!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적의 심장을 멈춰야 해!”

“크흑­ 알겠습니다.”

베하른의 말에 후로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천오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 담긴 살의에 내가 괜히 찔렸다. 잠시 멈췄던 기사들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를 따라가며 천오를 슬쩍 살폈다.

천오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그 작디작은 몸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 피가 천오의 것은 아닌 듯했지만. 여기서 내가 말리지 않더라도 제국군에게 잡힐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 생기 없는 모습이 거슬렸다. 저렇게 활기차게 움직이다가도 금세 곯아떨어졌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 시발. 먼저 가십쇼. 저것 좀 막고 가겠습니다. 생긴 게 제 죽은 여동생이랑 비슷해서요.”

문득 말하면서도 내 말에 담긴 내용이 플래그 같이 느껴져서 괜히 오싹했다.

“그래. 자네라면 충분히 막고 올 수 있을걸세! 저 악마 같은 것 좀 꼭 막아주게나! 이대로 두면 피해가 너무 커질 것이네.”

후로아가 작게 대답하면서 나를 밀었다. 후로아는 베하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지만, 베하른은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악마 같지는….”

지금 모습은 좀 그렇기는 해도… 애가 얼마나 착한데, 악마라니.

“저 모습을 보고도 말인가? 아무튼, 꼭 좀 막아주게. 자네가 살아 돌아오면 내가 시원한 맥주 한 잔 사주겠네 하하하!”

후로아가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호탕하게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새끼 나한테 무슨 원한 있나? 쉴 새 없이 플래그를 꼽는 녀석의 말이 괜히 거슬렸다.

나를 보던 베하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마 내가 없어도 충분히 심장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시발. 그냥 다 같이 막고 가면 되잖아.

“우리가 저거를 막는 겁네까?”

“저거가 아니라 천오야. 그리고 설마 우리가 해준 게 있는데, 우리를 해치겠어?”

“그렇습네다! 천오 동무도 사람이라면 분명히 얌전히 잡혀줄 겁네다! 그… 근데 우리 노려보는 것 같습네다?”

이지수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천오가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 천오야! 우리가 구하러 왔다! 집에 가자! 우리 알지? 같이 밥도 먹고 즐겁게 생활했잖아! 가는 김에 공화국 수도 좀 씹창…. 으아아악!!”

반갑게 손을 흔드는 나를 보며 천오의 눈이 번뜩 빛났고 눈에서 예의 그 초록 광선을 뿜어냈다. 나는 황급히 이지수를 안고 옆으로 굴렀다.

“저저! 천오 동무 개 싸가지 없습네다!! 이래서 검은 머리 난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 했는데!!”

“천오는 머리가 흰 색!! 으아아악!!”

나는 말을 차마 끝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옆으로 뛰어야 했다. 우리가 있던 곳을 초록색 광선이 지나가며 땅을 깊게 긁었다. 그 흉흉한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천오는 지금 정말 우리를 죽일 셈이었다. 천오는 자꾸만 피하는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쇠다리를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철컥. 철컥. 철컥.

천오가 움직일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며 땅이 깊고 날카롭게 파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쇠다리에 추가 사리가 됐다.

“천오 동무가 생각보다 강한 것 같습네다. 이거 어떡합네까?”

내 품에서 내려간 이지수가 양손에 든 총을 한 바퀴 빙그르­ 돌리며 물었다. 이 새끼 언제 이렇게 총에 능숙해진 거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정신 차릴 때까지 대가리를 쥐어패야지.”

“역시 사춘기 패륜 소녀에게는 매가 약입네다.”

이지수가 시원하게 웃으며 내 반대쪽으로 뛰었고, 나는 검을 뽑아서 내게 달려드는 천오의 쇠다리를 베어 넘겼다. 베어진 쇠다리들이 바닥에 나뒹굴면서 쇠다리 끝에 매달려 있던 시체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흉한 모습에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다시금 검을 고쳐 잡았다.

다리 세 개가 동시에 베인 천오가 기우뚱하며 몸이 흔들렸다.

“가정 교육 시간이다. 천오야.”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천오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탕!탕!

“곱게 뒤지십쇼!! 천오 동무!!”

“야!! 애 이쁜 얼굴에 상처 나면 어떻게 하려 그래! 대충 쇠다리만 쏴!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하지만 천오 동무가!! 으에에엑!!”

분노를 토하던 이지수가 황급히 구르며 천오의 쇠다리를 피해냈다. 이지수의 팔이 길게 긁히며 피가 살짝 튀었다.

“저저! 호로 새끼! 내가 먹여준 공화국 음식이 얼만데!!! 천오 동무는 호로 새끼가 확실합네다! 호로 새끼! 천오 동무!”

끼기긱­.

공화국 음식이라는 단어에 천오의 기세가 더욱 흉흉해졌다.

“그러고 보니 저 쇠다리에 사람들이 줄줄이 꽂힌 게 꼭 꼬치구이 같습네다!! 역시 천오 동무는 공화국의 닭꼬치가 맛있었던 게 분명…! 으아아악!!!”

전보다 빨라진 쇠다리 속도에 이지수는 정신없이 굴러야 했다.

* * *

0